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획ㆍ특집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그런데, 묵직한 중저음으로 노래하는 가수이자,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거기에 사진전시회를 열 정도의 카메라 촬영 실력을 갖췄고, 대학에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질 법하다.“그게 대체 누구야?”중언부언 하지 않고 바로 답한다.“이지상(58)이다.”1998년 첫 번째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을 필두로 몇 해 전엔 여섯 번째 음반 ‘나의 늙은 애인아’를 대중들에게 선보인 이지상은 노래와 작곡 활동 외에도 여행기 ‘스파시바, 시베리아’와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북(北)’을 출간하며 음악 만들기와 글쓰기 2가지 측면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왔다. 바로 그 재능 승한 이지상이 또 한 권의 책을 자신의 프로필에 보탰다. 이름하여 ‘포천’(21세기북스 출간). ‘대한민국 도슨트-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서적이다.경기도 포천시는 이지상의 고향. 이번 책에서 그는 포천의 산과 호수, 숲과 거리를 수십 번 거듭 살펴 걸으며, 제 고향의 진면목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앞서 언급된 ‘도슨트(docent)’는 안내자 혹은, 길잡이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다.책에 수록돼 포천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진도 모두 이지상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팔방미인(八方美人)이 쓴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경기도 사람과 대구·경북 사람이 다를 수 없다. 그래서다. 이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부탁했다.“그럽시다.” 시원하고 흔쾌한 대답으로 시작된 기자와 이지상의 제법 길었던 대화. 아래 그걸 요약해 독자들께 전한다. ‘포천, 대한민국 도슨트-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포천은 당신의 고향이다. 그러나, 그것과 고향에 관한 책을 쓰는 건 다른 문제다. 집필의 이유는.△출판사로부터 집필 의뢰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곳곳을 책을 엮어 안내하는 ‘도슨트 시리즈’를 기획 중이었는데 ‘포천’편을 내가 쓰게 된 거다. 지역의 역사와 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심도 깊은 인문 안내서 집필을 주문받았다. 책방을 꼭 넣어달라는 부탁이 인상적이었다.-읽어보니 취재를 위해 소요된 시간과 공력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지치고 힘들 때 에너지는 어디에서 얻었나.△계약서에 도장 찍고 출판까지 4년 정도 걸렸다. 첫 문장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고 최초 6개월 정도의 사전 취재를 거친 후 취재와 집필을 반복하는 형식이었다. 고향을 찾아가는 일은 묻어 두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다. 찾아가는 동네마다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각색되지 않고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던 오래된 풍경들은 더없이 좋았다. 집필 기간은 3년 정도였는데 지칠 일이 없었던 이유는 그때마다 충전되는 그리움이라는 양식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포천은 당신이 ‘나의 하느님’이라 부르는 어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거길 다녔으니 당연지사 어머니를 떠올렸을 텐데.△난 자연을 신으로 믿는 사람이다. 내가 익혀왔던 자연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모든 순간 내가 신께 나의 기도로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믿는 신이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다. 포천의 25곳을 선정하고 100여 번을 넘게 다니면서 그리움의 흔적을 적어내는 일은 거기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픈 다리로 절며 평생을 사신 어머니가 장터로 가신 길을 함께 다녔고, 생전의 어머니가 한 번도 다녀가지 못했던 포천의 명소도 함께 걸었다. ‘여기 참 좋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을 어머니의 육성을 환청으로나마 듣는 순간이었다. -출간 과정에서 행복했던 순간과 힘겨웠던 순간은.△어려웠던 일이라…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일이 많았다. 울미마을 연꽃이나 산정호수의 잔물결은 새벽안개가 있어야 했다. 또한 밤늦게 까지 머물러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명성산 갈대밭의 우체통은 저녁 무렵이어야 했고, 한탄강 하늘다리위에는 꼭 별이 있어야 했으니까. 명성산에서 하산할 땐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반면 행복한 기억도 많이 떠올렸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던 벗들의 이름을 기억할 때였다. 어느 동네를 가든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고, 그 이름을 대면 동네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이웃처럼 반겨줬다. 그 중에는 벌써 세상을 등진 이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회한조차 그리움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책에는 포천의 명소가 여럿 등장한다. 그중 딱 한 곳만을 골라야 하는 사람에겐 어떤 곳을 추천하고 싶은지.△서점 ‘무아의 계절’이다. ‘이건 현실이지만 멋지군’이란 영화의 명대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간이다. 경영난에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미래의 불안을 책과 함께 이겨내려는 서점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책이 나오기 전에 서점이 사라지면 어떡하지’란 걱정을 한 적도 있다. 다행히 공간을 옮겨 상가가 많은 곳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나와 같은 삶의 불안을 내재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는 공간이다. -본업이 가수다. 그럼에도 정확한 단어 선택과 유려한 문장의 조합이 썩 좋아 보였다. 문장 강화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했는지. 당신만의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건가.△대학에서 국문학과를 다녔지만 글 쓰는 것과는 무관한 학교 생활을 했다. 다만 노래를 만들고, 시대와 불화하는 삶을 살면서 주워들은 얘기가 많았던 것 같다. 굳이 노하우를 묻는다면 어떤 창작을 하건 오래 걸린다. 분량과 무관하게 글 한 편, 노래 한 곡 만드는데 보통 이틀이나 사나흘 밤을 샌다.-이번 책의 제목이며, 당신의 고향인 ‘포천’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곳인지.△잘나지는 못했지만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라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또한 같은 이유로 비굴해질 필요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도시다. -당신 존재의 2가지 측면 즉, 가수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각각의 계획은.△다가올 가을에 7집 음반을 발매해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기에(웃음). 노래는 준비가 돼있다. 제목을 ‘천천히 순하고 뜨끈하게’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발매 후엔 당연히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순천 와온해변을 무대로 생의 가치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책을 써야 한다. 계약 기간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다. 2년 동안 와온해변을 숱하게 다녔다. 지난해 9월엔 사진전도 열었다. 5년쯤 뒤 다시 준비할 사진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포천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포천을 매개로 한 ‘자기 고백서’로 읽어주시면 더 좋겠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비슷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이 책을 통해 그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28

영주에 생활·문화인프라 갖춘 청년들의 보금자리 들어선다

영주시에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지역활력타운이 들어선다.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 최종 승인과 영주댐 준공에 따라 산업, 문화, 레저 등 다양한 부분에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이는 영주시의 미래를 밝게 하는 청신호다. 지역활력타운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중앙부처가 합동으로 청년층·은퇴자 등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거·문화·복지·일자리 등을 복합 지원해 살기 좋은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과 영주댐 준공에 따른 산업, 문화, 관광 레저 기반이 확충되면서 이를 뒷받침 할 정주여건 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 필요성에 대한 주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활력타운 선정은 영주시로서는 미래 성장 예측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활력 플랫폼을 구축, 영주의 새로운 생활거점을 조성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필수 생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신거점으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 □ 사업계획지역활력타운은 청년인구 유입 여건 조성과 지역 주민 활력 제고를 위해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및 활력 플랫폼 조성에 중점을 두고 시행된다.2027년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및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추가 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 유입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 유인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이 사업은 신도심 대비 인프라가 부족한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해 열악한 지역 정주여건을 개선, 대도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게 된다.HIVE(벌집)처럼 북새통을 이루는 영주시 지역활력타운은 신규 산업단지 조성과 청년창업 특화프로젝트 운영으로 청년인구 유입과 정착 플랫폼을 구축하게 된다.생활SOC 재배치로 도심 균형발전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구도심 활력을 위해 주거, 인프라, 서비스가 결합된 생활거점 공간으로 조성한다.지역활력타운 조성을 두고 시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공모 사업 신청 전 시민들의 의견은 청년 및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공간 부족과 정주 불만족해소, 지역 유입 청년들을 위한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공간 확충의 필요성을 지적했다.이와 함께 영주형 주민 정주여건 개선과 서비스 부족, 신도심 중심의 도시 인프라, 국가산단 등 투자 기업에 의한 청년 유입과 이에 따른 주거공간 확충의 필요성을 들었다.이번 지역활력타운 사업이 확정되면서 지역민들의 의견 및 지적 사항이 해소되게 됐다. □ 추진 방향지역활력타운은 총사업비 693억원을 투입해 하망동 514번지 일원 4만3088㎡에 조성된다.주요사업 내용은 크게 3개 분야로 구분된다.주거부분은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연립형 타운하우스 70세대 주거단지 조성과 생활인프라 부문은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교육, 창업, 문화예술, 공동체 활성화 공간이 마련된다.실내스포츠복합시설에는 수영장, 다목적체육관, 건강증진센터, 체육특화 돌봄 공간 등으로 구성된다.생활서비스 부분은 주거, 인프라 시설과 연계 제공되는 특화 생활 서비스 공간으로 Hi Live는 새로운 주거와 정주공간으로 정착지원과 지역 융화, Hi Vive는 교육, 문화, 청년창업 등 교류의장, Hi Five는 체육특화 돌봄, 웰니스 건강증진 공간으로 조성된다.지역활력타운은 지역여건 고려 및 연계방안을 통한 인프라 구축,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데 역점을 둔다.특히 주민건강증진을 위한 의료서비스, 보육환경 만족도를 높여줄 영유아, 어린이 교육, 행정서비스 접근 편의 증진, 골목상권 회복을 위한 생필품 구매 및 로컬브랜딩 활성화, 편리한 금융서비스, 도서대여와 놀이방, 문화프로그램 운영, 아동, 노인, 장애인복지 통합 서비스, 교육환경 개선, 공원녹지 조성 등 주거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홍보 컨텐츠를 활용해 지역활력타운 홍보 및 유입대상자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홍보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홍보활동은 하이브 홈페이지 제작 등 브랜드를 활용한 영주시 홍보와 지역활력타운 시설 상시 안내, 연간 월간 이벤트 등을 다양한 SNS를 통해 홍보하게 된다. 홍보는 영주시와 도슨트, 영주시관광협의회, 입주민협의체가 주체가 된다. □ 기대효과지역활력타운 사업의 기대 효과는 무엇보다 주민 만족도 제고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와 주민 생활여건 개선 부분이다.시는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능성 부분에 대해 수요자 니즈에 맞춘 지역활력타운 조성으로 주민 생활여건을 향상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실수요자의 의견을 고려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를 구성해 제공하고 구도심 지역을 지역활력타운 인프라 및 서비스 연계로 입주자와 지역민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대규모 추가 투자 등으로 유입되는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을 유인하고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영주시는 행정력을 집중하게 된다.영주시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낙후된 구도심 발전을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을 위해 현재 지역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사업들과 더불어 지역을 떠난 청년들을 유입해 도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영주 발전을 전략적으로 실현해 나가게 된다.지역활력타운 조성으로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1258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513억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 742명의 취업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시는 사업유지 및 관리계획의 적절성을 위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관리를 위한 민관협업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협력체계 구축은 유관기관, 입주자 등 6개 기관 협력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별 협력 체계를 마련한다.시는 사업의 연계성과 종합적인 성과를 도출하고자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현장 요구 해소 등 다양한 협의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전국 243여개의 지방자치단체들 중 광역 및 인구밀집 도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비슷한 환경의 지역 문화, 관광자원, 산업기반, 교육 자원을 갖고 있다.각 지자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책으로 적극 추진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그 다양성도 세분화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동시다발적인 숙원사업의 요구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주민 요구는 지방재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이번 영주시의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 선정은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4-05-26

연륜 쌓인 ‘노목의 기개’서 공자의 가르침을 얻다

하늘에서 녹색의 빗물이 봄바람 붓끝에 휘몰아쳐 산천을 채색하고 있다. 겨울의 텅 빈 흑백의 산야에 풍성한 녹색의 물결이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출렁이며 춤을 추고 있다. 녹색의 빗물이 서석지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처마 기와 골 끝에 줄지어 마당으로 떨어지는 녹색 빗물은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라진다.비 내리는 오월, 정원의 경정 마루 끝에 앉아 있노라니 몸과 마음이 녹색으로 물들어 간다. 성리학에 심취한 정원의 주인 정영방(鄭榮邦)은 경북 영양 자양산의 남쪽 자락에 터를 잡고 거처할 집을 짓고는 자연에 철학을 담은 정자와 연못이 있는 아담한 정원을 조성했다.연못은 사각형의 돌출된 부분을 두어 선비들이 좋아하는 송죽매국(松竹梅菊)을 심어 그 본성을 노래하며 삶의 본보기를 삼았다. 동북쪽 귀퉁이에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내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 물이 흘러 나가는 도랑을 두었다. 바깥 물이 들어오면 자연히 넘쳐 나가는 자연의 섭리를 따랐다.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하여 서석지(瑞石池)라 이름을 지었다. 크고 작은 20여 개 돌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는 것을 보고 돌 하나하나에 선유석(仙遊石)이니 통진교(通眞橋)니 하면서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했다.이는 정원 주인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둔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나타낸 것이리라. 정자의 네모난 기둥에 원기둥 하나는 양을 표시하고 둥근 기둥에는 네모난 고리를, 네모난 기둥에는 둥근 고리로 음양의 사상을 재현했다.정자의 건축과 연못의 조성에도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철학을 표현했다.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이(理)와 기(氣)의 상호작용이라면서 이(理)는 불변하는 원리나 이치를, 기(氣)는 물질적 에너지를 의미했다. 인간의 본성과 정서, 도덕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며, 인간이 선한 이(理)를 실현하도록 강조했다.성리학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었고, 사회적 질서와 윤리적 가치를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심성을 탐구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을 강조했으나 관념적인 면이 강하여 개인의 자유나 개성, 실사구시적인 면에서는 등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과거의 의미와는 달리 오늘날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경정(敬亭)이라는 정자와 그 부속건물을, 연못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서석지를, 나처럼 노거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은행나무를 보러 오지 않을까 싶다. 삼종을 한 세트로 묶어서 연당마을 서석지(瑞石池)로 통한다. 연못(蓮池)은 땅을 파거나 흐르는 물을 막아서 물을 가두어 놓은 곳을 의미한다. 못(池)은 대개 자연스럽게 형성된 느낌이 나지만, 연못이라 하면 사람이 미관을 위해 정원 등 인공적으로 만든 느낌이 난다. 연못은 스스로 작은 생태계를 구성하므로 자연스레 오랫동안 보존될수록 희귀생물의 보고로 변한다. 생태적인 정원의 연못에 인문학의 옷을 입혀 이상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녹색에 물들면서 그 옛날 조선의 성리학에서 오늘날 생태학의 정원으로 바라보았다. 연못은 주택에 필요한 부속품이다. 삶에 있어서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연못은 건강을 답보하는 예방 의학적 측면에서도 또한 삶의 정서를 살찌우는 심리적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연못은 정원과 함께 더운 여름에는 높은 기온을 낮추고 추운 겨울에는 낮은 기온을 높인다. 또한 습도를 조절하는 등 미세 기후를 조절하여 우리 건강에 도움을 준다. 미생물, 곤충, 새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데 물을 제공하는 등 많은 생명체를 불러들여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을 놓인다.정원의 미적 아름다움은 정원의 주인이나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정서를 순화시켜 심미적인 감흥에 젖어 들게 한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 자연과 조화하여 아름다움을 더할 뿐만 아니라 작은 생태계의 핵심 구역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특히 은행나무는 석문 정영방 선생이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부인이 가마 안에 은행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하니 참으로 선생의 아내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나무는 처음에는 정원의 일개 구성원인 평범한 가족이었으나 세월의 연륜이 쌓이면서 성장하여 이제는 정원의 주인격이 되었다. 언젠가 모르게 담장을 뛰어넘고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갔다. 이제는 어릴 적에 쳐다보았던 정자도 송죽매국도 모두 은행나무를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나이가 많아 주민들로부터 어른 대접으로 지팡이도 선물 받았다. 그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는 석문에 있는 거대한 촛대, 선바위를 볼 수 있고, 석벽을 끼고 흐르는 남이포 푸른 물도 볼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원뿐만 아니라 마을의 품격도 높여 주고 유명세는 날이 갈수록 하늘을 솟구치고 있다. 이제는 서석지 하면 은행나무 노거수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까치는 은행나무에 둥지를 틀고 아침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까치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에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교훈을 얻는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다. 또 은행나무는 행단(杏壇)을 생각하게 하고 행단은 공자를 떠올리게 한다. 공자는 15세에 지학(志學),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 이립(而立), 학문에 기초를 세웠다. 40세 불혹(不惑), 사물의 이치에 대해서 의문 나는 점이 없었고, 50세 지명(知命), 천명을 알았다. 60세 이순(耳順),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70세 종심(從心), 뜻대로 행하여도 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공자의 일생을 생각하면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서석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정원의 아름다움과 정자와 연못의 오묘함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정원의 연못과 은행나무의 생태와 문화를 설명하고 인문학의 옷을 입혀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좋은 곳에 와서 그 옛날의 발자취를 더듬고 오늘날 문학의 옷을 입혀 스스로 침묵 속에 감동과 환희의 시간을 가지니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고 말했다.그렇다. 비를 맞으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나 자신을 잊고 있다. 고금을 드나들며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있다고 할까.영양 연당마을 서석지(瑞石池)는…서석지는 성리학자이며 문인인 정영방(鄭榮邦)이 1613년에 조선 광해군 시대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은행나무 나이는 440살, 키는 15m, 가슴높이의 둘레는 6m가 넘는다. 수관 폭이 24m이고 앉은 자리 넓이는 130여 평이나 된다.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보길도 세연정(洗然亭)과 함께 서서지 정원을 우리나라 3대 민간 정원으로 꼽았다.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1 위치해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이기도 하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22

작지만 강한 도시 청송… 크게 펼치는 ‘보편 복지 시스템’

한국이라면 어느 시·군이랄 것 없다. 이전 시대와는 변별되는 개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정책 개발과 실행에 골몰하는 게 21세기를 규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경상북도의 크지 않은 지자체지만 청송군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에 눈 돌릴 수는 없는 일. 청송은 빼어난 자연 풍광에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와 안정으로 이끄는 맑은 공기로 요약되는 ‘작지만 강한 도시’다.여기에 더해 지역에 거주하는 군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의 입안과 수립에도 여념이 없는 게 청송군의 오늘이다.윤경희 청송군수는 올 초 2024년 복지 정책의 핵심을 “군민이 원하는 곳에 맞춤으로 들어서는 보편복지의 실현”이라고 요약했다. 이는 군민 중심의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과제와 함께 쉼 없이 추진돼야 할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아래에서 ‘모두가 행복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청송군’ 복지 시스템의 핵심을 요약해본다. □ 이웃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의 수립과 실행청송군은 올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인·아동·청소년·여성·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계층에게 적합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해 군민 모두가 행복한 맞춤 복지를 구현해나갈 방침이라고 천명했다.이를 위해 사회보장수급가구(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차상위계층 등) 결정에 사회보장시스템을 활용한 조사, 방문 실태 확인 등으로 적정한 급여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또한 인적·소득재산 변동사항을 수시로 조사해 수급 자격을 정비함으로써 최저생활 보장과 생활안정 지원을 위한 맞춤형보장급여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더불어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인적안전망, 이를테면 가칭 ‘안녕 살피미’의 창립,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원활한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복지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견하고, 주민 조직화 및 주민 역량의 강화로 지역민이 주도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을복지계획을 수립·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또한, 올해 신규 사업으로 고독사 및 사회적 고립가구 예방사업을 추진키 위해 상시 발굴 지원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민·관 협력 사회적 고립가구 해소 캠페인으로 구체화 된다는 것이 군의 부연이다. 고독사 위험가구에 대해서는 통합사례 관리, IoT 장비를 통한 스마트 안부 확인과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중장년 1인가구를 위한 요리교실 등도 운영해 건강한 식생활까지 지원하게 된다. □ 국가유공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숱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구국·호국 의지를 불태우다 목숨을 잃은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도 강화한다는 게 청송군의 의지다.참전명예 수당, 보훈예우 수당, 참전배우자 수당을 제때에 지급하고, 소외되기 쉬운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와 소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일자리 제공과 확대 시책을 보다 넓힐 예정이다.지역의 노인들이 쾌적한 휴식 공간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경로당을 보수하고, 경로당 운영 지원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특히 경로당에 소파, 테이블, 의자 등 입식 시설을 보급해 연로한 지역민들의 건강하고 편안한 생활을 조력한다는 것도 청송군의 복지 방침 중 하나다.더불어 기초연금 인상, 어르신 목욕비 지원, 노인 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사업 참여자를 매년 확대해 노령층의 안정적 소득기반을 조성하고, 사회참여 기회도 늘여나갈 계획이다.노인교실과 ‘경로당 행복선생님 사업’ 운영도 그 폭이 확대된다. 경로당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통해 지역 노인층의 건강한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취약 노인들에게는 맞춤돌봄 서비스와 독거노인 응급안전안심 서비스를 제공해 일상생활 유지를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이런 것이 바로 “실질적인 사회 안정망 확충”이라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은다.맞춤형 보육서비스 제공 또한 청송군이 주목하는 문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보육환경 조성은 한국사회 어느 곳 할 것 없는 주요한 과제. □ 지역 노령층에게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 제공청송군은 부모급여, 영유아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등을 다양한 형태로 지원해 양육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노후화된 보육시설에 대한 환경개선사업으로 안전한 보육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청사진도 이미 제시했다.저소득 한부모가족·미혼가족·조손가족 등이 가족의 친밀함을 느끼고, 밀착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지원사업을 수행함으로써 한부모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기반 조성에 도움을 주는 것에도 윤 군수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아이 돌봄 서비스 제공과 양육 공백의 최소화, 결혼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등도 청송군을 복지가 실현된 지자체로 만드는 프로젝트의 하나다.이를 위해 청송군은 결혼이민 여성의 한국사회 조기 적응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다문화가족 자녀의 효과적 언어 발달과 기초학습의 기회 확장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 약속했다. 드림스타트사업·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센터 운영, 청소년방과 후 아카데미 활성화, 청소년 보호육성사업 등은 이를 위한 구체적 프로젝트로 지목될 수 있다.방과 후 학교의 운영은 학교 교육 지원 차원에서 백안시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 신입생 교복 구입비 지원과 고등학교 무상교육 지원 역시 공공성 강화 차원의 문제이니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터. 청송인재양성원을 통한 지역 학생들의 교육 의지 고취도 이런 차원에서 함께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이처럼 위에 언급된 청송군의 각종 복지 프로트와 관련해 윤경희 군수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복지 정책, 그리고 군민의 삶이 보다 안정될 수 있는 정책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추진으로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한 청송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알려왔다. 이 약속의 현실적 실현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4-05-22

