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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기 부활이란 시민들의 염원 이룰 것”

신현국 문경시장은 1년 전 취임식에서 다시 한번 얻은 기회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1%의 가능성에도 포기하지 않는, 시정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문경시청 제2민원실을 설치해 구도심지역 주민들의 원활한 민원 업무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고, 기존 2층에 위치했던 시장 집무실을 청사 1층으로 이전해 시민들과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시민들과 소통하며 규정과 절차에 얽매인 소극적 행정에서 벗어나, 주민의 입장에서 쉽고 빠른 해결책을 찾는 데 역량을 집중해 왔다.신 시장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위기 극복을 위한 ‘3대 시정 프로젝트’ 추진에 사활을 걸겠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와 지역경기부활이라는 시민들의 염원 달성을 이루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경시 ‘3·3·3 운동’은 무엇인가.△3·3·3운동이란 긍정, 친절의 3대 마인드와 시정 3대 중점과제를 아우른 것으로, 감동의 긍정행정, 멋진 친절도시, 지방부활 명품정책의 삼박자를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 제안한 3대 프로젝트이다.먼저, ‘새롭게, 재밌게, 멋있게’ 비슷하지만 같지 않게 시민에게 감동을 주고, 의미와 재미가 가미된 기획을 통해 품위 있는 정책으로 멋이 깃든 문경을 만들기 위한, 중복되는 접미사 ‘게’를 활용한 ‘3게 긍정실천운동’이다.다음으로 ‘가슴으로, 정성으로, 따뜻함으로’ 라는 친절정신을 공직자에서부터 공단, 유관기관, 나아가 시민이 다함께 참여하여 ‘친절’을 관광 상품화해 전국 최고의 친절 도시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3·3·3운동을 통해 문경시가 긍정적이고 친절한 도시로 거듭나고, 더불어 중점 사업도 성공적으로 해내겠다.-한국체육대학교 유치 문제는 어디까지 진행됐나.△문경시 역시 시대적 문제인 지방소멸의 파도를 피해갈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체육대학교를 문경으로 유치해 학생과 교직원을 전입 인구로 확보하고, 경기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한국체육대학 문경이전을 위해 지난해 12월 한국체육대학교 문경 이전 범시민 추진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조례를 제정하고 주변 인구감소지역 및 비혁신도시와 연대를 구축하는 등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문경에 국군체육부대가 있고, 세계적인 군인체육대회를 치를 만큼 잘 조성된 스포츠 인프라와 수도권과의 탁월한 접근성을 들어 한체대 이전의 최적지이다.1%의 낮은 가능성으로도 국군체육부대를 유치했던 기존의 경험을 살려 끊임없이 전국을 누비며 유치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숭실대 문경캠퍼스 설립 추진현황은.△숭실대 문경캠퍼스 유치 역시 한국체육대학교 유치와 함께 제 중점 공약 중 하나이다. 지난해 11월 숭실대학교 문경캠퍼스 유치 추진위원회 출범을 시작으로, 문경시와 문경대 간의 확약서를 체결했다.숭실대와 문경대 간의 대학통합이 성사된다면 문경시로서는 인구증가 및 고등교육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숭실대와 문경대 양 학교 측에서 학령 인구 감소라는 문제에 직면해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이미, 10년 전 모든 문경시민이 합심해 국군체육부대와 서울대 연수원, STX리조트, 숭실대 연수원 등을 유치한 경험이 있는 만큼 결코 쉽지 않겠지만 1%의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겠다.-농민사관학교 및 소방장비기술원 유치 성과는.△한체대와 숭실대 유치 등 문경시가 당면한 인구감소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관 및 기업 유치를 목표로 노력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올해 초 경북도 산하 기관인 농민사관학교와 경북소방장비기술원을 문경시에 유치하는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농민사관학교는 이전 예정지로 문경향토음식학교를 증축, 리모델링해 이전하기로 확정했다. 내년 2월에는 이전 개소 및 교육 운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다. 농민사관학교의 유치가 문경 디지털 혁신 농업 도시 조성사업과 연계되어 미래 스마트경북형 농업으로 도약하는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경북소방장비기술원은 이전지 선정 심사위원회에서 직접 발표자로 참석해 중부내륙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중심지인 문경시의 강점과 도 소속기관이 없다는 형평성을 내세워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한 결과 최종적으로 유치를 확정지었다.경북소방장비기술원은 안동시에 위치한 경북소방학교와 포항시에 위치한 119특수대응단과 함께 경북소방벨트로서 안전한 대한민국 구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스포츠 체육 분야의 성과 및 활성화 계획은.△문경 브랜드를 앞세운 전국 단위 체육대회를 개최해 스포츠도시 문경의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매년 문경의 특산품과 관광명소를 타이틀로 하는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아시아하키연맹 정기총회를 비롯한 73개의 체육행사를 유치했다.민속씨름 문경장사대회, 춘계 전국 초중고 유도연맹전,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문경새재배 전국 파크골프대회 등 다양한 종목을 아우르는 전국 규모의 대회가 열렸다. 8월에는 1만여 명이 함께하는 문경새재 맨발 페스티벌이 개최될 예정이다.최근 2024 세계태권도 한마당 문경 개최를 확정지었고, 2025 아시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도 총력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이렇게 다양한 국내·외 스포츠대회와 전지훈련을 유치한 배경에는 문경국제소프트테스장, 배드민턴 전용경기장, 온누리 스포츠 센터 등 우리 시가 갖춘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가 있다.앞으로도 시민운동장을 리모델링하고 국제클라이밍센터를 보수, 파크골프장 추가 조성 등 체육시설 보강을 통해 생활체육을 활성화하여 함께하는 활력도시, 스포츠 메카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축제 성과 및 향후 계획은.△그동안 200t 19억원의 판매 실적을 올리며 국가대표 명품 감홍사과의 명성을 알린 사과축제, 6만 명의 관광객을 동원하며 5억원의 판매 수익을 올린 오미자축제, 50두의 한우를 완판한 약돌한우축제 등 지역에 활력이 도는 많은 축제들이 있다.가장 최근 진행한 2023 찻사발축제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전면 대면 축제로 개최하게 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입장료와 주차요금 그리고 새재 내 전동차 이용료까지 전면 무료화하고, 우천 상황에 대처해 야자매트를 설치하는 등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편의에 신경을 썼다.축제 진행 9일 동안 24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은 이번 찻사발축제는 경제적 효과로 137억여원의 실익을 거두는 등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축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투자’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하는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목표이며, 축제의 기간과 컨텐츠를 늘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대책은.△농촌의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난해 베트남 라이쩌우성과 농업 분야 계절근로자 도입을 위한 세부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120여명의 근로자를 과수, 원예 등 신청 농가 일손돕기에 투입했다.또한, 농촌인력지원센터를 조성해 농민이 잘살고 대접받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용배수로 설치와 농로정비 등 농업기반정비와 농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사업 등 환경정비와 함께 각종 보조사업을 통해 농가의 부담을 줄이는데 노력하고 있다.벼 육묘대 지원, 벼 건조료 지원 및 기초 농산물에 대한 지원, 사과, 오미자 등 과수 및 특용작물에 대한 지원, 축산 농가에 대한 풀자료 지원 등 농사짓기 편하고 살기 좋은 농촌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 /강남진기자

2023-08-02

명실상부한 ‘고대 통일국가 신라’ 완성시킨 문무왕

‘삼국통일(삼한일통)’에 가장 큰 힘을 보탠 이가 누구인지를 논쟁할 때면 언제나 뜨거운 갑론을박 속에 견해가 갈린다.“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를 무너뜨릴 국력의 토대를 마련한 무열왕 김춘추다”라는 의견이 있고, “그렇지 않다. 실상은 왕보다 더 큰 국가 무력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김유신”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그러나, 결국 역사는 풍문이 아닌 ‘팩트(Fact)’로 기록된다.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병합하고, 당나라를 축출함으로써 크건 작건 명실상부한 ‘고대 통일국가 신라’를 완성시킨 건 문무왕(文武王)이다.세상이 그를 부르던 이름은 김법민(金法敏). 626년에 태어나 681년에 죽었으니, 지상에서 머문 시간은 55년. 신라의 서른 번째 왕으로 군림했던 건 백제가 멸망하고, 아버지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부터 681년까지니 20년이다. ◆아버지가 무열왕, 외숙부는 김유신...금수저 중 금수저그렇다면 역사는 그를 어떤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고문헌을 총괄한 ‘두산백과’를 아래 요약한다.“성은 김(金) 이름 법민(法敏), 시호는 문무(文武)다. ‘삼국유사’엔 문호왕(文虎王)이라고도 기록돼 있다. 무열왕의 적장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명왕후. ‘삼국유사’엔 왕비는 선품(善品)이라 기록돼 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진덕여왕 때는 사신으로 당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무열왕 집권 후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 660년 백제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무열왕이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무열왕의 뜻을 계승해 백제의 저항운동을 무력화시키고, 668년엔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시켜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완수했다. 676년 나당전쟁(羅唐戰爭·신라와 당나라의 싸움)에서 승리해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옛 고구려의 남쪽 지방까지 영토를 넓혔다.”문무왕은 ‘태생적’으로 복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21세기엔 돈이 풍족하고, 권력을 가진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금수저를 물고 나왔다”고 이야기한다. 2023년 오늘이라면 재벌과 최고위직 공무원의 아들, 딸쯤에 해당되겠다.허나, 김법민이 태어나며 물고 나온 건 ‘금수저’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빼어난 능력과 수완으로 성골(聖骨)이 아닌 진골(眞骨)임에도 신라 왕에 최초로 오른 김춘추.엄마의 오빠, 그러니까 외숙부는 신라와 백제, 고구려까지를 통틀어 최고의 무장(武將)이자 용장(勇將)이라 불리던 신라 권력의 핵심 김유신이었다.허니, 문무왕 김법민은 금수저 따위는 우스운 ‘다이아몬드 수저를 갖추고 태어난 아이’였던 것.조금은 속된 비유가 될 수 있으나, ‘에이스 카드 2장을 처음부터 쥐고 치는 포커 게임은 이기기보다 지는 게 더 어려운 법’.부친 김춘추라는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에, 외삼촌 김유신이라는 ‘클로버 에이스 카드’까지 손에 들고 나머지 두 장의 에이스 카드를 모아 ‘삼국통일’이란 과업을 향해 질주했던 문무왕 김법민.그러나, 문무왕은 타자가 부여한 태생적 행운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바로 이것이 오늘날 퇴폐적인 몇몇 재벌의 아들이나, ‘갑질’을 자신의 권리인 줄 착각하는 몇몇 고위직 공무원의 딸과 문무왕 김법민의 변별점이라 할 수 있다.서울교대 사회교육과 임기환 교수의 논문 ‘고구려 멸망기 신라의 군사 활동’을 보면 문무왕이 삼한일통으로 가는 주요한 길목이라 할 ‘고구려 병합’ 과정에서 어떤 결의와 역할을 했는지가 서술되고 있다. 주요 대목을 옮긴다.“667년에 문무왕은 당 고종의 공식적인 참전 요청이 없었음에도 대규모 신라군을 이끌고 북진했다. 이는 평양성 공격에 신라군이 배제되어 전후 처리 과정에서 고구려 영토에 대한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한 의도였다…(중략) 문무왕은 그동안 준비를 갖춘 대규모 원정군을 출정시켰다. 신라군의 참전으로 고구려군은 압록강 방어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하여 평양성 전투에 승부를 걸었으며, 그 결과 당나라 군대의 압록강 전선 돌파가 가능해졌다…(후략)” ◆문무왕, 선친을 넘어서는 괄목할 업적을 남기다시인 고운기는 그의 책 ‘인물한국사’를 통해 문무왕의 생애가 어떤 행운과 굴곡으로 이어졌는지를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문무왕은 태자 시절부터 벌써 아버지(무열왕 김춘추) 이상의 눈부신 활약을 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도 전인 진덕여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고, 늦게 왕위에 오른 아버지를 도와 병부령(兵部令·신라 군사직의 으뜸 벼슬)의 자리에서 나라의 기강을 잡았다. 아버지는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한 승전보 속에 생애를 마쳤지만, 아들(문무왕 김법민)은 계속되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제압하고, 고구려를 쳐서 멸망시킨 다음 당나라 군사마저 쫓아내기까지 과중한 임무를 맡아야 했다.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무열왕의 업적이 화려한 서곡에 불과할 정도로 문무왕은 통일의 주역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더없이 운이 좋았던 출생 배경에만 안분지족(安分知足) 했다면, 김법민은 ‘그저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다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죽은 흔하디흔한 왕족 중 하나’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을 터.하지만, 김법민은 달랐다. 왕을 대신해 당나라를 오가며 신라의 국익 실현에 동분서주했고, 아버지 사후에는 백제를 부활시키려는 군대, 거친 기질이 몸에 밴 고구려의 군인들 앞에 목숨을 걸고 모습을 드러냈다.뿐 아니다. 당시의 초강대국 당나라의 축출이란 고난도의 과제까지 완수한 것. 이로써 실질적 삼국통일(삼한일통)에 마침표를 찍었던 문무왕은 죽음과 마지막에 남긴 말까지 영화적이었다.‘삼국사기-신라본기’는 681년 7월 초하루 세상을 떠난 문무왕의 유조(遺詔·왕의 유언)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나는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해 영토를 안정시켰고 마침내 멀고 가까운 곳을 평안하게 했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 살게 했다. 여러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 운명은 가고 이름만 남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 되므로, 태자(신문왕)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지막엔 한 무더기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내가 죽고 10일 뒤 화장(火葬)하면 족하다. 장례는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자신의 뜻에 따라 신라의 바다를 지키는 용으로...신문왕은 위와 같은 말에 더해 “죽으면 왜구로부터 내 나라 백성을 지켜주는 용이 되고 싶으니, 내 뼈를 동쪽 바다에 묻어라”고 한다.이로써 삼국통일, 또는 삼한일통을 논할 때 무열왕 김춘추와 흥무대왕 김유신에 필적하는 역사적 위상을 가진 문무왕 김법민의 통치 20년은 마무리 된다.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그의 유택(幽宅)으로 추정되는 곳은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해변 앞 커다란 바위 가운데다. 이른바 문무왕릉. 신라 왕의 유골이 봉안된 곳이라 해서 속칭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불린다. 아래는 그와 관련된 ‘두산백과’의 부연.“대왕암은 육지에서 200여m 떨어진 바다에 있다.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해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대왕암 주변은 큰 화강암이 둘러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돼 있다. 물길이 난 가운데 공간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됐다.”그리고 여담 하나.문무왕은 아버지와 외숙부 복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의 뒤를 이어 신라의 집권자로 등극한 이는 큰아들이었던 신문왕 김정명(金政明·재위 681~692).신문왕은 아버지의 애국·애민 의지를 계승하겠다는 뜻에서 문무왕릉 지척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고, 용이 된 아버지가 밤이 되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절 아래 커다란 공간까지 만들었다.아버지는 왕이었고, 외삼촌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이었다. 거기에 효자 아들까지 뒀으니 이쯤 되면 “문무왕은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행복했던 사람”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8-01

수많은 추억이 무늬진, 포항의 영원한 노스탤지어

송도는 그리움이다.송도 다리를 건너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하늘을 덮은 가로수길을 걸어가면평화의 여상(女像)과 모래언덕이 반갑게 맞아주었고명사십리와 푸른 파도, 갈매기의 군무가 황홀하게 펼쳐졌다.백사장은 어린아이들이 아무리 뛰어가도끝이 없을 정도였고그 넓은 곳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해수욕객이북적거렸다.바다에는 크고 작은 유람선이 떠다녔고다이빙대에는 어린아이들이 바글거리며 바다로첨벙첨벙 뛰어들었다.동해안에서 가장 이름 높은 해수욕장은 포항 송도였다. 송도는 예술의 탄생지였다.일제강점기 때 이육사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송도 바다에서강렬한 내면의 체험을 했고,광복 후에는 한흑구가 거의 매일 같이송도 해변을 거닐며 ‘은둔의 사색가’로 살았다.포항의 예술가들도 송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시와 그림과 노래의 영감을 얻었다.송도는 새로움이다.유실된 백사장을 살려내고갈매기가 인도하는 유람선이 다니며평화의 여상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흥겹게 노래를 부른다.카페촌에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차 한 잔, 술 한 잔에파도를 담아 그리운 이름을 불러낸다.파도 소리 정겨운 송도해수욕장에는 낭만의 선율이 흐른다. 예나 지금이나 송도는 해 뜰 무렵 찬란하고해 질 녘에 애잔하다.수많은 추억이 무늬진 백사장에 추억은 계속 쌓일 것이다.송도는 포항의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최수정 최수정 197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성장했다.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6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현상회, 계명회 등의 회원이며 포항에서 갤러리m을 운영하고 있다. ‘호미곶 이야기’, ‘비밀이 사는 아파트’, ‘꿈꾸는 복치’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2023-07-31

전통시장·소상공인에 진심인 김천, 다각도 지원으로 날개 단다

김천시가 전통시장 상인들과 소상공인이 직면한 경영 위기 해결을 넘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자체 경쟁력을 갖춘 튼튼한 자립기반을 구축, 민생경제 되살리고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방침이다.김충섭 김천시장은 “코로나19 이후 일상회복의 단계에서 소비심리 위축, 경기침체 등으로 영세 소상공인들의 완전한 회복을 이루기에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김천시에서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위기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발굴하고 추진해 소상공인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 김천사랑상품권 할인 혜택 10%유지김천시는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을 방지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 살리기의 일환으로 2019년부터 ‘Happy together 김천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올해는 국비 지원의 대폭 감소에도 불구하고 시비를 최대로 반영해 월 50만원 한도, 할인율 10%를 유지해 운영중이다. 2023년 발행목표는 1천251억원으로 6월 말 기준 표의 63%에 달하는 794억원이 판매됐다. 이는 김천사랑상품권에 대한 시민들이 끊임없는 관심과 이용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주요 이용처는 일반음식점(30%), 슈퍼마켓·편의점 등 소매점(14%), 주유소(13%), 병원·약국(10%), 학원(6%) 등으로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업종의 사업장에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또한 김천시에서는 전입지원금(1인 20만원), 임신축하금(1인 20만원), 입영지원금(1인 10만원), 경북도 농어민수당(1인 60만원, 상·하반기 각 1회) 등 다양한 정책지원금을 김천사랑카드로 지급해 시민들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도 김천사랑카드로 제공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공동체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소상공인 특례보증한도 상향지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자금난을 겪는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경북신용보증재단의 100%보증으로 융자를 지원하고 2년간 3%의 이자를 시비로 보전하는 소상공인 특례보증사업을 시행중이다.특히 올해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과 소상공인의 빠른 회복 지원을 위해 보증규모를 1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보증한도 또한 2천만원에서 최대 3천만원까지 상향했다.이 사업은 지난 2018년 시작으로 2022년까지 5년간 시비 80억원을 출연해 800억원 규모로 총 3천200여명에게 지원하며 복합위기에 놓인 소상공인들의 경영 회복과 성장을 위한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소상공인 고용보험료 지원 대상 확대김천시는 지난해부터 소상공인의 사업자 폐업이 불가피할 때 생활 안정과 전직·재창업 준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소상공인 고용보험료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지난해는 1인 소상공인만 지원 대상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전체 소상공인으로 대상자를 확대했다. 또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업무 협약을 맺어 소상공인의 고용보험 가입을 활성화와 정보 공유하는 등 소상공인 지원에 힘쓰고 있다.지난 4월 사업 공고 후 대상자를 상시 모집중이며 대상자로 선정된 소상공인은 납부한 고용보험료의 40∼60%를 김천시에서 최대 3년간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통한 고용보험료의 20∼50%을 추가 지원받아 최대 90%보험료 지원으로 고용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소상공인 온라인 시장 진출 지원소비 및 유통환경의 비대면·온라인화, e커머스 시장의 급속한 성장이 두드러진 가운데 김천시에서는 소상공인의 온라인시장 진출을 집중지원 한다.각종 SNS나 오픈마켓 등에서의 광고를 통해 사업장을 알리고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도록 온라인 홍보비용을 최대 30만원까지 지원하는 ‘온라인 마케팅 홍보비용 지원사업’을 지난해에 이어서 시행중이다. 이 사업은 지난 6월 공고 이후 많은 소상공인들의 관심으로 신청이 이어지고 있으며 예산소진 시까지 온라인 또는 방문(김천시청 일자리경제과)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온라인시장이 확대되고 있으나 온라인이라는 진입 장벽과 준비 없는 창업으로 실패를 맞는 소상공인에게 판로개척과 경쟁력 제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8월에 ‘온라인 마케팅 역량강화 컨설팅’도 예정되어 있다.□ 착한가격업소 이용 활성화김천시는 지역 평균 가격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를 지원함으로써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업소 23곳을 ‘착한가격업소’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착한가격업소들은 인근 상권 평균 가격 대비 10∼20% 저렴한 가격을 일정기간 이상 유지하고 있으며 업소에는 매년 150만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대상 업소를 상시 모집 중에 있으며 가격뿐만 아니라 위생, 이용만족도, 공공성 등을 통해 착한가격업소의 당위성을 갖춰 시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불금불토 밤나들이 야시장’ 운영김천시는 전통시장에 활력을 북돋기 위해 지난 5월 19일부터 4주간 ‘불금불토 밤나들이 야시장’을 운영했다. 평화시장 일원에서 개최된 야시장은 여름밤 가족들과 함께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는 기회를 제공하여 뜨거운 호응 속에 시즌1이 완료됐다.이동통신 기지국 기반 빅데이터에 따르면 야시장 기간동안 평화시장 일대 유동 인수는 야시장 이전과 비교하여 평균 4∼5천명 차이를 보여 전체 시즌1 기간동안 총 3만에서 4만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돼 시민들이 찾는 전통시장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더욱 알찬 구성으로 오는 8월 25일에 ‘불금불토 밤나들이 야시장 시즌2가 예정돼 있다. 평화로상가와 평화시장 축제가 함께 시즌2를 이끌어 원도심 상권 활성화도 도모할 예정이다.김천/나채복기자 ncb7737@kbmaeil.com

