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형 ‘워킹 홀리데이’ 개발로 도심 재생·지역 활성화 활로를 찾다
시드니는 호주의 문화·금융·관광의 중심지다. 또한, 호주를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표적 이민국가인 호주답게 시드니는 여러 민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호주 통계청(ABS)이 2021년 발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는 485만 명 중 40.5%(194만 명)가 이민자다. 이는 호주 전체평균인 29.1%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
호주 전역을 살펴보면 이민자 비율 상위 10개 지역 중 5개(오번(Aurburn), 페어필드(Fairfield), 파라마타(Parramatta), 스트라스필드-버우드애쉬필드(Strathfield-Burwood-Ashfield), 캔터베리(Canterbury)가 시드니 권역에 속해 있다.
특히 오번은 이민자 비율이 60%로 호주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이민자가 더 많이 산다
백호주의 내세워 이민자 배척하던 호주
노동력 부족 직면하자 다문화 정책 급변
1990년대 이후 대도시마다 외국인 유치
양질의 일자리 제공하며 적극 정착 지원
시드니 인구 485만 중 194만이 이주민
글 싣는 순서
1. 청년층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2. 호주, 이민국가로의 변신
3. 외국인 근로자 통한 시드니 도심 재생
4. 시드니가 ‘워킹 홀리데이’ 성지된 이유
5. 노동력 수혈 시급한 대구·경북의 과제
시드니 시민들의 민족 구성은 △영국계 (21.8%) △호주인 (20.4%) △중국계 (11.6%) △아일랜드계 (7.2%) △스코틀랜드계 (5.6%) △인도계 (4.9%) △이탈리아계 (4.3%) △레바논계 (3.5%) △필리핀계 (2.7%) △그리스계 (2.6%) △베트남계 (2.5%) △한국계 (1.4%)의 순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호주 국적을 가진 시드니 시민 중 자기 자신의 뿌리가 ‘호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청년인구가 대거 유출되고 있는 점은 시드니와 대구·경북이 유사하다.
시드니는 40여 년 전부터 중앙정부의 이민정책을 바탕으로 인구유출 문제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해왔다. 실제로 시드니는 호주에서 인구유출이 가장 극심한 지역임에도 도시로 유입되는 해외노동자들 덕에 해마다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민족·인종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드니’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공존하는 모습은 인구유출 문제 해결을 위해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대구·경북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최근 서구권을 중심으로 자국민들과 섞이지 못하는 외국인들에 의한 사건과 사고들이 빈발하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역소멸과 인구감소 시대를 맞이한 지금 ‘다문화’라는 의제는 포기할 수 없는 미래형 정책 전망이 아닐까?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외국인 밀집지역이 증가하고, 그들이 내국인이 떠난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이미 다문화시대를 맞이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지금, 대구·경북과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시드니 다문화사회의 형성 과정과 현황을 되짚어 본다.
△ 시드니, 경제 중심지에서 다문화 중심지로
시드니는 호주대륙에 외국인 정착이 시작된 이래 뉴사우스웨일스의 주도(主都)로 꾸준히 정치·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다른 국가들이 그랬듯 시드니도 처음부터 다문화 사회를 이룬 건 아니다. 1700년대 대륙 개척 이후 줄곧 백인들의 땅이었던 호주에 1851년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시드니를 비롯한 대도시에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기간 중국계 이주민 인구는 급증해 이후 시드니, 멜버른과 같은 대도시의 상업, 무역업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영향력이 커지자 불안감을 느낀 호주인들은 경기불황의 원인으로 이들을 지목하는 등 이민자들에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은 호주 전역으로 확산됐고, 급기야 1861년에는 3000명 규모의 유럽, 북미, 호주의 금광 광부들이 합심해 중국인 광부들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이 여파로 1861년부터 중국계 이민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호주 사람들은 이후에도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급기야 호주 연방정부는 1901년 백호주의 정책을 발표한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에드먼드 바튼의 발언으로 당시 호주 사회가 이민자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열등하고 부적절한 아시아 사람들이 호주에 도착해 백인 호주 사람의 미래를 위협한다”며 총리가 된 후 1901년 백호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이민제한법을 통과시킨다.
호주의 ‘반아시아 정서’가 바뀌기 시작한 건 190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때 호주는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정립하기 시작했고, 1973년 백호주의 정책을 폐지하는 한편, 연이어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시드니를 비롯한 대도시들의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한다. 필요노동력을 외국인으로 충원해야했던 호주 정부는 본격적으로 이민자 유치를 위한 정책을 펼친다.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들의 관문’ 시드니
호주가 이민자들을 대거 포용하기 시작하면서 시드니는 다문화사회 구성을 위한 이민자들의 ‘관문도시’로 역할하게 된다.
‘관문도시’란 한 도시가 개인의 사회적 이동, 혹은 이주에 있어 중간지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시드니는 ‘호주의 경제 1번지’로 많은 일자리가 있다. 또한 대도시 특유의 주거 생활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민자들에게 다른 지역보다 나은 교육 환경과 생활 환경 을 제공한다. 이는 이민자들이 이주 초기 시드니에 정착하게 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간 시드니는 정부의 다문화 정책을 바탕으로 많은 이민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이를 통해 이주 초기 이민자들이 호주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시드니에서 축적한 경제적·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호주의 다른 지역으로도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배경을 제공했다. 시드니는 2016년 발표된 글로벌네트워크연결성(GNC) 조사에 의하면 호주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인구가 유출되는 도시다. ‘인구 이동의 관문’이라는 이야기.
△자국민들은 떠나는 시드니, 이민자가 채워
2000년대 중반 400만 명가량이던 시드니 인구는 2021년 485만 명으로 늘었다. 시드니 광역권 인구까지 합치면 523만 명에 달한다.
흥미로운 건 지난 40년간의 자료를 살펴보면, 시드니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의 숫자 역시 호주의 다른 주요 도시들보다 높다는 것. 이는 매년 호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 중 다수가 시드니를 정착지로 선호하며, 첫 직장이나 유학생활의 출발지로 삼지만, 거기서 살다가 도시를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호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16년까지 45년간 시드니에서 호주 전역으로 유출된 인구는 71만6832명이다.
시드니 거주 인구의 출생지 비율을 보면 1976년 25%에도 미치지 못했던 해외 출생자(이민자) 비율이 지난 2021년 인구조사에선 40%를 넘어섰다. 이처럼 시드니는 호주 내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유출됐음에도 해외 이민자 유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구가 늘어왔다. 이는 도시의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내국인들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들이 채워주고 있는 시드니의 사례는 떠나가는 내국인으로 인해 침체 위기에 처한 도시가 다시 활성화되는 ‘도시재생’의 긍정적 사례가 아닐지.
지속적으로 청년 인구가 외부로 나갔고 있음에도, 2023년 시드니는 ‘포화 상태’를 선언하고 도시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제한했다. 이는 ‘인구 증가’라는 측면에서 해외노동자 유입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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