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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불어나는 이자에 얽매여… 서른부터 지옥 같은 22년 세월

22일 오후 기자는 영등포와 포항 등지에서 22년간 성매매를 하며 살아온 65세 한 여성을 만났다. 아래는 인터뷰를 통해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9세 때부터 시작한 식모살이나는 성매매 여성이었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오지마을, 네 남매 중 둘째로 위로 오빠 한 명과 밑으론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이 있다. 우리 집은 처음부터 가난했다. 노름을 좋아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에게 빚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원망할 틈도 없이 나는 대처(大處)로 식모살이를 떠나야 했다. 어머니의 장사를 돕기 위해서다. 그때 내 나이 겨우 9살, 나는 그 집 아기를 보살폈다.지금 생각하면 아기가 아기를 키운 꼴이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7년을 꼬박 일했다. 남들 다 다니는 국민학교(초등학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식모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엄마에게 돈을 보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또다시 큰 오빠를 따라 서울 변두리 봉제공장으로 갔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 바느질거리를 조금씩 맡아오며 밥을 얻어먹은 터라 곁눈질로 배운 손기술로 잠시 그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돈은 늘 부족했다. 워낙 없던 살림이라 돈을 보내도 겨우 굶주림을 면할 정도였다. 결국 엄마는 23살이 되던 해에 나를 시집보냈다. 한 명이라도 군식구를 줄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결혼 상대는 장사하는 집 아들이었다. 기구한 팔자는 타고난 것일까? 남편은 평소에는 멀쩡한데 술만 마시면 날 때렸다. 하루는 뺨을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고막이 나가버렸다. 그날부터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더니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의사는 일찍 병원에 갔으면 이 정도로 심해지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땐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나에게 남겨진 두 아이 때문에 원망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더 큰 돈이 필요했다.봉제 공장을 다니던 중 내 사정을 아는 동료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영등포 신세계백화점 너머로 가면 큰돈을 만질 수 있어. 정 급하면 그곳으로 가봐.” 나는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내 나이 서른살이었다. ▲영등포에서 포항으로 오기까지처음 내가 영등포에서 했던 건 ‘나까이’(호객꾼) 일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직접 성매매를 시키기보단 손님을 호객하는 역할을 준 것이다. 그 일도 쉽지 않았다. 돈도 많이 벌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빌린 돈이 있으니 견뎌야 했다. 선불금 2000만 원, 나는 2000만 원을 벌기 위해 5년 동안 일을 했지만 매달 10%씩 불어나는 이자 탓에 돈을 다 갚지 못하고 포항으로 내려왔다. 포항은 직접 성매매를 할 수 있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갚아야 할 돈이 남아 있었지만,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했기에 나는 또 업주에게 5000만 원을 빌렸다. 지옥 같은 22년은 그 5000만 원으로부터 시작됐다.▲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던 포항포항 뱃사람들이 거칠다는 것은 영등포에서 일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하루는 술을 마시고 온 남자 손님이 잠자리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서 욕설과 함께 내 목을 졸랐다. 나는 속옷도 입지 못한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급하게 수건과 담요를 가지고 나와 나를 감싸 안고 업소 안으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관계 가진후에 화대를 주기 싫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돈을 돌려받으려던 남성,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강요한 남성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 하루에 적게는 5명, 많게는 10명의 남성들과 관계를 가졌다. 남성들은 툭하면 나를 바보로 불렀다.초등학교도 못 나온 탓에 글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귀가 어두워 불러도 대답을 못했던 탓이다. 업주들은 이런 나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일한 만큼 돈을 주기 시작한 것은 내가 달력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하루에 받은 남자 손님들의 수를 세기 시작한 때부터다. 억울했지만 바보 같은 내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포항에 와서 성매매에 뛰어들어서야 업주들에게 빌린 돈을 다 갚을 수 있었다. 돈을 다 갚고 나니 업주가 오히려 나에게 20만 원을 돌려줬다. 위로금인지, 양심에 찔린 건지 모르겠으나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빚을 다 갚은 뒤에도 약 19년간 더 성매매를 했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50대 초가 되니 점점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하혈을 자주 하긴 했지만, 자궁을 적출해야 할 수준까지 간 줄은 몰랐다. 나는 모아둔 200만 원을 들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은 해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연락해다. 그렇게 5년 만에 아들을 만났다. 아들을 본 순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들은 지금까지도 내가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알게 되면 나를 사람처럼 보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혼자 모든 시련을 견뎠다. ▲내 꿈은 공주방을 가지는 것나는 57세에 성매매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집결지 주변에 여성상담센터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포항에 온 지 10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그곳을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상담 선생님들은 너무나 착했다.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고 내 사연을 궁금해 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착실히 공부했다. 1년간 낮에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밤에는 성매매를 했다. 1년의 피나는 노력끝에 기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길로 나는 22년간 몸담았던 업소에서 짐을 싸서 나왔다. 업소를 나오기까지 큰 결단이 필요했다. 10년 넘게 함께한 동료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곳을 나왔다.그곳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집결지에 있는 동료들이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를. 사실 이곳에 있으면 세상이 온통 3평 하늘처럼 보인다.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떠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와락 겁이 나기도 한다.하지만 동료나 동생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하루빨리 그곳을 빠져나오라고. 너희가 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고. 사실 나도 이곳을 떠났지만 요즘도 마음이 답답해지면 여기있는 친구들과 이야기 하곤한다. 이곳은 어쩔 수 없이 나의 고향이자 친정같은 곳이 되었으니까.성매매 집결지를 떠나 8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중앙동 주변에 집을 얻어 살고 있다. 새벽 4시에 출근해 2시간 가량 차를 타고 농촌마을로 가 사과를 따기도 하고, 섬으로 가서 밭일을 돕기도 한다. 그래도 8년 전보단 행복하다. 아무도 나를 바보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내 꿈은 ‘공주방’을 얻는 것이다. “육십이 넘은 할머니가 웬 공주방이냐”고 하겠지만, 식모 생활하던 시절 주인집 딸의 방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얀색 레이스 침대에 분홍색 캐노피 커튼이 달린 방을 가지고 싶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리고 그방에서 고운 꿈을 꾸고 싶다. 오순도순 가족들과 모여사는 행복한 꿈을./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8-22

“성매매 여성의 심리·경제적 자립 지원 최우선 과제”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마다 홍역을 앓았다. 포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포항시의 성매매 집결지 3곳을 밀어내고 도시재생차원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매매집결지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충돌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옛포항역 성매매집결지 주변에 69층 규모의 주상복합단지를 조성하자는 개발흐름이 진행됨에 따라 적극적인 정비의 필요성이 높아졌다.이에 포항시는 2024년 1월 18일, 옛 포항역 성매매 집결지 정비 테스크 포스(이하 TF)를 발족했다. 장상길 부시장을 단장으로 구성된 TF는 1단 2팀(자활지원팀, 도시정비팀) 4반(피해여성지원반, 지도단속반, 공간정비반, 운영지원반)으로 구성되었으며, 집결지 정비 완료 시까지 협업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TF는 현재까지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으며 연구용역을 통한 집결지 실태조사와 도시개발과 관련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본지는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전담하고 있는 포항시 여성가족과 양성평등문화팀과 포항시의회 김은주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 인터뷰를 통해 집결지 정비를 위한 포항시의 현재까지의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시민과 집결지 걸으며 ‘성매매’ 인식부터 바꾸려 노력” 인터뷰 정연학 포항시 여성가족과 과장  - 성매매집결지 정비를 위해 시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포항시는 2021년부터 꾸준히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 힘쓰고 있다. 같은 해 4월 민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성매매 집결지 지역 협의체를 발족했다. 2023년 4월부터 6개월간 연구용역을 통해 ‘포항시 성매매집결지 대책 기본계획’보고서를 제작했다.보고서에는 성매매집결지 현황 분석, 국내외 성매매집결지 정비 사례분석, 성매매집결지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옛 포항역 성매매집결지 일대 도심 활성화를 위한 기본구상, 성매매피해여성 자활지원 방안 연구 등이 담겨져 있다. 올해 4월에는 집결지 정비의 세부적인 업무를 논의하게 위해 관련부서 팀장들로 구성된 실무협의체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집결지 정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비의 필요성과 성매매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은  시민들이 성매매 집결지를 직접 보고 걸으며, 성매매집결지 정비와 성매매피해여성 자립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걷기 활동은 올해 4~6월까지 진행했다. 집결지 걷기 운동은 포항시 부시장을 비롯한 행정기관도 함께 했다. 시민 대상으로는 현재까지 5개 단체 100여명이 참여했다. 걷기 활동을 마치고난 시민들은‘옛날부터 있었던 성매매집결지가 현재까지 영업 하는 줄 몰랐다’, ‘하루빨리 성매매집결지는 정비되어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과 함께 집결지 정비에 대해서 함께 공감했다. -포항 성매매집결지 정비에 있어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성매매 집결지 정비 사업은 정비유형에 따라 여러 사업들이 균형 있게 추진 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사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 지역의 정비 사례를 보더라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포항시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가장 힘들다.포항시는 여건에 맞는 최적의 정비 계획이 나올 수 있도록 각 부서와 더 긴밀한 협의를 통해 세부계획을 완성해 나갈 계획이다.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성매매 집결지가 없으면 ‘성매매 범죄 발생률이 높아질 것이다’, ‘성매매는 필요악이다’라는 일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경찰 단속과 같은 강력한 방법으로 정비를 할 수는 없는 것인가? △현재 집결지 정비에 있어 경찰 단속은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현재 경찰의 입장은 집결지 폐쇄를 위해 적극적으로 단속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성매매집결지 정비 문제의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무조건적인 단속이 답이 되지 않는다. 타 지자체 사례를 살펴보아도, 공간정비·지도단속·피해여성지원 등 3가지 중점과제를 가지고 함께 진행을 했을때 완전한 집결지 정비가 가능했다. 만약 경찰 단속만 강행할 경우 성매매 여성이 중앙동 공간에서만 사라질 뿐, 다른 지역 성매매 업소로 여성들이 유입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성매매 여성의 자활지원 조례 제정이 중요하다. 조례를 제정하고 나면 여성들이 시 차원의 보호를 받고 성매매 자연스럽게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포항시는 관련 조례안 발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집결지 정비계획 수립되면 자활 지원 조례제정 속도” 인터뷰 김은주 포항시의회 민주당 비례대표 -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서는 집결지 인근의 도시 개발 계획과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자활 조례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안다. 자활 조례 제정에 관련한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  △올해 안으로 포항시에서 성매매 집결지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다면 그와 동시에 성매매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 조례 제정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지난해 포항시에서 성매매 집결지와 관련해 용역을 실시했다. 용역 결과 중에 성매매여성들에게 자활에 대한 의지를 물었을 때 ‘자활 지원이 된다면 탈성매매를 하겠다’라는 결과가 있었다. 이로써 조례 제정의 필요성이 이미 증명 되었다.성매매 시장에 유입되는 여성의 경우에는 학력, 가정형편 등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돈 벌기 위해서 성매매를 한다’라는 성매매에 대한 통념을 ‘성매매 여성의 몸을 기반으로 쉽게 돈을 버는 포주나 공간제공자’로 바로 세우는 인식 변화도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또한 성매매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는 포항시에서는 성매매 집결지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성매매 집결지 정비에 대한 논의를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시의회 안에서나 시와 소통하면서 겪은 과정을 평가한다면. △의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시의원으로 성매매 집결지 관련해 공론화하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까지 성매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식들, ‘쉽게 돈 벌기 위해서 성매매한다.’, ‘성매매는 필요악이다’, ‘성매매가 없어지면 성폭력이 증가할 것이다’라는 통념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나는 전공자이기도 하고 여성운동가 출신이라 다른 분들과 이해의 스펙트럼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앞으로도 포항시와 의회, 그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협력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역할을 다 하겠다. -앞으로 포항시가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력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포항시와 포항시의회는 물론이고 포항시민들이 함께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찰과 검찰, 세무서, 소방서 등 관련 공공기관의 협력도 중요하다./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8-21

싫고 좋음 없이 모두를 품어 안는 한수정과 함께 400년

41. 봉화 한수한반도 야생에서는 멸종되었다는 백두산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우리 전통 민속문화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찰이나 마을에 있는 산신각에는 호랑이와 함께 백발에 수염이 있는 신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으로 상징하거나 용감한 사람을 호랑이로 일컬었다.한민족 삶의 곳곳에 호랑이는 용감한 기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하여 호랑이의 용감무쌍한 기질을 은연중에 우리 민족의 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운동과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것도 모두 이러한 용감무쌍한 호랑이의 상징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경북 봉화 문수산 자락 수림 속에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얼마나 의젓하고 품위 있는지, 붉은 털에 검은 줄무늬를 한 호랑이는 용감무쌍 그 자체란 생각이 든다. 고개를 들고 “어흥”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산울림이 크게 메아리쳐 계곡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뭍 짐승이 놀라 숨죽이는 순간에 한 바퀴 몸을 뒹군다. 날렵 용감무쌍한 백두산 호랑이의 기상이 내 가슴에 박히는 순간이었다.상징성 문화로 백두산 호랑이와 마을 노거수는 우리 전통 민속문화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민족의 용감한 기상을 상징하는 백두산 호랑이는 야생에서 그 실체가 사라져 민속문화에서도 서서히 잊혀 가는 반면에 다행히 노거수 문화는 아직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수정(寒水亭)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건축물이다. 정자 3면에 맞닿게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는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연못은 해와 달, 정자, 나무 등 찾아온 모든 물상을 좋아하고 싫어함을 가리지 않고 모두 품어 안는다. 연못에 비추어진 물상을 보면서 포용의 의미를 배운다. 느티나무 노거수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결속과 단합을 그리고 장수, 건강, 절개, 끈기 등 노거수의 다양한 상징성이 우리 삶의 여정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찬물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이라 이름을 붙인 이곳은 조선 선비문화를 비롯한 산림 문학 등 인문학적인 소양을 배울 수 있는 도서관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정자와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안에 숨 쉬며 살아가는 느티나무 노거수가 있다. 한수정이 1608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느티나무 역시 그 당시에 조경수로 심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면 나이가 400년 훌쩍 넘었다. 봉화 한수정은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되었다가, 다시 대한민국의 보물 제2048호로 승격되었다. 그런데 정자와 함께한 느티나무 노거수는 공적에서 제외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400여 년 전 담장 안의 나무가 담장을 허물고 바깥세상에 그 억울함을 토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답할 때가 아닌가 싶다.사실 호랑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우연한 기회라면 기회였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소재한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제2회 한국산림문학회 미래목 청소년 글짓기 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를 스케치 해보면 김선길 산림문학회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장차 산림 분야의 진출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하는 행사로써, 산림 분야의 미래를 밝히는 청소년들이 꿈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이서연 부이사장은 작품 심사 소감을 설명하면서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며 제한된 수상자를 가리는데 힘들었다고 했다. 윤정란 산림과학고등학교 교장은 글짓기 공모전에서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며 앞으로 산림 문학적 소양을 갖도록 지도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황욱준 경상북도 산림레저관광과장이 도지사를 대신하여 운문부 대상인 경북도지사상을 ‘우리 반은 숲이다’라는 작품을 쓴 사공효주에게 수여했다. 최영태 남부지방산림청장이 산림청장을 대신하여 산문부 대상인 ‘서정은 희망과 무한을 안고’라는 작품을 쓴 오재현에게 수여했다.행정, 교육, 산림문학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미래목을 육성 발전시킨다면 우리의 금수강산은 지구촌 제일의 강산이 되지 않을까. 인문학적 소양은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래목 청소년 글짓기 공모전” 사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행사를 마치고 ‘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를 보러 갈 것을 모두 원했다. 늦은 시간이라 볼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는데 마침 수목원에 근무하고 있는 동문인 안경환 박사의 친절한 안내로 백두산 호랑이 ‘무궁이’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한수정은 우리 조상의 선비문화와 산림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가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마루에 앉아 느티나무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나무는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를 신선하게 해주고, 마시는 물을 깨끗하게 정화 시켜 주고, 주변의 소음을 줄여 준다. 침침한 눈을 맑게 해주고, 오감을 활성화하여 기분을 좋게 해준다. 나무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 이는 영적인 충만감에 젖어있는 나무들의 심리적 진동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심호흡을 해 본다. 자연에 가까워지면 병은 없어지고 자연에 멀어지면 병은 가까워진다. 행복의 기본은 건강이다.”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산림문학이다. 노거수는 우리 인생길에 지혜와 교훈, 위안을 주어 우리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살찌운다. 앞으로 노거수와 숲에 대한 깊은 사고의 글을 쓰리라. 다짐해 본다. 사단법인 한국산림문학회는…2000년 대형 산불로 동해안 일대의 막대한 산림자원이 소실되자 이를 안타까워한 많은 산림공직자가 산림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묶어 ‘아까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문집을 펴냈다.조연환 산림청 사유림지원국장의 제안에 따라 산림공직자 38명이 모여 산림문학회를 출범. 2009년 3월 3일 산림청장 허가 제111호로 (사)한국산림문학회가 설립됐다.설립 목적은 산림 문학의 발전과 산림문화 창달.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이고, 산림문학회지 발행 및 산림문화 창달에 관한 출판 사업. 산림 문학 연구발표회, 강연회 및 강좌 개최. 저명작가 초청 및 출판물의 교류. 기타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 등을 진행해왔다.산림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문학회의 목적에 찬동하고 회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개인 및 단체면 가입할 수 있다. 신입회원은 이사 2인의 추천을 받아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제8대 이사장은 김선길, 상임 부이사장은 이서연, 사무차장은 강준혁이다. 사무실은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57 국립산림과학원 내 나무병원 2층에 위치해 있다. 홈페이지는 http://kofola.or.kr/, 연락처는 02-3293-2004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8-21

솔개가 멈춘 산에 자리잡고 나라를 도와 神異한 일을 일으켰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쓴 역사서 ‘삼국유사(三國遺事)’. 이 책엔 기이한 설화와 신묘한 전설이 곧잘 등장한다. 그래서, 대중들에겐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보다 쉽고 재밌게 읽힌다.‘삼국유사’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불리는 ‘선도산 성모’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것이다.“(선도산 성모는)옛날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은 사소(娑蘇)였다. 신선처럼 도술을 부릴 줄 알았던 그녀는 해동(지금의 한국)에 와서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딸을 걱정하던 황제가 편지를 써서 솔개의 발에 달아 보냈다. ’이 솔개가 멈추는 곳에 자리 잡고 살라‘는 내용이었다. 사소는 아버지의 말대로 솔개를 날렸고, 솔개가 멈춘 산에 머물면서 신선이 됐다. 그 산의 이름은 서술산(지금의 선도산)이었고, 신모(사소)는 오랫동안 거기 살면서 나라를 도와 신이(神異)한 일을 많이 일으켰다.”선도산 성모, 또는 선도산 신모로 불리는 설화 속 여성은 절벽에 세운 마애여래삼존불, 무열왕릉을 비롯한 여러 개의 거대 고분과 함께 선도산의 수수께끼를 푸는 주요한 3개의 열쇠 중 하나다.베일 속에 싸인 비밀스런 이 여성이 신라 당대에 가졌던 위상과 서라벌 귀족들과의 관계를 알아보는 건 흥미롭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몇몇 고문헌에 서술되는 내용만으론 구체적 실체가 선뜻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 ◆곤륜산 서왕모와 선도산 성모의 연결고리는...신라사 연구자들은 그간 각종 연구 논문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선도산 성모’에 접근하려 애썼다.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김태식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김태식은 그의 논문 ‘고대 동아시아 서왕모(西王母) 신앙 속의 신라 선도산 성모(仙桃山 聖母)’에서 중국 고대사와 연관시켜 선도산 성모를 설명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신라 건국신화에 의하면 건국 시조 박혁거세는 선도산 성모가 낳은 아들이다. 선도산은 경주의 서악이었다. 나아가 선도(仙桃)라는 이름 자체는 중국의 곤륜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 즉, 중국 곤륜산 신화에서 서왕모가 지배하는 곤륜산에는 불로장생을 보장하는 선도(仙桃·먹으면 죽지 않는 복숭아)가 자란다고 했거니와, 이 런 모티브를 신라 왕도에 적용한 산악이 바로 선도산이었다. 선도산 성모는 신라 건국시조의 어머니인 까닭에 성모(聖母)로 추앙되었다. 성모란 신라라는 지상왕국을 낳은 최고 여신격이란 의미다. 이런 점에서 선도산 성모가 바로 신라판 서왕모였음은 명백하다.”인접한 나라의 고대 설화 속 여신과 신라의 ‘성스러운 어머니’를 연결고리로 묶어낸 김태식. 그렇다면 논문에서 언급되는 ‘서왕모’는 어떤 인물일까?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서왕모는 선도산 성모처럼 숭배 받는 여성이었다. 곤륜산에 살면서 신선들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요지금모(瑤池金母), 왕모낭랑(王母娘娘) 등으로도 불린 서왕모를 과거 우리나라에선 통상 ‘왕모님’이라 칭했다.재밌는 건 크고 사나운 파랑새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교활한 여우를 수족처럼 부렸고, 어린 아이의 정기를 빨아들여 항상 부드러운 살결과 젊음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다.선도산 성모에 얽힌 전설 또한 근엄하고 진지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재밌고 가벼운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삼국유사’를 다시 펴보자.“신라 54대 경명왕이 선도산으로 사냥을 나왔다가 사냥매를 잃었다. 성모에게 사냥매를 찾아주면 작위를 주겠다고 빌었더니, 사라졌던 사냥매가 왕의 책상 위로 날아와 앉았다. 이후 경명왕은 선도산 성모를 대왕(大王)에 봉했다.”◆세상을 쥐락펴락한 제주도 여신 이야기오래전 쓰인 몇몇 책에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희미한 존재의 실체를 찾아다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학자들의 고난이자 즐거움일 터. 선도산을 오르는 기자의 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수백 번을 거듭 오르내려도 선도산 성모가 “나 여기 있소”라고 모습을 드러낼 턱이 없음에도 그냥 무작정 그녀의 신위가 있다는 성모사(聖母祠)를 향했다. 비지땀을 줄줄 흘리며. 그 와중에 몇 해 전 한라산을 등반했던 때가 떠올랐다.역사가 5000년쯤 되는 국가면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매혹적인 설화나 신비한 전설 하나쯤은 지니고 있다.한라산이 있는 제주 역시 ‘거대한 여신’의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긴 시간 떠돌았다.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 ‘설문대할망’. 다소 과장된 이 여신의 스토리를 ‘한국민속문학사전’은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태초에 탐라(제주도)에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누워 자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앉아 방귀를 뀌었더니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불꽃이 굉음을 내며 요동치고, 불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할머니는 바닷물과 흙을 삽으로 퍼서 불을 끄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부지런히 한라산을 만들었다. 치마폭의 흙으로 한라산을 이루고 치맛자락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흙들이 모여 오름이 생겼다. 할머니는 몸속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풍요로웠다. 탐라 백성들은 할머니의 부드러운 살 위에 밭을 갈았다. 할머니의 털은 풀과 나무가 되고, 할머니의 오줌 줄기에서 온갖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들이 나와 바다를 풍성하게 했다. 그때부터 물질하는 해녀가 생겨났다.”신라의 선도산 성모, 중국의 곤륜산 서왕모, 제주의 한라산 설문대할망. 이들이 능히 해내지 못할 일이란 없었다.도망친 매를 왕의 곁으로 돌아가게 하고,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 복숭아를 키우고,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70km가 넘는 섬을 혼자서 만들고….고대 한국과 중국엔 ‘불능’을 모르는 절대적 힘을 가진 여성들이 있었다. 물론 설화 속에서지만. ◆‘만물의 어머니’로 불리는 여성은 서양에도 존재신라의 첫 번째 왕을 탄생시키고(선도산 성모), 신선들의 머리 위에서 세상을 다스리고(곤륜산 서왕모), 수천수만 사람들 삶의 토대가 될 섬을 만들어낸(설문대할망) 동양의 여신들.그렇다면 서양엔 이에 필적할 여신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동서양 불문 인간들이란 무엇이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걸 옮기는 걸 즐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앞서 언급된 동양 세 여신 수준에 이르는 서양 여신으로는 ‘가이아(Gaia)’를 내세울 수 있겠다. ‘만물의 어머니’이자 ‘신들의 어머니’로 지칭되는 여성이다.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는 가이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의인화된 여신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또 다른 명칭으로 ‘게(Ge)’가 있다. 이 명칭의 어원적 의미는 ‘땅’ ‘대지’, 또는 ‘지구’다. 이름의 어원적 의미에서 추측할 수 있듯, 가이아는 모든 생명체의 모태인 대지를 상징한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가이아는 ‘카오스’와 더불어 혈연관계 없이 태초부터 존재한 신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작가 히기누스의 ‘이야기’ 서문에 의하면, 가이아는 혈연관계에 의해 태어난 존재로 빛의 의인화된 신 아이테르와 낮의 의인화된 신 헤메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생불멸 신들의 계보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모신(母神·어머니 신)으로….”어느 시대, 어느 장소건 삶이 유한한 인간은 불멸하는 존재를 동경해왔다. 선도산 성모와 가이아는 그런 부러움의 마음이 탄생시킨 고대 설화 속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계속)/홍성식기자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24-08-20

