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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떴을 때 ‘월월이청청’을 함께 추고 싶어

등록일 2024-10-09 18:39 게재일 2024-10-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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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달을 보며 함께 춤을 추고 싶은 무용가  김동은<br/>&lt;4&gt; 자명예술촌 조성과 무용가의 꿈
자명예술촌에서 무용 수업 장면.

마지막 대담은 장소가 바뀌었다. 그동안 동빈내항 인근에 있는 포항예총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마지막 대담은 남구 연일읍 자명리에서 하자고 했다. 그곳에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서. 자명리의 폐교된 자명초등학교는 예술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일을 김동은 회장이 벌인 것이다. 비옷을 입고 옮겨 심었다던 백일홍이 주인보다 먼저 반겨주었다.

폐교된 자명초등학교를 자명예술촌으로 바꿔 2022년에 들어왔어요. 온갖 새소리 에 눈을 뜨고, 호미들고 풀 뽑고… 2년동안 시설 관리하기 힘들었지만 기분은 정말 좋아요. 새카맣게 탄 거친 손을 보고 무용가의 손이 왜그러냐고 하지만 난 내 손이 자랑스러워요.

누구나 같이 놀 수 있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무용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죽을때까지 무용을 배워야 하겠지요. 새로운 것을 접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고, 지금까지 주입식으로 춤을 배우고 가르쳤다면, 동작 치유는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해야 합니다. 예술가들이 더불어 더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온 힘 다하겠습니다.

전은주(이하 전) : 자주 지나다니던 길인데 여기에 예술촌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김동은(이하 김) : 다들 그러더군요. 4차선 도로 공사한다고 문패까지 떼버려 더 그럴 겁니다.

전 : 넓은 운동장과 야외 데크가 인상적이군요.

김 : 이 운동장 때문에 여기 들어왔습니다. 아늑한 운동장에서 아이와 어른들이 다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 싶어서요.

전 : 지난번에 들려주신 <포항의 노래>를 자꾸 흥얼거리게 됩니다.

김 : 그 노래가 중독성이 있지요. 한번은 어머니들과 평생학습원에서 수업하다가 야외 수업으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갔어요. 광장에서 연습복 치마를 입고 ‘포항의 노래’에 맞춰 ‘월월이청청’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귀비고에 현장학습을 온 초등학생들이 함께해도 되냐고 해서 다 함께 춤을 추었지요.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음악 좀 구할 수 없냐”고 묻더군요. “연락처를 주시면 보내드리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연락처가 적힌 쪽지가 없어진 거예요.

전 :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떠셨나요.

김 : 그때 새삼 느꼈지요.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춤을 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전 : 그래서 ‘자명예술촌’을 만든 건가요.

김 : 원래 환여동에 있는 폐교된 대양초등학교 부지를 생각했습니다. 바다와 가깝고, 보름달이 떴을 때 ‘월월이청청’을 추면 끝내줄 것 같더군요. 밤만 되면 그 학교 앞에 가서 서성거렸어요. 그런데 그 학교는 교육청에서 유아교육체험센터로 운영하면서 물거품이 됐지요. 대안으로 폐교된 자명초등학교를 자명예술촌으로 바꿔 2022년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올 때 쑥이 제 키만큼 자라 있었어요. 2년에 걸쳐 그 풀을 제거했는데 저 교실 뒤편에는 아직 손도 못 댔습니다. 사실 관리하기가 아주 힘든데 기분은 정말 좋습니다. 여기 와서 새벽형 인간이 되었지요. 온갖 새소리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면 호미를 들고 나가 풀을 맵니다. 새까맣게 탄 거친 손을 보고 무용가의 손이 왜 그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내 손이 자랑스러워요. 요즘 매일 운동장에서 궁리합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일인용 매트 하나씩 깔고 다 함께 요가를 하면 얼마나 근사할까, 운동장 가득 원터치 모기장 속에 앉아 별과 달을 보며 우리 노래를 함께 듣고 부르면 얼마나 황홀할까, 하고요.

전 : 보름달이 떴을 때 ‘월월이청청’을 추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월월이청청’은 어떤 춤인가요.

