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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마을 뒤 높은 곳에 터잡은 거대하고 우람한 자태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에 따라서 인물의 태어남과 기질이 형성된다고 믿어 왔다. 그런 연유로 마을이나 산의 지형을 함부로 변형하거나 훼손하는 일을 싫어하고 못마땅했다. 10여 년 전인가 영덕 인량리 전통 민속문화 마을 노거수를 찾았다. 그때 알고 지내는 지인이 인량리 마을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사회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마을 뒷산에 송전탑이 세워져 지나가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지기가 끊어지고 약해진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 마을 출신 박약회 회장이며 인성교육 전문가로 변신한 한국 PC 아버지로 불리는 전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을 찾았다. 마을의 지기가 끊어지고 약해져 큰 인물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 사업을 중단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이 회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걸작이었다. ‘요사이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무슨 인물이 태어난다고 합니까?’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인량리 마을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등에 업고 넓은 평야를 안고 있다. 낙동정맥에서 발원한 송천을 사이에 두고 원구리 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풍수지리로 볼 때 배산임수형의 마을이 아닐까 싶다. 두 마을은 서로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옛날부터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해 왔다. ‘영해부지(寧海府誌)’에 의하면 “인량리는 팔성종실(八姓宗室)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순후하고 예의와 겸양이 있고 효행과 학문이 높은 선비가 많아 벼슬이 끊이지 않으니 영해부 내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라 했다.” 재령이씨 이애(李璦)가 건립한 충효당 종택을 비롯하여 민속문화재 유산이 무려 9점이나 있는 마을이다. 민속문화란 민간 생활과 결부된 풍속, 신앙, 전설 등 민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문화를 말한다. 특히 민속문화는 마을 주민과 마을 나무라 일컬어지는 동신목 노거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량리 마을에는 마을 뒤 산자락 충효당 종택과 은행나무(459-1번지), 마을 서쪽 비보림의 팽나무(438번지), 마을 앞 남쪽 들판 서낭당 회화나무, 팽나무(250번지) 노거수가 있다. 한 마을에 이런 다양한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지령(地靈)은 높은 산의 신령이 아니라 바로 마을 숲과 노거수가 있는 마을과 그 나무들이 지령이 아닐까 싶다.충효당 종택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나이 520살, 키 22m, 가슴둘레 5m가 넘는다. 앉은 자리 폭이 무려 24m로 면적은 130평이 넘었다. 암그루로 매년 많은 은행을 생산하고 있다. 거대하고 우람한 나무가 마을 뒤 높은 곳에 있어 멀리서도 그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은행나무 노거수는 마을의 전통 고유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마을의 랜드마크 기능과 마을 역사의 표징이 되고 있다. 또한 충효당이라는 건축물과 입향조 이애란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역사의 산 공유물로서 그 증거 및 보완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 서쪽 비보림은 2004년 4월 17일 새천년 기념 숲으로 지정되었다. 걸출한 품위와 멋있는 외모를 갖춘 팽나무 노거수는 2007년 2월 12일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나이는 350살이고 키는 14m이다. 가슴둘레는 3m가 훌쩍 넘고 앉은 자리 넓이는 90평이나 되었다. 비보림에는 마을 주민들이 느티나무, 주목을 심어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지리적으로 비보림(裨補林)은 풍수상의 모자라고 허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말한다. 엽승림(擫蕂林)은 풍수상의 불길한 기운이 마을에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하여 조성한 숲을 말한다. 어쨌든 마을 숲은 방풍, 방수, 방온 등 미세 기후를 조절하고 지역 주민과 지역의 야생 생물들의 생활과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숲 생태계이다.팽나무 노거수 나무줄기 위에 어린 노간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나무뿌리 부근에서 자란 여러 줄기가 자라면서 몸집을 불려 지금은 하나의 원줄기로 변환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합의 상징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원추형 수형이 아름답다. 가로로 자란 큰 줄기에 세로로 자라는 어린줄기가 꼭 엄마 등에 업힌 어린아이 같다. 예전에는 당산목이었으나 지금은 마을 앞 서낭당으로 옮겨서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거대한 팽나무 아래 함께 동거하고 있는 어린 회화나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마을 앞 남쪽 들판 서낭당에 회화나무, 팽나무(250번지)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1996년 12월 6일 보호수 지정하여 기와로 얹은 돌담으로 경계를 지우고 남쪽으로는 철책을 둘러쳐서 당산목과 당우를 보호하고 있다. 태풍에 쓰러져 누워서 살아가고 있는 회화나무 나이는 500살이다. 가슴둘레는 약 3m, 키는 8m라 해야 옳은지 아니면 15m라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상처가 나 곪아 있는 몸에 자라고 있는 줄기 모습이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엄마의 몸을 빌려 살아가는 염량 거미를 생각나게 한다. 누운 회화나무를 떠받들고 있는 팽나무 모습이 거룩해 보인다. 이제 팽나무와 회화나무는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마을 숲과 노거수는 우리의 삶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가치와 기능은 다양하다. 전통 민속문화로 자리매김한 마을 숲과 노거수를 땅의 효율성과 생활의 편리성만 따져서 함부로 훼손하거나 제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낭당에 세워진 정자에 마을 노인들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외롭게 보였다. 옛날과 같이 손자 손녀와 함께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마을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미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노거수는 어떤 가치와 기능을 가졌을까?전통 민속문화의 자연자산인 노거수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래 그걸 간략하게 요약해본다.△지구환경을 구성하는 환경재의 기능이다. 인류 공동의 자연자산 즉 공유자산으로서 금전적 가치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의 비사용가치, 즉 존재가치가 있다. △학술적 잠재 자연식생의 기능이다. 자연적 기원의 노거수는 그 지역의 잠재 자연식생 정보를 제공한다. △생물다양성과 생물서식공간의 기능이다. 노거수 한 그루에는 수많은 생물 종의 삶의 터전이다. 지역의 생물다양성 중심지로서 지역 고유의 생물종다양성과 유전자 다양성을 저장하는 종자은행(Seed Bank)이다. △환경조절의 공익 가치이다. 노거수는 수원함양, 대기정화, 토양정화, 토사유출 방지, 산소생산, 소음방지, 기상완화, 쓰레기 처리 등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고 증진한다. △미적 가치이다. 자연미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가치이다. △지역의 이정표 기능이다. 노거수종을 따라서 지명을 붙인 사례가 많다. △생명·우주 기능이다. 노거수는 지역 주민과 어린이의 영속적 교육재료가 되며 수령과 수명을 고려한 생물체의 생명환을 이해하는 학습자료이다. △교육, 홍보 기능이다. 노거수는 생태환경과 웰빙에 대한 영상매체를 이용한 교육적 수단으로 유효하며 생태관광 자산이다.

2023-12-06

찬바람 불때 한 줄 한 줄 ‘마음챙김’ 시 한편 어때요

선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처럼 빠르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래서다. 그들은 이렇게 부연했다.“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니, 지금에 충실하며 돌이켜 통탄할 일을 경계하라.”이는 흐르는 세월을 그저 그렇게 보내지 말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는 생의 경구(警句)로 읽힌다.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엄정한 위의 사실을 이전에도,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살다 가기 십상이다.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일.엊그제 열린 듯한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벌써 저물고 있다. 달력을 뜯어내며 보니 이제 12월을 표시한 마지막 한 장만이 외롭게 남았을 뿐.한 해가 마무리 되는 달인 12월. 무얼 하며 보내야 조금은 덜 쓸쓸하고, 헛되이 지낸 나머지 11개월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런 시기엔 좋은 시(詩) 한 편 친구 삼아 긴 겨울밤을 보내는 게 어떨까싶다.시란 세상과 삶이 내포한 진실을 짧고 은유적인 문장에 담아낸 문화예술의 절정이며, 시인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세계의 본질을 가까이에서 관조(觀照)할 줄 아는 사람이다.아래, 무언가 막막한 심경 속에서 뭘 해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해 찬바람 횡행하는 추운 거리를 헤매는 독자들을 위해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노래한 3편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연말 선물이 될 수 있었으면. 최승자‘未忘 혹은 備忘 8’- 버석거리는 삶 속에서 ‘푸른 죽음’을 보는 견자(見者)살아있는 모두는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건 인간의 한계이자, 인간만이 가진 인식의 드넓은 지평이 아닐지. 필부필부(匹夫匹婦)는 그 생각이 그저 생각으로만 그치지만, 시인은 다르다.그래서다. 인간보편을 더듬는 예민한 시적 촉수를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시인 최승자(71)는 시집 ‘내 무덤, 푸르고’에 ‘未忘(미망) 혹은 備忘(비망)’이란 제목의 연작시를 싣는다. 그중 여덟 번째 노래는 아래와 같다.未忘 혹은 備忘 8내 무덤, 푸르고푸르러져푸르름 속에 함몰되어아득히 그 흔적조차 없어졌을 때그때 비로소개울들 늘 이쁜 물소리로 가득하고길들 모두 명상의 침묵으로 가득하리니그때 비로소삶 속의 죽음의 길 혹은 죽음 속의 삶의 길새로 하나 트이지 않겠는가.자신을 포함한 ‘살아있는’ 사람의 바깥에 서서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푸르름 속에 함몰된’ 죽음을 떠올리는 건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명징한 인식을 통해 ‘삶 속에 내재한 죽음’ 또는, ‘죽음 속에 존재하는 삶’을 인식하는 건 ‘고뇌를 통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최승자의 작품이 여타 시인들의 시와 구별되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기형도‘엄마생각’- 춥고 마음 아픈 날, 언제나 떠오르는 단어 ‘엄마’시인 기형도(1960~1989)는 요절(夭折)했다. 레토릭(Rhetoric)이 아닌 사실이다. 겨우 만 29세에 어두운 극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으니.만약 살아있었다면 어떤 시적 성취를 이루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어려운 영민한 작가였던 그는 주목받는 ‘중앙일보’ 문화 담당 기자이기도 했다.세상 어떤 아들이 ‘그리움’과 ‘눈물’ 외의 방식으로 엄마를 떠올릴 수 있을까? 그건 시인이나 회사원, 공무원은 물론이고 도둑까지 마찬가지다. 기형도 역시 엄마를 떠올린다. 눈물과 그리움으로. 이런 시다.엄마 생각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가난한 엄마가 시장에서 열무를 다 팔고 집으로 돌아와도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겨우 푸성귀 반찬으로 늦은 저녁을 차려 아들과 함께 먹는 것 외엔. 그럼에도 우리는 바로 그 시간을 기다린다. ‘엄마가 돌아오는’.유년의 아이들만이 아니다. 중년의 아들 역시 “엄마”라고 발음하면 주위 사방 전체가 연탄불 들어오던 아랫목처럼 따스해진다. 그래서다. 기형도의 ‘엄마 생각’은 바로 이 계절에 맞춤한 시다. 이성부‘깔딱고개’- 그래도 ‘살아간다’는 건 아름답고 가슴 벅찬 일사람이 생의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살아야할까? 기자처럼 53년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순(耳順)이나 고희(古稀)에 이르면 갑작스레 깨달음이 올까?시인 이성부(1942~2012)는 지상에서 꼭 70년을 살았다. 한국문학사에 오래 기록될 절창(絕唱)을 여럿 남겼고, 취미 수준을 넘어서는 등산으로도 문단 안팎에 이름이 높았던 그는 말년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깔딱고개내 몸의 무거움을 비로소 알게 하는 길입니다서둘지 말고 천천히 느리게 올라오라고산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합니다우리가 사는 동안 이리 고되고 숨 가쁜 것 피해 갈 수는 없으므로이것들을 다독거려 보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나무둥치를 붙잡고 잠시 멈추어 섭니다내가 올라왔던 길 되돌아보니눈부시게 아름다워 나는 그만 어지럽습니다이 고비를 넘기면 산길은 마침내 드러누워나를 감싸 안을 것이니 내가 지금 길에 얽매이지 않고길을 거느리거나 다스려서 올라가야 합니다곧추선 길을 마음으로 눌러 앉혀 어루만지듯이고달팠던 나날들 오랜 세월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워그리움으로 간절하듯이천천히 느리게 가비얍게자주 멈춰 서서 숨 고른 다음 올라갑니다내가 살아왔던 길 그때마다 환히 내려다보여나의 무거움도 조금씩 덜어지는 것을 느낍니다편안합니다.산에 오르는 것이 결국은 삶을 살아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실’을 알게 된 시인은 마침내 ‘편안합니다’라며 자신의 생과 시에 마침표를 찍고 독자들 곁을 떠났다. 이제 ‘그래도 생은 벅차고 아름답다’는 이성부의 가르침만이 문장으로 남았다. 그래도, 슬프지만은 않다. 우리에겐 아직 생이 진행형이므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12-05

“피해자 목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인권 활동’의 목표죠”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의 첫 문장이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당연한 권리를 말한다. 두 발을 딛고 사는 땅이나 한순간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공기, 생존에 필수인 햇빛처럼 소중하지만 늘상 곁에 있으려니 하기 쉽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3 인권의식 실태조사’를 보면, 1년 전보다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인식이 증가했다. 인권침해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대상은 경제적 빈곤층이었다. 인권은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장은 약자의 편에서 인권을 지켜온 사람이다. 김 센터장이 말하는 인권 활동의 목표는 피해자의 옆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다. -인권은 당연한 권리지만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요즘이다.△곳곳에서 인권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직장에서는 노동자가 괴롭힘을 당하고, 시설에서 장애인, 노인이 학대당한다. 정부의 존재 이유를 헌법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 즉 인권 보장을 분명히 하는데도, 현실에서 행정력은 작동되지 않고 사법기관은 여전히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인권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와 같은 처지라 말할 수 있다.-인권의 여러 종류 가운데 노동인권을 중심으로 내건 이유는.△우리 사회의 인권 척도를 노동인권의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인권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 속의 구성원과 구성원 또는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 등 다양한 층위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다양하게 제기되는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 또는 이를 보장하기 위한 서비스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즉 사람의 노동을 통해 발현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인권센터라고 한 것이다. 노동인권센터는 노동문제를 중심에 두면서 지역과 사회 전반의 인권 현안을 함께 하겠다는 포부로 출발했다.-경북노동인권센터는 어떤 사람들을 도와주나.△월급을 떼인 노동자가 가장 많고, 직장에서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을 당했거나, 해고나 징계를 당한 노동자, 산업재해 피해자들이다. 80%는 일터에서 생긴 문제이다. 다음으로는 장애인 학대, 보복성 징계나 해고를 당한 공익신고자들이 많다. 이외에도 학교폭력으로 찾아오는 학생과 부모, 석산 개발, 폐기물 소각장, 매립장 설치, 수해나 산불 피해 등 일상에서 위협받는 사람들이나 재난지역 주민들과도 함께한다. 1년에 들어오는 민원만 600~800건이다.-그 많은 민원을 어떻게 상담하고 지원하나.△일반적인 프로세스라면 불가능하다. 민원인 대부분이 행정기관의 문턱을 넘기지 못하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분들이다. 문턱을 넘는 것만 도와주면 스스로 해결한다. 변호사나 노무사, 시·도의원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나의 역량으로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저 민원인이 됐다고 할 때까지 옆에 서 드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무리한 요구라고 판단되는 민원은 어떻게 하나.△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오죽 억울했으면 나한테까지 왔을까를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내용도 있지만 왜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를 주목한다.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피해를 당해오다 사건을 계기로 피해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 민원인이 본인이 그런 입장이 될지는 몰랐다고 말한다. 켜켜이 쌓인 문제가 발현된 것이다. 발현된 그 순간의 목소리를 지키는 것이 인권 활동의 목표이다. 물론 세 차례 이상 만나면서 신뢰가 쌓인 뒤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때도 있다.-타지역과 비교해 경북 지역의 노동 인권 감수성의 수준은 어느 선인가.△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인권 관련 지표 조사 등을 보면 대부분의 영역에서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에서 인권증진 조례가 만들어진 것이 2013년이지만,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은 전국에서 꼴찌였다. 경북의 인권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경북노동인권센터는 변호사와 노무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활동가 300여 명의 순수 후원으로 운영된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노동센터는 조례에 근거해 지원받지만, 경북을 비롯해 몇몇 곳만 민간 단체이다.-인권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1990년대 초반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길거리 검문검색이 일상이었는데, 누가 시민의 걸음을 멈춰 세우고 가방을 뒤지는 권한을 주었을까? 늘 고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세계인권선언문 읽기 모임을 안내하는 손바닥만 한 포스터를 보게 됐다. 199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 참가자들이 주축이었다. 국내에서 조직적으로 참가한 첫 세계인권대회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인권 인식은 폭력행위에 저항하는 자유권에서 사회권 차원으로 확장됐고 국가인권기구 설립 운동으로 이어졌다.-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면.△인권 침해를 당해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거나, 공익 제보를 원하는 분들이 우리 인권센터를 물어물어 찾아왔을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보람은 인권을 배우면서 함께 한 사람들과 국가인권기구 설립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지켜보며 감격스러웠다. 물론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존재만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피해 당사자들은 강력한 몽둥이를 바라지만 국가인권위는 솜방망이를 크게 휘둘러야 강해진다. 인권 제도는 형벌 제도가 아닌데도 인권위는 지나치게 입증을 강조한다. 억울한 입장에 서서 51%만 그렇게 보이면 권고해야 한다.-안타까운 순간을 목격하는 일도 많을 것 같다.△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나 공익 제보자 대부분이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위험한 인물로 낙인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그리고 사건으로 짚는다면 경주시체육회 철인3종경기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다. 생전에 최 선수의 지인이 찾아와 사건을 접수해서 대응 방안을 찾던 중 최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는데 최 선수가 상처받을까 조심하는 사이 사고가 나버렸다. 그 후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국민체육진흥법의 목적이 “국위 선양”이 아니라 “체육인 인권 보장”로 변경되는 등 성과가 컸지만, 고인을 살리지 못해 안타깝다. 온갖 구설을 물리치고 끝까지 처벌을 원했던 최 선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시스템이 바뀌어도 딸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다시는 그런 아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결심했고, 아직도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피해 정도가 경미한 경우는 어떻게 하나.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피해 정도는 따지지 않는다. 본인이 피해라고 하면 피해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상대적 약자가 피해를 보고 있다. 목소리를 낸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수많은 침묵이 강요될 것이다. 물론 가해자의 인권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그 과정에서 부풀림이 있을 수 있으니 늘 주의한다. 사회적 시스템으로 벌을 받아야 하지, 그 외의 것들로 배제되거나 벌에 준하는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인권과 관련한 일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을까.△자기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다. 감수성이라고 하면 느낌이나 감성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인권은 인류사회가 변화 해오면서 만들어낸 가치이며, 지금도 확장되고 있는 변화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인식의 영역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일은 자신의 기준이 되는 영역을 넓히는 일, 즉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시대에 인권을 더 말해야 하는 이유는.△우리나라 인권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다. 현재는 조례를 통한 전면적 수용과 개인적 수용의 갈림길에 있다. 개별적 구제를 통한 확산은 느리고 한계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지자체 차원에서 인권증진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가까운 대구에서 인권 기구가 폐지됐다. 학생 인권 문제로 교사가 고통당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한 얘기들 자체가 반인권적인 이야기다. 인권은 누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사람들이 가장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다. 인권이 흐릿해지는 지금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외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인권을 더 말해야 한다.-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지 하며 활동했지, 한 번도 뭘 이루고 싶다는 생각은 없이 지금까지 왔다. 그래도 한 가지를 말한다면 인권 침해를 당하거나, 공익신고로 고통받는 분들 곁을 지키는 노동인권센터에서 정년을 맞는 것이다.김용식 센터장은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2000년에 포항에 내려와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포항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공단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했다. 그 뒤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상담 활동을 하며 인권 분야에 몸을 담그게 됐다. 도가니 사건이 영화로 알려지면서 장애 분야 인권지킴이, 국가인권위원회 장애분야 위촉강사로도 활동했다. 포항근로자종합복지관장,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집행위원장, 경북혁신교육연구소 ‘공감’ 부소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촉강사(장애 분야)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경북이주노동자센터 운영위원장, 경상북도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 경북노동인권센터장을 맡고 있다./배은정 작가