2023-07-31

“문화유산 활용은 더 잘 보존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오래된 논쟁이다. 보존에 가치를 두는 쪽은 허울 좋은 활용은 훼손과 다름없고, 어떤 방식의 활용도 문화재 본연의 가치를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활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문화재 보존은 문화를 박제하고 화석화한다고 비판한다. 끊임없이 변동하는 문화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보존과 활용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보존에서 활용으로 흐르고 있다.보존해야 할 ‘문화유산’과 ‘활용’이라는 단어가 병행하는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의 최경남 대표를 만났다. 칠불암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지역 문화재활용 우수사업 명예의 전당에 오른 곳이다. 최 대표와 약속을 잡고 찾아간 사무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특유의 끈끈함과 활력이 감돌았다. -‘칠불암 5감(感) 힐링체험’의 참가자 만족도가 높다고 들었다.△문화재청이 지원하는 전통산사문화재 활용사업 6년 차에 접어드는 사업이다. 2019년부터 3년 연속으로 지역 문화재활용 우수사업으로 선정되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경주시 담당 공무원과 상을 받으러 갔는데 문화재청장이 수여하면서 “잘 받기 힘든 상입니다.”라고 했다. 전국에 400개 넘는 문화유산 활용사업이 있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사업은 1년에 한두 팀 나올까 말까라고 한다.-답사와 공연 관람이 혼재하는 프로그램인가.△비슷하지만 하나가 빠져있다. 칠불암의 ‘7’을 스토리텔링 해서 문화재, 숲, 명상, 예술을 5감으로 풀어낸다. 초기에는 답사로 알고 오거나, 체험비에 대해 “문 없는 사찰에 가는데 왜 돈을 내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프로그램은 칠불암의 7개 스토리를 다섯 가지 감각으로 버무린 융복합 문화재 체험 행사다. 중요한 것은 예술인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문화유산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모든 과정을 동행하며 두런두런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특별하다.-지역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지나.△칠불암 가는 길 내내 동행한다. 해설자만 있는 기존 답사와 달리, 예술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 한다. 30여 명의 지역 예술인과 문화계 인사가 1인 3역을 하며 함께 움직인다. 칠불암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50분이지만 전체 운영은 5시간이 걸린다. 출발하기 전 명상부터 시작해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칠불암 주지 스님과의 만남도 있다. 한 호흡 가다듬고 천천히 하산하면서 원효 스님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과 요석 공주와의 사랑을 담은 연극을 볼 수 있다. 공연은 20분 정도로 주제만 전달하도록 구성했다.-문화유산 활용 대상으로 칠불암을 선택한 이유는.△칠불암은 남산 유일의 국보를 보유한 사찰로, 신선암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압권이다. 물도 전기도 부족한 곳이지만 공양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스님이 직접 다려 주시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칠불암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칠불암 올라가는 짐’이 있고, 암자 마루 밑에는 ‘내려가는 짐’이 있다. 누구든지 마음 내키는 만큼 짐을 옮겨준다. 객도 없고 주인도 없는 모든 이들의 공간인 셈이다. 사찰이라고 하면 불국사처럼 큰 사찰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처럼 작은 산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전통 산사의 맥이 이어지는 칠불암의 매력을 전하고 싶었다. -경주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1990년대 말 보문단지 야외 공연팀 일원으로 경주에 왔다. 당시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일일이 뵙고 찾아다니며 배워야 하는 정순임, 정경호, 주영희, 이성애 선생 같은 쟁쟁한 대가들이 한자리에 계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판소리와 아쟁, 가야금, 대금 등 각 분야 대가가 모였으니, 무대는 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거기다 보문단지 공연장은 너무 아름다웠다. 경주 사람들은 늘 봐와서 귀한지 모르겠지만 대가들의 공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무대는 드물다. 아쉽게도 상설 공연은 끝났지만,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경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국악인으로 활동하다가 문화유산 활용사업에 뛰어든 계기는.△고등학생 때 기타를 배우러 갔다가 장구에 홀려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구 소리가 천둥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장구를 치면 목탁 소리처럼 편안해지기도 했다. 국악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과 만나는 도구이다. 예술이란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평생 가지고 갈 나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예술인에게도 일이 필요하고 그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늘 바라왔다. 보문단지에서 공연하던 팀이 흩어지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강사지원사업 국악 강사로 활동했다. 경북지역 대표로 문체부 지원정책에도 참여했고, 대한민국 국악 강사 협의회를 이끌기도 했다. 여러 분야 예술인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무대를 시도했고, 이 정도면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괜찮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내가 가진 재능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를 바라면서 예술인의 감성으로 풀어내는 문화유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2017년에 설립해 이듬해부터 ‘칠불암 5감 힐링체험’ 행사를 시작했고 2020년 사단법인으로 허가받았다.-경주의 문화유산 활용단체 가운데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갖는 차별성은.△경주문화원과 신라문화원,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경주향교, 서악서원 등 10여 곳에서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 연구원은 콘텐츠 개발 전문 단체로 주로 감성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사업에 참여한다는 점이 강점이다. 참가자와의 교감을 중시하며 체험객의 특성 파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일반적으로 문화재는 유지, 보존되어야 한다고 인식된다. 문화재의 상품화와 관광객 유입으로 문화재 훼손을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10여 년 전부터 문화재청은 ‘최고의 보존은 활용’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활용사업을 권장하고 있다. 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아닌 숨겨지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위주로 진행한다. 또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모인 대상자를 위해 진행한다. 사업의 첫 번째 목표는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이다. 그다음은 닫힌 문화재, 숨겨진 문화재를 개방하고 알리기다. 활용사업을 하기 전 향교나 서원은 춘향대제와 추향대제 그러니까 1년에 두어 번 개방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빈집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너져 내린다. 방문객을 맞으면서 건물의 수명이 연장된 셈이다. 이처럼 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더 잘 보존하고 제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것이 활용사업의 진정성이다.-사업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국비 사업이라 매년 심사를 받아야 한다. 보조사업의 특성상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어제도 서류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새웠다. 프로그램의 기조는 바뀌지 않지만, 세부 사항은 매달 개선하고 체험객의 성향에 따라 내용을 조정하는 일도 끝이 없다. 체험 물품도 직접 제작하고 모객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가치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광주에 우리처럼 명예의 전당에 오른 월봉서원 행사가 있다. 사업이 성공하고 체험객이 몰리면서 담당 공무원이 특진하고, 문화재활용팀이 독립됐으며, 교육체험관이 지어졌다. 경주도 그렇게 되리라 기대한다.-앞으로 더 활용하고 싶은 경주의 문화유산이 있나.△경주에는 문화유산이 다양하지만 실제로 발길이 모이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관광객의 다양한 취향이 반영되도록 관광지가 세분되고 분산되면 좋겠다. 신라에 푹 빠져 경주에 왔지만, 막상 와보니 지나치게 신라에만 집중하고 있다. 경주에는 신라 말고도 주민들과 함께해 온 유적지가 많다. 지금까지 조명을 덜 받은 문화유산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 현재 복원 중인 경주읍성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담은 곳이다. 경주읍성을 주제로 ‘경주읍성 생생 나들이’를 진행한 바 있고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 개선된 프로그램을 선보이려 한다.-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경주의 숨은 명소는.△사업을 하면서 보니 경주에 숨은 명소가 많았다. 배리 삼존불입상과 옥룡암 탑곡마애불상군, 삼릉숲, 감실할매부처라고 불리는 불곡마애여래좌상도 좋아하는 곳이다. 말하고 보니 모두 남산인데, 남산은 굳이 등산이 아니라도 둘레길만 걸어도 좋다. 동남산과 서남산을 잇는 셔틀버스가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이 둘레길을 찾을 것이다.-수많은 경주의 명소 가운데 문화유산 활용사업의 첫 발을 뗀 곳이 남산이다. 최경남 대표에게 ‘경주 남산’은 어떤 곳인가.△‘나를 만나게 해주는 곳’이다. 신라의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곳. 신라를 모두 담았다고 해도 될 만큼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고청 윤경렬 선생을 비롯해 남산을 알리고 지켜온 어른들이 계신다. 미약하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뜻을 이어가고자 한다.최경남 대표는대구예술대학교에서 한국음악을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에서 국악초등교육을 전공했으며, 동의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진주검무, 처용무 전수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강사지원사업 국악 강사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국악 강사 협의회장을 역임했다. 신라만파식적보존회가 주관하는 ‘경주세계피리축제’와 신라처용무보존회의 ‘경주시 문화의 날’ 축하공연, 경주문화원의 ‘문화재 야행’등을 기획·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로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을 설립했다. 전통산사문화재 ‘칠불암 5감 힐링체험’과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 ‘오래된 미래’, 전수교육관 활성화 사업인 ‘똑똑한 문화재 열려라 참깨’ 등을 진행하고 있다.배은정 1974년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학과 졸업.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 작가. ‘포항문화의 상징과 공간’ 공저/배은정 작가

2023-07-31

정구, 소년 가장에게 희망이 되다

포항 역사에서 체육은 중요한 맥을 이룬다. 1945년 조선무술회를 결성한 동암(東庵) 문달식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포항이 김정행, 정성숙, 김재범 같은 한국 유도계의 거물을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대 국가대표로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었던 이귀복, 이춘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동지중·고등학교 영어 교사 남인우가 포항에 농구를 들여온 1951년을 만나게 된다. 포항수산고(현 한국해양마이스터고) 3학년 천인태는 1981년 한 해 동안 7개의 한국 신기록을 수립해 ‘포항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정규 풀(pool)이 없어 영일만을 훈련장으로 삼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보다 푸르고 맑았을 40년 전의 영일만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또 한 명……. 선수, 교육자, 체육 행정가로 포항 체육사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최인수(崔仁秀)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도일(이하 김) : 체격에 비해 손이 두껍고 힘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최인수(이하 최) : 그런가? 정구를 오래 해서 그런 것 같아.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 코트에 나가거든. 골프장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고.김 : 태어나고 자란 곳은 어디입니까?최 : 서울 종로에서 광복 이듬해에 태어났어. 다섯 살 때 6·25전쟁이 발발했는데 그때 대구로 피난 왔지. 피난 중에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 삼덕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전쟁이 끝나서도 서울로 가지 않고 대구에 정착했지. 그 후 초등학교 세 개(동인, 중앙, 삼덕)가 통합돼 동덕초등학교가 설립되었는데 1959년에 2회로 졸업했어. 김 : 전쟁에 대한 기억은 있습니까?최 : 너무 어려서 또렷한 기억은 없어. 집을 나와서 가족들과 산속에 숨어 있는데 멀리서 들리던 총소리는 생각나. 당시 선친이 종로에서 양행점(洋行店, 서양식 잡화점)을 운영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어. 집이 단독주택이었고 말이야. 전쟁이 터지자 지하실에 경찰 고위 간부를 숨겨주었는데 그분이 피난 때 트럭을 제공해주어 편하게 대구까지 온 기억이 나. 김 : 대구 생활은 어땠습니까?최 : 선친이 대구에서도 양행점을 열어 크게 성공했지. 당시 대구에 2대 양행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대구백화점 창업주가 운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선친이 운영하는 것이었어. 장사가 잘된 만큼 부모님은 자식들을 돌볼 겨를도 없이 바빴어. 그러다가 내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었는데 삶은 달걀과 건빵을 먹은 다음 날 새벽에 장이 막혀 급사했지 뭔가. 선친을 많이 닮아 유독 귀여움을 받던 동생이었지. 그 일을 계기로 선친은 사업을 팽개치고 술에 의지해 살았고, 그러는 사이 연이어 사기를 당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어. 누님의 고등학교 입학금을 못 낼 정도였지. 그때 누님과 내 학비를 벌려고 다방과 술집을 돌아다니며 담배와 껌을 팔았어. 텃새 때문에 맞기도 하고 돈과 물건을 빼앗기기도 하고……. 그러다가 체육 교사였던 박근수 선생님께 들켰지. 당시에는 겁이 나서 도망갔는데 다음 날 선생님 앞에 서니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만 나오더군. 나중에 선생님이 사정을 알고 극빈자로 등록해주셔서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지.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장사도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누님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 학비를 낼 수 있었고. 내가 평생을 체육계에 몸담을 수 있었던 것도 박근수 선생님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김 : 정구 선수로 활동하셨지요.최 : 1962년에 대구상고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지. 중학생 때 농업 선생님이 덴마크에서 유학하신 분이었어. 그분이 유학 시절에 배운 배드민턴을 학교에 보급하며 대회를 개최했지. 내가 그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보면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 대구 중앙통 한일은행에 정구 코트가 있었는데 대구중, 계성중 정구 동아리 학생들이 그곳에서 운동을 했지. 가끔 그 학생들과 어울려 정구를 같이했어. 대회에 나가기로 한 대구중학교 선수 하나가 갑자기 몸이 아픈 바람에 내가 대신 출전했는데 처음 나간 대회에서 3위를 했지 뭔가. 그때 대구상고 정구부 감독 눈에 들었어.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하면 학비가 전혀 안 든다는 것이 정구 선수가 된 결정적인 이유였지. 김 :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로 들어선 것이군요. 어땠습니까?최 : 예상보다 훨씬 혹독했지. 운동도 힘들었지만 선배들한테 기합과 구타를 당하는 게 더 견디기 어려웠어. 거의 매일 3학년이 2학년을, 2학년이 1학년을 집합시켜 가혹행위를 했어. 한번은 맞다가 허리를 다쳐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선수 생명이 끝나는 줄 알았지. 퇴원 후 때린 선배를 찾아가 복수한다고 난리를 치다가 오히려 선배와 선배의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고 운동부를 나와버렸어. 나중에 3학년 선배의 중재로 때린 선배와 화해하고 허리도 괜찮아져 운동부에 복귀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영향으로 허리가 안 좋아.김 :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삼호방직에 들어가셨지요?최 : 당시 전매청과 더불어 대구에 실업팀을 운영하는 두 곳 중 하나였지. 선수도 직원이어서 안전관리과에 소속되었어. 아침에 출근해 오전 내내 잡담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연습 좀 하고 퇴근하는 게 일과였지. 그러다가 대회가 있으면 출전하고. 평생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작은 기술 하나라도 배워야겠다 싶어 무엇이라도 배울 수 있는 직책을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어. 회사 사정도 이해되는 것이 선수들은 대회나 연습 때문에 근무 시간이 들쑥날쑥해서 오히려 방해만 되었겠지. 계속 이런 생활을 하다가는 미래가 없을 것 같아 2년 만에 퇴사한 거야. 김 : 퇴사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최 :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 경북대학교에서 정구부를 만든다며 입학 제의가 들어왔어. 그런데 입학 조건이 체육특기생이 아니라 일반 학생 자격이었어. 국립대 특성상 제한이 있었던 것 같아. 여전히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쉽게 응하지 못하다가 중학교 은사인 박근수 선생님을 보며 입학을 결심했지. 당시 선생님께서는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계속해 대구한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거든. 박근수 선생님을 롤 모델로 삼은 거지. 예상했지만 학비를 벌면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어. 코트 관리를 하며 정구장 회원들한테 얼마간의 관리비를 받고 쌍화차를 끓여 새벽에 운동하는 회원들에게 팔기도 했지. 나중에는 회원들이 내 사정을 알고 많은 도움을 주었어.김 : 실업 선수로 있다가 대학 선수가 되신 거네요?최 : 그런 셈이지. 2년간 실업팀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덕분에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었어. 그러다가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돼 일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출전했지. 그 덕분에 이름이 알려지자 도움을 주는 분도 많아졌어. 당시 정구 대신 테니스붐이 일어났는데 이영길 대구정구협회장의 도움으로 대구 아카데미극장 옆에 작은 테니스용품 가게를 열었지. 일본에 갔을 때 스포츠용품 영업사원들이 와서 자사 제품들을 홍보하더군. 그때 알게 된 용품 회사 직원인 고바야시라는 사람에게 정가보다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물품을 받아 판매했는데 꽤 잘되었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야 해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동생에게 용품점 운영을 맡겼지.김 : 졸업하고 바로 교직에 들어간 겁니까?최 : 197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의 추천으로 테니스부가 창단된 대구 효성여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어. 가톨릭 계열의 보수적인 효성여고에 총각 선생님이 부임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지. 그만큼 테니스부에 거는 기대가 컸던 모양이야. 대구에는 이미 경북여고와 남산여고에 테니스부가 있어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선수들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했어. 당시 경주여중 테니스부에 좋은 선수가 많았는데 신생 학교인 효성보다는 경북이나 남산을 선호했지. 테니스부에 애정이 많았던 교장은 선수 확보에 대한 기대가 컸던지 본인이 생각한 만큼 선수 확보가 안 되자 나를 심하게 질책했어. 또 힘들었던 것은 내가 학교의 유일한 남자 미혼 교사여서 학생들이 수업에는 관심 없고 자꾸 장난을 치려고 하는 거야.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여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에 얼굴을 붉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문제여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어.최인수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가족과 대구로 피난했다. 대구상고 시절 정구 선수로 활동했고 경북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대학 졸업 후 대구 효성여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1975년 포항 대동고등학교로 부임하면서 포항과 인연이 되었다. 1979년 포철공고로 옮겨 야구부와 축구부 창단을 주도했다. 포항시 사립중·고등학교 체육교사협의회 회장, 포항시체육회 부회장, 포항시 생활체육협의회 상임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문체부장관 표창, 경상북도교육상, 포항시 최고체육 공로상 등을 수상했고 2007년 정년 퇴임했다. 2014년 종목별 원로들로 구성된 ‘포항 체육을 사랑하는 모임’(체사모)을 결성해 회장을 맡고 있다.대담·정리 : 김도일(소설가) / 사진 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 제공 : 최인수

2023-07-30

“살맛 나는, 찾아오는 서구로”

“살맛 나는 서구, 찾아오는 서구를 만들겠습니다”민선8기 1주년을 맞은 류한국 서구청장은 서대구역세권 개발과 광역교통망 확충과 교육·복지·문화 등을 아우르는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인프라를 조성으로 살맛 나는 서구를 만들겠다는 포부다.지난해 3월 서대구역이 개통한 후 지금까지 170만 명이 이용하며 서구가 대구 서부권의 교통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10조 원이 넘는 서대구역세권 개발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줄어들던 인구도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통해 증가세를 보이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게 서구의 현주소다.특히, 서대구역세권 개발사업은 음악분수, 야외무대 등 서대구역 광장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환승시설과 문화시설이 복합공간으로 조성한다.또, 복합환승센터 건립, 서대구역 인근 4개 하·폐수처리장을 북부하수처리장 부지 지하에 통합하고, 상부에 수변 생태공원과 돔형 종합스포츠타운 등 여가시설을 조성하는 하·폐수처리장 통합지하화 사업 등 3개 사업이 오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이와 함께 구미와 경산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가 내년에 개통되고, 대구산업선철도, 달빛내륙고속철도, 신공항철도 등 4개 철도가 예정돼 광역교통망 확충과 함께 역세권개발이 완료되면 서구가 대구의 교통·물류·소비·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서구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통해 올해 7천여 세대의 인구유입이 예상되고 오는 2026년까지 16만 명이던 인구가 2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3월을 기점으로 서구의 인구 증가세를 보이면서 1988년 달서구 분구 이후 줄어들던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로 전환됐다.류 서구청장은“구민이 지역에서 즐기고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복지·문화 등 여러 분야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류 서구청장은 독서와 학습 등 교육활동을 지원하고자 권역별 도서관 건립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 취임 당시 1곳이었던 구립도서관이 현재 5곳으로 늘면서 인구 대비 도서관 수가 대구에서 가장 많은 지역으로 변모했다.추가로 평리권역 도서관이 올해 준공되고 내년도 상반기에 내당권역 도서관이 착공될 예정으로 서구 주민 누구나 10분 내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인구 고령화로 노인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권역별 노인복지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올해 1월, 인동촌 노인복지관을 개관하면서 서구에는 4개 복지관이 운영 중이고, 추가로 비산권역에 제5노인복지관을 건립하며 내년 착공예정이다.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 인프라도 구축한다.구 단위 최고 예산인 450억 원을 투입해 중리동에 헬스키즈드림센터를 건립한다.수영장과 체력단련실 등 체육시설과 영유아를 위한 실내놀이터, 장난감 도서관이 포함된 복합시설로 조성되며 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서구에는 2개 산업단지가 있어 쾌적한 대기환경 조성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중요한 사업이다.이에 서구는 대기오염 저감 및 감시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지역 특성에 맞는 대기 관리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대기오염 방지시설 설치 지원사업을 통해 염색산업단지 악취다량 배출사업장에 악취와 오염물질 제거 효율이 높은 첨단시설 교체를 지원하고 있고, 124곳 중 116곳이 올해까지 개선된다.류한국 서구청장은 “2014년 취임 첫해 서구는 회색빛 이미지가 가득했지만 정주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장밋빛 도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정주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을 꼼꼼하게 살펴 구민 모두가 서구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서구에 사는 것이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살맛 나는 서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심상선기자 antiphs@kbmaeil.com

2023-07-30

“대구 첫 그린시티 선정 쾌거”

“달서의 시대를 향한 변화와 혁신의 새 바람을 일으키 겠습니다”민선8기 1주년을 맞은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이같이 밝히고, 취임 1년동안의 성과와 소회를 밝혔다.달서구는 최근 한국은행에서 미래성장 잠재력을 나타내는 지역경쟁력지수를 평가한 결과 대구경북지역 31개 구·군 중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그동안 달서구는 기업과 주민의 관점에서 행정혁신과 효율성 제고, 도시공간구조 개편, 생활인프라 구축 등으로 매력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조성에 힘써 왔다.특히, 행정수요조사에서도 87.6% 달서구에 계속살고 싶다고 응답했다.생활 SOC복합시설을 지속 확충해 도시공간구조 혁신으로 문화와 배움, 건강과 휴식이 있는 공간을 조성으로 주민의 정주 만족도를 꾸준히 높여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이 청장은 “그동안 구민분들과 함께 대구 중심, 달서의 시대를 활짝 열어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인을 비롯한 1천300여 공직자들은 구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살피며 힘껏 달려왔다”면서 “그 결과 대구경북 31개 시·군·구 중에서 유일하게 스마트 도시 인증에 이어 대구 최초 그린시티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뤄냈다”고 언급했다.달서구는 1개 대통령상, 4개 국무총리상을 비롯해 5년 연속 일자리대상, 지역복지사업 평가 5관왕,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전국 유일 10년 연속 우수, 지역경쟁력평가에서 3년 연속 대구경북 1위를 달성은 했다.또, 대구 유일한 아동친화도시에 3회에 걸친 여성친화도시 지정 등 괄목할 만한 성과와 613억원의 국·시비도 확보했다.달서구는 도시환경과 인구구조가 역동적이다.도시공간구조 혁신으로 문화와 배움, 건강과 휴식이 있는 공간을 단계적으로 조성하고 있다.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아이꿈센터, 달서선사관, 목재문화관, 청소년문화의 집, 영어도서관 등을 건립하고 청년을 위한 시설로는 청년센터와 청년창업지원센터, 행복주택과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이 있다.중장년과 어르신을 위해 50플러스센터, 평생학습관, 가족문화센터, 은빛복지관, 노인전용체육관, 월배노인종합복지관의 복합시설도 갖추고 있다.또한, 송현희망센터와 송현복합센터, 보훈회관 건립을 추진중이며, 친환경 건강 도시 조성을 목표로 별빛캠프와 월광수변공원, 그리고 와룡산 자락길을 명품 휴식처로 변모시키는 등 그린카펫정책을 통해 녹색 달서의 이미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달서구는 AI등 디지털시대이지만 마음의 힐링을 구하는 시대인 만큼 구민들의 여가와 관광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특히, 금호강 및 달성습지 인근에 대구 서부권 관광 랜드마크가 될 ‘달성습지 에코전망대’를 계획하고, 타당성 및 기본구상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앞으로 에코전망대라는 새로운 랜드마크를 통해 달성습지, 낙동강물줄기, 고령들판 뿐만 아니라 금빛 낙조를 대구 시민들이 조망할 전망이다.대구산업선 개통과 함께 친환경 생태관광과 성서 산단의 과거·현재·미래를 학습하며, 성서아울렛타운 쇼핑 등 대구 서부권의 관광명소 탄생을 예고하고 잇다.또한, 누리호 발사에 따른 7대우주 강국을 추구하는 정부의 뜻과 국민적 관심과 기대를 담아 현재 앞산 별빛캠프에 천문우주분야 전문과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우주 관련 내용을 교과과정과 연계해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로 구성하고, 동굴형태의 지하건축물로 건립해 청소년들이 즐기면서 우주를 향한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다.이태훈 청장은 “올해로 출범 35년이 되는 달서구는 금년도 예산 1조원 시대를 맞이하는 등 양적, 질적인 면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최대의 자치구로써 대구경북 중심에 우뚝 서 있다”면서 ‘1천300여 달서 공직자들은 열정과 통찰력으로 달서구는 물론 대구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미래발전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심상선기자antiphs@kbmaeil.com

2023-07-30

“변화와 혁신의 행정도시로”

민선8기 성주군이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이병환 군수는 민선7기에 이어 ‘중단없는 성주 건설’을 다짐하며 민선8기를 힘차게 시작하며 ‘군민의 삶이 더 행복하고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군정의 역량을 집중했다.이병환 성주군수는 “공직자들의 넘치는 열정과 우수한 역량 그리고 무엇보다 군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가 있었기에 값진 성과들을 거둘 수 있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만이 발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살아남을 수 있고 이러한 자세로 남은 민선8기 역점 사업들도 차질없이 추진하여 성과물로써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행정역량 평가성주군은 민선8기 1년간 중앙 평가 7개, 경북도 평가 21개, 외부기관 평가 5개 등 총 33개 분야에서 수상하는 성적을 냈다. 중앙정부로부터 보건복지부 지역복지평가 대상, 환경부 공공하수도 운영·관리 실태점검평가 우수, 행정안전부 국민행복민원실 선정 우수, 국토교통부 건축행정평가 우수상을 받았다.경북도 수상은 지방세정 종합평가 대상, 민원행정평가 대상, 수질오염 총량관리 실태평가 대상 등이다.이 중에서 특히 정부합동평가와 연계한 경상북도 시군평가에서 4년 연속 우수시군으로 선정됐다. 정부합동평가는 지자체의 행정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성주군의 행정역량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도비 공모사업 선정민선8기 1년 동안 국도비 지원 공모사업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주요 공모사업은 △농촌협약 공모사업 총사업비 355억원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사업 58억원 △산업혁신 기반구축사업 50억원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지원사업 42억원 △공공승마시설 설치지원 사업 38억원 △지역수요맞춤지원사업 121억원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 40억원 등이다.군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확보함으로써 성주군 발전의 밑거름인 재원 마련에도 큰 성과를 올렸다.더불어 민선7기부터 중앙부처와 도청을 문턱이 닳도록 방문하며 예산확보에 일로매진한 결과 민선8기 1년차 역대 최초로 본예산 6천억 시대를 열게 되었다.이병환 성주군수는 행정전문가 출신답게 우수한 행정역량으로 성주군을 경쟁력 있는 행정도시로 만들었으며 이는 각종 평가와 공모사업 실적 및 예산 확보에 있어 눈부신 성과들이 반증하고 있다.□ 신뢰받고 일 잘하는 공직문화 실현성주군은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조직문화 혁신을 더욱 가속화 함으로써 공정하고 청렴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기틀을 공고히 다졌다. 일과 성과 중심의 인사방침에 따라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적인 마인드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창출하는 직원에 대한 인사상 우대를 확실히 했다.시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조직문화 쇄신을 위해 MZ세대 공무원과 혁신 공감 토크를 실시하는 등 수평적 의사소통의 장을 20회 이상 마련했다.특히 국민권익위원회 종합 청렴도 평가에 있어 저조한 등급을 받았던 성주군은 이병환 군수 취임 이후 민선7-8기 주요 공약으로 ‘청렴’을 선정하고 체계적인 분석과 강도 높은 반부패·청렴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2022년에는 경북도내 군단위 최고 성적인 2등급을 달성함으로써 군민들이 신뢰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행정문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민중심 소통·현장행정 강화이병환 군수는 민선8기에도 군민중심의 소통·현장행정을 더욱 강조했다. 주민과의 격의없는 소통을 위해 군수실에 ‘군민 사랑방’을 운영하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군정 철학을 바탕으로 주민과의 정책소통간담회, 민생현장 탐방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생생한 현장을 찾아 다니며 직접 눈으로 보고 군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지역현안 문제를 계속 해결해 나가고 있다./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3-07-26

