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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제강점기·근대에 이르기까지 포항 도심 상권 요충지

한상갑기자
등록일 2024-12-19 18:41 게재일 2024-12-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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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전통시장을 가다] 영일대북부시장
1970년대 후반 영일대 북부시장 모습. 당시만 해도 일본식 적산가옥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포항시 제공

영일대 북부시장(이하 북부시장)은 포항의 상업과 전통시장 역사뿐만 아니라 인문학, 건축, 음식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공간이다. 포항 도심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데다 단순한 상업 공간 외 역사, 문화 등 인문학적 요소도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구룡포와 함께 일제강점기 식민지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블랙 투어리즘’ 코스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북부시장을 들여다보는 목적이나 시각에 따라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4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대신동’(大新洞)이라는 지명이고, 둘째는 동빈내항과의 관계, 셋째는 등 푸른 생선, 마지막은 물회다. 물론 이 네 개의 코드로 북부시장 전체를 조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이 얼개들을 잘 조합해 시장의 실체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북부시장 인근 대신동·나루끝 일대

조선시대부터 상업·물류·유통 중심지

동빈내항 끼고 해양물류·수산기지 도약

일제강점기엔 일인 집단 거주지로 번창

1960년대 위판장 개설, 당시 최대 상권

활어 활용한 막회·물회, 전국구 요리로

한때 TV에 소개되며 식당마다 장사진

‘막회특화거리’ 지정되며 전국 관광지로

◆나루끝 일대는 상업, 물류 중심지

북부시장 인근에 있는 나루끝(나루터) 지역은 일찍부터 흥해와 영일 경계에서 육상, 해상 교량 역할을 담당했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영일만 어촌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 나루끝을 거쳐 내륙으로, 또 육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바닷가로 운반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 전기 나루끝 근처에 포항 지역 유일 ‘국립호텔’인 여천원(余川院)이 들어선 것만 봐도 현재 대신동 일대가 교통, 상업, 행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흥해와 포항장이 서던 중앙동(남부) 사이에서 교통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나루끝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다시 한 번 발전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일제는 1908년 ‘한일어업협정’ 이후 본토민의 조선 이주 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는 데, 1920년대 이후 포항에 일본인들의 조선 이주가 본격화 된다. 이들은 주로 여천, 중앙동 일대에 모여 집단거주지, 상권을 형성했다. 당시 포항의 중심이었던 중정(仲町), 본정(本町)과 북부시장 근처 동빈정(東濱町)에도 일인들의 집단촌, 상가가 형성됐다. 특히 일인들은 이 일대를 ‘큰 터에서 새롭게 일어난 동네’라 해 대신동(大新洞)이라고 명명했다. 새 지명까지 지어가며 이 지역에 정착한 것은 그만큼 자신들이 이 지역 거주에 큰 의미를 두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일인들의 포항 거주가 식민지 경제 침탈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시장 역사 측면에서는 상업과 유통, 물류를 일으키는 큰 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1955년 영일대 북부시장 개장식 모습.  /포항시 제공
1955년 영일대 북부시장 개장식 모습. /포항시 제공

◆포항의 해양 물류, 어업 중심 동빈내항

1872년 제작된 ‘포항진지도’(浦項鎭地圖)를 들여다보는 것도 재밌다. 지도상으로 보면 현재 나루끝, 대신동 일대에 포항창진(浦項倉鎭)의 진지가 구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진’은 조창(漕倉), 세곡(稅穀) 등 호조(戶曹)의 재정 기능과 군사 목적의 진(鎭)이 복합된 관청이다. 1749년 영조 최악의 기근 때 구휼(救恤) 목적으로 설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동해안 지역을 제치고 포항에 창진이 설치된 것은 영일만 일대가 동해안 해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이 포항창진의 전통을 이어받은 곳이 바로 북부시장이 위치한 동빈내항이다. 동빈내항은 1917년 ‘지방항’으로 지정되면서 1930년대 포항의 수산, 해양 물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또 동해안의 풍부한 어족자원을 바탕으로 청어, 정어리, 오징어, 가자미, 꽁치, 멸치 등 수산기지로도 이름을 떨쳤다.