2023-12-04

주황빛 노을은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사계절 푸른 해송을 품은청하 이가리 해변은수평선 너머 물들이는고요한 일출과 가지런히 놓여 있다.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내는 전경이정신을 맑게 한다.닻 공원은 해안가로 뻗어나가는산책로가 놓여 있어바다의 소리와 냄새를 만끽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신선한 바다 공기가몸속 가득 스며들어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한다. 닻을 형상한 전망대는선박과 어업 문화를 상상하게 하고바다에서 생존의 터전을 마련한 어민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곳해가 서쪽으로 천천히 저물면서 바다 위로 퍼지는주황빛 노을은 그림 같은 멋스러움을 자아낸다.이 순간, 일상의 소소한 기쁨은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새 희망을 심어 준다.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청하 이가리 닻 공원을 찾아가는 것은시간을 잊고 마음을 채우는색다른 여정이 될 것이다.글 : 김재건(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 최수정 최수정 197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성장했다.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6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현상회, 계명회 등의 회원이며 포항에서 갤러리m을 운영하고 있다. ‘호미곶 이야기’, ‘비밀이 사는 아파트’, ‘꿈꾸는 복치’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2023-12-03

수백년 한결같이 서로 품으며 마을의 수호신 되다

영덕군 창수면 수리마을에서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전원생활을 한 지도 벌써 15년 훌쩍 넘었다. 영해에서 창수면 수리로 가는 농촌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뿌리줄기에 붙어있는 고구마처럼 길 따라 옹기종기 붙어있는 자연부락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마을마다 작은 마을 숲에는 당우와 함께 당산목이라 불리는 노거수가 있다. 주민들은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특히 영해면 원구리 마을 숲 당산목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집으로 오가는 길목에 있는지라 오갈 때마다 들리곤 한다. 이제는 나의 중간 기착지 힐링 쉼터가 되었다. 숲속을 거닐면서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를 마음껏 들어 마실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고택과 정원의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다. 덤으로 마을 앞에 펼쳐지는 넓은 들판은 여름에는 푸름으로 왕성한 기운을 느끼게 하고 가을에는 황금물결로 마음에 풍성함을 채워준다. 힐링하기에 원구리 마을은 안성맞춤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원구리 마을은 낮은 언덕 자락에 터전을 잡은 마을로 넓은 들을 소유하여 예로부터 비교적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주민들은 넓은 들판과 고래불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숲을 조성하고 자연을 가까이했다. 어린나무들은 세월에 힘입어 아름드리 큰 나무의 무성한 숲으로 성장하여 휴식처를 제공했다.또한 마을을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되고 아름다움과 품격을 높여주었다. 숲과 마을은 상생의 윈윈(win-win) 전략으로 자연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의 이치를 터득했다. 그들은 서로를 품고 살아가는 나무와 주민들이다.숲속에는 많은 수종의 나무가 있지만, 주인공은 600살 되는 세 그루의 당산목 느티나무 노거수이다. 놀랍게도 당산목은 마을을 대표하는 영양 남씨, 무안 박씨, 대흥 백씨 삼 성씨의 단합과 경쟁의 시스템으로 묶어 놓았다. 삼 성씨는 당산목을 경배하면서 단합하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했다. 그들은 힘을 모아 서원을 짓고 학문을 연마하고 정자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예와 학문을 숭상했다.한 마을에 성씨별로 서원이 세 개나 지어지고 정자가 세워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없다는 애국정신으로 남의록, 남경훈, 박세순, 백충언, 백사언 등 임란 공신 다섯 명이 모두 삼 성씨의 종손이면서 의병장으로 나라 지키는데 앞장섰다는 미담은 듣고 들어도 다시 듣고 싶다.마을은 아니지만, 문중 간 화합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삼 성씨, 아산 장씨(蔣), 밀성 박씨(朴), 옥산 전씨(全)의 모임인 강선계(講先契)는 1391년경부터 지금까지 630년간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마을 숲에는 소나무, 왕버들, 팽나무, 회화나무 등 많은 노거수가 있지만, 제단 앞에 있는 당산목 느티나무 세 그루는 600살 됨직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제단 왼쪽 느티나무는 지상 50㎝ 높이에서 다섯 가지가 뻗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키는 21m, 몸 둘레 8m, 앉은 자리는 26m가 넘는다.오른쪽 느티나무는 지상 1m 높이에서 네 가지를 뻗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가운데 느티나무는 조금 늦게 태어났는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여 서쪽으로 45도 비스듬히 기울어 비켜나 자라고 있다. 양보와 경쟁의 질서를 조화롭게 지키면서 수백 년을 한결같이 평화롭게 숲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또 한쪽에서는 왕버들과 소나무가 형제처럼 함께 부대끼며 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곧은 절개의 소나무가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터이고, 왕버들 역시 큰 덩치와 힘자랑을 멈추지 않을 터인데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공존해 갈 것인지 궁금하다. 저녁 햇살이 몸을 낮춘다. 대지에 엎드린 지피식물이 어둠의 이불이 펼쳐지기 전 마음껏 만찬을 즐긴다.마을의 무안 박씨 경수당 종택에는 아름다운 향나무 노거수가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1570년에 건립한 99칸의 종택 대청에는 퇴계 이황이 쓴 ‘경수당’ 현판이 있다. 그보다 나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4호 향나무에 더 눈길이 끌렸다. 나이가 무려 700살이 훌쩍 넘었다. 키는 6m, 몸 둘레는 3m이지만, 앉은 자리 둘레는 4.7m나 되었다. 울릉도에 자라고 있는 약 300년생 향나무를 경수당 건립자인 박세순(朴世淳)이 이식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향나무는 무미건조한 고택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향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용을 그리고 눈동자를 찍는 것과 같은 화룡점정이랄까 금상첨화란 생각이 든다. 전통은 만들기도 어렵고, 지키는 것, 또한 어렵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 없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합쳐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세 문중이 집성촌을 이루고 오순도순 살아가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인 동신제를 매년 정월 대보름날 지내고 있다. 신의 경지까지 올려놓고 경배하면서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민족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나무 사랑, 나아가 자연 사랑으로 이어지는 전통 민속문화인 동신제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원구리 마을의 ‘영양 남씨, 무안 박씨, 대흥 백씨’ 삼 성씨는 오늘날까지 동신제를 지내며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의 단합과 결속의 중심인 된 마을 숲의 수목들이 주민들과 오래도록 장수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길 기원해 본다.귀향한 남성근씨가 들려준 원구리 마을 동신제 이야기마을 숲속에 있는 당산목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마을 삼 성씨 어른들이 모여 앉아 왼쪽 세끼 줄을 꼬아 만든 금줄을 악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 제관들의 집에 두른다. 그리고 마당과 길에 황토를 뿌린다. 이때부터는 외부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다. 출입을 막는 것은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마을 삼 성씨에서 각각 한 명의 제관을 선출한다. 제관으로 선출된 세 명은 1년 동안 흉사 등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지금은 한 달 보름 정도로 줄었다. 그동안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을을 정갈히 가다듬는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하루 전날에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 목욕은 용당 샘물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일반 목욕탕을 이용한다.영해 시장에 가서 동제에 사용할 제수를 마련한다, 먼저 생선가게에서 문어, 가오리 등을 산다. 그리고 과일 가게에서 사과 배 등을 산다. 마지막으로 떡을 준비한다. 제물은 크고 좋은 것을 골라 흥정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산다. 소지를 준비하고 제기를 닦는 일은 제관만이 하는 일이다. 제수는 어물 위주로 하고 육고기는 닭고기만 사용한다. 제관과 마을 주민이 제당으로 가서 행사를 준비한다. 제물을 제단에 놓을 때는 바깥에서 안쪽의 순서로 놓는다.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동신제를 올리는 순서는 먼저 제관과 참석자가 절을 하고 신을 맞이하는 참신을 한다. 그리고 초헌관이 땅에 있는 신이 세상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로 세 번 술을 따른다. 초헌관은 다시 절을 하고 참석자 모두 엎드린다. 그리고 축문을 읽는다.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종헌관이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부복하고 산신제는 모든 참석자가 절을 하고 축문을 태운다. 신과 주민, 출향 인사 순으로 소원을 빌며 주민의 이름을 기재한 소지를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낸다. 모든 음식을 조금씩 잘라서 신을 위하여 주변 땅에 묻는다. 그리고 음복한다. 이렇게 동신제는 끝이 난다. 제관은 무릎도 풀고 옷도 벗을 수 있다. 오늘 있었던 동제 이야기를 나눈다.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금줄을 벗기고 마을 사람 맞을 준비를 한다. 동신제 경비 등 결산보고를 한다. 주민들의 화합 시간을 갖는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29

‘권력의 욕망’이 부른 쿠데타, 그 끝은…

특별할 것 없는 집안에서 평범하게 태어났다. 일찍부터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해 젊은 나이에 군문(軍門)에 들어선다. 뚝심과 과감성이 있고, 처세와 정세 판단에 능했기에 비교적 빠르게 고위 장교로 진급한다. 그리고, 마침내 쿠데타를 통해 국가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음껏 누린 이후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볼 수 없다. 20세기 중반에서 21세기 초반에 걸쳐 한국,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프랑스. 다른 대륙, 다른 국가, 다른 시대, 다른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살았지만 전두환(1931~2021)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에게선 적지 않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전두환은 이른바 1979년 ‘12·12 사태’를 거치며 40대 후반에 한국의 정치·사회·군사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틀어쥔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와 선후배 사이인 신군부(新軍部),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가 주도한 반역사적 군사 반란을 통해서다. 나폴레옹은 전두환보다 더 이른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전략과 전술로 군사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35세의 청년 장교 나폴레옹. 그 역시 1789년 프랑스혁명을 통해 들어선 공화정 정부를 뒤집어엎은 쿠데타를 통해 ‘자유·평등·박애의 국가’라 불리는 프랑스를 자신의 무릎 아래 두게 된다. △ 권좌에 머물렀으나, 추모 받지 못하거나 쓸쓸한 죽음 맞아세상 인간 대부분이 그렇다. 빛나는 시간은 짧고 후회와 회한의 세월은 길다. 전두환과 나폴레옹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7년을 대통령의 자리에 머물며 한국에선 자신의 위에 아무도 없는 ‘만인지상의 권력자’로 군림한 전두환. 그러나, 퇴임 이후 그의 삶은 웃을 일보다 슬퍼하거나 절망할 일이 훨씬 많았다.국회 청문회에 불려 다니고, 타의에 의해 깊은 산 속 절에 유폐되고, 소급입법(遡及立法)으로 재판 받아 감옥에 가고,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의 가족들에게 고소되고, 결국은 추모하는 사람 이상으로 반기는 사람 또한 적지 않았던 죽음을 맞았다.영국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제국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18세기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왕관을 씌우고 지존(至尊)에 오른 나폴레옹. 그랬던 그가 몇몇 전쟁에서 참패하고 절해고도(絕海孤島)인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에서 위암으로 인해 사망한 건 51세 때다. 40대 중반에 유배자가 된 ‘전직 프랑스 황제’의 쓸쓸하고 외로운 최후였다. 전두환과 나폴레옹에 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저 세상사와 인간사가 그렇다.다수가 맹렬하게 비판하는 인간도 소수의 측근들에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고, 100명 중 99명이 손가락질해도 1~2명은 동정하는 이가 있기 마련.어쨌건 한국과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였던 둘의 삶과 죽음은 어떤 영화보다 영화적이고,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했다. 이건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일 터.그래서였을 것이다. 전두환과 나폴레옹이 주연이나 조연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흔하다.그래서다. 두 인물은 너무나 익숙한 영화의 소재라 제대로 잘 만들지 않으면 관객과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같은 인물을 소재로 한 이전 다른 감독의 작품과 비교되며 난타 당할 수도 있다.최근 ‘12·12 쿠데타’가 일어난 밤에 카메라를 밀착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나폴레옹’은 내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2023년 초겨울. 한국 관객들은 두 영화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을까? △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는데…먼저 1979년 12월 12일 저녁부터 13일 새벽까지 일생일대 결단의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전두환이란 인물의 내외면 풍경과 하나회에 저항하는 장태완(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악전고투를 담아낸 영화 ‘서울의 봄’은 흥행에선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고 있다.개봉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벌써 200만 명의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았다고 한다. 혹평보다 호평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누가 봐도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임을 짐작할 수 있는 전두광 소장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무난하고 매끄럽다.특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의 수사 책임자가 되면서 언론과의 접촉이 잦아진 전두환이 방송사와 신문사 플래시 앞에 서기 전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에서의 눈빛은 ‘서울의 봄’에서 가장 인상적인 신(scene)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한다는 건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의 실체를 보는 행위이며, 동시에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제스처다. 그 역시 ‘쿠데타’라는 수단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던 후배 군인 전두환의 내면에서 무슨 욕망이 고개를 들고 있었으며, 그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역사를 통해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영화 속 캐릭터 ‘전두광’의 성격 창조가 성공적인 것에 비해, 군사 반란을 막으려 몸부림쳤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성(이태신 역)의 캐릭터 완성도는 다소 떨어져 보인다.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은 하나회 소속 장교가 장갑차를 몰고 돌진하는 행주대교에서 맨몸으로 이들을 막아서고, 쿠데타 주도 세력이 모인 경복궁 지척 광화문에서 혼자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를 넘으려다 여러 차례 쓰러진다.물론, 그날의 비극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영화적 장치, 또는 영화적 허구로 봐줄 수도 있다.하지만, “이태신이 무슨 계백과 이순신의 결합체도 아닌데”라는 혼잣말을 참기 어려웠다. 결국 영화의 감동은 과도한 오버액션과 감정 과잉이 아닌 핍진성에서 오는 것일 텐데….또 하나. 전두환(전두광)과 장태완(이태신)에게만 맞춰진 카메라의 포커스 탓인지,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과 반란의 저지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은 여타 배역들은 지나치게 우매하고 무능하게만 그려지는 것도 보기 딱했다.어쨌건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자의 인상 비평일 뿐. 영화를 접한 또 다른 관객들의 관람기가 궁금해진다. △ 영화 ‘나폴레옹’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는…아직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영화에 관해서는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현재까지 영화 ‘나폴레옹’은 짤막한 분량의 예고편만이 사람들에게 공개됐을 뿐이다.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란 명제에 동의한다면 2023년 ‘나폴레옹’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이 영화의 연출자는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올해 86세인 그는 ‘실존하는 거장’이란 호칭에 값하는 감독이다.‘창조론과 진화론’ ‘로마의 역사’ ‘디스토피아로 퇴화한 미래’ 등의 소재를 오가며 그가 보여준 연출력은 오랜 세월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열정적인 추종자는 한국에도 많다.적지 않은 이들이 ‘나폴레옹’의 개봉을 기다리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연기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의 출연이 아닐까 싶다.이제는 전설로 남은 형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23세에 요절한 영화배우)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뛰어난 배우로 우뚝 선 호아킨 피닉스의 표정 연기와 내면 연기는 극장 안 관객의 모골을 송연하게 할 정도.전작 ‘조커’와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확인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역량은 곧 개봉될 영화 ‘나폴레옹’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리들리 스콧과 호아킨 피닉스가 만들어낸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문제적 인물’ 나폴레옹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이런 조바심을 가진 사람이 기자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11-28

청암의 정신이 형형히 살아있는 웅숭깊은 터전

일을 한다면 국내 최고여야 했고세계 일류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드높은 꿈과 이상은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포스텍과 포스코교육재단을 국내 최고의 학교로 우뚝 세웠다.1972년에 조성되었으나 전봇대 하나 볼 수 없고키 큰 나무들 사이로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하는 곳옛 소련 외교아카데미 부원장 유진 바자노프가“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한 것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포스코 직원들의 주택단지는 포항 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아름다운 살림터가 되었다. 최첨단의 연구개발 기관과 어우러지며포항의 자부심이자 나라의 미래로 빛나고 있는국내 최초의 연구 중심 대학 포스텍지금은 비어 있는 노벨상 좌대에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질 날이 오리라.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청암 박태준의 정신이 형형히 살아있는지곡주택단지와 포스텍그 웅숭깊은 터전에서 나라와 겨레를 빛낼별들이 솟아오르리. 임주은 임주은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11-27

