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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은 우리 곁을 다녀간 형님 같은 성자”

등록일 2024-11-06 19:09 게재일 2024-11-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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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 죽도시장 그리며 문인화의 새 지평을 여는 작가  이형수<br/>&lt;4&gt; 검등골을 거닐며 동학의 가르침을 깨닫다
해월 최시형(오른쪽)과 외손자 정순철.

경주에서 태어난 해월 최시형은 부모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10대 중반에 포항으로 옮겨 신광면에서 살았다. 34세인 1861년 6월 동학을 믿기 시작해 수운(水雲) 최제우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고 1863년부터 영덕, 영해 등 경상도 곳곳을 다니며 포교 활동을 했다. 1863년 8월 도통(道統)을 승계받으며 동학의 2대 교주가 되었다. 김용옥은 “오늘 우리의 가능성의 모든 씨앗이 동학에서 뿌려졌다”고 했고, 김상봉은 동학을 “현대 한국 철학의 시원”이라고 했다. 이형수 선생은 환갑을 넘어 동학에 매료되어 동학에 관한 그림을 그려왔다. 포항에 깃든 동학 정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에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선포한 것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학은 알면 알수록 가치와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해월은 36년 동안 보따리 하나를 들고 도피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안으며 인내천 사상을 전했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김도형(이하 김) : 언제부터 동학을 알게 되었습니까?

이형수(이하 이) : 서울에서 그림을 배울 때 동학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해월이 포항에서 살았다는 걸 몰랐어요. 환갑이 지나 동학 공부를 하면서 해월과 포항의 깊은 인연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김 : 해월의 살림터에도 가보셨겠군요.

이 : 신광면 기일리와 마북리 검곡에 자주 갔어요. 기일리는 오지이긴 하지만 산세와 터의 기운이 참 좋습니다. 기일리는 해월이 일하던 제지소가 있던 곳이고, 검곡은 해월이 농사를 지으면서 동학 수련을 하던 곳이지요.

김 : 동학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습니까?

이 : 당시에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선포한 것은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동학은 알면 알수록 가치와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해월은 36년 동안 보따리 하나를 들고 도피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안으며 인내천 사상을 전했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해월은 우리 곁을 다녀간 형님 같은 성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 동학에 관한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그렸습니까?

이 : 동학의 깊은 뜻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인물화를 그릴 때 해월과 장일순, 김지하도 그렸어요. 해월의 정신이 장일순과 김지하로 이어지니까요. 2022년에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문화예술촌 벽면에 삼례의 역사 기록 도판화를 만들어 부착했습니다. 삼례읍은 동학운동에서 의미가 깊은 곳이지요. 동학교도들이 교조 최제우의 신원(伸<51A4>) 운동을 했고,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가 있었던 곳입니다. 동학의 역사를 기록한 도판화 1천여 장을 그려서 그중 420장을 도판으로 만들어 삼례문화예술촌 벽면에 부착했어요. 참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김 : 천도교에서 제작한 2024년 달력에 선생님의 작품이 있더군요.

이 : 해월의 큰딸 최윤(1878~1956)과 외손자인 정순철(1901~?)을 그린 인물화입니다. 정순철은 전 국민의 애창곡인 <짝짜꿍>, <졸업식 노래>를 작곡했고 윤극영, 박태준, 홍난파와 함께 한국 동요 4대 작곡가로 꼽힙니다. 방정환과 색동회를 조직해 어린이 운동에도 앞장섰어요.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 확인이 안 되면서 잊힌 인물이 되고 말았지요.

정순철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정지용 시인의 문우(文友)다. 도종환 시인이 2022년에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를 노래하다-한국 동요의 선구자 정순철 평전』(미디어창비)을 내면서 한국근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한 그의 삶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평전에 따르면, 정순철이 방정환과 함께 전개한 어린이 운동은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이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라고 한 해월의 「내수도문(內修道文)」에 뿌리를 둔다.

김 : 정순철의 어머니도 명성이 높은 분이지요?

이 : 그렇지요. 정순철의 어머니 최윤은 경주 용담정을 지키며 동학사상을 널리 전파해 ‘용담 할매’라고 불립니다. 그분이 고생한 건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김 : 수운 최제우는 경주 최부자 가문의 정신적 지주인 정무공(貞武公) 최진립의 7대 후손입니다. 동학은 경주 최부자 가문과 인연이 깊을 것 같습니다.

이 : 해월의 첫째 아들 최동희가 최부자 가문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손병희가 주선했지요. 최동희가 최부자 가문에 보낸 감사의 편지를 최부자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어요.

김 : 죽도시장과 동학 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습니까?

이 : 동해안별신굿도 귀중한 문화유산이지요. 한번은 영해에서 별신굿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1박 2일 동안 구경했는데 정말 볼만하더군요. 다른 곳에서도 별신굿 한다는 소식이 있으면 달려갑니다. 김석출 만신에게 자문을 구한 백남준도 “나의 예술의 뿌리는 굿”이라고 했어요.

김 : 선생님을 뵐 때마다 배낭을 메고 걷기에 좋은 복장으로 오시더군요. 평소에 많이 걸으시나 봅니다.

이 : 걷는 게 삶 자체라 할 수 있지요. 60대 초반에는 호미곶 둘레길을 거의 다 걸었습니다. 구룡포 삼정리에서 호미곶면 신창리까지는 여섯 시간 정도, 구룡포에서 호미곶 보리밭까지는 네 시간가량 걸립니다. 60대 후반에는 집(장량동 대림골든빌아파트)에서 출발해 달전 사거리를 지나 도음산을 거쳐 신광면사무소에 있는 신라 냉수비까지 걸었어요. 이 코스도 대략 여섯 시간이 걸리지요. 영덕에도 이따금 가는데 강구 버스 정류장에서 화림정맥을 타고 영덕군민운동장까지 가면 여섯 시간쯤 걸립니다. 강구 등대에서 오십천변을 따라 무릉도원교까지 가면 네 시간가량 걸리고요.

김석출(오른쪽)과 아내 김유선.
김석출(오른쪽)과 아내 김유선.

김 :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걷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 두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는 작품 구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혼자 걸어요. 둘째는 작품을 계속 그리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 : 걷기 외에 꾸준히 하는 일이 있습니까?

이 :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점의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독서는 게을리할 수 없어요.

김 : 많은 작품을 그렸을 텐데, 작품을 정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이 : 시간 나는 대로 작품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작품만 남기고 나머지는 소각할 생각이에요.

김 : 한 점 한 점 공들여 그린 작품을 소각하려면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이 : 어차피 모든 작품을 안고 갈 수는 없습니다.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요.

김 : 최근에 하신 작업이 있습니까?

이 : 영덕 출신 동갑내기인 김종완 선생이 동시집을 내는데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더군요. 동시에 어울리는 그림 50여 점을 그렸는데, 동시의 원천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이 고여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최근 『열두 살의 봄』(청개구리)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습니다.

김 : 이제 대담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이 : 한 자루 붓이 한 생명이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숲을 찾으려 합니다. 지방에 묻혀 있는 귀한 인문학적 자료를 찾아내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끝>

대담·정리 : 김도형(작가) / 사진 : 김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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