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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시장 인파로 북적, 명절 땐 밤샘 장사도 예사

한상갑기자
등록일 2024-10-10 18:50 게재일 2024-10-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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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전통시장을 찾아서-큰동해시장
큰동해시장 정문 모습.
큰동해시장 정문 모습.

죽도시장과 함께 포항 전통시장의 ‘빅2’를 형성하고 있는 큰동해시장.(물론 외형, 규모 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만)

전통시장으로서 포항시 정식 인증을 받은 게 2008년이니까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죽도시장이 1500개 점포의 매머드급 상권을 자랑하는 데 비해 큰동해시장은 150여 개 점포에 하루 유동 인구도 2000여 명 남짓하다.

포항시 남부 조그만 근린시장으로 그다지 주목할 요소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내공(內功)에 놀라게 된다.

송도, 해도동 일대는 신라시대부터 소금을 생산, 유통하던 동해안 제염(製鹽)의 전초 기지였고, 1960~70년대 포항종합제철 태동시기 근로자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터전이었다. 또 바로 옆 지역 최대 물류거점 죽도시장과 함께 포항의 상권을 양분하며, 서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생활경제 현장이기도 하다. 포항에 상업을 일으키고, 물류 전통을 세웠던 큰동해시장으로 들어가 보자.

과거 포항 해도동 지명은 ‘염동골’

신라시대부터 소금 생산 중심지로

1961년까지 年 2000가마 자염 유통

1980년대 상가 들어서며 전통시장으로

주민과 포항제철 근로자들 주요 고객층

술집·칼국숫집·분식집 등 지금도 영업

1970∼80년대 각종 점포들 불야성

IMF이후 동네 상권 급속하게 쇠퇴

상인들 힘모아 전통시장 위기 극복

정부지원사업 선정 등 활력 되찾아

◆해도동 일대는 신라시대부터 소금 생산 기지

고려 무신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이의민(李義旼)의 부친은 경주의 소금 갑부였다고 한다. 경주에 염전이 있을 일은 없고, 그렇다면 이 소금은 포항 송도, 해도동 일대에서 생산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들은 형산강-부조장(扶助場)을 거쳐 경주를 거쳐 영남의 내륙으로 유통된 것이다.

역사가들은 포항 해도동 일대 소금 생산 기원을 신라시대까지 소급하고 있다. 해도동 일대의 미네랄이 풍부한 염수(鹽水), 풍부한 일조량에 형산강 교역루트까지 소금 생산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진흥왕 조(條)’에서도 형산강과 서형산성(西兄山城)에 ‘염고’(鹽庫)가 있었다는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 소금은 단순 생산을 넘어 집하(集荷)-도매-유통을 망라하는 산업 단계까지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은 주로 형산강 뱃길과 보부상을 거쳐 내륙으로 팔려 나갔고 일부 상등품은 왕실에까지 진상됐다고 한다.

과거 해도동의 지명은 ‘염동골’(鹽東谷). 1961년까지 이 지역엔 8만평(26만4462㎡) 정도 소금밭이 경영되었고 100여 명의 염부(鹽夫)가 연간 2000가마를 생산 했다고 한다.

해도동 소금은 전통 방식으로 생산된 자염(煮鹽)으로 염도를 높인 함수를 가마솥에 끓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영양소가 풍부해 서민들의 반찬, 양념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자염은 일제강점기 이후 천일염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송도해수욕장 배후이자, 형산강 하류에 위치한 해도동은 1960년대만 해도 갈대밭, 연밭, 염전으로 이뤄진 저습지대였다. 1968년 포항종합제철이 들어서면서 짧은 기간 내에 주거지역으로 변모했다.

지반이 약한 늪지대라는 핸디캡 때문에 그 흔한 대단지 아파트 하나 들어서지 못했지만, 철강공단과 시가지를 연결하던 길목이라는 입지를 배경으로 해도동은 포항 남부의 대표 주택단지로 부상했다.

1970년대 포항제철 근로자들 자전거 출근 모습.
1970년대 포항제철 근로자들 자전거 출근 모습.

◆1980년도 본격 상가 건물 들어서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포항제철과 철강단지 근로자들이 해도동으로 몰려들면서 1970년대 주택가 공터, 대로변에 노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 남짓 거리에 죽도시장이 있었지만 당장 급한 생필품 조달처가 따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설 장옥(場屋)이나 비닐하우스가 얼기설기 노점 형태로 이어져 오던 시장은 1980년에 들어와 본격 상가 건물을 짓고 전통시장 외형을 갖추게 됐다. 현재 시장 안쪽에 좌우로 늘어선 복합건물이 그 당시 완공된 상가다.

시장은 들어서자마자 꽤 큰 상권을 형성했다. 1980년 당시 해도동 인구만 4만여 명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포항제철, 철강단지 근로자들이 대거 몰려 살면서 시장은 성장을 거듭했다.