‘천의 얼굴’로 맞이하는 초겨울 낭만 여행지

많은 여행지 중 전북 익산만큼 볼거리가 많은 고장도 별로 없다.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흔적이 깃든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물론 춘포역 일대의 근대 문화유산까지 역사 유적지가 가득하다. 억새가 가득한 만경강은 그야말로 낭만의 절정이다. 여기에다 세상 어떤 수목원보다 매혹적인 정원까지 있다.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갖추고 있다. 초겨울 낭만적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전북 익산 여행이 어떨까? ◇화려한 백제문화의 정수가 도시 곳곳에익산은 백제 문화의 중심지다. 미륵사지, 정림사지에서 쌍릉까지 곳곳에 백제의 흔적이 가득하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낭만이 묻어 있는 1천년 역사의 도시가 바로 익산이다. 익산 여행의 시작점이 미륵사지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륵사지는 미래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불을 모시는 절터였다.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되었고, 17세기경에 폐사됐다. 미륵사지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백제 창건 당시에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1기, 그리고 석탑의 북쪽과 동북쪽 건물들의 주춧돌과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정면 양쪽에 세워진 당간지주 1쌍(보물 236호)이 남아 있을 뿐이다. 미륵사지는 현재 있는 터의 규모만으로도 한국 최대 규모 사찰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미륵사지는 중문-탑-금당이 일직선상에 배열된, 이른바 백제식 ‘1탑-1금당’ 형식의 가람 세 동을 나란히 병렬시킨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폐사된 곳이라 예전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미륵사지의 형태는 대단히 정교하고 이채롭다. 미륵사지의 석탑은 현존하는 한국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본래 미륵사에는 3기의 탑이 있었다. 중원에는 목탑,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중원의 목탑이 언제 소실됐는지는 알 수 없다.익산의 또 하나의 역사유적지는 왕궁리 유적터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힌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9년 건립했다는 제석정사(帝釋精舍)터를 비롯해 관궁사·대궁사 등의 절터와 대궁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토성터가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들은 이곳이 ‘옛날 궁궐터’‘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다.왕궁 보석테마관광지 내에 있는 보석박물관은 11만 점 이상의 진귀한 보석과 원석을 자랑하는 전국 유일의 보석 전문박물관이다. 다양한 기획으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보이는 기획전시실과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상시전시실에서 펼쳐지는 보석과 원석의 향연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익산은 유서깊은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황산 나루터를 통해 들어온 종교의 도시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부의 상륙을 기념해 성당을 건립했는데 성당이 있는 익산시 망성면 ‘화산(華山)’의 너른 바위 근처에 있다 해서 나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바위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다. 1906년 순수 한옥 목조건물로 지어진 후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양 절충식 건물로 형태가 바뀌었다. 성당 앞면은 고딕양식의 3층 수직종탑과 아치형 출입구로 꾸며져 있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 한옥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바위성당 근처에 있는 성당포구마을은 50여 가구의 조용한 포구마을이다. 성당포구마을 강변을 따라 색색의 바람개비가 꽂혀 있는 성당포구바람개비길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바람개비길이 5㎞ 넘게 이어진다.성당면 와초리에 있는 익산교도소세트장도 가볼 만하다.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 폐교부지 위에 세워진 국내 유일의 영화 촬영용 교도소 세트장. 3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무료 양로원의 부속정원이 핫한 명소로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 있는 아가페 정양원(靜養院)은 ‘비밀의 정원’으로 불린다. 고(故) 서정수 신부가 정원을 처음 가꾸기 시작한 후 50년이 지난 최근까지 외부에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양원 관계자를 제외하고 익산 토박이들조차도 이곳 정원을 둘러본 이가 손에 꼽힐 정도다.아가페 정양원은 원래 서 신부가 오갈 곳 없는 노인 30여 명을 보살피던 무료 양로원이었다. 국내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에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정양원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 신부는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수목 정원을 조성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기부금에만 의지할 수 없어 정원에서 자란 나무를 판 수익금으로 양로원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한 것이다.50년의 세월이 흘러 아가페 정양원의 나무들은 부쩍 키가 크고 수종도 다양해졌다. 여느 수목원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조경이 화사해졌다. 규모도 100만㎡나 돼 하나의 거대한 동산에 가깝다. 넓은 대지 위에 갖가지 수목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특유의 향기를 발산하는 정원으로 성장했다. 익산시는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와 함께 아가페 정양원의 부속정원을 ‘아가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난 9월부터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전북 제4호 민간정원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길이 1천670m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붉은빛 백일홍, 마치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친 듯한 공작단풍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관상수가 즐비하다. 우아하게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가문비나무와 쭉 뻗은 후박나무, 잣나무까지 더해져 어떤 정원에서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자태를 뽐낸다.정원의 랜드마크는 하늘과 맞닿은 듯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아가페 정원 설립 초기에 심은 500여 그루의 나무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명품 산책로가 됐다. 숲길 사이로 들어서면 마치 동화 속 신비의 숲으로 발을 디딘 듯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도 인상적이지만 그 앞에 듬성듬성 있는 당단풍에도 시선이 머문다. 앙상한 가지에 물기가 쭉 빠져버린 꽃이 달렸다. 정원 초입의 어마어마한 밤나무도 이채롭다.숲속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에서는 책을 꺼내 들고 의자나 잔디에 앉아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아가페 정원은 수선화, 튤립, 목련 등 34종의 꽃들이 향연을 벌이는 여름철도 아름답지만 가을에서 겨울까지도 인상적인 황금빛으로 물들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근대 역사의 흔적 남아 있는 춘포아가페 정원과 함께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 춘포면 춘포리다. 일제 강점기에 대장촌(大場村)으로 불리던 춘포리는 요즘으로 치면 대규모 농업을 위해 만든 신도시였다. 춘포면 중심에 있던 일본인 마을에는 호소카와, 이마무라, 다나카 등 3개 농장을 중심으로 일본 규슈 중부 지방 구마모토에서 건너온 일본인 이주민과 지주들이 조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춘포 역사지에 따르면 전 일본 총리의 할아버지인 호소카와가 운영하던 농장은 3개 군 100촌락에 걸친 9917㎢(1천정보)의 대규모 농장이었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패망 후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아직까지 춘포에는 일본인이 살던 가옥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 가옥이다. 일본식 정원까지 갖춘 대저택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폐역이 됐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인 춘포역도 꼭 들러볼 만하다. 역사 벽면에는 춘포역이 아니라 대장역으로 불리던 시절 이곳을 오갔던 학생들의 교복과 기차 시간표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빼곡하게 붙어 있다./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3-11-23

영주 역세권 도시재생사업, 원·구도심 활성화 뉴 패러다임

영주시는 2020년 국토부 공모에 선정된 역세권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원도심과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도시재생사업은 현재 진행중인 중앙선 철도복선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영주역사 신축과 함께 역세권 중심상권 회복을 위해 국비 140억원, 지방비 93억3천만원, 기금 14억원, 민간 3억3천만원, 자체지방비 32억2천만원 등을 포함한 282억8천만원의 예산으로 2025년까지 사업을 추진한다.사업 추진구간은 영주역으로부터 경북전문대 방향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다.특히 이번 사업은 도시문화친화형 가로조성, 지역특화산업, 관광거점 등의 목표로 각 도심 간 연계를 통해 영주시 동지역 전체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역세권개발 주요사업영주시가 ‘역전에서 역전’으로 ‘살맛나는 역전재생, 영주대학로’란 주제로 추진 중인 역세권개발사업은 크게 8가지로 구분돼 추진된다.추진 내용을 보면 △시민(영주역)의 광장 △역세권 상권활성화 도로 조성사업 △현 남부육거리 신호체계 교차로, 6지형 회전교차로 변경 △청년참여형 골목길 조성 △소통하는 골목길 조성공사 △도심이용안내체계 구축 △거점시설 더이음 어울림센터 건립 △주민 역량강화, 상생상가 10실, 대학로건축경관개선 40개소, 노유자복지프로그램 등이다. □ 역세권 종합계획역세권도시재생사업의 기본 및 종합계획은 마중물 사업으로 지역특화산업 거점조성, 문화 친화형 거리 조성, 도심관광 지원시설 구축, 살맛나는 거주공동체 지원사업, 부처연계사업, 공기업사업, 지자체 사업 등으로 구분된다.지역특화산업 거점조성 사업은 영주의 특산물과 사람이 이어지는 곳으로 더이음 어울림센터가 5층 규모로 조성된다.이곳에는 공영주차장, 레시피연구소, 오픈에어레스토랑, 특화음식 아이브러리, 문화스튜디오, 문화컨텐츠 스튜디오, 숙박지원센터 등이 조성된다.문화 친화형 거리조성 사업은 대학로 문화가로 조성과 마이크로 모빌리티 스테이션 4개소, 키오스크형 도심이용 안내체계 20개소가 설치된다.도심관광 지원사업 구축에는 역광장 관광거점화, 역전여관 숙박개선이 추진되고 살맛나는 거주공동체 지원사업에는 공영주차장 복합화, 소통하는 역전골목길 조성, 주민참여 도시 가드닝, 경북전문대 연계 문화복지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부처 연계사업에는 영주역 신축공사(중앙선복선화), 문화특화지역 사업(문화체육관광부), 청년창업랩 구축사업(행안부), 메이커스페이스 구축사업(중소벤처기업부)이 추진된다.공기업 사업에는 대학로 전선지중화사업(한전), 지자체 사업으로 상생상가 ZONE 구축, 대학로 건축경관 40개소 개선, 남부육거리 회전교차로 개선, 휴천2동 주거문화복지센터 개선 사업이 실시된다.국토교통부가 주관한 생활밀착형 도시재생 스마트 기술지원사업에 경북도내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영주시는 국도비 5억8천만원과 시비를 포함한 총사업비 8억2천800만원으로 역세권도시재생뉴딜사업 지구내에 다목적 지능형 기둥 10개소 및 스마트 횡단보도 2개소를 설치한다.지능형 기둥은 가로등, 보안등, 다목적 폐쇄회로 TV, 공공 와이파이, 풍력발전설비, 발광다이오드 전광판, 비상벨 등 최첨단 기기를 통합한 지주다.영주시는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시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환경 개선과 보행자 친화형 역세권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이 밖에도 도시재생 4개소 및 새뜰마을사업 5개소가 지역주민과 함께 소통하며 함께 잘사는 도시활력 사업이 되도록 영주시는 세심하게 사업을 추진 중이다.이 사업들이 완료되면 원도심과 구도심 간 연계성과 도시재생에 따른 균형발전으로 경쟁력 있고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뷰 강성렬 영주시 도시재생과장주민생활과 밀접한 분야 개선재생사업 효과 제고 위한 사업-도시재생사업의 필요성은.△쇠퇴하는 구도심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지역역량 강화와 새로운 기능 도입 및 지역자원의 활용도를 높여 도시경쟁력 강화와 도시기능 활성화를 가져오는데 목적이 있다. 이 사업은 중앙선 복선화 전철 사업과 맞불려 있다. 영주역사의 준공과 맞물려 역세권 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현재 영주시의 정주권, 생활권, 경제권, 교통, 복지 등 다양한 부분에 뉴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생활밀착형 도시재생 스마트 사업 내용은.△시는 역세권도시재생사업 연계성과 서비스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도시재생, 스마트시티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 위원회를 구성 사업 대상지를 선정했다. 이 사업은 생활밀착형 도시재생 스마트 기술지원사업에 선정돼 국도비 5억8천만원을 확보했다. 도시재생사업지의 세부 기능과 연계한 스마트기술을 구축해 안전, 소방, 교통, 생활, 복지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분야를 개선하고 재생사업 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사업이다.-개발사업은 어떤 것이 있나.△ 역세권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영주역에서 경북전문대학교 양방향을 중심으로 시행된다. 여기에는 시민의 광장, 역세권 상권 활성화를 위한 도로 조성, 청년참여형 골목상권, 도심이용 안내체계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인터뷰 우영선 영주시 도시재생센터장사업 추진을 위한 중간지원 조직주민·전문가 의견 반영 정기회의-센터의 역할은.△영주시 도시재생센터는 사업 추진을 위한 중간지원 조직으로 주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사업에 반영하고자 주민, 행정, 전문가가 함께 의견을 교환하는 정기적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회의에서 도출된 내용을 사업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도시재생 사업의 중요성은,△도시재생 사업은 주민들의 의지와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센터는 도시재생 사업의 주체인 주민들의 역량을 배양하기 위해 도시재생대학, 주민제안 사업 등 다양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다.-사업에 대한 기대는.△영주시는 현재 KTX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구 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역세권도시재생사업은 KTX와 영주역을 이용하는 이용객과 신도심으로 유입된 시민들과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영주역에서 경북전문대학 구간의 역세권 개발사업은 영주지역 관광의 첫 관문으로서 역활과 지역 경제와 상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게 될 것이다.역세권개발사업은 구도심의 쇠퇴한 상권 회복과 영주시가 추진 중이거나 이미 완료된 도시재생 사업지구와의 연계성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의 한 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3-11-22

“와송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은 차라리 아름답다”

와송(臥松) 노거수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질을 민족성이라 말한다. 단일 민족인 우리 한민족은 절개와 지조가 있으면서 청초함을 갖추었다.척박한 토양 환경에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이 한 줄의 가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고난을 극복하고 세계사에 우뚝 선 나라로 국제사회에 미담의 주인공으로 회자 되고 있다. 송죽매란(松竹梅蘭)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로 우리 조선의 선비들이 즐겨 심고 노래한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늘 푸른 소나무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청초하기까지 하니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 젊음의 기개처럼 젊은 소나무는 부러져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거수가 되면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곧은 줄기의 불그스레한 모습은 엷은 미소를 띤 온화한 할아버지 얼굴 같다. 가지의 곡선은 세월의 연륜에서 빚어진 은은함과 부드러움, 공간 조화의 미덕을 보여준다.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 동고동락한 반려자로 민속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보아도 그렇다. 할머니는 마을 당산나무인 소나무에 누구보다 먼저 새벽에 들러 아들딸 낳아달라고 소원했다. 그리고 아들딸 낳으면 할아버지는 집 사립문에 금줄을 치고 솔가지를 걸고 그해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속에서 마을 뒤 선산의 솔밭에 묻혔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로 시작해 소나무로 끝나는 인생사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포항시 장기면 두원리 386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 노거수는 절개와 지조에 더하여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1992년 9월 14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이는 340살이며 키는 15m, 가슴둘레는 3m 넘는다.뿌리 부근에 두 줄기의 형제가 나와 자랐는데 그중 한 줄기가 태풍에 밑둥치가 부러져 꺾이어 드러누운 채 살아가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라 주민 누구도 가져가지 않고 자연 방치되었다. 소나무는 생명줄을 놓지 않고 죽을힘 다해 버티어 살아남았다. 아마 혼자 힘으로는 버티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형제의 뿌리가 영양분과 물을 공급해 주었으리라. 한 형제가 넘어졌으니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뿌리에서 도왔을 것이다. 형제의 도움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비록 누워서 살아가고 있지만, 건재한 모습이 오히려 어느 소나무보다 진한 감동을 주었다.부러져 꺾어진 부분에는 벌레나 균의 침입으로 인하여 부식되었다. 그러나 삶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보통의 소나무라면 벌써 숨통이 끊어졌을 터인데 그 강인한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다 아름답게 여겨졌다. 참으로 기이하다고 할까, 경이로운 모습도 모습이지만, 살려는 강인한 의지력에 놀랄 뿐이다.몸은 비록 장애일지라도 그의 꿈과 이상은 푸른 하늘을 향하고 있음을 그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세월이라는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누워서 살아간다고 와송(臥松)이라 부르고 싶다. 끈질긴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와송 노거수는 우리에게 귀감이 아닐 수 없다.얼마 전 신문 기사에 산주가 아름다운 소나무 노거수를 팔아서 주민들이 반발하는 기사를 읽었다. 원상복구 문제까지 번진 일이다. 아름다운 소나무는 정원의 조경수로서 최고의 나무라면서 값을 따지지도 않고 사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 같다. 조경업자는 산이든 들이든 어디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라면 그 또한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개인의 정원에 함부로 사서 심는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 생각이 아닐까. 여기 와송 노거수는 절대로 옮길 수 없다. 주민들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어느 조경업자도 이식하여 살릴 재간은 없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손을 댄다면 와송 노거수는 지금까지 지켜온 절개와 지조를 죽음으로 증명해 보일런지도 모른다.소나무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동북아 작은 한반도에서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그 맥을 이어왔다. 이웃 나라의 끊임없는 간섭과 침략에도 굳건히 살아남았다.강대국의 말발굽에 짓밟혀 가면서도 아픔을 참고 살아남았다. 제국주의 아래 씨를 말리려는 민족 말살에도 굴하지 않고 고초를 참으면서 맥을 이었다.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려 하는 세력의 집단으로부터도 푸른 기운을 싹틔우며 자리를 지켰다. 무소불위의 일부 세력의 권력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자유와 민주, 산업화에도 늘 그 중심에 섰다. 금융위기도 빠르게 극복하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슬기롭게 극복했다. 곧은 절개와 늘 푸른 소나무처럼 불멸의 민족으로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민족을 닮은 소나무한낮이 기울 때 가을 햇살로 인해 소나무 노거수의 온전한 전체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에는 어려웠다. 겨울, 그 모두가 잎을 떨구고 나목으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소나무는 그때야 자신의 푸름을 자랑한다. 특히 눈이 내린 날에 더욱더 푸름이 빛을 발한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겨울 소나무 노거수를 본다면 그 누구도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흰 눈과 푸른 소나무의 풍경은 우리 민족의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흰옷을 좋아하고 즐겨 입으며 푸른 기상을 닮으려는 우리 민족이 아니었던가. 주변 다른 나무를 적절히 제거하고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와송 노거수를 천연기념물로 격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22

