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이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취향이나 배려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동 혹은 상처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같이 여행을 가서 여행 동료가 더 좋아졌다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행은 우정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도 없이 친한 사이도 막상 여행을 같이 다녀와서는 서먹해지거나 심지어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단짝이라서 여행에서도 엄청나게 재미있을 줄 알았어요. 처음 며칠은 괜찮았는데 여행이 길어지면서 밑바닥이 보이더라고요. 물론 저도 내 좋은 것만 찾으려 한 것 같고…. 나중에는 왜 저 친구랑 여행을 같이 왔나 엄청 후회했어요.”
후배 한 명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실상 주변에서 많이 들어 보았을 겁니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앞에서 서로 악이 받쳐서 싸우고 각자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부터 여행지에서는 꾹 참았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는 서로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왜 여행을 다녀오면 우정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요? 여행이 길어질수록 피곤함이 더해지고 처음에는 별것 아닌 취향의 차이도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에 대한 배려인데 자신의 몸도 피곤하니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기가 점점 귀찮아집니다. 그러다 사소한 일들에 상처를 받으면 폭발하고 맙니다. 결국 밑바닥까지 보여 주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 최악의 관계로 돌아서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남미 혁명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체 게바라는 스물네 살이 되던 때에 선배이자 친구 의사인 알레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포데로사라 이름붙인 배기량 500cc짜리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5개국을 돌아 다녔습니다. 알베르토는 “청춘이라는 새는 날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라며 기꺼이 체 게바라와 여행을 떠납니다.
호기롭게 떠난 청춘 여행이었지만 고물 오토바이로 떠난 여행이 편안할 리 없었습니다.
“처음 비포장도로를 달린 우리는 잔뜩 주눅 들었다. 하루 만에 무려 아홉 번이나 바닥으로 나동그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청춘은 여행의 과정에서 고귀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칠레의 구리 광산 추키카마타에서는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느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페루의 나환자촌에서 의료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환자들을 거리낌 없이 포옹하고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나환자들은 송별회를 베풀어 줍니다.
체 게바라는 “오른손 손가락이 없는 아코디언 연주자는 손목에 작은 막대기를 묶어서 우리를 위해 연주했어요. 노래하는 분은 맹인이었고요.”라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나환자들은 자신을 정성껏 치료해 준 체 게바라와 알베르토를 위해 뗏목을 만들어 줍니다. 이후 하나밖에 없는 텐트가 태풍에 날아가고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이동수단인 모터사이클마저 소떼에 부딪히면서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야말로 여행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터사이클 대신 걸어서 여행을 하면서 남아메리카의 아픈 현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까지 무려 1만 2425km를 여행하고 작별합니다.
체 게바라는 “이번 여행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라며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이후 쿠바 하바나대학교 의학부 교수로 쿠바 의학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여행이 이들을 성숙하게 만들고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행에도 궁합이 있다면 이들 두 사람은 최고의 궁합이 아닐까요? 이들이 여행을 간 기록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책과 같은 이름의 영화로 나왔습니다.
여기에서는 두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여행에서 두 사람이 갈등하거나 혹은 문제가 있었는지 싸우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결하고 빼어난 내면으로 성숙한 삶을 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이만한 여행 친구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신에게는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여행 친구가 있나요? 그런 친구가 있다면 이 험한 세상도 살 만하지 않을까요?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