구미, 산업도시 이미지 벗고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도시로

구미시가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산업도시의 의미지를 벗어내고 낭만과 문화가 흐르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공공디자인과 지역 특색을 살린 참신한 콘텐츠로 구미만의 색깔을 입히면서 시민들의 호응과 더불어 도시의 이미지를 바꿔가고 있다.구미의 주요 도심에는 새롭게 설치된 대형 조형물들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고, 야간경관을 활용한 수변공간 조성, 특색있는 관광·스포츠 인프라 확충을 통해 회색도시 이미지를 벗고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로 변화 중이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지역 특색을 살린 새로운 시도들이 호응을 얻으며, 무미건조했던 산업도시 구미의 색깔이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도 구미의 지속적인 변화와 다채로운 매력 발산을 기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구미만의 대형 조형물…도시경관 업그레이드올해 경북도민체육대회를 개최한 구미시는 6년 만에 종합우승을 달성하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대회를 준비하며 도시 주요 길목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해 도시경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도시의 관문인 구미IC 진출로에 대형 ‘WELCOME GUMI’ 조형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에게 환영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운동장 앞 광장에는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을 상징하는 ‘승리의 주먹’을, 운동장 전면에는 넓이 67m의 초대형 입체조형물로 이목을 끌었다.경기장 앞 회전교차로에는 다이내믹한 육상경기 조형물도 설치했다. 각각의 조형물에는 경관조명이 있어 야간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시는 앞으로 주요 장소에 미디어 콘텐츠가 담긴 대형 조형물과 서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디어아트 월’도 추가 설치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영상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 비산 나룻길과 지산 샛강 생태공원 명소화 사업지난 2월 개방한 낙동강 탐방로 ‘비산 나룻길’은 비산 나루터에서 구미천 종점부까지 이어지는 길이 1㎞의 산책로로 총 5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수상 보도교와 데크길로 해당 구간을 연결했다. 낙동강을 따라 조성된 ‘비산 나룻길’은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어 구미의 새로운 힐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시는 낙동강과 구미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갈대 습지 1.3㎞ 거리에 탐방로를 조성한다. 탐방로는 습지에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만큼 상세한 계획 수립과 하천점용 등의 절차를 거쳐 올해 연말에 개방될 예정이다.도심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지산 샛강 생태공원은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큰고니의 도래 등 천혜의 자연을 시민들에게 선물하고 있다.시는 전국 3대 천연기념물 큰고니를 상징하는 큰고니 부부 상징 조형물을 데크 광장에 설치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황토 맨발 길 체험에 대한 수요 급증에 따라 지산 샛강 생태공원 기존 산책로에 황토 맨발 길 시범 구간(L=250m)을 조성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황토길, 황토풀, 황토볼, 세족장, 신발장도 설치했다. 올해는 황토 맨발 길을 추가로 연장(L=750m)해 다양한 체험 공간을 확충해 구미의‘핫 플레이스’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 야간경관 활용, 아름다운 야경 선물시는 최근 자연과 빛, 조명이 어우러지는 수변공간과 도심 속 골목 정원 조성으로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물하고 있다.지산샛강 생태공원 둘레길의 벚나무에 경관조명 250개를 설치하고 민들레와 초승달, 갈대 조명 등 특색있는 야간조명으로 야경 맛집으로 소문났다.비산나룻길에는 165개의 핸드레일바 경관조명과 43개의 보안등을 설치해, 야간에도 화려한 조명과 함께 산책이 가능해 시민들의 야간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원평동 금오천 일원에는 옹벽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옹벽경관등과 벚꽃나무에 수목투과등을 설치해 금오천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여기에 야간조도를 더 높이고 주요 길목에 미디어를 활용한 특화연출조명 설치로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금리단길(각산 마을) 골목길과 문화광장 등에 6개의 포토존과 디자인 가로등, 시간대별 다른 로고라이팅 연출로 거리경관을 개선했다.또 마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가드닝팀(gardening-team)을 결성하고 골목 벽면과 유휴지에 장미와 화초를 심어 생동감과 향기가 있는 마을길을 조성했다.산호대교에는 배면부를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특화연출조명을 설치하고, 낙동강 체육공원에도 30억원을 투자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조형물과 미디어아트를 설치할 계획이다. □ 파크골프장과 인조 잔디 야구장 조성도내 최다 홀수의 파크골프장을 보유한 구미시는 지난 4월 지역 파크골프장 7개소(장애인파크골프장 포함)의 잔디보호 및 생육을 위한 휴장을 마치고 전면 재개장했다.휴장기간 홀컵 주변 잔디 보식, 배토 작업, 잔디보호 매트 및 복합 잔디 설치, 주차장 차선도색 등 시설물 정비를 완료했다. 또 구미파크골프장의 재래식 화장실을 철거하고 수세식 화장실 3개소를 설치했다. 올해 총 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설 개선 및 이용자 편의증진 사업으로 최상의 파크골프장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시는 구미대교 아래 낙동강변에 전국대회가 가능한 공인 규격의 인조 잔디 야구장(3면)을 지난 4월 개장했다. 기존 흙 구장 3면 야구장(3만6000㎡ 규모)에 총사업비 40억원을 투입해 인조 잔디, 휀스, 더그아웃, 본부석 등을 설치했다.또 올해 지산 낙동강 체육공원에 인조 잔디 야구장 1면을 추가로 조성해 총 4면의 정규 공인 규격의 야구장으로 각종 전국 단위 대회를 유치해 스포츠 도시로써의 위상도 높여나갈 계획이다.□머무르고 싶은 도시, 체류형 관광인프라 조성회색 산업도시 구미에 낭만이 가득한 관광 인프라가 늘어나며,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변하고 있다.지난 4월 구미 원도심인 새마을중앙시장에서 개장한 낭만야시장은 개막 당일 3만명의 구름인파가 몰려 대박을 터트렸다. 다른 야시장과 차별화된 콘텐츠와 특색있는 메뉴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통시장 활성화와 원도심 부흥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도심 속 힐링공간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지산샛강 생태공원은 맨발걷기와 아름다운 야경, 무인카페 고니벅스로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 3월 벚꽃 개화 기간에만 6만명의 방문객이 찾았으며, 구미시민과 함께 인근 지역에서도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구미의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거리인 금리단길은 로컬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북카페 거리로 조성하고 있으며, 전선지중화, 보행로 개선 작업을 통해 보행자 특화거리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이 밖에도 구미의 교촌통닭 1호점을 테마로 한 특화거리 조성을 비롯해 진평동 먹자골목과 송정동 송정맛길 등 젊은 세대들의 입맛과 관심을 사로잡을 특색있는 문화거리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4-05-21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방법”

푸른 바다가 지척에서 일렁이는 포항에서 유년과 소녀시절을 보낸 시인 이소연(41)이 깔끔하게 단장된 매혹적인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10년 전 시인으로 등단한 이소연은 그간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이란 제목을 단 시집을 펴내며 서서히 그러나, 성실하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젊은 작가다.운문으로 구축된 시와는 달리 에세이 혹은, 수필이라 불리는 문학 장르는 산문을 사용해 만들어진다. 한국 문단을 떠도는 흥미로운 풍문 가운데 하나가 “산문을 주로 써온 작가는 운문을 잘 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운문을 쓰는 시인들은 산문을 못 쓰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대부분의 시인은 수필도 잘 쓴다.그런 통상적인 기대를 가지고 이소연의 산문집을 펼쳐들었다. 기자의 예상과 풍문은 틀리지 않았다. 조그맣고 앙증맞은 판형의 산문집(수필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여름날 먹는 시원한 국수처럼 술술 넘어가듯 읽혔다. 뿐 아니다. 행간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의 무게도 만만찮았다. 기대 이상의 즐거운 독서였음을 고백한다.이소연의 산문집에선 세계와 인간의 내밀한 본질을 시인의 예민한 촉수로 더듬어낸 눈 밝은 문장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다. 이는 쉽게 이루지 못할 인정할만한 작가적 성취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것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중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방법’이란 소제목을 단 글의 몇 문장을 인용한다.“(전략)…중국 북송 황제 휘종이 궁중의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리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꽃향기를 어찌 그리란 말인가. 화원 하나가 말발굽을 쫓아가는 나비 떼를 그린 그림이 휘종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참새 지저귀는 소리를 그리라고 하면 인동덩굴을 가득 그려 놓으면 될까? 휘종이 깊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을 그리라고 하는데도 많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절을 그리는 데 집착했다고 한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럴 땐 결심이나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내 의도를 정확히 읽어 내리라는 기대 속에서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둘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있다.…(후략)”마지막 책장을 넘겨 책 읽기를 끝내니, 산문집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가 어떤 경로를 통해 탄생한 것이고, 이소연은 ‘이걸 무슨 마음으로 썼을까’라는 게 궁금해졌다.그래서다. 스무 살에 포항을 떠나 현재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이소연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보통의 독자들이 던질만한 질문 몇 가지가 쓰였다. 다음은 그 물음을 접하고 친절하게 보내온 이소연의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포항에서 유년을 보낸 것으로 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풍경은.△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포항에서 머물렀다. 부모님은 아직 포항에 있다. 산문집 곳곳에 포항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산 밑에 자리한 집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연일사거리에서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하염없이 이어지던 길이, 양쪽으론 논밭뿐인 그 후끈후끈한 여름길이 자꾸 떠오른다. 어머니가 아픈 날 데리고 그 길을 걸어 나오는 동안 병이 낫곤 했다. 이상했다. 보건소 문이 닫혀 진료를 받지 못했는데도 보건소 옆 슈퍼에서 사이다 한 병 마시면 병이 낫곤 했으니까.-시집을 2권 낸 시인이다. 시와 산문을 쓸 때는 마음가짐이 다를 듯하다.△시를 쓸 땐 본업의 마음이 있다. 더 고심하고 애쓰는 시간이 힘들면서도 힘들지가 않다. 노력이 허투루 돌아가도 아깝지가 않다. 시를 쓰고 나면 기분이 좋다.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 산문을 쓸 때는 고심하고 애쓰는 시간보다 솔직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시에서도 솔직하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솔직함이 산문에는 있다. 말 안 해도 아는 것과 말을 해야 아는 것의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시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건너뛰어도 사유를 만들어 놓고 산문은 쓰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느낌 속에 사유가 있었다.-2014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10년차 시인이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시는 과거를 현재로 살아가게 하는 일이고 나와 나를 대면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봄이라 포항 곳곳에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아카시아 꽃을 보니 백일장 나가던 때가 떠올랐다. 백일장 장소가 수도산이었던 것 같다. 마치 이미지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 놓는 사다리 같다. 10년차 시인이 되어서 작은 변화라면 이제는 시를 쓰는 일이 두렵지 않다. 물론 예전에도 두렵지 않았다. 그때는 몰라서 두려운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지금도 역시 시를 모르지만 실패가 단순히 실패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는 그저 쓰는 과정일 뿐이다.-산문집 출간의 계기가 있었는지.△‘한국경제신문’에 2022년 4월부터 칼럼을 연재했다. 오피니언을 눈여겨 본 편집자가 있어 제안 받았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원고를 집필하라고 했으면 산문집 출간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연재 마감 덕분에 매달 원고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고, 그간 여기 저기 발표한 산문들도 결이 비슷해 함께 모았더니 한 권의 산문이 됐다.-산문집 제목이 좋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직접 지은 것인지,△세상 여기저기에 놓인 글감들은 그저 예쁜 것 같다. 그것에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글을 쓰려면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은가. 요즘 속이 안 좋아 한약을 먹고 있다. 그 탓에 밀가루 음식을 피하는 중이다. 밀가루 아닌 것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것을 찾는 일이 시를 찾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자꾸 먹을 수 없는 것에 가 닿게 한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라는 제목은 ‘포란의 계절’ 산문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포란(抱卵)’이다. 동물이 알을 품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봄과 나란히 두며, 많은 걸 품었다. 글이라는 건 말을 말로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품게 해서 좋다. -시와 산문, 통칭해 문학은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아직도 문학은 읽고 싶은 이들에게, 사유하고자하는 이들에게 파동을 일으킨다. 문학에 관심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아직 시를 좋아하고 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SNS채널마다 공유하는 문학들이 있고 난 그것들에 영향을 받는다. 적어도 문학은 나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고, 내가 아는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주목하는 동년배 작가는 누구이고, 주목의 이유는.△김은지 시인이 생각난다. 이제 거의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이름이다. 같이 활동을 많이 한다. 김현 시인, 유현아 시인도 있다. ‘해변’이라는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주목하는 이유는 함께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이들의 작품을 주목하지 않고 나를 가꿔 나갈 수는 없다. 그밖에 철공소에서 일하는 사람, 소금가마니를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 절벽을 타고 올라 꿀을 따는 사람들이 내가 주목하는 미래의 작가다. 이런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거기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시인으로서 단기 계획과 중장기 계획은.△5월 마지막 날 출판사 ‘창비’에서 세 번째 시집 ‘콜리플라워’가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청소년 시집 출간과 오피니언 연재도 이어나가야 한다. 앞으로 다음 시집은 10년 동안 퇴고하겠다. 물론 그 안에 낼 수도 있다.(웃음)-‘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를 읽은 후 독자들이 보내준 가장 인상적인 의견은.△셋째 이모가 전해준 얘기다. 병원에 입원한 이모부에게 심심할 때 읽어보라고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를 선물했는데, 평소 책도 잘 안 읽고 대화도 거의 없는 사람이 ‘정말 재미있게 소설을 읽었다’며 책 내용을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더라는 얘기였다. 에세이를 썼는데 소설로 이야기 한 게 너무 재밌어 기억에 남는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분이라 장르도 잘 모르시는 분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이 좋았다. 나의 문학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나를 낳아주고 품어준 아빠 엄마의 바다, 포항 바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21

천년 세월 지나며 신격화… 두려움과 경외심의 존재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텅 빈 숲의 나무도 푸름으로 풍성해지고, 짝을 찾느라 분주하게 지저귀던 새들도 푸른 숲에 보금자리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를 쫓아다니다 보니 나무의 성장 과정이 우리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며, 죽었을 때는 딱딱하다.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부드럽고 연약함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생명체가 겪는 변화와 성장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한다. 비바람에 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생명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 준다. 꽃이 지고 난 꽃자리에 열매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계승한다. 자연의 순환과 강인함을 또한 생명의 연속성을 드러낸다. 나무가 겪는 성장의 과정, 즉 자연의 법칙에서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리에 대한 깊은 성찰로 교훈을 얻는다.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512-1번지에 천년의 세월을 품고 살아가는 명품 느티나무 노거수 여행을 떠났다. 말이 천년이지 100년을 10번 곱한 숫자다. 조선 500년을 뛰어넘은 고려시대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역사의 산증인이다. 당산나무로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낼 뿐 아니라 금기 사항을 정하고 이를 무시하고 훼손하게 되면 동티가 난다고 하여 모두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졌다.숲에 깃든 정령 중에 나무의 정령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키 14m, 몸 둘레는 9m의 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가부좌 틀고 앉은 온화한 부처님으로 다가왔다. 그를 톺아보니 “나를 자세히 보아주니 고맙구나. 많은 사람이 나에게 공손히 두 손 모아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단다”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을 소원하고 빌지요?” 그러자 느티나무 노거수는 말했다.“나를 장수목(長壽木)이라면서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빈단다. 사실 숨 쉬는 생명체로서 마을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오래 살아왔단다. 마을을 개척할 때부터 아니 마을이 들어서기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단다. 마을을 떠나지 않고 늘 주민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마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하니 영생불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대상물로 나무랄 데 없지 않니?”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었다.“나를 다산목(多産木)이라면서 특히 아들을 낳아달라고 빈단다. 수많은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하는 모양인 것 같구나. 척박한 땅에도 경사진 계곡에도 그 어느 곳에도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단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주변 환경이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적응하면서 자손을 번식한단다. 오늘날 삼천리 방방곡곡 마을에 나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그렇지 않니?”라고 했다. 어릴 적 목격한 것이라 또 수긍했다.“나를 건강목(健康木)이라 하면서 건강을 소원한단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은 계곡에서 쏟아지는 바윗돌에도 견디어 낸 훈장이란다. 꽃과 열매가 작고 볼품이 없는 것은 에너지 분배에서 거대한 몸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사계절을 맞이하면서 변화는 나의 아름다움을 보았지 않았나. 튼튼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몸매는 어느 나무도 나를 따를 수 없지. 아름다움은 건강의 바로미터란다”라고 했다. 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나를 재생목(再生木)이라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단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절단된 모습이 여기저기 흉터로 남아있는 것이 보이지? 이 또한 스스로 아물어 새로운 가지를 재생되어 푸른 하늘로 꿈을 키운단다. 노령의 상처 난 몸에 돋아난 어린 가지 푸른 잎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 늘 면역력을 키우고 항상성으로 다친 몸을 스스로 치료하는 재생능력이 있단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라 부럽기까지 했다. “나를 영속목(永續木)이라면서 부러워도 한단다. 계절 변화에 따라 봄이면 연노랑 잎이 여름이 되면서 녹색 잎으로 가을에는 고운 단풍잎으로 변했다가 겨울이 되면 미련 없이 훌훌 벗어버리고 새하얀 눈옷으로 갈아입지. 이렇게 계절 변화에 맞추어 일생을 살아간단다. 외모는 그렇지만, 나에게도 봄에는 희망의 꿈을 꾸고, 여름에는 꿈을 향한 노력을 하고, 가을에는 그 꿈을 이룬단다. 겨울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봄을 기다린단다. 그러하니 천년의 세월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인간은 이루지도 못할 욕심에 짓눌러 아우성을 치고 괴로움에 잠 못 이루어 밤을 설친다. 한 번 가지면 놓지 않으려 하고 쌓아두려고만 하는 인간과는 달리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우주의 리듬을 재현하니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요즘은 여성목(女性木)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단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몸단장하고 아름다움을 꾸미는 여성을 연상하게 한단다. 수형 또한 여자의 오지랖과 많이 닮았다고들 한다. 곤충, 새 등 많은 생명체의 서식처가 되어 주고 휴식처, 피난처를 제공해 주고 있으니 포용과 희생정신이 여성과 많이 닮았다고 한단다”라고 했다. 그렇다. 수렵시대와 농경시대는 힘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부드러움과 감성의 시대로 여성의 시대가 아닐지 싶기도 했다.느티나무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랄까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인지 2000년을 맞이할 때 무슨 나무로 새 천 년 밀레니엄나무로 할까, 나라에서 논의했다. 많은 산림 전문가와 생태학자들, 그리고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느티나무를 선호하여 산림청은 새천년 밀레니엄나무로 지정했다. 우리 삶에 본받아야 할 상징성을 많이 지닌 것을 알고는 탁월한 선택을 한 산림청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천년의 세월을 품은 느티나무는 말했다. “나를 경외하며 소원을 빌면서도 발등 위에 농기계를 올려놓고 당집을 짓고 시멘트로 나의 목을 조르고 있어 숨쉬기도 힘들다. 신격화는 아니해도 좋으니 제발 목줄을 풀어주고 무거운 시설물을 치워 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고 주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수 있어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었다. 느티나무는 위대한 스승으로서 충분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었다. 나 또한 주민들과 함께 오늘도 소원을 빌며 부족함을 채우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한다. 한국산림문학헌장비는…‘한국산림문학헌장’은 이서연 시인이 지어 2021년 11월 18일 충남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에 세웠다. ‘숲을 사랑하여 시문(詩文)으로/ 숲의 정신을 담는 산림문학은/ 나무와 돌과 흙에서/ 삶의 씨앗이 되고 뿌리가 되고 꽃이 되는 문학으로/ 숲의 미래를 여는 산림문화를 이루고 가꾼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미래가 되고 역사가 되도록/ 산림문학이 사람 사는 세상에 나무가 되어/ 숲에서 형성된 맑은 영혼이 삶의 가치를 높여 가리니/ 자연의 섭리가 문학의 향기로 퍼져/ 문학이 숲이 되고 숲이 문학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사)한국산림문학회는 2024년 5월 8일 산림문학헌장비공원 내 시비제막식과 정자현판식을 열고 15년생 배롱나무를 기념식수 했다. 산림문학회 이사장 김선길 시인의 ‘나는 한 그루 나무이려니’ 외 4기의 시비가 세워졌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15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파노라마 뷰, 잊지 못할 감동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해양도시 포항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오밀조밀 펼쳐진다. 주로 서쪽으로 포진한 이 산들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제각각 존재 의미를 뽐낸다. 포항의 주산(主山)은 뭐니뭐니해도 내연산이다. 북구 송라면에서 산맥을 일으킨 내연산은 흥해에서 도음산과 만난 포항을 감싼다. 경주 강동을 끼고 남진하던 도음산은 양학산에 이르러 낮게 깔리며 호흡을 고른다.산맥은 다시 남쪽으로 뻗어가다 형산강에 막혀 형산과 제산으로 분기(分岐)하는데 이곳이 후술할 ‘형산, 제산 전설’의 배경이다. 형산강에서 수기(水氣)를 머금은 후 산세는 다시 남진해 운제산에서 포항의 산맥을 완성한다. 오늘 소개할 형산(兄山)은 포항의 산은 아니다. 그러나 내연-도음-양학의 산세를 이어받아 운제산에 연결되는 산중 정류장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관할구역은 경주(강동면)에 위치해 행정상으로는 포항과 벗어나 있다. 그러나 포항 지곡동, 효자동, 연일읍과 가까워 포항 시민들이 아끼고 오르는 산이다. ◆ 신라 경순왕 때 처음으로 역사서에 등장형산이 위치한 곳은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강의 남쪽에 자리 잡은 해발 257m의 낮은 산이다.사기에는 신라 왕궁에서 ‘중사’(中祀)를 치르는 북형산성(北兄山城)으로 언급돼 있다. 중사라면 국사(國祀)에 이은 다음 제례로 지금으로 치면 자치단체 축제에 해당한다.동국여지승람에도 ‘중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영천의 소산(所山)과 통하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조(條)에 형산은 다시 한 번 역사에 등장한다, ‘강동, 안강 지역에 큰산(형산, 제산)이 붙어있어 매년 수해가 발생해 주민 피해가 컸는데 태자 김충을 시켜 산을 두 개로 갈라 재해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용이 승천하며 산줄기가 뚫리고, 물길이 열린 후 강동면 일대에 넓은 평야가 드러나니 이곳이 유금들이다.보통 두 산이 나란히 있을 때 큰산, 작은산이나 방위에 따른 동봉, 서봉으로 지칭하는데 이곳은 인칭을 썼고 더구나 형산, 제산처럼 혈연관계로 묶어 놓은 서사 구조가 특이하다.앞서 언급한 형산 설화엔 마의태자(김충)부터 용(龍) 신화까지 등장하는데 그만큼 형산이 신라인들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방증이다.이후 형산은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등장하지 않다가 6·25 한국전쟁 때 ‘포항 형산강 방어전투’ 당시 구국의 요새로 등장하며 다시 한 번 현대사에 전면으로 등장한다. ◆ 왕룡사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뷰 백미형산에는 경순왕 조에 등장하는 형산, 제산 전설 외 크게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없고, 정상에 있는 왕룡사가 거의 유일한 사적이다. 창건 연대나 창립 인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없어 역사성, 기록성 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다.그러나 사찰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먼저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절 동쪽에 위치한 약사여래불이다. 낮은 가부좌로 동해를 응시하는 부처의 눈길에서 ‘병에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인자함이 느껴진다. 부처를 향해 두 손을 모은 불자들의 모습에서 치유를 향한 강한 소망이 묻어난다.약사여래불 앞으로 작은 광장이 펼쳐지는 데 이곳이 형산강을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연일대교, 형산대교에 이어 포스코의 힘찬 굴뚝과 영일만 앞바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포항의 경관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다.정상에서 만난 한 시민은 “왕룡사는 형산강의 전체 조망을 드론 뷰 수준으로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오션 뷰에 익숙한 포항 시민들이 다른 감흥을 찾아서 오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 태종 무열왕, 김유신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무량수전 옆에 있는 용왕전도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 이곳엔 아주 특이한 유물이 전해진다. 바로 태종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의 목조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강점기부터 전해진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우선 두 인물을 모신 곳이 ‘용왕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보통 역사 속 인물들은 동상이나 초상화, 영정(影幀) 정도로 예우하는데 ‘전’(展)에 따로 모셨다는 것은 이 분들이 위인(偉人)을 넘어 반신(半神)수준의 숭배대상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 관우(關羽)가, 한국에서도 최영 장군이나 곽재우 장군 등이 사당에 봉양되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고 있는 현상과 유사하다. 일설에는 이 목조상이 경순왕과 마의태자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형산 일대를 신라 부흥운동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시각이다.미학적 측면에서 이 목상들의 수준은 볼품이 없다. 그러나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두 영웅에게 향했던 민초들이 존경심은 조각의 완성도를 넘어 시공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사찰의 가람 배치에서 재미있는 것이 산신각의 위치다. 아이 출산을 점지해준다는 산신각은 보통 절의 가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이라는 훌륭한 기도처가 있고 그곳에는 전지전능한 석가모니가 있는데 왜 신도들은 외진 골방으로 찾아갈까.기도자에 초점을 맞춰보면 의문은 금방 풀린다. 이곳 출입자들은 대부분 아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이다. 여인들은 사찰 맨구석에서 신과 1대1로 만나 ‘직거래’로 소원을 이루려한다. 석가모니에 드리던 기도가 총알이 흩어지는 ‘산탄’(散彈) 이라면, 산신각은 단발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로켓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북당마을-왕룡사-부조정-소형산 코스 인기형산을 오르는 루트는 다양하다. 강동면 북당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0~30도를 오르내리는 경사도 때문에 익스트림을 즐기려는 자전거 동호인들도 자주 찾는다. 이분들에게 형산은 자전거 라이딩 외 왕룡사 참배나 형산강 뷰 관람이 목적이다.산행이 목적인 등산 마니아들에게도 형산은 다양한 코스를 열어놓고 있다. 정국사 입구-전망대-왕룡사-약사여래불을 돌아보는 2시간 코스가 일반적인 코스지만, 3~4km 코스에 성이 차지않는 마니아들은 왕룡사에서 반경을 넓혀 맞은 편의 부조정터-소형산으로 연장하기도 한다. 단 임도에서 진입로가 불분명하고, 등산로 표지판이 준비가 덜 되어 초행길, 초보 산행자들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포항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접하고 부딪히는 일상이다. 생업을 일궈 온 터전이고 삶의 수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늘 가까이에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기에 일찍부터 도시 발전과 문명을 일구는 기반이 되었다.포항의 문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형산강이다. 고대부터 중국 한군현은 물론, 일본과 통하던 곳도 이곳이었다. 넉넉한 수량은 연일, 오천 뜰의 넉넉한 젖줄이 됐고, 수천년 동안 시민들의 생활용수, 상수원이 됐다.오션 뷰에 잠시 식상했던 독자라면, 다른 자극을 찾고 있던 시민이라면 주말쯤 한번 형산으로 오르길 추천한다.옅은 신록을 배경으로 강물이 은빛으로 일렁이고, 정극후(鄭克後·1577∼1658)가 ‘동방의 적벽’이라고 칭찬했던 형산강뷰가 발아래 펼쳐질 것이다./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5-09