온기 불어넣는 한 잔, 밤의 낭만을 즐기다

환한 대낮의 역동성과 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는 밤이 가진 안온함과 고요한 평화를 기다린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취향과 성정의 차이다.기자의 경우엔 밤의 매력에 이끌리는 사람. 그래서다. 오래전 아래와 같은 시를 읽었을 때 잠시잠깐 가슴이 술렁였다.시인 나희덕(57)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의 미지(未知)를 아래와 같이 노래한 적이 있다.“…(전략) 우리는 어둠의 온도와 속도도 느낄 수 없지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아, 얼마나 다행인가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는’ 시간을 요절한 시인 기형도(1960~1989)는 “진짜 밤은 검지 않고 푸르다”라고 썼다. 비단 기형도와 나희덕만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의외로 낮보다 밤을 사랑하는 인간도 많다.2개월 전 늦은 휴가로 떠난 후쿠오카. 낮에는 유명한 신사(神社)와 현대적으로 만들어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타워, 중세에 축조된 고풍스런 성(城),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휴양을 즐기는 해변을 찾아다녔다. 나쁘지 않았다.후쿠오카는 낮 이상으로 밤 또한 좋았다. 세상사와 인간사를 말없이 지켜보며 수천 년을 조용히 흘러온 강을 등지고 앉아, 이러저런 요리를 안주 삼아 한잔 술을 즐길 수 있는 서민적 공간이 있다는 것이 ‘밤의 후쿠오카’가 지닌 매력 중 하나.기자는 후쿠오카를 찾은 관광객들이 ‘나카스 야타이 거리(中洲屋台街)’라고 부르는 곳을 4박5일 머무는 동안 매일 밤 찾아갔다. 이지앤북스의 ‘일본 후쿠오카 여행’은 그곳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밤이 찾아오면 긴 밤을 지키는 불빛들이 하나씩 밝혀져 도시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어묵, 꼬치, 라면, 만두는 물론 다국적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후쿠오카 포장마차 거리가 있다. 일본 내 가장 많은 점포를 운영 중인 후쿠오카는 ‘야타이’가 대규모로 정착된 유일무이한 도시다. 야타이는 후쿠오카 상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음식과 즐기는 밤의 낭만일본이란 국가에 대한 호오(好惡) 평가와는 별개로 일본 요리가 깔끔하고 보기 좋게 장식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서너 군데 일본 도시를 여행한 경험에 의하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후쿠오카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하카타역 인근엔 일본인과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이 수백 개다. 거기서 맛본 음식은 입보다 먼저 눈을 즐겁게 해줬다.떼어 낸 새우의 머리와 나뭇잎 따위가 그처럼 화려한 요리 장식 재료로 사용되는 걸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으니까.하지만, ‘나카스 야타이’라 불리는 술집들은 노상에 늘어선 포장마차. 화려함이나 정갈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야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부터 알아볼까? 앞서 언급한 ‘일본 후쿠오카 여행’으로 돌아가 보자.“(야타이는) 에도 시대에 도쿄에서 생겨난 일본식 포장마차로 1940~1950년 사이 경제 발전과 함께 전국적으로 붐이 일었다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후쿠오카에서는 야타이 문화를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현재는 후쿠오카시로부터 법적 허가를 받은 야타이만 운영된다. 야타이 문화는 후쿠오카에서 꽃을 피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최대 야타이 도시답게 후쿠오카에는 크게 나카스와 텐진 두 곳의 대표적 야타이 거리가 있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몇 해 전 ‘코로나19 사태’를 혹독하게 겪었다. 그 영향 탓인지 한창땐 100개 넘게 운영됐다는 야타이 중 현재는 20~30개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그럼에도 ‘포장마차’만이 줄 수 있는 낭만은 사그라들지 않아 보였다.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오렌지색 전등을 밝히고 소박한 요리를 안주 삼아 옆 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포장마차, 즉 야타이 아닌가. 한국이 그렇듯 일본도 그랬다.그래서다. 하카타역 주변 근사한 식당에서 비싼 식기에 담긴 고급 요리를 먹는 것 이상으로 나카스 야타이의 요리가 마음에 들었다.싸구려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낸 한국 돈 8~9천 원짜리 명란 구이와 닭 꼬치도 맛있다는 이야기다. 제법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수차례 다녀오는 것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한국에서라면 마주 보거나 나란히 앉아 이야기 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대학생, 20~30대 젊은 친구들과 격의 없이 이러저런 잡담을 나누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본 건 더 즐겁고 행복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 그들 내면을 들여다보다후쿠오카에 도착한 날. 피곤함을 잊고 가볍게 저녁을 먹은 후 강변으로 갔다. 숙소에서 가까우니 산책이나 해보자고 나선 길이었다. 그날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나카스 야타이’와 만났다.명란 구이에 청주 한 잔을 주문하고 홀로 앉아 있는 기자의 바로 옆에 오사카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학생 넷이 왔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런 합석이었다.한국말을 못하는 일본 젊은이들과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의 중년. 그러니, 소통은 양측 모두 서툰 영어로 이어졌다.그럼에도 ‘후쿠오카만이 아니라 오사카에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번화가를 걷다보면 일본말보다 한국말이 더 많이 들린다’ ‘나도 한국에 두 번 가봤다. 삼계탕이 맛있더라’ ‘한국 걸그룹 멤버 중엔 일본인이 적지 않다’라는 것쯤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여행이 가진 매력은 ‘나이와 국적을 넘어선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게 아닐지. 그날 밤, 새삼 그걸 깨달았다. 겨우 생맥주 한 잔씩 사준 것뿐인데도, 깍듯하게 고마움을 전하는 예의 바른 일본 청년들이었다.후쿠오카 여행 둘째 날과 셋째 날엔 서울과 여수, 대전과 청주에서 왔다는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과 대화하는 흥미로운 경험을 선물 받았다. 역시 나카스 야타이에서였다.30대 초반인 남성들은 대기업과 독립 프로덕션에서 일한다고 했고,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스물네 살 여성들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회사원이었다.그들이 뿜어내는 밝고 환한 에너지가 부러웠다. 기자 역시 그런 시절을 지나왔음에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역동적인 활기와 거침없는 웃음.2023년을 사는 30대 한국 남성이 생각하는 결혼과 출산은 기자가 청년일 때 느꼈던 것과는 크게 달랐고,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50대 이상의 부장·이사와 함께 점심을 먹거나, 술 마시는 걸 꺼려하는 솔직한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20대 여성들이 바라보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에 대한 견해와 여행하는 인간으로서의 즐거움에 관해 들어본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전화기를 가리키며 “내 엄마와 똑같은 핸드폰을 쓰시네요”라고 하길래, 모친의 나이를 물었다가 기자보다 두 살이 적다는 답을 듣고는 잠시 서글퍼졌던 기억까지 웃음과 함께 남았다.3주에 걸쳐 지극히 개인적인 ‘후쿠오카 여행기’를 쓰다 보니 또 한 번 조그만 배낭을 꾸려 낯선 도시로 떠나고 싶어진다.다가올 다음 여행에선 어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맛보고, 어떤 낯선 사람들과 국적과 인종, 나이와 종교를 뛰어넘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만으로도 벌써 설레니 “여행자는 몸은 집에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길 위를 떠돈다”는 이야기가 생겨난 게 아닐지./사진 제공: 홍성민/홍성식기자 hss@kbmaeil.com끝

2023-11-21

한 걸음마다 이야기가 살아나는 순례길

아침 든든히 먹고 신발 끈 다시 꽉 묶고길을 나서면 거기서부터 순례다.날숨 가다듬고 들숨 잠잠할 때파도소리 갈매기 소리에 실려오래 묵은 이야기가 들려온다.내 고향 땅에 청포도 알알이 익어가는 시절에고달픈 몸으로 찾아올 손님을 기다린 시인 이야기마침내 그 손님 맞이하여 함께 살아가는 오늘도연둣빛 포도알이 거리 가득 열매 맺는다는 이야기 신라시대 연오랑세오녀 부부 해초 뜯으며 살 때연오랑이 신이한 바위 타고 바다 건너 왕이 된 이야기그래서 해와 달이 시들시들 빛을 잃어버렸을 때세오녀가 고운 비단으로 하늘에 빛을 수놓은 이야기갈매기 장미꽃 잠자리 코스모스 모두 모아하얀 벽 캔버스 삼아 물감으로 새겨 놓은 거리에도한 폭 한 폭의 그림마다 소복이 내려앉은세월의 흐름에도 사라지지 않는 동화 같은 이야기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나무 데크 위로 걸어가면용왕과 선녀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하선대와서 있어서 선바우, 검어서 먹바우……무수한 바위들 제각기 이름을 가지고 살아나는 이야기기암절벽에 새겨진 태곳적 비밀 이야기와암벽의 아홉 구멍에서 승천한 아홉 마리 용 이야기그렇게 새겨진 고대의 온갖 이야기 위에서오늘도 그물을 씻는 한적한 어촌 마을 이야기한 걸음 한 걸음마다 이야기가 살아나는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이야기 순례길이다.글 : 이가은(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임주은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11-20

오늘, 살아보고 싶은 도시 내일, 행복 스마트 시티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 바뤄흐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우리는 현재를 충실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내일을 이야기하고 대부분 장밋빛 내일을 기대하며 그 꿈을 실현하고자 오늘을 살아간다. 28만여 명의 시민이 생활하는 경산시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당장 눈앞에 다가올 2030년의 모습, 그리고 계속해서 다가올 미래 경산은 어떤 모습일지 현재를 돌아보며 내일을 그려본다. □ 경산의 현재2023년을 마무리하고자 달려가고 있는 현재의 경산은 대구광역시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던 배후도시에서 경북도의 3대 도시로 위세를 자랑하며 발전 가능성이 무궁하며 한번은 살고 싶은 도시가 됐다.지속으로 늘어나는 유입인구와 상주인구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과 일자리, 주거생활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도시로 성장했으며 국가의 주요 연구소 등도 자리 잡는 등 대한민국 내에서도 기틀이 튼튼한 도시가 되었다.1900년대부터 시작된 택지조성은 409만 935㎥의 택지개발과 45만 855㎥의 도시개발 등으로 정주권을 보장하고 603만 6천990㎥의 산업단지는 일자리와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도시로 자리 잡았다.특히 지역의 산업지도를 바꾸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경산지식산업지구는 지금까지 지역에 없던 업종을 유치해 산업구조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차세대 건설기계와 자동차, 철도차량 부품산업, 첨단 메디컬섬유 융합소재산업 등과 미래의 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차세대 건설기계부품 설계지원센터와 차세대 건설기계부품 융복합센터, 무선전력전송기술센터, 미래 모빌리티기술센터, 메디컬융합소재 실용화센터, 차세대 차량융합부품제품화 지원거점센터, 사물 무선충전 실증기반구축사업 등의 7개의 국책 연구기관의 입주는 경산의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조영·임당동 고분군 등 고대국가의 압독국의 문화유산, 불교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갓바위),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명물로 알려진 경산의 삽살개 등 2%가 부족한 느낌은 들지만, 충분히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부존자원들도 넉넉하다.또 60곳의 초중고와 13개의 대학, 1곳의 특수학교 등으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인재 양성의 최적 교육환경도 제공하고 있다.여기에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프랑스의 ‘에꼴42’의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창의적 역량을 갖춘 우수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는 ‘경산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는 자기주도학습·동료학습 기반의 문제해결식 소프트웨어 교육에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된 학습 공간으로 그 결과에 기대감을 주고 있다.경산시는 ‘지켜주는 행복 복지’를 목표로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을 확대하며 주민복지와 노인복지, 여성복지, 어린이 복지, 장애인 복지에 최선을 다하는 등 도농복합도시의 특색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현재의 경산은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경산형 성장 전략 수립, 지역 균형 발전의 토대를 구축해 일상 속 행복이 보장되는 머물고 싶은 도시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행복공동체 구현, 지역 농업과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는 정책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2030년의 경산2030년의 경산은 인구 30만 명에 미래 신산업 육성과 건강과 휴식이 있는 푸른 도시, 문화기반시설 균형 실현, 초고령 사회를 대비한 복지체계 구축을 중심으로 시민이 행복하고 산업이 성장하며 문화 향유로 도전과 혁신이 있는 지속 발전도시 경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를 위해 경산시가 만든 2020년부터 2030년까지의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르면 경산과 진량, 자인, 하양 생활권의 지역 여건을 최대한 살리며 발전시켜 연간 250만 명의 관광객을 기대하고 있다.또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도시쇠퇴 현상을 특색 있는 도시재생사업으로 도시 활력을 높이며 지역 균형개발과 범죄와 재해 위험이 없는 안전 도시, 쾌적하고 깨끗한 청정도시를 목표로 행복 스마트시티를 비전으로 삼고 있다.고속도로와 철도, 버스 등으로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구축하고 있으나 비효율성이 지적되고 있는 버스노선, 경산 오거리 등 중심 시가지 도로 혼잡문제를 대중교통과 공유교통, 자율주행차 등이 연결되는 통합교통서비스로, 도심지역 혼잡 불편은 주차공간 마련으로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시는 이처럼 2030년의 경산을 위해 △도시·주거 △도로·교통 △산업·경제 △문화·관광·체육 △복지·보건 △공원·녹지·환경 △교육 △농업·농촌 등을 아우르는 중장기계획이 세웠으나 이 중장기 발전계획이 지난 2018년도에 수립돼 현실과 차이가 발생하는 점을 확인하고 내년에 2030~2040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에 나서 실현 가능성을 높일 예정이다.현재에서 예측하는 2030년의 경산의 모습은 정형화되지 못해 사람마다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순을 안고 있다. □ 경산의 내일경산의 내일을 뚜렷하게 정형화를 할 수 없다 하여도 “더 나은 곳으로 발전”이란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경산시는 경산4일반산업단지에 자원순환형 셀룰로오스 나노섬유소재 산업화센터를 구축해 미래 모빌리티 신성장 동력 창출 및 지역 자동차 부품업체의 활력을 높이고 특구로 지정된 전기차 차세대 무선 충전 규제 자유 특구에서 차세대 무선 충전 신기술 규제혁신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 생태계와 전·후방의 산업생태계 조성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특히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유기적인 네트워크 구축과 벤처기업의 투자·협업, 연구지원을 수행하는 스타트업 창업생태계를 구축하는 임당 유니콘파크는 스타트업 60개, 지식산업센터 69개 기업 입주, 1천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창업 전진기지 역할로 인재들의 지역이탈 방지에 한몫하게 된다.이외에도 게임산업 육성과 글로벌 코스메틱 비즈니스센터 운영, ICT융복합 어린이재활기기 실증센터 구축, 청년 지식 놀이터와 웹툰 창작소 운영, 로봇 선도기술 사업화 지원,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생동감 있는 지역경제를 체감한다.문화예술회관과 임당유적전시관으로 지역문화를 꽃피우고 문화관광재단으로 지역문화의 가치를 높여 누구나 찾아오고 싶어 하는 고장으로, 틈새 없는 복지안전망 구축과 여성 안전 클러스터 구축에 따른 누구나 행복을 느끼며 소외감이 없는 도시로 사람들이 기억한다.새마을운동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움직인 것처럼 발상의 전환에 따른 특색있는 시책의 도입으로 국민의 의식을 선도하는 지자체로 자리 잡았다.여기에 지역의 간절한 희망인 명품아울렛의 영업으로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2천여 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 경산은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대의 압독국이 자리 잡아 일찍부터 고대인들의 생활문화 공간이었던 경산에 남은 문화유산과 자연 자원, 문화재, 기타 문화·역사자원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활용한 쉬어가는 관광자원의 개발로 수익 창출과 지역을 알리는 홍보 효과, 특히 대구의 명소로 알려진 팔공산 관봉 갓바위도 경산의 명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다.특히 2030~2040의 중장기 개발계획의 로드맵을 따라 진행된 경산의 새로운 모습은 현재의 우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3-11-20

