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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하나로 잇는 보석 ‘왕피천’의 수호신들

등록일 2025-08-20 18:31 게재일 2025-08-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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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경북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 왕피천 생태공원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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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생태공원 숲.

경북 울진의 왕피천이 낙동정맥 동쪽 산마루를 타고 흘러내린 만 가지의 물줄기가 하나 되어 동해로 흘러간다. 그 굽이치는 푸르고 맑은 물길이 장장 62km이다. 동해를 거쳐 태평양을 하나로 잇는 생명의 하천이다. 이처럼 하천은 물질과 에너지를 전 세계로 이어지는 지구의 동맥이다. 한국의 마지막 청정 하천이라 불릴 만큼 원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수달, 열목어, 하늘다람쥐 등 희귀 생물이 서식하며, 각종 고산식물과 야생화가 계절마다 어우러진다. 

 

천연기념물 제96호 지정 350살 굴참나무
오랜 시절 풍파로 상처투성이 된 몸통
동서로 8m씩 뻗은 가지 지탱하며 건재
한때는 길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해 와

 

100년 넘게 자라온 수산리 해변 소나무들
1890년대부터 방수·방풍 목적 식재
‘유전자보호림’ 지정 430여 그루 관리
가장 큰 나무 둘레 2.2m 높이 18~20m  

여기에 더하여 도보여행 명소로도 사랑받는다. 부처의 그림자가 물에 비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신라 고찰 불영사와 명승 제6호로 지정된 불영계곡,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석회암 동굴로, 종유석과 석순, 지하수 웅덩이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자연미를 자랑하는 성류굴, 천연기념물 제96호로 지정된 350살 굴참나무,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수산리 소나무 숲 등이 왕피천 물줄기에 자연이 빚어놓은 이 보석 같은 경관과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태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계절 내내 숲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힐링의 길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중 울진에서 불영사로 가는 근남면 수산리 381-1 번지, 도로변 언덕 위에 서 있는 천연기념물 수산리 굴참나무와 왕피천 하류, 동해와 맞닿은 해변에 펼쳐진 소나무 유전자보호림을 찾았다. 서로 이웃하고 있어 먼저 굴참나무를 만났다. 천연기념물 굴참나무는 과거를 말하고, 유전자보호림 소나무 숲은 미래를 약속한다. 그 둘을 이어주는 왕피천은 지금도 묵묵히 흐르며, 세월의 이야기와 생명의 노래를 동해로 실어 나른다. 

 

왕피천 너머로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어귀 언덕 위 덩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백 번의 여름을 맞이하고 보냈을 굴참나무의 모습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을 견딘다. 키는 20m, 가슴둘레는 6m이다. 가지는 동서로만 8미터씩 뻗어 있어, 마치 양팔을 벌리고 세상을 감싸안는 듯하다. 상처투성인 몸은 주민들이 외과수술로 잘 치료하여 아직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안내판에 한때 이 나무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불영사를 찾아가는 스님이나, 석류굴을 향하던 나그네들이 이 나무를 기점으로 남은 거리를 짐작하고 쉬어 갔을 것이다. 지도가 없던 시절, 나무 한 그루가 방향이자 위로였고, 기다림이자 약속이었다. 굴참나무 아래에서 이마의 땀을 식히고, 소매를 걷어 왕피천 물을 떠 마시던 그들의 숨결이 이 나무의 껍질 어딘가에 고요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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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굴참나무.

이렇게 오래 사는 거대한 굴참나무는 드물다. 참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깊은 숲속에서도 잘 자라고, 바람이 센 언덕에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나무껍질은 두껍고 울퉁불퉁한 코르크처럼 발달해 있으며, 껍질은 예부터 굴피라 불려 지붕을 이던 생활 자재가 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열매인 도토리는 지난 우리 조상들의 가난한 시절에 흉년을 버티게 해준 구황식품이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한 기호식품으로 산행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수산리 굴참나무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인내, 삶의 기억이 가지마다 스며든 생명의 상징이다. 그리고 지금 순간에도 조용히 우리를 품고 있는 커다란 마음이다.

