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침체, 지역경제 흔들다 <1> 포항의 현실을 직시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강경 관세 정책이 재개되면서 한국 철강산업의 심장인 포항이 정면 충격을 받고 있다. 철강 일변도의 산업 구조에 글로벌 무역 질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진 포항 경제의 ‘시계’가 멈춰가고 있다. 이번 특집은 경북매일신문과 철강전문지 스틸데일리가 공동으로 철강산업의 심장, 포항의 현재를 진단하고 희망과 미래를 조망해보기 위해 3회에 걸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1편 ‘포항의 현실을 직시하다’에서는 철강 침체가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2편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기업과 정책을 조명한다. 마지막 3편 ‘희망과 비전을 말하다’에서는 지역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포항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전한다. <편집자 주>
1970년대 발전 이끈 ‘산업의 쌀’
美 관세·中 경쟁 등 외부에 ‘취약’
포항 산단, 10년 새 12.8% ‘생산 ↓’
지역 유일 ‘석유화학’만 성장 기록
산업침체 따른 인구감소 변화 심화
철강 외 산업 육성·구조 전환 필요
△10년 역성장···‘철강 중심’의 구조적 취약성 노출
1970년대 고도성장기, ‘산업의 쌀’이라 불린 철강을 공급하며 한국 제조업을 이끌어온 포항은 지난 10년간 생산·고용·수출 모든 분야에서 역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올해 들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보다 더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시행하면서 타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번 관세 조치는 특정 품목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철강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포항 지역 기업들은 수출 단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내 판매마저 저가 중국산 철강재 공세로 잠식되고 있어 ‘내수·수출 이중 압박’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조강 생산량은 2014년 1640만t에서 2024년 1339만6000t으로 18.3% 감소했다. 연평균 감소율 -1.8%다. 설비 노후화와 재해(2022년 태풍 힌남노),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 등 구조적 요인에 더해, 중국산 제품의 글로벌 시장 잠식이 생산 위축을 가속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산업 경쟁력의 체질적 약화를 시사한다.
△산업단지 전반 침체···유일한 예외 ‘석유화학’
포항철강산업단지 총생산액은 같은 기간 17조590억원에서 14조8810억원으로 12.8% 감소했다. 1차금속(-10.5%), 조립금속(-24.4%), 비철금속(-40.3%), 기타업종(-27.5%) 모두 줄었고, 석유화학만 45.2% 늘었다. 하지만 석유화학의 규모는 전체 산업단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회복 모멘텀을 만들기엔 역부족이다.
이 같은 업종별 편차는 포항 산업구조가 특정 품목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신호다. 1차금속의 부진이 곧바로 전체 생산 감소로 이어지는 ‘원-포인트 취약성’이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를 방치할 경우, 향후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무역 규제 강화 시 포항 경제가 더욱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출 부진···시장 점유율 하락 가속
산업단지 수출액은 2014년 43억9900만달러에서 2024년 33억5000만달러로 23.8% 감소했다. 주력 품목인 1차금속이 24.8%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석유화학 수출은 같은 기간 97% 늘었지만 절대규모가 작아 전체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포항시 전체 수출액 역시 114억2100만달러에서 92억3300만달러로 19.2% 줄었다. 반면 수입은 4.1% 증가에 그쳤다. 이는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와 글로벌 수요 둔화가 동시에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철강제품의 대체재가 늘고,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포항산 철강재의 가격·품질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고용·소비 위축···인구 구조 악화
산업 침체는 곧바로 지역 고용·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포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14년 1만2057건에서 2024년 7350건으로 연평균 4.4% 감소했다. 내수 기반이 약화하면서 지역 상권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지역내 내수 기반이 취약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관광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다소 이를 보완 내지는 완충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포항 도심지의 핫플레이스로 초기에 관심이 컸던 포항운하 방문객수는 2014년 연간 43만1459명이 방문했었으나 2024년에는 89.1%가 감소한 7만7958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포항운하크루즈의 탑승객수 역시 2014년 13만5052명이었으나 10년이 지나는 동안 55.9%가 줄어든 5만9596명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역 관광산업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이를 통한 여타 관광유관산업으로 시너지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인구 감소세는 뚜렷하다. 2014년 52만4276명이던 포항 인구는 2024년 49만9352명으로 2만4924명 줄었다. 내국인 인구는 2만7787명 감소했고, 외국인 인구가 2863명 증가해 일부 감소폭을 상쇄했다.
지역별로 보면, 남구는 10년간 2만5704명이 줄었고 북구는 780명 늘었다. 북구의 경우 인구 변동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남구를 포함한 동지역 등에서 그동안 흥해읍과 장량동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분양이 이루어지면서 지역내 인구이동이 일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구의 경우에도 흥해·장량동 등 신규 주거지 개발로 해당 지역 인구는 늘어났지만 중앙동, 죽도동, 용흥동과 같은 도심의 ‘동’ 지역은 모두 인구가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결과적으로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이나 중앙상가와 같은 도심 상권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실제 부동산통계정보(R-One)에 따르면 포항 중앙동의 2024년 3분기 집합상가 공실률은 32.45%에서 올해 2분기 39.08%로, 소규모상가도 같은 기간 16.32%에서 18.95%로 심각한 상태로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남구의 인구 유출은 철강산업 위축에 따른 타지역 전출이 주된 원인으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한 인구통계 변화가 아니라 지역 소비·교육·의료 인프라 전반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철강만으론 생존 불가···산업 다변화 시급”
전문가들은 포항이 철강 의존도를 줄이고 2차전지 소재, 고부가 기계부품 등 신성장 산업으로 수출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 다변화 과정에서 기존 철강 생태계와의 연계, 인력 재교육, 투자 유치 등 상당한 과제가 뒤따른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장기 로드맵과 재정·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다.
인구 유출 억제와 생활 인프라 확충, 고급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층 정착 유도도 병행돼야 한다. 산업과 도시 구조를 동시에 개편하지 않으면, 철강산업 회복만으로는 포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경고다.
포항은 지금, 철강산업 재도약과 신성장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이를 놓친다면 포항의 미래 성장곡선은 다시 반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음화에서는 이러한 포항경제의 현실 진단을 기반으로 지역내 각 경제주체가 어떠한 방향으로 새로운 미래 포항 경제를 가꾸어 나갈 것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