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형 ‘워킹 홀리데이’ 개발로 도심 재생·지역 활성화 활로를 찾다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청년인구 유출이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어느 것 할 것 없이 전 산업 분야에 걸쳐 노동인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출산율·인구 감소와 함께 청년층 외부 유출이란 두 가지 악재가 겹친 경북은 나날이 줄어드는 내국인 노동인구를 대신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가속화되는 세계화 추세 속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계속 증가해왔고, 지난해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 숫자는 한국 전체 인구의 4.87%를 넘어섰다. 학계에선 사회구성원 중 외국인 비율이 5%를 넘어서면 그 나라를 ‘다문화 사회’로 분류한다. 최근 국내 거주 외국인의 증가 추이를 볼 때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미국과 캐나다 등의 선례를 살펴보면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예상되지만, 우리에게 외국인 근로자와의 공존은 이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됐다. 수많은 이민국가가 존재하지만 한국과 비슷하게 ‘노동력’에 초점을 맞춰 이민 정책을 실현해온 호주의 선례는 우리 사회가 참고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이에 호주의 이민자 현황과 정책이 우리에게 어떻게 반면교사 되고 벤치마킹될 수 있을지 점검하고, 대구·경북의 외국인 근로자 유입 실태와 미래 전망을 짚어보는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경북 5627개 사업장 2만명 근무
대구와 합치면 3만명 이상 달해
경주는 전체 근로자 중 18% 차지
포항도 과메기 제조·생산에 투입
지자체 첫 ‘이민정책’ 발표한 경북
광역비자 도입 ·K드림 워크넷 등
다양한 유치정책 쏟아내고 있지만
지역中企 ‘20만명’ 충족엔 역부족
전문가 “지자체 주도 정책서 해답”
글 싣는 순서
1. 청년층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2. 호주, 이민국가로의 변신
3. 외국인 근로자 통한 시드니의 도심 재생
4. 시드니가 ‘워킹 홀리데이’ 성지된 이유
5. 노동력 수혈 시급한 대구·경북의 과제
□ 대구·경북 “일할 사람이 없다”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빨리 지역소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의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는 타 지역과 유사한 수치를 보이지만, 부양비 부담이 큰 고령인구의 비율 증가 속도와 청년인구 유출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만을 놓고 보자면 대구와 경북은 한국 전체에서도 위험 수위로 손꼽힌다.
지난 2022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실시한 ‘노년 부양비’(만15~64세 100명 대비 고령인구 수) 집계에서 상위 10개 지자체 중 7곳이 대구·경북(의성, 군위, 청송, 영양, 봉화, 영덕, 청도)에 속한 지방자치단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청년인구 역외 유출로 인해 지역의 중소기업과 농가들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2018년을 기준으로 8559개였던 경북의 빈 일자리가 2023년에는 1만1599개로 늘었다. 급속하고 가파른 속도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6337개의 일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다.
□ 청년층을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
지역의 노동 인구 감소세가 심화되자 경북도는 비어있는 일자리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선택했다. 내국인 청년들이 대구·경북을 떠나고 있는데 반해 외국인 청년 노동인구의 유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경북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은 총 10만4564명으로 전년 대비 6367명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이중 20∼30대가 5만5477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현재 경북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2만474명이 5627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대구시까지 더하면 3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현재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경주시는 전체 근로자 중 약 18%(4439명)가 외국인일 정도로 이제는 외국인 근로자가 지역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실제로 경주의 식당 주인들은 “외국인 종업원이 없으면 가게 운영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E9(비전문취업 비자)을 통해 경북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데이터로도 드러난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경북의 E9 외국인 근로자는 1만6737명으로 지난 2022년 3월의 1만243명 보다 63.4% 늘어났다.
외국인 근로자 수가 많아질수록 이들의 경제활동 반경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기 마련. 초기에는 제조업과 농어촌 단순 노무를 중심으로 유입되던 외국인 근로자들을 최근엔 서비스업을 비롯해 건설 현장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특히 파종·수확기 등 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업과 어업 분야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큰 호응을 받으며, 이들 계절근로자의 수 도 매년 늘어나는 상황이다.
법무부가 운영 중인 이 프로그램의 경북 배정 인원은 2022년 2577명에서 올해는 8873명으로 3년 만에 3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포항시의 경우 지난 2017년부터 수산 분야에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 과메기 제조·생산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포항에서 과메기 건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어업 인구가 많이 줄어든 만큼 이제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과메기 생산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 “외국인 근로자 모십니다”
몇 해 전부터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인구소멸 극복을 위해 이민관리청 설립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이민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 지자체 대부분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민·외국인 정책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게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향후 한국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선 당장 부족한 인력을 충당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이민자 유치가 절실한 탓이다.
경북도는 올해 지방시대정책국에 외국인공동체과를 신설해 이민·외국인 근로자 관련 정책 수립과 시행에 고심 중이다. 또한 경북도는 지난 4월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이민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도는 향후 이민자 유치와 유학, 취·창업, 정착까지 이민자를 위한 모든 과정을 일괄적으로 원 스톱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참여형 비자 제도인 광역비자(R비자) 도입과 우수 인재 패스트트랙 확대, 경북 인재유치센터 설치, 이주민의 취업 지원을 위한 외국인 전용 ‘K드림 워크넷’ 시스템 등을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외국인 인력 확보를 위해 속력을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역 중소기업들이 원하는 만큼의 숫자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중소기업들은 “20만 명 정도의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올해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올 외국인 노동자는 16만5000여 명. 3만 명 이상이 모자라다는 이야기가 된다. 거기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는 모양새다. 통계청의 ‘2023년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경북권의 외국인 취업자 수는 6천700명으로 전국 총 인원인 92만3000명의 6.7%p에 불과하다. 반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취업자 수는 53만9000명으로 전체의 58.3%를 차지하고 있다.
□ 지자체가 주도하는 이민 정책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효율적인 외국인 근로자 유치·이민 확대 정책을 위해 지자체가 주도권을 쥐고 실정에 맞는 현실적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귀 기울인 경북도는 최근 2030년까지 외국인 10만 명을 추가로 정착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외국인 근로자 유치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도는 기존의 외국인 정책에 더해 해외 현지에서 한국어와 관련 기술을 교육해 인재를 만들고, 이들을 국내에 유입시킴으로써 경북에서 바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 지원체계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경북도에서 필요한 외국인 인력을 중앙에 건의하면 정부가 비자를 발급해 주는 형태의 ‘지역 기반형 외국인 광역비자’ 추진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지금으로선 중앙정부가 비자의 설계부터 발급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어 외국인의 수도권 집중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통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외국인 이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지방소멸 위기-실천적 방향과 대안’ 세미나에서 경북도는 광역비자 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외국인 정책 방향은 1세대 1노동자에서 2세대 핵가족 정주형 정책으로 나아가야 하며, 지역이 필요한 외국인 인력과 우수 인재를 주도적으로 선정하고 유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엔 경북도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에서도 지자체가 주도권을 쥐고 외국인 근로자 이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4월 시도지사협의회 임시총회에 참석, “광역지자체가 비자 권한을 가지고 지역에 필요한 외국 인력을 주도적으로 유치하는 광역비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 관계자는 “현재 위기 상황인 인구 감소 극복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민자를 통해 지역의 활로를 찾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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