물결치듯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 아래 짙은 그늘이

춘 사월, 화창한 봄날, 햇볕은 나무에 옷을 입히고 새들에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느라 날은 짧기만 하다. 상춘객들은 어디 어느 곳이 더 좋다느니 화려하다느니 나름의 관광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 눈에 도긴개긴이란 생각이 든다.어디가 더 경치가 좋고 나쁨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가는 어느 곳이나 보이는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봄꽃으로 단장되어 움츠렸던 마음을 펴게 한다. 나목의 가지에 연노란 잎이 나자, 만개한 벚꽃이 나무와 이별을 고한다.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다 꽃비로 변하여 도로에는 꽃길로 수놓는다. 자동차 창문을 살짝 열고 봄바람 기운을 맞이한다. 날아든 하얀 꽃잎이 운전석 옆자리에 살포시 내려앉아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 탐방을 함께 하잔다.안동 와룡면 주하리 마을로 향하는 농촌 시골길은 참으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주변 산야는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오르막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또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모퉁이를 돌고 나도 또 모퉁이가 나타나고, 곡선의 시골길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다.주하리 천연기념물 뚝향나무 노거수를 만나러 가는 날,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릴 줄이야 누가 알리라. 봄의 풍경에 빠져 보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진성 이씨(眞城李氏) 주촌종택(周村宗澤) 뚝향나무 천연기념물 제314호’라는 표지석 옆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서 있는데 마침 주촌 종택에 거주하는 이세준 씨를 만나 뚝향나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조선 세종 때인 1430년경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도 정주 판관으로 있을 때 가져와 심은 것이란다. 이정이 약산산성(藥山山城)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세 그루의 향나무를 가지고 왔는데 도산면 온혜와 외손인 선산의 박 씨에게 각각 한 그루씩 주고, 남은 한 그루를 이곳에 심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했다.안내판에 “높이는 3.3m, 가슴높이의 둘레는 2.3m, 밑동 둘레는 2.4m, 가지 밑의 높이는 1.3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으로 5.8m, 서쪽으로 6.3m, 남쪽으로 5,5m, 북쪽으로 5.7m이다.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곧게 자라지 않고 전체가 옆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이 지방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약산산성 쌓기를 마친 기념으로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은 것으로 소위 기념식수목이며 명목인 셈이다. 우리 조상들은 아들딸을 낳았을 때 기념으로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성한 후에는 딸의 경우 혼수 기념으로 오동나무는 장롱의 재목으로, 소나무는 장례식에 사용할 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기념식수목이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기념일을 찾아 기념식수를 하면 어떨까.주하리 뚝향나무를 노송으로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노송운첩(老松韻帖)과 김성설, 이만인(1834~1897)이 지은 경류정노송기(慶流亭老松記) 도판을 보면 “우리 종가 경류정(慶流亭) 앞에는 만년송(萬年松) 한 그루가 있다. 가지와 줄기가 극히 구불구불 서리서리 얽혀서 엄연히 화개(華盖)를 우뚝 펼쳐놓은 것처럼 되었다. 높이는 겨우 몇 길도 안 되지만, 그 아래에는 백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참으로 기품인 송(松)이다. 그러나, 그 깊은 뿌리와 많은 가지, 무성한 잎으로 짙게 그늘진 모습은, 송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덕을 힘쓰고 업적이 넓은 군자의 솜씨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처럼 오래도록 무성하게 우거지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경류정노송기처럼 뚝향나무는 지금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땅에서 뿌리를 내린 줄기는 비틀려 꼬였고 지상 1.3m 높이에서 여러 개의 가지를 내어 사방으로 뻗었는데, 밑으로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8개 지지대를 받치고 있다.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위로 자란 줄기는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린 모양으로 줄기가 뭉쳐있었다. 거대한 하나의 뭉치로 뱀이 꽈리를 틀고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방불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파도치는 물결처럼 살아 움직이는 느낌으로와 닿았다. 많은 가지가 하나로 통일되고 단결된 모습의 견고함을 느끼게 했다.밑으로 내려오지 못함에 대한 반항의 몸부림인지 자유 의지의 꺾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지 모를 일이다. 인위적인 행위의 제한에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보이지만, 뚝향나무 본래의 성질에 반하다 보니, 그야말로 괴이함이랄까 거대한 분재형의 예술품으로 우리 앞에 섰다. 여기에 더하여 문화재청에서는 삼각형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사람의 상투처럼 나무의 가지를 억지로 하늘로 뽑아 올리고 있다. 아래로는 지지대를 세워 못 내려가게 하고 위로는 높은 지지대를 세워 가지를 상투처럼 뽑아 올리고 있다. 뚝향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줄기가 똑바로 자라지 않고 가지는 비스듬히 자라다가 전체가 수평으로 퍼지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뚝향나무 본래의 성질에 반하는 이러한 행동이 오랜 세월은 괴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재형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보지 않으면 믿기 어려운 수형의 모습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나무 본래의 성질에 반하는 인위적인 수형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뚝향나무 주변에는 벚나무, 단풍나무, 장미, 박태기나무, 철쭉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들 나무가 자라 뚝향나무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크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벚꽃이 뚝향나무에 하얗게 내려앉아 광합성 작용에 방해가 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도 뚝향나무 아래 통풍이 잘되지 않아 이끼가 무성하다. 습기가 차 나무줄기에는 병충해와 균이 침입하여 나무를 상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진성 이씨 이정이 심은 뚝향나무는 이제 이정의 분신으로 자리매김하여 후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약산산성을 성공적으로 쌓은 기념으로 고향에 심은 뚝향나무가 이정의 정신으로 변하여 6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경류정 뚝향나무라 부르면 어떨까. 경류정은 퇴계 선생이 이름 지은 별당으로 선생의 큰집 종택이기도 하다.주변에 공원을 조성하여 주민이 뚝향나무 가지를 꺾어 삽목한 50년생 나무를 안동시에서 두 그루를 구입하여 2012년 3월 15일에 옮겨 후계목으로 심어 놓았다. 모두 어미나무처럼 형태를 잡아 키우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후계목으로 어미나무 못지않게 우리 후손의 앞에 서서 그 신기한 모습을 뽐내고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안동 진성 이씨 종택(安東 眞城李氏宗宅)은…14세기에 안동 지역에 정착한 송안군 이자수(松安君 李子脩)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자수는 진성 이씨의 시조 이석의 아들로 고려 시대의 문신이다.종택은 본채와 별당, 그리고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리학적 생활 규범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생활공간이 구분되어 있다.본채 뒤편에 있는 사당은 내삼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싸여서 독립적인 공간을 이루고 있다. 본채 왼쪽에 있는 별당은 이자수의 6대손인 이연이 성종 23년 1492년에 지었다고 한다. 별당의 이름인 경류정(慶流亭)은 조선 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지었다. 지방민속자료 제72호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08

위트와 흥미로 치장된 ‘시와 만화’의 행복한 결합

최근 출간된 오봉옥 시인의 웹툰시집 ‘달리지馬’. 이른바 ‘해방공간’으로 불렸던 1946년. 전남 화순의 탄광에서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탄부(炭夫)들이 궐기한다. 36명이 죽었고, 500여 명이 크게 다쳤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이 1989년 스물여덟 살 청년시인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다. 장편 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다.당시 한국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시절. ‘붉은 산 검은 피’를 펴낸 출판사와 시집을 쓴 작가 모두가 고통과 수난을 겪는다. 책에는 판매 금지의 붉은 딱지가 붙었고, 시인 오봉옥은 구속된다.이는 20세기 말 한국 문단의 비극적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도 기록됐다. 그랬다. 1989년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시대였다.세월은 흘렀다. 비분강개와 결기로 눈동자를 새파랗게 빛내던 젊은 시인 오봉옥은 이제 회갑을 넘긴 예순셋 중년의 교수가 됐다.최근 눈에 띄는 시집 한 권이 출간됐다. 제목은 ‘달리지 馬’. 앞서 언급한 오봉옥의 제6시집이다.헌데, 독특하다. 얼핏 봐선 만화책처럼 보인다. 언필칭 ‘웹툰시집’이란다. “이건 뭐지?”라는 혼잣말을 하며 오봉옥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물론,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이건 ‘변화·발전’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낡은 레토릭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 그 변화라는 순리에선 시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그럼에도 ‘붉은 산 검은 피’라는 무겁고 심각한 시집에서 비교적 가벼운 위트와 흥미로움으로 치장된 ‘달리지 馬’로의 변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고, 그걸 작가 자신과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다음은 기자와 오봉옥 시인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핵심만 요약한 것이다. 한국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들이 ‘시인 오봉옥의 변화’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웹툰시집 ‘달리지馬’의 내용 중 한 부분. -‘웹툰시집’이라는 단어부터가 생경하다. 필자로서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 만화와 시를 결합해 시집을 낸 이유는 무엇인지.△웹툰시집이 장르 혼합의 개념이니 생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의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그건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시를 어느 사이 마니아들만 읽는 장르로 만들어버린 시(詩)문단 내부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차원에서 고상하다고 할 수 있는 시를 웹툰과 결합한다면 시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웹툰시’라는 개념보다는 시라는 말을 앞세운 ‘포엠툰’이라는 개념을 쓰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그건 너무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말들을 많이 해 그냥 ‘웹툰시’로 쓴 것이다.-기존의 시와 웹툰시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쓴 사람으로서 웹툰시의 매력이나 장점은.△기존의 시들는 시의 여백까지를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 같고, 웹툰시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시인의 말’에서도 밝혔지만 시적 상상력이 만화에 영향을 주어 재미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고, 만화적 상상력이 시에 또 다른 영감을 줘 시의 세계가 더욱 더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자면 그 둘의 창조적 결합이 중요하다. 웹툰시를 쓴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을 쓰려는 의식이 앞서는 것 같았다.-출간 이후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사실 그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시인들의 반응이었다. 일부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는 시인들이 많았고, 구체적으로 자기도 웹툰시집을 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말들을 많이 했다.독자들의 반응은 예상하는 바와 같았다. 쉽게 잘 읽힌다, 시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아이들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더라 등등 긍정적이었다. 얼마 전 ‘북토크’를 한 적 있는데 거기에서 사인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아닌 자식들이나 조카 이름을 써달라는 경우가 많아 흐뭇했다.-시집 ‘달리지馬’에선 마(馬) 자가 생물학적 동물부터, 명령형 어미 등 여러 의미로 변용돼 사용된다. 이를 의도했을 것 같은데.△웹툰시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말놀이가 곁들여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는 시를 끌고 가는 시적 화자와 달리 밖에 있는 시인이 시 속으로 들어와서 펼치는 천진난만한 행위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펼치는 동화적 상상력과 같이 시인과 시적 화자가 넘나들고, 시의 안과 밖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선 말놀이를 세 가지의 형태로 드러내 보았다. 우선 ‘달리지馬’처럼 언어로서의 말놀이, 시 안의 등장인물들이 구어체로 드러낸 삶의 표현으로서의 말놀이, 말을 거꾸로 세우는 등의 형태로서의 말놀이가 그것이다. 이번 웹툰시집이 실험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독자들 역시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번 시집 수록작 중 딱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권하겠는가.△맞다. 한 편을 선택하는 게 늘 어렵다.(웃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자식 생각’이다.“휠체어 탄 울엄니 등산 간다는 나에게 말하시네./ 산에 가서 구절초를 보거든 그 냄새 쪼깨만 개비에 넣어 온나./ 오는 길에 바다에도 들를 거라는 말엔 또,/ 갯바닥에 가믄 파도소리도 쬠만 귓구녕에 담아오고 잉./ 그럼 구절초 한 다발 꺾고/ 파도소리도 녹음해 올게요 했더니/ 니가 날 걱정할까봐/ 괜시리 한번 혀보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걱정 말라니 원./ 그걸 말씀이라고 하고 계신다.”이 시는 말놀이를 하는 어머니와 자식인 시적 화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말놀이는 단지 흥미만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이 시의 경우처럼 눈물겨운 행위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는 혼자 등산을 가면서 미안해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어’로써 말놀이를 하고,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향한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마음들을 잘 헤아려보면 좋겠다. -1985년 등단이니 시력이 40년에 이르렀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특별한 성과도 없이 벌써 40년이 흘러버렸다. 글쎄 시는 뭘까? 그림은 손이 불러내는 시, 노래는 목이 토해내는 시, 춤은 몸이 쓰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정작 시가 아니어서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시는 그저 마음밭에서 절로 풀어지는 길이자 그 길 위에서 어느 한 사람의 순정한 영혼이 불러일으키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시를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시는 탄생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하소연 같은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니 어느 촌부의 말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고,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다.시라는 예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앞으로의 계획은. 그리고, 100년이 흐른 후엔 어떤 시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살아서 가진 욕망을 죽은 뒤에까지 가져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늘 피해가지 않고 부딪쳐서 돌파하려고 했다.첫 시집 ‘지리산 갈대꽃’(창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빨치산 가족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번째 시집인 장편서사시 ‘붉은산 검은피’(실천문학)로 군사정권 하에서 필화를 겪고 투옥까지 되었지만 우리 역사에 묻혀있던 한 사건인 화순항쟁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언론계나 학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그리고 이번에 낸 여섯 번째 시집 ‘달리지馬’ 또한 국내외 최초의 웹툰시집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최소한 ‘도전의 아이콘’ 정도로는 기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고 싶진 않다. 죽을 때까지 아이처럼, 청년처럼 살고 싶다. 아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청년처럼 살기 위해선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07

‘낙동강 7경’ 풍경 감상하며 ‘흥·끼·신명 축제’ 맘껏

안동시와 예천군이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하는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과 ‘안동 어린이 백일장및 사생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지난 3일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 개막식 축하무대로 개최된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몰려 본격적인 축제의 개막을 알렸다.기웅 아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무대에는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기로 유명한 가수 박서진, 김용빈, 박미영, 단비를 비롯해 여성 발라드 가수의 정점에 있는 백지영 등이 대거 출연해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권기창 시장은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는 낙동강 문화의 연장선상”이라며 “낙동강 보존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어 6일에는 안동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동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가 안동 탈춤공원 일원에서 개최됐다.지난 2007년 시작된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한 문예마당으로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번 대회는 안동과 도청신도시 등에 거주하는 어린이들과 학부모 등 300여 명이 참가해 그림과 글쓰기 등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또한, 이날 행사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과 마술쇼 버블 공연 등의 볼거리가 마련돼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제11회 낙동강 7경 예천군 문화한마당’ 행사는 6일 오후 7시 한천체육공원 특설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김학동 군수와 최병욱 군의장을 비롯한 경북도의원, 군의원, 군민 등 2000여명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응원하고 화합하는 한마당잔치로 치러졌다.이번 행사는 ‘2024 예천활축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특별 공연으로 혼성그룹 스페이스A, ‘내일은 국민가수’ 최연소 참가자인 김유하, 싱어송라이터 김원준 등 국내 최정상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특별한 공연을 펼치며 지역민과 관광객들에 축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낙동강 수변생태공간을 홍보하고 낙동강 관광·레저 산업 육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행사는 예천활축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역경제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정안진·피현진기자 □ 3일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 6일 안동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 □ 6일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사진=이용선기자

2024-05-06

수천장 종이비행기 함께 날리며 ‘꿈과 희망’ 활짝

‘2024 포항 어린이날 큰 잔치’가 5일 포항 환호공원 일원에서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성황리에 개최됐다.‘즐거움이 퐝! 퐝!’이라는 주제로 제102회 어린이날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어린이,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환호공원을 가득 메웠다.기념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과 김일만 포항시의회 부의장,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김희수 경북도의원, 김형철·김종익 포항시의원, 천종복 포항교육장,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류득곤 포항남부소방서장,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개막식의 종이비행기 던지기 퍼포먼스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비상하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수천장의 종이비행기를 던지는 장관을 연출했다.이날 행사에서는 버블·매직쇼와 방송댄스 등 식전 공연으로 시작해 아동권리헌장 낭독과 모범어린이 시상 등 기념식, 포항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날 노래 합창이 이어졌다. 식후 축하공연으로는 지댄스 공연과 삐에로 공연, 퀴즈 대회 등이 열려 어린이들의 흥을 돋웠다.또 ‘경북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도 이날 함께 진행됐다. 환호공원 여기저기에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다.오전 10시부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달란트 상점, 인생네컷, 페이스페인팅, 교통안전 증강현실 체험, 심폐소생술, 소방 안전 체험, 전통혼례 체험, 화분 받침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 행사가 열렸다. 이강덕 시장은 “어린이들의 102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포항의 희망이고 꿈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김정재 국회의원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적극적이고 행복한 어린이가 됐으면 한다”고 했고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은 “공부 보다는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백인규 시의회 의장은 “우리들의 미래고 희망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포항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고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날씨가 심술궂지만, 오늘 하루 친구들과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장은희기자·단정민 수습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4-05-05