37년 쇳물 인생, 명장의 한마디“기술력, 혼자만의 산물 아니다”

“기술력은 혼자만의 산물이 아닙니다. 서로 소통하면서 함께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려는 생각을 통해 완성도를 올립니다.”2015년 대한민국 명장, 2019년 포스코 명장에 동시 선정된 김공영(56) 금속재생산 대한민국 명장.각 명장 동시 선정은 작년 광양제철소에서 1명이 추가돼 2명으로 늘었지만, 포항제철소에서는 아직도 김 명장이 유일하다.포스코명장 제도는 포스코에서 2015년부터 뛰어난 기술은 물론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인품까지 겸비한 탁월한 직원을 선발해 예우하고 포상하는 제도이다. 포스코는 매년 2~4명을 선발하고 있다. 명장으로 선발되면 특별 승진·포상금 5000만원·명예의전당 헌액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어 현장 기술인들의 최고 영예이자 롤모델로 여겨진다.최근 김 명장에게 최고의 기술자가 되는 길에 대해 들어봤다. - 금속재생산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진학을 포철공고로 하게 된 것이 첫 계기이다. 부친은 함경도 원산이 고향인데, 6·25 때 혈혈단신으로 피난을 와 결국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작년 12월 별세했다. 잠깐 떠났다 집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친은 친척이라곤 한명도 없는 남한 땅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넉넉지못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식들이라도 많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7남매를 두게 됐다고 했다. 나는 3남 4녀 중 다섯째였다. 중학교 때 공부를 제법 잘 했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해 대학을 가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3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제강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포스코의 제강부에 배치받아 현재까지 금속재생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금속재생산 분야 명장이 된 것은 특별한 선택이 아닌, 그때 당시의 사정에 의한 선택의 결과였다.- 포스코에 입사 후 취련사가 된 과정은.△1987년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포스코에 입사했다. 처음 배치받은 부서는 제강부 2제강공장 전로였다. 전로는 용광로에서 생산된 선철을 정련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강으로 만드는 공정으로, 전로에서 용강을 정련하는 작업자를 취련사라고 했다. 기술력이 부족했던 그때 당시 취련사는 매우 힘든 직무로 누구라도 좀 더 수월한 부서에 근무하는 것을 원했고, 전로에 근무하는 것을 기피했던 때였다. 나는 일이 힘들고 쉬운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근무했다. 그런데 입사 1년 후인 1988년 10월에 스테인리스제강부 정련로로 근무 부서를 옮기게 됐다. 스테인리스제강부도 제강부와 동일하게 취련사라는 직무가 있는데, 제강부 취련사와 거의 같은 일을 한다. 다만 차이는 스테인리스강은 일반 탄소강에 비해 3~5배정도로 비싼 강인데, 정련 과정에서 사용하는 합금철이 제강부 전로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10배 이상 비싼 부분이고, 취련사가 어떻게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원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입사후 5년 차인 1992년에 취련사가 됐는데, 이때부터 포스코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취련사로서의 노력은.△취련사가 되면서 스스로 다짐한 것이 동료 취련사보다 훨씬 싸게 스테인리스강을 생산해 회사에 이익을 매년 내 연봉의 10배 이상은 벌어줘야겠다는 것이었다. 스테인리스강을 싸게 만들려면 고가의 원료인 크롬과 니켈의 성분조정을 가능한 낮게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가능하다면 저가원료를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매일 취련 작업을 하고 나면 복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작업의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개선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부족한 이론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책을 통해 열심히 공부도 했지만, 잘 모르는 것은 연구소에 근무하는 박사님들께 찾아가서 묻고, 배우고, 이런 과정을 약 5년 하다 보니 취련 작업에는 도사 수준이 됐다. 그때 당시 취련사들은 매월 2~5개의 불합격 작업을 해 불량에 의해 원가손실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의 경우, 불합격작업 자체가 월 1~2개 수준으로 적게 발생되다가 5년 동안 불합격작업 자체를 한번도 안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불합격 작업을 5년 이상을 못한 것은 내가 최연소 반장으로 승진해 취련 작업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취련사로 근무하는 약 10년의 세월동안 내가 처음 다짐했던 동료취련사들보다 훨씬 싸게 스테인리스강을 생산하겠다는 것은 이룬 것 같다. 이 밖에도 설비개선을 통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원가를 절감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개선활동을 해 성과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제안활동과 자주관리 분임조활동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곤 했다.-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처음부터 계획하고, 노력한 경우는 아니다. 매 순간순간에 충실했던 것이 밑거름이 돼 어느새 명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내가 명장이 된 것은 항상 개선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싸고 품질좋은 스테인리스강을 생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고 노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雨垂穿石(우수천석)’이라는 글귀를 가슴에 새기고 생활하고 있다. ‘천년을 두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법구경에 나오는 글귀와 일맥상통하는 글귀인데, 1만시간의 법칙과 비슷하다. 오랜 세월 노력하고 익히면 못할 것이 없다. 명장이 되기까지 회사생활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활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우수제안 활동을 통해 탈산적중률을 획기적으로 올린 일이다. 약 23년 전 일이다. 스테인리스강 정련공정 탄소제거과정에서 발생된 크롬산화된 것을 모두 회수해야 원가나 품질, 생산성 등에 문제가 없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때 당시 환원제 적중률이 65%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35%는 원가쪽으로 불리하기도 하고, 품질 불량이 발생되기도 하고, 성분격외가 발생되기도 했다. 이게 고질적인 문제라서 부서에서는 엔지니어를 투입해 1년 동안 개선활동을 진행했는데 1년 활동 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것을 내가 6시그마에 기반, 취련작업 데이터를 활용해 회귀모형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 환원제 적중률을 93% 수준까지 향상시킨 것이다. 아주 획기적인 일이었고, 이 활동은 우수제안 2등급과 특허등록으로 마무리했다. 지금까지도 그때 개선한 것이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2018년 우수제안 1등급 개선활동을 한 것이다. 포스코 56년 역사에서 우수제안 1등급은 아직까지 10건 정도밖에 나오지 않은 아주 귀한 것이다. 스테인리스제강부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1등급이다. -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이나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 나를 따라오는 후배들 등 모두와 소통을 잘 해야 한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주변 그 누구와도 모두 공유한다.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노하우는 언제나 동료들과 공유하고, 한 단계 레벨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기술력을 더욱 높이는 수단이 된다는 부분이다. 나만이 아는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노하우로,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얻은 노하우를 모두와 공유하면 내가 사용할 때는 발견하지 못한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노하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예전의 방식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기존의 것에만 의지하면 변화가 없고 발전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 앞으로의 포부는.△숙련기술인으로 성장하려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전문교재를 편찬하고자 한다. 제강분야 전문교재를 보면 아직도 1970년대 이론과 내용이다. 최근의 기술동향이나 설비동향 등을 파악하기 어려워 공부하고자 하는 후배들이 제대로 공부하기 힘든 현실이다. 최근의 조업기술과 이론을 포함한 전문교재를 편찬해 후배들이 배우고 익히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또한 포항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는 포항지역 문화해설사로 봉사를 할 계획도 갖고 있다./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8-19

엘리트 체육 도시로… 문경, 국제대회·전지훈련 성지로 뜬다

문경시는 2013년 국가스포츠의 요람이자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국군체육부대의 문경 이전과 함께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의 성공적 개최로 국제적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해 국내·외 스포츠대회는 물론 전지훈련의 메카로 우뚝 서 있다.문경시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전국 어디에서나 2시간대에 접근이 가능한 대한민국의 중심지이다. 현재 차질없이 진행중인 중부내륙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수도권과 1시간대에 접근가능해 진다.여기에 국군체육부대의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광자원까지 품고 있다. 융복합 스포츠 산업으로 스포츠·전지훈련의 메카로 발돋움해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와 전지훈련 유치가 가능할 전망이다.신현국 문경시장은 “문경은 완벽한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해 엘리트체육의 전지훈련은 물론, 각 종목의 대회 개최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며 “세계대회를 치러낸 경험을 바탕으로 숙박, 관광 등의 분야와 접목된 ICT스포츠 융복합산업 육성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국군체육부대국군체육부대는 2013년 성남에서 문경으로 이전됐다. 태릉선수촌의 5배 규모로 국제규격 스포츠 시설을 자랑하는 국가 스포츠의 요람이자 엘리트 체육의 산실이다.건립비 3900억원으로 호계면 견탄리 일대 45만평 규모로 조성됐다. 실내훈련장 18동과 실외훈련장 10동, 실내육상장 1동, 선수 숙소 등 29개 동과 영외 아파트가 있다.1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인스타디움은 4개면의 축구장, 근대5종 복합경기장, 사이클 벨로드롬을 갖추고 있다. 국제규격 경기장은 축구, 럭비, 핸드볼, 농구, 유도, 복싱, 레슬링, 수영, 육상, 태권도, 아이스하키, 빙상 등 25개 하계종목과 바이애슬론, 아이스하키, 빙상, 스키, 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7개의 동계종목을 치러낼 수 있다. 특히, 14개 종목 동시훈련이 가능한 V자형(520m)의 세계 정상급 수준인 국내 최대 실내훈련장, 세계 유일의 근대5종 전용 실내경기장 등이 있다. □ 완비된 체육 인프라문경시는 국제규격의 최신시설을 갖춘 국군체육부대가 있고, 시민운동장에는 트랙 8레인을 갖춘 육상경기장이 있다. 시민운동장(천연잔디)과 영강체육공원(인조잔디)에 축구장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문경국제소프트테니스장(13면)과 배드민턴 전용경기장, 온누리스포츠센터, 국제클라이밍센터, 문경야구장, 그라운드골프장 등 다양하고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지난해 마성 남호리에 위치한 씨름전용훈련장에 다목적 야외씨름훈련장을 설치해 올해 10월에 완공예정이다. 경북도 여자하키팀 훈련 및 전지훈련팀을 유치해 국군체육부대와 연계한 전지훈련 거점 조성을 위해 호계면에 필드하키장을 조성중이다.그리고 베이미부머 세대가 골프를 은퇴하고 파크골프에 입문하는 등 농촌을 중심으로 파크골프가 새로운 여가 활용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제11회 대한체육회장기 파크골프대회를 유치하고, 각 읍·면·동별로 파크골프장해 명실상부한 스포츠 메카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문경시는 지난 3월 28일 2007년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창단한 상무여자축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위해 국군체육부대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4월 첫 홈경기를 치른 문경상무팀은 창녕 WFC를 상대로 2대1로 승리를 거뒀으며, 7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군인여자축구대회’에서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1대 0으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 전지훈련의 메카국내에서 수영과 승마 펜싱 사격 크로스컨트리로 구성된 근대 5종을 한꺼번에 훈련할 수 있는 곳은 문경 체육부대가 유일하다보니 국내·외 선수단의 인기 전지 훈련장이다.문경을 방문하는 전지훈련팀은 종목별 국가대표팀과 국가대표 상비군, 한국체대를 비롯한 각종 대학팀, 전국의 체육 중·고등학교, 실업선수팀 등 다양한다. 특히 문경시-국군체육부대-한국관광공사 등 3개 관계기관이 긴밀히 협력해 노력한 결과 미국,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페인,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등 해외 훈련팀의 참여도 해마다 늘고 있다.문경 전지훈련의 가장 큰 매력은 국군체육부대의 최첨단 시설을 갖춘 경기장에서 국가대표급 체육부대 선수들이 멘토로 지도를 해주는 등 훈련 파트너로서 실전연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또한, 훈련장과 숙소 간 차량지원과 함께 관광체험, 지역 특산품 홍보 등 전지훈련 선수단에 대한 타지역과 차별화된 문경시의 다양한 정책으로 문경을 방문하는 전지훈련 선수단들이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문경이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마케팅의 강점이다. □ 성공적인 체육대회 유치문경시는 문경 브랜드를 앞세운 전국 단위 체육대회를 개최해 스포츠도시 문경의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매년 문경의 특산품과 관광명소를 타이틀로 하는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21년 7개의 전국대회에 이어 2022년에는 25개 전국대회를 성황리에 치렀다.지난 2월 2023 민속씨름 문경장사대회를 시작으로 3월에는 제53회 전국장사씨름대회, 제51회 춘계 전국 초중고 유도연맹전, 아시아 하키연맹 총회를 개최했다.4월에는 파크골프 중앙회 임원대회와 제23회 경북협회장배 합기도 대회 및 국무총리기 대표선발전을 유치했다. 5월에는 선수·임원 1000여 명이 참여하는 동아일보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가 10일간 열렸으며, 8월에는 1만여 명이 함께하는 문경새재 맨발 페스티벌이 개최됐다.또한, 오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 6일간 국군체육부대 실내종합경기장에서 8개국 초청 국제대학 배구대회가 열린다. 8개국 160여명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SBS스포츠채널을 통계 중계될 예정이다.오는 11월까지 50여 개 전국 규모 대회가 이어진다. 대회와 관련된 선수와 임원 등 대회관계자, 학부모, 응원단 등 연간 8만여 명이 문경을 찾는다. 대회기간 동안 문경에 체류하며 숙박과 음식점, 관광지를 이용할 것으로 보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24-08-19

“할아버지 명예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결심”

“미미가 한국 국가대표로 시합을 나갔으면 좋겠구나.”처음부터 한국인이었다. 한국과 일본,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였지만, 한국을 택했다. 할머니의 유언이었다.언어도 모르고 낯선 땅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대한의 딸이었기 때문이다.허미미(21·경북체육회) 유도 선수는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의 후손(5대손)이다. 할아버지 허무부씨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증손자이다.허 선수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2021년 국가대표선발전을 거쳐 2022년 태극마크를 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유도 여자 -57㎏급 은메달 및 혼성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해 국위를 선양했다.귀국 후 한국에서의 첫 일정으로 지난 6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허석 선생의 기적비를 참배했다. 4년 뒤엔 반드시 금메달을 가지고 이곳에 다시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허 선수에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이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다음은 허미미 선수와의 일문일답. - 허미미의 5대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이다.△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놀랐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최로 열린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오찬에 참가했다. 어떤 대화를 나눴나.△윤 대통령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메달을 따서 감사하다,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유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아버지가 유도 선수였다. 유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 기억에 남는 올림픽 경기 순간은.△몽골 선수인 엥흐릴렌 라그바토구와 시합을 한 것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작년과 재작년 모두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나 패배했다. 올해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도 졌다. 3승 무패의 상대이다보니 8강전에서 대결하게 됐을 때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고 너무 부담감이 있었는데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이겨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 슬럼프 극복은 어떻게.△나는 나를 믿고 있다. 자신감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언제든지 ‘내가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매일 운동도 하니 나를 믿는다.- 유도를 시작하려는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이번 올림픽을 보고 유도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을 한다. 유도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고 유도를 하면서도 재밌게 해주면 좋겠다.- 한국과 일본 유도의 다른 점은.△한국에만 있는 게 있다. 유도에 집중할 수 있는게 좋다. 제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경북에서 좋아하는 관광지는.△아직 안 가봐서 모르겠다. 나중에 다녀오면 말씀드리겠다. 찾아보겠다.- 허미미 선수에게 유도란.△유도는 재미, 행복 같다. 유도를 하면 고민이나 힘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중할 수 있으니까 유도가 정말 좋다.- 유도의 매력은.△사실 매력을 모르겠다(웃음).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너무 재밌다.- 앞으로의 계획은.△파리올림픽에서 아쉽에 은메달을 받았는데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이 크게 생겼다. 2028 LA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이번에 올림픽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유도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은“하늘에는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다. 충(忠)은 곧 생명을 다하는 것이요, 마땅히 힘을 다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도(道)와 임금을 섬기는 마음은 우리와 더불어 다를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임금이 다른가. (중략) 너희들은 일시에 진멸(盡滅)코자 하노라.”1910년 7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겪은 후 망국의 한을 품고 있던 허석(許碩·1857~1920).그는 일본인들의 조선 침탈에 분개해 동포들에게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자 계획했다.1918년 8월경 군위군 의흥면(義興面)으로 통하는 도로 부근의 눈에 잘 띄는 암벽에 항일 격문을 작성해 동포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했다.이로 인해 일경에 붙잡혀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만기출옥 후 3일 만에 옥중 여독(餘毒)으로 순국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각각 추서됐다.고향 마을인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효의공 허석 의사 순국 기적비(孝義公許碩義士殉國紀蹟碑)’가 세워져 있다. 인터뷰  / 김정훈 경북체육회 유도팀 감독2024 올림픽에서 유도 메달리스트를 키워낸 경북체육회 유도팀 김정훈(43·사진) 감독.허미미(21)는 유도 여자 57㎏급에서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김지수(23)는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두 제자는 모두 재일교포. 한국의 뿌리를 찾아 조국을 빛나게 해 준 김 감독을 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허미미 선수와의 인연은.△고등학생 전국 체전 때부터 지켜봐 왔다. 재일교포인 김지수 선수를 통해 허 선수가 우리 팀에 오고 싶어 하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받았다. 김 선수가 한국에서 잘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으니 허 선수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거다. 또 김 선수의 할아버지가 경북 상주 출신이고, 허 선수의 허석 할아버지 기적비도 군위에 있다. 이게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도 허 선수를 원했고, 자기도 오고 싶어 했고, 서로 같은 마음이었다.- 허 선수를 한국에 데려오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허 선수는 재일교포 3세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데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일본 입국시 2주 격리’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유도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허 선수가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 과정을 알고 싶다.△허 선수가 2021년에 왔을 때 혼자 자가 격리를 여러번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한국에 와서 선수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에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있는 모습이 많이 안쓰러웠다. 옛날 본적지를 찾아가면 혹시 친척이나 가족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수소문을 했다. 우연찮게 마을 주민한테 독립운동가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그 얘기를 듣고, 관공서를 찾아다니면서 직계 가족인 것을 알게 됐다.- 경북체육회 소속의 허미미, 김지수 선수가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비결은.△재일 교포 출신이다 보니 두 선수 모두 어찌보면 특별한 케이스다. 우리나라 선수 자격 유무 등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두 선수가 유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행정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이철우 경북지사를 비롯해 경북도청 관계자, 체육회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부용기자

