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수문장처럼 우뚝 선 채 젊은 연인의 ‘슬픈 환생담’ 간직

등록일 2024-07-10 19:53 게재일 2024-07-11 14면
스크랩버튼
(36) 상주 두곡리 환생목 은행나무 노거수
상주시 두곡리 은행나무는 연인에 관한 환생담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산과 들, 강으로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자연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생활의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도시에 살면서 마음은 항상 시골 나무와 숲 등 자연을 동경했다. 공직에서 퇴직한 후 도시의 화려한 조명 불빛에서 탈출하여 마음속에 그리던 나무와 숲에서 새들이 노래하는 시골 산촌 마을로 달음질쳤다.

나의 목가주의 전원생활은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여유와 자유를 찾았다.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를 찾아다니는 것이 이제는 취미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갓밝이에 출발하여 동산의 해가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서산으로 넘어갈 때 산 그림자와 함께 귀가했다. 황혼의 삶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계절 내내 즐거움을 탐해도 시간은 짧기만 했다.

노거수는 나의 반려목이면서 길라잡이고 스승이다. 반려동물처럼 떼쓰거나 보채지도 배신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가 찾을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신분 넘은 ‘양반·천비의 사랑’ 주인공

수고 15m·둘레 8.4m·수관 폭 22m

수령 470년… 1987년 道 기념물 지정

6·25전쟁 때 피해 없어 德木이라 불려

노거수 설화의 향유집단인 마을 주민들은 인간 행위에 대한 노거수의 환생담을 이야기하면서 노거수를 신성시한다. 노거수의 환생담(還生談)은 마을 주민들의 어떤 운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암시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어서 나무로 환생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무를 베어낸 사람이나 가족이 결국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조상 대대로 마을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며 또한 후손까지 살아가는 당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노거수 설화는 민속문화, 민속신앙의 차원에서 노거수가 보호되는 설화로서 설화 속에는 우리 조상의 자연숭배 사상, 조상숭배 사상, 영혼 불멸의 사상 등이 있다.

이러한 노거수 설화는 전승 집단의 의식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흥미와 교훈을 주기도 하며, 삶의 지혜를 얻게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마을의 경관을 이루는 노거수를 보호해 주는 기능으로 발전하여 전체적 생태계 천이의 자연성과 생물 다양성을 높여주는 기능으로 발전하였다.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마을 입구에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는 젊은 연인에 관한 슬픈 환생담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은행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 마을에 강 참봉이라는 부자 양반이 살고 있었다. 손자 강기석 대에 이르러 불행히도 손부(강기석의 부인) 허씨가 병을 앓아 실명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월선이라는 계집아이를 얻어서 잔심부름을 맡아 하도록 하였다.

월선은 영리하고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열대여섯이 되니 마음씨도 얼굴도 고와서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그때 마침 강참봉의 현손 한수도 월선의 또래였는데, 월선을 한번 보고서는 연모하는 정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천비 월선과의 결합은 사실상 당시로 보아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수는 학문보다는 월선을 만날 궁리에 더 몰두하였다. 결국 두 청춘 남녀는 신분도 잊은 채 밀회의 정을 나누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아버지는 부인과 상의하여 강 건너 마을에 사는 포양 김씨댁 규수와 결혼을 시키기로 했다.

월선은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생각하고 한수 도령의 행복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홀몸도 아닌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였다. 며칠 뒤 한수는 소나무에 목을 맨 채 자결한 월선을 발견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월선의 장례를 혼자 치러 주었다. 얼마 뒤에 한수는 김씨댁 규수에게 장가들었다. 다시 새 정에 젖어 월선을 잊게 되었고 귀여운 아들까지 낳게 되었다. 그런데 그 월선의 무덤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것을 월선의 넋이라고 생각하여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베어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바로 귀여운 아들이 죽었다. 이듬해 봄이 되니 은행나무가 또 자라 있었다. 이번에도 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인이 앓아눕더니 병명도 모른 채 그만 죽고 말았다. 흉사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강참봉은 용한 점쟁이를 불러 그 연유를 물었다.

점쟁이는 은행나무는 원통히 죽은 월선의 넋이며, 나무에 제사를 정성껏 지내고 지금이라도 한수와 월선은 부부가 된다는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이보다 더 비통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점괘를 뽑았다. 대가 끊긴다는 엄청난 점괘에 강참봉 내외는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제사를 후히 지내고 사후(死後)에라도 월선을 현손 며느리로 맞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소문은 이웃 마을에 파다하게 퍼지었고 두 그루였던 은행나무 옆에 또 한 그루가 새로 돋아 세 그루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조차 세 그루 은행나무는 월선과 그녀의 아들(뱃속의 아이) 그리고 한수 아내의 넋이 환생한 것이라고 믿고 보호했다. 세 그루는 자라면서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처럼 변하였다 한다.

이런 환생담은 사람이나 동물이 죽은 후 나무로 환생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신성시되는 설화로써 징벌담과 마찬가지로 노거수의 설화로써 빈도가 높다. 은행나무를 베고 나니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로써 결국은 나무를 보호하고 신성시함으로써 액운이 멈춘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역으로 신성시되는 나무를 대입시켜 당시의 악습을 타파하려는 민중의 억압된 삶을 고발하려는 내용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노거수 설화로 불합리한 사회상을 바로잡고자 문학의 힘을 빌린 산림문학인의 저력이 돋보인다.

이러한 설화 속에는 우리 조상의 자연숭배 사상, 조상숭배 사상, 영혼 불멸의 사상 등이 혼재하여 오늘날까지 우리 민속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저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라고만 하는 것보다 나무에 설화의 산림문학 옷을 입혀 나무를 신적 존재로 올려놓는 문학인의 지혜로움이 아닐지 싶다.

환생담은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두곡리 마을의 단합과 발전으로 평화로운 마을 건설의 밑바탕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환생담 은행나무 노거수에 더 많은 미담이 입혀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천대 만대 만수무강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두곡리 은행나무의 환생담

노거수에 대한 고사와 설화는 징벌담. 영험담, 동물담 등 크게 여덟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환생담은 사람이나 동물이 죽은 후 나무로 환생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신성시되는 설화로서 징벌담과 마찬가지로 노거수 설화로 빈도가 높다.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640번지 외 4필지. 1987년 5월 10일 도 기념물 지정. 수령 470년. 수고 15m, 흉고 둘레 8.4m, 수관 폭 22m, 마을 주민들은 은행나무를 덕목(德木) 나무라 부른다.

6·25 전쟁 때 마을 주민들의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덕목 나무라 믿고 있다. 암 그루로 은행 열매의 생산량이 많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