국권 찬탈 치욕의 현장, 나무는 모두를 지켜봤다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어긋났다. 왜 빗나간 일기예보가 이렇게 기쁠까. 문경회(文卿會·퇴직공직자 모임) 회원들은 서울 나들이로 월드컵경기장을 관람하고 남산공원에 있는 시립서울 남산유스 호텔에 숙박했다. 아침 식전에 남산공원 둘레길을 산책했다.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남산 공원 둘레길은 울창한 숲속에 잘 다듬어져 있었다. 녹색 상큼한 향기 마음껏 만끽하지도 못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관계로 중도에 멈추고 되돌아와야 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보면 아쉬움이 컸다. 오늘 모든 모임 일정을 마치고 딸아이 집에서 자고 내일 오후에 대구로 갈 기차표를 예매해 둔 상태였다. 때를 기다리기보다 기회를 만들면 된다. 다음날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을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도심 속 로맨틱한 섬 서울 남산타워가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남산공원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남산케이블카, 남산타워만 생각하고 산책로인 둘레길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은 북측 순환로와 남측 숲길을 연결한 7.5㎞로 1시간 반이면 걸을 수 있는 도심 속 산책길이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을 이용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남산공원 둘레길은 사계절 아름다움을 연출하지만, 특히 봄에는 벚꽃, 개나리, 철쭉이 흐드러지고 피어 꽃길로 수놓았다.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일상에 지쳐있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경쾌하고 가벼웠다. 푸른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간간이 서울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좋았다. 약 3.3㎞ 이어지는 북측 순환산책로는 차와 자전거의 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오직 보행자만 걸을 수 있는 순수한 산책로였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 이런 조용한 숲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숲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남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정상에 올라 있었다. 아름다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서울은 세계 어느 나라 수도 못지않게 발전하고 아름다운데 왜 내 마음에는 남산 둘레길 초입에서 만난 침묵하는 관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가 긴 여운을 남길까. 옛 일본 통감 관저 오른쪽에는 느티나무가 왼쪽에는 은행나무가 형제처럼 살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남산 기슭에 느티나무가 먼저 태어나 살고 있는데 누군가 은행나무를 이곳으로 옮겨 형제처럼 살아가게 했다.지금은 관저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억의 터’와 ‘통감 관저 터’ 빗돌만 세워 놓았다. ‘기억의 터’는 강제로 꽃다운 나이에 낯선 곳으로 끌려가 갖은 치욕을 당한 위안부를 잊지 말자고 이곳에 빗돌을 세웠다고 했다.‘통감 관저 터’ 빗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일제 침략기 통감 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게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 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그리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꼭 114년 전인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공식적으로 넘어간 ‘국치’의 현장이었다. 통감 관저는 조약체결 이후 ‘총독 관저’로 바뀌었고, 1939년 9월 현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가 신축돼 옮겨가기 전까지 29년간 그 기능을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의 통감인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의 작위를 기리는 동상이 거꾸로 세워져 있었다. 내게는 그 모습이 하야시 곤스케가 자신의 아니 일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거꾸로 매달려 빌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그때 이곳 현장에 있었던 관저와 인물들은 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현장의 역사를 증언하는 관저를 감시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총독 관저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일본 총독의 개노릇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나라까지 팔아먹고 자신의 배를 불린 매국노들이 누군지 노거수는 다 알고 있을 터이다.밤의 도둑고양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관저를 찾아 드는 매국노의 숨을 죽인 게다 소리도 노거수는 보고 듣고 기록해 두었으리라. 한편으로는 외침의 봉송 대 연기에 놀라 헐떡이며 말을 타고 오르내리는 순찰대의 말발굽 소리도 보고 듣고 우국충정의 관리도 노거수는 기록해 두었으리라. 언제 나무와 의사가 교환된다면 그 옛날 매국노는 누구고 충신은 누구인지 만천하에 밝혀지리라. 모두가 수치스러움에 입을 다물고 노거수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왼쪽의 감시인 은행나무는 나이가 400살, 키 21.3m, 가슴 높이 둘레 5.94m이다. 오른쪽 감시인 느티나무는 나이 450살, 키 23m, 가슴 높이 둘레 6.37m이다. 지금은 ‘기억의 터’와 ‘관저의 터’를 내려다보면서 남산 둘레길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증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름다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여기에 침략국 원수의 관저를 지었는지 모를 일이다.그 위세라면 궁궐도 강탈할 수 있을 텐데, 겸손을 가장하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정수를 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노거수를 역사의 산증인으로 ‘기억목(記憶木)’으로 이름을 붙여주고 천연기념물 반열에 올려 서울 남산공원 상징물로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지 싶다. 기억목은 귀띔해준다. “자강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며, 누굴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 스스로 잘못은 없는지 그들에게 어떤 빌미를 주지 않았는지 반성부터 해 보라 한다.” 4월의 봄은 나목의 나뭇가지에 푸른 옷을 입히고 꽃을 피워 외침에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봄바람에 숲은 파도처럼 푸른 물결이 끊임없이 출렁인다.서울처럼 한 나라의 수도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높고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푸른 한강이 그림처럼 흐르는 서울의 중심에 우뚝 자리한 남산은 우리나라의 보배이다. 남산 정상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빼곡히 달려 있었다. 열쇠를 통에 넣어버렸으니 잠긴 자물쇠는 영원히 열리지 않는 것처럼 사랑 또한 지속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 줄 느티나무, 은행나무 노거수를 이제는 기억목 노거수로 남산의 상징물로 천년만년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서울 남산공원 둘레길 산책하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 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를 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짐해 본다. 목멱산(木覓山) 봉수대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으로 경봉수(京712F雄)라고도 불렸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제1 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 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립산, 제3 봉수대는 평안도 강지-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 봉수대는 평안도 의주 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 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5-01

묵묵히 걸었던 800㎞ 여정… 길에게 인생을 묻고 나를 찾다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평균 수명이 길어진 21세기. 그에 발맞춰 많은 이들이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동시에 주목받고 있는 국내외의 ‘걷기 좋은 길들’. 그 가운데 정점을 찍는 걷기 코스는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이 아닐까 싶다. 이 길은 유럽에 산재한 여러 가지 루트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에 도착하는 유명한 도보 순례 코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위해선 꽤 긴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지 않게 사용되지만 의의로 한국에도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주변에도 이미 3~4명의 선후배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거나, 걸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그마치 800㎞에 이르는 이 순례길에선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미래에 관한 불안, 실패한 연애가 준 절망감, 희망과 꿈을 향한 도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의 가슴 안에는 수만 가지 사연이 담겨있을 터.경북 포항시 청하면에서 태어나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김상국 명예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바로 이 김 명예교수가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체험을 담은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름하여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도서출판 지식나무).그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걸 느끼고 돌아왔을까? 또한, 순례길 체험을 꿈꾸는 다른 이들에겐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제법 긴 질문지를 보냈다. 김상국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몇 번의 통화와 이메일 수·발신으로 진행됐다. 아래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유는.△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진 시점에서 Y대학 선배 교수의 산티아고 무용담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당시 나는 체중이 100kg이 넘어있었고 약간의 우울 증세도 있었다. 무기력해진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의 믿음과 삶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늘 잠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다시 찾고 싶어서 결심했다.-순례길 800㎞를 걸었다. 어떤 준비를 했는지.△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체력은 하루 6~8시간 활동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수조건이다. 다음엔 지루하고 반복적인 활동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야 한다. “난, 완주할 수 있다”란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런 습관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가장 힘겨웠던 구간은.△대부분의 순례자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어오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해발 1500m다. 첫째 날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러야 이 산을 넘어간다. 높은 산들로 몇 시간이고 내내 오르막만 전개되기 때문이다. 평야만 있는 곳에서 살아온 순례자들은 특히 힘들게 느껴진다. 한국의 대청봉, 천왕봉, 한라산 정도의 운동량이라고 비교하면 된다. -반면 가장 감동적이었던 구간은.△순례길은 매 구간 특색이 있어 감동을 준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가 감격의 눈물을 뿌리는 곳은 두 곳이다. ‘철의 십자가’와 순례길 종착지다. 철의 십자가는 순례길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또 3주 이상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 하나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수많은 사연을 놓고 간다. 어떤 순례자가 하늘나라로 간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두고 가는 걸 봤다. 이 철의 십자가는 순례자들 소망의 안식처가 되고, 세상의 온갖 죄와 허물을 씻어내는 사랑의 강물이 된다.-순례길에서 만난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나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눈 순례자들이다. 그중 약 500㎞를 동행한 미국 제임스 목사와 각별했다. 그는 내게 “Are you a Christian?”이라 질문해 그렇다고 대답하자, 다시 “Are you a born again Christian?”이란 질문을 던졌다. 제임스 목사와 긴 구간을 동행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산티아고의 길과 어우러져 보람과 가치를 느끼게 한 사람이다.-이번 책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은 어떤 방식으로 썼는지.△지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3번 완주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최초 방문했을 때 메모해둔 기록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약 한 달 남짓이었고, 최근 세 번째 다녀온 건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 2023년 봄이었다. 매번 출발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시작되지만, 일단 길 위에 올라서면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자연이 준 신비한 기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책 제목이 흥미롭다.△제목은 직접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 꿈이 마음속에서 선명해질 때 ‘집념과 열정’이 생긴다. 꿈은 가슴에 품는 힘이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만든다. 이러한 에너지, 즉 열정은 인생 후반부터 강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길들여진 익숙한 프레임 속에서 오래 살아가다 보면 꿈과 열정 없이 무미건조한 삶으로 이어진다. 내가 미국 유학 시절에 꿈과 열정을 쏟았던 모습을 다시 살리고 싶은 생각에 ‘잊혀진 나를 찾아서’란 주제를 사용했다.-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던 날엔 어떤 감정이었나.△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다가가면 “아! 나도 할 수 있어”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다. 완주를 끝내고 얻은 성취감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안도감과 함께, 건강하게 버텨 준 두 다리에 감사를 느꼈다. 체중이 8kg 빠지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순례길은 신비스러운 바다와 같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녹인다. 바람이 불면 녹색의 파도가 순례자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겐 들려줄 조언은.△산티아고 순례길 800㎞는 체력과 마음의 준비가 필수다. 누구나 준비를 잘하면 무사히 완주가 가능하다. 준비 기간은 개인 차이가 있지만 6~12개월이면 충분하다.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보다 자신감에 더 큰 무게를 두면 된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삶의 해답을 찾을 생각인지.△나는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 올 봄에는 영국 바스(Bath) 지방을 걸으며 힘을 얻고 왔다. 내년에는 남아메리카 태양의 도시 혹은, 잃어버린 도시라고 알려진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에 도전하고 싶다. 자연은 명화(名756B)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이게 바로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 도전의식이다.-여행에 관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여행은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자기주도적 인생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익숙해진 편리함을 벗어나야 한다. 그 속에 빠질수록 무기력이 찾아온다. 스스로 배낭을 메고 도전하는 습관은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발적인 여행 습관은 인생을 성숙하게 만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현대 문명은 인간을 편리함에 익숙하게 만들고, 그 익숙함에 속아 몸과 마음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건강을 지키는 건 우리들의 고귀한 책무다. 걷기만 잘해도 ‘생활습관병’을 예방할 수 있다. 걷기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는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걷기를 시작하면 된다. 건강은 행복의 밑거름이다. 여러분이 찾는 행복은 바로 자신 안에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30

울창한 소나무숲 거닐며 피톤치드 샤워, 건강은 기본 힐링까지

100대 명산을 오르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동네 뒷산을 200번 오르는 것이다. 어느 산이든 곁에 있는 산이 최고이고, 접근성이 가장 큰 미덕이다. 산은 인(仁)과 통하니 수양에 좋고, 유산소 운동인 등산은 자체로 훌륭 한 건강 수단이자 치료제다. 세계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다는 한국 중장년들이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은 그들을 품어주는 산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번에 소개할 산은 바로 이 컨셉에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다. 도심과 가까이 있고 험하지도 않아 운동화와 물병을 챙기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 공기나 물처럼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한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자칫 이 산도 이런 범주에 들까 염려되는 곳이다. 너른 품을 열어 일상에 지친 포항시민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양학산(良鶴山)을 소개한다. ◆부학산, 양학산, 방장산 등 다양한 이름양학산은 부학산, 방장산, 연화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본래 이름은 무엇일까. 먼저, 방장산은 방장산터널 일대의 낮은 구릉을, 연화산은 대성사(大聖寺) 인근의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성, 대표성 떨어짐) 다음 양학산은 ‘양학동’이라는 행정동이 들어선(1966년) 후 정해진 일종의 행정명으로 고유성면에서 실격이다.그런 의미에서 ‘학이 날아오른다’는 뜻의 부학(浮鶴)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운치도 있어 본래 이름에 가장 가깝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산 주변에 학, 황새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등장해 역사, 고증에서도 유리하다. 이 산은 양학동, 대이동, 학잠동에 걸쳐 있는데 동(洞) 유래가 재미있어 잠깐 소개한다. 먼저 양학동은 기존에 있던 ‘득량마을’과 ‘학잠마을’ 이름에서 한글자 씩 따와 이름이 유래됐다. 득량의 기원인 ‘득량곡’(得良谷)은 마을에 득량지(池)가 있어 농사와 양식걱정이 없는 마을이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 ‘학잠’(鶴岑)은 뒷산의 묏부리 모양이 학이 내려앉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비롯됐다고 한다.대이동(大梨洞의) 유래도 재밌다. ‘대잠동’(大岑洞과) ‘이동’(梨洞)의 이름이 합쳐진 것인데, 대잠은 마을 한가운데로 산줄기(岑)가 길게 뻗은 데서, 이동은 마을 입구에 큰 배나무가 있어 이 지명이 붙었다. ◆KCC스위첸-양학연당-포항시청 코스 유명보통 양학산 등산로의 기본 코스는 KCC 양학스위첸으로 올라 부학정-양학연당-산림조합 뒤편으로 오른 후 제3체력단련장-이마트(이동점)-이동삼성아파트-방장산터널-전망대를 거쳐 포항시청으로 내려오는 7.5km 코스가 주류를 이룬다.이 코스의 장점은 크고 작은 소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 거목들이 군락을 이루거나 역사적 서사를 간직한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숲을 펼쳐 산행객들에게 피톤치드 세례를 만끽하게 해준다.전국적으로 소나무 재선충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지만 이쪽은 해풍(海風) 덕인지 아직은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20리길 등산로가 성에 덜 차는 준족들은 서쪽 이동산 쪽으로 진행하거나 동쪽 연화재를 거쳐 아치재로 연장하기도 한다.전체 산세는 고도 200m 급으로 낮은 편이지만 지세가 평온해 저질 체력(?)들도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전망대-양학연당-부학정 등 곳곳에 명소이제 본격 산행에 나서보자. KCC 양학스위첸을 들머리로 잡고 올라 1시간쯤 지나면 아담한 정자가 하나 나온다. 양학동과 대이동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부학정(浮鶴亭)이다. 산세가 학의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정자 이름을 한글로 표기했다는 점. 유감스럽지만 한글 간판으로는 ‘학이 날아오르는 정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팝송을 한글로 적어 부르는 느낌이랄까?다시 북쪽으로 20분쯤 진행하면 ‘양학연당’이 나온다.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서 있어 잠시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름이면 못에 연꽃이 만발해 주민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준다. 역시 아쉬운 점은 안내·해설 표지판이 없어 ‘연당’(蓮堂)인지 ‘연당’(淵堂)인지 헷갈린다는 점.길은 산림조합 뒷산을 거쳐 제3체력단련장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 이동산을 잠시 조망하며 걷다보면 이마트(이동점)에 이르는데, 여기서 잠시 도로로 접어들어 이동삼성아파트까지 진행한다.이동중학교-방장산터널을 지나 비탈길을 잠시 거친 호흡으로 오르면 전체 등산로 하이라이트 ‘전망대’에 이른다. 양학산 최고의 뷰 포인트로 시티뷰, 오션뷰를 두루 즐길 수 있다. 전망대 난간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파도, 송도해수욕장과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 포스코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길을 접어들어 하산하면 전체 등산로의 종점 포항시청이 나온다.바다가 민물과 해류를 가려 받아들이지 않듯, 산도 희노애락 정서를 모두 품어준다. 연인, 벗들과 함께 하는 산은 희락(喜樂)일 것이고, 자녀 진로의 고민이 있는 주부나 시름에 찬 중년들이 오르는 산은 노애(怒哀)의 어디쯤 일 것이다.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자식으로 고민한다면, 취업·진로 문제로 우울한 청춘이라면, 직장의 진퇴를 놓고 고민하는 중년이라면, 지금 뒷산으로 오르라. 어진(良) 학(鶴)이 답으로 이끌 것이다. 양학산 일대 재미있는 지명들양학산 일대는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전통부락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재미있는 옛 지명들을 소개한다.▷선달각단=옛날에 무과 벼슬인 선달(先達)을 지낸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사장골(師丈谷)=문씨라는 선비가 현재 양학초교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는 데 이 일대를 사장골이라고 부른다.▷가마골=마을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름처럼 이 골짜기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늘 의식(衣食)이 넘친다고 한다.▷못안(池內), 신지(新池)=득량못 안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다. 이 못은 물이 깨끗해 붕어, 잉어 등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큰골, 큰동네=학잠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1974년 포항시 최초 아파트인 학잠아파트(현재 대림힐타운)가 들어섰다. 마을 입구엔 1981년 개장된 양학 시장이 있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4-25

땅에 엎드려 기어가듯 ‘겸손의 자세’로 뿌리 내려

날씨만 맑고 포근하다면 겨울 여행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임에도 맑고 푸른 하늘에서 따뜻한 햇살이 시골 마을에 내리쬐고 있다. 이럴 때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신명이 나서 눈앞에 펼쳐지는 공허한 자연마저 마음속엔 꽉 찬 느낌으로 다가온다.봄 여행은 때로는 춘곤증에 시달리고, 여름 여행은 모기, 쇠파리 등 갖은 벌레가 어디 가나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 성가시게 굴기도 하고 때로는 시골길 풀숲에 뱀이 나타날까 봐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가을 여행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면 괜스레 감상적이어서 마음이 울적하기도 하다. 그러나 날씨만 괜찮다면 겨울 여행은 이 모두를 잠재우고 그저 목적하는 바를 즐겁게 이룰 수 있어 좋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 길을 굽이굽이 돌면서 경북 청도 명대리 32번지에 살아가는 뚝향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작은 동산을 배경으로 운계사가 있고 조금 더 큰 산자락 끝을 붙잡고 모암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운계사(雲溪詞)는 1670년에 건축된 정면 3칸의 단출한 목조 기와로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선생을 배향하는 모암재(慕庵齋)로 가는 길가에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된 뚝향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땅에 엎드려 기어가는 뚝향나무는 모양에서도 범상치 않지만, 절효 선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절효(節孝)란 절(節)은 절조로 절개와 지조를 뜻하고 효(孝)는 효성으로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는 마음이나 태도를 뜻한다. 절효 선생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그 정신만은 오로지 뚝향나무에 옮겨져 오늘날까지 후손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노거수와는 달리 땅에 엎드려 겸손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으니 쉽게 찾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찾았다고 해도 키는 작고 덩치만 옆으로 길게 퍼져 카메라 렌즈에 쉽게 담기도 어렵다. 주변에 단풍나무, 소나무, 사철나무가 함께 살아가고 있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방해물로 애를 때울 것이 분명해 보여 일찍이 다른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할 것 같다.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뚝향나무 노거수를 렌즈에 담았다. 나이는 350살 정도이고 키는 5m, 밑둥치 둘레는 1m, 수관 폭 앉은 자리는 30m나 된다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앉은 자리의 넓이는 키의 6배 정도나 되고 보니 참으로 놀랍다. 뚝향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개울과 땅을 덮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나무 아래 옹달샘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확인할 수 없었다. 나뭇가지가 우거져서 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겨우 나무 아래 개울로 들어가 보니 7주로 보였다. 그러나 안내문에 따르면 모두 한 그루에서 나온 나무라 했다.사각형 철제 막대 위에 얹혀 있는 뚝향나무 가지가 자유 분방하게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역동적인 모양은 차곡차곡 쌓인 세월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개울을 완전히 덮고 있어 비가 많이 와서 홍수라도 난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앞선다.향나무는 강한 향기를 가지고 있어 제사 때 향료로 사용되었으며 정원이나 공원의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고 있다. 위로 자라는 향나무보다는 볼품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조경용보다는 주로 비탈진 언덕이나 둑에 심는 것이 대부분이다.언덕에 심어진 뚝향나무는 비탈진 사면 따라서 자라기 때문에 빗물로 인한 토사의 유실을 방지하고, 흙을 움켜쥔 나무뿌리로 말미암아 땅을 단단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나무이다. 키가 작다 보니 한삼덩굴 등 여타 덩굴식물이 얕보고 나무를 타고 올라 휘감고 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뚝향나무는 절효 선생 후손에 관한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후손 김용석은 딸만 낳고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부인이 뚝향나무 아래 샘에 촛불을 켜고 지극 정성으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뚝향나무에 빌었다. 그 정성 탓인지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나 군에 입대했다. 부인은 어렵게 얻은 아들이 무사히 전쟁을 치르고 돌아오기만을 뚝향나무에 빌고 또 빌었다. 그 덕분인지 전쟁터에서 총알을 13발이나 맞았는데도 살아서 돌아왔다. 이 기적 같은 모든 일들이 뚝향나무 덕분이라고 믿었다. 뚝향나무가 조금이라도 상하게 되면 집안의 사람이 다친다든지 도둑을 맞는다든지 좋지 않은 일이 꼭 일어났다고 한다. 우연의 일이라 넘기기에는 너무 신기하여 집안의 대소사를 뚝향나무에 먼지 신고를 하는 등 경배하고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뚝향나무 노거수와 절효 선생은 한 몸이란 생각이 든다, 뚝향나무를 보면서 우리 선조의 절개와 지조, 부모에 대한 효성을 본받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후손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뚝향나무 노거수를 잘 보호하여 수백 수천 년을 함께 번영해 나가기를 희망해 본다. 절효(節孝) 김극일 선생은…청도 명대리 뚝향나무는 조선 시대 효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운계사 사당 앞에 있다. 절효 선생은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머니를 위해 몸의 종기를 입으로 빨고 아버지의 병세를 위해 설사를 입으로 맛보았다고 한다.부모가 돌아가신 후 시묘살이 6년을 했는데, 호랑이가 무덤 곁에서 새끼 젖 먹이는 것을 보고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가축 기르듯이 호랑이 새끼에게 먹여 주었다고 한다.아버지에게 천첩(賤妾) 두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살아 계실 때와 같이 섬겼고, 두 분이 돌아가시자 모두 기년복(朞年服)을 입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임금에게도 알려져 정문(旌門)에 향리 유림과 제자들이 그 효행을 후세에 귀감으로 삼고자 사시호(私諡號·학력은 높은데 지위가 낮아 나라에서 시호를 내리지 않을 때 일가나 고향 사람, 제자들이 올리던 시호)를 절효(節孝)라 하여 절조와 효성의 본보기로 삼았다.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자계서원(紫溪書院)에 위와 같은 내용의 정려비가 있다. 김극일(金克一) 선생을 배향하는 재사이다. 선생의 자는 용협(用協)이고 호는 모암(慕庵)이다. 의흥 현감 김서의 아들로 야은 길재(吉再) 선생의 문인이다.향리에서 후학들의 훈도에 힘쓰다 75세에 돌아가셨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24