기자에서 프로듀서로… 한국 현대사 현장에 그가 있었다

어떤 이의 삶은 살아온 자체로 역사가 된다. 지나간 세월을 겪어낸 다양한 분야의 원로들이 그렇다. 김수웅 선생이 포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59년이다. 국산 라디오가 처음으로 생산된 바로 그 해이다. 라디오가 영화와 더불어 대중문화의 꽃이던 시절이다. 당시 서울의 라디오 보급률은 60%가 넘었지만, 포항 지역에서 라디오 수상기가 있는 집은 전체 가구의 10%도 되지 않았다. 전국의 라디오 보급률인 20%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런 시절이었으니 방송국은 번듯한 건물이 아닌 이동 방송차였다. 라디오 없는 집이 수두룩하니 포항초등학교 운동장이나 영일군청, 관공서의 전봇대와 가로수에 앰프를 설치해서 방송을 나눠 들었다고. 지금에야 방송이 넘치는 시대지만 그때 방송을 나눠 들으며 같이 웃고 울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KBS포항방송국 기자와 PD를 거쳐 KBS대구총국장을 지내며 평생을 방송계에서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현장을 국민들에게 알려온 김수웅 선생의 지나온 삶을 들어봤다. -방송과 인연을 맺은 지 반세기가 지났다.△대학을 졸업하고 포항 이동방송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59년 7월이었다. 그때 포항국은 포항중앙초등학교 옆인 포항시 북구 동빈로 1가 84번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해병부대에서 제공한 야전용 퀀셋(Quonset: 벽과 지붕이 반원형으로 연이어진 조립식 막사) 사무실과 이동방송차가 방송국이었다. 이때 출력은 250W로 포항시와 영일군 일대가 가청 지역이었다. 퀀셋 옆에 보이는 유리창 안에 아나운서 부스가 있었고, 이동방송차의 조정실 엔지니어와 서로 보면서 방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생소할 때가 아닌가.△그때는 중앙일간지의 지방판이 없었던 시절이라, 라디오로 전하는 하루 3번의 지방 소식에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출입처 관계자들과 지역 신문사 선배 기자들도 호의적이어서 올챙이 기자 노릇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당시 자체 제작한 방송은.△하루 1시간 30분 전후의 자체 방송을 했다. 일일 3회의 지방 소식과 정오 서울 뉴스에 이어 방송된 대중가요프로그램 ‘노래꽃다발’의 인기가 대단했다. 음향기기와 음반을 판매하는 전파사에서 점포 밖에 스피커를 내놓고 중계할 정도였다.또한 주 1회 해병 장병을 위한 ‘해병의 밤’이란 30분짜리 프로그램도 방송했다. 앞부분 5분간의 군사 소식을 담당한 해병 포항기지사령부 정훈참모부의 김남호 중위는 전역 후 동아방송의 아나운서가 되었다. -기자 시절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1960년 3월 초의 일이다. 최인규 내무부장관(4·19 이후 체포)이 3월 15일에 실시되는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포항을 방문했다.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출입처이던 포항지방해무청장실에서 장관을 인터뷰했다. 제대로 된 휴대용 녹음기가 없었던 시절이라 ‘암펙스 601(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암펙스 사에서 생산된 휴대용 테이프 녹음기)’로 엔지니어까지 동원해야 녹음할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난다.그리고 다음 달에 공보실 방송관리과 주관으로 실시된 제1회 방송기자 강습에 참여했다. 전국의 각 지역국에서 한 명씩, 남산에 있는 서울중앙방송국에 모였다. 수료일을 하루 앞두고 4·19혁명이 일어났고 예정되었던 강의와 수료식이 취소되었다. 근무지로 돌아와 열흘 정도 후에 우송된 수료증은 마산방송국의 선배 것과 뒤바뀌어 있었다. 나중에 돌려받기는 했지만 4·19 직후 어수선한 시대 상황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기자를 하다 PD가 된 계기는.△군대에 가면서 촉탁직으로 일하던 기자를 그만두었다. 비록 짧은 10개월의 방송기자 생활이었지만 평생을 방송인으로 살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내가 군 복무하던 1961년에 포항방송국은 이동방송국에서 정식 지방방송국으로 승격했다. 포항방송국에 PD로 복귀했을 때는 청사가 덕산동으로 이전되어 있었다(이동방송국으로 시작한 포항 KBS는 이후 덕수동, 해도동, 상도동 시절을 거쳤다). 자체 방송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로, 뉴스와 아나운서가 제작하는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모두 내가 담당했다. PD가 적성에 맞았든지 신나게 일했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해병제1상륙사단 연병장에서 열린 파월 청룡부대 결단식도 포항국에서 담당했다. 월남전에 파병된 청룡부대의 훈련하는 모습을 취재해 부산항에서 베트남으로 출항하는 날 전국으로 방송했다. 당시에는 녹음테이프를 제작해 우송했다. -포항은 특히나 해병대와 인연이 깊지 않나.△해병대는 1958년 해병포항기지 사령부가 정식 발족했고, 그해 10월 KBS포항이 이동방송차로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포항에 터를 잡은 시기가 비슷하다는 인연이 있다.1968년에 해병제1상륙사단 창설 13주년을 맞아 ‘우리의 해병’ PD였던 나는 사단장의 감사장을 받았다. 포항방송국 개국 이래 방송해 온 ‘해병의 시간’ 프로그램이 장병들의 사기진작은 물론 포항시민과 장병 간의 유대 강화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평가받았다.-포항에서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제작 프로그램이 있다면.△종합제철이 들어서기 전, 대송면에 밍크 키우는 농장이 있었는데 규모가 꽤 컸다.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농장이라 15분짜리 탐방프로 ‘밍크농장’을 제작했다. 공보부 방송관리국에서 주관하는 지역순회방송 합평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이후 서울에 진출할 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또 1969년 봄 개편 때, 아침 시간대에 5분짜리 만평프로그램 ‘라디오 공원’을 신설했다. 대구방송국 성우였던 김삼일 씨(전 포항시립극단 상임연출)가 만평에 어울리는 구연을 해주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그리고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 나간 ‘일요방담’이란 프로그램에서 PD인 내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지역 인사 서너 명과 세계적인 화젯거리와 지역의 관심거리를 방송했다.그 시절 서울에 진출하여 전국 대상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명동에 있는 중앙국립극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는 문공부가 인사를 담당해서 가능했다.-중앙국립극장에서는 어떤 업무를 담당했나.△관리업무 전반에 관한 일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웃지 못할 일화도 한둘이 아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서다. 극단 산하(山河)의 ‘왕교수의 직업(차범석 작)’이 끝난 다음 날 출근해 보니 ‘만원사례’라고 도장이 찍힌 봉투에 5백 원짜리 지폐가 들어있었다. 입장권이 매진되면 직원 모두에게 사례하는 관례라고 했다. 8개월 반의 짧은 기간이지만 또 다른 예술의 세계를 경험하는 귀중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지나왔다.△70년대 초반 중앙방송국 라디오부로 발령을 받아 드라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두루 섭렵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광복절 기념식을 중계하면서 총성이 울리는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방송인의 본분에 임했고 관련 중계와 특집방송 운행에 노력한 공로로 사장 표창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12·12사태 당시 방송국에 군인들이 들이닥칠 정도로 격동의 시대를 몸으로 겪었다. 1980년에는 TV 시대에 대응하는 라디오의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일찍이 없었던 큰 변혁이 이뤄냈다. 88올림픽 때는 방송조정관으로 해외 중계진을 지원했으며, 그 해 말 올림픽 기장(문화장)을 받았다.-30년 넘게 방송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꼽는다면.△90년대 초 ‘R제작1국 부국장 겸 1R제작부장, R제작1국장 직무대리’라는 긴 이름의 발령으로 제작부서를 관장했다. 방송역사상 초유의 방송 파업사태가 발생했을 때였다. 방송 민주화를 외치며 촉발된 파업은 36일간이나 이어졌고, 아끼는 후배들이 구속되어 고초를 겪었다. 간부들 중심으로 시간 메우기식 방송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가 31년 방송 생활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90년대 초반에 대구 지역 책임자가 되어 포항 지역까지 관할했다.△1992년 3월에 대구방송총국 총국장으로 발령받았다. 방송은 물론, 행정, 기술, 관할 지역국까지 감독해야 하는 자리였다. PD 출신 총국장으로서 가장 큰 보람은 일선 PD와 머리를 맞대고 페놀 사건 이후 낙동강의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진두지휘한 일이었다. 5부작인 데다 편당 50분이나 되는 대형 프로그램이라 제작비와 장비 동원, 인력 운영에도 어려움이 컸던 만큼 성취감도 있었다.그리고 독도를 처음으로 밟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이판석 경북지사의 초청으로 울릉중계소를 거쳐 독도에 갔는데, 선착장 시설이 미비해 접안에서 상륙까지 쉽지 않았다. 독도 언덕에서 검푸른 빛깔의 동해를 바라보며 또다시 독도 흙을 밟을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 후 독도를 가보지 못했다.-은퇴 후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KBS 사우회에 독서토론위원회를 조직해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 ‘갈대속의 영원’이 기억에 남는다. 알렉산더 대왕이 ‘일리아스’를 전쟁터에서도 지니고 다니면서 펼쳐봤다는 대목을 감명 깊게 읽었다.-지나온 날들을 돌아본 소회가 어떤가.△지난날의 자료들을 찾아보니 너무도 부족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수첩들을 펼쳐보니 왜 그렇게 간단히 기록했는지, 나도 모를 암호 같은 구절도 많았다. 관계자료를 철저하게 보관하지 못해 여러 뜻 있는 일들을 자세하게 남기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방송 현업에서 물러난 지 어언 30년이 되어 간다. 이제는 방송을 편안히 보고 즐기며 들을 수 있으련만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은 은퇴방송인의 숙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배은정 작가김수웅 전 KBS대구총국장은1936년에 포항 학산동(현 중앙동)에서 태어나 포항초등학교, 포항중·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포항이동방송국에서 기자와 PD로 활동하다가 한국방송공사 PD, 포항방송국 방송과장과 대구방송총국 총국장, 한국방송공사 방송연수원 교수 등을 지냈다. 은퇴 후 KBS 사우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사우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11-20

"무한변신 라면의 세계… 라면요리 맛보러 오세요"

구미시는 그동안 산업도시, 공업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해왔다. 산업도시와 공업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트랜드가 되고 있는 관광산업에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선8기 김장호 구미시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혁신(革新)’을 강조해 왔다. 그 혁신은 구미의 관광정책에도 대변화를 가져왔다. 산업도시,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기보다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미라면축제’이다. K-라면이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농심의 신라면이 구미시에서 생산된다는 것에 착안해 축제를 만든 것이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제2회 구미라면축제 현장을 찾아 구미라면축제의 매력과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봤다. □ 라면, 요리가 되다구미라면축제는 라면축제답게 라면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구미시는 지역 음식점 15곳을 엄선해 축제장 중간에 위치한 라면테마광장에서 라면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도록 했다. 그 결과 누룽지라면, 신라면투움바파스타, 얼큰라면술밥, 단신라면, 추억의 라면땅, 홍게라면, 치즈라면 등 30여 가지의 다양한 라면 음식을 탄생했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최루탄김치라면, 숙취해소를 위한 황태해장라면, 라면과 고기를 조합시킨 소불고기짜장라면과 돼지라면 등 이색적인 라면도 큰 인기를 얻었다. 라면이 인스턴트 음식이라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건강식 라면도 선보였다. 일반적인 라면스프를 대신해 시금치, 당근, 자색고구마 등으로 소스를 만든 라면으로, 마녀들이 만든다고 해서 마녀라면으로 판해했다. 판매된 라면들의 가격도 5천원∼8천원으로 저렴해 방문객들의 호평을 얻었다. 또 구미시와 해외자매·우호도시인 베트남 박닌시, 일본 오츠시, 대만 도원시도 이번 라면축제에 참가해 자국의 라면을 선보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라면과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 제공구미라면축제는 도심에서 열리는 첫 축제로, 구미역에서 산업도로로 이어지는 역전로와 문화로, 금리단길 등 원도심에서 다양한 행사를 연계해 도심 전체를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도심 전체를 축제장으로 만들기 위해 △즐길라면!라면로드(홍보 및 체험존) △쉴라면!힐링거리(포토존 및 셀프 라면 식음존) △먹을라면!라면 테마광장(이색라면 식음존) △빠질라면!라면 스테이지(무대공연 프로그램) 등 4가지 테마로 구성해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헀다. 특히, 농심의 라면제품을 활용한 포토존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객들이 추운 날씨에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등 국내 유일의 라면 축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외국인들도 라면축제를 보기 위해 행사장을 많이 찾았고, 평소 라면을 즐겨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 연예인 강호동씨도 축제 첫 날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구미시가 이번 라면축제와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를 위해 인근지역 축제들과 연계한 것도 인상적이다. 시는 축제기간인 17일과 18일 문화로 청춘페스티벌과 18일 원평동 방천축제, 18일과 19일 축제장 내에서 진행된 ‘구미에서 즐거울 락’거리공연과 구미역 후면광장에서 열린 구미생활문화예술인축제, 구미영상미디어센터에서 17일과 18일 열린 ‘구미 금비천 Digilog춤축제’, 축제장 내에서 열린 ‘삼성,LG 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하면서 방문객들에게 구미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소개했다. □ 청결도 100점음식축제에서 가장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청결과 바가지요금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구미에서는 그런 문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구미라면축제는 청결면에서도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축제장 별도의 공간에 프레쉬존을 곳곳에 만들어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보관하도록 해 냄새와 거리미관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야외임에도 축제 기간 3일동안 깨끗함을 유지했다. 이는 구미시의 세심한 준비와 축제 참가자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이번 축제에서 사용된 일회용 용기가 모두 자연분해되는 친환경 용기를 사용하면서 친환경을 위해 노력한 점도 돋보였다. 음식가격도 사전 검토를 충분히 거쳐 정가로 결정해 바가지요금 문제를 해결했다. □ 축제가 침체된 상권을 살린다구미라면축제가 처음부터 도심에서 열리진 않았다. 낙동강체육공원에서 열린 제1회 구미라면축제도 당시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김장호 시장은 만족하지 않았다. 김 시장은 축제장에 와서 라면만 먹고 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라면과 더불어 구미를 제대로 알리면서 지역상권도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해 축제장소를 도심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구도심이 너무 좁아 주차공간과 무대 등 행사장 시설을 설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게 이유였다. 또 축제로 인한 민원폭증도 우려된다며 공무원들조차도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김 시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해외 축제 사례를 들어가며 라면축제가 구도심의 상권을 회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라면축제기간 3일 동안 2번도로(문화로)와 새마을중앙시장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주말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문화로에는 모처럼 젊은 세대들이 움집해 활기를 뛰었다. 이로인해 처음 도심에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을 반대했던 상인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문화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3)씨는 “십수년간 문화로에 사람이 이처럼 많았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며 “도심에서 무슨 라면축제냐 라며 생각했었는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은 몰랐다. 덕분에 모처럼 장사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적극 협조하는 상인들도 있었다.구미역 뒤 금리단길의 10여 개의 업체들은 축제 기간 방문객에게 제품할인, 영업시간 연장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축제기간 구미시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외지인 등 많은 인파가 축제장을 찾았다. 구미시에 따르면 축제 기간동안 약 10만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 빈점포 활용방안을 찾아라구미 도심에서 처음으로 열린 구미라면축제는 행사기간 동안 10만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큰 성공을 거두기는 했으나, 축제장 내 즐비한 빈 점포들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구미의 단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약 500m거리의 들어선 축제장에 빈 점포의 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았다. 오히려 문을 연 점포 수가 더 적은 것 같기도 했다.이런 상황은 문화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제장소를 도심으로 바꾼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인들과 지주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구미시는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작년부터 구미역 리모델링과 정주 환경 개선, 도심 상권 활성화, 낭만 문화도시 조성 등의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이는 앞으로 구미라면축제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대표하는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축제 장소를 그에 맞는 축제 장소로 탈바꿈 시키기 위한 것도 한 이유이다. 하지만, 원도심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원도심 주민들도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구미시에 적극 협조해야한다. 언제까지 빈 점포가 즐비한 곳에서 축제를 할 수는 없다.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3-11-19

고인돌 무덤 ‘호위무사’로 지켜온 200여 년 세월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 앞으로 입양이 되었다. 양부가 돌아가시자 졸지에 문중의 종갓집이 되고 아내는 덩달아 종갓집 며느리가 되었다. 일 년에 지내는 제사 만 4대 봉제사와 설 추석 명절 합쳐 매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조상을 정성껏 모셔야 화를 면하고 복을 받는다고 하는 어릴 적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의 말씀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왔던 터여서 힘들었지만,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나야 피를 받은 조상님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내는 그런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조상의 묘소 찾아 벌초하고 묘사를 지냈다.매년 하는 일이지만, 옛날과는 달리 묘소가 있는 산이 수림으로 우거져 묘소로 가는 길이 없어지고 묘에는 잡풀과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벌초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신문 기사를 통하여 벌초하러 나섰다가 벌에 쏘이거나 뱀 등에 물리어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를 종종 보았다. 그러다 보니 벌초도 자손이 아니라 대행을 해주는 업자가 생기기까지 했다. 머지않아 산에 매장을 하고 벌초하며 묘사를 지내는 매장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든다.오늘날 장례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장례를 집에서 행하던 풍습이 장례예식장으로 장소가 변했다. 매장 문화도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거나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유골함을 묻고 봉분 없이 묘비만 세우기도 한다. 유골을 산천에 뿌려 묘 없이 장례를 치르게도 더러 하는 것 같다.특히 외국의 경우를 보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다. 죽은 사람의 시신에 칼질하여 배를 갈라서 산 위에 갖다 놓으면 독수리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살점 하나 없이 다 먹고 뼈만 남는다. 유족들은 기다렸다가 유골을 수습하여 갈아서 주먹밥을 만들어 던져주면 독수리는 그거마저 먹어버린다고 한다.어떤 지역은 사람이 죽으면 사찰 주변에 시신을 던져 놓으면 수십 마리 개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이렇게 장례문화가 다양한 것은 기후와 죽음에 대한 민속 신앙이 다르기 때문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청동기 시대 성행하여 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의 일종인 고인돌 무덤이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151번지에 팽나무 노거수가 묘비석처럼 함께 있다. 문성리 마을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룩한 새마을 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에서는 돌멘(Dolmen)이라 불렀다. 고인돌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로 인근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고인돌 규모이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 생몰, 연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는 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 지석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35cm, 높이 45cm이며 주변에 여러 기의 무덤이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인돌 무덤도 보기 어렵지만,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것은 더더구나 보기 어렵다.고인돌 무덤을 팽나무 노거수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다. 팽나무는 소금기와 바닷바람에 강한 수종으로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 해송과 함께 자생한다. 동남부 해안지방에는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당산나무는 흔히 팽나무인 경우가 많다. 뿌리가 잘 발달 되어 있고 바람과 공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장수목이다.예로부터 방풍림이나 녹음을 위해 마을 주변이나 정자목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자못 고인돌의 중압감 속에서도 팽나무 노거수의 친근감이 느껴져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팽나무 노거수는 키가 20m 되고 몸 둘레가 3m, 수관 폭은 17m가 넘었다. 1995년 11월 18일에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었다.푸른 담쟁이덩굴이 크고 묵중한 고인돌을 감싸고 푸른 이끼는 거대한 팽나무 노거수 몸을 감쌌다. 팽나무 노거수 열매는 가을이 되면 검붉게 익는데 까맣게 익은 것으로 보아 검팽나무인 것 같다. 인공인지 자생인지 모르지만, 팽나무 노거수 나이가 200살이 넘었다고 한다. 고인돌과 노거수에 금줄이 쳐져 있고 지석에는 술과 과일이 놓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팽나무 노거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제사를 받는 신목(神木)이었다.포항 노거수회를 창립하여 노거수 보호에 앞장서 오신 이삼우 노거수회 명예회장(현 기청산식물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 민족은 노거수에는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어 왔고, 울창한 삼림 속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인식해 왔다. 노거수라는 자연물을 통하여 보다 큰 영감과 안녕을 기원했다. 단군신화 속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수(神樹),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박(朴)은 점을 치는 나무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수목에 대한 선조들의 심원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에서 활력을 부활시키고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철학으로 자연과 친밀하여 위대한 감화력을 얻으려는 욕구의 발로이다.”고인돌 무덤만 덩그렇게 있는 것보다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고인돌 무덤이 더욱 친근감이 들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산림을 훼손하는 매장 문화에서 산림을 보호하는 납골당, 수목장 문화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동해안의 수목장 나무는 여타 나무보다 팽나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모르지만, 이곳에 묻힌 조상님의 명복을 빌고 팽나무 노거수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고인돌 무덤에 묻힌 조상의 넋이 마을 수호신 팽나무로 화신한 것이 아닐까. 팽나무 노거수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본다. 맑고 파란 하늘의 가을 햇살이 푸른 잎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정겨운 단어 ‘포구나무’팽나무는 흔히 포구나무, 달주나무, 마태나무, 폭나무, 펑나무이라고도 부른다. 콩알만 한 팽나무 열매를 작은 대나무 대롱의 아래위로 한 알씩 밀어 넣고 꼬챙이를 꽂아 탁하고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열매는 팽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이것을 팽총이라고 한다.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포구나무라고 하는 말이 더 친근하다. 해안가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의 포구에는 어김없이 포구나무 한두 그루 서 있다. 포구에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를 연상할 수 있는 포구나무란 말이 더 정겹다.20여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고인돌 주변이 깨끗이 단장되었는데 지금은 잡풀들로 우거져 더 이상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고인돌과 주변 수기의 묘지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 있는 팽나무 노거수는 아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문성리 마을은 근면, 자조, 협동 새마을정신으로 대한민국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 역사성과 희귀성, 문화유산을 지키는 보호수인 팽나무를 천연기념물의 반열로 품격을 올려주면 어떨까?/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15

