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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명과 문화 흔적이 곳곳에 자리한 애증의 ‘시마네현’

등록일 2025-02-26 19:56 게재일 2025-02-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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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경모회의 일본여행탐방
일본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이즈모타이샤의 시메나와. 두께 3m, 길이 8m, 무게 1500㎏이나 된다. 시메나와는 신성 장소의 표지이며 우리나라 금줄처럼 액운을 쫓는다고 한다.

지난 2월 22일,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다케시마의 날 20주년 행사를 야단스럽게 치른 일본 시마네현 마츠에시. 20년 전 2005년, 시마네현이 어이없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경북도와 자매관계를 맺으며 돈독한 우의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고대 국가 신라와 신화를 공유하고 신라의 문명과 문화를 받은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되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선덕여왕경모회가 폭설 속 일본여행탐방을 다녀왔다. 시마네현에서 한일 간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재우고 깨닫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선덕여왕경모회가 기획하고 회원 15명이 함께한 일본 속 신라 흔적을 찾은 여행기를 본지에 보내왔다.

신라시대 바위배를 타고 일본으로가

왕과 왕비가 된 ‘연오랑세오녀’ 설화

日 ‘일본서기’ ‘고사기’에 비슷한 신화가

오키군 어촌마을에 있는 ‘한신신라신사’

한국신사서 이름 바뀐 ‘히노마사키신궁’

그것을 안 재일동포 ‘韓國神社’ 새로 지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日 현장

‘다케시마자료실’ 자리하고 있어 ‘눈살’

선덕여왕경모회 회원들. 미즈키시게루 로드에는 만화 속 주인공 캐릭터가 돌아다닌다.
선덕여왕경모회 회원들. 미즈키시게루 로드에는 만화 속 주인공 캐릭터가 돌아다닌다.

□ 선덕여왕의 즉위와 일본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 632년~647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진평왕(재위 579년~632년)은 적장자인 아들은 없지만 대신 명민한 딸 덕만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이를 위한 다양한 명분과 사례를 수집했다. 성골 남성이 없다는 명분만큼이나 좋은 또 하나의 사례를 일본에서 찾았다. 진평왕은 일본과의 교류가 빈번해 사신을 보내기도 하고 불상과 까치를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는 최초의 여성천황인 스이코 천황(재위 592~628년)이 있었다. 진평왕은 이를 참고하여 덕만공주의 왕위 계승을 진행했으리라는 학계의 주장이 있다. 여자도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이 축적되고 이를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 즉위했다. 신라가 현재의 일본 문화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보고자 일본으로 향한 선덕여왕경모회는 일본여행의 명분을 또 하나 획득했다.

□ 연오랑세오녀 설화와 스사노오노미코토 신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년)에 포항 바닷가에 살던 부부가 바위배를 타고 차례로 일본으로 간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있다. 이들은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으나 신라에서는 빛이 사라졌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오라고 했으나 하늘이 시킨 운명이라며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 빛을 찾았다는, 우리나라 유일의 일월신화다.

일본에도 비슷한 신화가 있다. 일본 신화의 주인공인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신라에 가서 살다가 흙배를 타고 동해를 건너, 이즈모국(出雲國)에 도착했다는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기록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연오랑세오녀’가 단순히 설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포항의 옛 소국이었던 근오기국의 지배층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 신라는 동해를 통해 일찍부터 일본과 무역교역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신라는 일본에 제철, 직조, 농사기술을 전파하였고, 과거 신라인들은 일본 문명의 개척자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타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최초의 이민사일 수도 있다. 성(姓)이 ‘비단짜다(錦織)’이니 세오녀의 후손임에 틀림없다는 니시코리 아키라(錦織明) 선생님은 그 몇 대 손일까?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시메나와(注連繩·신사에서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는 금줄의 일종)를 가진 이즈모타이샤는 800만이 넘는 일본 신들의 신사라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전국의 신들이 이곳에 모여 한 달간 회의를 한다며, 신들이 머무는 호텔이 있다고 했다. 과연 본전으로 들어가기 전 동서편으로 방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15년 전, 이즈모타이샤 마츠리에서 목도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신사 부근 바닷가에서 신라의 연오랑을 신으로 맞이하는 것으로 마츠리가 시작됨을 보고 느낀 뿌듯함에 다시 전율한다.

히노미사키진쟈 한켠에 있는 한국신사 현판.
히노미사키진쟈 한켠에 있는 한국신사 현판.