동쪽 해변에서 마주한 석양, 장엄하고 쓸쓸함에 ‘뭉클’

매양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시간의 속도는 그 무엇보다 빠르다.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온다’는 갑진년 벽두에 술렁이는 마음으로 새해 희망을 설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올해의 1/3이 흘러버렸다.외투 깃을 올려 세우던 1~2월 추위가 지나고, 3월엔 개나리와 매화를 필두로 벚꽃과 목련 등 봄꽃들이 피었다 지고, 중국에서 몰려온 누런 황사에 따가운 눈을 부비며 넣어뒀던 마스크를 꺼내 낀 채 거리를 걸었던 4월도 이제 막바지다.때론 날이 궂고 미세먼지가 호흡기를 위협하는 날들도 있지만, 그래도 봄은 산책하기 좋은 계절. 굳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세상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걸을 때 떠오른다”는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멀지 않은 거리에 해변 여러 개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을 만날 수 있는 포항은 어떤 면에선 축복받은 도시다.한적한 4월의 주말 오후. 양덕동에 자리한 시내버스 207번과 600번 종점에서 20~30여 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죽천해수욕장으로 봄 산책을 나선 건 ‘오랜만에 자연 곁에서 걸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감히 니체 흉내를 내서 ‘위대한 생각’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고.□ 한산하고 고적한 죽천해변이 주는 즐거움최근 몇 년 새 각종 드라마와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포항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알린 구룡포와 월포해수욕장엔 젊은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와 과메기와 대게를 맛본 후 일본인 가옥거리를 돌아보고, 파도타기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긴다.한국에선 드물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영일대해수욕장은 다양한 형태의 카페와 주점, SNS로 유명해진 맛집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사철 20~30대 청년들로 북적인다.죽천해수욕장은 앞서 말한 유명 관광지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해변은 아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한산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임에 분명하다.인터넷에서 한국의 주요 여행지와 숙박업소, 소문난 맛집 등을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안내하는 ‘트립인포’는 죽천해수욕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죽천해수욕장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죽천리에 있다. 광활한 동해를 배경으로 차박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캠퍼가 모여든다. 낚시를 즐기는 여행자들도 즐겨 찾고, 여름 휴가철이면 해수욕을 만끽하고자 찾아오는 가족 단위 여행객도 많다. 포항IC에서 가깝고, 주변에 포항 해상스카이워크와 환호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직접 가서 확인한 결과 위의 소개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시야가 확 트인 널찍한 모래밭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풍경은 동해에 접한 여느 마을처럼 분명 근사했다.하지만, 차박을 준비하거나, 물고기를 낚는 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는 아직 해수욕장이 진가를 발휘하는 여름이 아닌 이유도 있었을 터. 포항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인적이 드문 촌락 같은 풍경.조그만 텃밭에서 기른 마늘을 손질하던 할머니 한 분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임에도 망설임 없이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어디서 왔어요? 8월에 오면 여기가 해운대나 경포대 못지않게 좋아요. 그때가 되면 내가 저기서 성게국수랑 파전도 만들어 파니까, 한여름에 꼭 한 번 다시 와요.”낯선 거리를 걷는다는 건 이처럼 예상치 않은 소박한 환대와 만나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산책의 즐거움’ 아닐지. □ 산책길의 끝에서 떠올린 김광균의 시 한 편따스하고 환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할머니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엔 무작정 해변 마을 골목을 걸어 다녔다. 별다른 목적 없이 푸른 파도를 곁에 두고 청량한 봄볕 아래서 1~2시간쯤 걷는다는 건 나이·성별과는 무관하게 꽤 즐거운 일.커피와 아이스크림, 맥주와 칵테일 등을 판매하는 올망졸망한 카페가 2~3군데 문을 열고 있었으나 손님이 많진 않았다.죽천해변의 가장 큰 매력은 ‘한적한 평화로움’이라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이윽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보는 석양은 비단 서해만 아름답진 않다. 동쪽 바다의 지는 해도 장엄하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죽천해수욕장의 고졸한 풍경 속에서 지켜본 4월 막바지 저물녘은 자연스레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했으니, 김광균((1914~1993)의 쓴 20세기풍 노래 ‘와사등(瓦斯燈)’이다.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봄날 해변을 걸으며 깨달은 작은 진실북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서 죽음을 맞은 시인은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혹은,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서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읽어냈다.물리적으로 무게가 없는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지고,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라’는 신호기가 차단된 세상에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또한, 고독하지 않은 생(生)도 없을 게 분명하다.죽천해변에서 마주한 석양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실 중 작은 하나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건 바다의 가르침이었을까? 시인의 인생 해설이었을까?2005년 4월. 1개월 일정으로 인도 남부를 여행했다. 아라비아해(海)에 접한 고아(Goa)는 1960~1970년대 제도부터의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히피(hippie)들의 성지로 이름이 높았다.1961년까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에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임에도 소고기 요리가 있는 지역. 인도이면서도 ‘인도다움’이 별반 느껴지지 않는 고아엔 수십 개의 해변이 있다.독일과 프랑스,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은 짧게는 1~2주, 길게는 몇 개월씩 언주나, 팔롤렘, 콜람 등의 이름이 붙은 해변의 허름한 숙소에 머물며 진홍빛 석양과 어울려 논다.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에는 파티를 즐긴다.19년 전 바로 거기서 포항 죽천해변과 너무나 닮은 조용하고 한산한 베나울림해변을 만났다. 지는 해가 선사하는 심장 두근거림은 포항 죽천과 인도 베나울림이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 두근거림이 주제넘게 니체처럼 말하게 한다.“비록 덧없고 고독할지라도 삶은 포기해선 안 될 빛나는 어떤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23

청정자연·전통문화가 반기는 ‘체류형 관광 1번지’로

청정한 환경에 볼거리와 즐길거리 많은 청송군이 ‘산소 카페’라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는 문화관광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다양한 관광 시책사업을 추진해 ‘함께하는 문화관광, 상생하는 산소카페 청송군’으로 도약을 준비 중인 것.지금은 관광의 트랜드가 바뀌고 있는 시대다. 유명세를 떨치는 관광지보다는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고택이 즐비하고 다양한 지질 현상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생태환경이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청송군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표적 체류형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관광도시 조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청송군은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 체류형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관광사업을 통해 군의 특징을 살린 문화관광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특히 ‘산소카페 청송군’의 차별화된 청정자연과 유서 깊은 전통문화, 참신하고 다양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융합해 한층 많아진 관광수요에 부합하는 지역 관광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청송군은 ‘주산지 관광지 조성사업’, ‘한옥스테이 사업’, ‘골목경제 회복 지원사업’ 등을 통해 유동 인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더불어 활성화시킬 복안을 가졌다. 특히 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해 젊은 세대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지역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달기 약수탕 거리 환경 개선과 메뉴 다양화로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관광정책 다변화를 통해 청송형 관광사업의 외연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이와 함께 지역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청송 아웃도어 골프장과 진보면과 산남지역에 파크 골프장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청송의 수려한 자연을 즐기는 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다.더불어 청송을 대표하는 ‘청송사과축제’를 적극 활용해 관광 활성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올해 개최되는 제18회 청송사과축제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등 청송사과축제만의 장점과 색깔을 담아내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청송군의 위상에 걸맞은 최고의 사과축제를 준비할 계획이다.이와 관련해 윤경희 청송군수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공존하고, 사람의 숨결까지 어우러진 최고의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고 지역주민의 일자리를 늘려 관광을 통한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위 유지청송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첫 재인증에도 성공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9월 현장평가를 통해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관리·운영 현황을 점검했고, 이를 토대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이사회에서 재인증을 뜻하는 ‘그린카드(Green Card)’ 부여를 의결했다.지난해 6월 9일 공식 문서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재인증을 확정받은 청송군은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던 현장평가 기간을 포함해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세계적 브랜드 도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집행이사회는 청송군이 2017년 최초 인증 당시 받았던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지질유산과 문화유산의 연계, 지역주민 협력, 인구감소 및 기후변화 대처, 교육관광 프로그램 운영 등에 있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취지에 맞게 세계지질공원을 관리·운영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지난해 9월 청송군을 방문했던 현장평가단은 “지질공원 발전을 위한 청송군 관계자들과 지역주민의 적극적 지원과 노력이 돋보였다”며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질공원 운영 목표와 지역주민 및 학교와의 협력은 전 세계 지질공원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우수 사례로 판단된다”고 평했다.현장평가 위원장이었던 트란 탄 반(베트남)은 유네스코에서 세계지질공원을 그 취지에 맞게 운영한 세계지질공원에 부여하는 모범 운영 상(Best Practice Award)을 신청하라는 의견과 함께, 자신이 추천서를 제출하겠다는 의향을 내보였다.청송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재인증 평가 기간이 조정됨에 따라, 내년에 두 번째 재인증 평가를 받게 됐다.두 번째 재인증을 위해 청송군은 지질공원 가시성 확대, 교육 및 관광프로그램 운영 대상 확대, 인프라 조성, 국내외 교류활동 추진 등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평가기준에 맞춘 지질공원 운영에 노력할 예정이다.□이색 숙박시설 만들고, 달기약수탕 거리 활성화최근 청송군은 경북도가 주관하는 ‘경북형 이색숙박시설 조성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돼 사업비 100억 원을 확보했다. 이 공모사업은 글로벌 K-관광선도와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 시대를 여는 ‘경상북도 2030 관광 비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숙박시설 자체만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되도록 유휴시설을 활용해 경북형 이색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이번 사업의 대상지는 주왕산면 하의리 일원 청송양원(구 주왕산초등학교)으로 지난 2009년 청송군이 매입해 현재 예비군면대, 산불진화대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총사업비 100억 원으로 건축설계를 공모해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가족형호텔 15실, 청송사과 글램핑장 15곳, 바비큐장 15곳, 트리하우스 4곳, 라비에벨 카페식당, 야외물놀이장, 주차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호텔의 편안함과 캠핑의 즐거움, 그리고 산소카페 청송군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각오다.또한, 이 사업은 청송의 주요 관광지인 주왕산, 주산지, 얼음골, 유교문화전시체험관 등 지역관광자원 연계와 관광객을 위한 체험관광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외에도 청송군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행정안전부 맞춤형 골목경제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프로젝트의 세부 명칭은 ‘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이다.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은 20억 원의 사업비로 수변테크 설치, 경관조명 설치, 노후된 약수탕 환경개선 등 가로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고, 관광객들의 체험과 휴식을 제공하기 위한 문화복합공간인 로컬 앵커스토어 건립 등도 추진한다.청송군은 이 공모사업을 통해 과거 달기약수탕의 명성을 되찾고 MZ세대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해 달기약수탕 주변의 골목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달기약수탕 상가지역 주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골목경제 공동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역주민과 상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청송군이 협력해 사업을 추진해 나갈 방안도 마련된다. □맨발 걷기 명소로 주목받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이미 입소문을 통해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산소카페 청송정원’도 건강을 지켜주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4만2000평 규모의 백일홍 정원인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연간 20만 명이 찾는다. 최근엔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어 힐링 건강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실제로 청송정원에선 맨발로 걷는 관광객이나 군민들을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맨발 걷기가 혈액 순환 개선과 활력 충전, 우울감 해소 등에 효과가 있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결과로 해석된다.청송정원의 백일홍 향과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걷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 아니라, 혈액순환 촉진과 항산화 작용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청송정원 산책로에는 태양광으로 밤에도 불을 밝히는 안심가로등이 설치돼 있어 야간에도 안심하고 산책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청송군은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을 위해 안내 입간판, 신발장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걷기 지도자를 초빙해 맨발 걷기의 기본 자세와 주의점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앞서 언급된 것처럼 문화관광의 활성화로 지역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청송군의 노력은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4-04-22

자유·조화·인내·자신감… 흉내 낼 수 없는 연륜의 감정

노거수를 찾아다니면서 매번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 노거수의 기이함과 신비한 모습의 이미지에서 나름의 여러 가지 의미와 교훈을 깨닫고 배운다. 노거수는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영적인 깨달음의 감정과 즐거움의 감흥을 준다.키보다 앉은 자리의 지름이 무려 3배나 훌쩍 뛰어넘는 둥근 동산 모양이랄까, 아름다운 반달 모양의 늘 푸른 노거수가 있다. 경북 청송 장전리 산 18번지에 살아가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313호 향나무이다. 나이 400살임에도 불구하고 키는 7.5m밖에 되지 않으나 앉은 자리는 지름 25m나 된다.가슴 높이 둘레가 5m이고 그 지점에서 네 가지가 사방으로 자신감 넘치게 뻗어 자라고 있다. 네 가지의 나무 둘레도 2m에서 1.5m로 다 합치면 원 줄기보다 더 굵다. 줄기에서 뻗은 가지가 땅을 딛고 발돋움하여 하늘로 비상하는 자세로 보이기도 하고, 문어발처럼 땅에 기어다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400년은 결코 만만한 세월이 아니다. 향나무 수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외관상으로는 세 그루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그루일 가능성이 크다. 나무 크기로나 줄기의 굵기 등으로 보아 같은 시대에 심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고령의 몸은 썩은 부위를 깨끗이 도려내고 방수, 방부 처리하여 원형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미라처럼 보였다.나라에서도 노거수의 위대한 삶에 격려의 뜻으로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의미로 지팡이 14개를 선물했다. 특이하게도 향나무는 마치 거대한 덩굴식물을 연상하게 했다. 여기저기 이리저리 엉키고 감긴 가지의 기이한 모습에서 오랜 세월이 숨어들어 꿈틀거리며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노거수는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형이다. 신묘하여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늙은 몸에서 풍기는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신통할 따름이다.그러나 오늘날 우리 인간사회에서는 나무와는 달리 현대 문명은 늙음이라는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늙음은 쓸모없음의 동의어이며 우리는 늙었다는 말을 거의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어르신이나 연장자와 같은 완곡한 말로 이를 회피하기도 한다. 지난날 노인은 위대한 존엄성의 상징이지만, 오늘날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기도 하는 것 같다.왜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가? 노인이 되면 행위보다 있음이 강조되는데, 우리의 문명은 행위에 몰두해 순수한 있음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기 때문일까. 늙음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걸 모르는지, 노인의 부정적인 의미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향나무 노거수의 나뭇가지가 뒤엉켜 있는 모습에서 자유, 조화, 인내, 끈기,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이 아니면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연륜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이 촘촘히 감싸고 있어 그의 품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는 그의 연륜을 느낄 수 없다. 거대한 몸은 푸른 이끼 옷으로 입혀져 젊음과 공존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사계절 내내 푸른 옷을 입고 늘 푸름을 자랑하지만, 특히 겨울에는 때때로 흰 눈꽃을 피워 순수함을 느끼게도 한다. 노거수의 모습에서 본받아야 할 가치가 있듯이 노인에게서도 배워야 할 교훈이 있을 것이다.향나무 노거수를 통해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것이 자신을 위한 길임을 깨닫게 하였다. 향나무 노거수는 400년 전 영양 남씨(英陽南氏) 입향조인 운강공(雲岡公) 남계조(南繼曹)의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묘 주변에 심은 기념식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묘도비가 세워져 노거수와 단짝이 되었다. 4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운강공 후손들이 매년 이곳에 모여 밤을 다 함께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문중의 우애와 화목을 실천하고 있다. 늙은 향나무가 매개체가 돼 그들의 문중을 끈끈한 정으로 묶었다.사람이라면 자신의 가문과 후손의 번영을 위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의외로 흔하지 않다. 나 자신만 해도 그렇다. 문중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늘 등한시 하다시피 했다. 지금부터라도 문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얼마 있으면 강선계(講先契) 100주년 기념행사가 대구시 수성구 고산 노인복지회관에서 개최된다. 강선계는 600년 전 혼인으로 맺은 인연의 끈을 1923년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조직의 목적과 운영 규약을 문서로 하여 지금까지 이어온 세 가문의 모임이다. 옥산 전씨(玉山全氏), 아산 장씨(牙山蔣氏), 밀양 박씨(密陽朴氏) 삼 성씨가 모여 문중의 친목과 화합을 돈독히 함은 물론 충의와 효도에 바탕을 두고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구국에 앞장섰다. 조선 전기의 친족 관행에서 유래된 인연을 현재까지 이어오며 더욱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강선계는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서구적 생활양식의 보편화로 인간관계가 파편화되고 소외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어느 가문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러한 미담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살아있는 상징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강선계 100주년 기념행사에 삼 성씨가 함께 조상 묘역에 기념식수로 향나무를 심자고 제안해 볼까. 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목으로 울릉도 도동의 절벽 바위 위에 자라는 향나무는 2000살이 넘었다고 한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사계절 내내 푸름으로 단장해 있다. 특히 제사 향료로 많이 이용되고 묘역이나 우물가에 식재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민속문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의 발걸음이 앞으로 500주년 때에는 장전리 향나무 노거수처럼 멋진 모습으로 후손들 앞에 서 있지 않을까. 에크하르트 톨에(Eckhart Toll)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저서에서 “우리의 삶 전체의 여행이 궁극적으로는 이 순간에 내딛는 발걸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이 한 걸음만이 존재하며, 이 한 걸음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만나는가는 이 한 걸음의 성질에 달려 있다. 즉 미래는 우리의 지금의 의식 상태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의 늙음도 따지고 보면 먼 젊은 시절에 내디딘 발걸음으로 이루어졌다. 지금 시작의 발걸음이 세월의 연륜이 더해 미래의 현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대부분 인간은 영적 차원이 들어오는 게 대개 늙음을 통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노인은 존경받고 존중받았다. 노인은 지혜의 저장고였으며 깊이의 차원을 제공했다. 향나무 노거수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리 노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인데…. 오늘날 노인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청송군 천연기념물·도 기념물 현황은청송은 천연기념물 노거수가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안덕면 장전리 산 18 향나무 노거수, 수령 400년. 부남면 홍원리 547 개오동나무 노거수, 수령 450년. 파천면 관리 721 외 17필 왕버들 노거수, 수령 380년. 파천면 신기리 659 외 15필 느티나무 노거수. 수령 500년. 현서면 월정리 264(침류정) 향나무 노거수. 수령 350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청송읍 부곡리 왕버들은 태풍으로 쓰러져 지정이 해제됐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17

선거 결과에 유권자들 일희일비, 나무 ‘불변성’에서 교훈 얻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그 결과 야당은 크게 웃었고, 여당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법무부장관이 만든 신생 정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곧 개원될 국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게 됐다. 필부(匹夫)에 불과한 기자로선 어느 당이 국회의 패권을 장악하건 입법 권력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 첫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 유세가 진행된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이 시끌벅적했고, 목소리 높인 후보들 간의 모략과 비방, 선거운동원들 사이의 욕설과 주먹질을 보며 ‘참으로 개판이군’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자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회의하는 사람이 됐다. 이를 ‘정치 허무주의’라고 비난할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어쨌건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에게서 미래와 희망, 믿음과 화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희망과 믿음을 찾아야 할까?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자신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든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 뿐이다.”이 문장에 등장하는 ‘나무’가 정확히 어떤 상징과 은유로 사용된 것인지에 관해서는 수백 년 동안 견해가 분분했다. 아직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학의 해석에서 정답이란 없는 것이기도 하고.다만, 다른 예술 장르에선 ‘나무’가 어떤 은유와 상징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본다면 해답에 조금은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 로트레아몽이 노래한 ‘나무’는…에스파냐어를 사용한 작가 중 ‘19세기 최고의 표상주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지도르 뒤카스(1846~1870·로트레아몽)가 쓴 단 한 줄짜리 짧은 시가 있다.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나, 정작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어려운 단시(短詩).시인을 꿈꾸던 수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이런 걸 써낼 수 있어야 한다면 나는 절대 시인이 될 수 없겠구나’라는 깊이 모를 절망과 ‘기필코 나도 인간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이런 좋은 시를 쓰고야말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나무’라는 제목을 단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겸손할 줄 모르는 오만과 스스로의 능력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터무니없는 자만에 콧대만 높던 문학소년들에게 로트레아몽의 ‘나무’가 던진 충격은 컸다.하나를 알고도 열을 아는 것처럼 짐짓 목소리를 높이던 문청들을 한없는 자기반성 속으로 이끌었던 이 시는 “나무는 왜 위대한가”라는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시인을 꿈꾸던 적지 않은 이들이 살아온 시간은 혹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영화팬들에겐 두려움과 역겨움이 싫으면서도 공포영화에 집착하는 시절이 있다. 커다란 전정가위로 사람의 목을 잘라버리고, 바나나를 먹는 살찐 여자의 목에 나이프를 꽂는 미국 호러물에서부터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음습한 별장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한국의 괴기영화까지.공포영화에 대한 집착은 인간 외부에 자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목적의식 때문이었을 터. 원래 젊은 시절이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 휘둘리는 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그 공포영화들마다 나무가 등장했다. 늪지의 가장자리에 머리를 푼 원귀의 모습으로, 또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채는 은빛 여우의 울음을 울며.그렇다면 나무의 은유 중 하나인 ‘위대함’이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을 그 안에 간직함으로써 얻어진 것일까? ▲‘나무’가 상징하는 두려움과 사랑하지만,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위대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건 아니다’라는 대답을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다.오랜 기간 한국을 철권통치한 군부 출신 정치인 박정희나 전두환이 두려움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그들이 위대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길게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수천 년을 한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비바람을 견딘다는 불변의 오만함 탓일까. 나무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은유하는 대상으로도 곧잘 사용돼 왔다.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노무현 정권 초기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일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현실에서의 그 사례다.저 먼 신라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자그마치 1천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로 만든 침대에 전생(前生)에 목숨을 걸만큼 절실하게 사랑했던 여인의 혼이 들어있다는 설정(은행나무 침대)과 비록 성치 못한 몸이지만 서로의 아픔과 고통, 힘겨운 영혼까지 온전히 끌어안은 두 사람의 끈끈한 애정을 한밤에 베어지는 나무를 통해 형상화해낸 영화(오아시스).‘은행나무 침대’와 ‘오아시스’는 우리로 하여금 “나무의 위대함이란 불변하는 사랑을 은유함으로써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란 독백을 하게 만든다.그러나 이 역시 만족스런 해답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불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이후였기에. ▲희망·믿음,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것1990년대 중반.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많은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나무’에 관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선물했다.“태초에 말(言)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너는 그와는 무관하게 침묵하고 있구나. 마치 일생 말없이 물속을 헤엄치는 철갑상어처럼.”이 독백으로 시작하는 구 소련 거장의 영화는 “바람 속을 떠가는 구름의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아냈다”는 영화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주목할 만한 20세기 영화’ 중 한 편으로 기록된다.영화 ‘희생’이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믿음. 이처럼 간단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잠언이 담긴 영화 ‘희생’.그렇다. 오늘날 현실에서 정치와 정치인이 주는 실망과 환멸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희망을 믿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희생’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외경과 부활에의 믿음. 우리의 생은 바로 그런 희망과 신뢰란 벽돌로 축조돼 왔고 앞으로도 그것들로 만들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16

