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학자 홀리필드(James F. Hollifield)는 “국가의 기능은 18세기까지는 군대국가(Garrison State), 18~19세기는 무역국가, 20∼21세기는 이민국가(Migration State)로 변해왔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입증하듯 1990∼2000년대부터 OECD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1·2차 산업의 노동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이민자 유치정책이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민국가 후발주자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10년대 후반이 돼서야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들을 국내로 유치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비슷한 문제를 일찍 경험한 서구권 국가들은 냉전시기부터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쳐왔다. 그중 이민 정책이 가장 큰 효과를 본 국가는 호주다. 백호주의가 막을 내린 1970년대부터 호주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이민자를 대거 유입해 다문화 국가로 발돋움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엔 ‘노동력 확보’와 ‘인구 증가’에 사활을 걸고 또 한 번 이민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이른바 호주의 2단계 이민정책(two-step migration policy)의 도입이다.
‘2단계 이민정책’이란 초기에 임시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호주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면, 그들의 임시비자를 영주권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호주 국민으로 흡수하는 제도. 이에 따라 지난 20여 년 동안 호주로 임시이민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는 자연스레 호주의 인구증가와 산업분야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임시이민의 증가는 호주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OECD 국가들도 낮은 출산율, 고령화,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숙련된 이민자들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2단계 이민정책’을 시작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이민 국가들은 현재 임시이민과 영주이민의 연계성을 상황에 따라 강화 혹은, 차단하는 방식의 ‘유연한 이민정책’을 운영 중이다. ‘유연한 이민정책’이 세계적인 흐름인데 반해 한국은 아직 ‘경직된 이민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250여만 명 중 72%(188만 명)가 한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장기체류 외국인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영주권을 발급받은 외국인은 18만5천여 명에 불과해 그 비율이 채 10%가 되지 않는다.
한국 체류 외국인 72% 장기체류 비해 영주권 취득자 10%↓… 비자종류도 제한
고용 정착·지속적 근무 지원 부족, 경직된 비자 체계·영주권 정책 등 문제점 지적
호주 ‘2단계 이민정책’ 통해 외국인 임시근로자 영주권자 전환으로 사회통합 나서
경북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요 해마다 급증 비해 외국인 노동자들 이탈도 많아
안정적인 인력 공급 위한 정책 개선·가족 동반 체류·입국 마케팅 등 해결책 필요
글 싣는 순서
1. 청년층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2. 호주, 이민국가로의 변신
3. 외국인 근로자 통한 시드니의 도심 재생
4. 시드니가 ‘워킹 홀리데이’ 성지된 이유
5. 노동력 수혈 시급한 대구·경북의 과제
□ 현재 한국의 이민정책으론 인구 증가 기대하기 힘들어
최근 극심해진 인구 문제 탓에 이민정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정부는 2027년까지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앞 다퉈 외국인 근로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하지만 최근까지 논의된 국내 이민정책들은 모두 앞서 살펴본 호주와 타 OECD 회원국들에 비하면 단순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는 ‘이민문제’를 단순히 ‘노동력’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탓이다.
호주와 미국 등이 ‘기회의 땅’으로 불리면서 많은 이민자를 유치했던 비결은 그들로 하여금 성공적인 정착 즉, 영주이민과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관련 제도를 갖췄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애써 유치한 외국인들도 도망가는 형국이다. 경북도가 실시한 ‘2024년 상반기 농업분야 계절근로자 수요조사’ 결과 9061명의 인력 수요가 나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법무부 배정인원 5614명 보다 1.6배 많은 것으로, 같은 해 실제로 배정된 7432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귀국하는 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이탈은 2018년 100명, 2021년 316명, 2022년 1151명을 기록해 해마다 증가하고 추세다. 경북에서만 지난 2022년 1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탈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경북도는 올해부터 계절근로자의 가족도 함께 체류지에 머물도록 거주 공간을 마련해준다. 특히 포항시와 예천군은 지역 내 이주한 결혼이민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계절근로자 입국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계절근로자’란 단기간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및 제조업 분야에 외국인을 합법 고용토록 해 국내로 들어오는 한시적이고 소모적인 외국인 노동자를 지칭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한국 체류기간은 길어야 8개월이다.
