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동화를 쓰는 아동문학가 김일광<br/><4>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의 안과 밖
김일광 작가는 윤봉길, 윤선도, 링컨 등 역사적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써왔다. 그뿐 아니라 포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인물들, 이를테면 근대 한의학의 선구자인 석곡 이규준,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 의병장 최세윤, 동남제도 수호검 배상삼, 인간 상록수 재생 이명석 등에 관한 책을 펴냈다. 작가는 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꾸준히 다뤄왔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들어보았다.
2014년 일본의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스기하라 유미코(杉原由美子)가 『메치가 있던 섬』이라는 동화책을 냈어요. 이 책은 강치(‘메치’는 일본 지역 방언)와 일본 어린이들의 우정을 다뤘는데, 독도 인근의 강치가 한국 어부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되었다는 거짓말을 담고 있습니다.
독도 주변에는 오징어를 비롯하여 물고기들이 참 풍부합니다. 그래서 강치는 오랜 옛날부터 독도에 자리를 잡고, 울릉도나 동해안 뭍에서 고기잡이하러 오는 어부들과 평화롭게 살아왔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던 20세기 초부터 일본 어업회사가 고기와 기름, 가죽을 얻으려고 강치를 무참히 죽였습니다.
이희정(이하 이) : 선생님은 역사 속 인물, 특히 우리 지역의 인물 이야기를 계속 쓰셨습니다. 그중에는 산남의진 의병장 최세윤도 있지요.
김일광(이하 김) : 산남의진 의병장 최세윤 이야기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2021년 현북스에서 출판되었는데 최세윤의병대장기념사업회가 있지만 이 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시 의병들이 흥해 사람인데도 말이지요. 기념사업회 사업도 지지부진해서 안타까워요. 흥해 지진 복구 사업으로 주민종합시설을 건립하고 있는데, 여기에 최세윤기념관과 포항시 의병기념관을 세우면 좋겠습니다.
나라마다 나름대로 자랑거리를 갖고 있다. 나에게 우리나라 자랑거리를 들라면 가장 먼저 ‘시민사회’를 꼽고 싶다. 어떤 사람은 짧은 기간 안에 우리가 시민사회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세우려는 노력을 쉼 없이 펼쳐왔음을 볼 수 있다.
- 김일광, 「작가의 말」, 『산남의진 의병장 최세윤』, 현북스, 2021.
이 : 포항 장기면은 송시열과 정약용 등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는데요, 장기에 조선시대 군마 목장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김 : 2011년에 발간된 『조선의 마지막 군마』(내인생의책)도 공을 많이 들인 책이었습니다. 《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이라는 잡지에서 권두 좌담으로 일제강점기 구룡포 장기목장이 폐목되는 과정과 구룡포와 호미곶 일대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동문학 평론가 김혜원은 「치열하고 성실한 글이 주는 즐거움」라는 글에서 김일광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야기의 한 축인 장기목장을 포함한 영일만, 포항, 구룡포 일대에 대한 일제 침략 과정은 작가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매우 견고하게 전달된다. 조선에 군마를 훈련시키는 장기목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훈련받던 많은 말이 일본군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포항 토박이다. 그는 이미 발표한 『귀신고래』나 『강치야, 독도 강치야』 같은 책에서, 향토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이 책 『조선의 마지막 군마』도 그런 맥락에 기반을 두었다.
군마를 키우던 장기목장은 일제 침략 이후 황폐해져 말의 도망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산성의 흔적만 남겨놓고,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작가는 이렇게 사라진 기록을 찾기 위해, 당시 생존자들을 만나 그들의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고금산에 말뚝이 박히며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 일본 배의 침몰과 등대 건설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기억에 의해 사실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자기가 있는 땅에 대한 애정, 사실에 기반을 둔 조사의 철저함, 그것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은 열정이 이 작가의 강점이다.
