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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학여행 명소, 이제는 국제적 핫플로

홍성식 기자 · 성지영 인턴기자 · 황인무 수습기자
등록일 2024-07-02 18:23 게재일 2024-07-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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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사이에서 경주 여행의 출발지로 역할하는 황리단길.

경주는 이미 한국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다. 곳곳에 자리 잡은 역사 유적은 거리 전체를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불리는 황리단길의 현대적 매력은 ‘문화관광이 강한 도시’ 경주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최근 내년에 열릴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결정되며 겹경사를 맞은 경주시. 그렇다고, 지금에 만족해 여기서 멈추는 게 옳을까?

그렇지 않다. 한 단계 더 진화된 관광 환경을 고민하고, 방문객들의 편의를 높여줄 각종 시설을 만들어내는 건 경주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명품도시’로 만드는 첩경이 될 것이므로.

본지는 앞으로 진행될 3회의 기획연재 기사를 통해 경주 관광의 현황을 짚어보고, 세계 속 명품 도시와 명품 거리가 어떻게 조성됐는지 알아보며, 도처에 흩어진 유용한 관광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어줄 교통수단 등을 제시함으로써 경주가 보다 진일보한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한다.

요즘 경주여행 출발지로 손꼽히는 ‘황리단길’

전통한옥 살린 커피숍·레스토랑 곳곳 포토존

걸어서 30분이면 대릉원·첨성대 유적지 닿아

“난 캐나다고, 저 사람은 미국”

경주박물관 찾은 다국적 외국인 관광객들 보며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 비엔나 떠올려

▲청춘들의 ‘경주 여행’ 출발지 황리단길

1960~70년대 경주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신혼부부도 드물었던 시절이다. 그때 결혼한 부부들의 집엔 그들의 젊은 날이 찍힌 낡은 흑백사진이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하다. 뒷배경은 첨성대나 불국사의 다보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980~90년대엔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역할 한 게 경주다. 10대 청소년 수백 명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당시엔 안압지(현 동궁과 월지)로 불렸던 신라의 인공 연못 앞에서 우정을 다졌다. 그들이 지금은 학창시절 추억을 곱씹는 40~50대 중년이 됐다.

그리고, 21세기. 2024년을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경주 여행의 출발지를 묻는다면 열 중 아홉은 “황리단길”이라 답할 게 분명하다.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과 서울 경리단길이 합쳐져 만들어진 조어(造語). 과거엔 주거 지역이었다. 하지만,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위한 카페와 레스토랑, 독특한 상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통 한옥이 커피숍이나 게스트하우스로 변모하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

황리단길의 인기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경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황리단길을 찾은 방문객은 평일엔 하루 3만 명, 주말의 경우엔 5만 명에 육박했다”고 말한다. 벚꽃이 절정을 이뤘던 화창한 4월엔 165만 명에 이르는 여행자들이 황리단길과 그 일대를 돌아다녔다.

명성을 실감하고 싶어 지난주 사진기자와 함께 경주 황리단길을 찾았다. 평일이었음에도 꽤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한식부터 일식, 이탈리아와 스페인 요리까지 원하는 것을 골라 먹어볼 수 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소품 상점에 메인 도로는 물론 골목 곳곳이 이른바 ‘포토 존’으로 손색이 없기에 20~30대가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을 듯했다.

황리단길이 경주 관광의 출발지로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는 지척에 다양한 역사·문화유적이 있다는 것일 터. 고대 신라의 위상과 빼어난 예술성을 느낄 수 있는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 국립 경주박물관 등이 모두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중년들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황리단길의 벽화.
중년들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황리단길의 벽화.

▲황리단길 인근 경주박물관 주차장에서 떠올린 비엔나

황리단길에서 청년들과 섞여 가볍게 점심을 먹고 대릉원을 거쳐 국립 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경주는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가진 한국의 관광지”라는 이야기가 과장된 것이 아님을 확인했던 한 장면.

경주박물관 주차장. 전세버스에서 내리는 2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어디서 온 것인가” 묻자, 한 여성이 “난 캐나다고, 저 사람은 미국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원체 여러 나라에서 온 이들이 모였기에 나도 다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잠시 후면 경주박물관에서 992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존재하며 ‘황금의 고대 왕국’으로 불렸던 신라의 진면목을 볼 생각에 들뜬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보며 그 역시 한 해 수백 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떠올렸다.