“자원봉사자들의 에너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국민의 5대 의무 중에 자원봉사가 포함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 자원봉사자가 사회적 자본의 중심축이라고 하시는 분, 현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분, 교육, 워크숍, 회의는 전국 어디든 다니면서 출근은 칼같이 하시는 분. 자원봉사센터 직원들이 떠올리는 권순남 소장의 모습이다. 그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사진은 몇 장 없는 권순남 선생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최미경(이하 최) : 정말 많은 봉사활동을 하셨는데 사진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권순남(이하 권) : 어느 해 크리스마스였나. 성모자애원 아이들에게 선물을 들고 간 적이 있었어. 대개 아이들이 과자를 받으면 바로 먹기 바쁜데 자애원 아이들은 과자를 앞에 두고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지. 내가 한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과자 싫어해?”라고 묻자, “사진 찍고 먹어야 하잖아요”라고 대답하더군. 그때 ‘이 아이들은 누가 무엇을 가지고 와도 사진 먼저 찍어야 손을 댈 수 있다는 걸 배웠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내렸어. 나는 그 후로 되도록 사진을 남기지 않는 습관이 생겼지. 최 :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시군요.권 : 한번은 보호관찰소의 한풍남 소장에게 연락이 왔어. 포항, 영덕, 울릉, 경주에 있는 1천800여 명의 보호관찰소 학생들을 상담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어.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집단 상담이나 개인 상담을 하지만 재발 방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거야. 그 후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2개월간 정식 교육을 했지. 그렇게 수료한 60명의 청소년 상담원을 한 달에 한 번 보호관찰소 학생들과 1 대 1로 연결해 상담을 진행했어.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라고 당부했지. 소외된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안으라고. 그랬더니 상담원들은 아이들이 도망치면 잡으러 가고, 다시 오면 새벽까지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이들을 끌어당겼어. 아이들은 힘들고 외로울 때 잡아주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변해. 그렇게 하면 다시 탈선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는 걸 나는 믿었지. 어렵게 청소년들을 선도해 나간 결과 청소년 재범률이 40% 이상 줄었고 전국으로 확산되었어.자원봉사활동을 진작시키려면 법에 근거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1990년대 초 자원봉사단체들로부터 제기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 하반기에 자원봉사 단체들과 전문가의 노력으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발의한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이 2005년 6월 국회를 통과했고, 2006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신입 관리자 교육’, ‘자원봉사 바로 알기’, 김인하(성동구자원봉사센터소장), 2012.최 :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10년 만에 제정되었군요.권 : 자원봉사의 범위와 기본적인 사항 그리고 개념을 확립하고 자원봉사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했지.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다쳤을 때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줄 법적인 안전망도 필요했어.최 :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권 : 2002년 전국 250개 센터의 중앙협회 회장직을 맡았어. 10년 동안 정치적인 문제로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자 2003년부터 직접 국회에 들어갔어. 이 법과 관련된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이틀이 멀다 않고 찾아갔고, 공청회도 했지. 그리고 2년 가까이 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관, 단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센터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고 민간이 투자한다는 설명을 했어. 자원봉사센터를 키워서 정치적인 목적에 쓰지 않겠다며 정치인들을 설득했고, 전국에 있는 자원봉사센터도 거기에 맞는 교육을 해야 했기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 그때 교통비만 6천만 원 가까이 쓴 것 같아. 그렇게 국회를 들락거리니 한 의원이 왜 이렇게 국회에 자주 오냐고 물었어. 그래서 사정을 말하니 이상득 의원을 찾아가 보라고 하더군. 포항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4시인가 5시였어. 터미널에는 노숙자와 취객뿐이었지. 가장 환한 곳을 찾아보니 텔레비전 앞이었어. 의자에 앉아 이상득 의원에게 할 말을 정리하고 날이 밝자마자 국회로 갔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나왔는지도 모르겠어. 그런 절실함 덕분인지 2005년 6월 기본법이 통과되었다고 연락이 왔지. 1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어.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센터 소장들과 봉사자들이 박수 치고 만세 부르고 난리가 났지. 최 : 자원봉사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권 : 2007년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야. 세계 해양과학자들이 바다를 다시 살리려면 15년은 걸린다고 했어. 그런데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전 국민이 기회만 있으면 태안으로 왔지. 바위 구멍에 고인 기름을 파내고 부직포로 기름을 걷어냈어. 전부가 한마음이었지. 그렇게 3년 만에 복구되었어. 전 세계가 놀랐지. 기적이었어. 그 기념으로 자원봉사 전국대회를 태안에서 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이 길을 선택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 솔직히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때, 오해와 억측에 시달렸을 때, 내가 선택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후회도 했어. 하지만 태풍 수해 현장,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 현장 등 숱한 재난 현장을 다니며 자원봉사자들의 에너지로 세상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최 : 20년간 자원봉사센터 소장으로 재직했는데,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일하신 비결이 있는지요?권 : 모든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어. 그런데 단점만 보면 같이 일할 수 없지. 나는 사람들의 장점을 찾아내 주목하고 그것을 살려 그들 스스로 일할 기회를 많이 주었어. 그렇게 신뢰를 쌓아갔지. 또 센터를 운영하면서도 끊임없이 배웠어. 어디든 배울 기회만 있으면 달려갔고. 그런 배움을 통해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며 에너지를 얻었지.최 : 자원봉사의 발전을 위해 꼭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권 : 예전보다 자원봉사센터의 필요성과 인식에 대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자원봉사센터 직원의 업무는 많고 처우는 열악해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아. 자원봉사센터 운영 지원 지침이 지켜지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도 많고, 때로는 지침 수준이 너무 낮아서 그 이상으로 예산을 책정하기 어려워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정치적인 이유로 자원봉사센터의 거버넌스가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어. 그래서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예산 비율을 일정하게 확보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센터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해.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자원봉사센터가 제대로 자리 잡고 지원받는 것이 필요하고.다섯 번의 인터뷰를 하는 동안 권순남 선생의 휴대전화는 수시로 울렸다. 여든이 넘었는데도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돕고 함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지막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도 전화벨이 울렸다.최 : 선생님을 찾는 분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권 : 지금 전화한 이는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이상섭 국장이야. 주말에 비가 온다는데 예정된 프로그램을 바꾸는지 묻는군.최 : 무슨 프로그램인지요?권 : 자원봉사센터 초기부터 함께한 이들이 있어. 김현옥, 김영남, 안승화, 구자영, 유길준, 박윤애……. 자원봉사기본법의 중요성에 대해 밤낮없이 전국을 돌며 함께 고민하며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인데, 내가 퇴직하고 나서는 1년에 한 번씩 모여 여행을 해. 그게 이번 주말이라서 포항에 오기로 했는데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니까 이상섭 국장이 운전과 가이드를 맡기로 했어. 재작년에는 충남 보령에 있는 안성학 소장네에 놀러 갔었지. 나에겐 사람이 재산이야. 인연은 돈으로 살 수 없어. 모두가 마음으로 모이고 진심이야.최 :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더 생각나는 분들이 있으신지요?권 : 20년 가까이 센터를 운영하면서 감사한 사람들이 참 많아. 매년 1월 1일 호미곶에서 떡국 나눔 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200명 가까운 봉사자들이 전날부터 와서 떡국을 준비하는데 숙박할 곳이 없어. 그래서 대보초등학교 교실에 석유난로 두 개를 켜고 마룻바닥에서 쪽잠을 자. 그분들이 꼭두새벽부터 바람 찬 호미곶에서 달걀 프라이 3천 개를 지지고, 파를 썰어 1만 명의 떡국을 준비하지. 그분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미안해.최 :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권 :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야. 나를 내려놓고, 나를 지우는 것, 옷도 버리고 필요 없는 모든 걸 버리는 것. 그러면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오랜 기간 나와 자원봉사활동을 한 소중한 이들과 함께 즐겁고 화사하게 죽음을 준비해보려고 궁리 중이야.권순남1939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포항으로 왔다. 포항초등학교, 포항여중·고를 졸업하고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1957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자원봉사를 삶의 전부로 여기며 실천했다. 포항JC 부인회를 통해 장애재활사업 후원, 양로원 지원, 소년소녀가장 지원 등을 해왔다. 1996년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소장, 2003년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회장을 맡아 지방자치단체별 자원봉사센터 설립과 운영의 효율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정에도 앞장섰다.대담·정리 : 최미경(시인) / 사진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제공 : 권순남끝

2023-07-26

신라 삼국통일 과정의 최대 비극은 ‘황산벌전투’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조성된 ‘계백 장군 유적지’는 야트막한 수락산에 감싸 안긴 모습이다. 아래쪽으론 제법 큰 탑정호수가 푸른 물빛을 빛내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인간의 상상력이 가닿기조차 힘든 까마득한 옛날인 660년 7월 9일과 10일. 고대국가 신라와 백제는 생사결단의 싸움을 그곳에서 벌였다. 최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황산벌전투’의 현장.지지난 주. 귀하디 귀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촌음(寸陰) 사이에 결정되던 비극의 장소인 그곳을 2시간 가까이 천천히 돌아봤다. 황산벌전투에서 가장 장엄하고 비극적이며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계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죽음을 각오한 5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황산벌에 도착하기 전. 계백은 아내와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인다. “與其生辱 不如死快”라고 했다. “살아있다면 적군에게 너희들이 당할 치욕과 고통을 알기에 내가 죽일 수밖에 없다”는 뜻.거센 바람 앞에 선 촛불처럼 위태로워진 나라의 사령관. 자신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벌어질 일을 이미 예상했을 게 분명하다.1789년 프랑스혁명과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직후 왕족과 귀족들이 겪은 일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프랑스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다수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거나 혁명군의 총에 맞았고, 왕과 귀족의 아내와 딸들은 육체적 모욕을 당해야 했다. 혁명이나 전쟁이나 ‘그 이후’는 동서고금이 유사했다. ‘천하의 계백’이 그걸 몰랐을 까닭이 없다. ◆계백의 유택(幽宅) 앞에서 떠올린 슬픈 시 한 편황산벌전투는 승자인 신라 무열왕 김춘추에겐 ‘삼한일통(삼국통일)’을 이룰 출발점이 됐고, 김유신에겐 드높은 전과(戰果) 중 하나로 기록됐다.그러나, 맞서 싸운 상대편의 수장 계백은 거기서 모든 걸 다 잃었다. 수천 명의 부하와 일생을 함께해 온 식구는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논산 변두리 외진 곳. 계백의 유택으로 추정되는 무덤 주변엔 웃자란 풀들이 미지근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경주의 김유신 묘소처럼 화려하지도 않았고, 승자의 기운이 깃들지도 못한 쓸쓸한 풍경이었다. 거기 서있자니 그 역시 서러운 인생을 살아온 시인 이산하(63)의 시(詩) ‘복사꽃’이 떠올랐다.전쟁에 패한 장수가 낙향해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마지막으로물끄러미 바라보는 꽃복사밭 건너논에 물이 들어가고 있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5~6세기에도 복숭아는 있었다. ‘그해는 복사꽃의 개화가 늦었다’는 문장이 등장하는 걸로 미루어 볼 때.그랬다. 시절이 평화로웠다면 계백 역시 유유자적 복사꽃이나 바라보며, 그 복사꽃이 만들어낸 달콤한 복숭아를 맛보며 말년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계백이 복사꽃을 본 건 660년이 마지막이었다. 황산벌전투에 참전한 백제 병사 대부분이 661년 열매 맺은 복숭아를 먹어볼 수 없었다. 죽은 자에겐 저작(咀嚼)할 입이 없으므로.‘황산벌전투’는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백제라는 개별 국가가 겪은 가장 큰 비극이다. 그렇다면 이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삼국유사’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을 종합하면 이런 답이 나온다.“642년(의자왕 2년)에 백제가 신라를 공격해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하며 신라를 압박했다.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당나라에 연합을 요청한다.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당 태종의 신임을 얻고, 나당(羅唐·신라와 당나라)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660년 당 고종은 소정방을 신구도행책총관(神丘道行策摠管)으로 삼고 유백영 등과 함께 13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정벌을 명령하였다. 신라 무열왕은 김유신을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삼고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대와 합세하게 했다. 당나라는 수로를 통해 백제의 백강(白江·백마강)으로 진격했고, 신라의 5만 정예군은 육로를 통해 백제의 탄현(삼국시대 백제가 방어용 목책을 구축했던 전략상 주요한 고개)으로 출정했다.”◆백제의 절멸은 신라가 더 큰 꿈 펼칠 디딤돌로…의자왕은 모욕당하고, 계백은 처참하게 전사하고, 항복함으로써 굴욕 속에 살아남은 충상과 상영 등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신라의 하급 관료가 돼야 했던 660년 황산벌전투.신라의 정치·군사·사회적 실권을 거의 독점했던 무열왕과 김유신에게 이 전투는 고구려를 병합하고, 당나라를 축출시킬 수 있는 단단한 지렛대가 됐다.그랬기에 김유신은 피붙이인 어린 조카 반굴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알다시피 반굴은 관창과 함께 ‘신라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희생양으로 선택된 화랑 중 하나다.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수십 번 이상 사람들의 눈앞에서 재현된 황산벌전투. 그러니, 그 결과를 재삼 거론하는 건 무용해 보인다.그저 다음처럼 간략하게 요약하면 될 듯하다.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이상훈 교수의 논문 ‘황산벌의 위치와 전투의 재구성’ 인용이다.“660년 여름. 당군 13만 명이 덕물도에 도착했고, 신라군 5만 명이 경기도 이천으로 북상했다. 신라군과 당군은 합군하지 않고, 각각 행군하여 백제의 수도로 향했다. 당군은 수로로 이동하고, 신라군은 육로로 이동했다. 황산벌에서 신라군 5만 명과 백제 결사대 5천 명이 격돌했다.…(중략) 660년 신라는 당과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켰다.”신라 백성이 아니고, 백제의 백성도 아니며,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민인 기자는 신라와 백제 두 나라 중 어느 한 편이 돼 황산벌전투의 승리와 패배에 관해 기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는 객관적 입장에 서는 게 가능하다.그럼에도 계백의 무덤 앞에서 1천363년 전 ‘그날 그 자리’에서 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된 후 같은 핏줄을 가졌고,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서로를 원수처럼 죽고 죽이는 행위가 70년째 없다는 건 분명히 ‘행운’일 터. 더불어 그 행운이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까지 간절했다.어쨌건 황산벌전투를 끝으로 간헐적이고 부분적인 몇 건의 저항 이후 백제라는 고대국가의 이름은 사라진다. 기원전 18년 온조왕이 세운 나라가 678년 만에 절멸된 것이다. ◆백제 멸망 1년 후 무열왕 김춘추도 세상 떠나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백제 멸망의 원인을 ‘국내적 요인과 국외적 요인의 복합적 작용’에서 찾고 있다.백제의 마지막 통치자였던 의자왕은 ‘왕권 강화’라는 슬로건 아래 지방 귀족들의 권력을 제한·통제하려 했고, 이는 기존의 헤게모니를 포기가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지방 귀족계급의 반발을 불렀다.북으로는 고구려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졌고, ‘야심가’ 김춘추와 김유신이 존재했던 동쪽 신라의 침탈이 나라를 흔들어댔던 시기.의자왕 역시 계백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아야했던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몇몇 고문헌에 언급된 의자왕의 죽음은 아래와 같다.“660년 9월 3일 왕후인 은고부인, 자식들, 신하, 백성들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된 의자왕은 그해 11월 1일 당나라 고종 앞에서 모욕적인 항복 선언을 했다. 나라를 잃고 심한 충격을 받은 그는 망국의 회한에 괴로워하다가 며칠 만에 먼 이역 땅에서 생을 마쳤다.”황산벌전투의 패자인 계백과 의자왕은 660년 죽었다. 그렇다면, 승자인 신라 권력의 핵심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은 어땠을까.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명제를 증명하듯 황산벌전투가 벌어진 이듬해 김춘추가 죽었고, 13년 뒤엔 김유신도 지상에서의 삶을 끝낸다.백제 병합에 이어 ‘고구려 병합’이란 삼국통일의 제2막을 열어젖힌 건 김춘추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조카였던 김법민(金法敏). 문무왕(文武王)이다.(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7-25

지역경제 회복 역점 ‘역대 최대’ 국비 확보… 미래 100년 박차

김재욱 칠곡군수는 취임 1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 대신 민생현장 방문과 봉사활동으로 민선 8기 2년 차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평소 격식에 얽매이기보다 소통과 효율을 중시하는 김 군수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김 군수는 군정 구호를 ‘곳간 채우고, 경제 살리고, 군민 늘리고’로 정하고 지난 1년간 5대 목표, 73개 공약을 중심으로 군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 튼튼한 칠곡 미래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6월 군수직 인수위원회 출범과 함께 ‘칠곡 세일즈맨’을 자처하며 국·도비 확보에 총력전을 펼쳐 왔다.대통령실은 물론 중앙부처·경북도청을 찾아 사업추진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직접 발로 뛰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칠곡 복합커뮤니티센터 설계비 등 90억원(총사업비 465억원) △첨단 농기계 실증 랩 팩토리 설계비 등 95억원(총사업비 233억원) △칠곡할매문화관 200억원 △문체부 법정문화도시 150억원 △농촌협약 공모 선정 400억원 △한국산업단지공단 아름다운거리조성 사업 11억원 △문화관광형 시장 10억원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44억원 등 역대 최대 규모의 국비 확보를 이끌었다.김 군수는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을 살려 경제 군수로 지역경제 회복에 역점을 두고 군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 군수는 민선 8기 핵심 공약과 주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변화하는 행정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산업정책 특별팀’및 ‘도시경관팀’을 신설하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기업투자, 각종 공모사업 등을 통한 칠곡의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과 추진에 중점을 뒀다. □ 호국을 넘어선 문화·관광산업 육성민선 8기가 출범하면서 칠곡군의 가장 큰 변화로 문화와 관광 분야로 꼽히고 있다.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로 인해 칠곡군은 과거 지향적인 ‘호국의 도시’ 이미지가 형성됐다. 김 군수는 천주교인이 평화를 갈망하며 걸었던 한티가는길을 통해 칠곡군을 미래지향적인 ‘평화의 도시’로 확장 시켜 나가고 있다.천주교 대구대교구와 MOU를 체결하고 순례길과 안내판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 구간별로 쉼터를 마련하고 동명성당과 지천면 창평리에 숙박 시설을 조성했다.또 지난해 12월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칠곡군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4차 법정 문화도시’에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칠곡군은 5년간 15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개인과 마을에 형성된 인문 자산과 가치를 바탕으로 문화를 통해 미래자산을 형성하고 인문 도시로써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깨친 다섯 할머니의 글씨체인 칠곡할매글꼴이 대통령 연하장에 사용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끌어냈다.윤석열 대통령은 김재욱 칠곡군수와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했고, 이 자리에서 200억원을 투입해 ‘칠곡할매문화관’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칠곡할매글꼴은 제주에서 전이수 작가와 특별 기획전을 열면서 하나의 문화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와 함께 지난해 열린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서 축제 공간을 처음으로 왜관 원도심으로 확장했다. 왜관시장은 개설 이후 역대 최다 인파가 방문했고 축제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올해도 축제 본연의 의미는 살리면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행사와 원도심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마련한다는 계획이다.이 밖에 소규모 축제인 ‘호국평화 야시장 및 프리마켓’을 개최해 왜관시장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육성하고 있다.□ 경제도시 구현김 군수는 군정 최우선 목표를 지역 경제 활성화와 미래 먹거리 발굴에 두고 전문 경영인의 능력을 발휘하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왔다. 취임 초기부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산업 다각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고부가가치 성장산업 유치를 위한 발전 전략 수립에 착수했다.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첨단 농기계 실증 랩 팩토리 조성사업에 선정돼 첨단 농기계 산업 선점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총사업비 233억원(국비 95억원, 지방비 138억원)을 투입해 왜관읍 금산리 일대에 랩 팩토리 센터를 조성해 농기계 첨단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한국산업단지공단 ‘활력 있고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 선정으로 왜관1공단 내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근로자종합복지관 일대 1.7㎞ 구간에 칠곡할매글꼴을 활용한 산업단지 상징물, 미디어아트형 마이크로뮤지엄 등을 설치한다.공장담장녹화, 기존 보도에 띠 녹지 조성, 야간 시야 확보를 위해 LED 가로등으로 교체하는 등 걷고 싶은 거리, 건강한 거리, 안전한 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긴밀한 협업을 통해 칠곡군은 현대자동차 출고량 1위에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영남권 교통·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이 밖에 김 군수는 칠곡군 베트남·태국 무역사절단을 이끌며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 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무역사절단은 베트남 하노이와 태국 방콕에서 89건, 4천216만 달러의 수출 상담액과 1천225만 달러의 수출 MOU를 체결했다.김재욱 군수는 현지 바이어에게 “군이 기업과 제품의 우수성을 보증한다”라며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을 받았다.이와 함께 (주)동일정공과 MOU를 체결하고 왜관산단에 180억 원 투자와 80명의 신규 고용을 끌어내고 LG전자 가전 물류센터와 외국계 기업 물류센터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김 군수는 대구권광역철도망, 신공항 등 광역교통망 구축으로 달라질 입지 조건을 활용해 물류·관광 등 산업 전반에 걸친 파급효과를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각오다. □ 교육 환경 개선을 통한 도시 경쟁력 강화김 군수는 자치단체장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교육에 관한 관심과 열정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교육이 바로 지역의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물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만나 지역 교육 현안 사업을 건의했다.특히 일반형 중학교 대비 과학, 영어, 수학 등의 특정 과목 교육 시간을 늘린 중점학교 지정과 칠곡군 지천·동명 지역 중학교 학군을 대구 북구 지역으로 확대하는 학군 조정 방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그는 영재교육원 확대 운영도 건의하며 교육 수요에 따라 지자체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다부동전투 역사 교과서 수록을 건의하며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균형 잡힌 역사관 확립을 위해서도 노력했다.이 밖에 미래교육지구 공모사업 선정을 통해 지역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돌봄과 교육에 관한 관심을 높여 나가고 있다.□ ‘100년 칠곡’ 디자인 원년김 군수는 “2023년은 더 큰 미래를 준비하는 100년 칠곡 디자인 원년으로서 향후 관광·물류·교통의 중심지로 급부상할 것에 대비해 체계적인 도시설계에 나설 절호의 기회”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첨단산업 관련 정책을 발굴하고 정부 정책 동향을 분석해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신산업정책 특별팀과 공공디자인 진흥 계획을 세우고 경관 개선 사업을 추진하는 도시경관팀을 신설했다.도시계획과 공모사업 등과 관련한 전문가 포럼·세미나도 여러 차례 개최해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주민대표단·자문단 구성을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정책 수립 용역에 착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항상 낮은 자세로 군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마음가짐만큼은 처음과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김 군수는 “수많은 점과 선이 모인 탄탄한 설계 위에 미래의 후손들이 다채로운 색깔을 칠할 수 있도록 군민과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바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칠곡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칠곡/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3-07-24

