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호주의 이민정책은 크게 세 번에 걸쳐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 첫 단계는 영국계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이민이 호주 정부의 ‘비영국계 유럽인 수용’ 정책으로 이민 대상이 다양화된 것이다.
호주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영국인을 주축으로 하되, 동유럽과 남유럽 출신자들 또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백인 유럽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백호주의 이민정책 기조가 폐지된 시기는 1970년대 초반.
두 번째로 호주 이민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진 때는 197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다. 이 시기 호주엔 아시아인을 비롯한 비유럽인의 유입이 본격화됐고, 현재는 그 기조를 잇는 호주 이민정책의 기본 틀이 확립됐다.
호주의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필요한 노동력의 충원을 위해 ‘기술이민자들’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도 이 즈음이다. 기술이민자들은 입국 이전부터 호주 정부로부터 영주를 보장받았고, 가족 재결합 즉, 가족의 초청 또한 허용됐다.
이 시기엔 기술이민자와 그들의 가족이 영구거주를 목적으로 호주에 입국하고 정착하는 것이 이민자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호주 정부의 판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영주권을 취득한 이민자의 가족 동반이 본격화된 시기인 1980년대엔 동반 가족의 수가 기술이민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기도 했다.
평균적으로 기술이민자 한 명당 아내와 자녀 등 2명의 가족을 동반했고, 이들로 인해 다양한 연령대의 호주 인구가 동시에 증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술이민자 중심의 호주 이민체계가 다시 한 번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영국계 중심 이민정책→인종 다양화로, 노동력 부족 심화하자 기술이민 본격화
1990년대 ‘한시적 이민자’ 확대하자 각국 유학생들 수십만명 호주로 대거 유입
‘워킹 홀리데이’ 비자 3번 연장 가능, 절차도 간소화…노동·관광 즐기며 저축도
영주권-한시적 이민제도 연계성 강화, 특정 조건 통과하면 ‘영주 신청 자격’ 부여
글 싣는 순서
1. 청년층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2. 호주, 이민국가로의 변신
3. 외국인 근로자 통한 시드니 도심 재생
4. 시드니가 ‘워킹 홀리데이’ 성지된 이유
5. 노동력 수혈 시급한 대구·경북의 과제
△한시적 이민자 대거 유입…호주 이민 정책의 세 번째 대전환
1990년대 중반 호주의 이민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기존 기술 중심의 영주이민자 유입 규모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단기간 체류를 조건으로 하는 한시적 이민자 수도 크게 확대하기 시작한 것.
그때까지 호주에 단기간 체류하는 ‘한시적 이민자’ 대부분은 유학생들이 차지했다. 존 하워드 보수당 연합정부가 집권을 시작한 1997년부터 호주 정부는 워킹홀리데이를 비롯한 임시 비자 발급을 대폭 늘인다.
이때부터 워킹홀리데이 등 임시 비자(유학, 워킹홀리데이, 457 기술이민) 발급이 본격화되면서 체류유형 또한 다양해졌다. 이런 형태의 비자가 가족 동반 및 인도주의적 비자 발급 수보다 많아졌고 그 차이는 점점 커졌다.
동시에 전체 이민자 수도 이때 대폭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10만 명 이하를 유지하던 영주이민자 규모가 2016-2017년에 20만 명 규모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한시적 이민자의 수는 같은 시기에 20만 명에서 60만 명을 넘어서 3배 넘게 늘어났다.
한국은 호주와 1995년 3월에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한국인은 별다른 준비 없이 장기체류가 가능하게 됐고, 한때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출국자의 80%가 호주로 향했다.