 

굴참나무를 뒤로하고 바닷바람이 쉬어 가는 곳 수산리 왕피천 생태공원 숲을 찾았다.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나란히 선 녹색의 병풍이 되어 세찬 바닷바람을 막아섰다. 숲의 소나무들은 백 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 백 년을 바닷모래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벌리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바람을 막고 물길을 막아섰다. 태풍 하이선이 할퀴고 간 꺾인 한 소나무의 단면을 보았다. 베어진 그의 몸에 나이테는 107개의 고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매년 단 한 줄씩 성실하게 새겨진 그 세월의 문장은 말이 없지만 그 속에는 지금까지의 기후 환경을 고스란히 기록해 두었을 것이다. 연대연륜학이 발달하여 언젠가는 이 나이테가 울진 왕피천의 기후를 밝혀내리라 믿는다.

 

수산리 해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생태공원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자연을 보전하거나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여 생물들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공간으로, 사람들에게는 자연을 관찰하고 체험하며 휴식과 치유를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생태공원이다. 다양한 생태 요소들이 공원 내에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에게는 생태 교육의 장, 어른들에게는 삶의 여백을 채우는 쉼터가 되고 있었다. 지난 7월 10일 명산과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문화단체인 명문단(회장 권경수) 회원 100여 명이 이곳 생태공원을 찾아 숲 체험을 하였다. 수산리 해안의 왕피천 생태공원은 100년 넘게 자라온 소나무 숲이 바다와 왕피천이 만나는 모래땅 위에 펼쳐져 있었다. 해풍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가꾼 이 숲은 오늘날 국가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자연 교과서로써의 역할 하고 있었다.

 

1938년 발행된 ‘조선의 임수’라는 자료에 의하면 수산리 주민들이 방풍과 방수의 목적으로 1890년경부터 ‘수산송림’을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력 2월 1일 식수 일로 정하고 초지에 천연생 소나무를 이식하고 도벌과 벌채 금지로 보호 관리에 힘써 현재 아름다운 숲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산림청은 이 숲을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100살이 넘는 소나무 430여 그루가 아름다운 공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가장 큰 소나무 둘레가 2.2 m 높이가 18에서 20m 정도나 되었다. 마치 한 세기를 넘어온 장정들이 하늘을 향해 도열해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군부대가 주둔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울진군이 조성한 생태공원으로 바뀌어, 주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쉼터가 되었다.

 

이 숲을 ‘지속 가능한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생명의 다양성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유전자의 보루이다. 보이지 않는 그 속의 유전자가 언젠가는 또 다른 숲의 씨앗이 될 것이다. 보존이란 과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이 나무 한 그루, 그 안에 깃든 유전자의 무게는 시간보다 무겁고, 말보다 깊다. 수산리 유전자보호림, 생태공원은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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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남았다.


유전자보호림(遺傳子保護林)이란… 

유전자보호림은 생물종의 유전적 다양성과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가 지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특별한 산림이다. 희귀하거나 지역에 고유한 수종, 또는 유전적 형질이 우수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생태적으로 중요한 공간으로, 산림 자원의 원형을 지켜가는 생명의 저장고라 할 수 있다. 

 

지정 목적은 첫째, 유전자원을 장기적으로 보전하고, 둘째, 산림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며, 셋째, 미래의 산림 복원이나 품종 개량을 위한 연구 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다. 특히 기후변화나 병해충 등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지닌 산림 자원이 필요하다. 유전자보호림은 그러한 미래 대응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생태적 자산이다.

 

경북 울진군의 수산 송림 유전자보호림은 왕피천 하구의 모래땅 위에 조성된 소나무 숲으로, 100년 이상 자라온 나무들이 해풍과 바닷물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소나무들은 해안 방풍림이나 기후에 강한 숲 조성을 위한 중요한 유전자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산림 생명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오랜 세월 자연이 길러낸 유전 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숲에서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을 배우고, 그 가치를 지켜야 할 책임 또한 함께 느끼게 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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