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죽도시장 그리며 문인화의 새 지평을 여는 작가 이형수<br/><3> 인문학의 보고인 죽도시장에 주목하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문인화를 접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문인화는 현대인이 자주 접하는 예술 장르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문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문인화가 지금 왜 필요한지, 그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한 평자는 이런 의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문인화가 어디 있느냐고 다들 반문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필묵(筆墨)의 현대적 재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작품의 형식, 구도, 소재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그러니 수구나 매너리즘의 끝자락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문인화의 현실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그러나 문인과 문인화 이전에 인간과 예술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나의 실존의 노래 역사가 문인화의 역사고 예술의 역사다. 그런 만큼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문인화다. 오히려 그 중요성이 오늘날보다 더 큰 때도 없다.
- 이동국, ‘역사와 실존·심관의 시서화 일체 언어’, ‘심관 이형수의 수묵편지’, 서예문인화, 2017, 13쪽.
그렇다면 이형수의 문인화는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어떻게 펼쳐 보이고 있을까? 그 ‘가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죽도시장을 100점 정도 그렸습니다. 그곳에 가면 꿈틀거리는 생명력 같은 걸 느낍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삶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도시장은 다양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도형(이하 김) : 선생님은 근래 죽도시장 그리고 동학과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형수(이하 이) : 60대에 김지하, 박동진 같은 역사에서 굵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 위주로 그림을 그렸지요. 일흔을 바라보면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방향을 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사는 바로 이곳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장소를 택해야 할 텐데, 그 장소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어야 하겠고요. 그래서 책과 자료를 찾아보며 고민하다가 두 군데를 떠올렸어요. 하나는 죽도시장이고, 또 하나는 해월(海月) 최시형이 살았던 신광면 마북리 검곡(劍谷, 검등골)입니다.
김 : 먼저 죽도시장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군요. 죽도시장은 동해안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데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습니까?
이 : 2005년부터입니다. 그 당시 거의 매일 아침 죽도시장에 갔어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죽도시장에 가면 꿈틀거리는 생명력 같은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런 체험을 하면서 죽도시장이야말로 인문학의 보고(寶庫)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 어떤 의미에서 죽도시장을 인문학의 보고라고 생각하셨는지요?
이 : 인문학은 간단히 말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지요. 죽도시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지켜보면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삶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도시장은 다양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일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문인화에서 시장 풍경은 잘 다루지 않는 것 같은데, 작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이 : 죽도시장을 100점 정도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림에 딸린 화제(畫題)를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잘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요. 다루고자 하는 소재를 충분히 이해해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으니까요.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일주일가량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업하면서 그림에 땀내가 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칼을 가는 여인
칼을 가는 여인의 삶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칼날을 세우는 여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기운은 날카롭다.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짧은 일상의 한순간이지만 삶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그녀의 손끝 칼날은 무섭다. 인생은 짧고 짧은 순간의 연속이지만 때가 되면 죽음은 칼같이 온다.
- 2017년 6월, 죽도시장 어물전 옆 30년간 칼 가는 여인을 보며.
노점상
‘규합총서’에는 “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 마시기는 겨울같이 하라”고 했다. 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은 차게 들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이다. 시속 40킬로미터로 차가 다니는 노점상의 힘든 삶의 조그만 공간에서 맛난 점심, 삶의 엄숙함을 본다. 아쉬움이 많은 세상살이 할머니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읽는다.
- 2017년 6월.
아귀를 파는 여인
아귀는 방언으로 아구, 물 텀벙, 아구어라고도 한다. 아귀는 체형 탓인지 헤엄치는 속도가 느린 탓에 바닥에 엎드린 채 유인 돌기를 흔들어 먹잇감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자산어보’에도 낚시하는 물고기 조사어(낚시조, 실사, 고기어)라고 했다. 한 번에 큰 입으로 큰 고기를 삼키는 먹성 때문에 탐욕과 욕심의 상징으로 통한다.
- 2016년 6월, 어물전에서 본 아귀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두 아이와 부부를 그리다.
김 : 죽도시장을 오랫동안 다니셨으면 다양한 사연을 접했을 것 같습니다. 인상 깊은 사연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이 : 밥 한 끼를 천 원에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한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말을 안 들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한 스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말 잘 듣는 아들이 될 수 있겠냐고 물었지요. 스님은 할머니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말 잘 듣는 아들이 될 거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할머니는 고민 끝에 시장에서 밥 한 끼를 천 원에 팔았더니 손님이 몰려들고 아들도 말을 잘 듣게 되었다고 해요.
김 : 한 편의 전설 같은 이야기군요. 인상 깊었던 장면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 한번은 식당에 들어갔는데 추사체를 흉내 낸 ‘淸淨(청정)’ 자가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씨 밑에서 한 할아버지가 밥을 앞에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겁니다. 아마 고된 일을 하고 힘이 들어서 졸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淸淨’과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묘한 울림이 느껴지더군요.
김 : 죽도시장을 그린 작품으로 전시회를 하셨지요?
이 : 2021년 10월에 포항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해도 도시 숲에서 30여 점을 전시했습니다. 죽도시장에서 전시를 더해 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지요.
김 : 죽도시장을 100점 정도 그렸다고 하셨는데, 아직 제대로 된 전시가 이뤄지지 못했군요. 책자로 발간되지도 않았을 테고.
이 : 그런 셈이지요. 언젠가는 죽도시장을 주제로 한 좋은 전시가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김 : 혹시 포항의 풍경을 그린 작품 중에서 공개하지 못한 작품이 있는지요?
이 : 산수화를 제 나름대로 그리고 싶어서 2015년에 ‘청하골 12폭포’를 그렸어요. 그 후에도 다양한 크기의 ‘12폭포도’를 그렸습니다. 내연산 12폭포에 깃들어 있는 여러 이야기를 ‘12폭포도’에 화제로 썼지요. 아직 전시는 못 했습니다.
김 :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군요. 전시회를 통해서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 : 개인전을 여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한 번 여는데 적어도 2000만 원이 듭니다. 작가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요.
대담·정리 : 김도형(작가) / 사진 : 김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