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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식물원 여행 어때요?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5-12-29 16:28 게재일 2025-12-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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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더 좋은 식물원 4선

겨울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추위다. 그래서 겨울의 여행지는 실내로 이동한다. 그중에서도 식물원은 가장 계절 친화적인 선택지다. 문 하나를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온도가 바뀌고, 색이 달라지며, 여행의 표정도 부드러워진다. 올겨울, 도심과 숲, 바다를 잇는 세 곳의 식물원이 여행자에게 따뜻한 쉼을 건넨다. 다사다난한 2025년을 마감하며 식물원에서 새해 소망을 빌어보는 가족여행을 떠나보자. 

△ 실내정원을 품은 궁궐같은 식물원 경주 동궁원

겨울에도 화사한 경주 동궁원 _한국관광공사 제공 

경주 동궁원은 단순한 식물원이 아니다. 이름부터 그렇다. ‘동궁’은 신라 왕궁의 동쪽 별궁을 뜻한다. 역사적으로는 월성 인근에 왕자와 왕실 가족이 거처하던 공간이다. 이 이름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만든 공간이 바로 동궁원이다.

위치는 보문관광단지 초입, 경주엑스포대공원과 맞닿아 있다. 접근성부터 여행자 친화적이다. 대형 주차장을 갖췄고, 실내 중심의 관람 동선은 겨울 여행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동궁원은 크게 동궁식물원(주온실), 버드파크, 야외정원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겨울 여행의 핵심은 단연 동궁식물원이다.

경주 동궁원 내부 _한국관광공사 제공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온도가 달라진다. 외투를 입고 들어섰다가 금세 지퍼를 내리게 된다. 내부는 연중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하는 대형 유리온실이다. 이곳에는 열대·아열대 식물 약 300여 종이 자란다. 바나나나무, 파파야, 커피나무, 선인장, 난초류까지, 겨울과는 전혀 다른 식물의 시간대가 펼쳐진다.

동궁식물원의 특징은 ‘경주형 온실’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식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라 문화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연못과 정원 배치, 목재 구조물의 형태는 신라 궁궐의 정원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식물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실내 정원을 품은 궁궐을 거니는 느낌이 든다. 동궁원은 가족 단위 여행에 최적화돼 있다. 유모차 이동이 편하고, 어린이를 위한 체험형 전시가 많다. 최근에는 사진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겨울 햇살이 유리온실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빛은 계절 중 가장 부드럽다.

경주 버드파크 내부_한국관광공사 제공 

특히 오전 시간대의 동궁식물원은 추천할 만하다.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오며 식물의 잎맥과 수분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겨울 특유의 낮은 태양고도가 오히려 사진에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동궁식물원 관람 후 이어지는 동선은 버드파크다. 실내외를 넘나드는 이 공간에는 앵무새, 공작새, 작은 열대 조류들이 자유롭게 생활한다.

경주 버드파크_ 한국관광공사 제공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지만, 어른에게도 인상적이다. 철창을 최소화하고 자연 서식에 가까운 환경을 조성해 ‘관람’보다는 ‘공존’에 가깝다. 겨울철에는 새들의 활동성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실내 온도가 일정해 관람객과 새 모두 편안하다. 조용히 서 있으면 머리 위로 새가 날아오르기도 한다. 경주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생생한 장면이다.

동궁원의 야외정원은 겨울이면 다소 한산하다. 그러나 이 또한 의미 있다. 잎을 떨군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구조와 선, 정원의 골격이 또렷해진다. 봄과 여름이 식물의 계절이라면, 겨울의 정원은 공간의 계절이다. 짧게 산책하며 다음 계절을 상상해보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눈이 내린 날의 동궁원은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유리온실 너머로 보이는 설경은 실내와 실외, 계절과 계절이 겹쳐지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 지하철에서 바로 만나는 초록 – 서울식물원

서울식물원 야경_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울식물원은 서울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가 만나는 마곡나루역과 맞닿아 있다. 말 그대로 지하철역에서 가장 가까운 식물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논과 밭이 이어지던 서울의 마지막 농경지, 강서 마곡지구. 빌딩숲 한가운데 축구장 70개 넓이의 식물원이 들어섰다.