시민사회에 뿌리내리는 자원봉사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완벽해야 한다”는 게 권순남 선생의 소신이다. 미국 뉴욕에서 세계 자원봉사 지도자 워크숍이 열렸을 때 권 선생은 자비로 참여한다. 그 열정으로 숱한 시련을 극복하며 우리 사회에 자원봉사의 가치를 확산해 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최미경(최) : 1997년에 세계 자원봉사 지도자 워크숍에 가셨다고 들었습니다.권순남(권) : 전 세계 자원봉사 리더들이 미국 뉴욕에 모인다는 소식을 들었어. 정부의 담당 부서를 찾아가 “자원봉사센터만 만들어놓으면 뭐 하느냐. 운영체계와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 30명 이상 한국에서 출발해야 동시통역사를 붙여준다고 하니 전국에 있는 자원봉사센터 소장과 리더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 하지만 1997년은 IMF가 터진 해였어. 정부도 기업도 지원할 수 없으니 알아서 가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지. 누가 자기 돈으로 뉴욕까지 워크숍을 가겠는가. 하지만 나는 가야 했어. 적금 하나를 헐어 혼자 뉴욕행 비행기를 탔지. 최 : 아무런 후원도 없이 혼자 뉴욕에 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권 : 무서울 게 없었지. 사명감이 있었으니까. 뉴욕 힐튼호텔에서 워크숍이 진행된다는 정보만 가지고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했어. 택시를 타려니 표를 하나 주며 기다리라고 하더군.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답답했어. 한 시간쯤 있으니까 흑인 기사가 왔어. 우여곡절 끝에 밤 11시쯤 호텔에 도착했지. 그런데 프런트에 예약자명을 대니 내 이름으로 예약된 건 없다고 해. 아시아 지역 이사로 워크숍에 참석 중이던 이강현 박사가 내가 묵을 룸을 예약하기로 했거든. 그는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지. 로비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강현’으로 예약자를 찾으니 룸이 있었어. 이강현 박사가 한국 대표 참가자들의 방을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해놓은 걸 뒤늦게 알았지. 자정이 지나서야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누웠어.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긴장한 탓에 잠이 오지 않더군. 새벽 5시부터 호텔 조식이 나온다는 말에 다음 날 일찍 방을 나섰지. 그런데 세계에서 수천 명이 워크숍에 왔는데 음식이 남아나겠어? 토스트와 과일 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우유와 오렌지주스밖에 남아 있지 않았어. 별수 없이 우유 한 잔 마시고 오전 9시부터 워크숍을 강행했지.그날 워크숍은 조를 나눠 진행되었다. 청소년, 노인, 일반, 장애인 등 다양한 대상과 주제로 세분화되었고, 권순남 선생은 7명과 한 조가 되어 청소년 자원봉사에 대한 토론에 참여했다.권 :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한데 말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지. 돈을 들여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얻고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어. 조의 리더부터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머리에서 가슴까지 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어.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지.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에 더듬더듬 말했어. “나는 한국에서 왔다. 여기 공부하러 왔다. 영어는 읽는 것은 되지만 말은 안 된다. 여러분들이 나를 도와달라.”최 : 참여자들 반응은 어떻던가요?권 :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 경력자였어.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다 같이 박수 치며 “우리가 권순남을 도와주자”고 하더군. 각자 청소년 자원봉사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냈고, 리더는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했어. 나는 다른 사람 말은 하나도 안 들리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지. 그때 리더가 큰 종이를 토론 참여자들에게 나누어주었어. 나는 “한국 청소년들은 입시 중심으로 자원봉사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여러분들이 고민해달라”고 적었어.권순남 선생은 워크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명함을 전달했다. 한국에는 자원봉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자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정성이 통했는지 워크숍이 끝나고 두 달 후 뉴욕에서 워크숍 결과지와 청소년 자원봉사 키트 자료가 왔다. 이후 권 선생은 대학생과 청소년 자원봉사에 더욱 매진했다. 또한 한동대 도형기 교수를 센터 운영위원으로 위촉하고, 사회복지과·심리학과 교수들이 자원봉사 리더 교육에 참여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준비는 대학교 내 자원봉사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최 : 한국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학생들의 공부에만 집중하잖아요. 이런 환경에서 봉사활동을 이끌어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권 : 그랬지. 5년 정도 중·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청소년 봉사에 대해 설명했지만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어. 고민하던 차에 포항고등학교 청소년연맹에 소속되어 있던 최현우 선생님을 자원봉사센터 청소년단장으로 모셨지.최 : 흔쾌히 승낙하셨나요?권 : 최현우 선생님이 퇴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항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센터로 모시고 와서 도와달라고 했어. 학교에는 자원봉사 전담 교사가 없으니 각 학교별 청소년연맹 선생님을 자원봉사 지도자로 섭외해달라고 부탁했지.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해야 봉사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다는 내 생각에 최현우 선생님도 동의하셨어. 최 선생님은 청소년연맹에 있던 선생님 10명을 불러 자원봉사 지도자 교육을 했지.1998년 권순남 선생은 최현우 청소년단장과 청소년자원봉사단을 꾸려 발대식을 가졌다. 봉사단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조끼와 배지를 제작하고 청소년 자원봉사활동 사례 발표회와 청소년봉사단 예술대축제를 진행했다. 포항의 청소년 자원봉사 사례는 전국 최초였으며, 타 시·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최 : 청소년과 대학생 자원봉사단뿐 아니라 다양한 봉사단을 구성하셨지요?권 : 청소년 봉사자들에게는 즐거움이 필요했어. 그래서 문화예술경연대회(예술대축제)를 준비했는데 장소가 필요했지. 롯데백화점 포항점에 가서 행사 취지를 설명하자 옥상을 빌려주었어. 음향 시설이 되어 있는 곳이라 금상첨화였지. 백화점 상품권도 후원받았어. 감사한 마음에 자원봉사 모범 기업으로 올리자 롯데백화점 점주들이 스스로 봉사팀을 만들었어. 최 : 포스코 사회봉사단도 창단되었죠?권 : 포스코를 찾아가서 자원봉사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미 부서별로 동네와 MOU를 맺어 농기구를 수리해주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기업 바깥으로 나가서 하는 것만 봉사가 아니라 직원 간의 소통 그리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봉사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설득했지. 그렇게 포스코 자원봉사자 교육이 시작되었어. 이강현 박사, 이윤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거물급 강사를 모시고 포스코 과장급, 팀장급을 모아 자원봉사의 가치와 인식 개선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지.최 :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권 : 1996년 재단법인 한울타리에서 포항시로부터 운영을 위탁받아 12월 16일 자원봉사센터를 개소하고 소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개소 후 3년간 정말 힘들었어. 중앙정부의 시책으로 개소했지만 자원봉사센터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이해도가 낮았고 예산 지원도 적어 센터 직원의 급여와 사업비가 늘 부족했지. 게다가 자원봉사센터에 대한 홍보가 되지 않아 오해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도 있었고.최 : 어떤 오해인가요?권 : “자원봉사를 하는 데 왜 돈이 필요하냐”, “그렇게 조직을 키워서 정치에 입문하려고 하냐?” 등등의 오해와 억측이었어. 지역 언론도 터무니없는 기사로 센터를 매도하고 참 힘든 일이 많았지. 결국 1999년 3월에 나와 직원 모두 사표를 제출하고, 법인도 포항시에 반납했어.1996년부터 1998년까지 포항시자원봉사센터는 청소년자원봉사단, 주부자원봉사단, 도서관자원봉사단 등 크고 작은 봉사단을 조직했고 일반 교육사업부터 관리자교육, CEO 교육 등 자원봉사에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주관했다. 또한 자원봉사 박람회, 이동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인형극, 행복마을만들기, 자원봉사물결운동 등 늘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했다. 권순남 선생의 이러한 노력은 포항시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위탁법인을 찾는 과정을 거쳐 볼런티어21(현 한국자원봉사문화) 포항지부와 1999년 4월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권 선생은 지부장이자 소장으로 본부의 운영 매뉴얼과 교육콘텐츠를 지원받아 좀 더 전문적으로 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권 : 일보다 사람들에게 자원봉사센터를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어. 시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예산 지원의 필요성을 설명하면 부정적으로 인식할 때가 더 많았지.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행정기관이나 시의회에 우리가 부탁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없겠다 싶더군.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이 ‘무형의 거대 자본’이라는 사실과 자원봉사센터는 ‘인적자본’을 축적하고 가동하는 시스템임을 증명하려고 더 많이 고민하고 투자를 진행했지. 센터를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밤 12시에도 모여 프로그램을 고민했어. 자원봉사자를 요청하는 기관에 봉사자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자원봉사에 관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하니 점차 시민사회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지.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센터 직원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불만 없이 최선을 다해준 거야.권순남1939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포항으로 왔다. 포항초등학교, 포항여중·고를 졸업하고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1957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자원봉사를 삶의 전부로 여기며 실천했다. 포항JC 부인회를 통해 장애재활사업 후원, 양로원 지원, 소년소녀가장 지원 등을 해왔다. 1996년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소장, 2003년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회장을 맡아 지방자치단체별 자원봉사센터 설립과 운영의 효율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정에도 앞장섰다.대담·정리 : 최미경(시인) / 사진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제공 : 권순남

2023-07-23

기업유치로 경기불황 타개 ‘중단없는 김천발전’ 역량 집중

김충섭 김천시장은 민선8기 1년 동안 신규 산업단지 기업유치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특히 중소기업 경영활동 지원과 소상공인 및 골목상권 활성화, 위기에 내몰린 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경제, 일자리, 복지, 안전’등 민생안정 정책에 최우선을 두고 시정을 운영했다.김 시장은 “지난 1년은 민선 7기에 다져 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더 큰 김천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 3년은 미래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고 누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김 시장 이어 “그동안의 노력을 발판 삼아 공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중단없는 김천발전’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산업단지 확장, 기업유치 성과심혈을 기울인 김천일반산업단지 3단계 사업은 준공하기도 전에 (주)쿠팡, 아주스틸(주), 덕우전자(주), (주)에스에스라이트, 네오테크 등 37개 기업으로부터 3천529개의 일자리와 7천721억원의 투자유치를 이끌어내면서 100% 완판 분양되는 성과를 거두었다.현재 20개 기업이 공장건립을 마무리하고 운영에 들어갔다.3단계 산업단지의 성공적인 조성을 발판 삼아 38만평 규모의 4단계 산업단지도 조성하고 있다.골목상권을 중심으로 소상공인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내 최대 규모로 특례보증을 확대하고, 서민들의 가계에 보탬이 되는 김천사랑상품권도 최대 규모인 2천587억원의 판매 실적을 거두었다.지난해 11월에는 관내 6개 기업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수출 상담회를 개최해 현지 25개사 바이어와 상담하여 316억원의 실적을 올렸으며, 98억원의 현장 계약도 맺는 성과도 냈다.□ 외국인 근로자 활용 농번기 인건비 안정올해 김천시에는 외국인 계절근로자(캄보디아, 라오스) 100여 명과 김천대 유학생 인력풀 50명, 농가 직고용(캄보디아)50명 총 200명의 외국인과 180명의 내국인 인력 등 380여명의 인력을 활용해 김천형 인력중개 시스템을 구축하고 농업 분야 인력난을 해소하고 있다.이러한 노력으로 농번기 치솟던 인건비가 안정돼 농민들의 영농비 부담 경감과 농번기 일손부족을 동시에 해결했다.아울러 김천시의 자매결연 도시인 서울 강북구와 도농 연계 사업을 통해 농촌 일자리 사업도 추진했다. □ 십자축 광역철도망 제2경부축 형성미래 100년 먹거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광역교통망을 확충해 김천 발전의 청사진도 크게 그려 놓았다. 김천시에서 경남 거제시까지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는 총연장 177.9㎞에 4조8천억원을 투입해 2028년 개통한다. 이와 관련해서 2022년 1월, 김천역사 환승을 위한 증·개축비 89억원을 포함해 기본계획을 확정·고시했고 현재 기본 및 실시설계를 추진 중에 있다.또한 서울 수서∼경남 거제를 잇는 국토내륙철도의 유일한 단절 구간인 김천∼문경 구간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교통 중심지로 거듭나게 됐다.2022년 11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중부내륙철도(김천∼문경) 건설사업은 총연장 71㎞에 1조 2천억원이 투입되며, 사업이 완료되면 남부내륙철도를 연계하여 수도권(서울 수서)과 남해권(경남 거제)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국가 대동맥을 구축하게 된다. □ 미래발전 전략산업 육성김천시는 ‘튜닝카성능안전시험센터’를 유치해 자동차 관련 산업을 미래의 동력산업으로 중점육성하고 있다. 이 센터가 완공되면 김천시가 비수도권 튜닝 특화지역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나 시험센터 주변으로 약 12만평 규모로 조성될 예정인 자동차서비스 복합단지가 완공되면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주로 있는 튜닝기업들의 입주를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현재 입주의사를 밝혀온 역외기업들이 40여개 이상이나 되며, 우수한 기업들의 유치는 곧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어 김천시에는 이전에 보지 못한 신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또 하나 김천시에 주목할 만한 미래산업은 바로 드론산업이다. 드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으며, 일부산업은 이미 드론으로 대체되었고 그 사용분야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드론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자격획득 및 시험운영기관의 필요성이 증가돼 지역거점 드론실기시험장을 유치했다. 2026년까지 연평균 29% 급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향후 드론시장에 주요 인프라 구축을 선점해서 드론산업을 지역 전략산업으로 활성화시킬 계획이다.□ 다시 찾고 싶은 관광휴양도시김천시 교동 연화지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벚꽃 명소가 되었다. 올해 다녀 간 관광객만 18만명이나 된다. ‘보라빛 향연 김호중 소리길’과 연계돼 김천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김천 출신의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심찬양 작가가 김천문화예술센터 측면 벽에 독특한 벽화를 그려 넣어 관광 특화거리에 의미있는 벽화로 자리잡아 많은 시민과 관광객의 시선을 모았다. 또한 전통한옥촌, 숲속 야영장, 숲체원 등 새로운 트랜드 변화에 걸맞은 휴양시설을 확충하고 사명대사공원 미디어아트, 사명대사 모험의 나라, 추풍령 관광자원화사업 등 체험프로그램과 즐길거리를 강화했다. 김천시만의 특색있고, 차별화된 관광자원 개발로 머물고 즐기는 체류형 관광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 □ 농산물종합유통타운 건립김천시는 농업의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해 핵심적인 하드웨어 중 하나인 ‘농산물종합유통타운’ 건립에 나섰다. 시는 2022년부터 2027년까지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김천휴게소 뒤편 농소면 신촌리 일원 10㏊를 대상으로 사업비 480억원을 들여 농산물종합유통타운을 건립할 예정이다.농산물종합유통타운은 농산물 생산·유통·소비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면서 로컬푸드, 다변화된 식문화, 농업서비스까지 포함하는 혁신적인 모델의 농업 유통·물류 시설이다.또 농업관련 시설을 하나의 장소에 집약화한 공간적인 개념이자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해 체험, 가공, 식품개발 등 6차 산업까지 아울러 미래형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식품 복합 문화공간이기도하다.‘과수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농산물 선별·포장 등 상품화와 수집·저장·물류를 담당하는 복합시설로 농산물종합유통타운의 핵심시설이다. □ 공약 이행평가 4년 연속 SA(최고등급)대외적인 평가에서도 전국 지자체 평가 1등급, 지방자치단체 일자리대상, 농식품 수출정책 평가 대상, 행정안전부 재난관리 평가 우수기관 선정 등 여러 분야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냈다.특히,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에서 시행한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이행 평가에서 도내에서는 유일하게 4년 연속으로 최우수 등급을 받아 그 의미를 더했다.이같은 결과는 전국적으로 시부에서는 김천시와 경기도 시흥시 단 두 곳밖에 없을 정도로 김천시가 공약이행에 많은 공을 들인 성과라 할 수 있다.김충섭 김천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우리 김천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염원과 미래를 위한 꾸준한 투자로 도시 규모가 커지고 경쟁력 또한 높아지고 있다. 희망은 가슴속의 열정에서 싹 트고, 그 열매는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의 몫이다. 1천200여명의 공직자와 더불어 중단없는 김천발전을 위해 뛰고 또 뛰겠다”고 밝혔다./나채복기자 ncb7737@kbmaeil.com

2023-07-20

끝없는 초록… 제주의 숲에서 즐기는 온전한 휴식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예찬한 것처럼 숲에는 언제나 청량한 기운이 넘친다. 제주의 숲은 화산 지형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광과 울창한 원시림이 어우러져 이채로운 느낌을 준다. 사려니숲길 외에도 제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숲길이 꽤 많다. 한적하게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길부터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까지 토박이들만 아는 제주 숲길을 소개한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껴보면 어떨까?주민 즐겨 찾던 산책로 사색의 길 단장 ◇ 삼다수숲길… 빽빽한 삼나무 사이 이국적 풍경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의 삼다수 숲길은 원래 지역 주민이 즐겨 찾는 산책로였다. 제주를 대표하는 생수인 삼다수 공장이 인근에 있지만 삼다수숲길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의외로 드물다. 원래 이 지역은 말을 풀어 기르는 방목터이자 사냥터여서 ‘테우리(말몰이꾼)’와 ‘사농바치(사냥꾼)’만 출입하던 곳이었다. 2010년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이 숲길을 정비해 ‘삼다수숲길’이란 이름을 붙여 개장했다.삼다수숲은 용암이 식은 땅 위에 형성됐다. 숲길 초입의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다. 삼나무들은 1970년대에 심은 것인데 어느새 훌쩍 자라서 30m가 넘는 거목이 됐다.숲길에 들어서자마자 상쾌한 피톤치드 기운이 몸 구석구석 스민다.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들이 만든 그늘도 시원하다. 삼나무 아래에는 고사리와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어 마치 원시림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삼다수숲길은 언제나 한적한 분위기여서 오롯이 자신만 생각하며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숲길은 3개 코스로 나뉜다. A코스 꽃길은 1.2㎞, B코스 테우리길은 5.2㎞, C코스 사농바치길은 8.2㎞다. A코스는 짧은 ‘맛보기용’ 산책로로 마을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가장 인기있는 B코스에선 탐방로 옆으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다. C코스 사농바치길은 온전히 숲길을 다 걷는 코스다. 봄에는 복수초 군락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산수국, 가을에는 하천을 따라 물든 단풍을 볼 수 있다. ◇ 머체왓숲길… 영화 ‘킹덤’ 속 울창한 원시림서귀포시 한남리에 있는 머체왓숲길은 드넓은 목장 초원과 원시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머체는 돌이 엉기정기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 왓은 밭을 일컫는 제주어다. 머체왓은 ‘돌로 이뤄진 밭’이라는 뜻이다. 머체왓숲길은 최근 전지현이 주연한 영화 ‘킹덤’과 예능 ‘네바퀴집’ 등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제주 중산간의 울창한 원시림을 탐방할 수 있는 숲길은 날것 그대로의 제주 숲을 만나게 한다.숲길 입구를 지나면 방목 중인 소들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구가 꺾인 출입구가 나온다. 한라산을 보며 초지를 가로지르면 잠시 뒤 어두컴컴한 숲길이 시작된다. 길은 대체로 완만하며 깊이 들어갈수록 울창한 활엽수가 펼쳐져 있다. 쌓인 돌 위로 짙은 이끼가 자라는 특이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머체왓숲길 외에 머체왓소롱콧길(6.3㎞), 서중천탐방로(7.0㎞) 등 3개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머체왓숲길 코스 중간 즈음에는 제방남기원쉼터가 있고, 전망대에서는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망원경도 있다. 소롱콧길 코스 삼나무숲에는 40~50년 전 주민들이 실제 거주했던 머쳇골 옛집터도 볼 수 있다. ◇ 화순곶자왈생태탐방숲길… 암석·가시덤불·야생식물 한눈에곶자왈은 제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이지만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화순곶자왈생태탐방숲길은 의외로 덜 알려졌다. 화순생태탐방로는 곶자왈 생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곶자왈이란 제주 말로 ‘숲’을 의미하는 ‘곶’, 암석들과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곳을 가리키는 ‘자왈’이 합쳐진 제주 방언이다. 곶자왈은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 지형으로 나무와 돌 따위가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제주의 독특한 숲을 의미한다. 돌과 바위를 비집고 태어난 나무들은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로 자라났다.탐방길을 걷다 보면 아열대 식물인 천량금, 주름고사리, 개톱날고사리 등 남방계 식물은 물론 한라산 고지대에서 서식하는 좀고사리와 골고사리, 큰지네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도 볼 수 있다. 탐방로는 왕복 3.2㎞의 코스인데 가족끼리 탐방한다면 자연곶자왈길보다는 데크길이 조성된 송이산책로가 좋다. 걷다 보면 소나 말을 방목해 기르기 위해 쌓아 놓은 돌담인 ‘잣담’을 볼 수도 있고, 때로 방목 중인 소떼와 마주칠 수도 있다. ◇ 비밀의 숲… 감성사진 최고의 핫플레이스제주 스냅 사진의 비밀 명소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한 안돌오름 편백나무 숲길은 이미 많은 이들이 찾는 숲 명소가 됐다. 길 양쪽에 펼쳐진 나무사이로 난 오솔길이 이색적이다. 원래 사유지였으나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했다.해가 쨍한 날, 흐린 날, 비오는 날 어느 때나 가도 분위기가 좋다. 날씨에 따라 다른 색을 내는 숲에서 다양한 감성 사진을 찍을 수 있다. MBC 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신혼여행을 온 임수향과 하석진이 손을 잡고 걷다 이마에 입맞춤하던 곳이기도 하다. 숲길은 공원처럼 조성돼 있는데 돌담길, 야자수와 그네 오두막, 나홀로 나무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초록 숲과 잘 어울리는 민트색 푸드 트럭은 비밀의 숲 전용 카페로 아메리카노, 한라봉주스, 타르트와 쿠키, 빵 등 다양한 디저트를 팔고 있다. 원래 유랑하는 푸드 트럭이었지만 이제는 안돌오름 비밀의숲에 정착해 이곳을 관리한다. 숲이 생각보다 넓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입구에서 지도를 촬영해 참고하는 게 좋다. 휴무일은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공지한다. ◇ 절물자연휴양림… 삼나무 숲속 데크서 즐기는 쉼봉개동 화산분화구 아래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림에 조성된 숲이다. 수령이 30년 이상 된 울창한 삼나무숲으로 삼나무 외에도 소나무, 산뽕나무 등이 서식한다. 까마귀와 노루도 볼 수 있다. 쭉 뻗은 삼나무숲 곳곳에 마련된 평상처럼 넓은 데크에 앉아 책을 보거나 누워서 나무 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인다.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맡으면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지는 듯하다.휴양림 가운데 자리 잡은 절물오름은 해발 650m의 기생화산으로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말발굽형 분화구가 펼쳐진다. 분화구 전망대에 오르면 제주시와 한라산이 내다보인다. 오래전 절 옆에 약수가 있어 ‘절물’이라 이름 지은 제주시가 지정한 제1호 약수터도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예전에는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제주=글·사진 최병일 작가

2023-07-20

“엄마 인생의 마지막 꿈이라면 도와줄게”