김 : 전라도에는 ‘강강술래’가 있습니다. 목포 등지에서 불렸으니까 전라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전라도 ‘강강술래’라고 하지는 않지요. ‘월월이청청’은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면서 부르던 노래인데, 소리하며 춤을 춘다 해서 ‘소리춤’이라고도 합니다.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월월이청청’에 대한 연구를 했지요. 민속무용 전문위원인 중앙대 정병호 교수님께 “‘강강술래’가 지역 문화재로 등록돼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월월이청청’도 지방문화재로 등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면 될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이슈로 만들어 널리 알려야 도움이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2000년 경주 엑스포 폐막공연을 비롯해 행사만 있으면 ‘월월이청청’을 공연했습니다. 포항, 경주 등에서 ‘월월이청청’ 공연을 했다는 뉴스가 나가니까 영덕에서 갑자기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문화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냐”고 반문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우리 모두의 ‘월월이청청’이 되어야 하는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전 : ‘월월이청청’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김 : ‘강강술래’는 엄청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가사마다 동작을 예술적으로 만들어놓았지요. ‘월월이청청’도 재 밟기, 대문 열기 등 대목마다 동작이 있어요. 여성들이 춤을 추면서 한풀이를 한 것이라고 봅니다. 처음부터 여기서 이렇게 하고 저기서 저렇게 하고, 이런 것은 하나도 없었지요.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누군가 한 사람이 일어서서 흥얼거리면 또 한 사람이 일어나서 흥얼거리고요. 옛날에 시골에 가면 “모둠 떡 해 먹는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보름달 밤에 누구는 뭘 가져오고, 또 누구는 다른 걸 가져오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가져와서 먹고 놀다가 우리 춤 한번 춰 볼래, 그랬겠지요. 걷고 돌다 보니까 더 크게 한번 돌아보자 했을 테고, 인원이 점점 많아지니까 안으로 한 사람 손 놓고 들어가다 보니 골뱅이, 실꾸리 감기가 되고요. 그리고 실꾸리 감았으니 풀어야 하겠지요. 그러면 실꾸리 풀기가 되고요. 그런 놀이가 춤으로 된 것이 ‘강강술래’고 ‘월월이청청’인 겁니다.

연오랑세오녀 공연 커튼콜 장면.
연오랑세오녀 공연 커튼콜 장면.

전 : ‘강강술래’와 ‘월월이청청’의 원리가 그렇게 되는 것이군요. 회장님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퍼블릭 프로그램이나 시니어 수업을 많이 하시던데 이유가 있습니까.

김 : 학생들을 가르쳐 전문가로 키워내는 일은 다했으니 일반인들과 같이 놀 수 있는 게 뭘까, 그런 궁리를 합니다. 나도 내 나이에 맞게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무용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지요. 그래서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 관심이 많아요. 포항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만든 ‘사철춤’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씨뿌리기, 모내기, 추수하기…, 이런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동작만으로도 굴신운동이 됩니다. 평생학습법이 시행되면서 예전에는 문턱이 높던 문화예술교육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지요. 양만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대상자들을 만나고자 늘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 : 아직도 춤에 대해 공부하실 게 있습니까.

김 :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겠지요. 새로운 것도 접해야 하고요. 그래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요. 코로나가 유행할 때는 한국댄스테라피협회 류분순 이사장님한테서 동작 치유에 대해 배웠습니다. 1년 동안 꾸준히 수업을 받았고, 2급 자격증도 취득했지요. 내가 해온 춤은 주입식으로 배우고 가르쳤다면, 동작 치유는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해야 합니다. 류분순 이사장은 현대무용을 전공하셨는데 내가 한국무용 동작을 하면 그게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곤 했어요. 한국무용이 가장 자연스럽다면서요.

전 : ‘김동은 무용단’은 연오랑세오녀를 바탕으로 한 ‘Sun & Moon-별이 된 연인’, ‘충비 단향, 대를 잇다’를 비롯해 포항의 문화유산을 콘텐츠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 지역의 오래된 이야기는 지역 예술가가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승화해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요? 춤으로 좀 더 친근하게 포항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일월문화제 때 길쌈놀이를 접목해 세오녀의 비단 짜기를 기획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길쌈놀이를 민속놀이로 많이 하는데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곤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줄을 만들어서 <포항의 노래>에 맞춰 공연했습니다. 관객이 동참해서 다 함께 줄을 잡고 춤을 추었는데 반응이 참 좋았어요.

전 : 혹시 포항에서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없었는지요.

김 : 시립무용단을 해체한 일입니다. 사소한 오해로 빚어진 일이지요. 그때 억울하더라도 좀 참을 걸, 시립무용단이 있으면 후배나 제자들이 돌아올 자리도 있었을 텐데……. 아주 아쉽습니다.

전 : 끝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김 : 포항에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포항예총 회장으로 봉사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래전에 예술의 경계는 무너졌지요. 길가의 백일홍도 색색이 피어 있으니 보기에 더 좋지 않아요? 어머니의 품으로 보듬어 포항의 예술가들이 더불어 더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대담·정리 : 전은주(동화작가) 사진 : 김훈(작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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