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한 번에 고가품을 대량 구매하던 ‘큰 손’ 쇼핑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대신 개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소액·다품목 소비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19년과 2025년을 비교했을 때 외국인 관광객의 1인당 총 소비금액은 83% 증가했지만, 구매 1건당 평균 지출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구매 횟수가 무려 124% 급증한 데 따른 결과다. 한 번에 크게 사는 대신, 자주 들러 조금씩 사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이른바 ‘K-라이프스타일’ 상품이 있다. 한국적인 감성과 일상을 담은 문구류, 뷰티 제품, 건강식품 등이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실용성을 앞세운 문구 브랜드 ‘아트박스’의 성장세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리브영 역시 더 이상 단순한 드러그스토어가 아닌,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다.
뷰티 소비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약국으로 이어진다. 과거 외국인들이 약국을 찾는 이유가 감기약이나 진통제 등 ‘필요한 약’ 구매에 국한됐다면, 최근에는 피부 관리, 영양 보충, 면역 관리 등 일상적인 웰니스 제품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약국은 이제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K-웰니스 경험의 일부가 되고 있다.
건강식품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홍삼, 인삼 등 한국 특산물을 활용한 건강식품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믿고 사는 선물로 자리매김했다. 가족과 지인을 위한 기념품이자, 한국 방문의 가치를 담은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K-뷰티와 K-헬스는 이제 부수적인 소비가 아니라, 한국 여행의 핵심 소비 축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쇼핑 트렌드의 전환을 넘어선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과 K-콘텐츠가 글로벌 관광 시장에서 하나의 ‘경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러한 소비 흐름을 면밀히 분석해 업계가 변화하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은 이제 금액이 아니라 이야기와 취향을 산다. 한국은 그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들어내는 여행지가 되고 있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