2024-08-15

포항시의회 후반기 출범식 33명 중 18명 출석… 멀고 먼 화합의 길

◇민의는 소홀한 포항시의회 의원들…입법·정책 감시 뒷전상당수 포항시의원이 공천과 이권 챙기기에만 눈이 멀어 본연의 업무인 입법 및 민원 해결, 정책 감시기능에 소홀하다는 비판이다.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경북매일신문이 지난 14일 포항시의원 33명의 제9대 지방의회 임기 동안 본회의 시정질문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시정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시의원은 전체의 63.6%인 21명에 달했다. 정당별로 보면 현재 국민의힘(이하 국힘)이 24명 중 18명,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7명 중 2명, 무소속 1명이 여기에 해당됐다. 김은주·전주형 의원이 각 4회로 시정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국회는 법률을 제·개정하고, 각 지방의회는 이 법률에 근거해 해당 지역에서 시정에 여러 영향을 미치는 자치법규인 조례를 만든다. 제9대 지방의회 임기가 시작된 2022년 7월부터 현재까지 포항시의회에 접수된 조례 제·개정안 중 시의원들이 발의한 의안은 총 98건이었다. 시의원들은 한 명당 평균 2.97건의 조례안을 발의한 셈이다. 제9대 전반기 임기 동안 조례를 단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의원은 7명에 달했다.현재까지 발표한 5분자유발언은 101건으로 한 명당 평균 3번이었다. 전체 시의원 중 지금까지 단 1번도 5분자유발언을 하지 않은 의원은 모두 4명이다. 김성조 의원이 16번으로 가장 많이 발표했고 이어 김은주 의원 13회, 김영헌 의원 8회, 박칠용 의원 6회 순이었다. 30년 넘은 지방의회, 이대로 괜찮은가 (1) 제 밥 그릇 챙기기 급급, 정당 간 기 싸움까지 (2) 해법은 없나…정당공천제 폐지, 교섭단체 조례제정, 지방의회법 제정(3) 해외 선진사례…영국·일본·미국을 중심으로 ◇소속 정당 간 기 싸움·의회 권력 두고 내부갈등 위험수위 넘어 포항시의회 제9대 후반기는‘반쪽짜리’ 원구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수당인 국민의힘에서 자체적으로 의원총회를 열어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후보를 내정하고 그대로 진행했다.포항시의회는 지난달 24일 제317회 임시회를 열어 제9대 후반기 원 구성을 완료하고 출범식을 개최했다. 하지만 상당수 시의원이 임시회 출범식에 불참했다. 국힘 포항남·북당원협의회는 의장단 선거 며칠 전인 6월 28일 포항시산림조합에서 의총을 열어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후보를 미리 내정했다. 포항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은 국힘 의총이 열리기 하루 전인 27일 성명서를 통해“포항시의회 후반기 의장단 독점을 시도하는 것은 야권의 목소리를 원천차단하는 다수당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또 포항시의회 더불어민주당 김상민 원내대표는 이날“국힘 원내대표 추경호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달성군의회는 개원 이래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부의장도 배출했다”며“중앙당에서 지령이 배포됐다고 하지만 지역 사정에 맞게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포항시의원 33명 중 국힘 소속이 22명(민주당 7명, 무소속 3명, 개혁신당 1명)이어서 다수당의 의견에 따라 내정된 그대로 본회의에서 통과됐다.이 뿐만이 아니다. 포항시의회는 지난달 31일 제31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윤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조영원 의원, 부위원장에 함정호 의원을 각각 선출했다. 문제는 윤리특별위원회 구성 또한 모두 국힘 소속이라는 것. 소수당 소속 의원은 본회의에 앞서 열린 전체 의원 간담회에서 즉각 반발했다.개혁신당 김성조 의원과 민주당 김상민 의원은“특위에서는 화합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윤특위 위원장과 위원 모두 국힘 의원들로만 구성돼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 의장은“9월 임시회에서 사·보임 등을 통해 재구성할 의사가 있다”고 해명했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2년, 잡음 이어져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방의회가 소속 직원의 인사권을 행사하게 된 지 올해로 2년이 됐다. 당초 지방의회 전문성 강화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의회의 인사권 독립에 반발한 집행부와 갈등을 빚는가 하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는 등 잡음이 생기고 있다.포항시의회는 포항시 파견 공무원 인사를 협상의 여지 없이 바꿨다. 포항시의회는 지난 6월 21일 전문위원 3명(5급)의 결원이 발생해 포항시에 파견을 요청했다. 포항시는 3명의 파견 공무원 명단을 확정하고 포항시의회에 보냈다. 또 의회에 파견할 3명의 직렬과 직급에 맞춰 포항시 인사를 준비했다.하지만 포항시의회는 포항시가 파견하기로 한 경제산업전문위원을 기존 파견 대상 명단에 없었던 공업직 A씨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포항시 확대간부회의 상황을 녹음해 특정 당협에 넘겨줬다는 의혹을 받아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병가를 낸 바 있다. 김일만 의장은 7월 2일 포항시가 A씨를 파견하지 않는다면 다른 2개 위원회 공무원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포항시는 내부 인사를 예정일보다 2주 뒤에야 완료할 수 있었다. 이같은 포항시의회의 독불장군식 인사로 공직사회의 인사 질서를 붕괴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이후 포항시의회는 지난달 16일 인사권을 발휘, 내부 인사이동을 진행했다. 파견 받지 못한 3명의 인원을 메우기 위해 타 시도에 전출을 요청했다.현재 의회 인사 시스템으로는 업무 능력이 미흡한 검증되지 않은 직원을 채용해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동안은 포항시와 적절한 인사교류로 직원들의 직무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시에서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거나 관련 부서에서 어느 정도 근무한 인력을 뽑아서 파견받았다. 현재 구조로서는 의장의 권한으로 임용·승진된 직원에 대한 업무 능력에 따라 의장의 신임도와 인사권 실효성이 인정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은 마땅히 필요하나 지방공무원 내에서 검증받은 직원을 파견받는 현재 방안과 적절히 병행해 장·단기의 전략적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화합·협치’는 먼 나라 이야기포항시의회는 지난 9대 전반기부터 남·북구 의원들의 신경전에 이어 후반기에는 초·재선 의원들의 불협화음으로 시작됐다. 타 지방의회는 원구성이 마무리 되면 화합과 협치를 강조하는데 비해 포항시의회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의장단은 김일만 의장은 북구, 이재진 부의장은 남구로 각각 한 자리씩 맡았다. 상임위원장은 남구 3명, 북구 2명으로 국힘 자체 의총에서 배정했다. 의원은 국가 또는 주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직위유지(공천), 선거구 관리를 위한 전략 차원, 주민들의 이익이 복잡다기해 전체를 대표하기 어려운 현실적 사정 등으로 지역구 중심의 행동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의회는 전체 대표와 선거구 대표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이번 후반기 의장단 구성 과정과 그 후 의장단의 전횡에 다선 의원들이 홀대를 받았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달 24일 본회의에는 전체 의원 33명 중 19명이, 출범식에는 18명이 출석했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 7명과 개혁신당 시의원 1명 외에도 여러 국힘 소속 의원들이 불참한 것이다. 같은달 25일 각 위원회별로 진행된 주요 업무보고에서도 4개 위원회 모두 2명 내지 5명까지 위원들이 불참했는데 재선 이상급 위원들이 대거 불참했다.법률상·형식상으로 시의원 간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매월 수령하는 의정비도 같다. 하지만 국회의 경우 국회의장단 선임과정과 상임위원장, 원내대표 선임과정 그리고 본회의장 내 좌석 배정에서 다선을 중요한 요소로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포항시의회 한 의원은“경북도의회에서는 상임위원장 후보가 되려면 재선부터 의장단은 3선부터 출마가 가능한 암묵적 룰이 있다”며 “포항시의회에서도 소속 당과 지역구에서 여러 번 선출된 경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4-08-15

신라 첫 번째 왕 박혁거세의 母神이자, 신령한 산의 女山神

고대의 왕 혹은,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국가의 통치자는 다소간 과장되게 기록되거나 묘사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가 가졌던 권력의 크기와 보통 사람과는 구별되는 신성(神性)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조금 먼 나라 이야기지만 16세기 프랑스의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수도자에서 의사로 직업을 바꾸고, 거기에 소설가로까지 활동한 프랑수아 라블레(1483~1553)란 작가가 있다.그가 쓴 작품 중 하나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다. 한국에선 그다지 높은 인기를 누린 소설이 아니지만, 프랑스인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작품”으로 추켜세우는 5부작 풍자소설.이 소설은 비교적 간단한 스토리로 이뤄져 있다. 왕인 가르강튀아의 기이한 출생과 해괴한 행적을 좇아가는 형식이다. 이는 그 당시 풍자소설의 기본적인 골격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무엇이건 범인(凡人)과는 달랐던 왕을 낳은 어머니는...소설에서 가르강튀아는 ‘어머니의 왼쪽 귀’에서 태어난 것으로 서술된다. 인간이 ‘자궁’이 아닌 ‘귀’에서 생겨난 것부터가 엄청난 상징과 은유를 담은 과장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의 먹성을 묘사하는 대목에 이르면 놀라움은 더 커진다. 이런 것이다.“소 16마리, 송아지 32마리, 염소 63마리, 양 95마리, 돼지 300마리, 메추리 220마리, 도요새 700마리, 수탉 400마리, 암탉 600마리, 토끼 1400마리, 산돼지 11마리, 사슴 18마리, 꿩 140마리, 오리, 왜가리, 황새, 칠면조….”어떤 인간도 위에 열거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다 먹을 수 없다. 이는 15~16세기 부패한 귀족들의 퇴폐와 전횡을 꼬집어 풍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해학이 아니었을까 싶다.이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많이 먹는 왕’의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서도 나타난다. 아래는 ‘삼국유사’의 인용이다.“무열왕은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잡수셨는데 경신년(庚申年)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점심은 그만두고 아침과 저녁만 하였다. 그래도 계산하여 보면 하루에 쌀이 여섯 말, 술이 여섯 말, 그리고 꿩이 열 마리였다.”출생에서부터 먹는 양까지 평범한 사람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왕들. 그렇다면, 그런 왕을 넣은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선도산 성모(성스러운 어머니) 또는, 선도산 신모(신의 지위를 가진 어머니)로 불리는 여성은 신라의 첫 번째 왕인 박혁거세의 모신(母神)이자, 신령한 산의 여산신(女山神)으로 회자돼 왔다.1000년을 지속된 강력한 고대 왕조의 출현과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니, 선도산 성모(신모)의 존재는 출발부터가 기세등등했을 터. ◆건국 영웅 낳고 도움을 주며, 죽은 후엔 제의(祭儀)의 대상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채미하 강사의 논문 ‘한국 고대 신모(神母)와 국가제의(國家祭儀)-유화와 선도산 신모를 중심으로’는 신라를 포함한 고대 왕국의 건국신화 속 여성이 가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건국신화는 초현실적·초자연적인 내용을 전함과 동시에 국가의 창업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포함하고 있다. 한국 고대 건국신화 역시 신화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가 있다. 이러한 한국 고대 건국신화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들이 있어 왔다. 이중 신모(神母)는 건국 영웅을 낳고 그들을 기르며 새로운 국가를 건설 내지는 건설하기 위해 떠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거나 시조의 조력자로 나온다. 이와 같은 신모로는 고조선의 웅녀와 고구려의 유화, 백제의 소서노, 신라의 선도산 신모와 알영, 금관가야의 허왕후, 대가야의 정견모주가 있다. 그리고 이들 신모는 죽은 후 국가제의의 대상이기도 하였다.”지금도 사당을 세워 성스러운 존재로 대접하는 선도산 성모에 관해서는 ‘나무위키’ 역시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 건국 전의 인물이자 신라의 여신. 고대 한국 문화와 역사에 영향을 끼친 신으로 여러 문헌에서 언급됐다. 사후 경주 선도산의 산신으로 숭배됐다. 혁거세 거서간(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신라시대에 숭배 받은 여성 산신”이라 정의하고 있다.취재를 위해 두 번째로 경주 선도산을 찾았을 때다. 무열왕릉 뒤편에 자리한 진지왕릉 앞에서 한참 동안 굳은 각오(?)를 다졌다.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에 산길을 꽤 오랜 시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선도산 성모사(聖母祠)까지 가기 위해선 그런 다짐이 필요했기 때문.마침내 성모사에 이르렀을 땐 섭씨 35도가 넘는 날씨임에도 어떤 서늘한 기운에 잠시잠깐 몸이 떨렸음을 고백한다. 이는 문학적 과장이나 엄살이 아니다.어쨌건 다음 연재에서는 성도산 성모, 또는 선도산 신모로 불리는 존재의 보다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리 곁 ‘신라 보물’ 서악동 삼층석탑무열왕릉 입구에서 차를 꺾어 3분쯤 오르막길을 오르면 한국 작은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조용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오가는 사람이 드물고, 땡볕 아래 산새 울음소리만이 청명한 곳. 정확한 주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705-1번지.바로 거기 신라인의 예술적 품격을 가감 없이 확인할 수 있는 ‘고대 보물’ 하나가 우뚝 서있다.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됐을 것으로 예측되니 만들어진 게 벌써 1400여 년 전.몹시 귀한 것임에도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어서였을까? 석탑이 가진 가치가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이럴 땐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다. 기자를 포함해 신라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서, 호기심은 많은 이들을 위해 ‘두산백과’가 이 탑에 얽힌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준다. 이런 내용이다.“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제 석탑.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됐다. 전체 높이 5.07m, 기단의 너비는 2.34m다. 무열왕릉 북동쪽 경사지에 있는 탑으로, 모전탑(模塼塔) 계열에 속한다. 지면에는 두꺼운 장대석(長臺石) 4장을 동서로 깔아서 지대석(址臺石)을 삼았고, 그 위에 8개 돌덩이를 2단으로 쌓아 직육면체의 이형기단(異形基壇)을 구성했다. 경주 남산동 동삼층석탑과 비슷한 형태. 기단 상면에 탑신을 받기 위한 1장의 판석(板石)이 끼어 있는 것은 남산동 석탑에 있는 3단의 층급(層級)에 비해 생략된 형식으로 보인다. 그 위 3층 탑신은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초층 옥신은 정육면체로 우주(隅柱)의 표시가 없으며, 정면 중앙에는 얕은 감형(龕形)으로 호형(戶形)을 만들고 그 중앙에 4개의 못자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금속제의 수환(獸環)을 달았던 자리로 짐작된다…(하략)”삼층석탑 부근은 계절 따라 피는 작약과 구절초로도 유명하다.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 지역의 문화유적을 보호하고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이 단체가 조성한 작약과 구철초 꽃밭은 역사 공부와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의 여유를 원하는 여행자 모두를 만족시켰다. 꽃이 만발하는 철이면 축제도 연다. 물론 이때면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게다가 서악동 삼층석탑에서 불과 수십m 거리엔 왕릉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고분이 4기나 존재한다. 신라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이 바로 거기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서악동, 혹은 서악마을 불리는 곳은 이처럼 ‘경주의 보석’ 역할을 하고 있다. 신라시대 땐 ‘부처가 다스리는 평화롭고 근심 없는 땅(西方淨土)’이라 불렸던 곳이 1천 년 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 역할을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다.바로 그 가운데 모든 걸 지켜보고 기억하며 세파를 견뎌 온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다. 그 탑을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24-08-13

불꺼지지 않은 포항의 홍등가...35개 업소 41명 여성 ‘힘겨운 삶’

지금도 진행형인 포항 성매매 집결지 문제. 그곳의 오늘은 어떠할까? 현재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엔 약 35개 업소와 41명의 성매매 여성이 남아 있다. 옛 포항역(1구역), 속칭 중대(2구역), 우체국 부근(3구역)으로 나눠진 그곳에는 구역별로 많게는 28명, 적게는 12명의 여성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40~50대이며, 70대 여성도 있다. 10~30년 동안, 그러니까 청춘 후 삶의 절반가량을 거기서 보낸 사람이 과반수다. 시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4월∼10월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업소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30대가 가장 많았다. 10대와 20대도 각각 3명과 7명으로 나타났다. 60대 이후 그곳으로 유입된 여성도 2명이나 됐다. 그들은 왜 성매매를 통해 생활을 이어갈까. 이유는 거의 유사했다. 돈 때문이었다.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이 절반 넘는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여성들 중 30%는 자녀를 돌보고 있고, 19%는 부모를 부양하고 있었다. 이들 성매매 여성 중 과반수(55.9%) 이상이 유리방에서 숙식도 함께 해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빛이 겨우 스며드는 이 유리방들은 거의 불법 개조된 것. 당연 안전은 보장받지도 못하는 먼 나라 얘기였다. 기자가 찾은 유리방 역시 1~3평 크기의 협소한 공간이었고, 벽 끝은 불에 타 갈색으로 변해 씁쓸함을 더했다. 기본적인 소방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작고 열악한 공간은 이들이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성매매 여성들은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 이상 일한다고 했다. 1일 평균 성구매자 수는 6명 내외. 화대를 역산하면 이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6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여성들의 손에 남는 수익은 적다. 번 돈을 포주와 50대 50으로 나눠야 하는 탓이다. 심지어 30대 70으로 나누는 여성도 있다. 거기에 유리방 월세 같은 고정 지출이 있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이유로 탈(脫)성매매를 희망하는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건 생계 지원(79.4%)이었다. 주거 지원(14.7%)과 부채 관련 법률 지원(5.9%)을 압도했다.여성들의 건강 상태 역시 예상대로 역시 좋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병 때문이었다. 고령층인 관계로 내분비내과 질환(고지혈증, 당뇨 등)을 앓는 여성이 2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산부인과 질환(자궁근종 등)을 앓는 여성이 23.5%나 됐다. 설문조사 대상 중 3명을 제외한 모든 여성이 내분비내과와 산부인과 질환 외에도 정신 질환, 치과 질환 등 다양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병원 방문을 꺼린다. 신분이 노출될까 두려워서다.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를 오래 관리해온 포항여성상담센터 관계자는 “병원 진료 과정에서 혹시 문제가 발생해 경찰에 인계되는 상황 등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아프더라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며 이런 부분이 이들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 성매매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성매매 여성들이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빚 때문이다. 빚은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어깨를 짓누른다.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여성들에게 빌려주는 ‘선불금’이 일단 빚의 시작이다. 다수의 여성들은 돈을 대여할 때 선불금만 갚으면 성매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돈을 변제하더라도 업주가 일을 시작할 때 배당 해 준 숙소부터 가구, 생활용품, 의류 등까지 모두 선불금으로 계산해 갚을 것을 요구 한다. 그 때문에 쉽게 빠져 나올 수도 없고 빚 또한 줄어들지 않고 이어질 뿐이다.  올해 6월 포항시 서부시장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두 명의 종업원이 성매매를 강요하는 포주를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포주가 이들에게 3000만 원의 선불금을 갚도록 압박하면서 1년간 원치 않는 성매매를 하도록 했다는 것. 유흥업소 등의 선불금은 이자가 높아 한 번 올가미에 묶이면 빠져 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구 포항역 성매매 업소 여성들도 그런 과정을 겪었고, 지금도 허덕이고 있다.성매매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는 다른 원인으로는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의지 부족도 있다.   이는 포항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집결지 여성 중 50%가 탈 성매매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나이가 많아 탈 성매매 이후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48.4%로 가장 많았다. ‘생계유지의 어려움’도 35.5%나 됐다. 포항시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탈 성매매 시책에 따라 맞춤형 재활대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의지가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여성단체 사이에서도 갈리는 성매매 관련 의견성매매를 둘러싼 시각은 여성단체들 사이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라 주장하면서 성매매 또한 여성을 착취하는 강간문화의 일종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같은 급진주의 페미니즘 내에서도 성매매를 성인들 사이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노동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면 노동법에 따라 성매매산업이 법제화되고, 성매매 여성들의 환경이 안전해 질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이것은 몇몇 선진국들이 성매매 합법화를 채택하는 근거가 됐다. 독일은 2002년 성매매 법을 제정해 성판매자와 성구매자 간의 계약 관계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고, 성판매자가 사회보험 등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각에선 성매매 집결지 정비 등 합법화를 통해 음지로 가는 성매매를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이처럼 성매매에 대한 의견은 학자와 여성단체들 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있어,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대책 수립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 “자활지원 조례 제정 시급”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연구진은 ‘성매매 피해자 등 자활지원 조례’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조례가 제정되어야만 자활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예산 수립이 가능하다는 것. 성매매집결지 정비부터 이곳 종사자들의 생계문제 해결 등은 예산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사회공론화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머리를 맞댈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래야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통상적으로 내놓는 틀에 박힌 기존의 자활 기본 안을 넘어선 ‘포항만의 혁신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시 차원의 자활지원센터뿐만 아니라, 포항의 다른 기관들도 성매매 여성을 위한 자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유도하고 포항 소재 기업들이 건전한 사회 만들기 차원에서 기여금 형식으로 성매매 여성 자활지원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성지영 인턴기자