이 : 선생님의 작품에는 역사적 인물과 이야기 속 주인공이 공존하는데, 지역사의 자료로도 가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김 : 『바위에 새긴 삼봉이』(봄봄출판사, 2017)는 장한상 수토사(搜討使)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울릉도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며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확보했지요. 동화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는 기행문 형식으로 『독도 가는 길』(현암사, 2017)이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이 : 울릉도와 독도 이야기를 풀어낸 동화 중에 강치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김 : 2014년 일본의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스기하라 유미코(杉原由美子)가 『메치가 있던 섬』이라는 동화책을 냈어요. 이 책은 강치(‘메치’는 일본 지역 방언)와 일본 어린이들의 우정을 다뤘는데, 독도 인근의 강치가 한국 어부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되었다는 거짓말을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이 책의 전자도서를 전국의 초·중학교에 배포한 것은 물론,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지요. 제가 『강치야, 독도 강치야』(봄봄출판사)를 2010년에 냈는데, 2019년 우리 외교부에서 영문판 『Where are you, Gangchi』 3000부를 발행해서 외국 주재 한국어학당이나 교포 단체에 배포했습니다. 동화를 통해 독도 분쟁이 점화된 사례지요.
독도 강치는 독도를 중심으로 우리 동해에서 살았던 바다사자의 한 종류입니다. 독도 주변에는 오징어를 비롯하여 물고기들이 참 풍부합니다. 쉴 자리도 있어서 그야말로 강치가 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요. 그래서 강치는 오랜 옛날부터 독도에 자리를 잡고, 울릉도나 동해안 뭍에서 고기잡이하러 오는 어부들과 평화롭게 살아왔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던 20세기 초부터 일본 어업회사가 고기와 기름, 가죽을 얻으려고 강치를 무참히 죽였습니다.
- 『강치야, 독도 강치야』, 봄봄출판사, 8쪽, 2010.
이 : 등단 40년을 맞은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김 : 가수 송창식은 매일 네 시간씩 기타를 잡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저도 매일 원고를 쓴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감일을 넘긴 적이 없어요. 항상 작품을 쓰고 있기에 언제든 보낼 수 있어요. 이오덕 선생한테서 정신적 자세를 배웠고, 손춘익 선생한테는 부지런함을 배웠어요. 두 분은 중앙지에 상금 사냥꾼처럼 응모하지 말고 창작에 전념해서 좋은 작가가 되라고 하셨지요.
호미반도의 산길은 달빛이 내리면 모두 바다로 향한다. 웅크리고 있던 바위들도 어둠 한 자락씩 감아들고 바다로 간다. 관목 숲 끝에는 키 낮은 곰솔들이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달빛이 그 옛날 목부들이 쌓아올린 석축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 돌덩이들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면 수백 년 전 말을 기르던 목부들이 깨어나서 파도 소리에 몸을 뒤척인다. 달밤, 숲으로 들어선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달그림자를 늘어뜨린 한 그루 곰솔이 된다. 그렇게 모두 한마음으로 달빛 길을 걷는다.
- 『호미곶 가는 길』, 단비, 140쪽, 2019.
다무포 해안에서는 ‘고래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고래가 많았던 동해를 보았다. 바로 그곳에서 한국계 귀신고래의 멸종 연유도 들려주었다. 고래가 사라진 텅 빈 다무포 해안을 내려다보는 학생들의 표정은 안타까움 그대로였다.
- 앞의 책, 137쪽.
이 :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호미곶으로 오는 길이 기쁨으로 벅찼습니다. 고래를 기다리는 집 서경와)의 잔상이 오래 남을 듯합니다.
김 : 한반도 끄트머리 호미곶의 청록빛 바다와 일렁이는 보리밭의 조화를 보노라면 생명의 신비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서정주의 시구가 떠오르는군요. 인터뷰 내내 함께했던 인연들이 아슴아슴 떠오르면서 그리워질 만하지요.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으며, 귀하지 않은 생명이 따로 있을까요. 먼저 글을 쓴 선배로서 후학들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려고 합니다. 그들의 길을 열어주고 그들과 함께 고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요.
대담·정리 : 이희정(시인)
사진 : 김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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