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전통시장을 가다-대해불빛시장
양학시장, 큰동해시장, 북부시장, 죽도시장….
포항 도심에는 많은 전통시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장들은 1970~90년대 도심 유통, 상업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서민, 생활경제를 지탱하는 든든한 배경이었다. 포항에서 도심 시장의 등장을 논할 때 1980년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우리 일상에서 전통시장은 늘 우리 주위에 있어 왔기에 매 순간, 매 시기가 중요했겠지만, 이 시기(1980년대)에 이르러 전통시장은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뭘까. 1980년대 전통시장이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이유는? 학자들은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첫째 이유로 든다. 인구 팽창은 국민 수의 양적(量的) 증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의식주 등 생활필수품의 급격한 수요 증가를 뜻하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 되고,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민소득이 급속히 높아진 점도 시장과 유통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늘어난 소득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쇼핑이나 외식 문화 수요를 급속히 신장시켰고, 이런 흐름이 전통시장 발전으로 연결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등식에 정확히 일치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포항대해불빛시장’(이하 대해시장)이다. 설립 시기도 1981년이고 앞에 열거한 여러 요인들과도 정확히 겹친다. 1980년대 대해시장이 어떻게 포항 남부 도심의 주요 상업, 유통거점으로 부상했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자.
1970~80년대 해도·상대동 인구 급증
1968년포철 들어서며 주민소득 신장
1981년 생필품 조달위해 대해시장 건립
1980년대 온종일 북새통, 최고 전성기
‘큰바다’ 이름처럼 각종 점포 100곳 입점
상인회 가입률 98%… 단결·유대감 자랑
‘상인대학’ 진행하며 상인들 의식 변화
점포 이익보다 시장 전체 비즈니스 우선
내년 ‘문화관광형 시장’ 선정역량 집중
◆1970∼80년대 해도동, 상대동 인구 급증
우선 대해시장의 공간적 근거가 되는 해도동과 상대동의 인구 변화에 주목해 보자. 1985년 해도동의 인구는 4만1000명, 1990년 상대동의 인구는 4만6000명에 이른다. 두 지역의 인구 합계는 웬만한 지방 소도시를 초과하는 규모다. 현재 해도동 인구가 1만6000명, 상대동 2만6000명이니 당시 인구 밀집도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해도동, 상대동 인구 증가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자료가 있다. 바로 1970~90년대 이 일대에 들어선 아파트, 연립주택들이다.
연도 별로 살펴보면 △동아아파트(1979년) △상대주공아파트(1981년) △해도대보아파트(1982년) △반도맨션(1984년) △대명뉴타운맨션(1984년) △금강맨션(1985년) △명성제2광장(1987년) △태양아파트(1988년) △신흥주택1차(1988년) △대림힐타운(1988년) △학산타워(1989년) △현대종합금속사원아파트(1989년) △선화아파트(1990년) △상록수아파트(1990년) △명성해도타운(1990년) 등이다.
대략 헤아린 것만 해도 15개가 넘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고층 아파트나 대단지 규모는 아니지만 이들 주택들이 시장 근처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면서 유동인구와 시장 수요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68년 포항제철의 설립과 1973년 용광로의 가동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철강산업의 발달은 포항의 경제를 수직적으로 끌어올렸고, 안정된 일자리와 고임금 근로자를 발생시켰다.
◆대해불빛시장의 정식 설립과 발전
대해시장의 정식 설립은 1981년으로 기록돼있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와 원로 상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1970년대 이미 시장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인연합회 김하일 회장은 “마을 어르신들 증언에 의하면 1970년대 이미 노점 형태의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고 말한다. 아마 허름한 장옥(場屋)과 가건물 위주의 점포들이 상가를 형성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 들어와 부쩍 비대해진 상대동, 해도동 일대의 인구나 경제규모는 기존의 노점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포철 근로자들이 이 일대에 대거 입주하면서 생필품 수요가 증가하자 포항시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생활근린형 시장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대해시장은 여타의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 가장 붐볐는데 가게마다 손님으로 물결을 이뤄 교행이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구내식당이나 학교 급식시설이 없어 직장이나 학교에서 식사를 모두 도시락으로 해결하던 때였다. 이에 주부들은 오후가 되면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으로 나왔는데, 마침 학생들 하교 길과 겹쳐 시장이 북새통을 이뤘다는 것.
대해불빛시장은 2019년까지 대해종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2020년 ‘포항국제불빛축제’를 계기로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당시 불꽃축제장이 시장과 가장 가까웠고 포항시의 대표 야경 명소인 포스코가 500여m 거리에 있어 이런 이미지를 시장과 접목하기 위한 시도였다.
‘큰 바다’라는 이름처럼 시장 내에는 다양한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각종 채소, 금은방, 생선점, 옷 가게, 분식점 등 100여 개의 점포가 구색을 맞추고 있다.
대해시장은 상인들 특유의 단결력과 끈끈한 유대감으로 유명하다. 98%를 웃도는 상인회 가입률이 이를 입증한다. 김하일 상인회장은 상인들 의식의 큰 변화 계기를 ‘시장첫걸음 사업’ 때 진행했던 ‘상인대학’을 든다.
“나만 성실하게 일하고 좋은 물건 싸게 팔면 장사가 잘되겠지. 하던 상인들이 자신의 점포보다 ‘시장’이라는 더 큰 틀에서 상업을 이해하기 시작한 거죠. 상인회가 단결해 시장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 이벤트를 진행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가치와 이미지를 올려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게 된 것입니다.”
변화된 상인들이 ‘무언가 한 번 해보자’고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면서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현재 시장에선 카드 단말기 설치, 온라인 결제, 원산지 표시제, 가격 표시제는 기본이고 구획선 지키기 등 질서들이 잘 유지되고 있다.
특히 2020년에는 전국 전통시장 우수 시장에 선정되었고, 중소벤처부 장관상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상인회의 단합과 문화 공간 조성의 비전
상인들의 단결과 높은 상인회 가입률은 시장 활성화에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결집을 바탕으로 상인회는 다양한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정기적인 봉사활동은 물론 플리마켓과 바자회 등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행사들도 열고 있다.
특히 상인회는 향후 시장 내 120평 유휴공간에 대형 문화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공간이 완성되면 각종 축제 행사와 버스킹, 바자회, 경로잔치, 심지어 연예인 초청공연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대불빛시장을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김 회장은 대해시장을 한마디로 ‘정(情)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또 인심과 활력이 넘치고 저렴한 가격에 모든 종류 상품을 원스톱으로 구매할 수 있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장점이 골고루 갖춰진 곳이라고 자랑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는 대해시장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현재 상인회는 ‘문화관광형시장’ 공모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정부에서 전통시장의 대표상품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공모에 선정되면 연간 5억원 정도 정부지원금을 확보하게 돼 시장 환경 개선, 건물, 가로 정비 등 상인회 활동에 탄력을 받게 된다.
이제까지 포항의 도심시장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대해시장이 이번 ‘문광형시장’ 선정을 계기로 포항의 전통 상업 공간, 시민 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