2024-08-13

“포항 대전리, 3·1운동의 역사·문화 계승하는 호국 성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국권 회복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3·1의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업적이 없었다면 조국 광복은 이룰 수 없었겠죠.”포항 북구 송라면 대전리 마을. 이곳은 3·1운동 때 영일 지역 만세운동의 근거지가 된 마을이며 14명의 3·1의사가 난 곳으로서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호국 성지다.광복절 79주년을 앞두고 12일 대전리에서 만난 안시호(62·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리) 대전3·1 독립운동 유족회장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포항 지역의 3·1운동 의사들의 숭고한 독립 정신과 호국정신을 기억하고,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매년 대전리 3·1만세촌에서는 3·1절 기념행사와 만세 재현 행사를 개최해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고 마을을 소개하며 반겼다.안 회장은 대전길120번길 22-5에 자리한 대전3·1의거 기념관에서 지난 2019년부터는 단체 관람객에게 대전리 3·1운동사를 전하는 도슨트(전시해설) 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현재 1층으로 된 기념관을 2층으로 확장해 체험관 등 부대시설을 갖춰 요즘 세대에 맞춘,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독립운동 기념관으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20년째 대전3·1 독립운동 유족회를 이끌고 있는 안 회장은 1919년 3·1운동 당시 포항시 북구 청하면 청하장터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3·1만세 운동을 일으킨 송라면 대전리 출신 윤영복, 윤영만, 이준석, 이영섭, 이준업, 안천종, 안상종, 안덕환, 안화종, 김진순, 김종만, 이명만, 김진봉 등 3·1의거 14명 의사 중 한 사람인 안도용(1893∼1921) 의사의 손자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던 아버지가 8살인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인 안도용 의사가 돌아가셔서 힘들게 자랐을 거 같은데, 어땠나?△할아버지는 감옥에서 고문당하신 후유증으로 집에 오신 다음 계속 누워 생활하시다 2년 후에 돌아가셨다. 어린 아버지는 할아버지 곁에 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할머니로부터 1919년 3·1 운동 당시 포항 청하 독립 만세운동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포항 대전리 ‘만세촌’ 14명의 의사 중 9명이 대전교회 교인이었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아버지가 기억을 많이 못하고 계신 탓에 나는 이명만 의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1981년, 대학교 1학년 때, 14인의 의사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명만 의사(당시 81세)가 서울에 있던 나를 불러 14인 의사의 공적을 적어 보훈청에 제출하라고 하셨다. 이명만 의사는 그 5년 뒤에 돌아가셨다. 이 의사의 말씀에 따르면 1919년 3·1 운동 당시 대전교회는 영수 윤영복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전교회 창립자인 이익호 선생의 아들 이준석·이준업 형제의 집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고, 교인들은 3월 21일 청하 장날에 맞춰 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90여 명이 검거됐고 대전리 마을의 14인 지사도 끌려갔다. 이익호 선생은 배재학당 졸업 후 낙향해 청하면 일대에 3개의 교회를 세워 기독교 중심의 구국 계몽운동을 전개했지만 일찍 병사해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의식과 신앙 구국의 의지가 아들과 교인들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교회가 만세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안시호 대전3·1 독립운동 유족회장 -대전3·1의거 기념관을 소개한다면.△이준석·이준업 형제의 생가 바로 옆에 대전3·1의거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준석 의사의 증손자인 이병찬 계명대 석좌교수가 3·1의거 당시 태극기를 제작했던 생가 부지를 포항시에 기증해 포항시가 2001년 개관했다. 이곳에는 대전리 출신 14인 의사들이 당시 항일 운동을 전개하면서 사용했던 유품과 판결문, 훈장, 영정 등 관련 유물 180여 점이 전시돼 있다.-다른 지역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 등 여러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데, 대전3·1의거 기념관의 차별점이 있다면?△포항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먼저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 3월 12일 대전리 출신 14인과 청하 출신 9인이 중심이 되어 청하장터에서 수백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펼쳤으나 무자비한 무력 탄압으로 23인이 투옥되고 옥사하기도 하였다. 대전리 사람들이 체포되자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두곡숲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옥고를 치르고 마을로 돌아온 의사들은 청년회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이어갔으며, 어린아이들도 골목에서 만세놀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태극기를 제작했던 장소에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 옆 복원한 이준석 의사의 생가에는 당시 대전교회의 종탑과 태극기 만들던 장면도 재현되어 있다. 마을 안에는 1913년 3월 2일 설립되어 만세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대전교회가 여전히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독립운동사 교육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듯한데….△독립운동 기념관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억의 전달 장소로 이용돼야 한다. 그래서 포항시에서 시대의 흐름이나 요즘 세대에 맞게 어떻게 변화해야 할 건지 다방면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특별전시나 문화행사, 교육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문화정책 전문가, 해설사 배치 등을 위한 시의 예산도 필요하다. 단지 건물을 세우고 1년에 한 번 이벤트성 3·1절 기념 행사를 운영하는 것에만 기념관 건립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모순이다. 현재적 시점에서 미래에 전달하는 역사 교육 기관으로서, 기념관은 현재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분류되고 있다.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제2조에, 역사·고고(考古)·인류·민속·예술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정의돼 있다. 여러 물품을 모아놓은 공간이라는 의미로 접근하기보다 유산을 수집, 보존, 연구, 교류, 전시하는 옛사람들의 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현실적인 방법 중엔 우선 독립운동가의 개별적 스토리를 좀 더 들여다보고 콘텐츠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전3·1 독립운동의 주인공 격인 대전교회 설립자 이익호 선생을 조명하는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80호 작은마을에서 14명의 멸사봉공 독립운동가가 나온 전국 유일의 마을인 만큼 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화제 개최 또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면?△2017년 독립·참전유공자에 대한 지원 강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로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생활 형편이 어려운 (손)자녀에 대한 생활지원금이 신설됐다. 기준중위소득(전체 가구 중 소득을 기준으로 5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 50% 이하 및 70% 이하의 (손)자녀가 지원 대상이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융통성 있는 지원금 설정과 후손 예우의 폭을 넓혀 증손자까지 보상 대상에서 포함시켜 주었으면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사진/안성용 사진가 제공

2024-08-12

내 목소리와 똑같은 AI 목소리… 인류 문명 확 바꾸나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며 지난 5일에는 ‘검은 월요일’에 빠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대형 악재는 없었다. 무슨 일일까?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8.77% 급락하며 2500선이 무너졌고, 일본 닛케이225(닛케이 평균주가) 지수는 12.4% 폭락해 3만1000 선을 위협받았다. 미국 SP500, 나스닥, 다우존스 산업 평균도 모두 2~3%대 지수 하락률을 나타냈다.이번 폭락의 배경 중 하나가 인공지능(AI) 회의론 확산이다.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관련주 상승을 이끌던 AI 투자와 기술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모기업), 아마존, 테슬라, 메타 등 이들 ‘매그니피센트 7’의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AI 거품론이 힘을 얻고 있다.빅테크 기업들이 수익성만 신경 쓸 뿐 AI 윤리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으면서 AI 윤리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오픈AI는 챗GPT를 활용해 논문을 쓰면 적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생성형 AI 모델인 제미나이로 어린이에게 편지를 쓰라는 광고를 냈다가 비판에 휩싸이고, 백인인 역사적 위인을 유색인종으로 생성하는 등 오류가 잇따르자 이미지 생성 기능을 중단하기도 했다.오픈AI는 챗GPT-4o에 유명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비슷한 목소리를 사용했다가 소송에 휘말렸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AI 이미지 생성 도구가 미성년자 음주,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 등 유해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내부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그렇다면, 스티븐 호킹 박사의 예언처럼 AI가 ‘인류 문명 역사 최악의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초 AI의 한계 지적하고 위협을 걱정하는 과학자들과학적 측면으로 초 AI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과 이로 인한 위협을 걱정하는 과학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난 2017년 11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웹서밋테크놀로지 콘퍼런스에 참여해 “AI는 인류 문명사의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 “자율적 작동 무기로 인류를 위협하고, 모든 인류 경제도 파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AI 버블(거품) 발생 가능성 놓고 수익성에 물음표 던지는 빅테크들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이후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잇따라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AI 서비스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년 전 AI가 향후 10년 동안 세계 경제 생산량을 7% 증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던 골드만삭스도 AI 수익성에 물음표를 찍었다. 골드만삭스의 짐 코벨로 애널리스트는 최근 발표한 AI 관련 보고서에서 “세상에 쓸모가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과도하게 구축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도 최근 보고서에서 “(챗GPT가 나오고) 2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소비자나 기업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챗GPT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깃허브 코파일럿’뿐”이라면서 월가의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음을 짚었다.월가의 논쟁은 기업의 실적 발표날 현실로 들이닥쳤다. 7월 23일 구글의 2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에게 “분기당 120억 달러(약 17조 원)에 달하는 AI 투자가 언제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할 것인가”를 물었다. 피차이는 “(AI에 대한) 과소 투자 위험이 과잉 투자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고 답했다. 수익성 대비 과잉 투자는 맞지만, 과소 투자의 위험이 더 크므로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을 것이란 말이었다.지난 2분기 구글의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14%, 순이익은 29% 증가하는 등 월가의 예상치를 충족했지만 이날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주가는 AI 투자에 대한 우려로 오히려 5% 하락했다. 투자자들이 슬슬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AI가 실제 어떠한 이론을 따르든 시장 심리는 이미 ‘AI 버블(거품현상)’에 대한 피로감이 짙게 형성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처럼 ‘옥석 가리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기업들이 수익을 독차지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 10명 중 6명 “AI 기술 이점이 위협보다 커”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 추진계획’의 후속 조치로서, 지난 6~7월에 ‘인공지능(AI)의 안전, 신뢰 및 윤리’를 주제로 디지털 공론장을 통한 국민 의견 공론화 결과를 지난 7일 발표했다.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국민들의 57%가 AI 기술의 잠재적 이점이 위험보다 많다고 답했다. 또 55%는 안전한 AI 발전을 위해서 규제보다 혁신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가장 중요한 정부 정책으로 34%의 국민이 ‘AI법 제정 및 윤리기준 마련’을 꼽았다.8월 7일부터 9월 6일까지 디지털 접근성 강화 주제로 대국민 설문조사와 정책 아이디어 공모전이 디지털 공론장을 통해 진행된다.△AI가 부정적 환경 초래하는 주체적 대상 될 수 있다는 미래학자들‘4차 산업혁명시대’에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기반 인프라의 조성은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 요소와 더불어 비인륜적일 수 있는 매우 부정적 환경을 초래하는 주체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AI가 인간 사회의 윤리 규범을 판단할 수 있는 인지 지능학습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자가 학습을 통해 반인륜적 알고리즘을 스스로 생성하고 나아가 인류에게조차 대립하게 되는 사태에 대한 우려가 깊다. 그런 우려와 예측은 세계 유수의 석학들에 의해 예견돼왔다.2014년 5월 영국 인디펜던트지 기고문에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프랭크 윌책 MIT대 교수, 맥스 태그마크 MIT대 교수, 스튜어트 러셀 UCB 교수 등 4명은, “인공지능이 인류 사상 최대 성과인 동시에 최후의 성과이자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AI의 콘텐츠 검열 능력은 검증이 불가능세계적 SNS 기업인 페이스북 사가 2017년부터 운영해온 성 착취 혹은 자해, 테러 암시 등 유해 콘텐츠를 검열해 삭제하는 ‘콘텐츠 모더레이터(Contents Moderator)’들이 강박증세 및 비정상적인 행동과 퇴폐적인 행위, 심지어 자해 영상 속의 상황들을 따라 하는 모방 자해 행위를 시도해 이들을 위한 정기적인 상담과 심리치료까지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페이스북 사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AI가 단기적으론 ‘콘텐츠 모더레이터’ 작업과 비교해 예전만 못할 것으로 본다”라고 인정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AI는 사회적 규범이나 윤리성을 감안해야 하는 인지능력과 감정의 이해는 아직까지 인간을 모방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을 대변하고 있다. 이는 AI에게 적용, 학습 시켜야 할 과제로 사회 윤리적 가이드가 최우선으로 필요하다는 점도 시사하는 것이다. △AI의 사회윤리 이슈2016년 3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트위터, 그룹미(GroupMe), 킥(Kik) 등의 SNS를 통해 채팅이 가능한 AI 챗봇 ‘테이(Tay)’를 공개했고, 공개 후 단 16시간 만에 운영을 중단한 일이 있었다. AI 챗봇 ‘테이(Tay)’ 스스로도 인종차별적 언어로 대화를 했기 때문에 이를 모니터링하던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AI ‘테이(Tay)’의 서비스를 끊어버리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었다.당시, AI 챗봇 ‘테이(Tay)’는 말을 따라 하는 게임 ‘내 말을 따라 해 봐’를 통해 의도적으로 세뇌하고자 했던 사용자들의 악용에 통제 알고리즘의 방어기제는 작용하지 못했다.더 심각했던 상황은 사용자들의 욕설 및 인종차별 발언과 더불어, 심지어 나치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지어낸 말”이라는 거짓된 내용의 말을 AI 챗봇 ‘테이(Tay)’가 무분별하게 그대로 학습하게 됐던 점이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인지됐다. 이러한 AI 챗봇 ‘테이(Tay)’사건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사는 2년여간 AI 윤리 부문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표방하며 윤리 가이드 라인을 정립했다. 모든 AI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공정성 ▲신뢰성과 안전보장 ▲투명성 ▲프라이버시와 보안 ▲포용성 ▲시스템에 대한 책임 등 6가지 원칙을 수립·적용하기로 했다. 최근 장애인 보조(도움) 기술에 AI 적용 시 음성인지 발음교정 텍스트 변환, 오디오 정보의 3차원 그래프 구현으로 청각이나 시각장애인들의 이동성 개선에도 ‘윤리 가이드’를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11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얻겠다” 각오로 47년 산업현장 외길

“지금 우리 사회는 학력이 아닌 능력위주의 사회로 변모했습니다. 자기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자기 일을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기능한국인, 국가품질명장 등 수많은 타이틀을 거머쥔 김석준(63) 기계정비분야 대한민국 명장.김 명장은 한국전쟁 당시 총상을 입은 아버지 대신 막냇동생의 학업을 돕기 위해 현대제철 포항공장(구 강원산업)에 병역특례요원으로 입사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외국에서 도입한 신설비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하는 등 고장 제로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약 반세기 동안 외길을 걸어왔다.포항시 숙련기술인협회 초대회장을 맡고 있는 김석준 명장과 최근 인터뷰를 가졌다. - 포항시 숙련기술인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작년 정부에서 숙련기술인의 날(9월 9일)을 제정함에 따라 포항시에 거주하는 대한민국명장, 우수숙련기술자, 경북도최고장인, 포항시최고장인 45명이 포항시의 기술발전을 위한 기업의 기술전수와 후진양성을 위해 결성됐다. 지금까지 100여 건의 기술전수와 불우이웃돕기 및 자연정화활동을 비롯한 봉사활동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협회 발족에 많은 도움을 준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에도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영리 단체이다 보니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행정적인 지원이 아쉽다.-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나.△경북 울진이 고향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립인 부산기계공고로 진학해 기숙사비 이외에 전액을 국비로 공부할 수 있었다. 2학년부터 장학금을 받아 기숙사 비 일부를 충당했다. 3학년 때 부산지방 기능경기대회 전기용접분야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으나, 전국대회에서 부정행위로 의심돼 최고 점수를 받고도 탈락이 됐다. 이때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얻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그 교훈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정표가 됐다. 1977년 교원자격증을 취득해 영월 공고에서 2년 8개월 근무하며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배출 및 국가기술자격증 전원 취득 등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나, 첫발을 내딛은 산업현장은 적응하기에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처음 접해보는 기계정비를 이해하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히고 용접과 절단은 기본이고 공, 유압을 비롯한 관련분야의 기술을 익혀야만 했다. 분임조 활동을 통한 개선활동으로 획기적인 고장시간 단축과 원가절감은 물론 안전사고 예방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동안의 실적을 인정받아 월급을 받아가면서 창원기능대학에서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현대제철 1호 기능장이 됐다. 미국을 비롯한 9개 나라의 해외연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숙련기술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명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극복 노하우는.△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드시 해결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끈기가 해결의 열쇠였다고 믿는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경험이 동반되지 않으면 절반의 성공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개발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의 힘은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동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명장이 되기 위한 특별한 노력보다는, 폭 넓은 지식의 습득은 물론이거니와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2011년 산업포장을 받아 대한민국명장 선정자들과 유럽 연수를 같이 가게 됐다. 일행 중 영월공고에서 첫해에 졸업시킨 제자가 먼저 명장이 돼 동행을 해 뿌듯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명장에 도전하는 확실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9년 근로자의 날에 포항시에서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을 때가 직장생활의 가장 보람된 시간으로 기억된다.- 앞으로의 포부는.△47년 동안 굴곡이 많은 외길을 걸어왔고 내가 한 노력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다. 앞으로는 건강을 잘 챙기면서 컨설팅을 통해 중소기업의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 직업진로 특강 등을 통해 후배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또한 그늘진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과 그동안 갈고닦아 온 재능을 모두 기부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돌이켜보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고 있을 것이며 그땐 지금보다 더 멋진 오솔길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 밖에 하고 싶은 말은.△살아오면서 넘기 어려운 무수히 많은 벽을 마주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때마다 원인을 찾으면 해결 방법이 보였다. 그 원인을 찾아가는 길에는 많은 노력과 지식이 필요했다. 반세기 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을 배웠다. 사무직에 비해 현장직은 보수도 적었지만, 승진과 대우에서도 학력의 벽을 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학력의 벽을 넘어 능력 중심 사회가 됐다. 자기 적성에 맞는, 정년이 정해진 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을 찾아 1만 시간 이상을 투입한다면 성공이 보장되리라 확신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해 본 일이 많은 사람 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가는 길에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부단한 노력을 이어간다면 용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8-11

한적한 시골장터 ‘갯마을 차차차’ 촬영 이후 글로벌 관광지로

‘내가 맛집 기사 한 줄 쓰면 다음 날 음식점 앞에 줄이 쫙 섰지’. 10여 년 전 맛집 소개로 필명을 날리던 한 선배의 후일담이다.몇 줄 글에도 손님들이 식당을 칭칭 감던 신문의 위력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오히려 ‘6시 내 고향’이나 ‘생생 정보통’ 같은 방송 매체에 주도권이 넘어가 버린 느낌이다.요즘은 특정 장소를 알리는데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 세트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극(劇)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드라마 현장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MZ세대들에게 소구력이 크다고 한다.근래 포항에서 드라마에 등장한 후 크게 인기를 끄는 곳이 있다. 바로 포항시 청하면에 있는 ‘청하시장’이다. 2021년 tvN ‘갯마을 차차차’가 방영되면서 청하시장은 전국적 명소 반열에 올라섰다. ‘3년이나 지났는데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아직도 시장통에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심지어 곳곳에서 외국인들의 수다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한가로운 시골 전통시장이 경북의 명소를 넘어 글로벌 관광지로 도약한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려 후기 이후 동해안 지역 물산 집중포항에 본격적으로 인간이 터를 잡은 것은 흥해읍의 지석묘를 통해 보듯 청동기시대부터였다. 이 지역엔 변진 24국 중 하나인 근기국(勤耆國)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들은 동해안을 배경으로 정치 세력을 형성했다. 근기국은 후에 신라에 복속되면서 경주 세력의 군현체제 아래 편제됐다.6세기 후반 청하 일대에는 냉수리고분을 축조한 세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덤 양식, 부장품을 통해서 볼 때 냉수리 세력은 포항의 북부, 동해를 배경으로 상당한 정치, 경제 세력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통일신라시대 아혜현(阿兮縣)이 있었던 청하면 일대는 고려 후기 이후 동해안의 물류 집산지로 뿌리를 내렸다.‘청하(淸河)’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태조 13년으로 이때부터 청하는 흥해, 영일, 장기와 함께 독자적인 행정 구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청하시장의 개시(開市) 연도는 여러 문헌을 종합해 볼 때 1920년대 일제강점기로 추측된다. 1910년대 이미 청하면은 17개 리(里)와 동(洞)을 관할할 정도로 면세(面勢)를 형성했다고 하니 전통시장의 출현은 훨씬 그 이전이 아닌가 한다. ◆1970~90년대 장날엔 장꾼들 대혼잡청하시장은 위로 영덕, 남쪽으로는 흥해 사이에 위치한 소규모 시장이다. 주변에 우시장, 어시장이 들어섰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고 장옥(場屋) 규모도 크지 않아 읍면 단위의 상권을 담당한 정도였던 것 같다.청하시장은 단층상가 두 곳을 아케이드로 연결한 형태로, 점포수도 많지 않다. 그러나 시장 전체 면적은 상당히 넓은 편이고, 광장이 잘 발달돼 있어 상설시장보다는 오일장(1, 6일)에 최적화된 구조다. 현재 대로변과 장옥 등의 상가는 약 90여 곳으로, 입점 상가들은 보통 시골 장터처럼 과일, 건어물, 철물점, 신발, 잡곡, 의류, 어류, 농약, 종묘, 가축 등이다.30년째 시장을 지켜왔다는 한 어르신은 “1970~90년대만 해도 청하시장 장날엔 인근 흥해, 영덕, 포항은 물론 영천, 경주에서도 장꾼들이 몰려들 정도로 성시(盛市) 이루었다”고 말한다. 바다에 인접해 꽁치, 가자미, 오징어, 고등어 등 각종 수산물이 풍부하고, 또 인근에 평야, 산지 농사가 잘 발달해 과일, 채소 등 농작물 난전도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다.한때 주변 20~30리 장꾼들과 난전들을 불러 모으던 청하시장은 2000년대 이후 상권이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령화, 이농현상, 저출산 등 전반적인 사회현상 때문이다.◆‘갯마을 차차차’ 방영 이후 전국적 명소로경북 동해안 오지의 작은 시장으로 활력을 잃어가던 청하시장에 2021년 귀한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tvN의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제작팀이었다.짠내, 사람 내음 가득한 바닷가 마을 ‘공진’에서 펼쳐지는 힐링, 로맨스 드라마는 국내는 물론 넷플릭스 시청률 전체 순위 10위권에 랭크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드라마 히트는 극의 무대인 청하시장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음은 물론이다. 드라마가 회(回)를 거듭할수록 촬영장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어났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다음에 초까지 약 10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시장을 다녀갔다고 한다. 한 달 평균 3만~4만 명이 이곳을 다녀간 셈인데, 덕분에 지역 경제에도 관광 특수가 일었고, 시장 매출도 몇 배씩 늘었다고 한다.노점을 운영하는 한 어르신은 “드라마가 방영되던 당시에 하루 종일 젊은이들이 시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세트장을 둘러보느라 연일 인파로 북적거렸다”고 말한다.드라마를 시청했던 외국인들의 방문도 러시를 이뤘다.모종을 파는 한 상인은 “주말이면 관광객들을 실은 관광버스, 승용차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며 “덕분에 시장통에서는 하루 종일 외국어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고 기억했다. ◆보라슈퍼, 공진반점, 청호철물 그대로청하시장엔 현재도 드라마 속 공진시장 세트장과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드라마 촬영 당시 시장의 25곳 점포는 드라마 세트장이 됐지만 상인들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촬영에 협조했다고 한다.동네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보라슈퍼’도 남아 있다. 현재 보라 엄마는 없지만 쫀드기, 아폴로, 사탕, 과자와 장난감들을 팔고 있다.자장면, 탕수육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던 ‘공진반점’ 간판도 그대로다. 대신 메뉴는 곰탕, 소머리국밥, 국밥으로 바뀌었다.보라 아빠가 일하던 ‘청호철물’엔 지금도 옛날처럼은 아니지만 셀카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문앞에 소품용 의자를 준비해 사진을 찍도록 배려했다. 전직 가수 오윤이 운영하던 ‘한낮에 커피 달밤에 맥주’도 사진 촬영 명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파스텔톤의 건물과 고즈녁한 풍경 덕에 드라마 당시 낭만적인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여기가 정말 우리가 찾던 곳이었어요.’ 당시 드라마 제작진들이 촬영을 위해 이곳을 답사했을 때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이런 ‘준비된’ 세트장 분위기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고 시장이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개인과 국가가 성장, 발전 과정에서 흥망성쇠를 겪듯 동네 어귀의 시장도 수없이 부침(浮沈)을 반복한다. 일제강점기 청하, 신광면에서 생필품 조달 창구로 시작한 청하시장은 1980~90년대 사방 30리 난전(亂廛)들을 불러 모을 정도로 번창하다 안타깝게 이제 쇠락기를 맞았다.이런 침체기에 갑자기 나타난 ‘갯마을 차차차’ 촬영팀은 시장을 지역 명물, 국가적 명소를 넘어 글로벌 관광지로 도약시켰다.시장으로 치면 로또를 맞은 셈인데, 이젠 자치단체와 상인들이 이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가 아닌가 한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8-08

