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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반도체’ 돌김 양식장, 포항 영일만이 최적지죠

한상갑기자
등록일 2025-02-16 19:44 게재일 2025-02-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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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김 양식 산업’ 후보지는?
포항은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서 보듯 1800년 역사를 간직한 김 재배, 채취지역으로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경북 동해안에 돌김 양식장이 들어선다면 영일만 지역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포항 영일만 항공사진.  /포항시 제공
포항은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서 보듯 1800년 역사를 간직한 김 재배, 채취지역으로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경북 동해안에 돌김 양식장이 들어선다면 영일만 지역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포항 영일만 항공사진. /포항시 제공

‘블랙 페이퍼’ ‘블랙 칩’ ‘바다의 반도체’….

김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들이 부쩍 많아졌다. 해조류의 일종인 김이 식품을 넘어 하나의 경제 가치, 문화코드로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다.

해양 문화권에서 언제나 채취가 가능했던 김은 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했으며 원시, 고대부터 인류의 식탁을 지켜왔다.

김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延烏<90CE>細烏女) 편. 사서(史書)는 김 출현의 공간적 배경을 경북도, 그것도 포항(영일)으로 지목하고 있다. ‘검은 반도체’ 김이 고대부터 경북 동해안에서 채취, 유통되었다는 증거다.

얼마 전 경북도가 돌김 양식 기술을 개발해 동해안 김 생산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도가 경북 동해안 주민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해조류 양식, 가공을 위해 지자체가 나섰다는 사실보다 1800년 동안 경북민들의 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해양식품 DNA를 깨웠다는 사실일 것이다.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설화엔 김 채취·일본으로 전래 등 기록 전해

지난해 김 수출 1조원 돌파… 정부·지자체들 대규모 김 산업 육성 나서

2027년까지 국내 김 수출 10억 달러 목표… 글로벌 시장·연구역량 강화

경북도, 5억 투자 동해안에 적합한 맞춤형 종(種) 배양 시스템개발 추진

잔잔한 파도·깨끗한 수질 등 최적환경 갖춰… 동해안 김 생산시대 활짝

자연재해·품질관리 자유롭고 스마트농법 활용가능한 육상 양식도 주목

◆ ‘연오랑세오녀’ 편에 김 최초 등장

앞서 언급했듯 김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편. 사서에는 ‘연오(延烏)가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던 중 갑자기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곳 사람이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학자들은 이 설화를 신라, 경주 세력에 밀린 동해안 근기국(勤耆國) 유민들이 일본으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김과 관련해 두 가지 점에서 이 설화를 주목한다.

첫째는 동해안에서 서기 157년 당시에 이미 해조(海藻, 김·미역)를 채취했다는 점이다.

1800여년 전 포항에서 이미 김을 식용화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김 채취와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료다. 또 일본에서 바로 왕으로 추앙될 정도 힘을 가진 동해안 지배층이 직접 김 수확에 나섰을 정도면, 이것은 단순 채집을 넘어 국가적으로 장려되었거나, 상업적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연오가 일본으로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 해산물들이 무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시적 상업, 유통 단계까지는 진행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포항과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은 최단거리로 연결되는데 해류와 계절풍 등 조건만 충족되면 쉽게 왕래가 가능해 이 같은 가설에 힘을 실어 준다.

정리해보면 2세기 이미 동해안 포항에서는 김이 생산 되고 있었고, 초보적 수준의 해외유통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포항에서 돌김 생산, 양식 기록

고대에 해조류를 매개로 이어진 한일 양국의 인연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나타난다. 이번엔 암해태(巖海苔) 즉, 돌김의 생산과 관련된 자료로서다.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경북도 포항, 영일지역에 돌김 생산과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난다. 1933년부터 1934년까지 대략 10여 회 이상 보도 내용이 보인다.

△‘지방비를 보조해 경북 포항의 암해태(돌김) 생산을 장려 한다’(1933년 6월 18일) △‘암해태 양식 최적지 조사를 통해 포항이 어촌 부업지로 유망하다’(1933년 7월 23일) △ ‘연 생산 5만원을 목표로 돌김 대증산에 나서자’(1933년 8월 29일) △ ‘포항 지역 3곳에 연 생산 10만원 돌김 개량밭을 만들자’(1933년 12월 10일)는 보도 등이다.

