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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과 지조’ 선비 닮은 나무 곁에 두고 쉼에서도 배움 찾아

등록일 2025-02-19 18:07 게재일 2025-02-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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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청송 월정리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침류정과 오월헌. 향나무, 회화나무.
침류정과 오월헌. 향나무, 회화나무.

청송 월정리 침류정에 올라서니 주변의 다채로운 경관이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나지막한 산자락 끝, 하천에 발을 담근 경사진 언덕에 석축을 쌓아서 그 난간 위에 전망대와 같은 누각을 올려놓았다.

나뭇가지 새들의 노랫소리, 맑은 물 흐르는 하천, 주렁주렁 달린 빨간 사과는 나의 귀와 눈을 사로잡고 침샘을 돋게 했다. 도로변 따라 뿌리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옹기종기 모인 농촌 마을은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다닐 뿐 조용히 낮의 끝자락 아니 밤의 시작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서녘 하늘 붉은 노을에 포물선을 그리며 서산으로 달려온 붉은 태양이 산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고즈넉한 농촌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나 또한 풍경 속 자연의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회광반조에 눈시울을 붉힌다.

여름에도 이곳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아래에서 힐링을 한 적이 있다. 그 여름의 열기와 열정, 풍성한 에너지는 누구에게 돌려주었는지, 텅 빈 침류정 나뭇가지들이 갈바람에 이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늘 또다시 침류정 난간에 기대어 옛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면서 또 다른 정취와 감흥에 빠져 들었다.

 

조선시대 학문·사색·문화생활 즐기기 위해 만든 별서와 서당

주변에 사시사철 푸른 향나무·선비수 불리는 회화나무 심어

단순 조경역할 넘어 학문적 영감·유교적 이상 실현 중요 배경

허물어져 가는 옛 공간, 예술창작의 거점으로 재탄생 했으면

청송 월정리 침류정은 하천 건너 낮은 언덕 좌측으로부터 침류정(枕流亭), 오월헌(梧月軒), 동와정(東窩亭)에는 향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가 살아가고 있다. 오월현 서당 앞뜰에는 도 기념물로 지정된 나이 350살, 키는 10m, 몸 둘레는 4m 50cm인 우람한 향나무와 동와정 서당 앞뜰에 100년을 훌쩍 넘긴 향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있다.

그리고 침류정 누각 주변에는 나이 200살, 키 15m, 몸 둘레는 3m 40cm이나 되는 회화나무 네 그루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 노거수는 침류정을 지은 김성진의 제자들이 심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주변의 노거수는 조경수로써 침류정과 서당의 품격을 높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문과 충효 정신을 길러주었을 것이다.

침류정과 오월헌, 동와정은 조선시대의 별서이며 서당이다. 별서는 본가와는 별도로 마련된 집이나 정원으로 휴식과 사색,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단순히 생활 공간을 넘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심미적 가치관이 반영된 독특한 건축물과 정원이다.

오늘날 아름다운 경관이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정자나 전망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산기슭, 강변 등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에 터를 잡고 침류정을 짓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곳에 의성김씨 김성진의 월정리 문중은 서당을 세워서 젊은이를 독서와 시문을 짓고 학문을 탐구했다. 그러한 덕분에 학문과 소양을 겸비한 의성김씨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침류정 향나무는 경관을 꾸미는 요소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향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유지하여 청렴함과 불변의 의지를 상징한다. 유생과 선비는 향나무의 삶과 마주하면서 자신도 향나무의 상징처럼 청렴하고 강직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침류정 향나무는 경관을 꾸미는 요소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침류정 향나무는 경관을 꾸미는 요소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향나무는 제사와 같은 의식에서 향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조상 숭배와 경건함을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유학 사상과 맞물려 은연중에 마음에 새기고 몸에 배었을 것이다. 회화나무 또한 예로부터 선비 나무라 하여 유교적 학문과 관계가 깊으며, 문묘에 회화나무를 심는 전통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나무들은 단순한 조경의 역할을 넘어 학문적 영감과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러한 것을 유도하기 위하여 향나무와 회화나무를 선택하여 조경수로 심었지 않았나 싶다. ‘침류정기(枕流亭記)’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곳의 풍광 속에서 왜 흐르는 물만을 취하여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잔에 넘치는 물이 천리를 흘러가며 무궁한 이로움을 준다. 작은 집이 잔에 넘치는 물의 근원과 같다. 오래 갈수록 더욱 많아지고, 멀리 갈수록 더욱 빛날 것이다. 흐름을 이어가고 맑음을 유지하는 것이 침류(枕流)의 교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침류정
침류정

낮이면 태양은 정열을 불태우고, 밤이면 달과 별은 전설을 노래한다. 태양이 어둠을 살라먹고 동쪽 하늘에 솟아올라 서쪽 하늘 아래로 숨어들면서 그 어둠을 토해낸다. 밝음으로써 가까운 주변의 사물이 보이고 어둠으로써 먼 하늘의 별들이 보인다. 밝으면 보이고 어두우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어불성설인 것 같다. 낮의 시작은 새벽이요, 그 끝은 저녁이다. 그러나 밤의 시작은 저녁이요, 그 끝은 새벽이다. 서로를 물고 이어주면서 낮과 밤, 밝음과 어둠이 하나가 되어 하루를 이룬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하루의 시작은 새벽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렇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자기만의 생각이 옳다고 우기고 주장하며 편을 가르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산기슭 강변에 자리 잡은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노거수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특별한 경관을 창출하여 학생들에게는 학문과 예술의 전당 역할을 했다. 이는 산림 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선비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문학적 소재로 삼았다. 이는 자연을 노래하는 산림 문학의 시작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산림 문학은 자연을 중심으로 한 문학으로,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철학적, 유교적 사유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는 예술과 문학의 소재이며 학생에게는 배움의 교재이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시대 별서와 서당은 그 역할의 꼭짓점을 찍고 퇴색된 지도 오래되었다.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별서와 서당을 힐링과 문학, 예술의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는 드리워지고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노거수는 반짝이는 별들의 노랫소리에 잠이 들면서 옛 영광의 꿈을 꾼다.

동와정
동와정

청송 월정리 침류정, 오월헌, 동와정은…

침류정(枕流亭)은 경북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264번지에 있는 정자다.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6호로 지정됐다. 조선 중기 학자인 김성진(1558∼1634)이 후배 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김성진(金聲振)은 학식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후학을 위해 문집 목판각을 만들고 책을 인쇄해 널리 보급했다. 임진왜란(1592) 뒤인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진은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김한경(金漢卿)의 증손으로 임진왜란 때 동생들을 창의케하고 자신은 노모를 피난시켰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오월헌(梧月軒)은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뜻하며 김성진(金聲振)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오른쪽 방은 강학재(講學齋)이고 왼쪽 방은 돈의재(敦誼齋)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앙에 놓고, 그 좌우에 각각 온돌방 1칸을 배치했다.

동와정(東窩亭)은 조선 선조 때 통정대부장악원정(通政大夫掌樂院正)을 지낸 김흥서(金興瑞)가 후학을 가르치며 말년을 보낸 정자다. 동와(東窩)란 동쪽에 있는 움집이란 뜻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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