1980년대 들어 인근에 갑자기 들어선 아파트도 상권 형성에 큰 도움이 됐다. 1979년 ‘동아아파트’를 시작으로 ‘코스모스빌라’ ‘동부타운’ ‘점보맨션’ ‘명성 송도타운’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뭐니뭐니해도 큰동해시장의 상권에 큰 영향을 끼친 건 포항제철, 철강공단 근로자들이었다.

고(高)임금군에 속했던 이들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주 고객이자, 소비자로 부상했다. 근로자들은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삼삼오오 모여 소주 한잔으로 하루 피로를 풀었고, 귀갓길엔 가족들을 위해 간식이나 선물 꾸러미를 사들고 가는 것이 당시 흔한 풍경이었다.

제철소와 공단 근로자들이 들락거렸던 술집, 칼국숫집, 분식집 등 몇몇 가게들은 지금도 시장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남아있다.

큰동해시장 축제에서 연예인들이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큰동해시장상인회 제공
큰동해시장 축제에서 연예인들이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큰동해시장상인회 제공

◆1980년대 밤샘 장사 예사, IMF 이후 쇠퇴

큰동해시장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였다. 당시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외식이나 쇼핑을 나온 시민들로 넘쳐났다. 발이 밟히고 어깨가 부딪혀 교행이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산업화 시기 막강한 배후 인구와 구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이나 명절 전날에는 새벽까지 손님들이 몰려들어 가족들이 돌아가며 밤새 영업을 하는 것도 당시엔 흔한 풍경이었다고 한다.

시장에서 자전거 점포를 했다는 한 어르신은 “어린이날엔 자전거를 사러 온 손님들이 새벽까지 문을 두드려, 밤새 자전거를 수십대씩 팔았다”며 “그 때는 송도해수욕장 자갈을 가져다 팔아도 장사가 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기억 했다.

40년간 떡집을 운영했다는 한 어르신도 “그땐 정말 명절을 전후해서는 밤새도록 쌀 불리고, 가루 내서, 찌고, 썰고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가족들은 물론 멀리서 친척들 일손까지 불러들여야 겨우 주문을 맞춰 냈다고 한다.

한때 짐자전거를 몇 대씩 둘 정도로 번창했던 전통시장의 위세는 예전 같지 않다. 우선 4만여 명에 달하던 해도동 인구는 1만6000여 명으로 줄면서 유동인구가 급감했고, 공장의 설비 자동화로 많은 근로자들이 해도동을 떠났다. 시장 상권, 외형의 뚜렷한 변화는 1997년 IMF 이후부터였다. 신자유주의가 부상하며 유통업계도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 마을마다 대형마트, SSM들이 생겼고 홈쇼핑 등 온라인 업체들이 들어서며 전통시장 등 오프라인 상권은 급속히 쇠락했다.

큰동해시장 축제에서  펼쳐진 난타공연.
큰동해시장 축제에서 펼쳐진 난타공연.

◆‘문광형 시장’ 등 선정되며 상권 활성화

갈수록 위축되는 전통시장의 위상, 상인들도 대안 모색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상인회에서는 먼저 전통시장 정부 지원사업에 주목했다. 우선 예산과 행정지원이 있어야 상인회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큰동해시장은 정부 지원사업 첫 번째 단추인 ‘특성화 첫걸음’(2018년)에 선정되면서 상인들은 큰 자신감을 얻었다. 내친 김에 2019년엔 ‘도약 단계’인 ‘문화관광형 시장’에 응모했다.

까다로운 심사 조건 때문에 선정이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철의 기상, 운하의 낭만’을 컨셉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평가를 받아 문광형 시장에 선정돼 예산(10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상인회는 2021년 ‘문화관광형 시장’에 또다시 선정되면서 상인회 활동에 연속성을 갖고 활발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상인회의 저력을 보여주는 쾌보(快報)는 계속 이어졌다. 전국에 5곳만 지정해 지원한다는 ‘카카오 전통시장’에 선정되는가 하면, 상거래 IT 정책을 지원하는 ‘디지털 전통시장’에도 뽑혔다. 이런 예산 지원과 정부 지원을 배경으로 상인회는 많은 활성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국 최초로 ‘고객회원제’를 실시했고, 모바일 장보기 앱 ‘달려라 큰동해’ 사업을 펼쳤다. 매주 토요일엔 ‘세일거리’가 열리고 매주 마지막 주는 ‘고객 회원 할인 주간’이 운영된다.

또 큰동해시장 만의 특산품, 밀키트 등을 개발하고 지역 대표상품인 과메기, 대게 전국배송을 통해 상인들의 수입을 늘린다는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김병석 상인회장은 “각종 시장 활성화 사업을 통해 시장의 매출이 30~40% 이상 상승했고 상인,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 이라며 “이 모든 성과는 삶의 터전인 시장을 살려 보자고 팔을 걷어붙인 상인들의 노력, 희생, 협조 덕”이라고 강조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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