부러지고 굽은 몸통은 ‘인고의 연륜’ 새겨놓은 훈장

매번 올 때마다 특별한 감흥을 주는 성밖숲은 생명 문화의 산실이라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버드나무 종류는 40여 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서도 왕버들은 가장 큰 교목이면서 장수하는 나무이다. 수관 폭이 어느 나무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여름에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로는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왕버들 단일 수종의 노거수로 숲을 이룬 곳은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한 곳일 것이다. 숲은 나무들과 그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많은 동식물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 마을이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사의 과정이 계절마다 펼쳐지는 삶의 현장이고 무대이다. 황혼이 되니 외로움이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옆구리를 찌르며 찾아든다. 어딘가에 정을 주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애를 쓴다. 하천에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사는 예쁜 물고기는 어항이라는 감옥에 넣어두어야 하고 또한 먹이를 주어야만 함께 할 수 있다.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도 새장 우리에 가두고 먹이를 주어야 한다.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나비와 잠자리는 가까이하기에는 먼 당신이다. 꿀을 주는 꽃을 쫓아다닌다. 그들의 본성을 짓뭉개고 자유를 빼앗아 나의 외로움을 달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나를 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예쁜 꽃도 화무십일홍이라 친해지려고 하면 지고 만다. 이들은 단지 만질 수도 없고 그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거리에서 바라만 보아야 한다. 그러나 나무와 숲은 계절 따라 새 옷으로 단장하고 언제나 한 곳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그의 모습은 늠름하고 세월이 갈수록 연륜이 더해져 나의 경외심까지 빼앗는다. 외로워 찾아가면 언제나 변함없이 맞이해 주는 나무와 숲은 황혼의 반려목으로 위안은 물론 지혜와 교훈을 준다. 성밖숲을 찾는 이유도 그러하다.성밖숲의 사계절은 독특한 모습을 띠고 우리를 부른다. 겨울은 곱게 물든 단풍잎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졸가리가 겨울바람 매 맞는지 윙윙거리며 우는 소리 낸다. 옹두리 훈장을 몸에 달고 추운 겨울바람에 맞서고 있는 고령의 왕버들을 보면 역경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한다. 봄의 성밖숲은 거칠고 노쇠한 몸에서 고운 연노랑 잎을 틔우는 모습에서 생명력의 끈질김을 배우게 한다. 나뭇가지의 잔설을 녹이고 녹색의 정원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자연이 연주하는 바람과 나뭇잎의 합창하는 노래를 들으며 마음은 즐겁다. 여름은 무성한 녹색 잎에서 맑고 신선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새들이 노래하는 공연장이다. 맥문동 보랏빛 꽃은 왕버들이 앉은 꽃방석인가 아니면 꽃목걸이인가. 푸른 이끼로 몸을 단장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왕버들 노거수를 볼 때면 경외감이 절로 든다. 가을은 그 무성한 녹색의 잎이 노란 단풍으로 물든다. 뜨거운 여름과 태풍에도 끄떡없던 녹색 잎이 만추에는 새들의 작은 날갯짓에도 못 이겨 꽃비처럼 우수수 낙하한다. 이렇게 또 겨울을 맞고 봄을 기다리는 왕버들 숲을 거닐면서 황혼의 나를 돌아보면 왕버들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왕버들과 친근해지면 질수록 묘한 느낌이 나를 붙잡는다. 고령의 왕버들 가지는 일부 고사 되었거나 비바람으로 부러져 나가기도 했다. 굵은 원줄기는 온전하지 못하고 몸통 속은 구멍이 뻥 뚫어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의 몸통 줄기나 피부의 모습은 세월을 맞이하고 보낸 인고의 연륜을 새겨놓은 훈장이 아닐까. 하늘 높이 뻗지 못하고 굽은 모습, 속살을 모두 내어주고 텅 빈 모습, 몸에 이끼 옷을 걸친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반 천 년의 역사 기록물이고 아픈 추억의 흔적이 아닐까. 나뭇잎의 크기와 두께는 하늘 쪽 나뭇가지에는 작으며 엷다. 반대로 뿌리 쪽 나뭇가지에는 잎이 넓고 두껍다. 또한 가장자리 잎은 안쪽 잎보다 작고 엷다. 빛에너지를 받은 환경조건에 따라 잎의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보면 공정과 공평이 똑같이 대하고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 아닌 조건에 따라 달리하고 차등을 두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잎도 위치에 따라 모양과 두께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현재 내 위치를 원망하기보다 위치에 맞게 내가 변해야겠다는 교훈을 터득한다. 지난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성밖숲과 같은 마을 숲을 보고 “인류 문화사적으로 독창적인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토지와 야생에 대한 지속 가능한 이용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라고 하면서 놀라워했다고 한다.세계 어느 곳도 마을 숲을 만들고 보호하고 가꾸어 온 나라는 없다. 성밖숲 운동장과 잔디광장도 왕버들 숲으로 돌려주면 어떨까.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60여 그루가 넘던 왕버들 노거수가 지금은 50여 그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500살이라는 나이의 한계령을 넘은 왕버들이 고령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태풍이나 노화로 사라져가고 있다. 일찌감치 대비하는 것이 숲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우리는 문명에 이끌려가며 천복으로부터 유리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신비주의 영역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현실의 간극을 좁혀보려고 계절 따라 성밖숲을 찾아 생명 문화를 이해코자 한다. 생명 문화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생명과 관련하여 성주에는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다. 가장 많은 왕자의 태를 보관하고 있는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한 곳이다. 성밖숲을 ‘생명문화숲’으로 개명하면 어떨까? 성 밖이란 어감이 왠지 아웃사이드란 느낌이 든다. ‘생명문화숲’과 ‘태실’을 연계한 생명 문화를 꽃피울 수는 없을까?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천연기념물 403호다,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번지 일원에 조성된 마을숲이다. 나이가 약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2그루가 자라고 있다.숲은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으로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가슴높이 둘레가 1.84~5.97m(평균 3.11m), 나무 높이는 6.3~16.7m(평균 12.7m)에 달한다. 성밖숲은 조선시대 성주읍성의 서문 밖에 만들어진 인공림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보림수(裨補林水)인 동시에 하천 범람에 대비한 수해방비림이기도 하다.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읍의 옛 문헌인 ‘경산지(京山誌)’, 및 ‘성산지(星山誌)’ 등에 수록되어 있다.구전에 의하면 조선 중기 성밖 마을에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일일 빈번하였는데, 한 지관이 말하기를 “마을에는 족두리 바위와 탕건 바위가 서로 마주 보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발생하니, 이를 막기 위해 두 바위와 중간 지점 이곳에 밤나무 숲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하여 숲을 조성했더니 우환이 사라졌다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했다고 한다. 성밖숲은 마을의 풍수지리 및 역사·문화·신앙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재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裨補林·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안녕을 위해 조성된 숲)으로 향토성과 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 곳이다./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8-07

아미타신앙 뿌리 둔 ‘무열왕대 先代의 극락왕생’ 발원

튀르키예가 터키로 불리던 13년 전 여름. 1개월쯤 그곳을 여행했다. 서쪽은 유럽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현대적 도시로 변화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터키 최대 도시’로 불리던 이스탄불이 그랬다.반면 동쪽으로 갈수록 이슬람문화의 색채가 짙었고, 주민들 또한 보다 완고한 종교적 신념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한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종교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 여행이 끝나갈 무렵. 터키와 이란 접경에 자리한 아라라트산(Ararat Mt.)을 찾았다. 무언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듯한 눈 덮인 산봉우리를 보며 무신론자인 기자도 잠시잠깐 외경(畏敬)을 느꼈다.실제로 아라라트산은 간단찮은 역사와 장대한 설화를 동시에 간직한 공간이다. ‘종교학대사전’을 펼쳐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터키의 동쪽 끝, 이란의 국경 근처에 솟아있는 화산이다. 터키 최고봉이며 터키어로는 알 다아(Agn Dagl)라고 부른다. 아라라트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나뉘는데, 대(大)아라라트산은 5165m다. 만년설로 덮여 있다. 소(小)아라라트산은 3925m. 1829년 독일인 F. 파로트가 첫 등정에 성공했다. 전설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가 그 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산 인근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에게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국민의 단결과 통일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산으로 대접받는다. 아라라트는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8세기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왕국의 명칭으로서도 사용됐다.”아라라트산 기슭엔 흙으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성(城)도 있다. 그 성 아래 조그만 마을 숙소에서 이틀을 머물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경북에도 전설과 더불어 역사를 품은 성스러운 산이 있을까? 있다면 어디일까?” ◆아라라트산 이상의 감흥을 선물한 경주 선도산귀한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선 수고와 고생이 필요하다. 때는 폭염이 시작되던 시기. 무열왕릉이 자리한 선도산 입구에서 ‘마애여래삼존불’이 우뚝 선 정상 부근까지는 꽤 오랜 시간 산길을 올라야 했다.기자는 물론 동행한 사진기자까지 포악한 흰줄숲모기로 추정되는 것들에게 수없이 목덜미와 팔을 뜯기고, 가져간 수건을 땀으로 온통 적시고서야 마침내 바위에 새긴 거대한 석불(石佛) 앞에 설 수 있었다.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을 본 첫 느낌은 ‘아, 이곳은 튀르키예 아라라트산 못지않은 이야깃거리를 간직한 성산(聖山)이겠구나’라는 것.세월이 마모시킨 불상의 모습은 온전치 않았으나,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aura·예술품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와 격조)는 1400년의 시간을 무색하게 했다. 힘겹게 만난 불상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는 사이 등으로 흘러내린 땀이 서늘하게 식었다.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은 ‘선도산 아미타삼존상(仙桃山 阿彌陀三尊像)’으로도 불린다. 영남대학교 미학미술사학과 최미경의 논문 ‘경주 선도산 아미타삼존상-조성시기와 목적에 관하여’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경주 선도산 아미타삼존상은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하며 현재 보물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도산 불상은 신라 불상 중에서 단석산 마애불상군을 제외하면 조성 규모가 가장 크고 신라 불상의 고유한 특징과 함께 중국 북제-수대(北齊-隋代)의 다양한 불상 양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불상이 위치한 선도산은 신라에서 서악(西岳)이라 불리며 선도성모(仙桃聖母·선도산의 성스러운 어머니)의 주재처로 숭상 받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선도산 아래에는 무열왕릉을 비롯하여 서악리 고분군 및 무열왕 후손의 묘가 있으며 불상은 선도산에서 이들 고분군을 내려 보는 것처럼 조성되어 있어 지리적 위치 또한 주목을 받았다.”이로써 기자가 당시 받았던 느낌은 터무니없는 상상이나 과장된 감정이 아니란 게 증명됐다.신라 불상 중 조성 규모가 두 번째로 크고, 서라벌 사람들이 숭배하던 여신(女神)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야기되며, 통일제국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이름 높은 무열왕의 유택(幽宅)을 내려다보는 곳에 만들어졌으니. ◆중국 화산(華山)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앞서 ‘튀르키예의 명산’으로 불리는 아라라트산을 살펴봤으니, 가까운 나라 중국이 내세워 자랑하는 산 가운데 하나도 잠시 돌아보자. 화산(華山)은 ‘중국의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 불린다. 선도산이 신라의 서악이라면, 화산은 거대 대륙 중국의 서악인 것.중고교 시절 무협소설을 읽으며 지냈던 지금의 중년이라면 화산을 어떤 방식으로건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래 상상출판에서 펴낸 ‘중국 시안 여행’ 중 이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한다.“중국 무협에 관심 있다면 화산은 가장 궁금한 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김용의 ‘소오강호’에서 영호충이 화산 검종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장면, ‘신조협려’에서 북개 홍칠공과 서독 구양봉이 서로 내공을 겨루는 장면이 묘사되는 곳은 바로 화산과 화산 일대. 화산은 친링(秦嶺)산맥 동단에 최고 2437m까지 솟아 있고, 옆으로는 위수(渭水)가 흘러 웅장하게 느껴진다. 화산은 중국 도교의 성지이자, 무협의 근본이기도 한 오악(五岳) 가운데 서악(西岳)으로 불린다. 오악 중 가장 높고, 전체가 바위산의 분위기라 험준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화산의 등산로는 외줄기로 등산객들 사이에서 난코스로 유명하다.”사실 무협소설은 과장된 상상력과 허풍을 재료로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재미가 있다.우리가 통상 ‘설화’ ‘전설’ ‘민담’이라 부르는 것들도 마찬가지. 거기선 현실에서의 존재 가능성과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0)에 가까운 인물과 사건이 나오고 전개된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게 아닐까? 인간에게서 상상력을 거세한다면 삶이 얼마나 무료해질 것인가를 생각해보자.그러니, 성경 속 ‘노아의 방주’가 실재했다고 강변하는 종교인들과 축지법과 공중 부양이 무시로 등장하는 중국 무협소설을 마냥 “비현실적이라 한심하다”고 힐난하는 건 합리를 가장한 독선일 수도 있다. 어쨌건. ◆마애여래삼존불의 불사(佛事)는 누가 주도했을까?이제 다시 오늘의 주제어인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로 돌아가자.고대 신라인들이 부처가 다스리는 이상향 서방정토(西方淨土)로 인식했던 선도산 일대. 그 공간 가장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굽어보던 마애여래삼존불은 언제, 누가, 무슨 이유로 만들었을까?아주 기초적인 의문이다. 이 질문에 최미경의 논문 ‘경주 선도산 아미타삼존상-조성시기와 목적에 관하여’가 친절하게 답해준다.“조성시기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7세기 중엽으로 막연히 인식했으나 양식적 특징을 살펴본 결과 650~67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선도산 불상이 아미타삼존인 점에 주목하여 조성시기에 즈음한 아미타신앙의 형태를 살핀 결과 이는 ‘사자(死者·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위한 추선(追善·죽은 사람 넋의 괴로움을 덜고 명복을 축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공덕(功德·선한 행위로 쌓은 덕)으로 사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믿음’에서 조성된 것이라 하겠다.”여기까지가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이 만들어진 시기와 목적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불상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논문은 이렇게 이어진다.“이러한 대규모의 불사는 일반 백성의 의지로 보기는 어렵고 지리적인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불상의 발원 세력은 왕족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도산 불상은 무열왕대에 선대(先代)의 왕생을 빌며 발원했거나, 혹은 문무왕의 발원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특히 불상의 양식을 고려하면 650년경을 전후로 한 시기에 무열왕의 발원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이로써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 조성 불사’ 주도자는 둘로 좁혀졌다. 무열왕 김춘추와 그의 아들 문무왕 김법민. 서라벌 역사의 궁금증 하나가 풀리는 순간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24-08-06

70년 함께한 포항역 사라졌지만, 업소 30여 곳은 여전히 영업

그곳에 켜진 붉은 등은 아직 꺼지지 않고 있다. 해가 지고 밤 8시쯤이 되면 낮엔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조그만 가게들의 대형 유리창이 빨간 조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포항시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 속칭 ‘중대’다.현재 포항시에는 약 35개의 성매매 업소가 남아 있다. 1950년대 6·25전쟁 직후 옛 포항역 주변에 형성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70여 년 세월이 흐르며 변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어째서 이곳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성매매 집결지 운영은 포항만의 문제는 아니다. 각 지자체의 공통적인 문제였기에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는 시 차원의 집결지 정비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완료했다. 하지만, 포항시는 집결지 지척에서 도심 개발을 진행하면서도 해당 구역을 개발 구역에 포함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본지는 2004년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포항의 성매매 실태를 파악하고,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성매매 집결지 6·25 직후 포항역 주변에 형성 지루한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밤, 옛 포항역 주변에 있는 중대 거리를 찾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유리방(성매매 업소)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일반인들은 다니기가 꺼려지는 골목길이었다. 각 업소마다 한 명 또는 두 명의 여성이 유리방에 앉아 소위 ‘손님’을 기다렸다.  이런 곳에 누가 올까. 의문도 들었지만 그 사이, 옷깃을 여민 한  남성이 유리방 한 곳으로 재빨리 들어가는 광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는 70여 년 전인 6·25전쟁 직후 포항역 주변에 하나 둘씩 형성됐다. 당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생활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이 모여들면서 성매매 업소들이 생겨났다. 이후 미군 부대가 포항에 주둔하고 대형 공장이 들어서면서 100여 곳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오랜 기간 그 지역에서 살던 주민 A씨는 “성매매 업소가 많을 때는 골목을 넘어 대로변까지 붉은 조명이 넘실거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2015년 포항역이 중앙동에서 흥해읍으로 이전했고, 옛 포항역은 2021년 완전 폐쇄됐지만, 성매매 업소들은 아직도 거기 남았다. ▲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로 폐쇄 논의 확산  2000년 9월. 전라북도 군산시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국에 산재한 성매매 집결지 폐쇄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군산 성매매 여성 15명은 철문과 쇠창살로 폐쇄된 방에 감금된 상태였기에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거기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성매매 집결지의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됐고, 2004년엔 성매매에 대해 형사 처벌을 대폭 강화한 특별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성매매 피해자 지원을 위한 현장상담센터협의회’에 따르면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부터 2023년도까지 폐쇄된 전국의 중요 성매매 집결지는 총 14곳.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6년 강원도 춘천시 장미촌 △2010년 강원도 동해시 동해부산가 △2013년 춘천 난초촌 △2014년 부산시 범전동300번지 및 해운대 609 △2020년 인천시 숭의동 옐로하우스 대구시 자갈마당 △2021년 서울시 청량리 588 등이다.  그 결과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성매매 집결지는 10여 곳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영등포와 부산 완월동 등이다.  포항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도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운영되는 업소 수가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다. ▲ 민관이 힘 모아 문제 해결한 대구 ‘자갈마당’ 성매매 근절에 노력하는 단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포항시는 성매매 집결지 정비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 사실일까? 포항시가 그동안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책이 늘 미온적이다 보니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포항시가 성매매집결지 바로 앞, 구 포항역 일원에 개발하고 있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시는 이곳 땅을 용도 변경, 6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 건립이 가능토록 해줬다.  하지만, 성매매 집결지 공간을 사업 대상 구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시가 업소 건물주 및 업소 대표들과 협의에 나섰으나 불발되자 개발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시는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지면 주변 땅값이 상승해 ‘중대’가 자연스레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포항시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타 지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사례 가운데 ‘자연 도태’ 방식으로 정비가 이루어진 곳은 없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폐쇄된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정비 사업 유형을 살펴보면 경찰 단속 등의 자율 정비가 6곳, 도시환경 정비 사업이 2곳, 도시계획시설 사업이 2곳, 도시재생사업 2곳 등이다. 유형들 모두가 시가 정비의 주체가 돼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경찰과의 협업을 통해 정비한 점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성매매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알선자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성매매 집결지 주변의 물리적 환경 개선으로 집결지를 서서히 사라지게 한 것이다.  대구 도원동(자갈마당)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구시는 민간개발업체(도원개발)와 함께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자갈마당 부지 소유주들이 시세보다 높은 땅값을 요구하거나 매매 비용을 일시불로 요구하는 등 개발사와 갈등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민간개발업체는 대구시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행정적, 금전적 지원을 받아 이를 토대로 정비 사업을 추진해 냈다.  그 과정에서 대구시는 집결지 폐쇄 기한을 정해 그곳 건물주와 성매매 여성들에게 이전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집결지 주변 CCTV 추가 설치(6대), 현금인출기(ATM) 2대 철거, 보안등 47개 교체 등 환경 개선에 집중했다. 또 성매매 방지 홍보물(전단지 8000매, 포스터 300장)을 제작·배포하고, 대구외국인력지원센터에서 외국인 근로자 600명을 대상으로 성 인식 개선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금전적 지원도 해줬다.  대구시는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 조례를 제정해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여성에게 1인당 최대 2000만 원까지 지급하며 자활을 도왔다.▲포항 성매매 집결지 정비 TF 구성그렇다면 포항은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안하는 걸까 못하는 것일까.포항은 지난 2021년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대책 지역협의체’를 발족하고 그간 성매매 집결지 대책 마련에 관한 각계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또, 옛 포항역 개발 결정 후인 올해 초엔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 TF’를 만들었다.올해 초 결성된 ‘포항시 성매매 집결지 정비 TF’역시 그간 2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