수능 앞둔 부모들이 팔공산 오르듯 일본서는 신사 찾아 합격소원 빌어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는 성향, 거기에 더해 독신이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 때문인지 주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곳을 여행한 편에 속한다.30대 초반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적지 않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런 과정과 경험 속에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사람 사는 모습이란 게 어디나 비슷하구나’란 것도 그중 하나다.지난 9월 중순. 뒤늦은 휴가를 일본 후쿠오카로 갔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가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였다. 어떤 곳이냐고? 이 물음엔 ‘위키백과’를 인용해 답한다.“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다양한 꽃이 피는데 특히 매화인 ‘도비우메’는 다른 매화보다 먼저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 명물로 ‘우메가에 모치’라는 떡이 있는데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짧은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 신사(神社)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과 중국인, 서양 관광객들이 1년 내내 몰린다고 한다. 풍광이 좋고, 이른바 ‘SNS에 잘 알려진 맛집’이 흔해서다.기자가 다자이후 텐만구를 찾았던 날도 수백 명의 여행자들로 신사 안과 거리, 식당이 붐볐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린 곳은 커다란 황소의 동상 앞이었다.“신사 입구에 만들어진 황소 동상을 쓰다듬으면 입학시험이나 입사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풍문이 전한다고 했다.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수험생과 그들 부모가 손바닥으로 정성 들여 쓸어댔는지 단단한 금속으로 제작된 황소의 등이 닳아서 반질반질했다.자신의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 세칭 명문 대학에 가서 입신출세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드물거나 아예 없을 듯하다. 그곳이 일본이건, 한국이건. 앞서 말했듯 ‘사람 사는 모습이란 어디서나 비슷’하니까. ▲“자식이 잘 되길”… 일본, 한국, 베트남 부모들 모두가 같은 마음202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6일 치러질 예정이다. 코앞으로 닥친 입시. 수험생도 긴장하고 마음을 졸이겠지만, 그런 심정이 더한 건 학생의 부모들일 터.지난 주말은 갑작스레 닥친 한파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선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맨 어머니 수백 명이 석불(石佛·관봉석조여래좌상)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왜였을까? ‘한국 지명유래집’이 이렇게 알려준다.“멀리 서있는 부처에게 기도를 하면 한 번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기복신앙지로 자리 잡은 갓바위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다. 특히 대학수능일을 전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기도객으로 인해 정상부의 약 100여 평은 발 디딜 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렇다. 일본의 부모들이 신사에 가서 자녀들의 행복과 학업 성취를 기원한다면, 한국 영남 일대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자식이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도록 해달라고 팔공산 석불에게 치성을 드리는 것.이것들과 유사한 모습을 올봄엔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봤다. 베트남 북부는 이른바 ‘한자문화권’이고, 하노이엔 공자의 사당(文廟)이 크게 자리해 있다.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다양한 관광객들이 거길 찾는다.베트남 왕조시대 과거(科擧) 합격자의 이름과 공적이 적힌 표지석이 여러 개 있는 하노이 문묘엔 붓글씨를 잘 쓰는 노인들이 소액의 사례금을 받고 아이들에게 글씨를 써주는 공간이 있다.아들과 딸을 데리고 문묘에 온 부모들은 “재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주세요” 혹은, “이번 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해주세요”라는 의미가 담긴 문구를 부탁하고, 노인은 근사한 필체로 그걸 써주는 광경이 기자가 지켜본 30여 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국적과 인종에 무관하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의 미래가 밝기를, 제 아이가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베트남이건 다른 어떤 나라건.다자이후 텐만구를 다녀온 날. 후쿠오카 시내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며 건물 사이로 붉게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봤다.그때, ‘부모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쏟은 정성과 눈물을 안다면 세상엔 악인(惡人)이 없을 텐데’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게 덧없는 망상일지라도. ▲후쿠오카, 돈코츠라면은 짜고 민물장어덮밥은 맛있다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여행에선 ‘사색하고 고뇌하는 시간’도 있지만, 몸과 마음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게 기자의 믿음이다.그래서다. 지금부턴 가볍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후쿠오카는 다른 어떤 음식보다 ‘돈코츠라면’이 유명하다. M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몇몇 돈코츠라면 가게는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였다. 대체 돈코츠라면이 무엇이기에.돈코츠는 ‘돼지의 뼈’를 의미하는 일본어. 그러니, 돼지 뼈로 육수를 만들고 갖가지 부수적 재료를 면발 위에 얹어 먹는 게 돈코츠라면이다.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이 똑같을 수는 없다. 제아무리 100인 중 99인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맛있는 돈코츠라면’이라 해도, 한두 사람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는 게 당연한 법.기자가 그랬다.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 유명세를 떨치는 가게에서 돈코츠라면을 먹었을 때 깜짝 놀랐다. 맛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런 혼잣말을 했으니.“왜 이렇게 짠 거야? 만들다가 소금통을 쏟았나?”절반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았다. 그럼에도 같은 메뉴를 주문한 옆 테이블의 젊은 커플은 면발은 물론,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워내고 있었다.돌아와 일본 여행을 수십 차례 다녀온 후배에게 물어보니 “원래 후쿠오카 음식 간이 한국보다 강해요”라는 답을 들려줬다. 그래서였을까? 조리사가 실수한 게 아니고?기대 이하의 음식이 있다면, 당연지사 기대 이상의 음식도 있기 마련.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4박5일의 후쿠오카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런 식사를 즐긴 건 민물장어덮밥을 주문했을 때였다. 일본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1926~ 2006)의 작품 중에 ‘우나기’란 것이 있다. 우나기는 ‘뱀장어’란 뜻의 일본어.20대 때 본 그 영화에 깊은 밤 장어 낚시를 하는 외로운 사내가 등장한다. 그가 홀로 먹던 장어덮밥이 참 맛있어 보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이번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장어덮밥은 ‘나 홀로 여행자’의 외로움을 달래줄 정도로 일품이었다. 향기롭게 장어에 배어든 양념과 혀 위에서 그대로 녹아버릴 정도의 부드러움, 함께 주문한 연어알의 풍미까지 좋았으니까.만약 다시 후쿠오카에 가게 된다면 첫날 저녁 식사는 무조건 잊을 수 없는 ‘미각적 즐거움’을 선사한 조그만 민물장어덮밥 가게에서 하기로 마음먹었을 정도다. 이제 먹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고.후쿠오카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게 ‘나카스 강변 포장마차의 밤’이다. 다음 회에선 바로 그 포장마차 거리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20~30대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계속)/사진 제공: 홍성민/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11-14

청산의 염원, 꽃과 나무의 환희

식물 세계를 키질해 쭉정이는 버리고 알짜만 모아청산을 이룬다는 기청산 수목원다양한 식물의 고유한 멋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자자생식물과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고우리 꽃 우리 나무를 품고 있는 곳우리말로 된 식물의 이름을 읊다 보면입안에 감도는 산뜻한 맛과 함께식물원의 중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갈 수 있다.식물원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연아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소나무뿌리가 숨을 쉬기 위해 땅 위로 솟아오른 낙우송형형색색 새들을 불러들이는 참느릅나무수목원의 염원이 바래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되기를마음으로 기도해 본다.푸른 하늘이 가까이 와 닿는 죽장의 경북수목원은자연을 근접해서 관찰할 수 있도록친절한 안내판의 역할을 하고 있다.수목원을 지키고 있는 대장군과 여장군의 모습이 늠름하다.자연의 가치를 일찍부터 알아채고 보존해 온 이곳은희귀수종과 향토수종의 자생식물 위주로수많은 종이 사이좋게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종의 지속과 번영의 가능성이 충만한 이곳은꽃들의 환희와 녹음의 노래가 날개를 달고 울려 퍼진다.글 : 김재건(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 최수정 197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성장했다.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6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현상회, 계명회 등의 회원이며 포항에서 갤러리m을 운영하고 있다. ‘호미곶 이야기’, ‘비밀이 사는 아파트’, ‘꿈꾸는 복치’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2023-11-13

성주읍 창의문화교류센터 설립… 남녀노소 전 계층 문화향유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성공적 추진을 통해 군민들 삶의 질을 높이고, 성주군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것은 이병환 성주군수의 주요한 공약 중 하나다.이에 답하듯 성주군은 ‘민선7·8기 역점시책’이라 표현해야 마땅할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1단계와 2단계 사업을 순차적으로 착착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주읍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복안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 성주군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실질적인 밑그림이 어떻게 그려졌으며, 그것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창의문화교류센터에서 문화 향유...지역의 랜드마크 역할도성주군은 지난 2019년부터 4년간 생활SOC 복합화사업과 연계하여 295억 원의 사업비로 도시재생 뉴딜 1단계 사업을 추진했다.이 사업은 2022년 완료됐다. 도시재생 뉴딜 1단계 사업은 ‘꿈과 희망이 스며드는, 깃듦 성주’라는 슬로건 아래 순서에 맞게 추진되었으며, 창의문화교류센터 건립과 스마트 보행환경개선사업, 살기 좋은 동네 만들기, 성주시장 활성화사업으로 구성돼 현실에서 보여졌다.그중 도시재생 뉴딜 1단계 사업의 핵심사업이라 할 창의문화교류센터 설립은 기존 버스터미널 부지에 추진돼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문화생활과 여가 시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또한, 창의문화교류센터는 성주읍 도심의 랜드마크라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 이를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창의문화교류센터의 주요 시설은 지하주차장(117대), 야외광장, 어린이급식지원센터, 국·공립어린이집, 가족센터, 작은영화관, 국민체육센터, 다함께 돌봄센터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동안 성주의 지속적 문제로 지적되던 ‘공영주차장 부족으로 인한 주차난’은 창의문화교류센터에 117대 규모 지하주차장이 만들어짐으로써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는 평가다.또한, ‘작은영화관’ 개관으로 인해 성주군민이 인근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영화 관람이 가능해졌으며, 야외광장에서 개최되는 여러 축제들은 다양한 세대가 함께 문화·여가 생활을 즐기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이외에도 성주시장 활성화사업으로 시장 창고 13동을 설치하고, 전통시장 내 공공와이파이 설치와 통신장비 교체로 시장 환경 개선을 통한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 성주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질적 주차난 해소와 더불어 안전한 교통 환경 조성도시재생 뉴딜 2단계 사업은 2020년도 130억 원의 국토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었으며, 연이어 생활문화센터, 작은도서관, 돌봄센터, 거점주차창 조성사업 등 생활SOC복합화 사업에 249억 원을 추가 확보해 총 379억 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2024년이면 전체 사업이 준공될 예정이고, 도시재생 뉴딜 2단계 사업을 통해 건강문화캠퍼스와 주차타워, 별의별 어울림 복합센터, 별의별 문화마당 등을 조성하게 된다.기존 성주체육관 건물을 리모델링 한 건강문화캠퍼스와 주차장 부지를 활용한 3층 규모의 주차타워(170대)는 2023년 4월 준공하여 주민들의 체육·문화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함께 만들어진 주차타워는 성주읍 주차 공간 부족 문제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기존 읍사무소 부지에 건립 중인 별의별 어울림 복합센터는 지하1층에 지상4층, 연면적 4천900㎡ 규모다. 1층에는 성주읍 행정복지센터, 작은도서관 및 주차장(41대), 2층에는 생활문화센터와 돌봄센터, 3층에는 중대본부와 지역대본부, 4층에는 CCTV통합관제센터가 배치될 예정이다.“이와 같은 공공시설의 복합화를 통해 군민들에게 더욱 효율적인 행정·문화·복지 시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군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 성주군의 이어지는 부연이다.아울러 농협 주차장 부지에는 지하2층 규모의 주차장과 공원으로 구성된 별의별 문화마당이 조성 중이다. 이 시설은 주민들에게 편리한 주차시설과 휴식할 수 있는 쉼터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어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도시재생 뉴딜 2단계는 지역 현안인 공영주차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 345대의 주차면수를 확보할 계획이다.건강문화캠퍼스 주차타워, 별의별문화마당 거점 주차장, 성주초등학교 인근 군민회관 부지 등 공영주차장 조성을 통해 성주읍의 고질적 주차난을 해소해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교통 환경 조성에도 역할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이병환 성주군수 “내년은 성주읍 도심 대개조(大改造) 원년으로”이와 같은 성주군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도시재생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1단계 주민 자치조직인 ‘깃듦 성주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현재 1단계 재생사업으로 조성된 창의문화교류센터와 공영주차장을 위탁관리 중이다.2단계 주민 자치조직인 ‘성주읍 별의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2023년 준공된 건강문화캠퍼스 주차타워를 위탁관리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금 조성 중인 별의별 문화마당 거점주차장 관리를 위해 준비 중이라는 게 성주군의 설명.도시재생 협동조합에서는 성주군 별고을장학회와 사회복지법인·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 마을회관 세탁기·건조기 기부 등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에 동참하고 있어 주목받는다. 이런 행위가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또한, 도시재생 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도시재생 기초센터와 함께 관내 사생대회, 문화 어울림 축제를 개최하는 등 주민이 주도하는 참여 활동에도 꾸준히 힘쓰고 있어, 다양한 방면에서 지역민들과 화합하는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성주군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주민이 직접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주민과 함께 지역 변화의 방향성을 찾아간다는 게 모토다. 이를 통해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런 과정은 주민간의 소통 활성화와 주민연대 강화에도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이와 관련해 이병환 성주군수는 “오는 2024년을 성주읍 도심 대개조(大改造)의 원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도시재생 1단계와 2단계 뉴딜사업의 성공적인 마무리와 함께 이천 친환경 하천 조성사업, 온세대 플랫폼 구축사업, 케어팜 빌리지 조성 등의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고 전한 이 군수는 “열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성주읍 도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으며, 향후 보다 다양한 세대가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웃음을 보였다.이는 “앞으로도 모든 사업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성주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까지 이어졌다./전병휴 기자 kr5853@kbmaeil.com

2023-11-13

긴 여운의 빅벤 종소리·타워브리지 멋진 야경 발길 붙잡아

영국은 미국과 더불어 우리에게 친숙한 국가다.특히 한국축구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축구 종주국인 영국은 더욱 가까워 졌다.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영국을 찾는 한국 여행객의 발길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은 런던만 해도 볼거리가 넘친다고 한다. 일주일간 영국 런던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지만 아쉽게도 일단 맨체스터를 거쳐 런던으로 들어가야 했다.홍콩에서 14시간 걸려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전형적인 영국 날씨를 체험해보면서 영국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곧바로 공항열차를 타고 피카딜리역에 도착, 런던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올랐다.2시간 반쯤 달려 런던역에 도착했다. 런던으로 가는 열차 차창 밖은 나지막한 구릉에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이 이어졌다.주말이라서 그런지 런던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영국에서 지하철은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렀다.인파를 헤집은 끝에 겨우 지하철을 타고 얼스코트역에 내렸다. 환승대신 웨스트 햄튼 지하철역 근처 숙소호텔까지 걸어서 갔다. 현대식 건물보다 옛 건물이 많은 런던의 색다른 거리풍경은 여행 온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런던에서 처음 본 스타벅스 매장은 한국처럼 크진 않았지만 고풍스런 건물 때문인지 잘 어울려 보였다.호텔 체크인은 오후 3시였지만 룸 청소가 덜된 까닭에 4시가 지나서야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뒤 런던의 명물 이층버스를 타고 빅벤을 보러갔다.밤에 처음 본 런던의 상징 빅벤은 멋지다는 말로 표현을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15분마다 울리는 빅벤의 종소리에 매료돼 자리를 뜰 수 없었다.그러나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는 런던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낮 시간대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런던 명소를 찾아 나섰다.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부터 둘러봤다. 트라팔가 광장은 프랑스와의 해전에서 승리하고 숨진 넬슨제독을 기리는 광장으로 관광객과 런던시민들로 북적였다.영국의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전시해둔 광장 인근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는 처칠 등 정치인부터 역사, 문화, 예술,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영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면면이 발길을 붙잡았다.그중 벽 한 면 전체를 가득채운 2차 대전 당시 처칠과 영국의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뇌하는 그림과 1차 대전 당시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군복 입은 장군들이 도열한 그림은 대영제국의 저력을 실감하게 해주었다,전 세계 화가들의 걸작을 모아놓은 내셔널갤러리 또한 관람객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평소 들었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은 다 있는듯 했다. 그중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앞에 는 인증 샷을 찍으려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까이 다가 갈수 없을 만큼 붐볐다. 내친김에 대영박물관까지 둘러보기로 했다.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게 한 박물관 정면은 웅장한 대리석 기둥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광활한 내부 전시장에 배치된 고대 이집트,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물과 조각품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거대한 람세스 2세의 두상과 교과서에 봤던 밀로의 비너스 상 등 수많은 유물을 직접 대하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유물을 다 보려면 끝이 없었다. 주마간산식으로 대충보고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숙소로 돌아가기 전 타워브리지 야경을 감상했다. 빅벤과 더불어 또 다른 런던의 관광명소인 타워브리지를 템즈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면서 런던이란 도시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템즈강의 33개 다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인근 런던브리지를 걸어본 뒤 이날 일정을 마쳤다.셋째 날에는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식과 처칠 전 수상의 장례식이 거행됐던 세인트폴 대성당부터 찾아갔다.세인트폴 대성당 투어는 인도교인 밀레니엄 다리위에서부터 시작했다.웅장한 대성당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시간이 없어 성당내부는 구경하지 못하고 성당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관광객들 중에는 유난히 남미 사람들이 많았다. 가톨릭교세가 강한 이들에게 세인트폴 대성당은 순례지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성당곳곳에 남미음식 판매부스가 자리하고 있었다.이어 찾은 곳은 출국 전 런던여행 유튜브를 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버로우 마켓. 세인트폴대성당에서 걸어가다 보면 런던 다리 끝 지점에 위치한 마켓은 입구부터 관광객들로 붐볐다.한국관광객들의 버로우 마켓 추천음식인 스페인 해물요리 빠예야를 파는 가게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현금이 없어 카드로 계산하고 받은 빠예야는 너무 짰다. 길거리 음식인데도 음식값도 만만치 않았다. 맛과 가격면에서 높은 점수를 선뜻 줄 수 없었다.마켓은 음식을 먹을 휴게 공간도 찾기 어려웠고 그 마저도 자리가 태부족, 서서 먹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청결상태도 한국 재래시장에 못 미쳤다.나선 김에 또 다른 재래시장인 캠든 마켓을 찾았다. 비가 오는 평일인데도 시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부터 관광객들로 빼곡했다.버로우 마켓이 각종 식재료와 먹거리판매 위주라면 이곳은 주로 기념품가게와 음식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게 달랐다.가게마다 파는 각종 여행 기념품들은 런던의 비싼 물가를 고려하면 비교적 싸게 느껴졌다.배가 출출해 김밥과 라면을 파는 BUNSIK(한국의 분식을 그대로 적은 듯)이라고 적힌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들로 가득한 매장을 보며 K-푸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지만 맛과 서비스는 한국에서 먹는 김밥과 라면에는 미치지 못했다. 라면은 봉지라면 대신 컵라면을 끓여 내놓았다. 라면에 따라 나오는 단무지나 김치는 아예 없었다.궂은 날씨지만 이제 프리모스힐로 발길을 돌렸다. 프리모스힐은 제일 높은 곳이 70m도 안되는 런던 외곽의 구릉지역이다. 앞이 탁 트인 이곳에 올라가면 멀리 떨어진 런던의 스카이라인들이 눈앞에 멋지게 펼쳐진다.세인트폴 대성당부터 시작해 런던아이, 빅벤 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화창한 날씨였더라면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대신 사람이 적어 편하게 볼 수 있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넷째날, 영국왕실의 상징인 버킹검 궁전을 찾아갔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날이라 오전 일찍 나섰다. 버킹검궁 입구 주변과 근처 목 좋은 곳은 벌써 관광객들로 빼곡했다.브라스밴드의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열린 교대식은 좋은 추억이 되기에 충분했다.절도있는 제식 동작과 은빛 투구를 쓰고 마상위에 올라앉은 기병의 모습은 영국왕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버킹검궁전에서 15분쯤 걸어 하이드파크에 도착했다. 쭉뻗은 가로수길 사이에 펼쳐진 하이드 파크의 벤치에 앉으니 마음의 여유와 평화가 찾아왔다.풀밭엔 청솔모가 뛰노는 이런 멋진 공원이 있는 런던시민들이 부러웠다.하이드 파크서 도보로 해롯백화점을 찾았다. 오래된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는 명품샵으로 가득했다. 중동 여성고객들이 유난히 많은 점이 눈에 띄었다. 히잡으로 몸을 감싸다 보니 외부로 노출 되는 명품가방이 주요 쇼핑 품목이라고 한다.해롯과 달리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옥스퍼드 거리에 있는 셀피리지 백화점과 그 주변은 인파로 넘실됐다.다음은 빅벤을 보기위해 웨스터민스터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웨스터 민스터역을 나와 바로 눈에 띄는 빅벤은 시선을 압도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빅벤을 보고 있었다.웨스터민스터 다리를 건너가며 탬즈강가의 빅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인도는 북새통을 이뤘다.다리위에서 관람차인 런던 아이를 보고 난뒤 피쉬 앤 칩스를 잘한다는 근처 선상식당을 찾았다. 피쉬 앤 칩스는 혼자먹기에 양이 많았다.여행 닷새째인 다음날 일찍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출연한 인기 영화 ‘노팅힐’에 나오는 노팅힐 서점을 보러갔다. 노팅힐 지역은 전형적인 영국의 주택들을 볼 수있는데다 풍경이 아름다워 좋았다. 영화에 나오는 서점앞에는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노팅힐을 나와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 촬영지인 자연사박물관을 관람했다.박물관의 규모와 어머어머한 내부 전시공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입구부터 전세계 관광객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난 자료를 전시해둔 시설임에도 무료입장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영박물관처럼 입구에는 운영에 필요한 자발적인 후원금을 받고 있었다.런던여행 마지막날 외곽에 있는 토트넘 핫스퍼 경기장 투어에 나섰다. 손흥민 선수가 활약중인 토트넘 핫스퍼의 홈경기장은 3년전 완공된 최신구장이었다. 8만 명을 수용하는 축구장에서 들릴 함성소리를 생각하니 꼭 한 번 실제 경기를 보러오고 싶어졌다. 1층 선수 유니폼 매장에는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을 고르는 한국 축구팬들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점심 식사후 이층 버스를 타고 타워브리지와 런던탑을 찾았다.헨리6세와 왕비 앤볼린의 사랑과 미움이 서린 런던탑과 바로 인근 타워브리지는 런던을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을 수 없는 방문지다.요새처럼 보이는 런던탑과 그 옆에 탬즈강을 가로지르며 우뚝 솟은 웅장한 타워브리지는 빅벤과 더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글·사진 /정상호기자 jyr933@kbmaeil.com