영흥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에 눈을 뜬 권순남 선생은 더 넓은 세계로 걸어 나온다. 포항JC 부인회 활동으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은 권 선생은 포항시로부터 자원봉사센터 소장직을 제안받는다. 자원봉사센터 소장직을 수행하려면 자신의 삶을 센터에 오롯이 바쳐야 하는데 권 선생은 어떤 선택을 할까?최미경(이하 최) : 부군께서 포항JC에서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포항JC 활동과 관련해 각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권순남(이하 권) : 어느 날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울릉도 아이들이 한 번도 기차를 타 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 아이들의 소원이 기차를 타 보는 거라는 얘기를 듣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었지. 1977년이었어. 울릉도 아이들은 난생처음 기차를 타 보았고 서울 방송국 견학도 했지. 최 : 부군의 JC 활동에 내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권 : 남편이 나를 믿어준 만큼 나도 힘을 보탰지. 1970년대 말 남편이 청년회의소 경북지구대회를 포항에서 유치하고 싶어 했어. 포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재정적인 면에서 걱정이 앞섰지. 그래서 포항JC 임원 부인 7명을 모아 연말 송년회를 열자고 했어. 젊은 남성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애쓰는데, 우리도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며 마음을 모았어. 그런데 우리 여성들이 뭘 할 수 있겠어? 그때만 해도 사회활동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니 마땅한 대안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더군. 그러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지. ‘살림살이의 기술’이 바로 그것이었어. 김밥 잘 싸는 사람. 감주 잘 만드는 사람. 동동주 만들어올 사람……. 이렇게 하나씩 맡아 송년회를 준비했지. 나는 과일을 대신할 과자 안주를 맡았는데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어 고민이었어. 서울에 가서 외국 음식 요리책을 구입해서 보니 이쑤시개에 치즈, 체리, 메추리알 이런 것을 끼운 게 눈에 띄더군. 그런데 막상 해보니 모양새가 영 나질 않았어.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양배추에 쿠킹 포일을 씌워 이쑤시개에 끼운 과자 안주를 멋지게 만들어냈지. 테이블 세 개를 연결해서 그 위에 각자 준비해간 음식을 세팅해놓고 포항JC 회장에게 오라고 전화했어. 120여 명의 포항JC 회원 중 60여 명이 참석했는데 차려놓은 음식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지. 월례회에는 몇 명 정도 참석하느냐고 묻자 30~40명 정도라고 했어. 왜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일을 마치고 오면 주변 식당이 문을 닫아서 저녁도 못 먹고 회의한다고 하더군. 그러니 열정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곳에 오겠어? JC 회원들이 송년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다음해에는 자기 아내도 끼워달라고 해서 회원 아내들을 모아 팀을 짰지. 혼자는 어렵지만 모두 함께하니 회비 30만 원으로 100만 원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송년 파티를 통해 권순남 선생은 포항JC 경북지구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남편을 도왔다. 포항JC는 경북지구대회뿐 아니라 1990년 8월 전국대회까지 유치했다.최 : 전국대회는 경북대회와는 수준이나 규모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권 : 숙박이 가장 큰 문제였어. 전국에서 천여 명의 JC 회원이 오는데 포항에는 이들을 수용할 숙박 시설이 없었어. 포항공대로 찾아가서 총장님을 만났지. JC 전국대회를 통해 포항공대와 포스코를 홍보하면 어떻겠냐고 했어. 포항공대도 득이 되고 지역사회에도 득이 되니 포항공대 강당과 기숙사를 빌려주면 고맙겠다고 부탁했지. 다행스럽게 총장님이 부탁을 들어주셨어. 그렇게 포항공대 방학에 맞춰 JC 전국대회를 개최했어.최 : 다른 문제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권 : 두 번째 문제는 음식이었어. 한 번에 천 개의 도시락을 만들어본 식당이 포항에는 없었거든. 흰밥, 고기, 전, 김치가 들어간 도시락 샘플을 만들어 승리식당에 찾아갔지. 샘플처럼 천 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어. 그런데 당일 1200명이 온 거야. 어떻게 했겠어? 한 시간 동안 포항JC 부인들이 도시락 200개를 만들었지. 그리고 포스코를 견학하고 돌아온 전국 JC 회원들에게 천 개의 아이스 수건을 내놓았어. 견학 후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새까매진 얼굴과 손을 씻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지. 그래서 전국대회 며칠 전에 천 개의 수건을 구입해 포항JC 부인들을 모두 불러 수건을 하나하나 접어서 말았어. 그렇게 꺼낸 아이스 수건과 수제 도시락을 받아든 전국 JC 회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지. 포항에서 열린 JC 전국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후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깨닫고 포항JC 임원 부인뿐 아니라 회원 부인도 함께할 수 있는 포항JC 부인회를 1981년 결성하게 되었다. 포항JC 부인회는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나눔 운동을 전개했고 장애인 재활 후원사업도 진행했다.최 : 그 큰 행사를 포항에서 치렀다는 자긍심이 대단하셨겠어요?권 : 예쁘게 보일 생각은 하나도 없었어. 회장 부인만 잘 차려입고 나오라고 하고, 30명 정도의 JC 부인은 새벽부터 나와서 머리를 질끈 묶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 모두가 사명감을 갖고 일했기에 신이 났어.그 일을 계기로 1982년 국제청년회의소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하게 되었다. 권순남 선생은 사람의 힘을 믿었다. 좋은 의도를 갖고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늘 믿었다. 그러한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하게 하는 연대를 만들었다.권 : 1996년 4월 포항시 공무원이 나를 찾아왔어. 당시 시장이 박기환이었는데 포항JC 활동을 오래한 분이었지.최 : 그러니까 박기환 시장님이 권순남 선생님의 활동을 알고 자원봉사센터 소장직을 부탁한 거군요.1995년 정부는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8올림픽이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둬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질서정연하고 자발적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 전 세계가 감동했고 올림픽 역사상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 행정자치부 최형우 장관이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고 자원봉사자 교육과 투입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 미국 등 5개국을 벤치마킹했다. 그 결과 자원봉사를 관리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고, 그 센터는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해야 한다고 보고되었다. 이를 통해 행정자치부에서 16개 시·도에 시범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센터를 설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권 : 포항시 차원에서 자원봉사센터를 만들어야 했고 이를 추진할 사람이 있어야 했지. 적임자를 물색하다가 내가 추천되었는데 나는 상근직은 부담스러웠어.최 :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권 : 갑작스러운 제안에 답을 줄 수가 없었어. 당시 내가 하는 교복 사업이 잘되고 있었거든. 성업 중인 사업을 정리하고 봉사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자원봉사센터가 전무했기에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걱정이 앞섰어. 처음에는 4~5개월 정도 도와주겠다고 했지. 교복 사업의 비수기(7~10월)에는 도와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거든. 그런데 시에서는 도와달라고 계속 연락해왔어. 고민 끝에 가족회의를 했어. 딸들에게 “엄마가 지금 고민하는 일은 무보수다. 그러니 너희가 재정적으로 후원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 남편에게는 “자원봉사센터가 시범 운영된다고 하니 나는 꼭 성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정에 충실하기 어려울 텐데 이해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최 :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군요.권 : 두 딸은 이 일이 엄마 인생의 마지막 꿈이라면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말해주었어. 남편도 당신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말려도 하는 사람이니까 편하게 일하라고 했고. 남편과 두 딸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지.최 : 자원봉사센터 소장직을 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요?권 : 전국을 다녔어. 자원봉사센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대구, 부산, 서울로 다녔지. 그리고 좋은 자료를 찾기 위해 애썼어. 어떻게 하면 봉사를 체계적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사회복지에 관한 전공 서적을 구입했는데 전부 영어로 되어 있더군. 그렇게 자원봉사에 관한 것이라면 다 찾아다니고 뒤졌어. 그러던 중에 이강현 박사를 만났지.이강현 박사는 우리나라 자원봉사 역사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주요 자원봉사 단체와 조직, 제도와 정책이 대부분 그의 아이디어와 기획을 거쳐 탄생했다.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원봉사 전문기구인 ‘한국자원봉사연합회’를 만들었고, 1996년 자원봉사 관리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볼런티어21(현 한국자원봉사문화)’을 창립했다. 2008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 회장에 뽑혀 7년간 국제사회의 자원봉사 운동을 이끌었다.최 : 정말 열정적이셨군요.권 :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리더십 교육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 서강대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자원봉사 지도자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알고 2년간 매주 서울에 갔지.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완벽해야 했으니까. 교육이란 교육은 다 듣고 다녔고 세미나, 포럼, 연구발표를 한다면 어디든지 찾아갔지.권순남1939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포항으로 왔다. 포항초등학교, 포항여중·고를 졸업하고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1957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자원봉사를 삶의 전부로 여기며 실천했다. 포항JC 부인회를 통해 장애재활사업 후원, 양로원 지원, 소년소녀가장 지원 등을 해왔다. 1996년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소장, 2003년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회장을 맡아 지방자치단체별 자원봉사센터 설립과 운영의 효율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정에도 앞장섰다.대담·정리 : 최미경(시인) / 사진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제공 : 권순남

2023-07-19

“전국 최고 청정도시 울진, 희망과 번영의 도시로 도약”

울진군의 민선8기 지난 1년은 대형산불로 인한 피해, 지역경기 침체, 지방소멸의 절박한 상황속에서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선정, 경북 도민체전 성공개최 등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군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울진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손병복 울진군수는 “지난 1년 울진군이 만들어 낸 성과는 군민 여러분들과 공직자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갔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지금까지의 과정이 희망과 번영의 울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가겠다”고 소회했다.손 군수는 이어 “변화하고, 다가가며, 실천하는 군정으로 ‘화합으로 새로운 희망 울진’건설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미래 100년을 책임질 신성장동력 확보손병복 군수는 민선8기 최우선의 목표로 “군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울진군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국가산업단지의 울진군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먼저, 연구 중심이었던 기존의 ‘수소 실증단지 조성’사업의 추진 방향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로 전략을 수정하고, 수소 관련 기업들과 MOU를 맺는 등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3월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돼 울진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또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해 관계부처와 집중적인 협의를 거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인 결과, 평균 승인 기간에 비해 19개월이나 일정을 단축시키며 올해 6월 실시계획 승인을 이끌어냈다.산불피해복구와 더불어 이재민들의 일상 복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대형 산불에 입은 큰 상처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400억원 규모의 국립 산지생태원, 360억원 규모의 국립 동해안 산불방지센터, 720억원 규모의 경북도 119 산불 특수대응단을 유치하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고, 지역 경기에도 보탬이 될 수 있는 기틀를 마련했다.□ 울진 관광 1천만 시대 준비‘1천만 관광시대 개막’은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조성’과 더불어 민선8기 울진 미래 비전의 전략적 양대 축이다.이에 울진군은 빅데이터 활용 등을 통한 중장기 관광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기존의 자연 풍광 위주의 관광에서 해양레저, 로컬체류 등 프로그램의 다변화 방안을 모색하고, 1천만 관광 시대 준비를 위한 전략적 과제를 도출했다.또한 대한민국에서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낮은 맑은 공기 모범도시 이미지를 활용해 새로운 관광브랜드를 만들어 가기위해 ‘대한민국의 숨, 울진’으로 관광 슬로건을 확정하고 홍보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울진군만의 차별화된 전략의 일환으로 울진군 일원에 워터파크를 포함한 600실 이상 규모의 사계절 전천후 오션리조트 개발을 위한 기본구상을 완료하고 적극적인 민자유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경북도 도민체육대회의 성공개최에 이어 제17회 경상북도 농업경영인대회, 제45회 경북도 4H연합회 야영대회, 제33회 한국 임업후계자 전국대회, 1회 대한민국 해양과학 산업축전 등 전국·도단위 체류형 행사를 유치해 울진군 홍보와 더불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 보편적인 복지체계 기반 마련“민선8기 울진 군정의 중심에는 군민이 있다. 그리고 군민이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항목 중 하나”라고 말하는 손 군수는 혜택을 받는 군민들의 각자 상황에 맞는 맞춤형 복지를 강조해왔고, 지난 1년 적극 실현 시켰다.어르신들의 건강과 돌봄체계 강화를 위해 어르신 목욕비 및 이·미용비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경로당 운영비의 활용 범위를 확대한 경로당 운영지원 기준을 새롭게 마련했다.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마련을 위해 각종 난임부부, 임산부에 대한 지원 및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확대했다. 기존 군수 관사를 다함께 돌봄센터로 전환해 돌봄을 위해 먼거리로 이동해야 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불편을 해소했다.또한 보훈 대상자에 대한 지원 및 보훈단체 운영 보조금을 확대해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기존에 예산 소진 시까지만 진행되던 울진사랑카드 캐시백 혜택을 더 많은 군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예산을 확대 편성했다.□ 경쟁력있는 울진형 산업기반 구축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 민선8기 울진군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경제구조이다.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는 울진농업이 새롭게 도약해, 돈 되는 농업이 될 수 있도록 ‘울진 농업대전환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울진농업의 미래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했다.임대형 스마트팜 표고버섯 재배단지 조성과 계절 농산물 장기 보관용 대형 저온저장고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농가의 안정적 소득을 위한 표준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또한 울진군의 신선한 수산물이 대도시에 당일 배송될 수 있는 새로운 유통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 안전하고 쾌적한 정주여건 마련민선8기 손병복 군수는 군민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수도·전기·도로·안전 등 모든 군민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인프라 조성에 노력하며 군민이 최우선이 되는 군정을 실천해 왔다.특히 지방상수도 공급 불가 지역 급수와 관련하여 상수도 운영에 필요한 전기 및 통신료 지원, 6개 읍·면 15개소 소규모 수도시설 개량 사업을 추진하는 등 깨끗한 물을 마실 군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했다.또한 도비 12억원을 확보한 온정면 생활문화 센터 등 주민편의 시설을 확충하고, 군민 안전보험 보장 범위를 기존 19개 항목에서 26개 항목으로 대폭 확대했다.쾌적하고 살기 좋은 농촌 공간 조성을 위해 울진읍, 북면, 금강송면, 근남면, 매화면, 죽변면 등 북부 생활권에 2027년까지 336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며, 후포면은 2026년까지 총사업비 120억 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 군민과 소통하는 섬김행정 실현울진군청 공무원들의 이름표에는 특별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군민을 섬기겠습니다’이다. 군민을 존중하고 섬기며, 군민에게 존중받는 공직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민선8기 울진 군정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이러한 군정을 실현 시키기 위해 민선8기 손병복 군수의 첫 행보는 군민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으며, 이후 ‘군민 섬김데이’를 통해 정기적으로 군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또한 군수직통 문자메세지로 민원을 받는 ‘군수 직통 온라인 민원창구’는 지금까지 360건의 민원 중 완료 205건, 진행 48건으로 70%의 민원을 해결했다.군민과 공직자들의 전문성 및 역량강화를 위한 ‘굿모닝 목요특강’과 공직자들의 자발적 연구모임인 ‘혁신 아이디어 뱅크’를 운영하고 있다.더불어 기본에 충실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공직문화 조성을 위해 업무실적에 연계한 인사시스템과 각종 포상제도를 마련했고, 적극행정 실행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울진군 적극행정 우수공무원 선발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였다,또한 조직개편을 통해 군정 전반에 조정 능력을 극대화하고 현안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군수 직속의 정책홍보관을 신설했다.정책의 수립과 조정, 추진과정의 문제점 등을 분석해 대안과 발전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매주 군수 주재의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장인설기자 jang3338@kbmaeil.com

2023-07-19

고령군,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감동 복지 실현’ 박차

‘복지는 감동’이라는 목표로 탄탄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체감할 수 있는 복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고령군의 올해 사회복지예산은 823억원. 이는 고령군 전체 예산의 19%에 해당된다.고령은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경제적 지원과 정서적 지원, 초고령화 사회의 활기찬 노후생활 지원 등 대상자별 맞춤형 복지를 통한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이는 인간다운 생활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고령군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 각 분야별로 고령군의 복지 정책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과 노인복지 향상복지기획 분야는 복지·보건·고용·주거·의료 및 저출산·고령화 등 지역사회 전 분야에 걸쳐 복지정책을 수립 중이다. 특히, 지역사회 보호 체계 구축을 통해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역 내 복지자원 개발·연계 등에 주력하고 있다.민관협력 강화를 위해 유관기관과 전문가,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하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고령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일촌보다 이웃사촌’이란 비전으로 군·읍면 협의체위원 200여 명으로 구성돼 활동 중이다.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역사회 보장에 관한 심의·자문 및 복지서비스의 연계·협력추진과 지역 내 복지자원 개발 등 민관협력기구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 행복나눔공동체, 경북모금회사업, 기초푸드뱅크, 지역특화사업 등에도 노력한다.여기에 더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의 삶이 원활하게 유지되도록 참전명예수당, 보훈예우수당, 참전유공자 미망인복지수당을 지원해 그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에도 힘쓰고 있다.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어려운 저소득 군민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급여사례관리사를 통해 수급자의 자가 건강관리능력을 향상시켜 합리적 의료 이용을 유도하는 것도 고령군의 역할이 되고 있다. 이는 군민 삶의 질 향상과 의료급여 재정 안정화에 기여한다.2023년 6월 현재 고령군은 노인 인구가 35%인 초고령화 사회다. 이런 인구구조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소득·일자리, 돌봄, 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노인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어르신들의 사회참여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을 벌여 1천336명의 어르신이 공익형, 시장형, 사회서비스형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해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중이다.노후의 안정된 소득기반 제공을 위해 기초연금을 8천491명에게 지원 중이며, 경제적으로 어렵고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위해 밑반찬 배달사업과 무료급식소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노인 건강증진과 기본적인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일상생활이 어렵거나 안전에 취약한 어르신들에게 노인맞춤 돌봄서비스, 독거노인 응급안전 서비스를 지원한다. 양로원과 요양원 9곳을 지원해 시설 입소 노인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노인 여가복지시설인 경로당 210곳에 운영비, 냉·난방비, 양곡 등을 지원하고 경로당 보수도 지원하며, 건강기구와 필요 물품 역시 제공 중이다. 행복경로당 운영을 통해서는 밑반찬 지원 및 경로당 입식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한다.지난 2019년 10월부터는 경로당 행복선생님 지원사업을 실시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획일적이고 답습적인 여가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경로당별 이용자 욕구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고령군의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 되고 있다. □ 소외계층 발굴과 지원책 모색희망복지 분야에서는 복지사각지대와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민관협력을 통한 지역단위 통합적 서비스 제공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복합적 욕구를 가진 위기가구에 다양한 맞춤형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제공 및 지역주민의 복지체감도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 이는 긴급지원, 공동모금회 긴급지원, 함께모아 행복금고 등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 역시 필수다.또한, 희망복지지원단 운영으로 3명의 통합사례관리사가 8개 읍면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눠 고난도 사례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공적서비스, 심신건강지원, 일상생활지원 서비스, 주거환경개선, 사회적 기능향상 서비스 연계 등의 활동을 통해 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효율성과 주민의 복지체감도 향상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올해 고령군이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함께모아 행복금고’ 사업을 통해서는 저소득계층 지원 및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긴급한 생계·주거·의료 문제는 적극 지원한다. 이를 위해 특화사업비도 편성했다.생활이 어려워지는 위기가 닥쳤을 때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가구 여건에 맞는 지원을 위한 복지급여 대상자 조사 및 책정, 생활보장업무도 중요하다. 고령은 이를 위해 기초생활보장 급여지급, 정부양곡지원 및 저소득층 주거환경개선사업, 저소득주민자녀 장학기금 업무 등 생활전반에 걸친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직접 급여를 지급하는 업무이기에 공정하고 정확한 서비스로 수혜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고령군청의 부연.고령군 관내 기초생활수급자는 1천300여 가구. 이들을 대상으로 생계, 의료, 주거, 교육, 해산장제급여로 올해 72억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특히 저소득층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집수리 사업은 자가 가구를 대상으로 주택 노후도에 따라 지붕 개량, 화장실 보수, 도배장판 및 주방 교체 등을 실시 중이다. 해마다 평균 40여 가구가 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또한 임차가구에게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급여를 지원하며, 2021년부터는 주거급여 수급가구원 중 취학, 구직 등을 목적으로 부모와 따로 거주하는 20대 미혼청년(만19세 이상 30세 미만)에게 별도 주거급여를 지급 중이다.2015년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 이후 수급자의 가구 특성과 소득인정액을 조사해 필요한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통합조사팀에서는 저소득층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단계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장애인도 당당한 지역사회의 일원고령군의 장애인들과 저소득 주민을 위한 장애인복지업무(장애수당, 일자리, 바우처 등)와 자활시설 관리·지원도 주요하게 다뤄야 할 사업이다.고령은 관내 장애인들의 경제활동과 생활안정을 위해 장애인일자리 및 장애인연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장애인일자리는 경북 내에서 포항 다음으로 많은 사업량을 확보했고, 현재 204명의 장애인들이 고령군청, 읍·면사무소, 장애인시설 및 단체에 배치돼 참여하고 있다. 또한, 근로능력이 상실되거나 줄어든 중증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장애인연금은 매월 450여명의 장애인들이 지원받고 있다.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로 인해 혼자서는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활동 보조, 방문 목욕, 방문 간호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재 96명이 지원받고 있는 중이다.기존에는 대가야읍에만 제공기관이 있어 이용자들의 불편이 있었으나, 올해 초 다산면에 활동지원 제공기관이 추가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장애인거주시설(성요셉재활원, 성요셉요양원)에서는 중증장애인에게 거주·요양·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동아리활동 및 일상생활 촉진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회 적응력을 높이고, 단계별 자립지원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직업재활센터에서는 박스 제조업과 장갑 제조사업을 통해 고령군 관내 재가장애인과 시설생활인에게 직업재활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업을 통한 자활과 자립을 돕고 있다. 현재 11명의 계약근로자는 70~170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고, 35명의 훈련생은 월 평균 35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직업재활에 참여 중이다.수어통역센터는 청각·언어장애인의 복지증진을 위해 수어통역 및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생활이동지원센터는 이동의 제약이 있는 장애인을 위해 차량 운행을 통한 이동서비스를 하고 있다.지체장애인협회는 주요사업으로 장애인 편의시설 증진, 여성 자립, 장애인식 개선, 문화예술 체험, 주거환경 개선을 진행 중이다,또한, 장애인권익협회는 장애인의 권익신장 및 인권옹호 사업을, 장애인정보화협회는 컴퓨터 정보화 교육을, 한국교통장애인협회는 교통사고 예방교육 및 안전캠페인을, 시각장애인협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초재활교육을, 농아인협회는 수어교실 운영을, 지적발달장애인협회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권익옹호·재활·복지증진을 도모하는 등 장애인의 사회참여 확대와 복지증진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상시 운영되고 있다.저소득 주민을 위해서는 근로 기회를 제공하고, 자활기반을 조성을 위한 자활근로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대상자 43명은 공공건물 청소, 분식카페 근무, 식품 제조 분야 등에서 일하고 있다.근로소득이 있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자를 대상으로 한 자산형성지원사업도 추진된다. 3년 동안 본인적립금 10만원을 모으면 근로소득장려금 10~30만원의 매칭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저소득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41명이 이 제도의 지원대상자다./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3-07-18

백제 멸망은 신라 무열왕 김춘추의 복수극?

서라벌(현재의 경주)에서 황산벌(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경부고속도로와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최단거리 노선도 대략 250km. 600리가 넘는다.2023년 오늘이라면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3시간 만에 가닿을 수 있지만, 1천363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황산벌전투에 동원된 신라군의 숫자는 5만여 명.그들 중 말을 탄 지휘관은 소수였다. 무장한 고대 병력이 하루에 행군할 수 있는 거리는 고작해야 50리 정도. 멈춤 없이 걸어도 최소 12일이 걸리는 거리다.황산벌전투가 벌어진 때는 660년 음력 7월 9일부터 10일까지. 이 시기를 요즘 사람들은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염천”이라 한다. 옛사람들이라고 더위를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다. ‘개도 지쳐 혀를 한 자나 빼무는 여름’이었다.5월 말에 서라벌을 출발한 신라군은 무열왕 김춘추와 상대등 김유신의 지휘 아래 한 달하고도 보름에 걸쳐 낮에는 사람을 태워 죽일 듯한 땡볕 아래를 걷고, 밤엔 숲이나 들판에서 노숙을 한 끝에 낯선 백제 땅 황산벌에 닿았다.그게 여행이라면 ‘고생 끝 즐거움 시작’이었겠으나, 서라벌에서 황산벌까지의 행군은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는 소풍이나 원족(遠足)이 아니었다.곧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무시무시한 전투가 신라와 백제의 병사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최소 1만 명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사했다. ◆의자왕을 깎아내림으로써 신라의 백제 침공 정당화성골 출신이 이어가며 왕을 하던 신라에서 최초의 ‘진골 출신’ 왕에 오른 탁월한 외교전략가 김춘추(무열왕)는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해 한반도를 하나로 묶으려는 큰 야망을 가진 사내였다. 660년 백제 침공은 그런 ‘정치·군사적 목적’ 아래 결행됐다.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백제의 최고 권력자는 의자왕(재위 641~660). 김춘추는 의자왕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인식하고 있었다.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삼국사기-백제본기’와 ‘삼국사기-신라본기’를 보자. 이런 대목이다.“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초기에는 해동증자(海東曾子)로 불릴 정도로 영특한 군주였다. 재위 2년(642)에는 신라를 공격해 미후 등 40여 성을 빼앗았으며, 윤충(允忠)으로 하여금 대야성을 공격해 점령하게 했다. 당시 대야성주는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品釋)이었는데, 윤충은 품석 부부가 항복을 하자 이들을 죽여 머리를 도성으로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기둥에 기대어 서서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알지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았고, 백제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의자왕의 신하 윤충에게 목이 잘린 품석의 아내 고타소는 김춘추가 문명왕후(문희)에게서 얻은 딸이다. 그러니, 김유신의 생질이기도 했다. 고대 전투에선 항장불살(降將不殺)의 불문율이 있었다.그럼에도 항복한 사위 품석은 물론 전투와는 무관한 딸 고타소까지 죽이고, 소금에 절인 둘의 수급(首級)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의자왕의 행위는 김춘추의 넋을 나가게 만들었다. 그의 분노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그래서였을 것이다. ‘승자의 관점’에서 쓴 역사 아래 의자왕은 정치적으로 무능하며 성적으로 타락한 왕이라 기록된다. 알다시피 660년 신라와 백제와 맞붙은 황산벌전투의 승자는 신라였다.전북대학교 박노석의 논문 ‘백제 황산벌 전투와 멸망 과정의 재조명’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백제의 멸망 원인은 승자인 신라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에서는 백제의 멸망 과정을 진실하게 기록하였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아래와 같은 서술이 등장한다.“의자왕은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 백제의 군신들은 사치하고 음탕한 생활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망이 가득하였고, 신이 노하여 변괴가 번번이 나타났다. 성충, 흥수와 같이 직언을 하는 신하를 감옥에 가두고 멀리하였다. 정부 내에 신구 세력간 권력투쟁으로 국정이 혼미하였다. 신료들이 신뢰하지 않는 왕비의 국정 개입의 도가 지나쳤다…(후략)”이처럼 백제 몰락 후 신라는 의자왕을 아름다운 궁녀에만 집착하고, 충신을 백안시하며, 영악한 왕비를 내버려둔 혼군(昏君·어리석은 임금)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백제의 관료들을 폄훼하고 ‘신(神)까지 백제를 버렸다’고 신랄하게 비난한다.이는 신라의 백제 침공을 ‘하늘의 뜻’으로 만들어 백제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고도의 ‘선전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악행을 막기 위해 우리가 캄보디아를 공격했다”고 말한 1970년대 베트남처럼. ◆멸망의 위기에 빠진 백제를 구하려 분투한 장군 계백(階伯)백제사(百濟史)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아닌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 인식 속에 의자왕은 무능한 군주로 각인돼 있다.그렇다면 678년을 이어지며 31명의 왕이 통치한 백제를 떠올릴 때 가장 긍정적 이미지로 기억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적지 않은 이들이 황산벌전투에서 겨우 5천 명의 병력으로 신라의 5만 대군에 맞서 발군의 전투 실력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의 꺾이지 않는 기개를 보여준 백제의 명장 계백(출생년 미상~660)을 지목할 것이다.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계백에 관한 인물 소개를 인용한다.“계백은 삼국시대 백제의 황산벌전투에 참전한 장수다. 660년 김유신과 소정방이 이끄는 5만여 명의 나당 연합군이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오자, 결사대 5천 명을 뽑아 황산벌에 나가 맞았다. 그는 전장에 나아가기에 앞서 처자를 모두 죽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다짐했다. 결사대의 용맹은 연합군의 대군을 압도하여 처음 네 번의 싸움에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처자를 죽이고 절개를 지킨 그를 충절의 표본으로 여기고 부여 의열사, 연산 충곡서원에 제향했다.”혼란한 시대는 사서(史書)에 기록될 영웅적 인물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필연에 가깝다. 소설 ‘삼국지’와 ‘초한지’에 등장하는 범증, 장량, 관우, 조운이 그렇고, 우리가 겪은 일제강점기 이봉창과 김원봉이 그렇다.일기당천(一騎當千)의 기상으로 김춘추와 김유신의 명에 따라 황산벌에 온 신라의 5만 병사를 공포로 몰아넣은 계백은 백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영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물론, 그 전투에서 사망한 화랑 반굴과 관창 등 수많은 신라의 병졸 입장에선 ‘사납고 잔인한 적장’이었겠지만.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역사의 기억’이란 상대적이다. ◆논산의 계백 장군 묘를 찾아 떠난 먼 길1천363년이 흘렀다. 황산벌에서 말발굽이 일으키는 먼지와 신라와 백제 병사들의 함성이 사라진 지.그날 죽은 이들의 시신은 이미 뼈까지 흩어져 진토(塵土)로 바뀌었을 터이고,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그럼에도 ‘삼국의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황산벌전투 현장을 직접 찾아보지 않는 건 게으른 처사로 느껴졌다. 그래서다. 초여름 더위가 몰려오던 7월 초순. ‘계백 장군 유적지’로 향했다.그 옛날 서라벌로 불리던 경주가 지척인 포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대전역에서 대전복합터미널로 이동해 시외버스를 타고 유성과 연무대를 거쳐 논산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거기서 ‘계백 장군 유적지’로 가려면 하루에 8차례 운행하는 307번 시내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달려야 했다.그 여정에서 기자의 눈길을 잡아챈 건 ‘계백로’였다. 경주에 ‘흥무대왕(김유신)로’가 있다면 충남 논산엔 계백로가 있었다. 논산에서 시작돼 대전 중구 서대전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도로의 이름.부끄러운 역사 인물의 이름을 따 도로를 만드는 경우는 없다. 변절자 신숙주와 매국노 이완용의 이름이 도로명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그러니, 김유신이 경주의 자랑스런 역사 인물이라면, 계백은 자랑스런 논산의 역사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다.오전에 포항을 출발해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묘 앞에 도착했을 땐 까무룩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스며든 황산벌전투 유적지.660년 7월 10일. 신라군의 칼과 창에 찔려 쓰러진 계백이 삶의 끝자락에서 올려다보던 석양도 그처럼 붉었을까?(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7-18