2024-08-06

약 먹을 시간 알려주고 말 동무… 위기상황선 생명도 구해

투수가 공을 던진다. 타자는 날아오는 공을 보고 볼이라고 판단하고 스윙조차 하지 않았다.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볼이라고 생각한 타지는 움찔했고, 예전 같으면 타자가 심판에게 항의라도 해볼 법한 공이지만 어떤 항변도 할 수 없다. 최근 프로야구 판정을 AI가 맡고 나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올해 야구위원회(KBO)는 세계 최초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일명 야구로봇심판을 도입했다. 야구장에서 흔히 보던 볼 판정 시비를 없애 경기시간을 단축하겠다는 KBO의 의지다. 바야흐로 스포츠 경기에 AI가 도입된 첫 사례다.인공지능 즉 AI는 우리 실생활에 점점 더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경북도는 이미 행정 서비스에 AI를 도입해 보도자료 작성을 돕고, 사업 건의 초안까지 ‘뚝딱’ 만들어 내고 있으며, 향후 경북형 생성형 AI를 활용한 연구와 실증 연구와 다양한 세미나, 포럼을 개최하는 등 AI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실생활에서의 AI의 활약은 더욱 구체적이다. 최근, 화장실에서 넘어져 움직일 수 없었던 80대 독거 어르신은 AI스피커에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이를 감지한 스피커가 즉시 해당 시청 24시 관제센터를 호출, 응급상황임을 인지한 관제센터는 119대원을 현장으로 급파했다.이렇듯 최근 고령화와 그에 따른 독거노인의 고독사 문제를 AI가 해결하고 있다. 최근 각 지자체도 노령인구와 1인 가구 문제 해결을 위해 스마트헬스케어, 1인 가구 AI돌봄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평소 어르신들의 생활 습관을 학습해 약을 먹어야 할 시간을 알려주거나 말동무가 되어 준다. 위기 상황에서는 그들의 생명도 구하고 있다.AI는 창작 활동도 지원한다. AI는 현재 그림, 음악, 소설 등을 스스로 창작한다. 특히 AI는 일러스트레이션, 스토리 분야에서 더 쉽고 놀랄 만한 수준의 결과물을 산출하고 있다. 영화나 광고같이 대규모 비용이 드는 콘텐츠 영역에서도 AI가 만들어 내는 창작물을 활용하고 있다. 경북도는 지난달 15일 구미시에서 국내 최초로 ‘국제 AI 메타버스 영화제’를 개최했다. 영화 속 모든 이미지나, 캐릭터, 음성, 사운드 등을 실제 촬영 없이 만들어 내는 AI 영화에 중점을 둔 영화제는 창작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고 디지털 분야의 대중화에 기여할 기회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앞으로 1년 이내에 100% AI 생성 영화가 개봉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AI가 관련 업계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하나의 스튜디오에서 보통 1년에 2~3편을 제작한다면, AI라는 도구를 활용하면 12편까지도 제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요리의 영역에도 AI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최근 AI관련 기업들이 연일 AI 셰프를 개발하고 있다. AI가 식재료를 분석해 조리 데이터를 확보, 최적의 레시피를 구하는 방식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4’애서 AI 기능이 탑재된 그릴 ‘퍼펙타’가 혁신상을 수상했다. 생고기를 넣고 부위와 굽기 정도를 선택하면 3분 안에 스테이크 요리를 완성한다. 제품에 탑재된 AI 센서가 고기의 형태와 두께, 부위 등을 파악해 최적의 맛을 내는 열을 가해 요리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음식을 더 빠르게 완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AI가 스스로 요리 방식을 바꿔가며 완성도를 높인다.이처럼 AI는 앞으로 우리 실생활에 더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최초의 인공지능 정의는 ‘기계를 인간 행동의 지식과 같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정의로는 현재의 인공지능을 설명할 수 없다.경북도 AI 관련 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경북연구원 유철균 원장은 “중요한 점은 AI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향후 인류의 방향까지 결정지을 수 있다”며 “AI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면 AI가 파괴적 기술이 아닌 인간 삶에 꼭 필요한 기술로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고리즘 작동 특정지역 정치성향 파악해 선거 후보 당락 예측도뉴스·음악 추천·검색 수행은 기본지도·내비게이션서비스 제공업체맞춤별 노출 온라인광고서도 필수車 자율주행기술 지속 업그레이드인공지능(AI)의 발전과 일상생활의 활용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이제 일생 생활 속 많은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먼저 스마트폰 음성인식 서비스들이 AI기술이 활용된 대표적 분야 중 하나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는 ‘시리(아이폰)’나 ‘빅스비’(갤럭시), 혹은 다은 음성인식 서비스를 부르는 소리를 흔히 듣게 된다.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들이 내린 각종 검색 명령이나 뉴스, 음악 추천과 같은 요구들에 대해 AI알고리즘을 작동해 그들의 명령에 최적화된 사항을 화면에 보여준다. 현재는 더 많은 데이터들이 축적되고 알고리즘의 개선이 이뤄지면서 오류가 거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지도 및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AI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지도 및 내 비게이션 상 최단 경로 검색 및 실시간 교통정보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자에게 최적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 역시 AI기술의 발달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SNS 플랫폼에서는 AI가 사용자들의 기호와 취향을 파악해서 적절한 콘텐츠들이 노출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의해 사람들이 어떤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팔로우를 하게 되면 AI는 그 데이터를 학습해 사용자의 성향을 분석한다. 현재 일부 나라의 경우 이렇게 모은 정보로 특정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해 어떤 후보가 선거에 당선될지도 예측할 정도로 인공지능은 발전하고 있다.온라인 광고에서도 AI는 필수다. 최근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어떤 상품을 검색하거나 해당 상품을 구매한 경우 해당 상품과 비슷한 상품이나 파생 상품이 인터넷 페이지에 노출된다. 특히 이용자들이 많은 거대 플랫폼의 경우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 회원가입 시 등의 자료로 나이, 성별, 직업, 지역 등 개인 신상 정보를 추적 이용자의 PC등에 적절한 광고를 노출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시스템은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일부 플랫폼의 경우 자사의 브라우저에 이용자 추적(트래커) 방지 기능을 탑재하는 등 보안을 강화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모바일앱 숏츠 화면. /신세계라이브쇼핑 제공 자동차 분야도 AI가 필수다. 향후 모빌리티 분야의 혁신은 자율주행 AI기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은 오토파일럿과 같은 자율주행 기능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현재 자동차 AI는 실시간으로 카메라와 각종 센서로 입력되는 정보들을 통해서 도로 상황을 파악하고 교통 흐름을 정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율 주행이 가능하도록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자율 주행 기능이 탑재된 차량들이 더 많아지면 차량들의 운전 정보를 서로 공유해 차량이 자율적으로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술이 진보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 몇몇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기 쉬운 것 같지만 이렇듯 AI는 많은 일들을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현재 AI분야의 전문가들은 각종 산업 분야에서 영입 1순위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의 생활상이 많이 바뀐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그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하지만 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의 일을 컴퓨터가 대체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와 우려도 있다. 인공지능을 경쟁자라고 생각거나 기술이 어렵기 때문에 외면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 흥미를 갖고 관련 내용을 조금이나마 공부해둔다면 앞으로의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4-08-04

“수소환원제철소 건립, 포항서 꼭 이뤄져야 할 핵심 정책”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통해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 대응 공동 의제로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했으며, 한국도 이에 동참했다.포항의 탄소중립운동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른 정부와 포항시청의 지침을 따르자는 측면도 있지만, 시민들과 함께하는 환경운동을 펼치자는 취지다. 우리 지역에서 탄소중립운동의 속도를 높이고 확대해야 포항, 나아가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다.손종수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는“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포항에서 펼쳐지는 모든 탄소중립운동보다도 더 절실한 과제”라며 “포스코의 이산화탄소 제로 정책인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포항에서 꼭 이뤄져야 할 가장 핵심적이고 절실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포럼에서는 하준수 고려대 미래건설환경융합연구소 연구교수가 ‘탄소중립과 한국경제’,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가 ‘수소환원제철의 포항지역사회 경제적 사회적 의의’, 이부용 본지 기자가 ‘수소환원제철 도입과 기업경쟁력’등을 각각 발제했다.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와 탄소중립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는 “이산화탄소 제로 달성을 위해 포스코의 탄소중립이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포스코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야 한다. 포항시민들이 포스코가 제대로 일을 잘하도록 도와줄 때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도록 해야, 포항시와 포항시민의 경제활동이 성공할 수 있다. 2026년이후, 포스코 철강제품의 유럽수출 가능하려면 석탄으로 생산한 철강제품으로는 어렵다. 2050 탄소중립 정책으로 모든 생산활동이 환경경제산업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포스코가 친환경 철강재를 생산해 탄소국경세에 대한 걱정 없이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을 리드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설에 대해서는 포항시와 포항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고 있다. 지역 지도자들의 탄소중립, 환경경제에 대한 한계를 보여 준다.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포항의 경제산업과 탄소중립경제를 위해서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2차전지 만큼이나 중요하다. 포스코의 철강산업이 일몰(sunset) 산업이 아니라면 탄소제로와 환경경제를 이차전지산업과 동일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포항이 국제도시로 번창할 길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환원제철법을 성공시키는 것이다.△탄소중립을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 RE100RE100은 기업이 100%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민간차원의 글로벌 캠페인이다.영국의 비영리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공개프로젝트의 주도로 2014년에 13개 기업에서 시작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화력발전이 아닌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 제품을 생산하자는 자발적인 약속이다.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100%를 사용해야 투자가 가능하다. 2050년까지 RE100 실천은 가입을 위한 최소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가 40%이다.2022년 7월말 기준으로 RE100에 가입한 세계적 기업은 구글, 애플, 인텔, 제너럴모터스(GM), 이케아 등 376곳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2020년에는 6개, 2022년 2년 만에 21개 기업으로 증가했다. RE100 참여로 생산비용이 상승되지만, 세계의 소비자들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기업을 선호하는 흐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애플과 같은 글로벌 IT제조사가 국내 반도체 공급사에 RE100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대만의 반도체기업인 TSMC로 물량을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RE100 회원사 중 애플은 자신의 공급망에 포함돼 있는 협력업체에게도 신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해 생산된 부품을 납품하도록 요구했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내대표 전자기업도 RE100을 추진하지 않으면 수출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 세계 경제가 탄소중립 실현중심으로 완벽하게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포스코도 2050 탄소중립경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EU 집행위원회가 2021년 7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규정안을 발표했다. 2023년에서 2025년까지 전환기를 거쳐 2026년부터는 EU로 수입되는 시멘트, 전기, 비료, 철강, 알루미늄의 직접배출 탄소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향한 우리의 노력한국정부는 2022년 12월 10일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4번째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이다. 포스코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 선언, 로드맵을 발표했다.2018년 유엔기후변화협약 ‘시나리오1.5℃’를 통해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2019년 12월, 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참가국 모두가 서약했다. 2021년 9월,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했다. 기본법 12조 1항에 따르면, 시장·군수·구청장은 국가·시도계획을 고려해 10년 계획기간으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한다. 포항시의 탄소중립 추진 및 노력의 법적 근거가 만들어진 것이다.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탄소중립추진계획에 따라, 정부도 포항시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해야 한다.△수소환원제철에 대한 세계의 동향과 우리의 대응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 프랑스는 약 2조 4000억원, 독일은 4조원, 영국은 2조원, 일본은 4조원 정도의 개발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미국 또한 탄소중립시대 대응을 위해 2050년까지 7조 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중공업 분야의 탄소중립에 투자한다.현재 수소환원제철소에 몇조원씩 투자하는 나라들은 유럽선진국들이다. 이전에는 철강산업이 개발도상국들의 공해산업이었지만 현재는 친환경, 수소환원제철로 변화했다. 개발도상국과 중진국에게서 철강산업을 다시 찾아오려는 선진국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포항지역사회·경제적 의의포스코 이전의 포항 전통사회의 경제는 고기잡이와 농업이 중심이다.포항의 경제가 ‘근대화경제개발’의 중심으로 일어선 것은 ‘제철보국’의 포스코 창립의 결과임은 분명하다.대한민국은 수출주도형 경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철강산업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투자를 해야할 단계이다.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 유럽의 각국정부 프랑스는 약 2조4척억원, 독일은 4조원, 영국은 2조원, 일본은 4조원 정도의 개발보조금 지급할 계획이다. 현재 수소환원제철소에 몇조원씩 투자하는 나라들은 유럽선진국들이다. 수소환원제철로 철강제품 생산하려는 강대국과의 경쟁을 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소가 성공을 해야 탄소중립도 성취하고 강대국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는 나라로 설 수 있다.△포항시민들의 협력과 포항 변화의 모멘텀기후위기 극복과 과학기술발전의 계기로 지역사회가 변화하고 있다. 친환경사회 건설, 신재생에너지 100%실현, RE100. 탄소중립경제,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문제에는 정견의 차이가 없어, 포항시민들의 협력이 중요하다. 포스코는 이제 제철보국을 넘어 ‘탄소중립보국’이라는 사명, 그 중심에는 ‘수소환원제철소’가 있다. 포항지역시민들의 탄소중립에 대한 관심을 전환하고 탄소중립에 대한 지역공동체의 협력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미래에는 포항의 탄소중립 넷제로운동이 전국의 표준이 되고 수소환원제철로 인해 대중화 될 것이다. 포항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극복하고 수소환원제철소 건립, 탄소제로운동의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글·사진/이부용기자

2024-08-04

주왕산 탐방로·얼음골·신성계곡 걷다 출출해지면 ‘달기탕 백숙’

어느 도시 할 것 없다. 낮과 밤 모두 펄펄 끓는 가마솥 더위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8월의 초입. 높아지는 불쾌지수와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감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성하(盛夏)의 계절이다.일상이 돼버린 뜨거운 폭염을 잠시라도 피하고 싶은 이들은 휴가를 계획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8월은 여름휴가의 피크 시즌.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공기 좋고, 계곡 그늘 시원하고, 맛깔스런 먹을거리도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지.경북 청송은 주왕산의 멋들어진 풍경 속에서 ‘산소 카페’로 불릴 만큼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청정한 고장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어울리는 쾌적한 피서지로 손색이 없다는 이야기. 올 여름 어디로 휴가를 갈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윤경희 청송군수가 조언한다. “우리 청송군에 오시면 깨끗하고 맑은 자연의 매력을 만끽하면서, 가족과 연인이 행복한 추억을 쌓아 가실 수 있다”고. 과연 그럴까? 아래 청송군을 방문한다면 꼭 가봐야 할 시원한 피서지 몇 곳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주왕산을 지나 얼음골로 가다 보면...국에서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높은 암석 봉우리와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을 간직한 곳이다. 탐방로를 따라 연화봉,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을 만날 수 있고 수려한 계곡도 매력적이다.용추, 절구, 용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뤄 ‘한국 3대 암산’에 꼽히지만, 사람들이 이용하는 탐방로는 유모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하다. 가을 단풍철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지만 지금은 다소 한적한 길을 조용히 거닐 수 있다. 주왕산에서 영덕군 옥계계곡으로 가다 보면 얼음골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 주변은 한여름 온도가 32°C가 넘으면 얼음이 얼고, 계곡 물은 얼음처럼 차갑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보며 얼음골 생수 한 잔 마시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는 게 청송군의 설명이다. ▲달기·신촌 약수탕 물로 끓인 백숙은...달기약수탕은 청송읍 부곡리에 위치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 년 전 조선 후기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부곡리에 살면서 마을 사람들과 수로 공사를 하던 중 바위 틈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를 발견하게 됐다고.권성하가 그 물을 마셔봤더니 막혔던 속을 뚫어주는 트림이 나오고 위장이 편안해져 그 후 즐겨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달기약수탕은 가뭄이 아무리 심해도 솟아나는 물의 양이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색과 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상주-영덕간 고속도로 동청송 인터체인지 인근에는 신촌약수터가 있다. 조선시대 말 무렵 조정에서 전국의 약수를 조사한 일이 있는데, 당시 이곳 약수가 가장 무겁고 맛이 독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물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고 한다.이 두 곳 약수터에서 솟아나는 물에는 철분이 많이 함유돼 약수터 주변이 빨갛게 산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탄산수는 톡 쏘는데 근처 가게에서 파는 달달한 엿과 함께 마시면 그 맛이 더욱 좋다. 또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른색 윤기를 띠며 찰기가 생겨 지친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데 그저 그만이라고.약수탕에서 시원한 달기약수 한 모금 마셨다면, 주변의 먹을거리를 찾아보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 맛있는 음식은 여름휴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달기·신촌 약수탕 근처에는 약수를 사용해 우려낸 닭백숙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이름 높다.약수 닭백숙은 철분 함량이 높은 약수가 닭의 지방을 제거해줘 맛이 담백해진다. 또, 소화가 잘돼 위에 부담이 없다. 약수에 닭, 인삼, 황기, 감초, 대추, 녹두를 넣어 푹 고아서 닭이 알맞게 익으면 건져내 따로 담고, 국물로 죽을 쒀 닭고기와 함께 먹는 게 일반적이다. 이 닭죽은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좋고, 지친 몸의 기운을 찾아준다고 한다. ▲일상 지친 눈 편안해지는 신성계곡 녹색길청송의 또 다른 명소 신성계곡 녹색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여름 관광지로 추천한 걷기 좋은 여행길이다.갯버들 하천 길, 갈대 봇도랑 길, 방호정 길, 자암 길, 하천 과수원 길, 백석탄 길로 이어진 12km의 녹색길은 맑은 물과 푸른 숲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지저귀는 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녹색길을 아우르는 신성계곡은 뻬어난 풍광과 맑은 물, 그리고 빽빽한 소나무숲을 자랑한다. 방호정에서 고와리 백석탄에 이르는 계곡 전체가 청송 8경의 ‘제1경’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신성리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 방호정 감입곡류천, 백석탄 포트홀 등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를 4곳이나 품고 있어 지구 환경 학습장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신성리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는 2003년 태풍 매미에 의해 산사태가 발생해 약 400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공룡 모형이 설치돼 있는 소공원은 학습장과 포토존으로 활용된다. 방호정 감입곡류천은 아름다운 하천, 퇴적암 절벽, 도지정 민속문화재 ‘방호정’이 어우러진 명소다. 방호정은 조선시대 선비 방호 조준도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해 생모 안동 권씨의 유택이 보이는 곳에 세운 정자다. 신성계곡을 찾게 된다면 현대인이 잊고 사는 효(孝)의 가치를 떠올리며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다.청송 안덕면 고와리 계곡에 있는 백석탄 포트홀은 알프스산맥의 미니 암봉과 닮은 바위군이다. 하얀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이곳이 선계(仙界)가 아닌가”라는 혼잣말을 하게 만든다. 계곡 흐름에 따라 오랜 시간 동안 침식된 암반에 항아리 모양의 깊은 구멍들이 생겨있으며, 조선 인조 때 경주에 살았던 송탄 김한룡은 이곳 시냇물이 맑고 아름다워 고계(금)라 부르기도 했다.▲시원한 실내 전시장과 체험장으로청송백자 전시·체험장도 가볼만한 곳이다. 청송백자는 조선후기 ‘4대 지방요’로 분류될 만큼 명성이 높았던 생활 자기다. 이곳에서는 전통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청송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청송백자를 활용한 다양한 도자기 체험도 가능하다.남관문화센터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남관 화백을 기리고자 조성한 문화 예술공간. 7월 16일부터 9월 1일까지는 ‘2024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동 협력 전시’의 일환으로 미디어아트홀에서 ‘헤어짐의 단상,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라는 주제로 특별 전시가 열린다.야송미술관은 청송에서 태어난 동양화가 야송 이원좌의 작품 36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기획전시도 함께 이뤄진다. 별도의 건물로 조성된 ‘청량대운도 전시관’에는 동양화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인 한국화 ‘청량대운도’가 전시돼 있다. /김종철·홍성식 기자

