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전통시장을 가다-연일시장
포항에서 고대사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근기국’(勤耆國)의 실체다. 3~4세기 동해 소국들이 신라에 복속되기 전 포항에는 바로 근기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소국의 실체에 대해선 자료에 간헐적으로 등장하고, 체계화된 연구도 없어 각종 사료에 편린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철기시대를 막 벗어날 무렵 국가 단계는 아니지만 꽤 큰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은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해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근기국의 위치에 대해서 학계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연일설(延日說)’이 다수설로 인정받고 있다. 연일은 지금 포항 남부의 소도시로 큰 존재감이 없지만 연일이야말로 한때 일개 국가를 일군 터전, 왕경 터였다는 사실만으로 도시 자존심을 세우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오늘 방문할 포항의 전통시장은 바로 이 근기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민들에게 생활 경제를 펼치고 있는 연일시장이다. 옛 왕조의 터에 시장을 열어 서민 경제를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연일시장으로 들어가 보자.
연일·오천읍 일대는 근기국 왕경 터
고대부터 영남·동해안에 세력 형성
조선시대 3대시장 부조장 전통 계승
전라·경상도 교역로 중요 거점 역할
매년 ‘부조장터 문화축제’ 열어 기념
1968년 주민 생필품 조달위해 개장
1970년대 장날 발디딜 틈 없이 북적
인구 감소·대형마트 등장 상권 위축
특성화 사업 추진 시장 활성화 모색
◆근기국 왕경 터는 오천, 연일읍 일대
다음은 연일 지역과 근기국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사학계에서는 근기국의 왕경터를 옥성리고분군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왕족, 귀족의 대규모 장례시설이 있는 곳이면 그 일대가 수도 기능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대표적인 분이 향토 사학자 배용일 전 포항문화원장이다. 배 원장은 근기국의 읍터를 오천읍 고현리(현재 원리, 원동) 일대로 보고 있다.
이곳은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과 냉천 사이 중심에 위치해 있고, 동해와 내륙을 잇는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배 원장은 근기국이 바로 이 고현, 연일읍, 오천읍, 대송면 일대에 왕경을 형성했다고 보고 있다. 고현성 반경 5km 내 고분군, 지석묘, 건물 터 등이 집중 분포한 점도 소국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근기국은 기원전을 전후한 시기에 소국을 형성했다가 신라가 동해 남부 맹주로 부상하면서 주변의 약소국들을 병합할 때 압독국(경산), 골벌국(영천) 등과 함께 경주 세력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근기국 멸망 당시 신라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연오랑세오녀의 스토리는 다음 오천시장 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조선 동해 3대시장 부조장 전통 계승
연일은 동쪽으로 포항시와 철강산업단지를, 서쪽으로는 경주시 강동면, 남쪽으로는 대송면 공수리, 북으로는 학전-달전리와 접하고 있다. 옛날부터 교통이 발달해 조선시대 역원(驛院)의 하나였던 대송역(大松驛)이 장기를 거쳐 경주와 연결되었고, 형산강의 옛 포구를 이용한 해운도 크게 성했다.
삼국시대부터 지금의 시군격인 현(縣)이 설치됐고 한말엔 8면(面) 102개 리(里)를 거느릴 정도로 읍세를 자랑했다. 근대 기록에도 ‘현청(縣廳) 북쪽에 큰 어시장이 있어 동해안의 관문 역할을 했다’고 나와 있다.
지금도 전체 지도를 보고 놓고 볼 때 지리적으로 포항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혹자들은 철도를 형산강 남쪽으로 유치했다면 연일이 포항시 중심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시청사가 있는 대이동, 포항공대가 있는 효곡동이 모두 연일의 관할이었을 정도다.
연일시장과 관련해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부조장’(扶助場)과 관계다.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불리며 동해안 유통, 상업의 중심지였던 부조장은 현재 경주와 포항의 경계인 경주시 강동면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경상도 읍지에 의하면 ‘영일만, 형산강 지역엔 윗 부조장과 아래 부조장 두 곳의 장시(場市)가 개설되었다. 아랫 부조장은 연일읍 중명리 일대에서 1750~1905년까지 융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부조장터에서는 함경도 명태, 강원도 오징어, 포항의 청어·소금을 내륙에 팔고, 전라·경상도의 농산물을 교역하는 등 상거래의 요지 역할을 했다.
