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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폐가 2만1900여채, 흉물 방치 넘어 공동체 붕괴 우려

성지영 인턴기자
등록일 2024-07-14 19:55 게재일 2024-07-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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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이슈<br/>빈집 문제 현황과 앞으로 해결책은?
포항 시내 곳곳에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빈집들이 적지 않아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포항 시내 곳곳에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빈집들이 적지 않아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포항시 호미곶면에 자리한 집 한 채. 지붕을 덮은 초록 풀이 보기에도 을씨년스럽다. 풀은 담장을 넘어 이웃 주민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는 실정. 집주인은 포항이 아닌 대구에 거주 중이다.

이웃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며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포항에 와서 자신의 빈집을 관리할 생각과 의지가 없다. 한 주민은 “빈집이 폐가가 되면서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관리를 서둘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고령의 부부가 살다 두 사람이 사망하면 외지에 있는 자녀들이 집을 팔려고 하지만 수요가 없어 방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사유지라 폐가가 돼도 법적인 문제 탓에 함부로 처리를 못하고 있어 난감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비단 호미곶면의 빈집만이 아니다. 경북지역의 빈집 문제는 심각하다. 단순히 폐가가 생긴 걸 넘어 도시공동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

 

2022년 통계 전국의 빈집 모두 13만2052채, 경북도 16.6%로 전국 ‘2위’

쓰레기 불법 투기로 환경 악화, 건축물 붕괴 따른 안전사고-범죄 위험 노출

포항시, 경북도 유일하게 ‘정비팀’ 운영, 60곳 폐가 정비 주민편의공간으로

강진군 집주인이 5~7년 무상 임대 땐 최대 7000만 원 들여 리모델링 지원

2022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빈집은 모두 13만2052채로 추정되며 이중 16.6%인 2만1,963채가 경북도에 몰려있다. 이는 전라남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경북 도내 빈집은 김천시가 1175채로 가장 많고 포항시 1165채, 경주시 1016채, 안동시 982채, 영천시 668채, 상주시 680채, 영주시 618채, 구미시 558채, 문경시 448채, 경산시 128채 순이다.

그중 단독주택이 5만3463호고, 아파트가 5만7077호, 연립주택이 5931호, 다세대 주택이 8187호,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이 2801호로 파악된다. 빈집 대부분이 단독주택과 아파트라는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래전 지어진 주택일수록 빈집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흔했다. 단독주택 빈집의 경우 5만3463호 중 4만4800호(83.8%)가 1979년 이전에 건축됐다. 아파트 빈집의 경우엔 5만7077호 중 2만4559호(43%)가 1990년부터 1999년 사이에 지어졌다.

빈집이 늘어나는 건 이론적으로 주택 초과 공급의 여파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주택보급률(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은 102.1%. 특히 인구감소지역이 많은 경북(113.2%)·전남(112.4%)·충북(111.6%) 등은 110%가 넘어 주택이 남아돈다. 울산(108.4%)·세종(105.6%)·광주(105.2%)·부산(102.6%)·대구(101.4%) 등 대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적 요인으론 수도권 집중화, 저출산, 고령화가 지목된다. 실제 2019년 전국에서 가장 빈집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던 전라남도(15.5%)는 그해 고령 인구 비율이 22.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한국보다 앞서 인구 감소와 빈집 문제를 경험한 일본은 고령화율 20% 이상의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빈집이 900만호(2023년 기준)에 이른다. 이는 5년 전(2018년)보다 51만 채 늘어난 수치다.

내부적인 요인으로는 철거 비용과 재산세 지출 부담, 부모가 남겨둔 재산 처리에 대한 심리적 부담 등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빈집 문제가 심각한 건 쓰레기 불법투기 등으로 주위 환경이 나빠지고, 노후 건축물의 붕괴에 따른 안전사고나 범죄 위험에 노출되는 등 2차 피해도 우려된다는 것. 실제 노숙인들이 빈집에 들어와 불을 피우다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소가 된 사례도 드물게 있었다.

빈집 문제는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비용을 발생시킨다. 일본은 빈집이 10만채 늘면 1조5000억엔(약 13조원) 가량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빈집은 인근 지역 범죄율을 19% 증가시켰고, 빈집이 2.8가구 증가할 때마다 지역 범죄율은 6.7% 증가했다.

