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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들의 굴곡진 삶을 품어내

등록일 2024-10-20 18:55 게재일 2024-10-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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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동화를 쓰는 아동문학가  김일광<br/>&lt;3&gt; 등단 40년 일관된 작품세계
2014년에 열린 3회 보리누름 문학제 모습.
2014년에 열린 3회 보리누름 문학제 모습.

그래서 동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뿌리 뽑힌 사람들인데, 그 가난한 이웃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상살이입니다. 어두운 이야기가 많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자리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포항 운하는 복원되었어도 물길과 함께 사람들의 삶이 복원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이 작품은 죽도 어시장과 섬안들, 칠성강의 판타지를 다루었지요. 표지 그림이 재미있고 독특합니다. 웹툰 작가가 그렸는데 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2015년 3회 흑구문학관에서 열린 보리누름문학제 모습.
2015년 3회 흑구문학관에서 열린 보리누름문학제 모습.

한 권의 책을 내는 과정에는 못다 한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40권이 넘는 책을 낸 김일광 작가한테는 수많은 사연이 있을 터이고, 그 사연을 엮어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바다』부터 『말더듬이 원식이』, 『엄마의 바다』, 『귀신고래』 등 작가의 주요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희정(이하 이) : 선생님의 첫 번째 동화집 『아버지의 바다』는 “열아홉 편의 그만그만한 길이와 그만그만한 가슴의 이야기들로 엮어진 동화집”이라고 임길택 시인은 말했지요.

김일광(이하 김) : 여기서 ‘그만그만하다’는 말은 진실한 삶에 깃든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시장통으로, 바다로, 산으로, 들길로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죠. 그래서 동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뿌리 뽑힌 사람들인데, 그 가난한 이웃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상살이입니다. 어두운 이야기가 많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자리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 『아, 여우다』의 주인공은 몸도 약하고 덩치도 작아서 동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외톨이입니다. 혹시 선생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지요?

김 :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으나 어릴 때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없어요. 몸이 약해서 혼자 놀 때가 많았지요. 그러면 혼자 놀았던 이야기도 좋다고 해서 쓰게 된 이야기입니다. 집 주위 뱀 이야기, 눈밭의 여우 이야기, 상념이 많았던 외로운 아이의 이야기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그 심심한 시간에 나는 활자 속으로 빠져들어 그들과 어울렸다. 책 읽기는 몸을 부딪칠 염려도 없고, 달리기처럼 꼴찌에 대한 창피함도 없었다. 책 읽기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놀이였다.

- 『호미곶 가는 길』, 단비, 44쪽, 2019.

이 : 많은 작품 중에 아픈 손가락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 : 2010년 봄봄출판사에서 나온 『아기염소 별이』 라는 작품인데, 납북 어민들의 후손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군사정부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조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간첩으로 핍박을 받고 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말지요. 그림이 아쉬워서 그림 작업을 다시 해서 개정판을 냈습니다.

이 : 책을 통해 만난 독자와의 인연이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는지요?

김 : 2007년 봄봄출판사에서 『순둥이』라는 동화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개 이야기인데, 태어난 새끼들을 하나씩 분양해 보내는 이야기가 담겼어요.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지요. 볼로냐상을 받은 김재홍 화가가 포항에 와서 모델이 된 개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그림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책이 나오고 몇 년 후 서울 답십리에 산다는 어떤 할머니가 어렵게 연락처를 수소문했다면서 전화를 했어요. 『순둥이』를 읽고 우울증을 극복했다고요.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세 아이를 양육한 분이더군요. 당시 대문 바깥은 이리와 늑대가 우글거리는 밀림처럼 캄캄했다고 회상하며 그 험한 세월을 견디고 아이들을 출가시키고 나니 우울증이 왔다고 해요. 그런데 동화 속 강아지처럼 다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이 자신을 일으켰다고 했어요. 그 할머니는 동화가 자신을 치유했으니 후속작을 써달라고 했는데 쓰지 못했지요. 내 동화가 누군가를 치유했다는 사실을 독자와 공유할 수 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이 : 선생님은 일찍부터 소외된 이웃과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에 주목해왔습니다.

김 : 『물새처럼』(우리교육, 2004)은 다문화 가정 이야기 세 편을 싣고 있는데, 이오덕 선생이 제 원고를 갖고 있다가 발간을 해주셨습니다. 『외로운 지미』(현암사, 2004)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이야기고요. 『따뜻한 손』(낮은산, 2006)은 한 버스 운전기사의 하루를 통해 약하고 보잘것없는 생명을 사랑하며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원제목은 ‘겨울밤 이야기’였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꾸면서 표지 그림도 바뀌게 되었어요. 그림을 그린 유동훈 화가는 인천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는데, 판화도 잘하는 분입니다.