8월 ‘섬의 날’ 행사… 관광객 100만 시대 기틀 다진다

올해는 울릉도 관광의 대 전환을 가져올 중요한 행사가 많고 각종 축제도 이어진다. 울릉도에서 처음으로 국가행사인 섬의 날 행사가 8월 8일부터 11일까지 개최된다.이 행사는 울릉도 관광객 100만 명 시대를 대비한 전초전이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울릉군의 숙박, 차량 운용 등 관광 인프라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이다.남한권 울릉군수는 “관광객 유치를 중점사업으로 관광객 수용 인프라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를 통해 울릉군민 모두가 잘사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국가 행사인 섬의 날 행사 준비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나.△제4회 섬의 날 행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관광객 및 외빈들이 대거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섬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고취시키고 섬 주민들 간 화합의 장을 마련해 100만 관광객 시대의 기틀을 다지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여러 가지 미흡한 점을 미리 살펴보고 각종 컨텐츠 등을 내실있게 구성해 울릉도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한번 찾고 싶은 섬으로 각인되도록 총력을 다해 준비 중이다.한 번도 육지와 닿지 않은 울릉도만의 고유한 특수성의 가치와 섬이 가진 일반적 보편성을 다양한 콘텐츠와 전문가들의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려고 한다.태고부터 형성된 울릉도의 천혜의 자연을 만나 볼 수 있는 생태존과 지혜롭게 척박한 환경을 개척한 선조의 발자취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앞으로 어떻게 섬의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섬의 미래를 만들 것인지 재고할 주제전시관을 준비 중이다.부대행사로 직접 울릉도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경험할 떼 배 제작 및 체험과 너새너와 놀이 재현, 슬로푸드 시식 및 체험 등과 같이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감만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이어 8월에는 울릉군 대표적인 축제인 오징어 축제와 해변가요제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이어진다. 섬의 날 행사의 성공을 마중 물로 삼아 이어지는 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눈꽃축제를 부활시키고 다양한 관광상품 공모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지금까지 울릉도는 성수기에 관광객이 집중돼 비수기에는 울릉주민의 경제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잦은 여객선 결항이었는데 대형크루즈선 운항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겨울 관광이 가능해졌다.이에 따라 지난 2월 나리분지 일대에서 14년 만에 진행된 겨울시즌 축제인 ‘설(雪)렘가득 울릉도 눈 체험’를 통해 울릉도의 비성수기 축제의 서막을 성공적으로 열었다.올해 축제의 결과를 토대로 미흡한 부분을 보완 재정비, 대한민국 대표 겨울축제로 성장시키고자 한다.이 밖에도 울릉군이 문화관광체육부와 경북도에서 공모 진행한 사업에 연이어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울릉도 옛길에서 만나는 오카리나 역사해설과 얼마 전 열린 학포개척문화제는 울릉도를 개척한 이규원 감찰사의 업적을 기리고, 울릉도 개척사를 알리고자 울릉주민 및 학포 이장과 주민들이 직접행사에 참여, 문화제를 스스로 이끌었다. 독도선상 음악회, 해설이 있는 망루 산책 숲속 작은 음악회, 울릉도 해남&해녀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 너새너와일궈 놀이 한마당, 나리분지 야생화 사생대회, 어화(漁火)둥둥 밤바다 문화공연으로 울릉도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요소를 곁들인 프로그램들이 선정됐다.경북도에서 실시한 야간관광상품 지원사업에서도 울릉군의 ‘나리 빛나는 밤에 만나요’가 선정, 기존의 오징어 축제에서 탈피, 사계절 주야를 가리지 않는 관광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또한, 얼마 전 ‘2023 경북 대표관광상품 왕중왕전 공모’ 권역연계형부문에 포항시와 함께 ‘동해바다 뱃길따라 울렁울렁 울퐝투어’가 선정됐다. 여행프로그램을 직접 발굴하고 체류형 관광 활성화를 통해 생활인구 증가와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다른 지자체와 연대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울릉도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수학여행단 유치 노력의 성과는.△올해 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참석, 울릉도 독도 수학여행단 지원사업을 알려 지난 6월 1일 서울 문교초와 대청초가 2박3일 예정으로 방문했다.울릉도 독도를 찾는 수학여행단을 대상으로 아카데미해설사 전담지원, 학교별 맞춤형 체험프로그램 운영지원, 관내 관광지 무료입장 등 행정적 지원으로 학생들이 울릉도 독도에 대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게 하겠다.또한, 현장중심의 독도 체험을 통해 영토주권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적극지원하고 앞으로도 많은 학생이 울릉도 독도를 찾기를 희망하고 있다.이처럼 끊임없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다양한 판로를 넓히고 개척하는 등 지속 발전 가능한 관광체계 구축을 위해 관광종사자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하겠다.이를 통해 현장 최일선에서 힘쓰는 종사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현장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울릉도 관광의 질적 향상을 위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검토 중이다.-늘어나는 관광객을 응대할 정주인구 증가대책은.△6월부터 경북 문화관광공사에서 울릉군의 관광마케팅 사업을 받아 위탁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울릉도 식도락 여행’사업을 운영한다. 이 사업은 울릉도 내 지정된 먹거리(12종)를 먹고 이를 인증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최대 3식까지, 개인당 총 3만 원에 해당하는 울릉사랑상품권을 지원한다.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공급자는 음식의 질을 높이고, 수요자는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2023년 관광트렌드로 지역 맛집이나 특산품, 그리고 현지에서만 경험할 문화, 역사 체험 프로그램 등 지역 고유의 여행 콘텐츠 및 경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택 및 원격근무의 증가로 체류형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비교적 짧은 ‘살아보기’여행도 증가하는 트렌드도 반영하고 울릉군의 일손부족도 해결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시범사업을 실시, 참여업체를 모집 중이다. 7월 중순부터 시작, 1차 2차에 걸쳐 시행계획에 있다. 지원내용은 경북도에서 지역정착비를 지원하고 울릉군은 울릉도 독도 탐방 기회를 제공, 서비스업체는 고용지원과 일손부족을 해결하고, 일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울릉도의 생활을 체험하게 하고 지역이주 기회도 제공하는 것이다.-100만 관광객 시대에 대비한 숙박 주차 등 관광 인프라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울릉군은 앞으로 울릉공항 개항, 여객선 취항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것으로 전망되며, 관광산업 관련 개발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울릉군은 상주인구는 감소하는 데 반해 관광객 즉 주간활동인구는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러한 지역적 여건을 고려하면서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계획 수립이 필요하며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기업투자유치의 전문화를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또한, 자연환경이 우수하고 경사지가 많은 지역인 만큼 난개발을 방지할 개발행위 규제와 토지이용계획이 함께 검토돼야 할 것이다. 현재 군에서는 지구단위계획 정비까지 포함한 군 관리계획 재정비를 진행하고 있다.이번 계획은 상위계획인 ‘2025 울릉군 기본계획’과 개발수요를 고려해 용도지역, 용도지구 등을 정비하며, 도로, 공원, 녹지 등 불필요한 장기 미집행 군 계획시설을 해제 또는 변경하여 토지이용성을 향상시킬 계획이다.그리고 비도시지역인 서·북면 지역의 지구단위계획에 용적률을 상향시켜 개발수요에 맞게 토지이용성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아울러, 군은 2040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2040 울릉군 기본계획’ 추진한다. ‘2040 울릉군 기본계획’은 현재 진행하는 군 관리계획 수립의 지침이 되는 상위계획으로 우리 지역의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장기적인 발전방향 제시 및 공간적으로 발전해야 할 구조적 틀을 제시하는 종합계획이다.장래 100만 관광시대가 열릴 것을 대비해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이 담긴 종합계획이 수립되도록 ‘2040 울릉군 기본계획’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나가겠다./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3-07-17

“文學의 숲에 들어섰으니 詩나무 돼 걸어 나와야지”

대학 시절 풍물에 빠져 지낸 지인이 필자가 포항에 있다는 말을 듣고 했던 첫마디가 ‘원만 사부가 사는 곳’이었다. 한강 이남에서 꽹과리를 가장 잘 노는 상쇠이자, 앞서 이끌기보다는 스며들어 함께 가는 보기 드문 리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원만 사부가 포항에 풍물을 뿌리내린 ‘한터울’의 이원만 대표였다.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그는 만날 때마다 세상을 넓혀가는 사람이었다. 꽹과리 연주자로 시작해 국악으로 다양한 창작 공연을 선보이더니 직접 기획하고 감독한 국악창작뮤지컬 ‘강치전’은 전국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대표의 시가 실린 계간지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시를 읽고 난 후 그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등단을 축하드린다. 시를 쓰는 풍물꾼이 풍물 하는 시인이 되었다.△시 쓰면 시인이지, 싶어서 그냥 작품만 쌓아두고 있었는데 얼마 전 친구가 사무실에 와서 쌓인 책들을 쓱 둘러보더니 써놓은 거 보여달라더라. 그래서 몇 편 보냈더니 허락도 없이 투고해 버린 거다. 시가 계간지에 실린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신인상 추천까지 해줘서 하루아침에 시인이 되었다.-언제부터 시를 쓴 것인가.△어릴 적부터 썼고 고교 문예 동아리에서 시에 푹 빠졌다. 안도현, 이정하, 서정윤 시인 등을 배출한 대구 대건고의 ‘태동기’이다. 당시 지도 교사였던 도광의 시인을 얼마 전 찾아뵈었는데 예순이 되어 무슨 등단이냐고, 뭘 그리 오래 참았냐고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좋은 작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쓰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 말이 가슴속에 깊이 박혔다.-시 창작 방향을 ‘탄소 포집용 시’라고 밝힌 이유는.△팬데믹을 거치면서 ‘삶의 생태적 전환’은 지구에 붙어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다. 코로나 전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고민을 하다 제주도의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의 ‘그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무가 되어서 나왔다.’라는 표현을 접했다. 한 문장이지만 찌릿했다. 시인은 나무와 풀과 동물의 말을 인간 언어로 동시통역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나무와 풀들의 말을 전하는 시를 쓰고 읽게 해서 기후변화의 감수성을 키워주면 ‘생태적 슬픔’을 느끼고 행동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탄소를 포집하는 시라고 얘기했다.-등단작인 ‘산책 간다’에서 산책을 ‘살아있는 책을 보러 간다는 말’로 표현했다. 산책하면서 시적 영감을 받는 편인가.△영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늘 관심을 가지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말문이 서로 트이는 것이다. 양동 마을의 둘레길, 오어지 둘레길, 그린웨이 등을 다니며 친해진 자연에 슬쩍 말을 걸어 보다가 시가 나온다. 뭔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를 하고 그것이 시가 된다.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편이다. 공부는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런 인식의 변화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조금 나은 인간이 되게 하니 멈출 수가 없다. 하나의 주제에 빠지면 책장 한 칸을 채운다. 언젠가 나무에 관한 공부를 하는데 ‘나무는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자신의 가지를 자른 사람에게도 그늘을 내준다.’는 말들이 시처럼 느껴졌다. 나무에 대한 시작(詩作)은 그렇게 시작(始作)됐다.-‘참새 무덤 이장하기’라는 시도 인상적이다.△오래 전 사물놀이 가르치러 간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아이들이 손으로 물을 떠서 참새에게 뿌리고 있더라. 발견했을 때는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인데 내가 볼 때는 죽은 상태였다. 참새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이들을 설득해서 은행나무 아래 묻었다. 그러면서 은행나무에 참새를 저축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미심쩍어하는 아이들이 혹시 실망할까 봐 참새 무덤을 옆으로 옮긴 얘기다. 그걸 그대로 받아 적었으니, 아이들이 준 시이다.-아이들이 준 시라고 하지만 눈높이가 맞는 시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이다.△시 쓰기의 시작은 동시였다. 동시와 시는 대상과 언어가 다를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사물놀이를 가르치러 다니면서 만난 아이들에게서 얻은 시로 동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이 한국 동요 100주년이라고 한다. 동시에 곡을 붙여 북 콘서트도 해볼 계획이다.-시인이기 이전에 꽹과리를 치는 상쇠였다. 꽹과리의 시의 공통점이 있다면.△만만하지 않다. 심금을 울린다. 늘 ‘만족과 부족’ 사이를 걷게 만든다. 그 정도가 아닐까. 꽹과리를 치면서 ‘큰 기교는 기교가 없다’라는 전통음악 이론을 접하였다. 시에 접목하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덕목으로 연결된다.-꽹과리는 시를 쓰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쇠를 칠 때 물 흐르는 소리를 내라고 배웠다. 딱딱한 금속에서 부드러운 물소리라니 처음에는 기가 막히더라. 그런데 해보니까 그게 또 됐다. 진동으로 떨리는 쇠판으로 채가 들락날락하면서 희한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 경지를 보면 그때부터 말 그대로 환장하게 된다.꽹과리 가락의 맛을 내는 기운을 얻기 위해 일부러 찾아다니던 풍경이 있다. 태풍이 불면 바다의 들끓는 기운을 보러 갔다. 바람 많은 날 대나무밭은 일렁이는 불꽃 같다. 비학산에서의 일출도 잊을 수 없다. 막걸리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 커피를 마시면서 해 뜨기를 기다리는데 들판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해가 보였다. 그 후로 ‘칠채 장단(일곱 번 친다고 해서 이름 붙은 홀수 박. 끝날 듯 멈추지 않는 역동성이 특징)’을 칠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린다. 풍물 잘하는 친구가 내가 칠채 장단을 치면 ‘맛있다’고 하더라. 풍물의 어떤 경지에 이룬 연주자들을 보면 소리의 기운이 덩어리로 천장에 모인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미쳐야 미친다고 하지 않나. 시는 아직 꽹과리만큼 몰입하지 못했지만, 꽹과리를 친 것이 감수성 훈련에 도움이 됐다.-35년 동안 몸담은 한터울이 ‘맏뫼골 놀이마당’에서 ‘아트플랫폼’으로 바뀐 것은 어떤 변화의 반영인가.△사물놀이와 풍물놀이 단체에서 공연 창작과 기획, 교육 콘텐츠를 연구·개발·보급하는 단체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단순한 기능 전수가 아닌 자신의 언어를 발산하는 예술가로 자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포항에 뿌리내리고 활동할 수 있는 일자리도 필요했다. 4년 전에 사회적 기업을 만든 것은 그런 고민의 결과이다.-지금까지 개발한 교육 콘텐츠를 소개한다면.△흥부전의 제비노정기를 조류 보호를 위한 창극으로 재창조한 ‘지지배배(知知拜拜)’는 아이들과 새로운 버전의 판소리 한 대목을 나누며 생태를 고민하는 교육 콘텐츠이다. 강치전을 바탕으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 ‘바다가 그랬어’는 올해만 30곳에서 운영한 효자 프로그램이다. 토속민요극 ‘남의 눈에 꽃이 되고’처럼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도 있다.-한터울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국악 가족뮤지컬 ‘강치전’이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담은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포항의 예술가들이 오디션을 봐서 작품에 참여하고 그 작품이 전국에 초청받아 공연하러 다니고 있다. 한 공무원이 예술은 돈을 쓰는 분야인지 알았는데 벌어오기도 하구나, 말하더라. 코로나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꾸준하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1회 공연이 아닌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으로 활동폭을 넓히면서 다듬어 나갈 계획이다.-지금 구상하는 작품이 있나.△독도 강치 다음 타자로 고래가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나무 천 그루의 탄소를 포집하는 고래는 죽어서도 바다를 지킨다. 해양 깊숙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수많은 바다 생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양생물 보호종 고래는 죽어서 항구에 들어오면 매립장에 묻는다. 그 장면을 사진으로 보면서 울컥했다. 쓰레기처럼 매립할 것이 아니라 먼바다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자기 몸을 나눠 바다가 풍성해지는 ‘고래 낙하’를 담은 ‘WHALEFALL(웨일 폴)’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대본을 직접 썼고 여러 번 수정을 거쳐 탈고한 지 얼마 안 됐다. 오는 11월쯤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앞으로의 계획은.△‘강치전’이나 ‘WHALEFALL’ 같은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작품을 전국으로 유통하는 기획사도 만들고 싶고 전용 극장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본 작가의 능력도 제대로 갖추고 싶다. 주변에서 더러 나이도 있는데 일을 조금씩 내려놓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한다. 이제 겨우 시인이 되었고 그걸 써야 겨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어떻게 포기하겠나. 문학이라는 숲으로 들어섰으니, 시라는 나무가 되어서 걸어 나와 봐야지, 안 그런가? 이원만 대표는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포항에서 30여 년 꽹과리를 치며 살았다. 포항의 젊은 예술가들과 사회적 기업 (주)아트플랫폼 한터울에서 기후 혼란과 공생하는 인간, 생태적 감수성 등을 담은 뮤지컬을 제작하고 문화예술교육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한다. 5년 차를 맞는 ‘강치전’은 2020년~2023년 4년 연속 국공립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계간 문학나무 2023년 여름호 시 부문 신인상으로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심사를 맡은 박덕규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을 했다. 오래 연마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타성에 젖지 않았으며 ‘새로우려고 애쓴 흔적’조차 내지 않으려는 긴장이 있다./배은정 작가

2023-07-17

“구민이 행복한 함께하는 중구”

“구민이 행복한 함께하는 중구를 만들겠습니다.”민선 8기 1주년을 맞이한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이 ‘새롭게 도약하는 행복도시 중구 건설’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류 구청장은 중구가 도시재생사업과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사업 추진으로 지난해 12월 인구 8만 명을 회복한 점과 오는 2024년까지 준공을 앞둔 공동주택 만여 세대의 입주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5년 말 정주인구가 1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그는 이러한 인구유입에 발맞춰 구민이 행복한 중구를 만들려고 무엇보다도 구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복지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현재 중구는 쾌적하고 살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구립도서관, 복지누리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사업을 진행 중이며, 마을단위 공영주차장 확충과 대단지 아파트 일원 노후화된 행정복지센터 신축도 준비하고 있다.또 국가보훈대상자의 위상 제고와 자긍심 고취를 위해 보훈회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3개소로 분산운영되고 있는 보훈단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훈회관 건립을 통해 국가보훈대상자의 공훈과 나라사랑 정신을 선양코자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모으고 있다.코로나19 이후 무너진 동성로 상권에 대해서도 그는 고심이 많다. 유통환경의 변화 등으로 유동 인구가 감소했고, 상가 일대에서 공실률이 늘어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중구는 침체한 상권의 재도약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상권활성화 사업대상지 모집공고’에 응모해 동성로만의 거점공간 조성과 디지털 상권환경 조성, 점포 내 스마트 기술 도입 등의 사업을 추진해 옛 명성을 회복한다는 방침이다.향후 중구의 관광사업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중구에는 김광석길, 근대골목, 서문시장 등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이와 관련, 중구는 근대골목 밤마실, 김광석길 다른그림찾기 등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특별히 올해 3월부터 골목투어와 쓰레기를 수거하는 자원봉사‘플로깅’을 접목한 ‘쓰담투어’를 운영해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동성로 야외무대를 미디어아트형 ‘동성로 28, 아트스퀘어’로 새롭게 단장해 동성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한 바 있다.또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20년부터 ‘동성로 스마트쇼핑관광-DDS’를 구축해 운영 중에 있으며, 이 프로그램 중 DDS는 다국어로 돼 있고, AR도보네비게이션, 텍스리펀계산기, 패키지 상품 등을 포함하고 있다. 올해는 재한외국인을 대상으로 프로모션행사를 추진하고, 언어교환 플랫폼을 활용해 외국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한다는 계획이다.아울러 역사문화자산의 보존과 복원을 통한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영남제일관이 위치했던 남성로에 대구읍성영상관을, 경상감영공원에 버츄얼체험존을 조성하고 있으며, 약령시 구 에코한방웰빙체험관에 천재화가 故이인성 화백의 작품을 활용한 전시체험공간을 조성해 지역문화예술자원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애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대구형무소 역사관도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2층에 건립할 예정이다.더불어 김광석길 콘서트홀 내 미디어플랫폼을 구축하고, 김광석길 벽화대전 개최로 더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관광객을 유입을 통한 주변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류규하 중구청장은 “민선 7기부터 이어오던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중구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새롭게 추진한 사업들이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다. 구민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구정을 이끌어가는 기본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며, 구정에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 홈페이지, 또는 방문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며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건강 유의하시고 혹시 모를 자연 재난에 미리 대비해 소중한 재산과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3-07-16

“차별화된 유일한 수성구 조성”