일제강점기 경제 침탈 기지로, 한국 전쟁 당시 전략상 군사항구로 기능하던 동빈내항은 1953년 휴전 이후 다시 동해안 상업·물류기지, 어업 전진기지로 크게 번창했다.

6·25 전쟁 직후 동빈내항, 형산강 일대에는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전후(戰後) 일자리와 음식이 나름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 난민 라인은 동빈내항-죽도시장-연일 부조장 등으로 이어졌는데 그중 동빈내항 북부시장 근처 난민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위판장 들어서며 한때 포항 최대 시장으로

북부시장이 포항 도심 주류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는 1960년대 수협위판장이 시장 인근에 들어서면서부터. 위판장이 들어서면서 영덕, 흥해, 감포 등 동해안 일대에서 잡은 모든 활어, 수산물들이 북부시장으로 몰려들었다.

“1960년대 북부시장은 생선을 실은 나무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사이를 상인, 장꾼, 어부, 일꾼들이 하루 종일 북적거렸습니다. 시장에는 온종일 활어들이 넘치고 가판, 식당마다 손님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죠.”

북부시장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는 상인회 이성관 회장은 60여 년 전 북부시장 풍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장 한 켠엔 고래고기 경매장(현 롯데백화점 근처)까지 들어섰다고 하니 그 규모와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특히 북부시장의 설립(1955년)은 죽도시장보다 6년이나 빨라 당시 북부시장이 포항의 북부 상권의 핵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부시장의 중개, 도매, 위판시설 입지는 상권만 키운 게 아니었다. 위판장에서 쏟아지는 생선들, 어선에서 갓 잡아 올린 활어들을 이용한 음식들이 다양하게 개발됐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시장을 들락거렸다는 한 어르신은 “당시엔 가판에서 선어(鮮魚)는 물론 활어들을 막 썰어서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고급 횟칼로 활어 결을 따라 ‘한점 한점’ 써는 방식이 아닌 지느러미와 껍질만 대충 날리고 부엌칼로 막 썰어 파는 요리였다. 이 요리가 현재 북부시장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등푸른생선막회’의 출발이었다. 이 막회는 북부시장의 메인요리로 자리 잡으며 명성을 쌓아갔다.

막회 이후 북부시장의 미식(美食) 계보를 이어 받은 요리는 물회였다. 1960년 ‘새포항물회식당’에서 개발되었다는 물회는 큰 인기를 얻은 후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 회장은 “옛날 뱃사람들이 조업 중에 잡은 생선들을 고추장에 비벼 먹었는데, 이를 좀 더 빨리 먹기 위해 물을 부었던 것이 물회의 유래”라고 설명했다. 이 작은 발상의 전환은 포항을 ‘맛의 도시’ ‘미식의 도시’로 부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영일대 북부시장 안에 있는 회센터 모습.
영일대 북부시장 안에 있는 회센터 모습.

◆한때 TV에 소개되며 수십미터 장사진

반세기 동안 포항 북부 상권의 중추를 담당하던 영일대북부시장은 2006년 포항 시청사가 남구 대잠동으로 이전하면서 상권이 급속히 위축됐다.

급격한 상권의 위축 속에서 생존전략으로 등장한 것이 ‘등푸른 막회 특화거리’였다. 당시 막회거리를 기획했던 이성관 상인회장은 “40~50년 전 시장 노점, 가판에서 맛있게 먹었던 막회를 특화요리로 개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며 “마침 포항시에서 행정, 재정적으로 도움을 줘 빛을 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막회거리는 2016년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이어 수요미식회, 생생정보통 등 TV에 소개되면서 전국 미식거리로 데뷔했다. TV 방영 이후 골목엔 수십미터씩 대기 줄이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고 덕분에 주변 횟집에도 손님들이 모여들어 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TV 방영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시장엔 아직도 막회, 물회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TV 방영 시점만은 못하지만 포항 물회, 막회에 대한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 인지 아직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북부시장이 전국적인 맛집 거리로 도약한데는 TV, 매스콤의 소개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 바탕에는 수많은 시장의 부침 속에서 자리를 지켜온 아낙네들과 물회, 막회라는 메뉴를 꾸준히 지켜온 횟집 상인들의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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