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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점포에 반찬가게·분식점이 절반 ‘상도동의 부엌’ 별칭

한상갑기자
등록일 2025-01-02 18:45 게재일 2025-01-0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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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전통시장을 가다] 남부종합시장
남부시장 ‘한가위 축제’ 모습. /남부시장 상인회 제공

보통 전통시장의 상권 형성과 특징은 주변 환경, 입지적 특성에 따라 결정된다. 도축장 주변 시장에 돼지국밥집이 성행하고, 큰 공장이 있는 곳에 식당, 주점이 번창하는 원리다.

보통 도심에 시장이 들어섰다면 대부분 주변 주택가 주민들의 외식 장소나 생필품 공급처로 기능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통념에서 크게 벗어난 곳이 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할 남부종합시장이다. 상도동 일대에 들어선 남부시장은 점포 50여 곳의 도심 미니시장이다. 당연히 인근 주민들의 수요를 반영한 식료, 생활용품, 식당, 잡화점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전체 상가의 절반 정도가 반찬가게, 분식점이었고 나머지도 식재료 관련 숍이 대부분이었다. 진열대마다 가득 쌓여 있는 반찬들이 시장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단일 업종이 시장 점포의 절반을 넘는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드물다고 한다.

‘상도동의 부엌’‘대도동의 주방’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남부시장을 돌아봤다.

 

1989년 50여 점포 미니시장 출발

10여년 전 반찬가게들 들어선 후

지금은 점포 절반 이상이 반찬점

‘상도동의 부엌’ ‘대도동 주방’ 별명

핵가족 시대 특화된 반찬세트 개발

포항시 전역은 물론 전국에 배달도

반찬 점포들로 특화된 남부시장 내부 모습.
반찬 점포들로 특화된 남부시장 내부 모습.

◆1970∼80년대 상도동 일대는 갈대밭 무성

포항 도심에 전통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갑작스런 인구의 증가와 국민 소득이 늘어나면서 시장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남부시장의 설립연도는 1989년으로 대체로 이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런 ‘일반 등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1980년대 상도동은 미개발 지역으로 인구 밀집 지역이 아니었다. 1970~80년대 이 일대는 형산강변의 늪지, 억새 숲이 무성하던 뻘밭이었다고 한다.

황무지처럼 방치되던 이 일대에 시외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며 차츰 교통의 거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89년 근처에 대왕예식장(지금은 없어짐)이 들어서며 상도동 일대는 포항 남부의 교통, 상업지역으로 변신을 거듭해 갔다.

그러니까 남부시장은 1980년대 주민들 필요에 의해 들어선 행정시장, 관(官)주도 시장이 아니라 상인들 스스로 골목상권을 일으켜 도시와 함께 성장한 자립형 시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때마침 주변에 ‘쌍사’(쌍용사거리) ‘빠사’(빠리바게트 사거리) 같은 번화가들이 들어서며 시장 주변은 주점·음식점, 유흥거리, 젊음의 거리로 변모해 갔다.

상인회 임종진 회장은 “1980년대 도심 주변의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이렇게 번화한 상가가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며 “시장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없음에도 일찍부터 상업의 요지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이 지역이 포항의 남북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교통의 요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포항시 남구 상도동에 위치한 남부종합시장은 반찬가게로 특화된 시장으로 유명하다. 50여 곳 점포 중 절반 이상이 반찬가게, 분식집, 식재료 점포로 구성돼 있다.  /한상갑기자
포항시 남구 상도동에 위치한 남부종합시장은 반찬가게로 특화된 시장으로 유명하다. 50여 곳 점포 중 절반 이상이 반찬가게, 분식집, 식재료 점포로 구성돼 있다. /한상갑기자

◆1989년 상도동 생필품 공급시장으로 출발

남구 상공로 220에 포항상공회의소가 들어선 것은 1984년. 당시 포항시는 건물 앞을 지나가는 도로에 특별히 ‘상공로’라는 이름을 따로 붙여 지역 상공업의 발전을 염원했다.

그 기원에 부응해서인지 상공회의소 일대는 상업지대로 크게 번창했고, 그 위세를 업고 남부시장이 들어서게 됐다.