전라남도 강진군의 빈집 리모델링  전(왼쪽)과 후 모습.  /강진군 제공
전라남도 강진군의 빈집 리모델링 전(왼쪽)과 후 모습. /강진군 제공

빈집 문제에 심각성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국 83곳의 인구감소지역에선 주택을 추가 매입해도 1가구 1주택자로 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세컨드홈’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농어촌정비법 시행령을 개정해 7월부터 지자체장이 빈집의 소유자에게 직권 철거 등 조치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포항시는 경북도에서 유일하게 별도의 빈집정비팀을 운영해 관내 빈집을 관리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역 내 빈집 60곳을 정비해 주민편의공간으로 조성한 것. 특히 주차장 확보가 어려운 도심 내 빈집 44곳을 정비해 공유주차장을 확충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주민 커뮤니티시설로 재탄생시킨 경우도 있다. 올해도 사업비 5억원을 투자해 도심지(동 지역)와 농어촌지역(읍·면 지역)에서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은 빈집을 대상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할 예정.

대구시는 2013년부터 4년간 빈집 170동을 철거해 주차장 83곳, 쌈지공원 19곳, 텃밭 36곳, 꽃밭 28곳, 운동시설 4곳으로 탈바꿈시켰다. 이후에도 9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확보해 빈집을 활용한 주민편의시설을 조성했다.

이처럼 도내 지자체들이 예산을 들여 꾸준히 빈집 정비에 나서고 있지만 매입의 어려움, 철거 비용 지원에 대한 예산 부족 등으로 정비 속도보다 빈집 증가세가 더가파른 상황이다. 또한 빈집 정비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해도 건물과 땅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일부터 관내 농어촌이나 준농어촌지역에 한해 시장, 군수, 구청장이 ‘빈집정비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하고, 철거명령 뒤에도 빈집을 철거하지 않는 소유자에게는 강제금 500만 원을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농어촌 혹은, 도심의 빈집 정비를 주민편의시설 형태로 만들 게 아니라 주거시설로 진화시켜 관광숙박업과 임대업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전라남도 강진군은 상태가 좋은 빈집 소유주가 5년 또는 7년 이상 집을 무상으로 임대하면 군청에서 최대 7000만 원의 사업비로 리모델링 해준다. 또, 입주자들이 보증금 100만원, 임대로 월 1만원에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과 김주일 교수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간단치 않다 하더라도도시재생사업을 실시해 허름한 집을 정비하거나 철거를 유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빈집을 활용해 예술센터를 만들거나 동네 편의시설을 만드는 외국 사례를 참조해 도시 재생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나갈 때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빈집 문제 해결, 해외에서는?

일본, 소유주와 활용 희망자 연결

영국, 주민-봉사자 함께 폐가 재생

伊, 빈집 1유로 거래 프로젝트 마련

▲일본 - 빈집은행 시스템 도입

대표적 초고령화 국가인 일본의 지자체 64%는 빈집은행(Akiya Bank) 시스템을 도입해 빈집 정보를 공개하고, 소유자와 구매 희망자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도쿄도의 오오타구(大田<533A>)는 빈집 전용 창구를 설치해 소유주와 빈집 활용 희망자를 연결해준다. 동시에 국가전략특별구역법의 여관업법 특례를 활용해 빈집을 비교적 수월하게 숙박시설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올림픽 개최로 외국인 방문이 증가할 것에 대비한 조치였지만, 그 이후에도 이 정책은 빈집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영국 - 리브워크 프로그램

영국의 경우 커뮤니티 주도의 빈집 재생사업이 활성화돼 있다. 리버풀(Liverpool)에서 진행된 리브워크(live work)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해 빈집을 고쳐 주거환경을 개선한 프로젝트다. 이는 장기 임대계약이 가능한 주거지를 조성하는데 도움을 줬다. 런던 포플러 지역 주택조합과 예술단체 바우아츠(Bow Arts)가 협력해 저소득 예술가에게 거주공간이자 작업공간을 제공한 사례도 있다. 리브워크는 50호 이상의 빈집을 재생해 주거지로 만들었고,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이탈리아 - 1유로 프로젝트

3000여 명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 작은 도시 마엔차시(Maenza comune)에서는 2021년부터 빈집을 1유로(약 1400원)에 거래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1유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1유로 프로젝트’는 헐값에 빈집을 매매할 수 있게 하는 대신 보증금 5000유로(약 720만원)를 내고 3년 내에 건물 개보수에 착수해야 하는 제도다. 보증금은 공사 완료 후 돌려받을 수 있다. “2021년 관련 정책 발표 후 97명의 외국인이 주택을 구매를 신청했고, 21명의 외국인이 매수 후보자로 선정됐다”며 “숙박업, 식당 등 상업시설을 만들기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빈집 구매 우선권을 줘 마을의 활력을 높이고 있다”는 게 미엔차시 관계자의 설명. 올해 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마엔차시를 방문해 현장을 살펴본 후 한국에서도 ‘빈집 정비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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