70층 랜드마크 타워 오르니 ‘야경천국’이 열렸다

일본 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벚꽃 계절을 맞아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대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요코하마는 도쿄도에 속해있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지만 의외로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일본 요코하마를 찾은 적이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도시의 후미진 이자카야에서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이시다 아유미라는 가수가 부른 엔카였다. “거리에 네온사인이 너무도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당신과 두 사람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나중에야 가사를 알게 됐지만 당시에도 항구의 불빛은 아름다웠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20년이 지나 요코하마를 다시 찾으니 항구는 상전벽해를 거듭했고 푸른 등이 반짝이던 항구는 영롱하기 이를 데 없는 불빛이 보태져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높은 자부심과 빼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자 최첨단과 레트로가 뒤섞인 매력적인 도시였다. ◇ 미나토미라이21 계획으로 성장한 도시요코하마는 도쿄를 자주 찾는 관광객도 의외로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도쿄 인근의 잘 알려진 관광지인 가마쿠라를 가기 전에 들르는 이들은 있어도 작정하고 요코하마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코하마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관광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요코하마를 찾은 이들은 요코하마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요코하마는 원래 1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다. 에도시대(1603~1867)만 해도 겨우 100가구가 사는 반농반어의 초라한 어촌마을이었다. 개항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렸지만 간토대지진과 미군 대공습(1945)으로 도심 절반이 파괴됐다.요코하마가 일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 고도 성장기인 1963년 취임한 아스카타 이치오 시장은 국제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도심부를 강화하는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래의 항구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뜻을 담은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가 자립해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수도권 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1.86㎢에 이르는 바다를 메우고 그 땅에 주택지를 조성했다.현재는 쇼핑몰과 미술관 공원이 들어서서 요코하마의 주요한 관광 코스가 됐다.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바라본 고층빌딩 밀집지역은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다. 환상적인 야경 스카이라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근대의 상징이 된 뉴그랜드호텔미나토미라이역 21지구의 도심 재개발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다. 붉은 창고라는 뜻의 아카렌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는 이색적인 곳이다. 아카렌가는 1911~1913년 다이쇼 시대 정부의 보세 창고로 세워진 두 동의 붉은 별돌 건물로 이뤄져 있다. 원래 이곳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항만시설이었다고 한다. 1989년 창고의 사명을 다한 후 9년 동안 역사적 건조물로서 복원공사를 거쳐 2002년 문화상업시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아카렌가 창고 1호관은 다양한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요코하마 베스트나 아카렌가 데포 등이 입점해 있다. 2층은 전시나 파티 공간, 3층은 연극과 콘서트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카렌가 창고 2호관은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과 카페, 소품전문점 등이 있고 2층은 고급 엔티크 가구점, 3층은 중국 요리 전문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서 있다. 아카렌가 창고는 밤이면 더 아름답다. 벽돌 주위로 불빛이 일제히 빛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시절의 유산은 요코하마 곳곳에 근대 서양식 건축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1927년 문을 연 뉴그랜드호텔이다. 간토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은 요코하마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벌써 9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뉴그랜드호텔은 마치 세월이 비켜간 듯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 푸른 융단에 육중해 보이는 돌계단, 마치 천장까지 이어질 듯한 높고 긴 유리창, 탁자와 의자까지 클래식하다. 심지어 90년 전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역사와 같이한 호텔이다 보니 2차대전 당시 점령군으로 일본을 통치했던 맥아더 장군은 물론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도 이곳에 묵은 적이 있다. 이 호텔 2대 총주방장이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지금도 호텔의 주메뉴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즐겨먹는 스파게티의 원조가 됐다. 1991년 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중후하고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인지 구관에 투숙객이 더 많은 것은 물론 많은 이가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 요코하마 관광의 백미 눈부신 야경요코하마 관광의 백미는 야경이다. 일본에 수많은 야경 명소가 있지만 요코하마 야경은 3대 야경이니 5대 야경이니 하는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코하마 야경은 이미 다른 야경지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요코하마 사람들은 자랑한다. 요코하마 사람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야경을 보면 놀랄 만큼 눈부시다.요코하마의 야경 포인트 중 한 곳은 7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랜드마크타워는 미국 건축가 휴 스티븐스의 설계로 1993년 지어진 296m 초고층 빌딩이다.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300m)가 건설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로 약 40초(분속 740m) 만에 69층 전망대에 오르면 요코하마의 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전망대는 오후 5시부터 야경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저마다 삼각대를 걸쳐놓고 요코하마항과 도쿄 도심까지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색의 향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자리 다툼을 벌인다. 요코하마항 풍경도 빼어나지만 후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는 낙조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매력적이다.랜드마크타워 바로 옆에는 160여 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대형 쇼핑몰인 랜드마크플라자가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일본 디자이너 편집숍이 들어서 있다. 랜드마크플라자 옆에는 로마 원형경기장처럼 생긴 도크야드가든이 이채롭다. 원래 이곳은 1896년에 선박 및 항만 관련 시설 정비용 도크로 지어진 곳이다. 선박들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조선소가 옮겨갔고, 제기능을 상실했다가 1995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야경을 찍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아카렌가 창고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항 오산바시에서 미나토미라이지구를 바라보는 풍경이다. 고층 빌딩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대관람차가 시간대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곳이 야경천국 요코하마다. /일본 요코하마=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4-04-11

한국에서 가장 키 큰 은행나무에게 ‘소원을 말해봐’

문경회(文卿會)는 퇴직한 공직자들의 친목 단체이다. 매년 봄가을에 북부권, 중부권, 남부권을 번갈아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우정과 삶을 살찌우고 있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는 날 양평 용문사와 은행나무를 찾았다.고즈넉한 산중의 사찰이야 어느 때라도 풍경을 즐기며 마음 수양하기에 좋으련만, 은행나무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노란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 제철이다. 하지만 모임 일정 관계로 봄에 용문사와 은행나무를 찾았다.녹색이 물들어 가는 용문산 용문사로 향하는 숲속 길은 계곡물 소리와 함께 마음의 땟국물을 씻어 주었다. 절의 일주문을 들어서니 극락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다.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용문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 노거수를 만난다는 것만으로 가슴 설렜다. 모두가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봄의 향연을 만끽하며 걷는 것 자체가 묵언 수행이었다. 생각은 깊은 바다와 높은 하늘을 마음껏 유영하면서 끝없는 명상에 빠져들었다. 철학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은 문학과 예술의 옷을 입혀서 아름답게 살찌우려 노력한다. 종교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는 또 무엇으로 옷을 입힐까? 깊은 신앙심의 기도로 우리는 안식을 찾으려 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는 어디일까? 열차에 태워진 몸처럼 가만히 있어도 안내되어 저절로 가는 곳, 무슨 애쓸 필요가 있을까? 애쓴다고 해서 되지도 않을 일을, 누가 가보고 온 사람도 없는 곳을, 그런데도 극락이니 천당이니 하여 가겠다고 빌고 또 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도 모자라 오늘도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이 용문사 부처님과 은행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다.걸음은 멈추어지고 묵언 수행도 끝이 났다. 연노란 잎을 단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은행나무 노거수가 우리 앞에 버티어 섰다. 놀라움에 아무 생각 없이 경배의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합장했다. 몸이 그렇게 반응했다. 딱히 소원도 없었다. 거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은 홀라당 뺏겨 버렸다. 노란 은행잎 단풍을 주어 책갈피에 넣어 때때로 펼쳐보곤 했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아름다운 연노란 은행잎 앞에 왜 지난 어린 시절의 노란 은행잎 추억이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은행나무라 하면 노란 단풍잎을 매달고 노란 은행 열매를 생각했는데, 이슬 안개에 목욕하고 나온 연노란 은행나무 잎은 고목에 핀 아름다운 꽃과 같았다. 그 녹색의 향기는 또 어떠하리, 오방색 천이 은행나무에 걸쳐져 있고, 주변에는 노란 소원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살찌우고 행복하게 하는 민속문화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와 용문사는 하나로 생각되었다. 용문사를 세우고 은행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은행나무는 용문사를 쳐다보면서 용문사의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은행나무는 용문사를 내려다보면서 용문사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은행나무가 없는 용문사를 생각하면 외롭고 삭막할 것이다.지나가는 사람들의 흘리는 말을 주워 들어보면 용문사 절보다 은행나무가 더 유명하며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다. 중국 관광객까지 나무에 매료되어 기념사진을 찍고 소원지를 매달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런 것 같다. 변화가 없는 용문사보다 사계절 변하는 은행나무가 더 친근감이 들고 마음을 끌었다.용문사 절은 649년 신라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은행나무 노거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원효와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유학 가던 중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크나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그렇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의 삶도 불행과 행복으로 갈라질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를 알면서도 그 무엇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만물의 열매는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깍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태양이 없는 밤은 모두를 같게 하고 태양이 있는 낮은 모두를 다르게 한다.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세상의 만물이며 이치이다. 생과 사라는 삶과 죽음은 하나의 이음줄에 서있는,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이 없는 평등한 물상이다. 있는 위치에서 즉 놓여 있는 곳에서 역할을 충실할 따름이다. 못하고 잘하고, 나쁘고 좋고, 필요 있고 필요 없음의 구분은 시와 때가 되면 바뀌고 변한다.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물들었다.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으려 하는데 나는 왜 내 자신이 무기력하고 나약하여 스스로 무너지려 하는지 모르겠다. 삶은 한 편의 꿈같은 것일까, 그 종말 또한 한 줌의 재로 끝난다는 것일까.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생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수컷 거미는 자신 몸의 살점을 암컷의 먹이로 주며 죽어가는데,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니 미물만도 못한 것일까. 불교에서는 죽는다는 건 동시에 다른 어떤 것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윤회설을 믿고 있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처럼 우리 또한 은행나무 아래에서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조선 시대 태종은 용문사 은행나무를 세상 모든 나무의 왕이라 했다. 세종대왕은 당상관 직첩의 벼슬을 내렸다. 불타 없어진 사천왕문을 대신한다고 천왕목(天王木)이라 불렀다.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울기도 하고 전쟁과 환란에 함께 하였다고 하여 호국목(護國木)이라 불렀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인이 정성껏 빌면 아들을 얻는다고 하여 사랑목이라 불렀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면서 민속문화 유산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1천100살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매년 350여㎏의 은행이 열린다고 하니 청춘목(靑春木)이랄까, 다산목(多産木)이라는 이름을 덧붙여도 좋겠다.은행나무에는 금기 사항이 있어 이를 어기면 천벌을 받는다는 징벌담의 설화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곳 용문사는 의병 활동 근거지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일본군이 용문사를 불태웠지만, 은행나무는 무사했다고 한다. 어떤 연유로 불에 타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천운을 타고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옛날 은행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나무에 피가 나오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 번개가 쳤기 때문에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신령스러운 은행나무 노거수인 만큼 별의별 믿기 어려운 전설이 뭉쳐서 내려오고 또 덧붙여서 내려가고 있다.우리 일행은 용문사를 빠져나왔다. 그 어디에도 우리들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우리 마음속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용문사 호국목 은행나무 노거수는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알려졌다.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됐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번지에 위치했다. 키 42m, 가슴 높이의 둘레 15.2m, 앉은 자리의 폭 28m이고, 나이는 최하 기준으로 1천100살로 안내되고 있다.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기를 이용하여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10

‘승자와 패자의 드라마’ 볼만한 정치 영화 어때요

“실정을 거듭하는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와 “야당의 부도덕한 범법자들에게 표를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2024년 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뉴스를 통해 연일 들려오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탈법과 불법 사례, 양보와 화합이 아닌 극한 대결로만 치닫는 정치권을 보고 있으면 “봄은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다”는 끌탕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정치학자들의 말처럼 ‘선거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다. 식상한 레토릭이지만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이 땅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기에 다시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일찌감치 투표를 끝낸 독자들이 있다면 오후엔 아래 추천하는 영화를 보며 한국의 정치와 선거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자연스레 현실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시민’배우 최민식이 뿜어내는 아우라(Aura)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영화 ‘명량’에서 열세에 몰린 조선 장군의 고뇌를 연기할 때도, 타자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연쇄살인범으로 변신한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크나큰 상처를 지낸 채 살아가는 지리산 호랑이 사냥꾼으로 분한 영화 ‘대호’에 출연했을 때도 그는 돌올했다.사람에 따라 평가는 갈리지만, 최민식이 ‘연기 잘하는 배우’란 걸 부정할 영화팬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의 밀착력이다. 감독과 관객이 원하는 존재로의 자연스러운 변신, 영화 속 인물로의 완벽한 몰입.“배우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최민식 정도의 변신과 몰입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온 최민식이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재선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영화가 ‘특별시민’이다.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 어느 곳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최고의 이벤트라 할 선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쇼(Show)’라는 단어가 발견될 게 분명하다.‘특별시민’은 눈앞에 닥친 선거의 승리를 위한 정치인들의 복마전과 이전투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유권자들 앞에서는 “국민 행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를 외치다가 이내 돌아서서 “나와 가족의 이익을 위하여”라며 음흉하게 웃는 정치인과 선거의 어두운 이면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특별시민’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한국의 서울시. 서울시청사는 물론,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까지 거침없이 비추는 연출자 박인제 감독의 카메라는 2024년 4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특별시민’은 상영 시간 내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쓴웃음을 짓게 한다. 거듭되는 저급한 수준의 네거티브 공세와 공작 정치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오는 선거캠프의 운동원들,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미디어 연출… 이쯤 되니 ‘특별시민’은 허구를 재료로 만든 극영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지경이다. 시종 흥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실적 연출은 ‘특별시민’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박인제가 성취한 연출의 승리다.하지만, 박 감독이 이룬 작은 승리의 배후에는 영화 속 서울시장 후보 변종구의 큰 승리가 있다.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래퍼 분장도 마다치 않고, 묘하게 조작된 동영상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선량한 정치인을 가장하는 변종구. 그러면서도 아내에게는 폭력적이고, 아랫사람에게는 권위적인 이중성을 시시때때로 드러내는 변종구….누구라 특정할 것도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변종구’를 봐왔던가. 거기서 생긴 실망감이 ‘정치(선거) 허무주의’로 이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최민식은 다중성을 지닌 자신의 극 중 캐릭터 변종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앞서 말한 능수능란한 영화적 변신과 몰입을 통해. ‘특별시민’이 최소한 ‘재밌는 영화’로는 불릴 수 있는 이유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이전의 한국 영화들과 달리 ‘특별시민’은 끝까지 선과 악에 대한 감독의 자의적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세련됨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건 영화가 주는 덤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조직폭력배에 관한 영화적 성찰 ‘레전드’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용감했던 여기자’를 꼽으라면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가 바로 그 위치를 점한 사람이란 것에 관해.레지스탕스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뿐이랴.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고, 혁명이 한창이던 멕시코에서는 총에 맞기도 했다.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두려워하던 이란의 아야툴라 호메이니,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주도해 인터뷰를 이어가던 무시무시한 여자.바로 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만난 권력의 최정점에 섰던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다.“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똑똑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았어요. 좋은 가정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상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게다가 배려와 연민에서는 아주 먼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가진 능력이라곤,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으며,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몹시 악랄한 수단도 마다치 않았다는 것이죠.”유명한 영국의 조직폭력배 형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전드’를 보면서, 왜 이탈리아 출신의 여기자 오리아나의 진술이 떠올랐는지….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기자가 젊었던 시절 ‘L.A 컨피덴셜’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치고 빠지는 능수능란한 할리우드적 전술로 자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브라이언 헬겔랜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그가 만들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레전드’와 만났다.그런데, 결론을 말하자면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출에선 힘이 빠졌고, 주연 톰 하디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캐릭터는 이전 이탈리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나, 1930년대 금주법 시대를 그린 미국 갱스터영화의 복사판이었다. 영화 ‘레전드’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얼핏얼핏 비치는 ‘깡패도 휴머니티가 있다’는 식의 짜 맞추기식 화면 구성의 동어반복도 눈 높은 갱스터영화 팬이라면 참고 봐주기 힘든 수준.‘레전드’의 꽤 긴 상영 시간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게 있다면, 1인 2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로 이를 소화한 톰 하디(레지 크레이·로니 크레이 분)의 열연 정도다.어린 시절 나치의 폭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동생 로니와 그에 비해 훨씬 이성적인 쌍둥이 형 레지의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긴 어려웠을 게 명약관화한 일. 그럼에도 톰 하디는 군계일학의 연기력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영화 ‘레전드’의 미덕을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은 결국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인간이란 걸 재치 있게 보여 준다”고.영화에서 묘사되는 런던의 고위직 경찰 간부와 영국의 상원의원은 추악하고, 위선적인 정도가 깡패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앞서 언급한 오리아나 팔라치의 진술과 유사하게.다행히 ‘우의’를 통한 에두른 세상의 비판이 ‘레전드’ 속엔 눈곱만치라도 담겼다. 이것이 난파 직전의 영화를 구하는 주요한 키워드로 역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엔딩 자막이 올라올 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답게 ‘레전드’는 형제 조직폭력배 레지 크레이와 로니 크레이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알려준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만약 ‘독설가’인 이탈이라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런 말을 ‘레전드’의 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에게 하지 않았을까.“영국이건 한국이건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여태 몰랐던 겁니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9