“차별화된 유일한 수성구를 만들겠습니다.”민선 8기 1주년을 맞이한 김대권 대구 수성구청장이 향후 수성구의 중점추진 중인 사업과 정책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김 구청장은 평소 인구축소와 기후변화라는 시대과제에 선제로 대응하고, 특색있는 도시공간과 건축 디자인이 도시의 가치를 더하는 ‘차별화된 유일한 수성구’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고 행정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수성구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구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갖춰 집객자원을 확보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새롭게 정립해 기후 위기 대응의 변곡점에 대처할 수 있도록 시대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가짐이다.특히 수성구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교육’으로 생각하는 만큼, 다양한 형태의 교육사업을 진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지역에 분포하는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함이다.수성구는 현재 국제학교 설립과 교육자유특구 지정을 추진하는 한편, 대구스타디움 미래교육관 건립, 미래교육재단 운영을 통해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설계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자 역량을 모으고 있다.또 김 구청장은 수성구가 국제적인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외부인들의 시선을 끄는 랜드마크와 월드클래스의 문화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이와 관련, 수성못 수상공연장과 수성브리지, 생각을 담는 길 거점지역에 유명 건축·조경가들의 설계로 예술성을 더한 오브제와 건축물을 조성하는 ‘수성국제비엔날레’를 추진해 건축이 예술이 되는 특색있는 명소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아울러 한옥에 세계적인 조경을 가미한 고산전통문화교육관과 한옥촌, 대구미술관과 간송미술관, 사립미술관을 연계한 미술관 클러스터를 조성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들안예술마을 공공예술 창작촌 공예사업과 수성구 캐릭터 ‘뚜비’를 연계한 굿즈 제작으로 골목상권을 활성화할 방침이다.이와 함께 망월지 두꺼비 생태교육관 건립과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세대의 환경 감수성도 키운다.이러한 사람이 모이는 경제구조를 만들어가려면 미래교통을 선점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김 구청장은 “5군지사 이전 후적지 UAM 버티포트 조성과 수성못∼용지봉 헬리패드 간 UAM 운송서비스 시범 운영, 대구권 광역철도·도시철도 3호선 등과 연계한 복합환승센터 건립을 추진해 미래교통의 중심지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또한, 해외 자매·우호도시교류를 활성화하고자 ‘교류협력단’을 신설해 알파시티 입주기업과 문화예술인의 해외 진출을 통해 교육·문화·경제적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대구시와 과기부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ABB산업을 핵심으로 수성알파시티를 ‘제2의 판교’로 발전시켜 미래 디지털혁신 중심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도 설정했다.이 밖에도 그는 △도시 공간 내 건축, 조경 및 다양한 구조물과 행정서비스 등 수성구만의 독자적인 파이프라인을 프리미엄급으로 형성할 수 있는 기반 구축 △‘아동이 행복한 도시, 수성구’의 이미지 구축 △해외도시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한 수성구의 미래 도약 등을 중점 추진 사업으로 꼽았다.김대권 수성구청장은 “우리 수성구는 수성구만의 도시 이미지를 더욱 확립하고, 다양성을 갖춘 도시 공간을 열어 미래 가치를 선도하고 지역 스스로 창조역량을 강화하는 등 ‘차별화된 유일한 수성구’ 그 속에서 주민들의 가치를 높이고 수성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성구라는 도시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며 “커뮤니티센터, 생활문화센터, 공공도서관을 확충하고 추진 중인 수성행복드림센터, 제2구민운동장, 팔현정구장 등 각종 생활체육시설 조성을 차질없이 추진해 주민 생활에 활력을 더하고, 수성구형 종합사회복지관 모델 개발과 공백없는 생애주기별 돌봄 체계 구축을 통해 함께 누리고 희망을 나누는 수성구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3-07-16

“아이들이 허기져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효성여대 약학과에 입학한 권순남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과외, 입주 가정교사, 공장 노동자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혼자 감당하기엔 힘겨워 결국 졸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권순남 선생의 결혼 이후 사회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최미경(최) : 자녀는 몇 명을 두셨는지요?권순남(권) : 딸만 둘이야. 당시 풍조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였는데 남편이 새마을지도자회 회장이어서 정부 말을 참 잘 들었던 것 같아. 최 : 1970년대는 ‘새마을’을 많이 붙였지요?권 : 그랬지. 새마을어머니회, 새마을부녀회처럼 ‘새마을’을 붙이는 게 혁신이라 믿었던 것 같아.권순남 선생은 예절과 도의를 강조한 아버지에게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결혼한 후에는 아이를 잘 키우고 내조를 잘하면 된다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기에 사회활동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한다.최 :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권 : 큰애가 영흥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 몇 번이고 어머니회에 나오라고 했는데, 시부모님이 싫어하셔서 미루다가 큰애의 학교생활이 궁금해 처음으로 나갔지. 회의를 진행하던 중 회비를 20~30원 정도 걷는다길래 회비의 용도를 물었더니 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쓴다고 하더군. 내가 그 자리에서 박봉의 선생님들을 위해 쓰는 것도 좋지만 어머니회에서 걷는 회비는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게 낫지 않겠냐고 의견을 내놓았지.최 : 처음 어머니회에 가서 그런 발언을 하셨다니 눈총을 받지는 않으셨나요?권 : 당시에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건 일반적이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영흥초등학교는 학부모의 교육 수준이 다른 학교에 비해 낮은 편이었어. 해도는 원래 섬이었는데 진펄을 메워 거주지가 만들어졌지. 그곳에서 ‘반티(함지 그릇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 장사를 많이 했어. 생계에 급급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거든. 내 눈에는 그런 것만 보였지. 이런 내가 어머니회에 처음 가서 던진 말에 좋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일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지. 어느 날인가, 학교에 다녀온 큰애의 운동화가 엉망이었어. 깨끗하게 신고 간 운동화가 엉망이 되었기에 어디 가서 놀다가 왔냐며 종아리를 쳤지. 그런데 학교에 가보니 운동장에 물이 빠지지 않았어. 비가 그친 지 이틀이 지나도 학교 운동장이 마르지 않았던 거야. 시어른에게 물어보니 염전 위에 세운 학교라 배수 처리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 이런 교육 환경은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흥초등학교 어머니회 회장과 시청 담당자를 찾아갔어.최 : 공무원 반응이 어땠나요?권 : 시청 담당 공무원은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교육청에 가라고 하고, 교육청에 가니 예산이 없다고 하더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말했지. 남편이 영흥초등학교 체육진흥회장을 맡고 있던 터라 새마을운동 차원에서 하천으로 물이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어. 임시방편으로 아이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학교 입구 쪽만 우선 조치했지.최 : 당시 여성들의 사회활동은 교육 현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권 : 큰애가 3학년 때 학교 어머니회 회장을 맡았어. 이제는 내 아이디어로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학교 운동장을 뒤집어 자갈을 깔고 숯과 모래를 그 위에 올리면 삼투압에 의해 물이 빠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이걸 도와줄 일손이 부족했어. 여기저기 알아보니 오천에 있는 해병대 공병부대를 부르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곧바로 해병대 사단장 부인을 만나러 갔지.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사단장을 만나면 물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군.그날 밤 권순남 선생은 사단장 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다음 날 계획서를 들고 찾아오라는 연락이었다. 권순남 선생은 밤새 한숨 못 자고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다음 날 사단장에게 영흥초등학교 운동장 복토 공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권 : 사단장을 만나고 나오면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이 상대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 첫 번째 감동 포인트는 전교생 위문편지 쓰기였지. 여학생은 오빠라고 시작하고, 남학생은 형님이라고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쓰게 했어. 그리고 어머니회를 중심으로 치약, 칫솔, 비누, 타올 등을 모았어. 마지막으로 위문 공연을 준비했지. 이렇게 준비된 것을 갖고 해병대로 찾아가 장병들을 앞에서 3부에 걸친 위문 공연을 진행했어. 1부에서는 남학생 둘, 여학생 둘이 편지를 읽은 후 장병들에게 전달했고, 2부에서는 학생들이 리코더를 불고 노래도 하고 고적대가 준비한 위문 공연을 했어. 붕대를 감고 있던 상이용사들이 어린 학생들의 노래와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더군. 그리고 3부에서 위문품을 전달했지. 이 모든 과정이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한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침내 운동장 복토 공사 승낙이 떨어졌어.그해 여름방학 한 달 동안 해병대 공병부대에서 트럭 3대가 매일 아침 영흥초등학교로 왔다. 각 트럭마다 20명씩 탑승했으니 매일 군인들 60명이 영흥초등학교에서 종일 땀 흘리며 공사를 진행했다. 권순남 선생은 어머니회를 소집해 간식 조를 짰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 6조, 한 조에 5명씩 임원을 배치해 장병들이 간식을 먹으며 일할 수 있도록 도왔다.권 : 그때는 사람들이 순수하고 헌신적이었어. 여름방학 내내 해병대 장병들도 어머니회도 애를 참 많이 썼지. 그렇게 운동장이 개선되니 신이 나고 재미있었어. 그래서 어머니회가 더 활성화된 것 같아. 이 밖에 권순남 선생은 학부모들과 도서 모으기 캠페인을 전개해 학교 안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고 고적대도 만들어 지원했다.최 : 영흥초등학교 고적대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고 들었습니다.권 : 음악을 전공한 한영대 교사가 영흥초등학교로 온 것을 알게 되었어.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자며 한영대 교사와 의기투합했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영흥초등학교 고적대였어. 악기 살 돈이 없어 군악대의 오래된 악기를 가져오고, 동지상고·포항수고 악대부에 고장 나거나 못 쓰는 악기도 가져왔지. 어느 늦은 밤 학교에 갔는데, 한 교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어. 한영대 교사가 집에 가지도 않고 헌 북을 고치고 있더군. 교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가만있을 수 없었어. 대회를 앞두고 고적대 아이들의 유니폼을 제작하려고 모금을 했지. 영흥초등학교 고적대는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경상북도 우수상을 받았고, 그다음 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어.최 : 결식 학생들을 돕는 절미(節米) 운동도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시작하셨나요?권 : 한번은 학교에서 식목 행사를 한다고 해서 어머니회에서 30명 정도 나무를 구입해 학교에 갔지. 조회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에 픽픽 쓰러졌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사정을 알아보니 아침밥을 못 먹은 아이들이 허기를 못 견디고 쓰러진 거였어. 한 반에 50명 넘는 아이들의 가정실태조사를 교사가 일일이 할 수 없었기에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학교에 다니는지 알 수 없었지. 그래서 어머니회에서 아이들의 주거환경을 살펴보기로 했어. 초가집이나 양철집에 사는 아이도 있었고, 텐트를 치고 사는 아이도 있었어. 텐트 안에 들어가니 흙바닥에 나무 판때기를 놓고서 석유곤로로 밥을 해먹고 가마니때기를 깔고 잠을 잤어. 그런 가정이 예닐곱 군데였어. 그중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상이용사 집이 네 군데였고, 어머니가 가출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품팔이해서 겨우 먹고사는 가정이 세 곳이었지. 참담한 상황이었어.권순남 선생은 그들을 도우려 일주일간 고민하다 신주머니 100개를 만들어 어머니회에 나누어주었다. 세끼 밥을 안칠 때마다, 쌀 한 숟가락을 덜어 그 신주머니에 넣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간 모은 신주머니 100개를 자루에 담으니 열두 자루가 나왔다.권 : 어머니회 임원들을 불러서 쌀자루를 하나씩 주고 저학년부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찾아가 전해주라고 했어. 그렇게 쌀자루를 들고 간 임원들은 돌아올 때면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 허기져서 아이들이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3년 동안 절미 운동을 했어. 권순남 선생은 자녀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시어른이 하던 직물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그 사업을 할 때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고아원·양로원·장애인 시설의 후원을 지속적으로 했다.최 : 남편의 이해 없이는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잖아요. 부군께서는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권 : 남편은 건축을 전공했어. 시어른이 사업을 물려받으라고 하자 장사는 싫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 그래서 내가 그 사업을 받았어. 그이는 포항JC에서 임원을 하며 봉사활동을 했어. 봉사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 비슷해. 내가 하는 일을 믿고 응원해주었지.권순남1939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포항으로 왔다. 포항초등학교, 포항여중·고를 졸업하고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1957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자원봉사를 삶의 전부로 여기며 실천했다. 포항JC 부인회를 통해 장애재활사업 후원, 양로원 지원, 소년소녀가장 지원 등을 해왔다. 1996년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소장, 2003년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회장을 맡아 지방자치단체별 자원봉사센터 설립과 운영의 효율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정에도 앞장섰다.대담·정리 : 최미경(시인) / 사진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제공 : 권순남

2023-07-16

누구나 살고 싶은 ‘풍요로운 행복 도시 봉화’ 토대 마련

박현국 봉화군수는 민선 8기 군정 목표를 ‘군민이 주인인 희망찬 봉화’로 정하고, 지난 1년 동안 ‘군민 소득 1조 원 시대’ 실현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또,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에 맞서 봉화를 되살려 주길 바라는 군민의 간절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지역 활성화를 통한 누구나 살고 싶은 풍요로운 고장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밝혔다.먼저, 행정환경 변화에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행정조직을 정비하고 공직사회에 공정과 상식, 신뢰와 공감의 청렴문화를 불어 넣는 데 힘썼다.봉화의 곳곳을 누비며 군민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지역 현안 해결이라면 국회, 중앙부처, 도를 비롯한 관련 기관을 찾아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본예산 기준 최초 군예산 5천억 원 시대를 열었다. 아울러, 풍수해생활권 종합정비사업,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개조사업 등 20여 개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총 593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박현국 봉화군수는 “군민이 주인인 희망찬 봉화 건설을 위해 군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면서 “양수발전소 유치, 베트남마을 조성 등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기에 소멸 위기 봉화의 ‘제2의 도약’을 위해 더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 미래형 영농기반 구축으로 부자 농업인 육성박현국 봉화군수가 이끄는 민선 8기 봉화군정은 군의 근간인 농업정책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힘썼다.기후변화에 대응해 봉화 임대형 스마트팜 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해 안정적인 농가소득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이를 통해 영농을 희망하는 청년과 기존 농업인들에게 임대함으로써 일손이 적게 들고, 소득은 높은, 디지털 농업기술을 널리 확산시킬 계획이다.또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6차산업 창업지원과 기후변화에 대응한 신소득 작목 발굴, 농업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정예농업인 육성에도 앞장서고 있다.이와 더불어 고질적인 농촌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 적기 도입을 추진했으며, 농업인 권익향상을 위한 다목적 농업인교육관 신축, 안정적인 판로개척과 농산물종합산지유통센터 활성화, 봉화군 농산물 브랜드 가치 제고 등 부자 농촌 구현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고 있다.□ 풍부한 산림자원을 활용한 임산업 육성군 면적의 83%가 산림인 봉화군은 산림의 공익적·경제적 가치 증진을 위해 올해 1천273ha 규모의 조림사업과 숲가꾸기 사업을 추진해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위해 힘쓰고 있다.지역 임가의 경쟁력 강화와 임산물의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12억 원 규모의 임산물 재배단지 및 생산기반 시설을 지원했으며, 임산물 산지종합유통센터 조성을 통해 임업인의 안정적 경영기반 구축을 도모했다.2024년 개장을 목표로 조성 중인 문수산 산림복지단지는 지역을 찾는 방문객에게 숲과 자연에 머물러 갈 수 있는 산림휴양 치유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숲속도시 봉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한, 국책사업인 문화재수리재료센터는 현재 공정률 38%로 연내 준공을 목표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국립봉화양묘기술체험교육관 건립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곧 착공할 예정이다.아울러, 경북도와 봉화 바이오메디 U시티 업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산림기반 바이오메디 연구를 통한 기업과 대학 캠퍼스 유치를 통해 봉화에서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지역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발판을 조성했다.□ 글로컬(glocal) 관광자원 확충으로 오감만족 봉화 구현봉화군은 관광산업을 농림산업과 더불어 지역경제를 이끄는 양대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베트남 국가주석 면담과 뜨선시와 우호 강화 협약체결, 덴도 축제 공식 방문으로 한-베 교류 선도도시의 입지를 다진 봉화군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국가 정책화를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한 분천산타마을의 국제적 명소화를 위해 관광콘텐츠를 대폭 강화하고, 노루재 구국도를 활용한 루지체험장 조성, 명호 범바위 전망대 구축, 백두대간 힐링 펫빌리지 조성 등을 통해 관광객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관광자원 확충에도 노력하고 있다.아울러 지난해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축제관광부문 대상을 수상한 봉화은어축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 폭증하는 관광수요에 발맞춰 올해는 더욱 신나고, 화려한 라인업으로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외에 봉화송이축제, 분천산타마을 축제 등도 다채로운 구성으로 지역의 문화·관광 산업에 힘을 보탤 것이다.□ 적극적인 인구정책으로 지방소멸 위기 극복봉화군은 민선 8기 최우선 과제로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 위기 극복에 두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먼저 인구전략과를 신설해 인구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또한 도시민 유치 기반 조성을 위해 경북형 작은정원 조성, 두 지역 살기 기반 조성, 신규 모듈러 주택단지 조성,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비롯한 4개지구 신규 전원주택단지 조성사업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지역에 살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주민을 찾아 주소 이전을 유도하는 봉화사랑 주소갖기 운동도 지난해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결과 인구 감소 추세가 완화되는 효과를 거뒀다.전입축하금 지원, 전입 청년 주택임차료 지원, 가업승계농 정착지원 등 인구 증가를 위한 다양한 시책 마련 및 추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 사는 따뜻한 행복도시 조성품격있는 맞춤 복지 실현으로 군민의 복지수준을 한단계 높이고 있다. 민선 8기 공약사업인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 확충을 통해 공공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사회서비스형 어르신 일자리 확대로 취약계층의 근로 기회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있다.또한, 아이키우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석포면 국공립어린이집 신축, 모두의 놀이터 조성, 키즈카페 및 놀이시설 건립을 비롯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획득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골고루 잘사는 균형발전 실현쇠락하고 침체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봉화와 춘양의 도시재생사업들은 사전 행정 절차를 밟으며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군민의 오랜 숙원사업인 내성지구 도시개발사업은 첫 삽을 뜬 이후 하루가 다르게 봉화를 변화시키고 있다.또한 농촌지역 주민의 소득과 기초생활수준을 높이고, 농촌 편의 증진을 위한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기초생활거점사업 등을 통해 누구나 살고 싶은 새로운 농촌을 만들어가고 있다.도시발전의 기본이 되는 교통망 확충을 위해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조기건설과 남북9축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지도 88호선 선형개량과 지방도 915·918호선 확포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민선 8기 1년, 군민이 주인인 희망찬 봉화 건설의 초석을 다진 박현국 군수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군민들과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군정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각오를 밝혔다.1조 원 규모 국책사업인 양수발전소 유치,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국가정책화 추진 등 봉화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들을 비롯해 그동안 구상하고 준비했던 계획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실천해 ‘보다 나은 봉화, 내일이 있는 봉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23-07-13

압독국∼조선시대 역사·자연 등 다양한 관광자원 보유

경산은 고대의 압독국이 자리 잡은 곳으로 일찍부터 고대인들의 생활문화 공간이었다.이를 뒷받침하는 임당·조영동 고분군 등의 각종 고분군과 대승불교를 전파한 원효(元曉, 617~686)와 이두를 풀이한 설총(薛摠, 655~?),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一然, 1206~1289) 등이 태어난 고장이다.경산시는 자연 자원과 문화재, 역사자원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산자인단오제를 비롯한 압독국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문화를 보여주는 요소들이 많다.경산의 문화와 관광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경산의 문화경산의 문화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고대 압독국에서 현대까지, 농경사회에서 중소기업도시로 변모하며 문화적인 부침도 겪었지만 압독국이 지역 문화중심에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이 시기에 조성되었던 임당·조영동의 고분군을 비롯해 부적리, 신상리, 대동, 소월리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분군에서 지금까지 봉분형태의 20기의 봉분 중 15기가 발굴돼 출토유물도 1만여점으로 방대하다.특히 고총·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금동관식, 은제허리띠, 고리자루칼(環頭大刀) 등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유물들은 압독국의 실체와 당시 문화예술을 규명하는 결정적인 자료다.고분 중 출토된 유물들을 봤을 때 왕이나 왕비의 무덤으로 추측은 가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고총이라 한다.경산 문화의 또 하나의 흐름은 원효와 설총, 일연 등으로 지역에서는 이들을 삼성현(三聖賢)으로 추앙하며 그 덕을 기리고 있다.원효는 귀족불교를 민중 불교로 바꾸고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불교를 하나의 진리로 두어 조화를 이루고자 했으며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충렬왕 때인 1283년 국존(國尊)에 올랐고 승려였음에도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가 계신 경산지역과 가까운 곳에 머물렀다 한다.이들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한층 심화시키고 현재까지도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조선 시대 유교문화의 흔적은 경산향교와 자인향교, 하양향교, 금호서원과 조곡서원, 관란서원 등에서 찾을 수 있다.경산의 문화 중 가장 시민들과 가까운 것이 경산자인단오제다,신라 또는 고려 시대의 사람이라 전해지는 한 장군이 도천산에 자리 잡고 자인지역의 백성을 괴롭히는 왜인들을 도천산 밑 버들 못에서 여자로 변장해 누이동생과 함께 화관을 쓰고 춤을 추어 유인한 왜인들을 섬멸했다.그 후 자인지역에서는 한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생기고 해마다 단오절에 가장행렬을 벌이고 여원무(女圓舞제)를 추며 제사를 지내는 한장군놀이가 자리 잡았다.한장군놀이는 1969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고 2007년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변경됐다.경산자인단오제는 한때 강릉단오제와 함께 단오제의 양대 산맥을 이루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명맥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현실이다.현재의 경산자인단오제는 한묘제사와 여원무, 자인팔광대, 계정 들소리, 호장굿(가장행렬), 큰 굿 등이 시연되고 있으나 여원무와 계정들 소리는 참가자의 수가 줄어들고 시연자의 나이가 고령화되고 있어 개선책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경산의 문화예술은 1962년 설립된 경산문화원이 문화조사연구사업과 지역 축제개발과 육성,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접목, 자원봉사단 운영, 생활문화와 지역사회문화발전을 위한 문화 활동 등을 주도하다 2007년 경산시립합창단이, 2017년 경산시립극단, 2020년 경산시교향악단 등을 창단해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 있지만, 아직 인근 대도시인 대구의 문화권에 묶인 형상이다.경산시의 문화예술은 2024년 10월에 발족할 문화관광재단과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방근린공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시민들의 숙원사업인 문화예술회관이 문을 열어 괄목할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 경산의 관광자원과 현실경산은 자연 자원과 문화재, 기타 문화·역사자원 등 다양한 관광자원은 많으나 수익 창출과 지역을 알리는 큰 효과를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은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갓바위, 보물 제431호)과 사진찍기 명소 반곡지,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경산자인단오제, 경산의 삽살개(천연기념물), 대구가톨릭대 스토로마톨라이트(천연기념물),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용산산성 등 다양한 국가지정문화재와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등이 있으나 관람 위주로 숙박과 함께 즐기는 관광상품으로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지역을 알리는 관광상품으로 첫 손에 꽂히는 팔공산 관봉 갓바위는 통일 신라 시대 불상으로 정성껏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알려져 불교의 3대 기도 도량의 하나로 기도 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특히 그 자리에 있던 바위를 깎아서 환조(丸彫) 기법으로 조성한 특징에 5.48m의 석조여래좌상이 머리 윗부분에 갓 모양의 모자가 얹혀 갓바위 불상이라고도 한다.하지만, 팔공산이 대구의 명소로 알려지며 관봉은 경산의 행정구역임에도 많은 사람이 갓바위를 대구의 명소로 알고 있어 경산시는 이를 타파하고자 갓바위축제를 1998년부터 열고 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1903년에 축조돼 300년 이상의 버드나무가 물에 반영되는 그림자와 어우러져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된 반곡지는 2013년 안전행정부의 ‘우리 마을 향토자원 Best 30선’에 선정되고 이러한 이유로 전국 사진촬영대회,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다.‘경산의 삽살개’로 199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산의 삽살개가 아닌 삽살개로 불리고 지역에서도 경산의 삽살개가 아닌 삽살개로 불리고 있어 관련기관의 주의가 필요하다.삽살개(삽사리)라는 이름은 귀신이나 액운을 쫓는 뜻을 순수한 우리 말로 긴 털로 해학적 면모를 보여 가사와 민담, 그림 가운데 자주 등장하며 주인에게는 충직하나 다른 동물에게는 대담하고 용맹스럽다.서민의 개로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애환을 같이했다.삼국 시대 산성인 용산산성은 삼한 시대에 어깨에 날개가 달린 아기 장사가 동해로부터 침략하는 왜구를 막아내고자 축성한 성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며 용성면 용산리 용산에 있다.용산산성은 용성면과 자인면, 진량읍, 하양읍까지 관찰할 수 있는 요새로 청도군과 경주시를 잇는 길목으로 현재 남아 있는 성의 총 둘레는 1.4km 정도이며 성벽의 높이는 1.5~2.5m로 국방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산성으로 그 가치가 아주 높다.이 외에도 지역에서는 많은 관광자원으로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수는 늘어나지만, 유로 관광지의 방문객보다 무료관광지 방문객 수가 월등하게 높게 나타나며 거쳐 지나가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현재로서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경산시는 이를 해결하려고 관광 웹 드라마를 제작하고 VR 콘텐츠를 시 홈페이지에 업로드 하는 등의 노력과 함께 경산 5경으로 선정된 갓바위와 반곡지,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자인 계정 숲, 남매지 등을 활용할 예정이나 관광산업으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으로 쉬어가는 관광자원의 개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3-07-12

