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의성 사촌리 만년송 향나무와 가로숲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속되게 말해서 과학 문명의 도움으로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꾀할 수 있다. 시간과 돈만 있다면 왕권 국가의 임금도 부럽지 않다. 그런데도 자신의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이 불공평하다느니 하면서 늘 세상을 탓하며 입에는 불평불만이 가득 찬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라면 이러한 이유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라며 무시할 것이다.
옛날 같으면 어디를 가려고 하면 몇 시간을 기다려 버스나 기차를 타야하고, 아니면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황혼에 조금의 여유만 있다면 생각나는 대로 자가용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마음껏 즐기고 또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모두 하루 생활권으로 가능하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전화로 연락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해 주어 똑똑한 여비서를 두고 있는 회사의 사장과도 같다. 오늘도 똑똑한 여비서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고 의성 점곡면 사촌리 마을에 살고 있는 만년송 향나무와 사촌 가로숲을 하루 일정으로 찾아 나섰다.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 선생이 지은
만취당서 마을 바라보는 만년송 향나무
수령 500살에 키 8m·몸둘레 2.3m로
조선시대 송은 김광수가 심고 이름 붙여
사촌리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서편에
만년송과 함께 노거수 마을 숲 펼쳐져
길이 1000m·넓이 40m 달하는 인공 숲
둘레길엔 백악기 시대 공룡 발자국 체험
안동 김씨·풍산 류씨·안동 권씨 집성촌
이 마을서 ‘3명의 정승 태어난다’ 전설
“신라 때 나천업·조선의 류성룡에 이어
한 사람이 더 나올 것” 주민들 입 모아
전국 3대 장수촌·구국 항쟁 선봉지역
대한민국은 도로 왕국이라는 말처럼 잘 포장된 도로 위를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구불구불한 옛길은 곧은 선형의 길로 정비되고, 산 고갯길은 산의 허리를 뚫어 터널로 건설되었으며,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휴게소에는 먹거리도 있고 화장실도 잘 마련되어 있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향긋한 카페라떼 한 잔은 운전 졸음까지 쫓아주니 친한 길동무와 진배없다. 자동차 안의 잔잔한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고, 창밖의 풍경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즐겁게 해 주어 도로 위 자동차 실내 음악으로 ‘나즐로’ 행복감을 느꼈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205번지에 향나무 앞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향나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사원(金士元) 선생이 3년에 걸쳐 지은 만취당 건물 뒤편에 서서 만취당과 마을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취당은 198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연배의 살아있는 만년송 향나무는 아직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지 못함에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거대한 향나무는 만년송(萬年松)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 나이는 500살, 키 8m, 몸 둘레는 2.3m라오. 아직도 매년 나이를 먹으면서 키도 자라고 몸 둘레도 늘어난다오. 조선시대 송은(松隱) 김광수(松隱金光粹) (1468~1563) 선생이 심고 스스로 나를 만년송(萬年松)이라 불렀다오. 모두 선조들의 식수관과 자연 애호 사상을 본받을 수 있는 현장 학습자료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뜰에 심어온 정원수 식재의 흐름과 향나무 생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면서도 나의 모습에서 장수와 절개, 생명력과 충절을 보고 닮도록 노력한 선조들의 지혜는 보지 못하고 있으니 섭섭하네”라고 안내문은 은연중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촌리는 만년송과 함께 노거수로 울창한 마을 숲이 있다. 이는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서편에 남쪽과 북쪽을 이어놓은 긴 띠형의 인공 숲이다. 길이만도 약 1000m나 되며 넓이 또한 40m에 달하는 경상북도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마을 숲이다. 주민들이 마을의 허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에 울력으로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였다. 이는 방풍림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어 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하여 그 뜻을 기리며 보호하고 있다. 숲은 나이가 300살에서 600살 된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왕버들 노거수 등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를 ‘사촌리 가로숲’이라 부르며 의성군에서는 매년 ‘점곡 가로숲 둘레길 걷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가로숲은 마을의 품격까지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경관을 아름답게 해 주고 있었다. 잘 조성된 숲길은 건강을 다지는 힐링의 장소로 최적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레길에는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공룡 발자국을 체험할 수도 있었다. 가장 큰 공룡의 발자국은 1.1m에 이르고, 다리의 길이는 4.4m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니, 공룡이라는 집채만 한 동물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그를 숨겨주고 먹여주는 나무와 숲은 얼마나 크고 울창할까 하는 생각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사촌 마을은 신라 때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혀왔다고 한다. 안동김씨와 풍산류씨, 안동권씨 삼성의 집성촌으로 의성 북부의 반촌이다. 특히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 숱한 유학자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마을에서 태어나 대소과에 급제한 사람이 무려 49명이나 된다고 하니 흥미로운 마을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한다. 신라시대 나천업, 조선시대 류성룡에 이어 한 사람이 더 나올 것이라고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출가한 여인들이 친정으로 돌아와 아기를 낳는 것을 원치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어느 고을이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사촌리 마을은 영남 8대 명당으로 선비와 학자들의 고장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의 3대 장수촌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1970년에는 70세 넘는 노인들이 5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물론이고 일제 강점기에도 의병을 일으켜 구국 항쟁의 선봉에 섰다. 이 모두는 향나무와 가로숲 등 나무를 사랑한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찾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내면의 삶까지 볼 수 있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오늘날에도 안동김씨 문중 회의는 이곳 향나무와 함께하고 있는 만취당에서 열린다고 한다. 늘 푸른 향나무의 향긋한 향기를 맡으면서 절개와 충절의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 가이스카 향나무와 우리 향나무
한국의 향나무는 동해안 지역(강원도, 울릉도, 독도 등)에 자생하는 반면, 일본의 가이스카 향나무는 자연 자생지가 없다. 이는 한국 향나무를 일본에서 조경용으로 개량한 변종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가이스카 향나무를 단순히 일본 나무로 배척하기보다는, 한국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백제는 조경, 건축, 도자기, 불교문화 등을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식물 역시 이러한 교류 속에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가이스카 향나무를 단순히 일본 나무로 여기고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