비엔나는 고풍스런 중세 성당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화려한 상가와 전통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 유서 깊은 오페라극장 등이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조화를 이룬 역사·문화·관광도시로 이름이 높다.

다음 연재 기사에선 경주와 비엔나의 어떤 점이 닮았고, 어떤 것이 다르며, 과거와 현재를 결합해 보다 큰 매혹을 줄 수 있는 관광지로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할지 살피고자 한다.

 

프랑스 마레지구의 고풍스런 건물 사이에 화려하게 채색된 자동차가 보인다. /언스플래쉬
프랑스 마레지구의 고풍스런 건물 사이에 화려하게 채색된 자동차가 보인다. /언스플래쉬

세계 속 명품 도시·거리는 어디에?

좁은 한국을 벗어나 좀 먼 곳으로 눈을 돌려보자. 유럽과 미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고풍스런 역사 유적과 새로운 문화예술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이른바 ‘명품 도시’ 혹은, ‘명품 거리’가 적지 않다.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매력에 흠뻑 빠졌을 그 거리 몇 곳을 소개한다.

△프랑스 파리의 마레지구

파리 센강 우측엔 마레지구(Le Marais)가 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조화’ 차원에선 건축학도들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

마레지구는 본래 센강 늪지대에 형성된 17세기 왕족의 저택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상당수 저택이 파괴됐으나 1960년대 일부를 복원해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들어섰고, 시간이 흐르며 인근에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오면서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적 관광지가 됐다.

마레지구의 자리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집은 위고가 1832년부터 1946년까지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박물관이다. 그 외에도 카르나발레 박물관, 보쥬 광장, 피카소 미술관 등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영국 런던의 쇼디치

런던의 옛 중심가인 시티 오브 런던과 신도시 도클랜드를 잇는 역할을 하는 쇼디치(Shoreditch)도 명품 거리로 손색이 없다. 구도심과 신도시 중간에 위치해 두 지역 간 이동을 용이하게 한다. 관광의 주요 인프라 중 하나인 교통이 좋다는 것.

여기에 쇼디치 인근 올드 스트리트역은 테크시티와 실리콘 라운드어바웃 지척에 있어 런던에 산재한 비즈니스와 금융산업 중심지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영국은 스타트업 기업의 집적화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받고 있다.

쇼디치는 벽화로도 유명하다. ‘전위 미술가’로 불리는 뱅크시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이 그래피티(graffiti·거리 벽면에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 등을 통해 도시가 지닌 매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는 재론의 여지없이 빼어난 관광 상품으로 여행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지난 2009년 문을 연 미국 하이라인 파크(The high Line)는 뉴욕 중심부와 구도심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하이라인 파크는 폐쇄된 고가철도를 활용해 만든 공원.

뉴욕 맨해튼 남서쪽 첼시에 자리 잡았는데, 사람들이 통상 떠올리는 네모난 공원이 아닌 철로를 따라 만들어 일직선으로 뻗은 독특한 형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이라인 파크가 조성되며 인근 상권도 함께 성장했다. 주변엔 여행 잡지와 각종 방송에 소개된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여러 곳이다.

근처에서 영업 중인 첼시마켓은 과거 내셔널 비스킷 컴퍼니의 공장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현재는 쇼핑몰과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푸드 코트로 탈바꿈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다녀온 이들은 입을 모은다.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기 편하고, 매력적인 건물과 시원스런 공원이 결합된 하이라인 파크는 누가 뭐래도 뉴욕 최고의 ‘힙한 여행지’다.”

△일본 교토의 기온 거리

교토는 매년 5000만 명의 여행자가 몰리는 관광도시다. 그중에서도 기온 거리에만 한 해 수백만 명이 방문한다. 기온 거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교토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적 관광 요소와 결합해 구도심과 새로운 시가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곳”.

기온 중심부에 위치한 야사카신사(八坂神社)는 기온 축제의 중심지로 이름이 높다. 약 1400년 전 만들어진 이 고대 신사는 교토의 중요 문화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사 옆에 위치한 마루야마 공원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벚꽃이 필 때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는 관광객들이 사유지 골목 일부로는 들어갈 수 없다. 폭이 1~2m에 불과한 매우 좁은 기온 거리를 찾는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몰리면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탓에 나온 조치다. 관광객들에게도 높은 시민의식이 필요한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계속)

/홍성식기자·정리=성지영 인턴기자

/사진: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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