□ 일본 속의 신라신사, 한국신사

시마네현에는 연오랑세오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신사가 여럿 있다. 오키군의 작은 어촌마을에 있는 가라카미시라기진쟈(한신신라신사·韓神新羅神社)는 이름부터 대놓고 신라(新羅)다. 도리이에 새겨진 ‘신라(新羅)’를 발견하는 순간 가슴이 웅장해졌다. 신사엔 스사노오노미코토 신화를 그린 액자가 있어 한신(韓神)인 연오랑과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동일시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히노마사키신궁(出雲日御碕大神宮)은 매우 아름다운 주홍빛 신사다. 떡갈나무 잎의 문장을 쓰는 이 신사는 일본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동생 스사노오노미코토와 그의 아들 이소다케루노미코토를 제사하고 있다. 이즈모풍토기에 의하면 이 신사는 원래 한국신사였다고 한다. 이름이 바뀌어 없어진 것을 안 재일동포 김호수씨가 1996년 7월, 신사 본당 오른쪽 산면에 조그마한 신사 가라쿠니진쟈(韓國神社)를 새로 지어 올렸다. 우리 일행은 본당엔 일별도 주지 않고 먼저 찾은 이 한국신사에서 절절한 마음의 참배를 올렸다.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가슴 뭉클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과거 어느 땐가는 일본에 선진문명과 고급문화를 전파한 우리나라였고, 이를 역사나 이야기로 전승해오면서 신격화하는 일본인의 신앙처를 가까이 들여다 본 심사는 복잡미묘했다. 신화를 공유하며 가까운 이웃 나라였던 두 나라가 가깝지만 먼 나라가 된 작금의 한일 관계를 곱씹게 된다.

□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일본의 현장

마쓰에성 옆엔 시마네현청이 있고, 그 옆 옛 시마네현청 건물에 다케시마자료실(竹島資料室)이 있다. 작은 네거리 한켠엔 독도 사진을 박아두고 ‘다케시마는 시마네의 보물 우리 땅’이라고 커다랗게 쓴 현판도 있다. 그 아래 글씨를 읽으니 더욱 기가 찼다. “다케시마는 남도, 여도 등 2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0.20km이다.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섬에 속하지만, 오늘날 반세기 동안 한국에 불법 점거되어 있다. 시마네현에서는 다케시마의 영토권의 조기 확립을 향한 조사 연구, 홍보 계발 활동에 임하고 있다.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부탁한다. - 시마네현·시마네의회, 다케시마·북방영토 반환 요구 운동 시마네현민회의 -” 우리 일행이 간 날은 2월 18일이었는데, 2월 22일이 다케시마의 날이라 극우 세력이 많으니 자료실 방문을 자제하라는 지인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자료실 입구 표지판 앞에서 사진만 찍으며 우리 모두 속으로 외쳤다. “독도는 우리 땅!!”

□ 일본 소설가 아베 고보의 문학 현장, 돗토리 사구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은 일본에서도 동해에 접한 현이다. 두 현을 합해서 인구수가 110만 명 정도로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그러나 한때 고대국가의 중심지였으며 신들의 땅, 신화의 땅이라 불릴 정도로 고대도시의 면모를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앞서의 신사들이 시마네현에 있었다면 돗토리현에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자연경관이 있다. 3만년의 세월이 만든 일본 최대의 모래언덕, 사구(砂丘)가 바닷가에 바싹 면해 있다. 바람결이 만들어낸 모래무늬가 시시각각 달라 자연이 창조한 예술로 찬탄할 정도라 했다. 우리 선덕여왕경모회에서는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라 칭송받는 소설가 아베 코보(安部公房, 1924~1993)가 이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쓴 ‘모래의 여자’를 모두 사서 읽었다. 아베 코보를 전공한 이정희 위덕대 교수의 추천 덕이었다. 때문에 세 시간의 폭설을 뚫고 간 눈 쌓인 모래언덕에 발을 묻으며 우리들은 모두 모래의 여자가 살던 집을 찾기도 했다. 눈 오다 바람 불고, 또 잠시 해가 비치는 순간 순간, 억겁의 세월과 바람이 만든 모래언덕을 기어오르고 내려오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만끽했다.

한국신사를 김호수씨가 재건했다는 기록이 신사 뒤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신사를 김호수씨가 재건했다는 기록이 신사 뒤에 기록되어 있다.

□ 가장 일본다운 정원 아다치미술관

아다치미술관은 이즈모 출신 사업가 아다치 젠코(足立全康, 1899~1990)가 1970년에 세운 일본 근대화 컬렉션으로 일본화, 도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더 유명하다. 미국의 일본정원전문 잡지에서 여러 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잘 가꿔진 정원이 사계절 아름답다. 특히 겨울 정원이 볼거리라 했는데, 마침 눈 오는 날의 정원은 매혹적인 그림 그 자체였다. 액자같은 통창으로 감상한 정갈하기 이를데 없는 정원은 그 자체가 치유였다. 넋놓고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근심 다 날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만화가 거리에서 경주가 벤치마킹할 것은?

돗토리현의 작은 항구 시카이미나토시에는 일본 요괴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1922~2015)의 만화에 등장하는 요괴 백 수십 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미즈키시게루 로드라 이름 붙였다. 작은 도로 양편으로 세워진 동상들마다 기증자나 기증단체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지역민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거리임에 더욱 부럽고 감탄스럽다. 이 길이 만들어지자 쇠락해진 소도시가 관광도시로 재탄생했다고 하니 문득 경주 출신의 만화가 이현세가 떠올랐다. 한때 우리나라 만화계를 풍미했던 이현세를 기리는 무언가가 경주에는 왜 없을까. /이정옥 선덕여왕경모회장(위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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