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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풍파 속 잎 틔우며 열매 맺는 모습 부모의 삶과 닮아

등록일 2025-05-28 19:44 게재일 2025-05-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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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경북 경주 옥산리 독락당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 노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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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강읍 옥산리 옥산서원 숲을 거닐다가 만난 독락당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 노거수.

초록으로 나날이 물들어가는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들어 있다. 어린이날이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아이들을 공원의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용돈도 드렸다. 이는 소소한 일이지만,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도리를 행한 것이고, 자식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아닐까, 역시 마땅한 도리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부모님은 하늘로 떠나 먼 추억으로 남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일들이 바로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어버이날이면 성장한 자식들이 멀리 있어 직접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리진 못하지만, 용돈만은 꼬박꼬박 보내 주어 기쁘게 한다. 속이 텅텅 비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희생을 감내한 부모의 은혜를 자식은 효도로 보답하고 있다. 이처럼 부모의 자식 사랑이나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효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간 삶의 진리이고 행복의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회재 이언적 선생 제사 받드는 별서

‘독락당’에 자리잡은 500살 노거수

韓·中 교류 등 역사문화 가치 뛰어나

천연기념물 제115호 지정 보호 받아

밑동 줄기가 텅 빌만큼의 상처에도 

아름답게 가지 뻗은 모습 대견스러워

조각자나무 노거수 또한 그러한 것 같아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여름의 끝자락에 아내와 함께 경주 안강읍 옥산리 옥산서원 숲을 거닐다가 독락당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 노거수 앞에 멈춰 섰다. 천연기념물이라는 품격의 자연유산에 걸맞지 않게 노거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밑동 줄기의 속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텅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속이 꽉 찬 튼튼한 나무였을 터인데,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진 에너지를 비바람의 외세에 맞서고 꽃과 열매를 맺어 후손을 이어가느라 소진했을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자국도 없이 조용히 속을 비운 채 푸른 가지들을 높이 올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에게 웃음과 사랑, 삶의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은 분들, 웃음과 사랑을 다 주고도 정작 본인의 속은 그렇게 비워졌다는 걸 나 또한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부모님도 그러셨다. 말없이 견디고, 꺾이지 않고, 우리를 푸르게 키워내셨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북편 600m 거리에 있는 별서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 거처한 건물이라고 전해진다.

 

옥산리 1600-1번지 건물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된 나이 500살, 키 14.5m, 몸 둘레 4.9m의 조각자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우나 밑부분과 두 개의 가지만 살아 있고 속은 비어 있었다. 텅 빈 속을 깨끗이 외과 수술하여 튼튼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였다. 

 

조선 중종 1532년, 회재 이언적 선생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교류 관계와 독락당의 역사를 알려주는 문화적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다.

 

나는 이처럼 속이 텅 빈 노거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끈질긴 생태적 삶의 모습에서 꼭 우리 부모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각자나무로부터 그 오래됨과 아름다움을 넘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조각자나무는 살아오면서 비바람과 곤충으로 인해 속이 썩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며 열매를 맺어 후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상처를 받고 때로는 속이 무너질 듯한 고통을 겪지만, 그 모든 흔적을 품은 채 여전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시 웃으며 사랑하고, 새로운 열매를 맺으려 한다. 나무는 마치 상처를 품은 채 더 넓게 가지를 뻗는 사람과 닮았다. 삶의 아픔이 단지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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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현 상태.

조각자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가시가 굵고 억세며, 주엽나무와 잎, 가시, 열매 등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어렵다. 주엽나무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반면, 조각자나무는 중국 중남부 지방이 원산지이다. 꽃은 5∼6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서 피며, 작은 꽃들이 모여 있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약재로 사용된다. 

 

열매에는 사포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비누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줄기 겉면에는 이끼가 무성했는데, 이는 습하고 그늘진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의 특성을 보여준다. 줄기의 속은 텅 비었지만, 잎은 풍성하고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도 많이 달려 있었다. 나뭇잎이나 열매를 문지르면 강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도덕산과 어래산에 떨어지는 빗물이 모여 옥산천이라는 계곡을 이루어 흐르면서 곳곳에 아름다운 경관과 유명한 사적지를 품고 있다. 독락당과 접하고 있는 계곡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등 다양한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그 옛날, 계곡의 아름다운 명소를 옥산구곡이라 명명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특히 옥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계곡 가운데 자리한 너럭바위 일대, 세심대(洗心臺)는 작은 폭포와 용소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주변 산과 계곡에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며, 그중 하나가 세심대이다. 세심대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이며,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사산은 도덕산, 화개산, 무학산, 자옥산이고, 오대는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으며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조각자나무 노거수는 사람과 다름없다. 5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온 생명체이다. 독락당이 세워질 무렵부터 오늘날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조선의 학자들이 이곳에서 글을 읽을 때도, 후손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락당의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쉼과 사색을 제공하는 안락한 품속이 되었다. 바람이 불 때면 조각자나무의 잎사귀가 속삭인다. 그 소리는 독락당의 오래된 기와 아래에서 들리는 옛 학자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독락당을 오가며 입구에 세워진 경청재(敬淸齋)와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에 관한 안내판을 읽으며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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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재와 화의문약설을 알리는 표지판.

경청재, 화의문약설, 옥산구곡…

경청재(敬淸齋)는 회재 이언적 선생 손자 두 형제가 독락당을 보존키 위하여 화의문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으로 선생은 청백리에 가자되었다. 청백은 공경지심에서 나온다 하여 후손들이 본 집을 경청재라 이름하였다.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의 내용은 독락당은 회재 선생의 별서이고, 이외 유택에는 우리 부모님의 혈설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을 수호하기 위하여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를 출현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한다는 것이다.

 

옥산구곡(玉山九曲)은 회재 사후에 하계 이가순이 회재 은거지에 구곡 원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옥산천을 따라 아홉 곳을 선정하고 명명하였다. 옥산천(옥산구곡)은 회재의 시(詩)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의 창작 공간이며 옥산서원길에는 3곡∼7곡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옥산천을 오르며 굽이굽이 존재하는 회재의 자취를 유람할 수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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