서울식물원은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 주제원 등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겨울의 주인공은 단연 온실을 품은 주제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계절은 여름으로 바뀐다.

서울식물원 내부_한국관광공사 제공 

열대와 지중해 지역의 도시를 테마로 한 동선은 세계여행을 연상시킨다. 최대 높이 25m까지 자란 야자수, 은은한 햇살을 머금은 올리브나무, 2,000년 넘는 시간을 견뎌온 바오바브나무까지 1,000여 종의 식물이 살아 숨 쉰다. 약 8m 높이의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키 큰 열대 식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겨울 인사를 나눌 수 있다.

2025년 2월까지 열리는 ‘윈터페스티벌’도 눈여겨볼 만하다. 희귀 난초와 나뭇가지로 만든 겨울요정이 온실 곳곳에 숨어 있다. 씨앗을 빌려 키운 뒤 다시 씨앗으로 반납하는 씨앗도서관, 식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정원지원실, 작은 식물을 구입할 수 있는 기프트숍까지 둘러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식물원을 나서면 여행은 이어진다. 도보 10분 거리에 겸재정선미술관이 있고, 허준박물관에서는 ‘동의보감’의 가치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국립항공박물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김포공항 활주로의 풍경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잊지 못할 장면이다.

△ 우리 식물만으로 채운 숲의 깊이- 국립한국자생식물원

한국자생식물원_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원 평창 오대산 숲속에 자리한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성격부터 다르다. 이곳에는 외래종이 없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만으로 구성된 식물원이다. 1999년 김창열 원장이 사립 식물원으로 조성한 이곳은 2021년, 최소 100년간 식물원으로 운영한다는 조건으로 산림청에 기부됐다. 그리고 2024년 7월, 지금의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보전기관이자, 산림청 지정 국가희귀·특산식물 보전기관이라는 타이틀이 이곳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자생식물원 내부 _한국관광공사 제공 

희귀식물원, 특산식물원, 모둠정원 등 7개의 야외 공간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겨울에는 화려함 대신 설경 속 고요함이 주인공이다. 눈 덮인 숲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은 이곳에서만 가능한 호사다.

방문자센터에서는 도자기 공예 체험과 함께 숲속 책장에 꽂힌 2만여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폐목재로 꾸민 로비와 카페 공간에서는 겨울철 한정으로 따뜻한 음료가 무료로 제공된다. 식물원이라는 이름보다 ‘머무는 숲’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인근의 월정사성보박물관,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전나무 숲길, 템플스테이까지 묶으면 오대산 일대는 겨울에도 깊이 있는 여행지가 된다.

 △ 기후를 여행하다, 서천에서 만나는 지구의 생태 –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_한국관광공사 제공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은 ‘식물원’이라는 범주를 넘어선다. 생태계 연구와 전시, 교육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핵심 시설은 에코리움이다. 에코리움은 열대·사막·지중해·온대·극지 등 5대 기후관으로 구성된다. 약 3,000㎡ 규모의 열대관에는 세계 최대 담수어 피라루크와 커튼담쟁이 터널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국립생태원 내부 _한국관광공사 제공 

사막관의 귀여운 사막여우와 검은꼬리프레리도그, 지중해관의 바오바브나무와 식충 식물도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온대관에서는 제주도 곶자왈을 여행하고 극지관에서는 남극과 북극에 서식하는 펭귄을 만날 수 있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장항송림산림욕장으로 발길을 옮기자.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로와 장항스카이워크는 겨울 바다와 숲을 동시에 품는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씨큐리움, 장항6080음식골목, 금강하구둑까지 더하면 서천의 겨울 여행 동선이 완성된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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