차가운 바람에도 얼지 않는 압록강아

◆북간도에서 서간도로, 이 험한 길을 우리는 왜폭설이 쏟아졌다. 열차는 좌석이 동났고 고속도로는 통제됐다. ‘일단 가보자’ 서간도에 가겠다는 우리의 결의는 한결같았다. 국도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동 거리가 멀고 눈도 내리고 있어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더한 어려움이 따랐다.단둥(단동)까지 약 1천500km의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이도백하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밤 8시 반쯤 단둥에 도착했다. 11시간 반 만에 도착한 단둥은 늦은 밤이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중국 단둥, 저쪽은 북한 신의주단둥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이 흐른다.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을 이루며 혜산, 중강진, 만포, 신의주와 단둥을 적시고 가만가만 서해로 흘러간다.단둥은 중국에서 가장 큰 국경도시다. 붉은 ‘단(丹)’ 동쪽 ‘동(東)’, 붉은 기운이 솟구치는 동쪽. 그러나 이 두 글자의 이름에는 중국과 북한의 긴밀한 관계가 숨어 있다. ‘홍색동방지성(红色东方之城)’, 북한을 두고 ‘혈맹으로 붉게 물든 동쪽의 도시’라는 뜻이라 하니 두 나라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 가늠이 된다.늦은 식사를 마치고 압록강 강변을 걸었다. 건물마다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윤곽을 두르고, 건물과 건물 틈마다 등(燈)을 달아 빛을 뿜게 했다. “저 다리가 압록강 단교입니다.” 양진오 교수가 강 위의 다리를 가리켰다.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다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강 건너가 평안북도 신의주입니다.” 일행은 일제히 강 너머를 바라보았다.다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연결된 듯했지만 불빛은 어느 지점에서 멈췄고, 저쪽은 어둠에 갇힌 듯 그 무엇도 가늠할 수 없었다. 강 너머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곳이 신의주라는 게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단둥의 옛 이름은 ‘안동(安東)’이다. 1965년까지 그리 불렀다. 이름이 변경된 까닭은 중국 총리 주은래가 단둥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 날 일출을 보고 아침 해가 북경보다 빨리 뜬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둥엔 조선족을 비롯해 한국인과 북한 동포가 한데 섞여 살고 있다. 어쩌면 단둥은 분단을 모르는 또 다른 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신의주 쪽에서 내일 아침 해가 뜰 겁니다. 일출을 보면 왜 ‘단둥’인지 알게 될 겁니다.” 양진오 교수가 압록강 너머 캄캄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의주, 신의주… 도대체 신의주는 어디에 있다는 거지?’ 나는 보이지 않는 도깨비 같은 도시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의주에서 떠오르는 해밤새 잠을 뒤척였다. 새벽부터 창가를 서성이다 6시 무렵 밖으로 나갔다. 간밤의 화려한 불빛은 물러나고 두꺼운 어둠이 장악한 사위는 두려움을 가져온다. 이국의 거리는 익숙하지 않아 더 그렇다. 강물에도 파도가 사는지, 강가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소리만 들린다.칼바람 속에도 집요하게 강 너머만 바라본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조금씩 형체가 드러난다. 가장 먼저 굴뚝이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공장인 듯 지붕과 지붕이 이어진다. 어둠이 물러날수록 건물의 색깔이 드러나고, 드물게 서 있는 나무의 흔들림까지 보인다.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볼에 감각이 무뎌질 무렵, 굴뚝 옆으로 붉은 기운이 깔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명 해는 신의주에서 솟는다. 단둥에서 일출을 보고 북경보다 일찍 뜬다고 했다는 주은래는 틀렸다. 붉디붉은 기운은 신의주를 먼저 깨우고, 압록강을 밝힌 후 그다음에 단둥을 비춘다. ‘저기 어디 뒷동네 용천엔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 선생의 고향 이랬지. 단둥 세관에 근무하던 시인 백석은 압록강을 숱하게 바라보며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신의주는 가난한 도시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태껏 우리가 듣고 믿었던 북한은 어디일까. 북한은 가난하고 먹을 것도 없어 굶주린 인민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는 어쩌면 세뇌되고 믿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저 연민의 마음으로 처연하게만 여겨온 마음의 의심이 풀리는 순간이다. ◆압록강 단교압록강 하류엔 일제가 1911년 대륙 침략을 위해 건설한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을 도와 전쟁에 개입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중공군이 한반도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를 끊었다. 다리는 현재 중국 쪽 절반만 남았고 북한 쪽은 교각만 덩그러니 남았다. 구실 잃은 다리는 ‘단교(断桥)’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압록강 물살을 견딘다. 다리 위 마오쩌둥 사진 옆에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卫国,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돕고 나라를 지켰다.)’고 기록해 놓았다.단교 옆엔 ‘중조우의교(中朝友谊桥)’가 있다. 중국과 북한을 잇기 위해 1943년 새로 건설했다. 944m 길이로 철길과 차선이 나란히 놓였다. 이따금 이 다리를 통해 커다란 차량이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겐 너무 생소한 모습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단교에 올라 압록강을 횡단해 본다. 칼바람이 온몸을 에워싼다. 압록강의 추위는 두만강보다 몇 곱절 더 시린 것만 같다. 다리 위를 걷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탓일까. 더는 갈 수 없는 막막함과 서운함에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지 못하기에 더 간절해진다.유람선을 타고 압록강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의 공유지역이다. 일행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북한은 지척에 있었다. 신의주 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정갈하게 자리 잡았다. 북한 장성급 별장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일러준다. 별장이라… 가까이 갈수록 건물들에서 오는 이질감은 무엇일까. 겨우 붙어있는 판자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문짝, 잔바람에도 쓰러질 것만 같은 폐가 수준의 느낌은 나 혼자만의 오해인가.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 중국과 맞닿은 황금평버스를 타고 강변을 달리다 개통을 앞둔 압록강 대교 부근에서 하차했다. 강물이 웅숭깊게 흘러가는 하구 어디쯤이었다. 양진오 교수가 강 너머를 가리키며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화도는 압록강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섬입니다. 고려 말 1388년(우왕 14) 음력 5월. 요동 정벌을 위해 우군 도통사 이성계는 압록강 하류 위화도까지 이르렀지요.” 우왕(고려 제32대)의 명을 받들어 개경에 머물던 총사령관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 최영 장군은 명나라 정벌을 위해 요동까지 정벌을 추진했지만, 이성계는 현실적인 한계가 따른다며 위화도에서 군사를 물렸다. 위화도에서 회군한 지 4년여 만인 1392년 7월, 이성계는 신진사대부의 도움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올랐고, 다음 해 2월 국호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꿨다.그리고 황금평(黃金坪)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래 ‘황초평’으로 불렸으나 김일성이 황금평으로 이름을 바꿨다. 황금평은 오랜 퇴적으로 인해 중국 영토에 맞닿아 버렸다. 그렇다면 이는 누구의 땅인가. 북한에서는 한때 장성택의 주도로 황금평과 위화도, 나선지구를 신흥 경제 지구로 개발하려 했지만, 장성택이 숙청당한 이후 사업이 흐지부지되었다는 양진오 교수의 말은 흥미로웠다. ◆의친왕 상해임시정부로의 탈출 실패한 단둥역단둥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엔 중국 인민의 추앙 대상인 마오쩌둥의 거대한 동상이 베이징을 향해 서 있다. 단둥역에서는 베이징, 상하이를 비롯해 선양, 다롄, 하얼빈까지 고속열차가 연결되어 있다.단둥역은 의친왕의 기진한 얼굴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의친왕은 황실 가족 가운데 가장 항일의식이 강했다. 3·1 만세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나고 전협과 최익환은 고종의 아들 이강(의친왕)을 상해로 망명시켜 임시정부 지도자로 추대하고자 했다. 1919년 11월 11일 중국 안동(당시는 안동현이었음)역. 경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역내로 들어왔을 때, 역사는 일본 경찰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이강의 얼굴을 알고 있던 요네야마 경부가 그에게 다가가 “전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고 이강의 상해임시정부 행은 실패하게 되었다.◆서간도의 독립투사들_‘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될 수는 없도다.’석주(石州) 이상룡 ‘강을 건너다(渡江)’ 중에서1910년 12월, 이회영(1867~1932)과 여섯 형제는 일제와 무력 항쟁을 벌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단둥으로 망명했다. 1911년 1월 경상북도 안동의 대부호이자 퇴계 학통 적통을 이어받은 유학자 이상룡(1858~1932) 선생도 노비문서를 모두 불태우고, 위패를 땅에 묻은 후 식솔 50여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선생의 나이 52세였다.조선에서는 고관대작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가 하사한 작위와 돈 잔치로 흥겨워하고 있을 때,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은 모든 재산을 청산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회영 형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1911년 4월 서간도 최초의 한인자치기관이자 독립운동 단체의 모태가 된 ‘경학사(耕學社)’를 창설했고, 이상룡 선생이 초대 사장에 추대되었다. 이들은 재산을 내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했다.1925년 이상룡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으로 추대되었고, 이듬해 김구 선생에게 물려주고 사임했다. 선생의 나이 69세였다. 이후 선생이 기운을 잃자 동생들이 환국을 간청하였으나 죽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며 거절하고 “국토가 회복되기 전에는 잠시 나를 여기에 묻어 두어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1932년 6월, 향년 75세였다.5개월 뒤인 11월, 이시영 선생마저 생을 마감했다. 만주에서 항일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 다롄으로 이동하려다가 밀정에게 발각되어 고문 끝에 옥사했다. 향년 65세였다.◆서간도에서 다시 북간도로단둥에서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한 고속열차는 시속 300km로 달렸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의 유배지였던 심양을 지나 옛 만주국 수도 장춘을 지나, 북쪽으로 갈수록 날은 저물고 눈 덮인 풍경은 하얗게 빛났다. 약 6시간 만에 연길역에 도착했다.역사란 기억하는 자의 몫이며, 걷고 쓰는 자의 몫이다. 만주·간도를 답사하며 길 위에서 만나는 새로운 것을 대할 때면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다. 이것이 답사의 목적이고 이유다.우리는 이제 대한민국으로 돌어간다. 한동안 열병처럼 앓을지도 모르겠다. 만주를 미처 다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하여 다시 와야 할 여지를 남긴다.글·사진/박시윤작가끝

2024-04-07

“고사리손도 힘 보태요” 착한 나눔도시 경산 주목

경산은 역사적으로 고대 도시인 압독국의 도읍으로,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으로 유명하다.지역에 불교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있으나 지역보다는 대구의 명물로 알려지며 지역 유명세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또 대추와 묘목 등 농산물로 이름을 알리고 10개 이상의 대학과 대학생, 부설 연구기관 등으로 교육도시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 가장 다가오는 단어는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이다.경산의 착한 나눔은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 따라 나눔의 손길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은 끊이지 않고 15명의 지역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한 가슴이 풍요로운 나눔 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사회가 우리에서 개인으로 변하고 너와 나의 구별이 명확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산시는 많은 시민들이 작은 나눔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 착한 가게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가게로 매장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가맹점, 학원, 병원 등 어떠한 업종의 가게도 참여할 수 있다.2009년 1호점이 탄생한 지역의 착한 가게는 나눔에 대한 견해가 유명 단체를 통한 국제적인 나눔 등을 선호한 까닭에 2015년까지 45호에 머무는 정체기를 겪었으나 2016년 경산시가 ‘나눔 문화 원년’을 선포하며 활성화돼 경북도 내 1위를 차지했다.이후 2020년까지 543호, 2023년까지 776호까지 증가해 착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나눔을 실천하는 착한가게 주인들은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생긴 수익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밝혀 착한 나눔 온도를 지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착한 일터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으로 2016년 4월 경산시청 직원 900여 명이 가입을 시작으로 2016년에 6개소, 2017년 55개소가 가입하는 등 현재 73개소의 착한 일터가 있지만, 퇴직 등의 영향으로 현재에는 735명이 착한 일터에 동참하며 경산지역 나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착한 일터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0억125만9천955원의 나눔을 실천했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지역의 나눔 문화 확산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경산시가 2016년부터 시작한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는 지역민과 사회의 관심을 위해 같은 해 8일 8일부터 9월 5일까지 ‘2016 경산시 기부데이 기념표어 공모전’을 개최해 ‘사랑은 행복으로, 기부는 실천으로’라는 최우수 표어를 선정해 시상하고 10월 22일 실내체육관 어귀마당에서 첫 기부데이 행사를 진행했다.이후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 개최하지 못했으나 지속적인 개최로 지역의 나눔 문화를 일깨우고 있으며 올해도 10월 26일에 개최할 예정이다.지난해 10월 21일 열린 ‘2023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는 ‘나눔이 있는 곳, 행복이 있습니다’를 주제로 열려 현장 모금 캠페인에 많은 시민이 동참해 공무원 착한 일터 모금액을 포함해 8천819만5천 원의 귀중한 손길을 모았었다. □ 아너소사이어티 15명 배출아너소사이어티는 주로 학업 상으로 뛰어난 학생이나 학계에서 유의미한 연구성과를 이룬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인 의미이나 사랑의 열매의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하였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을 말한다.즉 사회문제에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참여와 지원을 통해 더 밝은 내일을 여는 사회지도자들의 모임이다.경산지역에서 아너소사이어티의 탄생은 2014년 동원금속(주) 이은우 대표가 1호를 기록한 이후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7년 3명, 2019년 2명, 2020년 3명, 2021년과 2022년 1명씩, 2024년 1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하는 등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했지만 안타깝게도 2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클럽에서 퇴출당했다.경산지역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가입 멤버는 이은우 동원금속(주) 대표, 송병관 은석철강(주) 대표, 손동수 약사암 회주, 권호흥 권치과 원장, 박왕서 삼현이피에스 대표, 반용석 반치과 원장, 이봉희 (주)보성산업 대표, 주재동 동도농산 대표, 김용봉 (주)와이쓰리 대표, 반성명 옥산가스 대표, 프랭크 페이건 목사, 서영수 서광농장 대표, 예선혜 승원치과 대표, 김홍탁 조일산업(주) 대표, 이형주 희성산업(주) 대표 등이다.인구 30만 명 미만의 중소도시에서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했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다.□ 희망 나눔 캠페인세 개의 빨간 열매가 하나로 묶인 사랑의 열매로 대표되는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경산시민들은 적극적이다.세 개의 빨간 열매는 각각 나와 가족, 이웃을 뜻하며 열매의 빨간색은 사랑의 마음을 상징한다.그 열매를 하나로 묶은 것은 더불어 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의미다.경산시는 ‘희망 2023 나눔 캠페인’에서 11억3천만 원 목표에 13억473만1천207원을 모금해 115%를 달성했고 ‘희망 2024 나눔 캠페인’에서도 12억2천만 원의 모금목표에 14억1천만 원을 모금해 역시 115%를 달성했다.이는 희망 나눔 캠페인 모금액 중 최고액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나눔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결과다.나눔의 손길에는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아 온 유치원생들의 저금통, 시민들의 정성 어린 기부, 기관단체들의 십시일반, 시상금을 내어놓은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온정이 넘쳤다. 성금 외에도 식료품과 화장품, 생필품 등 다양한 물품이 기부됐다. 이 밖에도 경산시민의 나눔 활동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 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도 내에서 1위를 기록할 만큼 열정을 보였고 시시때때로 나눔을 실천한 소식이 전해진다.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시, 경산시백천사회복지관이 협약으로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맞춤형 서비스로 생계안정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조현일 경산시장은 “시민들이 뜨겁게 보여준 나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에 감사드리며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며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의 시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4-07

이게 라오스 나눔 정신, 새벽 ‘탁발 행렬’에 감동

2008년 루앙프라방에 취재를 왔던 뉴욕타임스 기자의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명 속에서 희미하게 행렬을 이루고 있는 탁발승들의 모습이었다.주황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사원을 따라 걸을 때 그들을 맞아주는 또 하나의 행렬,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주민들은 새벽에 정성껏 준비한 과일, 밥, 떡을 승려의 바구니에 넣었고 탁발승들은 합장으로 공양을 받았다. 그날 ‘일용할 양식’이 그릇에 차면 승려들은 다시 밥이며 쌀을 다시 주민들의 바구니에 넣어주는데, 이 밥은 주변 소수민족이나 마을 빈곤층의 식탁에 올려졌다. 주민들의 식량이 절에 올려지고, 그 쌀이 다시 기층 민중에게 내려오는 선(善)순환 구조는 이기주의, 승자독식 시스템에 익숙한 미국 기자에게 경이(驚異) 그 자체였을 것이다.장엄한 의식에 감명 받은 기자는 현장에서 특집을 써내려갔고, 이 기사 덕에 루앙프라방은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관광지’에 선정되었다. ◆ 고대부터 라오스 문명을 일군 곳 ‘제2의 수도’ 위상라오스를 ‘시간이 멈추는 곳’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의 도시’라고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루앙프라방이다.해발 700m 고도에 위치한 이 곳은 고대부터 타이족, 라오족이 문명을 일궈 온 곳. 메콩강과 남칸강이 합류해 풍요로운 대지와 용수를 제공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라오스의 ‘제2 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1353년부터 약 200년간 란싼왕국의 수도로 자리잡은 덕에 당시 왕궁과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사원의 도시’라고 부를 만큼 이들 사찰은 양, 질적인 면에서 라오스 불교문화를 대표해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이런 도시 명성과 위상에 비해 사실 루앙프라방은 인구 6만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오스 역사 1천년을 말할 때 한 왕조의 탄생지였고, 오랜 기간 라오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사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이 도시에서 두 달을 머물렀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에서의 사색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이 책엔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산책했던 작가의 관조(觀照)가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루앙프라방은 그의 베스트 여행지 10곳에 당당히 랭크되었고, 책 제목(‘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 여명 속 탁발행렬, 라오스의 나눔 정신 잘 나타나전 세계 여행객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된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관람의 그 첫 문은 수면(睡眠)을 단축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다. 오전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사원들이 물려있는 시내로 향했다.아직은 어둠이 사위(四圍)를 삼킨 이른 새벽, 관광객들과 보시(布施)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사원의 담장 밑에 늘어서 있었다.잠시 후 흐릿한 어둠 속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하루에 첫 출발을 적선(積善)으로 시작하는 보시 행렬이요, 베풂으로 새벽을 여는 나눔의 행진이었다.이런 나눔 덕에 동남아의 최빈국 라오스에서는 주민들이 기아(飢餓)를 면할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 미덕은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다.승려 중에는 소년들도 많았는데 일부는 잠에서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행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 동자승을 위해 과자, 초콜릿을 공양한다. 동심은 동심인지라 이들은 바구니 가득 과자, 사탕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바구니가 차면 마을 어린이들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미국 언론에 알려질 당시만 해도 이 보시 행렬은 종교, 제의(祭儀) 기능에 충실했지만 지금은 일종의 퍼포먼스, 관광상품 정도로 퇴색되었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이 이 체험에 참여했는데 밥, 바구니와 공양할 자리를 빌리는데 3달러를 내야 했다.이런 상업화의 비난과 관계없이 이 행진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구세군 냄비를 피해 돌아가고, 몇 천원 전화 다이얼링에도 인색한 우리에게 이 행렬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꽝시폭포 비취빛 물빛, 푸시산 노을 감상도 필수 코스루앙프라방이 라오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기능해 종교, 사상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 도시는 자연경관, 문화재 등 관광자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다.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닮았다는 꽝시폭포.밀림으로 뒤덮인 숲속에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계단식 웅덩이에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물빛은 관광객들을 동화 속 나라로 이끈다. 옥색 물빛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 앞에서면 관광객들은 그 위용과 풍경에 압도돼 버린다.일정에 쫓긴 한국인들은 한두 시간 투어로 끝내지만 서양인들은 수영복, 튜브, 간식까지 가져와 반나절씩 머물고 간다.라오맥주(Lao Beer)를 마시며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푸시산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푸시산은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어 교통의 기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총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탓에 여성, 노약자, 어르신들은 힘들 수 있지만 대신 노역에 대한 대가는 확실히 보장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를 때 커피와 이곳 특산물인 라오맥주를 가져가는데 이는 석양을 감상할 때 ‘조미료’로 쓰기 위해서다.일행이 도착할 무렵 이미 정상에는 관광객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바쁜 일정 관계로 일몰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했지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자체로 풍경이 되었다.메콩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저녁이 왔음을 알린다. 노을 사이로 선착장에 한무리 배낭 여행자들이 내린다. 그 배엔 다시 일정을 모두 마친 여행객들로 채워지며 관광객들이 교차한다.선착장에도 낮과 밤의 자리가 바뀌었다. 루앙프라방의 밤은 아주 천천히 찾아온다. 그 게으른 밤에 의지해 우리도 잠을 청한다.5일 일정이 모두 끝났고, 우리에게 주어진 70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문득 스치는 한가지 의문.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데 이 ‘시간의 역설’은 왜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더 낮추지 못하고, 더 내려 놓지 못해서였을까. 우리가 느낀 이 시간 지체(遲滯)는 라오스가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였다./글·사진 =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끝

2024-04-04

고목 붉은 줄기선 용기를, 푸른 솔가지선 희망을 보았다

700년이나 살아온 소나무에서 비상하는 청룡과 똬리를 튼 붉은 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의 모습에서 힘찬 기운과 안식의 편안함을 느꼈다.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에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고목의 붉은 나무줄기에서 용기와 바람에 손짓하는 푸른 솔가지에서 희망을 보았다.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다. 세월의 모진 풍파에 굴하지 않고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고귀한 품격을 다듬고 빛을 발하는 노거수를 보면서 내 늙음의 후줄근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밝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일신우일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도 노거수를 찾아다니면서 늘 힘을 얻고 새로운 무엇인가 지혜를 터득하고 배운다.청룡과 함께 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 동거하는 모습은 황홀경 그 자체이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꿈에서만 볼 법한 괴이하고 신비한 모습이다. 용과 뱀이 동거하다니, 그야말로 상상의 세계에 온 느낌이다. 용은 신비한 조화능력이 있어 수많은 신화와 설화, 전설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용은 비구름을 몰고 다니고 천둥 번개 등 날씨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요술도 함께 지니고 있다. 반대로 뱀은 실제의 동물이면서도 불구하고 인류 문화 발전에 가장 오래된 의식에 관여해 왔다. 지혜와 의술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남을 해치려는 사악함, 욕심 등 나쁜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뱀은 지느러미와 다리, 날개도 없으면서 산, 들, 사막, 바다, 강 등 어느 곳이든 용케도 살아가는 지혜로움과 무섭고 사악한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 용과 뱀은 우리 민속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상상의 용과 현실의 뱀이 동거하는 모습은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에 있는 부귀와 장수, 상록을 상징하는 700년이 훌쩍 넘은 석송령에서 볼 수 있었다.키 11m, 가슴높이 둘레가 4.2m, 나무 폭이 동서 34m, 남북 22m, 앉은 면적은 1,000m²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 노거수였다. 주민들은 노령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나무 지팡이를 무려 79개를 선물하고 편한 팔걸이 돌기둥 5개를 설치하여 주었다. 그 신비함과 그 영험함을 알리기 위하여 제단을 설치하고 금줄을 쳐 놓았다. 또한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책 울타리를 설치하여 자물쇠를 채워 철통같은 방비를 해 놓았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이면 제단에 제물을 놓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마을 주민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어 용과 뱀이 동거하는 것을 외부 사람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범인의 일상이고 보면 뭐 그리 나무랄 일도 아니다 싶었다.늘 푸른 솔잎 속에는 밑둥치에서 몸을 뒤틀면서 솟아올린 아름드리 줄기에는 거북등처럼 육각형의 껍질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밑둥치에서 뒤틀면서 힘차게 불끈 솟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은 바로 힘의 원천이며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려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문어발처럼 다섯 개의 팔은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려는 청룡이었다. 그 모습은 웅대하다 못해 미래를 향한 무한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 속 심장의 고동이 요동치면서 나를 흥분하게 했다. 느지막한 황혼에 이런 뿌듯하고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까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갑진년 청룡의 해에 사라져가는 불꽃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눈을 대신했다. 붉은 근육질의 몸에 청룡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슬그머니 위로 고개를 돌렸다. 청룡의 몸에 붉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놀라움에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얽히고설킨 뱀의 똬리는 그 누구도 떼어놓지 못할 것 같았다. 한두 마리가 아닌 가족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징그럽고 사악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지혜로움의 상징물로 다가왔다. 황혼에도 끝없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우애와 평화, 지혜로움을 달라고 빌었다. 인간 태생이 욕심 덩어리인 것을 뻔히 알면서, 이 또한 욕심이 아닐지 의심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청룡의 품에 뱀의 똬리는 큰 사각형 모양의 연리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수백 년이라는 세월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희귀한 연리지였다. 신비함에 나도 모르게 경배의 기도를 드렸다. 도저히 혼자 보고 넘길 수 없었다. 함께 간 H 교수를 불렀다. 그도 석송령의 아름다움에 빠져 여기저기로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석송령의 신비한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바빴다. 와서 보더니 감탄해 마지않았다. 카메라에 오롯이 잘 담아 사진전에 출품해 보라면서 소나무 연리지에 대한 유래를 들려주었다. 그 뜻을 알고는 더욱 신통하다면서 놀라워했다. 똬리를 튼 붉은 뱀을 품은 펼쳐진 푸른 잔솔가지 사이로 드나드는 빛의 음양과 바람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흩날리는 솔향은 혈액을 타고 더덕더덕 붙은 몸속 땟물을 말끔히 씻어내고 솔잎은 바람의 빗자루가 되어 허공을 향해 설렁설렁 비질하니 빗살 끝에 닿은 하늘은 더욱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몸도 마음도 맑은 하늘도 모두 하나의 자연이 되었다.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수습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석송령의 자식 둘이 어머니 곁을 지키며 건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2세의 자식은 번식과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1996년 9월 28일 종자를 받아 1997년 3월 24일 싹을 틔웠다. 그리고 1998년 4월 3일 예천읍 생천리 실증 시험 포장에 옮겨 키운 후 2002년 10월 19일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했다.나이 27세가 되도록 아직 이름이 없다니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지, 어미의 모습을 딴 용과 뱀을 의미하는 뜻을 가진 이름은 어떨까. 아무튼 어머니처럼 재산을 증식할 줄도 알고 수굿하게 마을 사람살이에 끼어들어 흔쾌히 모은 재산을 내놓는 훌륭한 목품(木品)으로 자라야 할 텐데.석송령 앞에는 거대한 바윗돌에 노래비를 세워놓았다. 나무에 대한 시비는 본 적이 있어도 나무에 대한 찬양의 노래비는 처음 보았다. 석송령의 아름다운 푸른 자태를 칭송한 노래였다. 한 몸이 된 청룡과 붉은 뱀의 모습은 보지 못했는지, 청룡의 영험함과 붉은 뱀의 지혜를 칭송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험함과 지혜를 노래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청룡과 붉은 뱀이 한 몸이 된 석송령의 기이하고 신비한 아름다운 모습은 세월이 빚어놓은 생명이 깃든 진품·명품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석송령 노래비는…송문헌이 작곡하고 석만수가 작사한 석송령 노래는 2021년 8월 노래비로 만들어졌다. 아래는 석송령 노래비에 새겨진 가사다.천년세월 돌고 돌아 석관천을 들어서니 칠 백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푸른 솔 아름다운 절경이로다. 바람 따라 뭉게구름 휘감고 춤을 춘다 아~한평생 욕심 없이 옷 한 벌로 사는구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가던 길을 멈추네.천년세월 돌고 돌아 식관천을 들어서니 칠 백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오는 님 반가웁게 맞이하면서 가는 님 다시 오라 말없이 손짓하네 아~푸른 솔 가지마다 새들 노래 즐겁구나. 오고 가는 나그네가 가던 길을 멈추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4-03