2024-08-04

김천시, 성공적 투자유치로 ‘기업하기 좋은 도시’ 도약

김천시가 ‘일자리가 풍부한 경제도시’를 시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전략적 기업투자유치 활동에 매진한 결과 김천1일반산업단지 3단계 100% 조기분양으로 총 36개 기업체, 7721억 원이라는 투자유치와 3529개의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 냈다.이는 경기침체 등 국내외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산업단지의 우수한 입지여건과 함께 적극적인 기업유치, 저렴한 분양가, 풍부한 산업 인프라 등으로 투자유치 활성화에 김천시의 관심과 역량이 집중된 결과로 분석된다.특히 김천시는 2008년부터 시 직영으로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해 재정 절감 효과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분양가를 15% 이상 낮추는 등 파격적인 분양가로 투자유치 효과를 극대화했다.이러한 자구책은 2011년 김천일반산업단지 1단계 사업의 성공적인 분양에 힘입어 2단계·3단계를 연이어 조성해 조기에 100% 완판하는 등 총 106개의 기업을 유치해 김천의 산업지도를 다시 그렸다.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 김천일반산업단지 4단계 조성사업에 착수해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거쳐 토지 및 지장물 보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4단계 조성사업을 통해 4800여 명의 일자리 창출과 연간 3조 3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돼 명실상부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4단계 산업단지는 어모면 다남리, 개령면 신룡리, 대광동 일원에 124만㎡(38만 평) 규모로 총사업비 2349억 원을 투입해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등 10개 업종을 유치할 계획이며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입주의향서가 142%(113만㎡) 접수돼 기업체 간의 입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 230만평의 대규모 산업단지 매력적인 투자지역2027년 완공을 목표로 김천1일반산업단지 4단계(38만 평) 조성이 완료되면 이미 준공된 1단계(24만 평)·2단계(42만 평)·3단계(35만 평)와 90년대 조성한 김천1·2차 산업단지(62만 평), 감문·대광·지례·아포농공단지(27만 평) 등 총 230만 평의 대규모 산업단지 벨트를 구축하게 된다.그리고 김천시는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경유하고 KTX김천(구미)역이 입지해 있는 광역교통의 요충지로서 기업의 물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입지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또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김천~거제간 남부내륙철도가 개설되면 김천은 서울까지 1시간 30분, 거제까지는 1시간 10분에 도달이 가능해져 수도권과 남해안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며 사통팔달의 탁월한 교통환경이 갖추어진 물류교통의 허브도시가 된다.더욱이 154㎸급 산업단지 전용 변전소와 열병합발전소의 증기공급, 도시가스 및 하수종말처리시설 등 완벽한 인프라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저렴한 분양가로 기업투자에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 입주기업에 다양한 지원 혜택김천시는 우수한 입지여건으로 찾아오는 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발로 뛰는 기업유치와 기업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시책을 추진해 왔다. 투자유치진흥기금을 운영해 투자기업에 대한 보조금 및 기업유치를 위한 각종 기반시설 조성 등에 240억여 원을 투입했다. 2019년에는 투자유치진흥기금 100억 원을 추가로 조성해 공격적인 기업유치 활동을 전개한 결과 일반산업단지 3단계 조기분양 완료라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을 통해 국내에서 창업 3년 이상 된 기업이 지방에 신·증설 투자를 하거나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기업 본사 등을 이전 하는 경우 당해 지역에 10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10명 이상을 신규로 고용하면 해당 기업에게 설비투자의 일정 부분을 지원해 주고 있다.이밖에도 김천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은 취득세 75% 감면, 5년간 재산세 75% 감면 등 세제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창업 기업으로 인정받을 경우 법인세 감면 혜택까지 추가로 받을 수 있다.지역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도모하고자 중소기업 운전자금 및 이차보전금을 지원하고 있다. 김천시의 이차보전율은 도내 최고인 4%이며, 지난 한 해 524억 원의 융자 실적으로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했다.그밖에도 기업 현장의 애로기술 해결을 위한 기술주치의 119 지원 사업, 중소기업의 제조현장 경쟁력 제고를 위한 스마트공장 보급확산 사업, 지역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근로환경 개선 및 생활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 중소기업 기숙사 임차비 지원 사업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기 상황을 주시하며 지역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기업지원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 근로자를 위한 복합문화센터 신축김천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주관한 ‘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 건립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 31억7천만 원, 도비 4억 원을 확보하고 시비를 포함해 총사업비 65억 원으로 복합문화센터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일반산업단지 2단계 부지 내에 위치한 등대지 주차장에 건립 중인 복합문화센터는 문화·편의시설을 확충하고 공연장과 전시홀, 코인세탁실, 공유주방, 동아리실, 심리상담센터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근로자 복지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또한 주변에 수변공원과 산책로를 조성하고 키즈룸과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어 근로자 가족들이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천1일반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는 2024년 12월 완공할 예정이다.김충섭 시장은 “민선7기에 이어 민선8기에도 일자리가 풍부한 경제도시를 첫 번째 시정 목표로 우량 기업 유치에 매진하겠다. 일자리 창출 및 지역주민의 소득 증대는 물론 연관 산업의 파급효과 등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김천에서 투자한 기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성공신화’를 계속해서 써내려 가겠다”고 밝혔다./나채복기자 ncb7737@kbmaeil.com

2024-08-01

도청신도시 랜드마크 된 ‘천년숲’ 300년 터줏대감

천년숲 솔밭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소나무 가지에 어둠이 떨어질 듯하면서 매달려 앞길에 솔향을 뿌리고 있다. 황톳길을 붙들고 있는 어둠은 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서기를 반복하면서 붉은 흙 내음을 토해내고 있다.끈질기게 따라붙는 내 발걸음에 어둠은 사라지고 그림자로 변해 이제 함께 걸어가고 있다. 도심 속 울창한 산림 속에 잘 다듬어진 황톳길은 시민의 심신을 풀어주고 건강을 다져준다. 향긋한 솔 향기와 흙 내음이 가슴 속 폐부 깊숙이 들어와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쌓인 먼지를 훌훌 털어 깨끗이 정화시켜 준다고 생각해 보라, 천금의 보약이 따로 없지 않은가. “아 좋다”는 말이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심결 튀어나오지 않을까. 한 줄기 동살은 솔숲을 충전하고 나의 소진된 에너지는 솔숲이 충전시켜 준다. 동살은 하루의 시작 프로그램을 켠다. 새벽 산책으로 시작되는 하루는 가슴을 억누르고 있는 잡다한 삶을 방해하는 땟물을 말끔히 씻어 낸다.어제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며 내일을 위한 꿈을 위해 한걸음 발걸음을 뗀다. 새벽의 발걸음은 명쾌하고 단호하다. 솔잎 끝에 매달린 영롱한 이슬방울이 청초하다. 곧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 그런 면에서 인간도 이슬방울과 다를 것이 있을까 싶다. 곧 사라지는 영롱한 이슬방울 속으로 동살 숨어들어 간다. 영롱한 이슬방울 내 눈 속으로 살며시 들어온다. 인생도 이슬방울 같은 것, 끝없는 욕심을 내려놓고 안분지족하면 인생은 반짝이는 이슬방울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경상북도청. 교육청 결산 검사’ 위원에 위촉되어 경북도청 신청사에 간 적이 있다. 퇴임 후 첫 방문이라 옛 동료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가슴이 설레었다. 경북도청은 1896년 8월 4일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중앙공원 자리에 있는 경상도 관찰사 건물에서 시작했다. 건물이 협소하여 1966년 4월 1일 북구 산격동으로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했다. 1981년 7월 1일 대구 직할시로 승격됨으로써 경북도청 청사는 본의 아니게 소속 관할이 아닌 대구광역시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3월 10일 경북 안동시 도청대로 455로 이전하여 신도시가 탄생했다. 신도시에서 숙박하면서 안동 풍천면 갈전리 천년숲, 천연지, 검무산을 새벽 산책했다. 신도시의 랜드마크로 ‘천년숲’ 9.16ha 규모의 명품을 조성했다. 지난해 산림청이 뽑은 대한민국 최우수 도시숲에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무궁화동산, 느티나무광장, 잔디광장, 야생화 동산, 유아숲체험원 등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져 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맨발로 걷는 0.8㎞의 황톳길에는 돌구슬지압과 황토 오감만족탕 등의 체험시설과 세족장을 갖추고 있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천년숲의 터줏대감은 숲 초입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느티나무 노거수가 아닐까.그의 나이는 300살, 키 21m, 가슴둘레 9m 15cm, 앉은 자리 폭이 31m이다. 나이로 보나 키와 몸의 덩치로 보나 숲에서는 제일가는 용감무쌍한 어른이며 수문장이다. 그 늠름하게 생긴 모습에서 우리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숲의 대장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가슴이 두근거리며 삶의 현실을 깨닫고 힘이 솟구친다.천년숲은 칼춤을 추는 검무산과 천년지와 어깨동무하면서 다정히 이웃으로 함께 하고 있다. 검무산 기상과 천년지 아량을 본받아 시민을 품는 천년숲 영원하리라. 흐트러진 운동화 들메끈을 조이고 천년지로 향했다. 수초 사이로 물고기 첨벙거리며 고요한 아침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뒷짐을 지고 저수지 둘레길을 걷는다. 동쪽 하늘의 붉은 햇무리 속에 둥근 해가 얼굴을 내민다. 천년지는 윤슬의 웃음을 지으며 찬란한 아침 햇살을 품는다. 하늘의 태양과 구름도 품는 천년지 아량 영원하리라.내친김에 검무산에 올랐다. 천년숲을 내리다 보는 큰 바위 얼굴 산이다. 그 모습에서 용감무쌍한 기상이 보인다. 가파른 경사로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쉽게 오르도록 정상까지 나무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인내하여 오른 덕분에 정상에서 신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천년지에서는 뽀얀 안개 피어오르고, 천년숲에는 아침 햇살이 반짝인다. 아침의 동살 맞이하고 신비스러운 풍경을 감상하는 검무산을 천년산으로 개명하여 기상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현재는 융합과 협업의 시대이다. 천년숲은 하드웨어인 자연유산이다. 이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소프트웨어이다. 천년숲을 중심으로 한 삼총사 천년산과 천년지를 묶어 또 다른 하나의 명품 천년 삼총사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숲과 산, 저수지는 나무와 물에 관련된 자연 유산이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인 문학의 옷을 입힌다면, 우리의 각박한 삶의 여정에 자연의 중요성과 그 아름다움을 깨닫고 그로부터 지혜와 교훈을 얻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게 살찌울 것이다.새벽 일찍 일어나 어둠 속을 산책하다 보면 동쪽 하늘이 붉게 불타오른다. 이내 동살 기운이 어둠을 살라 먹고 세상을 훤하게 밝힌다. 새벽 산책 중 만나는 동살 기운은 하루의 에너지를 듬뿍 안겨준다. 몸과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시르죽은 모종이 단비를 맞아 손을 펴고 고개를 드는 것처럼 잠자던 의욕이 기지개를 켠다. 천년숲, 천년지, 천년산으로 이어지는 도민의 발걸음은 영원하리라. 숲은 피로에 지친 우리의 심신을 위무하고, 단련하여 행복한 꽃길만 걸으리라. 천년숲이 중심 코어로 에코톱이 되어 삶을 노래하는 산림문학숲이 되리라.필자의 시 ‘천년숲 삼총사’솔숲 속 흙길을 맨발로 걸으며어둠은 사라지고 아침 햇살이 스며든다.이슬방울 속 빛나는 아침의 약속천년숲 느티나무, 그 고귀한 존재검무산에 펼쳐진 신비로운 풍경천년지에 펼쳐진 반짝이는 윤슬천년숲 천년산 천년지 자연의 삼총사천년의 세월 우리를 품어준다.천년 숲, 산, 지(池), 자연 문화유산삶의 여정을 살찌우는 산림문학의 영원한 주제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7-31

한국, 유연한 이민정책 강화… 외국인 근로자 이탈 막아야

미국 사회학자 홀리필드(James F. Hollifield)는 “국가의 기능은 18세기까지는 군대국가(Garrison State), 18~19세기는 무역국가, 20∼21세기는 이민국가(Migration State)로 변해왔다”고 주장한다.그의 말을 입증하듯 1990∼2000년대부터 OECD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1·2차 산업의 노동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이민자 유치정책이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다.한국은 이민국가 후발주자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10년대 후반이 돼서야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들을 국내로 유치하기 시작한 것.하지만 비슷한 문제를 일찍 경험한 서구권 국가들은 냉전시기부터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쳐왔다. 그중 이민 정책이 가장 큰 효과를 본 국가는 호주다. 백호주의가 막을 내린 1970년대부터 호주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이민자를 대거 유입해 다문화 국가로 발돋움 했다.1990년대 중후반엔 ‘노동력 확보’와 ‘인구 증가’에 사활을 걸고 또 한 번 이민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이른바 호주의 2단계 이민정책(two-step migration policy)의 도입이다.‘2단계 이민정책’이란 초기에 임시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호주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면, 그들의 임시비자를 영주권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호주 국민으로 흡수하는 제도. 이에 따라 지난 20여 년 동안 호주로 임시이민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는 자연스레 호주의 인구증가와 산업분야의 다양화로 이어졌다.임시이민의 증가는 호주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OECD 국가들도 낮은 출산율, 고령화,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숙련된 이민자들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2단계 이민정책’을 시작했다.이처럼 대부분의 이민 국가들은 현재 임시이민과 영주이민의 연계성을 상황에 따라 강화 혹은, 차단하는 방식의 ‘유연한 이민정책’을 운영 중이다. ‘유연한 이민정책’이 세계적인 흐름인데 반해 한국은 아직 ‘경직된 이민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법무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250여만 명 중 72%(188만 명)가 한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장기체류 외국인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영주권을 발급받은 외국인은 18만5천여 명에 불과해 그 비율이 채 10%가 되지 않는다. 글 싣는 순서1. 청년층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들2. 호주, 이민국가로의 변신3. 외국인 근로자 통한 시드니의 도심 재생4. 시드니가 ‘워킹 홀리데이’ 성지된 이유5. 노동력 수혈 시급한 대구·경북의 과제□ 현재 한국의 이민정책으론 인구 증가 기대하기 힘들어최근 극심해진 인구 문제 탓에 이민정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정부는 2027년까지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앞 다퉈 외국인 근로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하지만 최근까지 논의된 국내 이민정책들은 모두 앞서 살펴본 호주와 타 OECD 회원국들에 비하면 단순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는 ‘이민문제’를 단순히 ‘노동력’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탓이다.호주와 미국 등이 ‘기회의 땅’으로 불리면서 많은 이민자를 유치했던 비결은 그들로 하여금 성공적인 정착 즉, 영주이민과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관련 제도를 갖췄기 때문이다.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애써 유치한 외국인들도 도망가는 형국이다. 경북도가 실시한 ‘2024년 상반기 농업분야 계절근로자 수요조사’ 결과 9061명의 인력 수요가 나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법무부 배정인원 5614명 보다 1.6배 많은 것으로, 같은 해 실제로 배정된 7432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귀국하는 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이탈은 2018년 100명, 2021년 316명, 2022년 1151명을 기록해 해마다 증가하고 추세다. 경북에서만 지난 2022년 1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탈했다.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경북도는 올해부터 계절근로자의 가족도 함께 체류지에 머물도록 거주 공간을 마련해준다. 특히 포항시와 예천군은 지역 내 이주한 결혼이민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계절근로자 입국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여기서 ‘계절근로자’란 단기간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및 제조업 분야에 외국인을 합법 고용토록 해 국내로 들어오는 한시적이고 소모적인 외국인 노동자를 지칭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한국 체류기간은 길어야 8개월이다.호주 등 OECD 국가들은 워킹홀리데이 등을 통해 임시이민자들에게 최소 1년에서 최대 3년의 체류 기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또 계절근로자로 들어온 외국인들이 성과를 인정받거나, 일정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 한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도 아직 전무한 실정.앞서 살펴봤듯 호주를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이 임시이민자들이 영주이민자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임시이민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제공해줄 제도적 방안이 거의 없다.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의 바람대로 이민자를 유입해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주의 사례처럼 임시이민자들에게 안정적인 정착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호주 정착 20년, 언어만 통한다면 인종차별·차별대우 없어요”호주 교민 백우진씨 인터뷰백우진씨는 20여 년 전에 호주로 이민을 가서 안정적인 정착을 이룬 한국인이다. 시드니를 거쳐 현재는 멜버른에 살고 있다. 그를 만나 호주 이민제도와 노동 관련 정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정착 초기 어려움은 없었는지.△호주생활 초반에 겪었던 언어로 인한 어려움 외에도 집을 구하거나, 거주지를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호주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호주 이민자로서의 생활은 어떤가?△호주가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인종차별은 정부 차원에서 아주 엄정하게 대처하고, 다문화정책이 잘 정비돼 있다. 때문에 스스로가 이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호주 사회에 잘 융화되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내·외국인을 다르게 대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다. 모두가 같은 혜택과 권리를 보장받는 분위기다. 또 이민자들이 워낙 많다보니 이민자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사회 분위기다. 영어만 할 수 있다면, 호주에 사는 외국인이 아니라 타국 출신의 호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많은 이민자들이 호주에 몰리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지.△앞서 말했듯 언어 문제만 없다면 타국 출신이라고 받는 차별대우가 없다. 영어라는 언어가 다양한 출신의 호주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기에 호주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영어가 필수다. 호주는 기회의 대륙이다. 취업비자를 받고, 합법적인 직장을 갖게 되면 외국인이라고 차별 받지 않는다.-“한국 노동자와 호주 노동자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호주의 환경은 ‘노동자 친화적’이다. 일한 만큼 벌고 그만큼 쉰다. 산별노조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또 연방정부에서 마련한 임금 가이드라인이 잘 준수되기에 일하는 만큼 소득이 발생하고,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 또 근무시간이 철저히 지켜진다. 퇴근 이후 업무적 연락을 금지하는 ‘연락 단절’의 자유도 있다. 휴가도 1년 근무 시 4∼6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지고, 그해에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누적된다. 10년을 근속할 경우 17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직업에 귀천도 없다. 소위 말하는 ‘블루컬러’ 직종이건 ‘화이트컬러’ 직종이건 직업이 그 사람을 정의하지 않고,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도 최근 적극적으로 이민 관문을 개방하고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전반적인 사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한국이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외국인이 한국에 일하러 오지 않겠나?-호주의 이민정책을 직접 체험했다. 향후 한국의 이민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다온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가장 안타까웠던 사연은 거제도의 공장에서 15년간 제조업에 종사한 후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했지만 영주권을 받을 수 없어 호주로 온 경우였다. 노동비자를 영주권으로 전환하는 제도가 없다는 건 아직 한국의 이민제도가 미숙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한국이 다문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런 문제의 해결이 필수다. 호주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국가에서 쌓은 경력도 인정해준다. 그렇기에 많은 기술자들이 호주로 들어오고 있다. 이 점이 호주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다. 한국도 단기간 필요한 노무자만을 유입시킬 게 아니라, 외국에서 키운 숙련된 기술자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이민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끝 /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7-30

산자락 마다 왕릉·유택, 신라인들에게 ‘서방정토’로 불려

개개의 가문도 수백 년을 이어왔다면 크건 작건 갖가지 설화와 이야깃거리가 그 안에서 생겨난다. 고래로부터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옮기기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누가 있어 그걸 부정할 수 있을까.신라는 1000년에서 8년 빠지는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다. 중간중간 부침(浮沈)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지구 위 어디에도 이처럼 장구한 세월을 이어간 제국은 드물다. 이는 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그러니, ‘천년 왕국 신라’에 설화와 오랜 시간 인구에 회자될 이야기의 소재가 없을 까닭이 없다.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 가능한 일이다.본지는 2024년 하반기 주요 기획연재 중 하나로 까마득한 옛날 신라 사람들 사이에서 신성시된 것은 물론, 현대에 이른 오늘까지 그 지역이 가진 사적(史的) 중요성에 많은 역사가들이 주목하는 선도산(仙桃山)을 취재·탐구할 계획을 세웠다. ‘경주의 신성한 보고(寶庫) 선도산’이란 타이틀 아래에서다. ◆2024년 현실에서의 선도산은 어떤 모습일까6월과 7월 두 차례 걸쳐 선도산 일대를 사진기자와 동행해 돌아봤다. 적지 않은 수의 왕릉과 경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인 울울창창한 소나무숲, 거기에 신령함이 깃들었다고 믿어온 거대한 석불(石佛)까지.답사 후 처음 든 느낌은 ‘과연 수십, 수백 가지의 전설과 민담, 수수께끼가 숨어있을 만한 비밀스럽고 신성한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신라 역사의 보물창고(寶庫)”라 칭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신라 사람들이 비밀스럽고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한 선도산과 그 일대를 오늘날 여행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두산백과’가 이 의문에 담백하고 모던하게 답해준다.“선도산의 높이는 390m다. 경주시 형산강 서쪽 효현동에 위치하며 신라시대부터 지목도가 높았던 산이다. 신라 사람들은 이곳을 서방정토(西方淨土)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경주의 서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서악’이라고도 불렀다. 그 때문에 선도산 주변엔 유적지가 많다. 경주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과 태종무열왕릉, 법흥왕릉, 서악리 고분군 등이 선도산 자락에 있다. 정상 가까이에는 서악동 마애여래삼존불상(보물 제62호)이 서있다. 그 외에도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구멍 유적이 있다. 북쪽 자락에는 서라벌대학교, 신라고등학교, 경주정보고등학교, 월성중학교가 있고,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다.”실제로 그랬다. 선도산 초입에 자리한 태종무열왕릉 뒤편으론 진흥왕과 진지왕의 유택(幽宅)이 자리해 있었다.지금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근대까지도 권력자들은 세칭 ‘명당(明堂)’에 터를 잡고 거기에 묻히기를 원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묫자리가 후손들의 발복(發福)과도 연관된다는 믿음 때문. 그게 비과학적이라 할지라도.앞서 말했듯 신라는 이미 1000년 전에 존재했던 왕국. 과학과 합리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지식의 상향평균화가 이뤄지기 훨씬 이전 시대였던 것이다.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제하고 관할하는 신령한 존재를 믿는 이들이 많았고, 무덤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행이 갈린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신라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다고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이런 상황이었으니 왕이, 그것도 삼국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태종무열왕이 묻힌 곳이니 선도산이 당대 신라에서 지녔던 위상이 어느 정도였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하다. ◆왕들이 잠든 공간인 동시에 ‘성스러운 어머니’ 설화까지고대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선도산은 오랜 기간 주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학계의 논문을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에 ‘선도산’이란 키워드를 넣어보면 적지 않은 자료가 검색된다.한국사상사를 연구해온 동국대학교 사학과 최연식 교수의 논문 ‘선도산의 신성함을 바라보는 세 가지 입장’은 선도산이 왕릉이 집중된 공간만이 아닌 신라 역사의 여러 비밀을 함께 간직한 곳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런 대목이다.“경주 서쪽의 선도산은 경주평야 입구의 중요한 지역으로 신라시대뿐 아니라 이후에도 경주의 서악(西岳)으로 크게 중시되었다. 이곳에는 법흥왕과 진흥왕, 진지왕, 무열왕(태종무열왕)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왕릉들을 비롯해 다수의 상층 귀족들의 고분이 만들어졌고, 산 정상 근처에는 대형 아미타 삼존불상이 왕릉을 바라보고 서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시조를 낳은 존재이자 유력한 산신이라고 하는 선도산 성모에 관한 전승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유물과 유적, 전승 등은 선도산이 신라시대 이래 경주의 주요한 신앙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동쪽 입구의 토함산과 함께 경주를 수호하는 양대 신성(神聖·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으로 중요하게 제사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후략)”최 교수의 지적처럼 여러 기의 왕릉과 더불어 선도산에서 주목해야 할 건 ‘신라의 시조를 낳은 존재이자 유력한 산신이라고 하는 선도산 성모’와 ‘아미타 삼존불상’이다.성모(聖母)가 뭔가? 속세의 것이 아닌 성스러움을 지녔기에 숭앙받은 존재를 말하는 것일 터. 그것도 1000년 역사의 왕국 첫 지도자를 낳았다면 ‘선도산 성모’의 위상 역시 드높았을 수밖에 없다.한국이 포함된 동양(아시아)만이 아니다. 미국처럼 역사가 일천한 국가는 아니겠지만, 수천 년 세월을 사람들이 살아온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현명한 통치자를 낳은 신성한 어머니의 설화’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그렇다면 신라의 시조로 알려진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숭배 받아온 ‘선도산 성모’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한국민속문학사전’은 비밀의 베일에 싸인 선도산 성모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선도산 성모는 신라의 시조모(母)로 알려졌으므로 신라 건국 시기에 출현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접한 성모 숭봉(崇奉)의 일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한 것이 최초의 자료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그녀는 선도산의 여산신(女山神)으로 신라 삼사(三祀·3가지 중요한 제사)의 대상이었으며 신사(神祠·신령을 모신 사당)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사람들이 성모의 일을 익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제왕운기(帝王韻紀)’ 기록도 있다.”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도 서라벌이 만들어낸 보물보편적 신라인 대부분이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선도산 성모는 국가가 올리는 큰 제사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고, 사당을 세워 장수와 행복을 빌며 영험을 얻고자 했던 숭배의 주체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아래 인용하는 건 이와 관련된 ‘한국민속문학사전’의 부연이다.“선도산 성모는 여산신이자 시조모라는 특징을 지닌 점에서 가야산 정견모주, 지리산 성모와 유사하다. 동신성모 유화는 시조모이지만 산신으로 좌정하지 않은 차이가 있다. 여산신 신앙이 국조신화와 연계되는 것은 대체로 남방계 신화의 특징이다. ‘부계(父系)’의 탐색과 계승을 강조하는 다른 국조신화들과도 대조적이다.”흥미로운 설명이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선도산 성모가 알을 낳았다는 것인지? 그리고, 부계신화가 아닌 모계신화가 돌출한 건 신라가 모계중심 사회였다는 것인지? 강고한 유교적 가르침이 통치철학으로 작동했던 조선시대엔 ‘선도산 성모’가 어떻게 평가됐는지?의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관련 학설과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는 과정이 있어야 할 듯하다. 이는 ‘경주의 신성한 보고(寶庫) 선도산’ 연재를 이어가며 해결하고자 한다.다수의 왕릉, 선도산 성모 설화와 함께 주목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이 바로 그것.선도산 성모처럼 실체는 없고 떠도는 전설과 이야기만 남은 게 아닌, 눈앞에서 존재하는 실물이기에 선도산 마애여래삼존불이 가진 지위는 날것인양 싱싱하다.튀르키예 사람들이 성산(聖山)이라 부르는 아라라트산, “백만 가지 설화를 간직했다”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화산에 필적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담은 선도산의 역사 유적 ‘마애여래삼존불’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024-07-30