호주 등 OECD 국가들은 워킹홀리데이 등을 통해 임시이민자들에게 최소 1년에서 최대 3년의 체류 기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또 계절근로자로 들어온 외국인들이 성과를 인정받거나, 일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 한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도 아직 전무한 실정.
앞서 살펴봤듯 호주를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이 임시이민자들이 영주이민자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임시이민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제공해줄 제도적 방안이 거의 없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의 바람대로 이민자를 유입해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주의 사례처럼 임시이민자들에게 안정적인 정착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호주 정착 20년, 언어만 통한다면 인종차별·차별대우 없어요”
호주 교민 백우진씨 인터뷰
백우진씨는 20여 년 전에 호주로 이민을 가서 안정적인 정착을 이룬 한국인이다. 시드니를 거쳐 현재는 멜버른에 살고 있다. 그를 만나 호주 이민제도와 노동 관련 정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착 초기 어려움은 없었는지.
△호주생활 초반에 겪었던 언어로 인한 어려움 외에도 집을 구하거나, 거주지를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호주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 호주 이민자로서의 생활은 어떤가?
△호주가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인종차별은 정부 차원에서 아주 엄정하게 대처하고, 다문화정책이 잘 정비돼 있다. 때문에 스스로가 이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호주 사회에 잘 융화되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내·외국인을 다르게 대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다. 모두가 같은 혜택과 권리를 보장받는 분위기다. 또 이민자들이 워낙 많다보니 이민자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사회 분위기다. 영어만 할 수 있다면, 호주에 사는 외국인이 아니라 타국 출신의 호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많은 이민자들이 호주에 몰리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지.
△앞서 말했듯 언어 문제만 없다면 타국 출신이라고 받는 차별대우가 없다. 영어라는 언어가 다양한 출신의 호주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기에 호주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영어가 필수다. 호주는 기회의 대륙이다. 취업비자를 받고, 합법적인 직장을 갖게 되면 외국인이라고 차별 받지 않는다.
-“한국 노동자와 호주 노동자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주의 환경은 ‘노동자 친화적’이다. 일한 만큼 벌고 그만큼 쉰다. 산별노조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또 연방정부에서 마련한 임금 가이드라인이 잘 준수되기에 일하는 만큼 소득이 발생하고,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 또 근무시간이 철저히 지켜진다. 퇴근 이후 업무적 연락을 금지하는 ‘연락 단절’의 자유도 있다. 휴가도 1년 근무 시 4∼6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지고, 그해에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누적된다. 10년을 근속할 경우 17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직업에 귀천도 없다. 소위 말하는 ‘블루컬러’ 직종이건 ‘화이트컬러’ 직종이건 직업이 그 사람을 정의하지 않고,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도 최근 적극적으로 이민 관문을 개방하고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전반적인 사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한국이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외국인이 한국에 일하러 오지 않겠나?
-호주의 이민정책을 직접 체험했다. 향후 한국의 이민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다온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가장 안타까웠던 사연은 거제도의 공장에서 15년간 제조업에 종사한 후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했지만 영주권을 받을 수 없어 호주로 온 경우였다. 노동비자를 영주권으로 전환하는 제도가 없다는 건 아직 한국의 이민제도가 미숙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한국이 다문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런 문제의 해결이 필수다. 호주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국가에서 쌓은 경력도 인정해준다. 그렇기에 많은 기술자들이 호주로 들어오고 있다. 이 점이 호주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다. 한국도 단기간 필요한 노무자만을 유입시킬 게 아니라, 외국에서 키운 숙련된 기술자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이민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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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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