부조장의 상권과 전통은 연일시장으로 이어져 300년 가까이 그 상맥(商脈)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 자체로도 포항 경제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1970~80년대 장꾼, 우마차, 리어카 북적
연일시장이 개장한 건 1968년으로 인근 죽도시장의 설립과 비슷한 시기다. 당시 연일읍의 인구가 20만 명이었으니 생필품 조달지로써 시장이 절실하던 때였다.
당시 형산강 이북 포항시의 인구가 6만 명에 불과했으니 유동인구는 오히려 연일시장이 많았던 셈인데, 당시 죽도시장은 신도시 개발붐을 타고 포항의 대표시장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다. 어쨌든 두 시장은 1960년대 포항의 신, 구도심을 양분하며 형산강의 남북에서 전통시장 상권을 주도해 갔다.
인구 팽창에 따른 사설(私設) 시장으로 영업을 계속 해오던 연일시장은 2011년에 들어와서야 포항시가 인정하는 관인(官認)시장으로 인정 받게 된다.
1905년까지 부조장의 상권과 전통을 이어받은 덕에 1970~90년대 연일시장은 여타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전성기를 이뤘다.
“당시 장날엔 나뭇짐, 장작부터 토끼, 닭, 오리, 한약재까지 모든 물산들이 시장에서 거래됐습니다. 농민들은 집에서 재배한 배추, 무 등 각종 채소와 참외, 수박, 복숭아 등 각종 과일을 광주리에 실고와 팔고는 옷, 농기구, 신발 등 공산품과 바꾸어 갔습니다.”
조영만 상인회장은 1970~90년대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장날 지게꾼, 짐꾼, 리어카, 우마차가 몰려들어 난전을 통과하는데 큰 애를 먹었지만 당시엔 그게 시장 풍경이었고, 장터의 낙(樂)이었다.
한때 포항 상권을 양분할 만큼 큰 위세를 자랑했던 연일시장의 현재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우선 이농현상으로 인해 유동인구가 줄었고, 특히 젊은층의 전통시장 외면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4~5곳이나 들어선 대형마트, SSM, 연쇄점 등도 전통시장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죽도시장이 위치해 주민들 상당수가 연일대교를 건너 큰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조영만 상인회장은 “주민들이 지역 시장을 외면하고 타지로 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분들의 발길을 붙잡아 두는 것이 절실한 과제”라고 말한다.
이에 상인회에서는 3, 8일에 열리는 전통오일장에 큰 기대를 걸어 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유동인구가 적으니 노점상들이 잘 오지 않고, 거래가 시원찮으니 한두 번 오던 행상들도 다른 곳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부추 먹거리 개발 등 특성화 사업 추진
현재 연일시장은 3만여㎡ 부지에 150여개 점포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상인회는 2015년 ‘1시장 1특색’의 특화사업을 육성하는 ‘골목형 시장’에 선정돼 지역 특산물 먹거리 특성화 사업을 진행했다. 상인회는 연일의 특산품인 부추, 시금치와 연계한 음식, 식품을 개발해 먹거리 골목을 조성했다.
“옛날 연일은 전국 부추시장의 20%를 점유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이에 상인회에서는 부추전, 부추통닭, 부추국, 부추빵, 부추두부 등 먹거리를 개발해 관광객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조 회장은 시장 특성화 사업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또 매년 10월에 형산강 둔치에서 열리는 ‘연일 부조장터 축제’도 상인회가 역점을 두는 행사다. 연일시장 정체성의 근거, 상권의 뿌리가 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시장을 대표하는 축제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시장은 현재 주차장 편의시설 확충과 입간판 정비 등 시장 현대화 작업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시민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고대에 근기국의 왕경 터를 이루고, 근대에 부조장 터의 상권을 이어받은 연일시장이 포항 남부의 유통, 상업 도시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