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거리’ 조성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관광도시 경주 ③
초여름 태양이 다소 뜨거웠으나 이국(異國)의 부드러운 햇살을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코로나 19 사태’가 전 지구적 재앙으로 악명을 떨치기 바로 전해.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비엔나 숙소를 나와 도나우강(江)으로 가는 트램에 올랐다. 캄캄한 터널 속을 달리는 지하철과 달리 주위 풍경이 환히 보이는 지상 노면전차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흥겨운 소풍이자, 일상을 벗어난 여행으로 다가왔다. 트램 안에서 보이는 비엔나 시청과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은 행정 관청이라기보다는 예술품에 가까웠다. 밤이 되면 청사 외벽에 극장처럼 커다란 영사막을 설치해 요한 스트라우스의 클래식 공연을 상영하는 곳이 비엔나 시청 건물.
도나우강변에서의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엔 쇤부른 궁전에 들렀다. 역시 트램을 타고서였다. 비엔나 도심은 큰 산과 눈에 띄는 굴곡이 드물어 평평한 지형이다. 트램을 만들기에 좋은 지리적 환경을 갖췄다는 이야기.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심 교통 체계
트램·버스·기차·지하철로 운용
내·외곽엔 트램정류장 1100개 넘어
여행자에 편의와 즐거움까지 제공
큰 산·굴곡 드문 평평한 지형에다
유적·유물 등 매혹적 명소 즐비한
경주도심 지리적 여건은 ‘금상첨화’
경제·문화관광적 효과 증명 된다면
문무대왕릉까지 확장도 도전해볼만
▲한국 지자체도 효용성 높은 트램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
오스트리아만이 아니다. 동유럽 국가로 함께 묶이는 헝가리, 불가리아, 세르비아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로 불리는 도시 튀르키예 이스탄불 역시 트램이 저렴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인 동시에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매력 갖춘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대중교통과 관광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이들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트램에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서울에선 1899년부터 1968년까지 트램이 운행됐다. 서울 중심가 종로에서 마포까지 운행되던 지상 노면전차는 대중가요와 소설의 소재로도 사용됐다. “밤 깊은 마포 종점~”으로 시작되는 ‘은방울자매’의 노래를 기억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자동차를 소유한 개인이 늘어나고, 지하철이 만들어지면서 서울의 트램은 그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시대는 또 변했다. 넘쳐나는 자가용으로 인해 극심한 교통 체증이 유발되면서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는 세상이 온 것. 그런 이유로 서울시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총연장 5.4km의 트램을 건설할 예정이다.
‘한국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부산도 풍광 좋은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오륙도와 이기대(二妓臺)까지 이어지는 트램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2023년 2월엔 이 구간 트램의 사업 타당성 재조사가 실시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울산은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저공해 트램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마산· 진해와 통합되며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아직 지하철이 없는 창원시도 2030년엔 트램이 오가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사전 타당성 조사를 받았다.
대전과 제주도 역시 ‘교통 인프라 개선’과 ‘관광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멀리 내다보고 트램을 만들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편리하고 저렴하며 효율적으로 도심 관광지 이어주는 트램 생겼으면…
2016년부터 올해까지 8년간 업무를 위해 경주 황리단길과 대릉원 일대를 100여 차례 이상 오갔다. 그 결과물로 2000매 가량의 원고와 6권의 책이 남았다. 그러니, 경주에 관한 애정과 관심이 누구보다 크다 자부할 수 있다.
비엔나 역시 기자가 좋아하는 도시. 그랬기에 7년의 간격을 두고 거푸 2번을 찾아갔고, 갈 때마다 일주일 이상 머물렀다.
‘많은 것이 닮은 도시’ 한국의 경주와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심 대부분이 평평한 지형이고 좁은 공간에 역사 유적과 유물, 관광객을 매혹하는 명소가 많다는 것이 두 도시의 공통점.
그래서다. 비엔나의 트램이 편리하고 저렴하며 효율적으로 도심 관광지를 이어주듯, 경주에도 트램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 건.
경주시외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황리단길-대릉원-첨성대-계림-동궁과 월지-월성 발굴 현장-국립 경주박물관을 이어주는 트램이 생긴다면 비엔나의 ‘링 스트라세’ 못지않은 명물이자 도시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까?
위에 언급한 구간에서의 경제적·문화관광적 효과가 현실에서 증명된다면 트램의 운행 지역을 보다 넓혀 진흥왕릉과 김유신 묘, 진평왕릉까지 잇고, 더 나아가 경주시 외곽 감은사지와 문무왕 수중릉까지 확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이런 상상을 하는 건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룬 황리단길에서 경주 트램에 올라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수많은 왕릉 사이를 달려, 첨성대와 계림에서 신라의 탄생과 선덕여왕의 능력을 되새기고, 동궁과 월지에 화사하게 핀 연꽃을 감상한 후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경주박물관에 들어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하나’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트램의 외부는 신라가 가진 이미지를 잘 표현한 디자인을 공모해 꾸미고, 내부엔 스크린을 설치해 트램이 지나는 곳, 즉 대릉원, 동궁과 월지, 계림, 첨성대, 경주박물관, 황리단길 관련 영상물을 보여준다면 경주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이 “금상첨화(錦上添花)”라며 무릎을 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날이 가까운 시기에 도래하기를 경주시민, 경주를 사랑하는 관광객들과 함께 기다려본다. (끝)
비엔나의 ‘실용적 명물’ 트램 ‘링 스트라세’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도심의 효율적인 교통 흐름과 출퇴근 시간 차량 정체 등을 막기 위해 도시 곳곳을 거미줄처럼 잇는 대중교통을 운행하고 있다.
거기에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트램(노면전차)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모습까지 보여줘 여행자들에게 편의에 더해 즐거움까지 제공한다.
트램과 버스, 기차와 지하철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비엔나 어느 곳이건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Wiener Linien’이라 불리는 비엔나의 대중교통은 트램 노선 29개, 지하철 노선 5개, 버스 노선 127개로 이뤄졌다. 야간에도 운행되는 노선이 있어 실용성도 높다.
비엔나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티켓만 구입해 트램, 버스, 지하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자동판매기와 역 매표소는 물론, 담배와 신문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상점에서도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가격 또한 저렴하다.
▲여행자에 대중교통의 꽃은 ‘링 스트라세’
관광객들 사이에서 ‘비엔나 대중교통의 꽃’이라 불리는 트램은 1840년대에 최초로 운행을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말이 끄는 형태였다고 한다.
말-증기-전기로 이어지는 비엔나 트램의 에너지원 진화는 사회·경제적 변화·발달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보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광대하고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는 비엔나의 ‘트램 네트워크’는 30개 노선으로 구성됐다.
총연장 225km의 지역을 지역민과 관광객을 싣고 쉼 없이 달린다. 비엔나 내·외곽엔 1100개 이상의 트램 정류장이 있다.
비엔나가 낯설 수밖에 없는 세계 각국 여행자에게 세칭 ‘링 스트라세(Ringstrasse)’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링 스트라세’를 타면 자연사박물관, 호프부르크 왕궁,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역사 지구, 국립도서관, 왕실 보물박물관, 부르크 극장, 시청 등 비엔나의 명소와 주요 관광지를 쉽게 돌아볼 수 있다.
낭만적 매력 가득한 비엔나를 꼼꼼히 탐험해보는 건 재론의 여지없는 여행자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홍성식기자 · 정리=단정민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