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경제에디터
세계 어느 도시든 흥망성쇠의 과정은 피할 수 없다. 차이는 위기 앞에서 어떤 경제 주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극복에 나섰는가에 있다. 이 선택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지금 포항은 대표적인 철강도시라는 정체성 속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에도 포항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미국 피츠버그를 찾아갔고, 도시간 자매결연까지 맺었다. 그러나 우리는 피츠버그의 성공이라는 겉모습만 보았을 뿐, 그 속살은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피츠버그 르네상스’의 과정을 살펴, 포항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피츠버그 르네상스는 정확히 말하면, 전면적인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이었지 산업구조 전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도시개발은 두 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는 1945~1969년 약 20년 동안의 도심 재개발, 2단계는 10년의 휴지기를 거쳐 1977~1988년 이어진 확장 사업이었다. 연구자들은 주로 2단계에 주목하지만, 실질적 기반은 1단계에서 마련됐다.
출발점에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세계 대공황 이후 철강산업이 쇠퇴했고, 교통난과 심각한 매연 공해가 도시를 짓눌렀다. 과세 대상 자산 평가액은 1936년 12억 달러에서 1947년 9.6억 달러로 급락했다. 이때 지방정부와 민간 모두 “단독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민관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흐름 속에서 카네기공과대학(현 카네기멜론대) 총장 로버트 도허티가 나섰다. 그의 제안으로 앨러게니 지역개발 회의(ACCD)가 출범했다. 지역 핵심 단체와 지방정부, 상공회의소, 은행, 개발업자, 대학이 모두 참여했고, ACCD는 비전 수립부터 사업 집행까지 전권을 부여받았다. 포항에도 이를 의식한 AP포럼이 출범했지만 그 형태와 운용은 전혀 다르고 그저 포항내의 주요 기관장들의 친목모임 정도에 머무르고있는 실정이다.
또한 ACCD주도하에 ‘피츠버그 패키지’로 불린 일괄 법률안을 통해 제도적 장애물을 사전에 걷어냈다. 매연 규제, 폐기물 처리, 구역 계획, 주차장 공사, 교통위원회 설치, 공원·레크리에이션 행정국 신설, 도로 조기 착공, 조세 기반 확대 등 도시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뤘다. 지방의회는 준비된 10개 법안 중 8개를 통과시켜 재개발 환경을 보장했다.
그 결과, 피츠버그는 환경 개선, 주차난 해소, 재정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20년간 이어진 민관 협력의 성과가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 성공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읽을 수 있다. 첫째, 모든 주체가 같은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둘째, 도시의 종합 문제를 아우르는 청사진과 이를 실행할 공동체제(ACCD)가 필요하다. 셋째, 행정과 입법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포항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산업 구조 조정이 아니다. 환경, 교통, 주거, 교육, 문화까지 얽힌 복합 과제다. 피츠버그처럼 지역 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지방정부와 의회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구조 없이는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교훈은 분명하다. 도시의 미래는 위기 속 연대와 실행력에서 비롯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