△‘취업·관광’, ‘워킹홀리데이’
이처럼 최근 들어 호주 정부는 영주이민 유입 규모를 줄이는 대신 한시적 이민자 유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민정책 노선을 변경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하는가 하면, 관광산업을 비롯한 전반적인 산업게의 경기 활성화 효과도 보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한시적 이민 제도 중 가장 유명한 정책이 바로 ‘워킹홀리데이(Working-Holiday)’ 즉 ‘관광 취업’ 비자다.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호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우선 12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는 비자(subclass 417)를 발급받아야 한다. 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만18∼35세여야 하며 35세가 되는 해에도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유효한 여권을 소지하고 온라인으로 호주 내무부에서 운영하는 이미어카운트(ImmiAccount)를 통해 개인 정보, 여권 사본, 부모 성명을 표시한 출생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하면 비자를 받는 게 가능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비용은 510호주 달러(약 45만 원)로 5000호주 달러(약 444만 원) 상당의 저축액이 있어야 한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3주 안에 비자 발급이 완료되고, 12개월 내에 호주에 입국해야 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입국한 날부터 최대 12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으며 해당 기간 내에 원하는 만큼 출국과 재입국이 가능하다. 호주에 더 머물고 싶다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총 3번까지 갱신할 수 있다.
다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첫 번째 발급받은 비자 기간 내 호주 정부에서 지정한 일자리(Specified work)에서 3개월 간 근무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다. ‘지정 일자리’는 농작물 경작, 나무 재배, 광업, 건설 등이 있으며 필수 충족 근무 기간은 총 3개월 또는 88일이다.
세컨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이미어카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다. 신분증 사본과 510호주 달러를 지불하고 지정 일자리에서 3개월 근무했다는 증빙 서류를 함께 제출하면 된다. 2019년 7월부터는 지정 일자리에서 6개월간 일한 경우 호주에서 3년까지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연장하기 위해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 이력과 체류 2년차에 지정 일자리에서 6개월 동안 일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살기 좋은 대표적인 곳으로는 시드니를 꼽는다.
시드니는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타워 등이 어우러진 화려한 도심과 전망이 수려한 ‘본다이 비치’와 같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관광도시다. 또 대도시의 이점을 살려 워홀러들이 다양한 직군에 지원할 수 있다. 시드니는 말 그대로 노동과 관광(Working-Holiday)에 최적화된 곳으로 손꼽힌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많은 워홀러들이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의 대도시에서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앞에서 보았듯 호주 정부는 장기체류 워홀러들에게는 거주 가능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
△호주 정부, 이민제도 연계성 강화… 이민자 증가 요인
현재 호주 정부는 한시적 이민자 중 영주비자 승인요건을 갖춘 입국자에게는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호주에서 신규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중엔 먼저 호주에 입국해 다양한 임시체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의 비중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워홀러와 유학생이 영주권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오랜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 수시로 바뀌는 이민 정책도 불안 요소 중 하나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유학생들의 영주 기술이민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후 유학생들의 기술이민 비자신청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유학생이 영주 기술비자를 취득하고 직종을 변경하는 일이 잦았던 탓에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호주는 영주 기술이민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정한다.
불안정한 체류 환경 속에서도 한시적 이민자들은 호주 사회에 저렴하고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관광산업의 소비자로서 해당 산업의 이윤 창출과 내국인 고용 유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호주 정부는 한시적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한편, 영주와 한시적 이민제도 사이의 연계성을 강화했다.
제한적으로 호주에 체류하고 있는 이민자에게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고, 실질적으로 그들 중 상당수에게 영주권을 발급함으로써 한시적 이민은 영주이민으로 향하는 일종의 통과 과정이 됐다.
관련 학계는 호주의 영주-한시적 이민 연계 제도화로 영주를 희망하는 한시적 이민자 수가 급증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이민제도 연계는 호주 정부가 원했던 이민자 증대 효과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한시적 이민자들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가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자신의 생계와 체류조건이 불안정한데도, 영주이민을 목표로 호주에 머물고 있는 한시적 이민자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부시드니 대학교 산티 로버트슨(Shanthi Robertson) 교수는 지난 2016년 한시적 이민자들의 대표 부류인 ‘워홀러’들과의 면담을 통해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들어온 상당수가 취업을 통한 영주이민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녀는 또 “워홀러들은 숙련과 비숙련, 한시적 체류와 영주 사이에서 모호함을 겪기에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노동자, 학생, 관광객의 경계에서 한시적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지위를 부여 받으면서도 수많은 외국인들은 호주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엔 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호주로 입국했다.
외국인들이 호주 시민으로 호주에 정착해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만든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이민 개방’을 내세우며 올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민정책위원회를 출범한데 이어,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경북도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대목이다.
/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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