내 꿈을 영글게 한 전쟁고아들

지금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원봉사지만 과거에는 아주 낯설었다. 여기에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낯섦은 자연스러움이 되었다. 권순남(權順南) 선생은 자원봉사활동 초기부터 합류해 갖은 고생 끝에 자원봉사활동의 기틀을 다졌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권 선생은 어떻게 포항에 와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일을 겪으며 자원봉사의 뿌리를 내렸는지 5회에 걸쳐 이야기를 전한다. 최미경(이하 최) : 광복 후 포항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권순남(이하 권) : 내가 태어난 곳은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이야. 어머니 고향은 울진이고 아버지는 안동이었는데, 통천이 살기에 좋다고 아버지가 그곳에 터를 잡았지. 어린 시절 우리 집 앞은 포항 송도처럼 소나무 숲이 우거졌어. 광복 후에 언니와 나는 큰아버지를 따라 안동에 와서 2년간 살았고, 아버지는 우리보다 늦게 안동으로 왔다가 포항에서 그물 공장을 크게 하는 친구의 권유로 포항에 오게 되었지.최 : 그러면 어머니는 언제 통천에서 나오셨나요?권 : 나오지 못했어. 당시 어머니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갓난아기를 데리고 나오기가 힘들었어. 어머니는 나와 언니가 걱정돼 아버지를 안동으로 먼저 보냈고, 자신은 막내가 좀 더 크면 같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막힐 줄 누가 알았겠어. 최 :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나요?권 : 포항에는 아홉 살 때 왔는데, 가을이었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아는 분 편에 어머니가 쓰신 쪽지를 전해 받았어. “아버지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그때 가겠노라”고 적혀 있었지.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 어린 마음에 내가 열심히 해서 이름을 날려야 어머니가 오겠구나 싶어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 한 장만 써도 될 것을 세 장씩 썼지. 그런데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가 귀한 시절이라 공책을 많이 쓴다고 선생님한테 맞기도 했어.최 : 공부뿐 아니라 뭐든 열심히 하셨을 것 같아요.권 : 어렸을 때는 단순했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였고. 그게 몸에 밴 것 같아.최 : 초등학교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권 : 입학 시기를 놓쳐 열 살 때 포항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어. 그때는 1학년에도 나이 든 학생이 더러 있었어.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님을 돕느라 더 그랬지. 한번은 교문 앞에서 매번 지각하는 같은 반 아이를 만났어. 땀을 뻘뻘 흘리며 교문에 들어선 그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안 보이는 데서 무명 보자기를 풀어 신고 왔던 짚신 대신 까만 고무신을 갈아 신더군. 내가 그 아이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신광이라고 했어. 신광이라면 정말 먼 거리였지. 그 아이의 짚신과 내 구두를 번갈아 보니 왠지 미안하고 슬펐어.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최 :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나요?권 : 중학생 때였어.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집이 무척 컸어. 영화에서나 보던 저택이었지. 집에 들어서자 앞치마를 두른 여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시녀라고 생각했고, 친구가 대단한 부자구나 싶었어. 넓은 거실에 앉아 있는데 시녀가 따뜻한 우유와 비스킷을 가지고 와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군. 놀러 왔는데 왜 기다리라고 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랐어. 그때는 배급으로 우유를 받았는데 모두 분말이었어. 우리 어머니는 그걸 어떻게 먹는지 몰라 늘 쪄 주셨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찐 우유는 딱딱하게 굳어 먹을 수가 없었어. 도시락통을 운동장에 들고 나가 돌멩이로 치다 보면 점심시간이 다 지나갔지. 깨진 우유 조각 몇 개를 입 안에 넣고 녹여 먹곤 했는데 하얀 우유를 유리컵에 담아왔으니 놀랄 수밖에. 비스킷은 아까워 먹지도 못하고 동생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어. 잠시 후 친구가 와서 “이제 도와주자”라며 나를 뜰로 데리고 나갔어. 그곳에 어린아이 50여 명이 겨울 햇살 아래 쪼그려 앉아 있었어. 나는 “저 아이들 소풍 왔어?”라고 친구에게 물었지. 그러자 친구가 “고아들이야”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그때까지 고아라는 말을 몰랐어. 그래서 고아가 무슨 뜻인지 묻자 친구는 6·25전쟁 때 부모를 잃은 아이라고 설명해주더군. 그제야 그곳이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아이들을 유심히 보니 코 흘리는 아이, 손이 하얗게 튼 아이, 양말을 안 신은 아이도 있었어. 그 아이들이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데, 엄마 잃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아팠어. 만약 아버지가 이북에서 오지 않았다면 나도 저 틈에 앉아 있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지. 최 : 어떤 꿈인가요?권 : 돈을 벌고 싶었어. 이 아이들에게 집을 지어주자, 살아갈 수 있게 희망을 주자, 그런 마음이었지. 돈을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게 의대 아니면 약대에 가는 거였어. 그래서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공부했고 봉사의 가치를 알게 되었지.최 : 봉사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권 : 그 아이들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어. 그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고, 하고싶다는 에너지 말이야. 과자를 사주고 싶은 마음에 몸이 꽁꽁 어는 줄도 모르고 크리스마스 전날 새벽 추위를 뚫고 초롱을 들고 다녔어. 여름방학에는 학교에서 배운 뜨개질로 모자와 목도리를 짜고 양말과 장갑을 짰지. 손가락장갑은 시간도 많이 들고 어려워서 벙어리장갑만 짰어.최 : 장갑을 짜려면 털실이 필요했을 텐데 어디서 구하셨나요?권 : 친구들의 못 입는 스웨터를 받아 실을 풀고, 해병대 군악대에 다니는 오빠에게 해져서 구멍 난 양말을 모아달라고 부탁했지. 그렇게 모은 실로 1년간 틈틈이 짜면 장갑, 목도리, 양말이 50개 정도 되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가지고 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어.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것이지만 뭔가를 나눈다는 게 무척 행복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어. 1956년 권순남은 헌 스웨터를 수거해 리폼한 뜨개실로 모자, 장갑, 양말 등을 만들어 성모자애원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이 일은 그녀의 자원봉사 생활의 서막이었다.최 : 가정형편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권 : 6·25전쟁으로 포항이 초토화되어 포항 시민 대부분이 집을 다시 지어야 했어.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지. 1955년에 아버지는 강원도 삼척에서 목재를 싣고와 지금의 제일안경 자리에 2층 목조건물을 지어 금은방을 했어. 그해 겨울, 포장마차를 하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해서 아버지가 우리 목조건물 옆에 자리를 내주었지. 그런데 포장마차 주인이 포장 텐트 안에서 램프에 기름을 붓다 화재를 냈어. 불은 빠르게 건물로 옮겨붙었고 1년도 안 된 목조건물이 전부 타버렸어. 그때 모든 걸 잃었지.최 : 학교는 어떻게 다니셨나요?권 : 고등학교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선생님 두 분이 입학금 4만 5천 원을 대신 내주셨어.최 : 뭐든 열심히 해서 학교에서 사랑을 많이 받는 학생이었을 것 같아요.권 : 운동을 잘해서 운동부 코치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했지. 그래서 육상부와 배구부를 동시에 했어. 포항여고 육상부 선수 4명은 경북 대표로 뛸 정도였고 배구부는 경북에 적수가 없었어. 고3 때인 1959년 가을, 서울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군산여상과 붙었지. 서울에 있는 포항여고 졸업생들이 몰려와 응원했지만 포항여고는 3 대 0으로 완패했어. 그때만큼 맥 빠지는 일이 없었지. 포항에 오자마자 운동을 접고 공부만 하겠다고 결심했어.1950~60년대 군산여상 하면 배구, 배구 하면 군산여상이라고 할 정도로 군산여상 배구부는 막강했고, 군산여상 배구부 선수는 대부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최 : 고3 가을이라면 대입 시험이 4~5개월 정도 남았는데 가능했나요?권 : 나는 성공해야 했어. 목표가 있으니까.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버지가 대학에 못 보낸다고 하시더군. 당시 교감 선생님이 우리 집사정을 듣고 전국을 다니며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대학을 찾아보셨지. 효성여대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중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등록금을 분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에 면접을 보고 합격했어.권순남1939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포항으로 왔다. 포항초등학교, 포항여중·고를 졸업하고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1957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자원봉사를 삶의 전부로 여기며 실천했다. 포항JC 부인회를 통해 장애재활사업 후원, 양로원 지원, 소년소녀가장 지원 등을 해왔다. 1996년 포항시자원봉사센터 소장, 2003년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회장을 맡아 지방자치단체별 자원봉사센터 설립과 운영의 효율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정에도 앞장섰다.대담·정리 : 최미경(시인) / 사진촬영 : 김 훈(사진작가) / 사진제공 : 권순남

2023-07-12

인재양성 요람 경북학숙, 내년부터 전원 ‘1인 1실’

경북도가 지역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대학생 기숙사 (재)경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 경북학숙(본부장 김만수·정치학 박사)이 화제다. 특히 내년부터는 전국 학숙 최초로 재사생 전원이 1인 1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파격적인 운영방침을 밝혀 큰 관심을 끌고 있다.지난 1998년 3월 경북도가 출연해 경산시 진량읍에 세운 경북학숙은 30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서 지하 1층, 지상 8층으로 지어졌다. 경북 출신으로서 대구·경북 소재 대학을 다니는 우수한 대학생들에게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안정적인 면학 시설을 제공해 지역사회는 물론, 국가발전의 중추 역할을 할 지역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대학생 기숙사다. 지금까지 모두 8천540명의 도민 자녀들이 시설을 거쳐 갔다. 재사생들의 규칙적인 생활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경북학숙은 기존 대학 기숙사들과 달리 체력단련, 자기 계발을 위한 야외 운동장, 실내헬스장, 컴퓨터실, 독서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학숙 직영으로 운영하는 식당은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그 밖에도 경북학숙은 토익, 요가, 컴퓨터 활용 등 재사생이 원하는 강좌를 특강으로 편성해 무료로 운영한다. 나아가 열린정보센터는 재사생뿐만 아니라 경북도민에게도 개방해 전자도서관과 8천여 종의 동영상 강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김만수 경북학숙 본부장은 “경북학숙이 2024년부터 1인 1실로 전환키로 하고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글로벌 라운지 설치와 학숙 시설 리모델링에 들어갈 계획으로 그동안 학생들이 사용하던 불용품 침대와 의자 151조 전량을 상생 경영의 일환으로 도내 노인복지시설과 독거노인들에게 기증했다”며 “학숙들 중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어서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아서 보람을 느낀다.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을 도와 이웃의 성장이 우리 사회 나눔 씨앗이 돼 선순환될 수 있는 기회기이기도 한 만큼 앞으로 다양한 활용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경북학숙은 지난 4월 26일부터 지난 5일까지 7회에 걸쳐 포항, 김천, 영덕, 고령 경로당과 영덕 영원노인복지센터, 포항 하얀연꽃마을요양원, 고령 대가야요양원, 영덕 농공단지 외국인 노동자 숙소 등에 경북학숙의 불용품 침대 및 의자 151조 전량을 기증했다. 특히 영덕군과 영덕군의회에서는 김성호, 김성철 군의원의 주선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영덕군내 경로당과 어르신들 60여 명에게 침대와 의자를 직접 전달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김만수 경북학숙 본부장학숙을 리모델링하면서 불용품으로 처리되는 침대와 의자 등을 필요로 하는 도내 어르신들에게 기증함으로써 어르신들에게 행복을 안겨줌은 물론, 불용품 폐기에 따른 부대비용을 제로화하는 1석2조의 효과를 기획한 김만수사진 경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 경북학숙 본부장.그는 지난 2020년 5월 1일부터 (재)경북장학회 사무처장 겸 경북학숙 원장을 맡아 1995년 경북장학회 설립 이래 가장 많은 장학기금(7억8천만원)을 모금해 경북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금 모금 홍보 등에 탁월한 성과를 낸 주인공으로 평가되고 있다.부임 이후 경북학숙 미래를 위한 장학 기금 모금 활동으로 동주산업(회장 나채홍) 2천만원, 경북유치원연합회 1천만원, 국제로타리 3630지구 2천만원, 경북전문건설인협회 2천만원, 경북건축사회 500만원, 경북공공형어린이집연합회 매년 1천200만원 등 다양한 외부 장학금 8천700만원을 모금했다. 특히 동주산업 2천만원, 경북공공형어린이집연합회 1천200만원, 경북전문건설인협회 1천만원은 매년 정기 기부를 약정 받는 성과를 거뒀다.또한 각종 언론 매체와 도내 중·고·대학을 직접 방문, 홍보활동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그 공로로 내년 5월까지 1년간 연임이 결정됐다. 경북도, 입사생 연중 수시 모집경북도에서 운영하는 경북학숙은 입사생을 연중 수시 모집한다고 12일 밝혔다.수시모집 신청 자격은 경산시·대구시 소재 대학교(전문대 및 대학생 포함) 신입생·재학생으로 경북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 거주하는 보호자(부·모 중 1인)의 자녀다.원서 교부 및 접수는 정시 모집은 1월 중, 중도 입사는 연중 진행한다. 선발 기준은 성적우수자 위주로 모집하고 저소득층 자녀는 10% 이내 우선 선발하며 재사비는 20만원으로 숙식 및 학숙 내 모든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경북학숙 신청 관련 문의는 보호자의 주민등록지 시·군 교육협력업무 부서 및 경북학숙에서 한다. 자세한 사항은 경북학숙 사생지도실(053-850-9728~9)이나 경북학숙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김만수 경북학숙 본부장은 “도내 대학이 밀집된 경산에 위치한 경북학숙은 최신 시설에 저렴한 가격으로 도내 대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학숙에서 제공하는 맞춤형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능력과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경북학숙 입사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며 도민들의 관심과 이용을 당부했다.한편 경북학숙은 2017년 경북학숙 생활관 전면 리모델링 및 매트리스, 책상, 옷장 등 비품 교체를 완료했다. 타 학숙과 차별화된 경북학숙의 자랑인 ‘외국어특성화 교육’은 2007년부터 재사생의 영어회화 구사능력 향상을 위해 꾸준히 진행돼 오고 있다. ‘취업역량강화 교육’을 해 취업 어려움을 겪는 대학생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재학생의 취업률 제고를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교육에 필요한 수강료, 교재비용 및 외국어회화능력시험 응시료 등 모든 비용은 학숙에서 부담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3-07-12

삼국통일 판을 짠 명군 - 외세에 영토 넘긴 군주

‘신라 왕조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친 탓에 실제로는 삼국 가운데 가장 뒤늦게 후진적 상태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는 성립 이후 그와 같은 지리적 불리함에서 비롯된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꾸준히 기울인 결과 선진의 고구려와 백제를 따라잡고 마침내 삼국 통합의 주역으로 부상하여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후략)’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통일신라 시기-1’에선 위와 같은 문장이 발견된다.그렇다면, 지리적 여건 등으로 인해 후진적 상태에서 출발한 신라가 먼저 고대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발전하던 백제와 고구려를 누르고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구체적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효율적인 국민통합에 힘을 보탠 ‘불교’라는 이념, 엘리트 청년들의 애국심을 이끌어낸 ‘화랑’이라는 조직, 그리고 탁월한 두 인물 김유신과 무열왕 김춘추(603~661).이 3가지를 ‘7세기 신라의 핵심 에너지’라고 부르는 것에는 별다른 이론(異論)이 없을 것 같다.거론된 두 인물 중 김춘추에 관한 역사학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나무위키’를 인용한다.“무열왕은 여러모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능수능란한 외교술과 임기응변을 통해 고립무원이었던 신라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삼국통일의 판을 짠 명군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당나라와의 동맹으로 말미암아 대동강 이북의 땅을 외세에 넘긴 군주라는 부정적인 평가로 나뉘는 것.” ◆혼인으로 맺어진 김춘추의 ‘지략’과 김유신의 ‘무력’하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김춘추 즉, 무열왕에게 야박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김춘추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긍정과 부정의) 평가와는 별개로 김춘추는 신라의 역대 임금들 중에서 그 능력이 출중한 편에 속한 명군이며, 탁월한 외교와 정무 감각을 바탕으로 신라를 양면전선의 늪에서 구해냈다. 전통사회에서는 김춘추를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위인으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에 대한 호평은 그가 살아있던 당시부터 존재했다…(후략)”고구려와 당나라, 거기에 일본까지 오가며 탁월한 말솜씨와 친화력으로 칼과 창을 동원한 전투 없이도 전투 이상의 성과를 내며 국가적 이익을 얻어온 김춘추. 그는 결혼으로 맺어진 김유신과의 ‘특이한 관계’로도 유명하다.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김춘추의 아내는 문명왕후(문희). 문희는 김유신의 동생이다. 혼인으로 이어진 혈족관계는 나중에 더 확장된다. 김춘추와 문명왕후의 딸인 지소공주가 김유신의 아내가 되는 것.그러니, 김춘추와 김유신은 처남-제부 관계인 동시에 장인-사위 관계다. 문명왕후는 김유신의 동생인 동시에 장모가 된 것.지금의 윤리의식으로 보자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라며 놀라겠지만, 실제로 고대는 물론, 중세까지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근친혼(近親婚·가까운 혈족끼리의 결혼)을 하는 왕족과 귀족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적지 않았다.의학계는 동유럽의 최고 권력자 가문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병인 ‘주걱턱’이 바로 이 근친혼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한다.어쨌건, 김춘추는 신라의 무력을 ‘거의 독점한’ 김유신과 끊기 힘든 거미줄 같은 혼맥으로 결속되면서 자신의 지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확장시켰음이 분명해 보인다. ◆당나라와 일본 오가며 탁월한 외교력 인정받은 김춘추‘초한지’의 항우가 오추마를 얻은 듯, ‘삼국지’의 관우가 적토마를 얻은 듯, ‘7세기 동아시아의 실력자’ 김유신을 등에 업은 김춘추는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자신의 정치력과 외교협상력을 발휘한다. 이른바 추후에 왕이 될 재목으로서 ‘존재 증명’에 성공한 것이다.아래 ‘삼국사기’ ‘일본서기’ ‘자치통감’ 등의 고문헌에 기록된 김춘추의 외교 관련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요약한다.“다이카(大化) 3년(647년)에 김춘추가 왜(일본)에 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때 김춘추의 관등은 상신(上臣) 대아찬(大阿湌)으로 표기돼 있다. 신라에서는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 진압됐고, 선덕여왕의 사망으로 진덕여왕이 옹립됐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진덕여왕을 보위해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듬해인 648년 12월 김춘추는 당나라에 들어갔고, 당 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김춘추는 이곳에서 당의 국학(國學)을 방문해 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했다. 당 태종은 높은 벼슬을 내렸고, 김춘추는 백제를 공격할 군대의 파병을 요청해 허락받았다.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성대한 송별연까지 열어줬다.”이처럼 대내외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다가서던 김춘추는 654년 진덕여왕에 이어 신라의 스물아홉 번째 왕이 된다. ‘무열왕(武烈王)’이다.무열왕 김춘추의 집권 이후에도 백제·고구려와의 크고 작은 전투는 계속됐다. 백제의 멸망이 6년, 고구려가 신라에 병합되기까지는 14년이 남아있던 때였으니.그렇게 군사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임에도 무열왕의 통치는 백성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삼국유사’엔 김춘추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王膳一日飯米三斗 雄雉九首 自庚申年滅百濟後 除晝膳 但朝暮而已 然計一日米六斗 酒六斗 雉十首”이란 것인데, 이를 풀어 쓰면 “왕은 하루에 쌀 3말과 장끼 9마리를 먹었다. 백제를 멸한 후엔 점심을 거르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하루 식사는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였다”가 된다.인간이 ‘육식 코끼리’가 아닌 이상 24시간 동안 이처럼 많은 음식을 먹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위 문장은 상징이나 은유로 읽어야 이해가 가능할 터.왕의 밥상은 왕 하나만 먹기 위해 차려지지 않는다. 왕이 끼니를 챙겨 먹고 남은 음식을 그를 수발하는 수많은 이들이 나눠 먹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그러니, ‘삼국유사’의 과장된 서술은 매일 같이 왕의 밥상에 넉넉한 음식을 올려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무열왕 통치 시절 신라엔 물산(物産)이 풍족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국민의 배를 곯지 않게 만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가장 주요한 책무 중 하나니까. ◆딸과 사위가 같은 날 사망한 가슴 아픈 사건도 겪어젊은 시절엔 총명함을 국가가 공인한 외교협상가였고, 성골(聖骨)이 아닌 진골(眞骨) 출신으론 처음으로 신라의 왕위에 올랐으며, 김유신이란 든든한 후원자를 곁에 두고 각종 전투에서 승리하며, 백성들을 굶기지 않았던 무열왕 김춘추.하지만, 그의 삶 역시 내내 빛나는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생의 우여곡절이란 역사에 뚜렷하게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도 필시 있기 마련. 김춘추의 삶에 드리운 가장 서러운 음영(陰影)은 자신보다 앞선 딸과 사위의 죽음이다.642년 백제의 장군 윤충(允忠)은 김춘추의 ‘금쪽같은 내 새끼’와 그녀의 남편까지 도륙한다. ‘삼국사기’에 그 사건이 언급되고 있다. 다음과 같다.“김춘추의 딸인 고타소(古陁炤) 공주의 남편 김품석은 대야성 군주(大耶城 軍主)였다. 백제 장군 윤충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했다. 대야성엔 김품석에게 불만을 가진 검일(黔日)이 있었고, 그는 백제군과 내통했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김품석이 군사들을 성 밖으로 나가게 했고, 숨어 있던 백제의 복병(伏兵)이 신라군을 전멸시킨다. 윤충은 항복한 김품석과 고타소 공주를 죽인 후 목을 베어 사비성(四沘城·당시 백제의 왕이 있던 곳)으로 보낸다…(후략)”고타소 공주는 김춘추의 딸이며 김유신의 조카였다. 이로써 백제는 신라 최고위 실력자 2명의 ‘사적인 원수’까지 된다.그로부터 18년 후.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로 진격한다. 왕이 된 김춘추와 상대등(上大等·신라의 으뜸 벼슬) 김유신이 선두에 섰다. 660년 신라의 백제 침공 배경엔 ‘삼한일통’이라는 정치적 목적과 함께 ‘딸을 죽인 원수를 갚겠다’는 김춘추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23-07-11

“대구 경제 활성화 선두주자로”

민선 8기 1주년을 맞은 배광식 대구 북구청장이 하늘, 물, 땅의 길을 통해 대구의 성장을 견인하는 북구로 거듭날 것을 표방했다.지난해 7월 1일 북구 주민의 기대와 열망 속에 민선 8기 북구청장으로 취임한 배 청장은 민선 6기·7기 동안 행복 북구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성과를 바탕으로 북구 발전을 위한 크고 작은 과제들의 완성도를 높이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과 열정을 결집했다. 민선 8기 취임 후 8∼9월 두 달간 23곳 전 동을 순회하면서 500여 명의 주민과 대화의 장을 열어 다양한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SNS 및 유튜브 운영을 통한 사이버공간에서도 각계각층의 주민들과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배 청장은 기회와 희망이 활기찬 경제도시, 주민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북구+자연과 함께 힐링하는 도시, 사계절 문화의 꽃이 활짝 피는 도시,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한 북구 등을 목표로 북구가 대구 중심지로 자리 잡도록 구정을 펼칠 계획이다.도시철도 4호선 건설과 금호워터폴리스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초석이 될 굵직굵직한 사업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도심융합특구의 조성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상임위 소위를 통과하면서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또 그동안 낙후한 산격청사 주변 산격동 일원 도시계획을 조정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다.지난 임기 동안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청년문화의 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왔다면, 민선 8기는 그 기반 위에서 청년창업과 청년일자리사업 창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개소한 청년놀이터와 올 하반기 준공예정인 코워킹공간은 청년창업자 및 창업희망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창업지원, 컨설팅, 창업공간 무상제공으로 대구의 창업 메카로 자리매김할 것이 기대된다.또한, 지역의 전통산업인 안경산업을 지원할 아이빌 운영사업의 지원을 한 층 강화할 예정이며, 내년 준공예정인 제3산업단지 재생사업을 기반으로 지역 뿌리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경제유발 효과가 우리 지역에 전파될 수 있게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칠성종합시장은 대한민국 1호 상권르네상스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노후 시설정비, 시설물 확충, 환경개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 왔다.올해 마지막 연차를 맞아 상권활성화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할 예정이다. 또한, 앞으로도 전통시장 시설 인프라 개선사업, 소상공인 지원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소상공인 공동체,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유통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지역 민생경제 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다.금호강 남측과 북측을 연계한 신규 접근로인 금호워터폴리스∼화담산 보행 교량 설치를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고, 금호강 수변 및 인근 산업시설과 연계한 첨단 미래형 친수단지 조성 사업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배 청장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의 새로운 하늘길이 열리면 우리 지역은 신공항 프론트도시로서의 첨단·복합물류도시, 관광휴양 비즈니스 등 무한한 발전이 기대된다”며 “이 사업과 함께 팔거천 수변공간과 금호강워터프론트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휴양과 문화가 공존하는 명품수변도시를 구축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경관개선사업과 친환경 녹색생태도시 조성사업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완공한 팔거천 재해예방사업과 내년 12월에 준공 예정인 동화천 재해예방사업 등을 통해 도심 속 힐링과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금호강과 화담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활용한 화담공원(녹색힐링벨트) 조성사업도 29만9천481㎡ 부지에 오는 2025년까지 180억 원을 투입해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수변생태관찰데크, 강바람피크닉장, 피톤치드숲, 허브치유원, 치유의 숲 등 테마와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여가선용은 물론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이 밖에도 구수산도서관 리모델링 공사 완료, 침산1동 복합커뮤니티센터 조성사업 등을 통해 주민의 주거만족도 향상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배광식 북구청장은 “지금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잘 활용해서 북구가 대구 경제의 중심지로 다시 한번 도약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심상선기자 antiphs@kbmaeil.com

202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