2023-11-12

사시사철 싱그러운 자연가볍게 떠나 온전히 누린다

각박한 도심 속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늘 숲을 꿈꾼다. 가볍게 떠나서 자연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수목원이 인기를 끄는 것도 자연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푸른 식물과 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는 수목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3년 전 문을 연 세종특별자치시의 국립세종수목원으로 떠나보자. 학습과 자연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수목원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 바오바브나무 비롯해 이색 수목 만발세종특별자치시의 국내 최초 도심형 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은 축구장 90개 규모(65㏊)다. 국립세종수목원은 사계절 온실을 비롯해 한국적 전통과 현대적 정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20개의 다양한 주제 전시원으로 조성됐다.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에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국립세종수목원은 모두 2천453종 161만 그루의 식물을 관람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3번째 국립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의 핵심 볼거리는 국내 최대 유리온실인 ‘사계절 전시 온실’이다. 꽃잎 세장이 달린 붓꽃모양으로 지어진 사계절 열대온실은 꽃잎 한 장마다 열대 온실, 지중해온실, 특별전시온실이 자리한다.동선에 따라 지중해 온실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32m 높이의 전망대가 있는 지중해식물 전시원에는 물병나무, 올리브, 대추야자, 부겐빌레아 등 228종 1천960본을 관찰할 수 있다. 지중해온실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람하고 강렬하지는 않지만 작고 연약한 모습이 ‘어린 왕자’ 속 바오바브 나무와 더 가까운 것 같다.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빨간색 부겐빌레아도 지중해 온실에서 꼭 봐야할 수목이다. 빨갛게 물든 건 꽃이 아니라 잎이다. 작고 수수한 꽃 대신 화려한 잎으로 벌과 나비를 유인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올레미소나무도 이채롭다. 중생대 백악기 때까지 살다가 멸종된 줄 알았으나 1994년 호주에서 발견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줄기가 항아리처럼 생긴 케이바 물병나무와 ‘시어머니 방석’이란 별명을 가진 금호선인장도 지중해온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지중해 온실 한가운데는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모양을 한 정원이 인증샷의 명소로 자리잡았다.열대온실로 들어서니 실내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5.5m 높이의 관람자 데크길을 따라 나무고사리, 알스토니아, 보리수나무 등 437종 6천724본의 열대 식물이 식재돼 있고 실내에 조그만 폭포도 있다. 마치 아마존 열대우림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다.열대온실에서 가장 인기있는 수목은 수령 300년가량 된 거대한 흑판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연필이나 칠판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열대 온실을 둘러보며 알게된 것은 우리가 즐겨먹는 열대과일이 흔히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 중 하나인 바나나는 나무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러해살이 풀에서 자라는 열매라는 것이다.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는 아보카도는 인간이 아니었으면 멸종했을지도 모르는 식물이라고 한다. 아보카도 열매를 통째로 삼켜 씨를 퍼트려주던 과거의 매머드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멸종하면서 아보카도 역시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우연히 아보카도를 먹은 인간이 맛에 매료되어 대량재배 하면서 멸종을 면하게 된 것이다.열대 온실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화려한 식물이 많기도 하지만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인 식충식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은 파리지옥을 비롯해 끈끈이주걱, 사라세니아 등 여러 종이 전시돼 있다. 파리지옥은 유인냄새를 뿌려 파리가 덫으로 들어오면 덫이 닫히면서 포획을 하게 된다. 그에 비해 사라세니아는 기다란 간처럼 생긴 잎에 벌레가 떨어지면 소화효소로 분해한다. ◇ 샤넬 넘버 5 만드는 꽃 ‘일랑일랑’ 이채열대지방의 휴양지마다 피어있는 야자수도 종류가 다양하다. 베트남이나 중국의 우거진 숲에 자생하는 생선꼬리야자는 마치 물고기 꼬리모양처럼 가지가 갈라지고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 전통주택의 재료로 사용되는 락카야자는 줄기와 잎자루가 립스틱 색처럼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일명 ‘립스틱 야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랫부분이 술병처럼 부푼 독특한 모양의 병야자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의 성탄야자도 눈을 사로잡는다. 열대 온실엔 국내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식물이 자란다. ‘황금 연꽃 바나나’는 최근 노란 꽃이 피었다. 수개월간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하와이 무궁화’ 종들이 모여 있는 곳엔 빨간 ‘산호 히비스커스’ 꽃이 피었다.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5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일랑일랑도 꼭 찾아봐야 할 식물이다. 일랑일랑은 필리핀 고유언어인 타갈로그어로 ‘꽃중의 꽃’을 의미한다.특별전시온실에서는 다양한 기획전이 열려 어린이 관람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6m 높이 천장에 매달린 대형 호접난과 행잉볼 60여 개는 입체감을 배가시켜 마치 동화책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오는 12일까지는 특별전인 피터래빗의 비밀정원이 전시된다. 사계절전시온실에는 반려식물 상담실이 설치돼 식물을 건강하고 예쁘게 키우는데 필요한 도구나 방법들을 자세하게 안내해준다.사계절 전시 온실밖에도 볼거리가 천지다. 조상들의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한국전통정원에는 서울 창덕궁 주합루와 부용정, 후원을 본떠 같은 크기로 조성한 궁궐정원과 남도 정원의 백미인 소쇄원을 볼 수 있다. 튤립, 수선화 무스카리 등의 봄꽃이 피어있는 모시조각보원은 한국의 전통문양인 모시조각보를 모티브로 조성한 정원이다.후계목정원도 이채롭다. 정이품송 2대자손목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무들의 자식이나 손자뻘 나무들을 옮겨놓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뉴턴의 사과 나무 후계목이다. 1665년 아이작 뉴턴은 영국 켄싱턴의 집 뜰에 앉아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이 사과나무는 뉴턴의 사후 전 세계 대학 식물원 연구센터의 요청에 따라 후손이 만들어졌고 여러나라에 널리 퍼져나갔다. 현재 국립세종수목원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는 3대손이다. 뉴턴 사과나무의 증손자인 셈이다.※ 여행 Tip국립세종수목원 관람 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5시이며 입장 마감시간은 오후 4시다.입장료는 성인 5천원, 청소년 4천원, 어린이 3천원이다.세종특별자치시 주민과 다문화가정,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간회원은 50% 할인된다.오는 24~26일에는 사계절전시온실에서 반려식물 키트 산업전이 열린다./세종=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3-11-09

바른 사회 만드는 효(孝)의 실천, 은행나무에게 배워볼까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교실은 부족하고 학생은 넘쳐나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했다. 때로는 야외에서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선생님 따라다니며 학교 운동장 나무숲 그늘에서 공부했다. 책도 공책도 연필도 필요 없었다.선생님의 몸짓과 말씀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과 어른들에 대한 예절을 하나둘 배웠다. 바람이 불어 운동장 흙먼지를 덮어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이나 들로 돌아다니면서 흙과 나무와 노는 것이 일상생활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친숙한 자연이 교과서이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 어른들에게 꼬리를 문 질문을 쏟아내면 아예 손을 내저으면서 그만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학교 선생님에게 여쭈어보라고 했다. 궁금한 질문은 교실보다 야외에서 더 많았다.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없었다. 학문과 예절은 지방 서원에서 가르쳤다. 학문뿐만 아니라 덕망 있는 조상을 배향하기도 했다. 오늘 명품 노거수 탐방은 고즈넉한 숲속 운곡서원에 있는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78번지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서원과 은행나무는 그 옛날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운동장 나무숲 아래에서 글짓기 공부도 하고 숲과 나무를 대상으로 그림도 그렸다. 달리기할 때 목표물이 되거나 반환점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도 나무숲에서 놀았다. 숲과 나무는 교실이고 놀이터이며 교과서이고 친구였다.운곡서원은 조선 정조 1784년 세워져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권행 선생과 그의 후손 권산해, 권덕린 공을 배향하고 있었다. 오늘날 지방사립학교로 청소년을 교육했다. 서원 동쪽 계곡 용추대 위에 유연정(悠然亭)이 세워져 주위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운곡서원과 유연정, 은행나무는 한 세트로 여겨졌다. 나무 아래 펼쳐진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 숲속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 파도처럼 물결치는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합쳐진 화음은 마음을 평온케 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고 천지의 소리에 몸을 맡겼다.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37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의 장성한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경이롭다. 3m나 쭉 뻗어 올린 하나의 힘찬 줄기가 다시 여러 가지로 나누어 하늘로 솟구쳤다. 거침없음과 거대함에 놀랍다. 키가 무려 30m, 몸의 둘레가 6m로 어른 네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이다. 앉은 자리의 폭 지름이 26m나 되니 덩치만으로도 주변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단풍잎은 또 어떠할까, 바닥을 수놓은 노란 융단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아기 이불 같은 부드러운 융단을 살며시 밟으면서 걷는 느낌은 또 어떨까. 수나무라 노란 은행은 볼 수 없지만, 대신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아 좋다. 은행나무의 연륜과 거대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진작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다. 눈의 현혹에서 벗어나 행단에서 제자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공자를 상상해 보았다. 공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 문명권에 깊은 영향을 끼친 세계 3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많은 사람이 운곡서원의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는다. 은행나무의 웅장함과 단풍의 아름다움만 즐길 것이 아니라 공자의 효에 대한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한번 상기시켜 주면 어떨까. 요즘 효를 물질적으로만 하려는 자녀들도 있는 듯하다. 효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효는 진정한 효가 아니다. 실제로 공자는 효가 도덕의 완성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보았고, 최대의 덕목인 인(仁)도 효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보았다.효는 부모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부모를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도의 목적은 부모와 자식을 모두 번영하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가사(家事)를 돌보는 것, 그 자체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가정 윤리가 단지 개인의 일일 뿐만 아니라 가정을 통해, 그리고 가정에 의해 공동의 선이 실현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 윤리를 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를 통해 공자의 효 사상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화석식물이라 불리는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불교와 유교가 도입되면서 향교, 서원 등에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는 우리의 스승이라 했거늘 공손수(公孫樹)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효도와 자애를 가슴에 새겨본다.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 천연기념물 지정됐으면…은행나무(Ginkgo biloba L.銀杏)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암수딴그루로 움직이는 정자(精子)가 있는 식물로 유명하다.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이 현존하는 식물로 화석식물이라고도 한다. 새, 다람쥐, 청설모 등 동물들은 은행 종자를 먹지 않는다.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권종락이 단종 때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서울을 왕래할 때 영주 순흥에 있는 큰 은행나무의 가지를 꺾어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가까이에 도연명의 자연사상을 본받기 위하여 유연정이 세워져 있다. 운곡서원과 유연정 그리고 은행나무를 한 세트로 그중 은행나무 노거수를 도 기념물이나 천연기념물로 품격을 높여주면 어떨까 싶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3-11-08

대구서 40여 분 남짓… 한국인이 3번째로 많이 찾는 관광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지칭해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터.여기서 ‘멀다’는 건 일본이 한국을 병합해 점령했던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1910~1945)의 쓰리고 아픈 기억 탓이 크다. 그렇다면 ‘가깝다’는 무슨 의미일까?실제 우리나라와 예전엔 ‘왜(倭)’라고 낮춰 불렀던 일본의 물리적 거리는 매우 가깝다. 왜냐? 비행기는 물론, 선박에 장착해 속도를 높여주는 기계식 엔진이 없던 시절에도 한국과 일본의 왕래는 빈번했다. 이는 역사 문헌에도 드물지 않게 드러나는 사실.임진왜란이 끝난 후 우리는 일본으로 대규모 사신단(使臣團)을 파견하곤 했다. 이른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다. 대부분이 알고 있겠으나, 한 번 더 부연한다. 아래는 ‘나무위키’의 설명이다.“조선 후기에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을 말한다. 당시 어휘 ‘통신’은 ‘국왕의 뜻을 전함’이라는 의미였다. 보통은 1607년 이후 조선이 에도 막부에 파견한 사절단만 가리키나 연구자에 따라서는 조선 전기에 일본측에 파견된 사절도 포함시키기도 하며, 실제로 실록을 찾아보면 태종 대(代)부터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후쿠오카 타워. 재삼 말하지만,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엔 시속 8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없었고, 고성능 엔진을 달고 바람 같은 속도로 현해탄을 오가는 쾌속 페리도 존재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두 나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때로는 갈등하고 반목하며, 어떤 때는 화해와 화평을 논의하며 교류를 지속해왔다.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국가들이었던 것. 사실 조선시대보다 1천 년 전인 신라시대 때도 일본인과 한국인은 서로의 나라를 드나들었다. 좋은 뜻을 가졌건, 노략질을 하기 위해서건.까마득한 옛날인 그때는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려면 바람에 운을 맡긴 돛단배가 교통수단의 전부였을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지금으로부터 1천342년 전인 681년 사망한 신라 문무왕은 유언이 “죽더라도 내가 용이 되어 동해에 출몰하는 왜적들을 막을 테니, 나를 바다에 장사 지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문무왕은 유택(幽宅)은 경주 봉길리 바닷가 지척의 ‘대왕암’이다.▲대구 출발, 칵테일 한 잔도 마시기 전 “후쿠오카입니다”서설이 과하게 길었다. 본론으로 간다. 뒤늦게 다녀온 휴가에서 기자는 몸으로 실감했다. 일본과 한국이 지척이라는 사실을.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나라다. 몇 해 전 2번의 일본 여행은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로 갔다. 두 곳 모두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안팎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었다.헌데, 이번에 여행지로 결정한 곳은 일본 후쿠오카. 거길 가겠다고 하니 먼저 후쿠오카를 다녀온 선후배들이 웃으며 말했다.“비행기 뜨면 화장실 갈 사이도 없이 내리게 될 걸.”실제로 그랬다. 대구공항을 이륙한 티웨이항공 비행기의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고, 스튜어디스들이 기념품과 음료를 판매하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저가항공’은 항공기 내의 각종 서비스를 과감하게 없애고 항공료를 낮춘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그래서, 공짜로 술을 청해 마시거나,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없다. 대신 티켓 가격이 저렴하다는 메리트가 있다.기자가 발권한 대구-후쿠오카 왕복항공권 가격도 포항-제주도 성수기 항공권 가격보다 겨우 3~4만원이 비싼 21만 원 정도였다.어쨌건, 비행기에 올랐으니 여행자의 들뜬 기분을 억제하기 못해 ‘잭 앤 코크’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려고 테네시 위스키 잭 다니엘스(Jack Daniel’s) 미니병과 콜라 한 캔을 주문했다. 콜라와 저가 위스키를 섞는 아주 심플한 칵테일이 ‘잭 앤 코크’다. 그런데 이게 뭐지? 술병과 콜라 캔을 따고 그걸 적당량 믹스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모금 마시려고 할 때 기장의 기내 방송이 시작됐다.“우리 비행기는 지금 일본 후쿠오카 상공에 와있습니다. 지금 후쿠오카의 현지 기온은….”대구공항에서 예매한 항공권을 실물 항공권으로 교환하고, 수화물을 맡긴 후 검색대를 통과하고, 면세구역에서 담배와 초콜릿을 사는데 걸린 시간보다 대구 상공에서 후쿠오카 상공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더 짧았다.그러니까, 겨우 40여 분 남짓. 선후배들의 말은 실없는 ‘농담’이 아닌 ‘팩트’였던 것이다. 어쨌건 칵테일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하고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럼 후쿠오카는 어떤 도시일까? 그 궁금증에 ‘나무위키’가 간략하게 답한다. “후쿠오카현(福岡県)은 일본 규슈 북부에 위치한 현이다. 면적은 약 4천980㎢, 인구는 약 511만 명이다. 규슈 최대 현이자 중심지. 규슈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후쿠오카시와 두 번째로 많은 기타큐슈시가 모두 후쿠오카현에 있다. 혼슈와 간몬해협의 해저터널과 교량으로 연결돼 교통의 중심이다. 명실상부한 규슈의 수도와 같은 지역이다. (최근 오염수 방류로 주목받은) 후쿠시마와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는 사람도 있으나, 복(福)자가 들어가는 걸 빼면 딱히 관계는 없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오사카, 도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찾는 일본 유수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 물가,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여행자가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은 낯선 도시에 도착해 예약해놓은 숙소를 찾기까지가 아닐까? 기자 역시 그렇다.하지만, 후쿠오카에서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했다. 공항이 시내에서 가까워 지하철이나 셔틀버스로 30분이면 가닿을 수 있었다.게다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환승역 곳곳에 한글 표기가 돼있어 일본어를 읽고 쓸 줄 모른다 해도 호텔을 찾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코로나19 사태’ 이전 일본을 찾은 관광객들은 “물가가 한국보다 비싸서 근사한 식당에서 요리를 먹거나, 백화점에서 선물을 사는 게 부담스럽다”는 고충을 말하곤 했다.헌데, 지금은 부정할 수 없는 ‘엔저’(국제 환시세에서 일본 화폐인 엔의 값이 다른 나라 화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진 현상)의 시기.기자가 후쿠오카를 여행했을 땐 일본 돈 100엔이 한국 돈 900원이었는데, 기사를 쓰고 있는 2023년 11월 6일 오후 현재는 868원으로 더 떨어졌다.그래서였을까? 후쿠오카 지하철 요금은 서울 지하철 요금보다 크게 높아 보이지 않았고,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중적인 고깃집과 초밥집의 메뉴도 그다지 비싸 보이지 않았다. 이른바 ‘체감 물가’가 그랬다는 이야기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한국도 어느 도시건 화장실과 거리, 숙박시설과 공공건물이 깔끔하게 관리돼 있다. 유럽에서 한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놀랄 정도다.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후쿠오카 역시 그랬다. 깨끗하게 정돈된 길거리와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낭만적인 모모치 해변,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어쨌건 후쿠오카에서의 4박5일은 기대보다 즐거웠다.‘후쿠오카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타워와 넓은 호숫가를 산책하기 좋은 오호리공원, 다소 투박하지만 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후쿠오카 성터, ‘내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해서 입신출세(立身出世)하게 해주세요’라고 기원하는 공간으로 유명한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 등을 돌아봤고, 후쿠오카의 ‘일미(一味)’로 불리는 것들을 두루 맛보았다.조그만 개인 테이블에서 화로에 구워 먹는 일본 소고기와 ‘후쿠오카 명물’ 돈코츠라면, 그리고, 너무 예쁘게 장식돼 먹기가 아까웠던 초밥까지.여행 중 후쿠오카에서 겪었던 흥미로운 사건과 기억 속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는 다음 회에 들려주려 한다. (계속)/사진 제공: 홍성민/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11-07