초창기 시장에는 채소, 생선, 정육점, 옷·신발가게, 분식집, 잡화점 등 생활용품 위주로 점포가 구성됐다.

시장 주변에 터미널, 예식장, 시장이 들어서면서 상도동 일대에 아파트 단지와 학교, 관공서, 금융기관들이 들어서며 상권도 확장됐다.

먼저 상대동행정복지센터, 대한노인회포항시지회, KBS포항방송국, 포항시대도관, 시립영암도서관 포항실버카페, 포항종합사회복지관, 농협, 신흥초등학교, 상도중학교, 대도중학교 등 각급 학교, 관공서들이 들어섰다.

각종 관청의 입지로 거주, 생활 여건이 좋아지면서 아파트들도 줄지어 입주를 시작했다. 현림VIP맨션, 상도신성펠리스, 명성대도타운, 동해삼미아파트, 홍안빌라, 청운아파트, 대흥빌라, 아이팰리스 1·2차, 민들레아파트, 상도 2차 세미아트리움 등이 시차를 달리하며 둥지를 틀었다.

남부시장 상가는 50여 곳에 불과하지만 시장 주변의 가로(街路) 상권도 상당히 활성화돼 있는 편이다. 시장 주변 200여 점포들은 시장과 상권을 공유하며 활발하게 상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남쪽으로 600여m 거리엔 남구청, 포항종합운동장, 차량등록사업소, 포항문화예술회관, 뱃머리마을문화숲 등 남구청 행정관서들이 두텁게 포진해 있어 시장의 주요 고객 및 단골층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 내부 모습.
시장 내부 모습.

◆핵가족, 1인가족 시대 맞는 반찬세트 개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십여 년 전 서너집이 반찬 가게를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되니까 주변 여러 점포들이 따라 하면서 골목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임 회장은 반찬거리 형성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장을 다녀간 블로거, 시민들은 다양한 후기를 남겨 놓았는데, 이런 기록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찬 가게들의 성공 이유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블로거들이 주목한 건 소량 다품종 세트의 개발과 저렴한 가격. 1인 가구 증가 시대를 맞아 시장 수요에 대응하는 적절한 전략으로 풀이 된다. 시장에서 만난 한 주부는 ‘5분 상차림’ ‘반찬 8종’ ‘국·반찬 세트’ 같은 가족 맞춤형 상품들이 다양하게 준비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도심 속 생활 밀착형 시장을 콘셉트로 한 핵가족 시대를 공략한 것이다.

저렴한 비용 역시 주부들이 시장을 자주 찾는 이유다. 주말 부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직장인 여성은 “식재료를 다 사서 반찬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더 든다”며 “반찬가게를 찾는 것이 시간도 아끼고 입맛에 맞는 반찬을 직접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찬가게들.
시장의 반찬가게들.

자취를 한다는 한 남성은 “3~4일치 반찬을 위해 시장에 나왔는데 연근조림, 미역줄기볶음, 육전, 육개장을 다 합쳐도 2만 원 안쪽에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메뉴 조리법의 연구와 밀키트 개발 등 다양한 전략도 손님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현재 몇몇 점포에서는 닭발·닭갈비,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같은 반(半) 조리식품을 개발해서 팔고 있다. 편의점, 온라인에서 파는 밀키트 제품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한 반찬가게 주인은 “반조리 식품팩은 단돈 1만원으로 소비자들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가격”이라며 “메뉴도 한·중·일식을 모두 갖춰 다양한 입맛에 맞추었다”고 설명했다.

몇몇 점포는 이런 인기를 배경으로 포항시 전역은 물론 전국에 택배서비스도 해주고 있다. 택배로 30~40% 매출을 올린다는 한 주인은 “10년 넘게 가게를 하다 보니 단골들이 생겨 이젠 배민의 ‘반찬 배달 맛집’에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포항시 전통시장 관계자는 “강경젓갈, 영광굴비나 수산시장처럼 지역 특산물과 관련된 시장이 전문상가를 형성하거나 점포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는 많지만, 일반 도심시장에서 특정 아이템이 점포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라며 “전통시장 행태, 유통 역사 측면에서 남부시장은 특별한 사례로 연구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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