고요하고 아름다운… 한낮의 바다 향연

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미국의 젊은 시인 T.S.엘리엇(1888~1965)은 유럽으로 건너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쓴다.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추위를 피해 멀리 떠났던 새들이 웃으며 돌아오는 빛나고 환한 4월을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몇몇 문학평론가는 그걸 세상과 인간을 비극과 한탄 속으로 빠뜨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을 떠올리며 쓴 문장이라 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왜 엘리엇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혼잣말을 웅얼거렸는지.한 세기를 넘어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징 가득한 문장을 쓴 작가는 이미 죽었으므로 그에게 “4월이 잔인한 이유가 뭔가”라고 물을 수도 없다. 망자(亡者)에겐 입이 없으므로.엘리엇이 연분홍빛 봄이 완연한 4월을 잔인하다고 말한 시대를 지난 이후에도 적지 않은 작가들이 봄과 4월에 관한 문장을 썼다. 봄꽃, 봄날의 하늘, 봄 바다…. 소재는 저마다 다양했다.여름 휴가철의 바다는 사람들로 득실댄다. 거기엔 사유(思惟)의 시간이 개입하기 어렵다. 골똘한 생각이란 외로움 속에서 잉태되는 것이기에.겨울의 바다는 그 차가움과 막막한 단절감 탓에 사고(思考)의 뿌리가 뻗어가기 쉽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칠포 바닷가에서 떠올린 백일몽 같은 졸시인간의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는 ‘봄 바다’가 으뜸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백일몽(白日夢)’이란 환한 대낮에 꾸는 꿈이다. 또한, 이뤄질 수 없는 열망의 은유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세속도시의 4월이 너무 갑갑해 지난 월요일 오후 버스를 타고 백일몽을 불러다줄 봄 바다를 찾아 나섰다.시내에서 겨우 40분 남짓 달렸을 뿐인데, 포항 흥해읍 칠포해수욕장은 마치 세상과 아주 멀리 떨어진 피안(彼岸)인 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다.말을 섞을 사람이 없었으므로 홀로 오랫동안 해변을 거닐었다. 보채는 파도 소리가 요요했고, 소나무 사이로 따스한 바람이 술렁이고 있었다.젊은 시절 쓴 ‘백일몽’ 같은 졸시(拙詩) ‘출생의 비밀’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이런 노래다.범선으로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아버지는 목덜미에 나비를 문신한 인도계 아프리카인.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나 해변으로 밀려온 혹등고래를 치료해준 엄마는 마드리드 뱃사람과 아르헨티나 원주민의 피가 섞인 붉은 얼굴의 메스티소였다.바나나를 따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를 오가던 아버지는 초록빛 빙산을 타고 보라보라섬 사촌언니를 찾아온 엄마를 에메랄드빛 산호초가 꺼이꺼이 우는 타히티 북부 갈대숲에서 만났다. 1871년 봄이었다.엄마는 망고스틴 여섯 개를 건네는 아버지의 흙 묻은 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달콤하게 핥았다. 둘이 몸을 섞은 얕은 바다에선 일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맹그로브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웅얼거렸다. 원주민들은 뜨지 않는 달을 기다렸다.여섯 달 후. 아버지는 조각된 여신상을 실은 목선을 타고 바그다드로 떠났다. 움직이는 섬에 오른 엄마 역시 북서쪽으로 흘러갔다. 외눈박이 숙부가 야자유 일곱 병을 들고 나와 배웅했다. 동아시아 낯선 항구에 도착한 엄마는 백년 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나는 1971년 부산에서 첫울음을 터트렸다. □ 봄 바다의 일몰은 삶과 죽음 떠올리게 해기자가 동해 칠포해수욕장에서 한낮의 봄 바다가 선물해준 백일몽 닮은 열망에 들떴다면, 또 다른 어느 봄날 시인 문정희는 서쪽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보며 ‘산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에 관한 사색을 이어갔던 듯하다. ‘바다 앞에서’라는 시다.문득, 미열처럼 흐르는바람을 따라가서서해바다그 서럽고 아픈 일몰을 보았네한 생애잠시 타오르던불꽃은 스러지고주소도 모른 채떠날 채비를 하듯조용히 옷을 벗는 해안선을 보았네아, 자연당신께 드리는 나의 선물은소슬히 잊는 일뿐더운 호흡으로 밀려오던눈과 파도와비늘 같은 욕망을잊는 일뿐이었네잊는다는 일 하나만보석으로 닦고 있다떠나는 날몸과 함께 땅에 묻는 일이었네.돌아보면 사람의 삶과 죽음이란 ‘잠시 타오르던/불꽃은 스러지고/주소도 모른 채/떠날 채비를 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시인이 서해에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보며 간파해낸 인생의 진실을 여러 차례 곱씹어 행간의 의미를 고민해볼까?그러면, 허위허위 살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의 생애 자체가 ‘백일몽’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 한낱 헛된 꿈같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선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은 들뜬 열망 같은 삶. 대낮에 꾸는 잡스런 꿈을 닮은 생애.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살아가는 행위 자체를 ‘헛되고 헛될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가벼이 말할 수는 없는 법.오세영 시인이 쓴 ‘바닷가에서’는 이 부박한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지향해야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바닷가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평안이 거기 있다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바닷가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마침내 밝히는 여명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충족이 거기 있다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바닷가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의지가 거기 있다.노시인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과 만난 봄 바다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삶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2

북간도에 나린 시(詩) 시(詩) 시(詩)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중략)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윤동주, ‘별헤는 밤’ 중에서-◆청년문사 송몽규, 시인 윤동주, 두 청년을 애도하며밤새 창을 두드리며 울다간 바람 소리에 잠을 설쳤다. 꼭 만나야 할 인연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떠나지 못했다. 희붐한 아침, 일행을 태운 버스는 둔덕을 조심스레 오르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혼을, 주검을 운구하는 영여(靈輿)와 상여(喪輿)처럼, 느린 버스 안에서 모두는 침묵했다.길림성 용정시가 내려다보이는 허청리촌(合成利村) 둥산(東山), 나직한 둔덕엔 겨우내 바싹 마른 옥수수 잎사귀만 바람에 바스락대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길잡이 양진오 교수가 버스를 세워 본능처럼 무덤이 즐비한 기슭으로 걸어간다. 잠시 후 “이쪽입니다.” 손짓하는 양진오 교수의 목소리가 높고 밝다. 수많은 무덤 중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작은 무덤이었다. 여러 개의 비석이 먼저 눈에 띈다. ‘詩人尹東柱之墓[시인 윤동주지묘]’, 낮은 봉분엔 떼가 잘 자라지 않아 한기마저 느껴진다. 울타리와 비석이 없었다면 우리는 분명 지나쳤을 것이다. ◆시인윤동주지묘(詩人尹東柱之墓), 청년문사 송몽규지묘(靑年文士宋夢奎之墓) 앞에서일본 유학 당시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나라를 걱정했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던 몽규였다. 그런 것도 모르고 둘은 진심으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고 무엇이 나라를 위하는 것인지 의논했다. 경찰에 체포된 몽규와 동주는 정식 기소되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이 이유였지만, 죄명은 독립운동이었다. 몽규와 동주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다. 故 윤동주 영정. 매달 집으로 배달되던 동주의 소식이 끊기고, 애태우던 가족에게 동주가 사망했다는 한 통의 전보가 전해진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동주의 시신을 인수하러 일본으로 갔다. 동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3월 6일, 집 앞 뜰에서 장례를 치르고 용정 동산공원에 묻혔다. 눈보라가 몹시 몰아치는 추운 날이었다. 다음 날인 3월 7일 새벽, 같은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몽규마저 세상을 떠났다.몽규의 시신은 명동 장재촌 뒷산에 안장되었다. 아버지 송창의는 아들의 무덤에 ‘靑年文士宋夢奎之墓[청년문사송몽규지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유수 같은 세월이 흘렀다. 많은 무덤이 그렇듯 사람의 발길도 뜸해지고 기억마저 희미해져 갔다. 동주의 무덤도, 몽규의 무덤도 그랬다.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인, 오오무라 마스오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인 1985년, 동주의 무덤을 찾아 달라는 유족의 부탁을 받고 일본 와세다대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북간도로 향했다. 그는 북간도의 묘지를 떠돌다 윤동주의 묘비와 무덤을 확인했다. 그는 윤동주의 무덤이 용정에 있다는 것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마스오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광명중학 학적부,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의 학적부 등 동주의 행적을 찾아 정리하는 등 윤동주 연구에 몰입했다. 그는 한국인보다 동주를 사랑한 일본인 학자였다. ◆죽어서도 나란히 북간도 하늘을 우러러동주의 묘역에서 10m 떨어진 곳에 몽규의 묘가 있다. 동주는 용정 동산공원에, 몽규는 명동 장재촌 뒷산에 묻혀있었다. 1990년 연변의 유지들이 몽규의 무덤을 동주의 묘소 바로 옆으로 이장하면서 둘의 무덤도 나란해졌다.마른 풀 서걱대는 소리가 동주의, 몽규의 마지막 절규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비석이 여러 개 세워진 동주의 묘에 비하면 몽규의 묘는 부친이 세웠다는 묘비 하나가 전부다. 떼가 잘 자라지 못해 춥게 느껴진다. 무덤 앞엔 누구의 정성인지 그의 시 ‘밤’을 기록한 작은 액자가 놓여있다. 우리는 무덤 앞에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묵념 후 경건하게 그의 시를 낭독한다.고요히 침전된 어둠/ 만지울듯 무거웁고/ 밤은 바다보다 깊구나/ 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 험한 산길을 걷고/ 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멀-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송몽규, 밤(夜), 1938년 9월, 조선일보낭독하는 이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한 다발의 국화를 놓고 술을 올리니 눈시울이 젖는다. 바다보다 깊은 밤을 홀로 헤아렸을 몽규를 떠올리며 감히, 어떤 추모도 할 수가 없다. 일제의 폭압과 나라 잃은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서부터 독립운동의 뜻을 품었던 몽규였다. 10대 때, 낙양군관학교에 입학해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공근에게 군사훈련을 배운 그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된 후에도 몽규의 반일은 꺾이지 않았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식, 교장으로 부임한 친일파 윤치호가 부상으로 준 일본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책자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등 반일 의식이 뿌리 깊게 박힌 조선의 청년 몽규였다. 故 송몽규 영정 ◆현해탄을 건너간 몽규와 동주몽규와 동주는 일본 유학을 떠나는 과정에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몽규는 宋村夢奎[송촌몽규] ‘소오우라 무게이’로, 동주는 平沼東柱[평소동주] ‘히라누마 도오쥬우’가 되어야 했다.몽규는 일본제국 경찰의 요시찰 명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들이 몽규의 하숙집을 밀착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결국 고희욱, 윤동주, 송몽규는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고희욱은 며칠 뒤 풀려났지만, 몽규와 동주는 규슈 북서쪽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고 1년 후인 1945년 2월 16일에 동주가, 3월 7일에 몽규가 사망했다.◆몽규와 동주, 영원히 살아 있는 명동촌-명동학교 옛 터 기념관1899년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은 두만강을 건넜다. 간도는 주인 없는 땅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1889년 윤동주의 외삼촌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규암(圭巖) 김약연(金躍淵 : 1868-1942) 선생 외 문치정·남위언·김하규, 김학연 등도 일제의 폭정을 피해 집안을 이끌고 ‘비둘기 바위’라는 뜻을 지닌 북간도 ‘부걸라재(鵓鴿磖子)’로 이주했다. 그리고 ‘동방, 곧 한반도를 밝히는 곳’이라는 뜻의 ‘명동촌(明東村)’으로 이름을 붙였다.이들은 나라를 되찾는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고 여겼다. 1901년 김약연 선생은 장재촌에 ‘규암재(圭岩齋)’를 세웠고, 남위언은 상중영촌에 ‘오룡재(五龍齋)’를, 김하규는 대룡동에 ‘소암재(素岩齋)’를 지어 학문을 가르쳤다. 1908년 여러 서재를 합하여 명동서숙을 설립하고 명동서숙은 명동학교로, 명동학교는 명동중학으로 발전했다.-송몽규, 윤동주 생가윤동주 생가는 1900년 경, 조부인 윤하현 선생이 지었다. 기와를 얹은 영락없는 조선 전통 가옥이다. 몽규의 어머니가 몸을 풀기 위해 친정인 동주의 집으로 왔다. 몽규는 1917년 9월 28일, 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명동촌 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둘은 고종 사촌지간으로 어려서부터 함께 한 형제이자 친구였다.윤동주 생가는 우리가 명동촌에 오는 동안에도 관람이 불투명했다. 중국에서 ‘중국애국시인’으로 둔갑시킨 후 개방까지 불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명동촌에 도착하기 직전, 현지 가이드로부터 윤동주 생가를 개방해 주겠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명동학교기념관 앞마당을 지나니 걸음이 빨라진다. 몽규가 살던 ‘송몽규옛집’은 문이 굳게 잠겨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조금 더 골목을 따라가니 길 끝에 웅장하게 치장된 돌비석이 나타난다. ‘중국조선족 애족시인 윤동주생가’. 낮은 산 아래 넓은 마당에 발을 들이니 고요가 밀려온다. 곳곳에 놓인 크고 작은 시비들이 발소리마저 숨죽이게 한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잔잔하고 새들은 정다웠으나 소란하지 않았다. 한옥 마루에 앉으니 겨울임에도 봄처럼 따스한 햇살이 들어 눈이 부시다. 동주는 오늘 같은 날에도 분명 시를 썼을 것이다.제한된 시간이 못내 아쉬워 돌아보고 만져보고, 또 기대어 본다. 바람과 햇살과 구름이 한데 어우러져 참으로 귀한 날이다. 학사모를 쓴 윤동주와 서시를 새긴 시비 앞에서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영원한 청년 윤동주를 마주한다. 귀한 사람, 아까운 사람. 이렇게라도 만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우리는 감사하자고 했다. ◆용정(竜井), 생명의 물 길어 올리던 용두레 우물해란강은 하얗게 얼었고, 언 사이로 얼지 않은 물이 흐른다. 비옥한 땅이 펼쳐진 가운데 용정시가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전체 인구의 70%가 조선족인 용정시 한복판에 ‘거룡우호공원(巨龍友好公園)’이 있다. 경남 거제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이곳에는 특별한 우물이 있다.용두레 우물이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건너온 선조들이 우물을 발견하고 용두레를 달아 물을 길어 썼다. 사람들이 우물 근처에 모여 살면서 용두레촌으로 불리다가 ‘용정촌’이 되었다. 용두레 우물은 비록 작은 우물에 불과하지만, 조선족들에겐 생명의 근원이자 뿌리가 된 거대한 우물이었다.용정시를 벗어나 평강벌 길 위 어디쯤에서 일송정을 보았다. 먼발치에서 가곡 ‘선구자’를 읊조리는데 울컥 슬픔이 치민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일제는 일송정을 지키던 한 그루 소나무마저도 껍질을 벗기고 도려내어 잔혹하게 말려 죽였다. 그리고 정자마저 파괴했다.해가 저물 무렵의 무지근한 우울 때문인가. 아니면 심연 깊은 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 때문인가. 평강벌을 굽이굽이 흐르는 해란강을 따라 달리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오직 조국의 독립만 염원하며 이 땅을 개척했을 선조들께 뭉클한 고마움이 인다.우리는 해란강처럼 소리 없이 유유히 용정을 벗어난다.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글·사진/박시윤작가

2024-03-31

‘새롭게 아름답게’ 대한민국 대표 도자기축제 온다

2024년 대한민국 명예문화관광축제인 문경찻사발축제가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문경찻사발, 새롭게 아름답게’라는 새로운 주제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개최된다.이번 문경찻사발축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도자기축제로서 자리잡은 전통찻사발의 확립된 정체성에서 더 나아가 생활자기의 대중화를 목표로 새롭고 다양한 도자기 라인업과 전시·체험행사, 특별행사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신현국 문경시장은 “전통의 가치관을 지키면서도 다변화된 도자기 수요에 맞게 생활자기 라인업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찻사발축제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신 시장은 이어 “신속한 축제장 이용을 위한 전용차선 셔틀버스 운영 시스템을 확립하고 축제 구성원 모두 친절하게 축제를 준비해 더욱 많은 관람객이 축제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또 오고 싶은 축제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알찬 개막식과 실속있는 폐막식문경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축제 첫날의 개막식은 문경시 홍보대사인 박서진과 박군, 주미와 더불어 조명섭, 영기가 출연해 흥겨운 공연을 통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축제 마지막 날 폐막식에는 통일메아리악단과 하랑(구 초코파이브), 윤윤서양이 출연해 축제를 마무리하는 무대를 꾸민다.특히, 올해부터는 야외공연장에 대형 비가림시설이 설치돼 우천에서도 안전하고 쾌적한 관람이 가능해 졌다. 관광들은 날씨 걱정 없이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 생활자기 라인업 확대지난해부터 시작된 생활자기의 대중화 시도에 따라 이번 축제에도 다양한 가격대의 찻사발과 도자기를 요장에서 판매한다.특히, 올해는 요장별 개성있는 커피사발을 도입해 축제 기간 중 한정 물량을 판매하고 행사 프로그램에서 경품으로도 제공된다.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과 함께하는 커피사발을 활용한 커피이벤트도 축제기간 중 새롭게 도입해 매년 계속 키워나갈 계획이다.□ 국제교류전과 특별 전시관축제 대표 전시 컨텐츠로 루마니아와 중국 이싱시의 도예작가와 우리시 무형문화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부스테이너 특별전시관이 문경새재 1관문 앞에 설치된다.이번 국제교류전에는 김선식 축제추진위원장과 해외 도예 시연행사로 연을 맺은 루마니아의 최고 명망있는 다니엘 레스 작가가 참여해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직접 관람객 앞에서 시연하는 시간도 갖는다.문경시와 해외 자매결연 지자체인 중국 이싱시에서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전시회에 참석해 두 도시의 우애를 쌓고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다.문경시를 대표하는 무형 문화재 특별전에는 백산 김정옥, 묵심 이학천, 문산 김영식, 미산 김선식 등 우리나라 도자기 장인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 대형LED와 일원화된 광화문 무대이번 축제의 눈길을 끄는 점으로 오픈세트장 내 광화문의 대형LED 설치와 광화문 무대의 일원화가 주목된다.800인치의 대형LED에는 모든 축제영상과 프로그램 소개가 진행되고 망댕이 가마 역시 화려한 영상으로 구현해 웅장한 매력을 표현할 계획이다.또한, 기존 광화문 무대와 저잣거리 무대의 이원화된 무대를 확장된 광화문 무대로 일원화하고 저잣거리쪽은 체험과 먹거리로 구성해 세트장을 구역별로 구분해 세트장 구석구석을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더 커진 광화문 무대에서는 발물레경진대회, 다화경연대회, 읍·면·동 시민의 날 등 축제의 메인이벤트가 진행된다.공간이 비어있는 저잣거리쪽으로는 식당용 돔부스를 설치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축제먹거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설 투자로 식당가를 구상한다.□ 진화된 특별체험행사특별체험행사로 기존의 ‘사기장의 하루’에서 진화된 ‘슬기로운 도예생활’이 메인 체험행사로 구성된다.정해진 시간 동안 직접 사기장의 제자가 돼 도예 체험을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된다. 단순히 시연을 지켜보는 프로그램에서 직접 작가들과 함께하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화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그 밖에 ‘찻사발 빚기’와 ‘찻사발그림그리기’, ‘다례체험’, ‘디저트 아트전시’, ‘풍선공연’ 등 가족·연인들이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지난해 처음 도입돼 찻잔 구입권과 축제 내 체험, 경품추첨권, 관내 관광지 할인까지 묶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시도였다는 평을 받았던 원픽패스권은 올해 개장한 문경새재 어드벤처파크까지 추가돼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찻사발축제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구입시 원래 가격(2만원)에서 할인된 가격(1만5천원)으로 구입할 수 있으며, 선물과 단체 구입도 가능해 사전판매로 축제를 홍보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된다. □ 찻사발축제 부대프로그램 ‘한복패션쇼’축제의 다양한 부대행사 차원에 지난해 처음 도입됐던 ‘한복패션쇼’는 축제기간 중 시내가 공동화된다는 의견에 따라 점촌 문화의거리로 위치를 옮겨 열린다.30여명의 한복 모델들의 패션쇼와 거리행진이 이어진다. 사전행사로 명인의 줄타기와 북소리 퍼포먼스, 도예작가들의 발물레 시연도 함께 진행된다. 향후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해 이와 같은 축제 장소 확대 외에도 관내에서 다양한 부대행사를 기획해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