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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마음을 보호하는 신성한 ‘신내림 나무’

등록일 2024-07-03 19:45 게재일 2024-07-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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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상주 두곡리 신상구 부상목 뽕나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상주 은척면 두곡리 천연기념물 뽕나무 노거수.

보굿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찢겨 나간 살결에는 보기 민망한 속살을 감추어 놓았다. 주민들의 정성으로 보듬고 꿰매었지만, 큰 상흔은 훈장처럼 남아있었다. 거구의 늙은 몸을 지탱하기 힘들까 봐 노파심에 마을 사람들은 지팡이를 선물해 주는 배려심도 잊지 않았다. 키는 아파트 6층보다 높은 13m이고 몸 둘레는 장정 세 사람이 두 팔 벌려 안아야 겨우 안을까 말까 한 3m 50cm이다. 나이는 400살, 사람의 나이로 치면 150세를 넘긴 즉, 한계 수령을 훌쩍 뛰어넘었다.

 

경북도 기념물 제1호에서 국가 천연기념물 반열에 오른 노거수

새콤달콤 오디·누에고치서 뽑은 명주 등 인류와 함께한 뽕나무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스승이요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유산”

우리나라에서 생존하고 있는 뽕나무 중에는 서울 창덕궁 천연기념물 뽕나무와 쌍벽을 이루지만, 크기와 매년 열리는 오디의 양과 잎의 생산량 등 모든 면에서 유일무이하게 단연 최고이다. 늙음의 추함보다는 지혜로움과 늠름하고 우람한 모습에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가 바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호에서 국가 천연기념물(제559호) 반열에 오른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뽕나무 노거수이다.

검붉은 오디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 고샅길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꿈틀거리는 누에를 밟는 느낌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어릴 적 악몽과 그리운 추억이 잇따라 떠올랐다. 누에와 한방에서 자고 살았다. 누에가 밥을 달라고 고개를 내저으며 아우성치다 그만 천리만리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채반에서 떨어진 누에가 잠결 속에 몸부림치는 내 몸에 압사당하여 방바닥과 옷은 푸른 핏물로 얼룩졌다. 아침에 일어나 만신창이가 된 누에를 볼 때마다 어젯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몸서리를 치곤했다.

대문을 들어서는 아버지 바지게 위에는 새까만 오디가 달린 뽕나무 가지가 춤을 추었다. 대청마루 위에 놓인 뽕잎을 딸 때면 어머니는 먼저 오디부터 따서 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 새콤달콤한 오디는 입과 손을 진한 핏빛으로 물들였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난 뒤 덩그렇게 남은 번데기를 얻어먹으려고 온종일 이웃집 할머니 물레질 옆에 서서 기다렸다. 눈앞의 주름 잡힌 번데기는 징그럽기도 하지만, 입안에 씹히는 번데기의 고소한 감칠맛에 방앗간 참새처럼 번질나게 이웃집을 드나들던 그리운 추억은 지금도 엊그제 일 같다.

뽕나무는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은나라 때부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실크 로드는 우리의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가 중국과 유럽인들의 몸을 감싸고 또 멋을 내는 비단길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양잠도 기계문명의 발달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 시절 비단은 부와 명예의 상징물이기도 하고 비단 장수 왕서방 이야기처럼 우리 서민의 애환이 담긴 산업이다. 뽕나무 노거수는 흔치 않은데 어떻게 천연기념물 노거수가 되었는지 천운을 타고났다고나 할까, 아니면 잠사의 고장답게 양잠의 상징적 의미로 보호하고 가꾸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뽕나무 노거수는 그저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로써 만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설과 고사의 주인공으로서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스승이요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자연이 빚어내고 주민이 다듬은 진품명품의 예술품으로 마을의 품격을 높여주고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무 숲속을 거닐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성현들도 나무는 인간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특히 옛날부터 뽕나무는 부상목(扶桑木)이라 하여 신내림 나무로 신성시했다. 신상구(愼桑龜) 고사의 옷을 입혀 교만함을 삼가고 겸손을 가르쳤다. 이제는 누에를 치는 양잠의 뽕나무에서 고사의 ‘신상구 부상목’으로 이름표를 달아보면 어떨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 로드는 자연스럽게 스피릿 로드로 이름이 바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육체적 몸을 보호하기 위한 양잠 산업은 새로운 의류 산업에 밀려났지만, 정신적 마음을 보호하는 고사의 ‘신상구(愼桑龜) 부상목(扶桑木)’ 은 우리 모두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공연히 자신을 자랑하는 말 몇 마디로 죽음을 맞이한 뽕나무(桑)와 거북(龜)을 생각하여 늘 말하기를 삼가(愼)라는 뜻에서 신상구(愼桑龜)라는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자기 자랑에 도취한 사람을 많이 본다. 특히 사회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돈 자랑, 힘 자랑, 학벌 자랑, 가문 자랑에 바빠 겸손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로 인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학벌을 자랑하려다 학력 허위 기재를 하거나 청렴을 자랑하려고 있는 재산을 숨기려다 결국은 자드락 나서 국민으로부터 비난받는 부끄러운 사회지도자들을 심심찮게 본다.

신상구 고사의 또 다른 뜻을 잊고 된통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다. 가까운 지인들과 돈독한 정을 나누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친목 모임 가졌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학벌을 과시하고 외국어 능력을 은근슬쩍 뽐내기도 했다. 다방면에 높은 식견을 가진 양 자랑했다. 외국 여행에 가이드를 자청하면서 여행 경비를 입금토록 하고, 노후 생활을 보장해 준다며 투자금도 받아 챙기고, 곧 돌려준다며 돈도 빌려갔다. 그리고는 연락을 끊었다. 교만의 자기 자랑은 남들로부터 시새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능력으로 보여 모두 홀라당 넘어가 재산적 손실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나름대로 배우고 세상을 안다는 우리는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속앓이를 했다.

교만의 말이 화를 불러오기 쉽다. 잘난 척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한편으로는 교만의 자랑이 능력으로 보일 수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것 또한 인간 세상이다. 신상구 고사에서 교만함을 삼가고 겸손의 미덕은 물론이고 자기 자랑을 일삼는 교만한 사람을 조심해야 하겠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단했다.

상주 은척면 두곡리 천연기념물 뽕나무 노거수를 신상구 고사의 시조(始祖) 나무로 ‘신상구 부상목’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신상구(愼桑龜)란…

중국 오나라 때 한 효자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였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꿈에 나타난 신령이 “수백 년 된 거북이를 잡아 고아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고생 끝에 천년 묵은 거북이를 잡아서 지게에 지고 오다 뽕나무 노거수 아래에서 쉬는데 거북이가 “나는 100년을 삶아도 힘이 세어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뽕나무가 듣고 “뽕나무 장작으로 삶으면 금방 죽고 만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와서 거북이를 삶아보니 그야말로 쉽게 죽지 않아 뽕나무를 베어 와서 그 뽕나무 장작불로 삶으니 쉽게 죽고 말았다”라는 이야기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고사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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