전 세계 핫 이슈 탄소 배출 ‘넷제로’… 다시 조명 받는 원자력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순 탄소 배출량을 넷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원자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원자력 산업의 중심지인 경북·경주의 현재와 미래를 현 시점에서 짚어보기 위해 ‘2023 경북원자력포럼’이 마련됐다. 7일 라한셀렉트 경주 베가홀에서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원자력산업과 관련된 화두들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펼쳤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김경수 iKSNF 단장, 김찬수 ·이태호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가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기조강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산화탄소 발생량 적고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 공급”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은 전 지구적 문제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이야기다. 에너지는 인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우리가 밥 먹고 움직이는 행위 모두에 에너지가 사용된다. 인간의 삶은 모든 것이 에너지로부터 기원한다. 에너지는 우리 생활과 밀착돼 있다.기후 변화는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구 온도가 2도 올라가면 세계엔 큰 일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것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스위치만 켜면 전기가 들어오는 세상에 사니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를 줄이는 게 관건이다. 원자력 발전은 다른 수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다.에너지는 안보 문제와도 직결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의 무기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세계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며 화석연료 의존에서 탈피하려 하고 있다.많은 나라가 신재생에너지 환경을 조성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 투자 대비 수십 배의 비용이 소요된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나라별로 에너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엔 원자력이 가장 저렴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미국의 태양광 생성 비용이 싸다고 우리도 이를 따랐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한국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총 수입량의 25% 정도가 에너지다. 그중 석유 수입 금액이 가장 많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에 따를 필요가 있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가스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만, 원자력발전소는 원자폭탄과 달리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기에 폭발의 위험성이 거의 없다. 거기에 원자력발전소엔 방사성 물질 유출 방지를 위한 다중의 방호벽이 있다. 한국 원전은 과거 문제가 된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과는 다른 형태의 원자로다. 충분한 내진 설계로 지난 번 경주 지진보다 60배 강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 원전 주변 방사선은 실시간으로 측정돼 공개된다. 그 수치도 자연 방사선량 수준에 그치고 있다.원자력은 저렴한 비용으로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다.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돼 있어 안정적 수급이 가능하다.현재 한국은 지방 소멸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산업체 유치는 인구감소율을 낮춰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울진군의 경우가 그 실례를 보여준다. 울진은 여타 경북의 군 단위 지자체에 비해 고용율 등 지역경제 지표가 눈에 띄게 좋다.경상북도와 경주시에는 원자력 전 주기를 담당하는 기업과 기관들이 자리했다. 경주에는 한수원 본사와 월성원전을 포함해 26개사 5천여 명 근무 중이다. SMR 국가산업단지와 관계기관까지 입주한다면 고용이 6천여 명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주가 기술, 에너지, 문화, 관광 등이 어우러져 삶의 질이 높아진 생활 환경 속에서 지방융성의 시대를 맞이하길 바란다. 주낙영 경주시장 환영사“SMR 국가산업단지 미래 이끌 성장동력 전초기지로”‘내일을 위한 선택, 원자력’이라는 주제로 2023 경북 원자력 포럼을 개최하게 됨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현재 원자력은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평가받고 있다.경주시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월성 원전, 원자력환경공단 등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과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중수로해체기술원, 양성자가속기 등 연구기관 또한 밀집된 원자력 도시이다. 경주시는 탄소 중립과 기후변화와 같은 우리 시대의 여러 도전 과제에 대응하고, 원자력 산업의 발전과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SMR(소형모듈원자로)은 일반 원전 대비 매우 높은 안전성과 낮은 건설비, 다양한 활용성을 갖고 있다. SMR로 전환되는 세계적 추세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선두적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3월 신규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된 SMR국가산업단지는 문무대왕면 동경주 IC 인근 일원에 3천966억원의 사업비로 150만㎡(46만평) 규모로 조성되며 우리 경주의 미래를 이끄는 첨단 산업의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SMR 국가산업단지 유치는 혁신원자력 RD 거점기관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조성에 발맞춰 미래 경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 나갈 것이다.원자력에너지 없이는 탄소중립이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더 큰 도약과 혁신적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세계적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이번 포럼을 통해 탄소중립·그린뉴딜 시대에 원자력산업과 우리 시가 나아갈 방향을 도출하고,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아낌없는 성원 부탁드린다.“고준위방폐물 특별법 신속한 제정” 강조□ 참석자 포럼 이슈7일 원자력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해 관심들이 많았다. 경주 월성원전 등 국내 원전의 임시 저장고에 대한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었다. 여야 모두 정쟁에만 몰두하다보니 시급한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남홍 경주미래포럼 회장은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현재 국회소위에 고준위방폐물 특별법과 관련, 국민의힘 안과 민주당 안이 올라와 있지만 양측의 의견차로 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국회에서 처리 여부를 물었다. 답변에 나선 김경수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은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임시저장 한계를 맞는 한빛원전부터 문제가 심각해진다“며“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 않아 고민이 크다”고 털어왔다. 신속한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그는 당초는 올해 초 해당 법안의 통과가 기대됐으나 여야의 친원전·탈원전 정쟁으로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연내 통과하지 못하면 내년 치러지는 총선 이후 다시 관련법안을 재발의 해야 한다면서 그럴 경우 장기 표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실제 앞서 ‘제1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수립 이후에도 3건의 특별법안이 발의됐으나 제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으며 21대 국회에서조차 아직 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고준위 특별법(민주당 김성환 의원·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발의)과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올라와 있다. 여야는 이번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름에 따라 지난달 20일 소위를 열어 법안 심사를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소위 자체가 무산되면서 또다시 연기됐다. 특히 12월 초 정기국회가 끝나면 바로 22대 총선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해당 소위가 이 법안에 신경 쓸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향후 여야의 전격적인 합의가 없는 한 21대 국회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 부분을 가장 우려했으며 국회가 미래를 보고 빠른 결단을 내려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한편 세계 원전운영 상위 10개국과 비교해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 전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는 원전 사용에 따른 불가피한 부산물이며, 원전 내 습식 저장시설에 임시 보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가동 이후 1만8천600t이 쌓여있는 상태다. 이번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부지선정에서부터 공사기간들을 감안하면 20여년 이상 지나야 이용이 가능하다.  /황성호·이부용기자

2023-11-07

“대규모 전력생산 기능 넘어 ‘에너지 안보 확보’ 수단으로”

주제발표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日 원전 처리수 방류로 인한 피복 가능성 희박”먼저 오염수, 처리수, 방류수에 대한 정리부터 필요하다. 오염수는 원자로 냉각에 사용되는 물에 지하수가 추가돼 늘어나는 양만큼 덜어내는 물로, 녹물과 방사성 물질이 혼합돼 있다.오염수는 규정에 따라 방류하기 위해선 핵종을 걸러내야 한다. 걸러내는 장치가 ALPS(다핵종제거설비)다. 이를 이용, 반복 여과시키면 모든 핵종에서 삼중수소 외에는 방류기준을 맞출 수 있다.처리수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만족된 물로 보면 된다. 다만, 삼중수소의 농도는 방류기준을 만족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수백 배의 해수와 혼합해 삼중수소까지 방류기준 농도를 만족하도록 해서 내보낸다. 이를 방류수라 한다.ALPS로 걸러지는 핵종들은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이며 여과시키면 처리수 내에 극히 미량만 존재한다.2011년 사고 후 후쿠시마 원전 인근 수십㎞ 이상의 넓은 바다가 오염됐다. 세슘의 농도는 입방미터당 1천베크렐(Bq) 이상이었으며, 최대 1억Bq에 이르렀다. 현재 처리수 내의 세슘 농도는 입방미터당 수백 Bq 수준으로서 2011년 사고 전 후쿠시마 앞바다 해수의 세슘 농도와 유사한 수준이거나 그 이하다.해류가 태평양을 돌아 우리나라로 들어오는데 5년 정도 걸린다. 그런데 2011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해수의 방사성 물질 농도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수백만 톤에 불과한 처리수(2011년 후쿠시마 바닷물 수준의 오염도)를 방류해서 우리나라 바다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ALPS로도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는 저장탱크 내에 2.2g정도 있다. 이는 자연에서 생성돼 동해바다에 비와 눈으로 유입되는 연간 5g의 삼중수소에 비해서도 적은 양이다. 더욱이 후쿠시마 연간 배출량은 0.07g에 불과하다. 배출 시 삼중수소 농도가 리터당 1천500Bq 이하로, 이는 WHO 음용수 기준 1만Bq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 농도도 방류 후 수 ㎞만 흘러가면 리터당 1Bq로 떨어지게 된다. 리터당 1Bq은 우리나라 강물의 자연적인 삼중수소 농도와 같다. 방류지점에서 수 ㎞ 이후부터는 강물과 같은 수준의 삼중수소 농도를 갖고 위험성을 논할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시물레이션 해보니 5년 후 우리나라 바다에 리터당 0.000001Bq 농도로 유입될 수 있다. 그러나 강물이 리터당 1Bq이므로 이러한 농도 증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피폭량도 전혀 의미 없다. 후쿠시마 앞바다 생선만 1만년 이상 먹는다 해도 엑스레이 1회 피폭량이다. 우리나라 생선은 2천만년 이상 먹어야 엑스레이 1회 피폭량이 될 것이다. 인천∼일본 나리타 1회 왕복 비행하면 후쿠시마 앞바다 수산물 900년 분량의 피폭되는 것으로 나온다. 원전 처리수로 인한 피폭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주제발표 김찬수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원자력 수소·청정 공정열 등 신산업 창출 힘써야”원자력은 지난 수십여 년 간 발전분야를 통해 저탄소 전력생산에 기여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고리 1호기 이후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는 전력을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생산해 낸 기반이 원자력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최근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2050년 탄소중립사회 실현은 이제 전 지구적인 목표로 공유되고 있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관련 정책과 계획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다만, 신규 원전 건설,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여러 가지 저탄소기술들의 급격한 발전 및 도입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는 2050년 탄소중립사회 실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력 및 수송 못지 않게 산업 분야에서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향후 많은 산업들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원자력과 신재생과 같은 탄소중립전력을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발전설비 및 송전망 건설로 이어질 것이며, 무조건적인 발전설비 구축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가 필요하며, 전세계적으로 최근 원자력을 기존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청정 공정열 및 수소 생산으로 활용분야를 확대하는 것이 적극 검토 중이다.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원자력의 열에너지를 산업 공정열 및 지역난방, 담수화에 활용한 사례가 있다. 특히 캐나다는 대규모 원자력 공급단지를 운영한 바 있고, 스위스는 지금도 제지공장에 원자력으로 생산한 증기를 공급하여 연간 2만3천t의 석유를 대체하고 있다.현재 전 세계는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가동원전을 활용한 수전해 수소생산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고온선진소형모듈원자로를 활용한 공정열 공급 및 수소 생산 실증이 진행될 예정이다. 독일을 제외한 모든 원자력 선진국들은 원자력 공정열 및 수소 생산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적극 고려하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원자력 수소 및 공정열 관련 기술 개발은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로 보인다.우리나라도 원자력 수소 및 청정 공정열로 경제적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확보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실현 요소로는 우선적으로 가동원전을 활용한 수전해 수소 생산을 위해선 국민 수용성 증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원자력 분야와 수소 생산, 화학 공정 분야와의 협력 증진으로 여러 신사업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고온선진원자로 개발을 통한 고효율 수소 생산 및 공정열 생산분야의 화석연료를 경제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며 대체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원자력을 통한 저렴한 안정적인 전력생산으로 경제적으로 고도 성장을 해온 것처럼, 탄소중립사회에서 원자력 공정열 및 수소는 국내 산업경쟁력 유지 및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발표 김경수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 “사용후핵연료 처리, 처분부지 확보에 달려있어”우리나라가 1978년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이래 장기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다. 2016년에야 최초로 법정계획을 수립하였으며, 현재는 국회에서 이의 이행에 필요한 특별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정부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면 13년 이내에 처분 부지를 결정하여 중간저장시설을 짓고, 14년간 원위치 실증과 이후 10년간 건설을 거쳐 처분시설을 운영하겠다는 일정을 세우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특별법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법정계획 이행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것임에도, 발전소 내 임시적인 건식저장시설의 저장 용량에 관한 조항 등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서 20대 국회에 이어 또다시 제정 지연을 우려하는 상황이다.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풀 실마리는 처분부지 확보에 달려 있다. 특별법의 핵심은 처분 부지를 확보하는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이다.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역지원 등의 혜택이 주어지더라도 처분장 설치 찬성률이 40%를 밑돌고 있다. 이것은 법률적 토대가 마련돼 부지선정에 착수하게 되더라도 최근 일본의 대마도 방폐장 유치 추진 건에서 나타나는 찬반 갈등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결국, 지역사회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부지확보의 성패는 처분시설 수용성 증진이 관건이다. 이를 위한 기술정책적 방안으로 △안전 최우선 정책 추진 △한국형 고효율 처분시스템 개발 △연안 해저 암반도 처분구역으로 고려 △처분기술의 안전 성능 사전 입증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기적인 지질 안정성을 부지선정 평가기준의 핵심으로 세워, 기간 단축은 물론 정책 신뢰도 향상을 추구해야 한다. 또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선도국 방식보다 처분장 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안전성과 경제성은 강화하는 처분시스템이 필요하다.육지 처분 방식은 어느 곳이나 수용도가 낮을 것이므로 적용 가능한 대안이 필요하다. 처분구역을 바다 밑까지 넓히면 지역사회의 님비(NIMBY) 심리 완화, 핌피(PIMFY)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무엇보다 시설에 대한 주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2030년 초 완성되는 연구용 URL에서 처분기술의 성능·안전성 현장시험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해 신뢰를 꾸준히 확보해야 한다. 주제발표 이태호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안전성·경제성 대폭 향상 SMR 가치에 주목하자”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달성이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국가들은 에너지 안보를 확보해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의회는 원자력을 친환경 경제활동 분류체계에 포함시켰다. 원자력의 역할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유럽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공급 위기 여파가 일자 종전 원전 제로화 정책에서 이제는 원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추세다. 이와 더불어 △재생에너지와의 연계 △석탄화력발전 대체 △오지·격지·도서지역·광산 등에 대한 분산형 소규모 전원 △수소·공정열 생산 △우주·해양 분야 적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탄소 원자력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기존의 대규모 전력생산에 국한되었던 원자력 역할을 점차 다변화 시켜 나가고 있다.특히 원자력 주요국은 기존 대형원전 대비 안전성·유연성·경제성을 대폭 향상 가능한 다목적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각국의 환경에 맞게 기술개발 지원책을 수립하여 전략적 투자 확대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실례로 미국은 탄소중립 달성 및 청정에너지 경제 전환을 위한 혁신기술 중 하나로 SMR을 선정하고 관련 지원책을 시행 중이다. 에너지부와 국방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다수의 민간 기업이 기술혁신을 주도하면서 실증 및 상용화 노력 중이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80여 종 이상의 SMR이 개발 중이다. 이는 기술우위에 기반한 미래 시장선점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부 모델은 이미 비즈니스 단계로 접어들어 해외 수출 사업도 본격화 되고 있다.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SMR을 가동 중인데 추가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우리나라도 지난 수십여 년 간 축적한 원자로 설계-기기공급-건설-운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고, 2012년에는 한국형 SMR인 SMART의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다. 현재는 한층 향상된 경쟁력을 갖춘 ‘혁신형 SMR’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개발이 완료된 SMART는 2020년대 글로벌 SMR 시장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혁신형 SMR’은 본격적으로 2030년대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다. 또한 소듐냉각고속로·고온가스로·용융염원자로 등 제4세대 원자로 역시 글로벌 사업화를 목표로 민-관 협력 개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정리=이부용기자

2023-11-07

바람결에 들려오는 고래 울음소리

구룡포 해변에 앉아 있으면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모래 위 자박자박 발걸음 소리파도 위를 헤엄치는 물결 소리흥겨운 피서객들의 웃음소리그 너머 멀리서 들려오는 고래 울음소리 포경선에 오른 포수들이망루에서 바라보던 고래들반들반들한 표면과 커다란 꼬리가거친 포말을 일으키던 풍경까지도 지금은 볼 수 없지만여전히 우리 귀에 아른아른고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래는 보이지 않지만구룡포 해안을 나서는 배들반들반들한 표면과 커다란 프로펠러가거친 포말을 일으키는 풍경이수십 마리 고래가 한꺼번에 헤엄치는 것 같다. 고래는 보이지 않아도그물을 손에 들고 항구를 떠나는수십 마리 고래를 보고 있으면바람결에 고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바다와 배와 고래그렇게 구룡포는마음속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글 : 이가은(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 임주은 임주은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