이 : 『말더듬이 원식이』는 30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김 :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모여서 우리교육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었지요. 김명수 시인이 원고를 보내달라고 해서 서광출판사에 보내고 남은 원고를 수정해 보냈어요. 『말더듬이 원식이』는 기존의 동화와 성격이 다릅니다. 일하는 사람들, 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노동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동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조금은 무거운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지요.

2011년 3회 재생백일장 시상식 모습.
2011년 3회 재생백일장 시상식 모습.

이 : 『교실에서 사라진 악어』(우리나비, 2016)는 표지 그림이 기발해 보입니다. 선생님이 내신 기존 책들과는 이미지가 다르군요.

김 : 포항 운하는 복원되었어도 물길과 함께 사람들의 삶이 복원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이 작품은 죽도 어시장과 섬안들, 칠성강의 판타지를 다루었지요. 표지 그림이 재미있고 독특합니다. 웹툰 작가가 그렸는데 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이 : 선생님의 작품은 거의 우리 지역의 사람들과 자연,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 : 『산에서 피는 꽃』(통큰세상, 2014)은 수도산이 배경이고, 『아주 특별한 돌, 석탄』(교원, 2015)은 잠자리가 독수리만 하던 오래된 과거의 환상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사라진 산』(봄봄출판사, 2016)은 내연산 옆 샘재 지역을 배경으로 가족이 길을 잃었다가 다시 뭉치게 되는 이야기고요. 『울고 있는 숲』(단비, 2020)도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의 몸짓과 소리를 나누어보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 구룡포 해녀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김 : 《포항문학》 편집장이었던 권선희 시인은 구룡포에 살고 있어서 그곳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냈어요. 어느 날 권선희 시인이 구룡포 강사리의 해녀 할머니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할머니를 만나러 두부 두 판과 소주를 사 들고 경로당을 찾았습니다. 할머니 풍채가 건장했어요.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결혼했는데 소박을 맞고 강사리 어부를 만나 결혼했다더군요. 전처소생 넷과 자신이 낳은 자식 넷까지 모두 여덟 명을 키우며 살아온 할머니의 일생이 기구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뼈대로 쓴 작품이 『엄마의 바다』(우리교육, 2008)입니다.

이 : 선생님의 인생 책이라면 동화 『귀신고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 그렇지요. 권선희 시인이 포경선 용운호의 선장이었던 김준기 옹의 구술을 기록한 녹취문을 《포항문학》 23호(2003)에 실었어요. 이 녹취문을 토대로 쓴 작품이 『귀신고래』(내인생의책, 2008)입니다. 2021년에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이 : 『귀신고래』에 실린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작업실 ‘서경와’에 있는 원화 작품들도 인상적입니다.

김 : 『귀신고래』에 실린 그림은 연필로 그린 세밀화가 백미입니다. 장호 화백이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데리고 와서 호미곶의 풍광을 보고 느끼며 그린 작품이지요. 대전 한밭도서관, 포항 포은중앙도서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원화 전시회가 열렸어요. 동화책의 원화를 전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하더군요. 이후 장호 화백이 연필화의 아쉬움이 남았던지 『아! 여우다』의 삽화를 유화로 그렸습니다. 『귀신고래』의 그림을 그릴 때는 유화 물감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되었거든요.

이 : 동화책은 서사도 중요하지만 그림이 주는 효과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바다』에 실린 강요배 화가의 그림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김 : 제주도 그림으로 유명한 민중화가 강요배는 처가가 포항 오천이에요. 포항문협 회장을 역임한 최부식 시인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 많습니다. 강요배 화가가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을 때 제 동화책을 최 시인이 갖고 가서 이야기를 잘한 덕분에 <제주의 달>이라는 대작을 최 시인이 사들였지요. 이 때문에 제주도가 술렁거렸다고 하더군요. 그림은 훗날 제주도 미술관에서 인수했습니다. 『어머니의 바다』를 그려준 화가가 『조선의 마지막 군마』의 표지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어요. 책을 통한 화가들과의 인연이 소중합니다.

대담·정리 : 이희정(시인)

사진 : 김훈(작가)

김일광은…

1952년 12월 포항 남구 섬안에서 태어나 포항고등학교와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창주문학상 동화부문을 수상했고, 198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에 당선되었다. 40년 가까이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아버지의 바다’를 비롯해 동화와 청소년소설 등을 40여 권 발간했다. ‘귀신고래’는 스페인어로 번역되었고, ‘강치야, 독도 강치야’는 영어로 번역됐다. 한국문인협회 포항지부장과 ‘포항시사’ 편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애린문화상(2018)과 경상북도 문화상(2014), MBC삼일문화대상(2008)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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