본사 경제에디터 김진홍 기자가 쓴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에 보면 더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이 책 276쪽엔 ‘일제는 1923년부터 돌김 양식을 시도했는데 품질이 우수한 결과를 낳았다. 이에 총독부에서는 보조금을 주고 장려했다. 바위에 시멘트를 도포(塗布)하여 양식을 도모한 결과 지금은 어촌 부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경북도 산업과에서는 10개년 계획으로 각 어업 조합에 3600원씩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나타난다.

김진홍 에디터는 ‘일제는 1920년대부터 포항에서 피조개, 대합조개 양식을 시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시작한 돌김 생산에서 큰 성과를 보이자 포항, 울릉도, 영해, 축산, 강구, 영덕, 구룡포, 감포, 청하 등 어업조합에 보조금을 주어 돌김 양식을 장려했다’고 강조했다.

◆김 산업 선점을 위한 자치단체의 노력

작년 우리나라 김 수출은 1조원(7억 8000만 달러)을 기록하며 본격 K-푸드의 출발을 알렸다. 지난 10년 동안 10배 넘게 성장하며 코리아 슈퍼푸드의 대표 격인 라면 수출액을 앞질렀다고 한다.

‘바다의 로또’로 성장한 김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정부나 지자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김 수출 1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김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김산업 규모화, 스마트화로 가공, 유통 효율성 제고 △K-김 브랜드 가치 향상을 통한 시장 확대 △거버넌스 구축 및 연구 역량 강화 등 사업을 추진한다.

경북도도 5억원을 투입해 동해안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대량 생산 기술이 완비되면 대기업 가공공장 유치 등 본격적인 김 산업 육성에 나설 계획이다.

인천시도 정부 ‘육상(陸上) 김양식 기술 개발 사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김양식 산업 육성에 나섰다. 이 사업에 선정되면 인천시는 향후 5년간 총 350원의 국비를 확보하게 돼 종자 생산, 양식 설비 구축에 나서게 된다.

2023년 김산업 전문기관으로 선정된 목포수산식품지원센터도 올해 안으로 대양산단에 전국 최초로 ‘마른 김 거래소’를 건립한다. 목포시는 이런 인프라를 기반으로 내년도에 ‘김산업 특구’ 지정을 추진하고 ‘김 박람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육상(陸上) 김 양식 시설 모습.  /제주테크노파크 제공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육상(陸上) 김 양식 시설 모습.  /제주테크노파크 제공

◆돌김 양식 최고 후보지는 포항 영일만

해양수산부와 경북도가 김 양식과 관련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그 후보 지역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김진홍 에디터는 동해안 김양식 후보지로 영일만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 동해안 지역은 파도가 강해 엽체(葉體)의 바위, 콘크리트 구조물 활착이 어려운데 비해 영일만 지역은 육지로 깊숙이 들어간 덕에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또 동해의 수온이 김양식에 적합한 10-15도를 유지해 해태의 생육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김 에디터는 영일만 지역 중에서도 남쪽 방향인 도구해수욕장 근처를 주목하고 있다. 신항만 쪽에서 내려온 파도가 에너지를 잃고 잔잔한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동해안 청정구역 입지를 바탕으로 수질 악화나 해수 영양 면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고수온, 수질오염, 중금속 오염, 황백화 현상에서 자유로운 ‘육상 김양식법’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해상 김 양식이 태풍 등 자연재해, 해양오염에 취약한 데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한계 등 많은 핸디캡 때문에 사양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수온과 광량(光量), 품종, 해수 영향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육상 양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김 육상 양식은 자연 재해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품질 관리가 쉽고 국제 식품 위생 기준에도 맞는 대안”이라고 말하고 “아파트식 대량 양식장에 ICT, AI 등 스마트 농법을 적용해 인력, 인건비 문제에서도 자유롭다”고 강조했다.

◆철강, 이차전지 잇는 포항 산업화 동력으로

포항시는 고대부터 해초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을 간직하며 김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중일전쟁 준비로 여념이 없던 일제가 동해안의 각 지역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김 양식을 지원했던 사실도 독특하다.

이런 역사적 서사(敍事)와 김과 관련된 역사, 전통을 바탕으로 포항시도 정부, 경북도의 김 산업 정책 공모에 나서고 있다.

이런 시도와 도전이 결실을 거둔다면 포항시는 철강, 이차전지, 수소산업만큼은 아니지만 ‘블랙 반도체’라는 또 하나의 산업화 동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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