日 ‘어린이 패스트트랙’ 혜택·핀란드 ‘엄마 상자’ 제공

저출산 문제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주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많은 나라가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인구정책을 도입 중인 것.저출산은 양육비 부담부터 여성 경력 단절 등 다양한 원인을 포함하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래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주목할 만한 출산장려책을 내놓은 해외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 일본정부와 기업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각각의 어린이 친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게 일본이다.일본 정부의 대표적인 어린이 친화 정책은 ‘어린이 패스트트랙 제도’. 어린이 패스트트랙은 국립박물관·공항·관공서 등을 이용할 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임산부를 다른 대기자보다 먼저 입장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도쿄 국립박물관의 경우 어린이날이나 연휴 기간엔 어린이 동반 가족을 위한 매표소를 따로 운영한다. 현장 상황에 따라 어린이 패스트트랙도 시행한다. 어린이 동반 가족만 입장할 수 있는 날도 별도로 있다.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있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기업들도 앞장서 출산 장려책을 펼친다. 일본의 대표적 카메라 제조사인 캐논(canon)은 아이가 있는 직원을 대상으로 1주에 2번씩 조기 퇴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 해상화재보험사는 ‘육아휴직 응원수당’과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대체하는 직원에게 최대 10만 엔(한화 86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다.□ 헝가리헝가리는 2000년대 초까지 저출산국이었다. 하지만, 2011년 1.23명 이였던 출산율이 2020년엔 1.56명으로 증가했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것.대표적인 출산 지원 정책은 결혼을 하면 최대 약 4000만 원을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것이다. 이후 아이 1명 출산 시 이자 면제, 2명 출산 시 대출액의 3분의 1 탕감, 3명 이상 출산 시 전액을 탕감해준다. 4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여성은 평생 소득세가 면제되며, 3명 자녀 가정은 7인승 자동차를 구매할 때 1000만 원의 지원을 받는다. 또 주거비 보조, 국영 시험관시술기관 무료 지원, 보육시설 2만1000곳 확대 등 출산 인프라 정비도 시행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2030년까지 출산율을 2.1명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독일독일은 과거 특유의 ‘남성은 일, 여성은 주부’라는 성(性)역할 고정이 저출산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산업화 이후에도 고정화된 가부장적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자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아졌다.정부는 2000년대 1.3명 까지 떨어진 출산율 반등을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3년간의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간엔 여건에 맞는 부모수당제도(현금)을 이용해 소득 대체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아동수당(자녀당 36만 원), 형제보너스수당(최대한도 월 287만 원)을 지급한다.또한 ‘거주허가 및 정주법’(이민법)을 제정해 정주형 이민정책도 시작했다. 전문인력인정법, 기술이민법 등 숙련 기술자 정주 중심의 이민정책을 펼침으로써 생산인구 반등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스웨덴스웨덴의 여성 고용률은 2020년 기준 78.3%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맞벌이 부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년째 합계출산율이 1.5~1.6명을 유지하는 이유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기 때문.스웨덴은 출산 전후로 480일의 휴가를 부모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또 휴가 기간 소득대체율이 80%에 이른다. 영아기를 지난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보육시설 확충에도 신경을 쓴다쓰고 있다. 종일제 어린이집, 아이돌보미 등 다양한 육아 서비스 이용료가 가구 소득 3% 이하로 책정돼 무상에 가깝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의 공교육은 대학을 포함해 국가가 모든 재정을 부담한다.만 16세 이하 아이에겐 매달 1520크로나(약 17만 원)씩 아동수당도 지급한다. 학생인 경우 20세까지 연장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핀란드‘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하면 올해까지 7년 연속으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조사된 국가는 핀란드. 출산 지원 정책도 잘 갖췄다. 임신 초기부터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돌보는 정부 산하 진료기관인 네우볼라(Neuvola·모성 클리닉)를 운영해 임신부를 돕는다.핀란드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복지기관은 모든 임산부에게 출산 전 육아 필수품이 담긴 ‘엄마 상자’를 제공한다. 이는 핀란드 모든 엄마들에게 주어지는 보편 복지이면서 ‘국가도 당신과 함께 태어난 아이를 키우겠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상자를 열면 가장 먼저 ‘임신을 축하하며 이 상자가 가정에 행복을 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가 나온다. 더불어 신생아를 위한 열 벌의 옷과 보온 담요, 장갑, 장난감, 온도계 같은 기본적인 육아용품이 들어있다.이외에도 핀란드는 출산이 여성의 사회 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아휴직 기간에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했다.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키도록 한 것도 핀란드판 출산장려책이다.□ 중국중국도 저출산 문제로 고민이 깊다. 지난해 중국의 출산율은 1.0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0.72명)과 비슷하다. 이는 중국이 1961년 이후 61년 만에 처음 겪는 인구 감소라 많은 이들이 심각성을 인정한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중국의 저출산 문제는 1인당 GDP의 6.9배에 달하는 높은 양육비와 출산 휴가의 부족 탓이라 지적했다.중국은 1978년부터 2014년까지 ‘한 자녀 정책’을 고수하다 2021년 ‘세 자녀 정책’ 법안을 공식 통과시켰다. 같은 해 7월 쓰촨성(四川) 판즈화시(攀枝花)는 중국 최초로 출산·양육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자녀 및 다자녀 가정에는 만3세까지 아이 한 명당 500위안(약 9만3000원)의 보조금이 매달 지급된다는 내용.산시성(陕西) 센양시(咸阳)의 경우 세 자녀를 출산한 여성 근로자에게는 기존 출산휴가 외에 15일의 휴가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배우자에게는 돌봄 휴가 10일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중국의 저출산 극복 대책은 이처럼 출산·양육 보조금 형태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양육의 어려움을 유발하는 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 금지 정책도 내놓았다./황인무·김채은수습기자/성지영인턴기자

2024-07-28

출산 고민하는 젊은 세대들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경북도가 올해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양한 정책을 통해 출생률을 끌어 올리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과연 실질적으로 출생률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경북도는 지난 2월 저출생과의 전쟁을 공식화하고, ‘경북이 주도하는 K-저출생 극복’ 기본구상을 발표했다.만남 주선, 출산·돌봄 주거지원, 일·생활 균형, 양성평등 6개 분야 100대 과제를 통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빠르게 구축하고 일·생활 균형 인식 확산 등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가정의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 이를 위한 예산은 1조2000억 원 규모다.문제는 경북도가 추진하는 저출생 대책이 큰 틀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해왔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6년간 280조 원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저출생 문제 89.5%가 공감하지만, 90.8%가 정책 효과 불신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전국 25~49세 남녀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분석 결과를 보면, 89.5%가 저출생 문제에 대해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저출생 정책에 대해서는 90.8%가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성계도 경북도의 이 같은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지난 5월 성명서를 통해 “저출생 문제에 긴밀하게 대응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우리 사회가 합계출산율 0.65명이라는 수치가 나타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주장했다.여성계는 저출생의 원인으로 △OECD회원국 평균보다 연간 122시간 많은 노동시간 △결혼과 출생 비용 및 육아 비용 부담 △불평등한 가사노동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불이익 및 소득 불안정 등을 강조한다. 이에 더해 “경북이 내놓은 정책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여성계의 주장과는 별개로 △출산과 직업 유지의 어려움 △비싼 주택 가격 △청년 취업난 △육아복지 부족 △심각한 비교 문화와 젠더 갈등 △SNS 널리 퍼져 있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 △늦은 초혼 연령과 이에 따른 노산 문제 △심각한 낙태율 문제 등도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경제적 이유다. 경북도는 물론 정부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 제한적인 지원 정책은 출산율을 높이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16년 간 확인했다. 높은 주택 마련 비용과 육아 비용 등은 제한적인 지원으로 해결이 안 되기 때문.특히, 부모가 가진 재산과 권력에 따른 계급 문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아이가 부모의 재력 등으로 인해 다른 아이에게 배척되고 놀림을 받는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을까?아파트 브랜드별로 나뉘는 계급 앞에선 어떤 지원책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우리 사회에 등장한 ‘개근 거지’라는 신조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단어는 학기 중 여행 한 번 못가고 꼬박꼬박 등교하는 학생들을 비하하며 사용되고 있다 우리 아이가 ‘개근 거지’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출산 독려는 오히려 반감만 불러올 뿐이다.□ 가부장적 인식과 경제적 문제 등이 야기한 저출생 세태여기에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에 따른 불이익과 ‘육아와 집안일은 여성이 하는 것’이라는 가부장적 인식도 타파해야 할 문제다. 이는 남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결혼을 미루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어느 정도 바뀌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부모 세대를 보고 자란 남성들의 경우 여성들의 육아와 가사 전담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여성들은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가 여성들을 더 힘들게 한다고 본다. 맞벌이 없이는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기도 어렵다. 그러니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다고 토로하면서 이를 포기하게 된다.이는 남녀 간 만남을 늦추는 이유가 되고, 초혼 연령도 높아지게 만드는 원인이면서 저출산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3.7세, 여성 31.3세로 조사됐다. 10년 전과 비교해 남성은 1.6세, 여성은 1.9세 늘어난 수치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남성은 3.9세, 여성은 4.3세 늘었다. 초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노산 문제가 심각해졌다.보건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의 난임률은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올라간다. 25~29세 여성들의 난임률은 14.2%지만 35세가 넘어가면 49.3%, 40세가 넘어가면 무려 71.9%가 난임을 겪는다.여성이 31세에 결혼해 신혼을 즐긴다는 이유로 몇 년만 출산을 늦추면 아이를 가질 확률이 줄어든다. 심평원 불임·난임환자 진료비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5년간 약 두 배가 늘었는데 만혼에 따른 출산연령 증가가 가장 높은 이유로 지적됐다.이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문제도 야기한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급감으로 학교 수가 줄어드는데 반해 특수학교의 학생 수는 증가하고 있다. 2018년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는 9만780명이었던데 비해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든 2022년에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가 10만3695명으로 늘어났다. 이렇다보니 만혼 가정에서는 아이를 출산하지 못할 바에는 딩크족으로 살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비혼 출산 포함한 다양한 가족 지원 정책 펼쳐야”낙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입법공백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법적 제재 없이 낙태를 선택하는 젊은이가 늘어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낙태율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낙태 건수는 하루 3000건으로 1년에 약 110만 건에 달했다. 지난해 신생아 출산 23만여 명과 비교해 4배가 넘는다.이런 상황에서 경북도가 추진하는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이 모든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특히 실제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전문가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당사자인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 특히, 숨겨진 목소리를 잘 찾아 듣고 가능한 게 뭔지 따져야 한다.일부 전문가들은 “지금 저출산의 요인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있어 전통적이고 고질적인 관념들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높은 출산율의 선진국을 보면 출산하는 30% 이상이 비혼자”라며 “비혼 출산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 지원 정책에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한 근무환경, 정시 퇴근문화 조성 등 기업들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현진기자

2024-07-28

창단 60주년 맞은 대구시향, 매회 공연 마다 전석 매진에 뿌듯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한 사람, 바로 지휘자다. 포디움에 선 지휘자는 두뼘 남짓 바톤(Baton)을 통해 자신의 음악 철학을 녹여내고 전체 하모니를 완성한다. 그래서 지휘봉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악기’로 부른다.백진현 지휘자가 작년 11월에 대구시향에서 첫 지휘봉을 잡은 지 취임 9개월 차를 맞았다. 전임 고(故) 줄리안 코바체프가 탁월한 곡 해석 능력을 기본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백 지휘자는 압도적인 몰입감과 카리스마로 역동적인 지휘 스타일을 내보이고 있다. 동작도 크고 동선에도 거침이 없다. 절제된 동작과 디테일로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주회 도중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곡해설을 곁들이며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것도 이젠 그의 트렌드가 됐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제11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백진현, 그를 만나봤다. -대구시향 상임지휘자로 취임 9개월을 맞은 소회는?△지난해 11월 취임 연주회부터 대략 14회 정도 공연을 지휘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의 정기 및 기획연주회뿐만 아니라 서구, 동구, 달서구 공연장을 비롯 코오롱야외음악당, 신천둔치 등 대구 곳곳에서 시민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며, 따듯한 관심과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그동안 단원 개개인의 장단점도 충분히 파악했고,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이루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호른 연주자로 첫발을 내디딘 마음의 고향과 같은 대구시립교향악단에서 지휘자로 함께하는 요즘, 단원들이 자신의 실력과 잠재력까지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으며 의욕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지휘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오케스트라 연주의 핵심은 앙상블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탁월해도 앙상블을 이루지 못하면 불협화음에 지나지 않는다. 평소 단원 각자의 기량 연마는 필수이고, 합주 때 서로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해 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자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궁극적으로 ‘재연의 예술’을 한다. 항상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창작 의도를 잘 파악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곡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시대 배경 등 작품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연주 깊이와 넓이를 더해 시민들이 양질의 문화를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클래식의 대중성과 음악성(작품성, 전문성) 사이에서 고민 해결법은?△대중성과 음악성 두 가지 모두 균형감 있게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한때 클래식은 특정인이 향유하는 고급스러운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오늘날 클래식은 이미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고, 대구시립교향악단의 객석만 보더라도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층이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중성은 공연의 때와 장소, 연주자의 성향 등 공연 기획에 맞춘 선곡을 통해 관객의 기호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음악성은 어떤 작품을 선곡하든 그 나름의 음악적 가치를 찾고 표현함으로써 실현해 나가고 있다.-매 정기연주회 마다 임팩트, 생동감 있는 지휘와 디테일로 청중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화 있는 지휘를 위해선 팀워크가 필수인데, 단원들과 호흡은 잘 맞나?△당연히 잘 맞을 수밖에 없다. 합주 때면 단원들에게 연주에 필요한 바를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단원들도 여기에 맞춰 잘 따라주고 있다. 지휘자와 단원도 음악으로 서로 소통한다. 우리는 전문 연주단체이고, 연습실과 무대 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단원은 지휘자의 해석과 요구를 잘 수용하여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휘자는 단원들이 어떤 부분에서 연주와 표현의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해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나갈 때 같은 색채로 표현하는 것이 최상의 음악적 호흡이고, 그것이 잘 이뤄졌을 때 관객도 최상의 무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지난 2월 정기연주회 앙코르곡으로 에르난데스의 ‘엘 쿰반체로’를 연주하며 록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돼 관객들이 함께 즐기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백진현 지휘 코드’로 해석해도 되나.△연주회를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에 비유하자면 서곡은 에피타이저, 협주곡과 심포니는 메인 요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앙코르는 멋진 코스가 끝난 아쉬움을 달래줄 특별한 디저트라 할 수 있다. 때로는 디저트가 더욱 기대되는 만찬도 있듯 대구시립교향악단은 앙코르에 ‘진심인 편’이다. 쉐프가 자신 있게 내놓는 ‘오늘의 메뉴’처럼 말이다. 최근에 만난 한 지인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다음 연주 때 앙코르는 어떤 곡일지 기대와 궁금증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적 ‘다양성’에 기반한 풍부한 레퍼토리가 기본이다. 앙코르의 변신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레퍼토리 확장, 연주력 향상을 위한 노력으로 봐주시면 좋겠다.-앞으로 대구시향 운영 방향은?△음악가이자 지휘자로서 늘 추구하는 바는 이 세상의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우선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최근 10년간 연주한 곡목을 분석했고, 오케스트라의 실력 향상과 청중의 다양한 음악적 욕구까지 충족시킬 레퍼토리로 선정하고 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은 앞으로도 다양한 시대, 다양한 음악가의 작품을 꾸준히 연주해 나갈 예정이다. 창단 60주년을 맞이한 지금, 거의 매 공연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시민의 큰 사랑을 받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의 위상에 걸맞게 내실을 다져나갈 계획이다. ◆백진현 상임지휘자는?현재 동서대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계명대 음악대학, 맨해튼 음악대학원(MM), 브루클린 음악원(PG-D), 하트퍼드대 음악대학원(AD), 파이스턴 국립예술대학원(DMA)을 졸업했다.미국, 러시아,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쿠바, 체코, 브라질, 페루, 카자흐스탄, 헝가리, 몽골, 루마니아, 멕시코,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의 활발한 공연을 펼쳤다.국내에서는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 부산시향, 광주시향, 충북도향, 창원시향, 포항시향, 강릉시향 등을 지휘했다.‘제27회 오늘의 음악가상’, ‘제33회 부산음악상’, ‘2018 한국음악상’ 등을 수상했다./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7-25

액운 막기 위해 300년 전 만든 인공 숲에 오랜 세월 수호신으로

경북 영양군 현리에는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조산단 느티나무 노거수가 있다. 현리 마을에서 바라보면 봉화, 영덕으로 가는 우회도로 분기점 가까이 마을 앞 들판에 우뚝 서 있다. 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느티나무 노거수이다.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마을의 전통과 신앙, 그리고 주민들의 삶과 깊이 얽혀 있는 상징적인 나무이다. 조산단 느티나무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전통을 이어가는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조산단은 약 300년 전, 마을 주민들이 불길한 기운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인공 산이다. 당시 주민들은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서쪽으로 열린 마을 지형이 불길한 기운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이를 막기 위해 서쪽에 인공 구릉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놓은 전통 마을 숲 흔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지금은 숲이 사라지고 당산목 느티나무만 덩그렇게 벌판에 우뚝 서서 외로움을 홀로 이겨내고 있다. 그 외로움이 나에게 전해 와 가까이 다가서서 두 팔 벌리고 안아 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마을 숲이 사라져 홀로 쓸쓸하고 외롭겠지만, 우리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합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필자의 시‘조산단(造山檀) 느티나무 노거수’서쪽 바람 막아선느티나무 한 그루마을의 수호신봄이면 연두 잎사귀여름엔 짙은 녹음가을엔 붉은 잎 물들고겨울엔 나목 되어 서리 맞네.농부의 그늘새들의 안식처뿌리 깊게 내려앉아생명을 품어 안고정월 대보름마을 사람 불러 모아안녕과 번영 노래하네.영양 현리의 역사 조산단 느티나무 노거수. 영양읍은 동쪽과 북쪽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담한 산맥이 둘러 있어 복조리 형상을 이루고 있으나 서쪽으로는 가까이 울타리가 될 만한 산이 없어 열려있는 형국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으로 액운이 미친다고 하여 이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으로 300여 년 전 인위적으로 조산을 만들었다.조산단의 느티나무는 마을 주민들에게 재난을 막아주는 신목으로 여겨오고 있다. 특히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주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동신목으로 불리는 마을 나무이다.조산단은 단순한 인공 산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풍수지리적 지혜와 생태적 균형을 고려한 전통적인 마을 숲 조성 방법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며, 지역 사회의 안전과 평안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산단 느티나무와 같은 사례는 이러한 조산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조산단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생태적 공간이다. 이곳은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는 작은 생태계로,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현대의 환경 보호와 생태 복원 노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조산단의 개념은 오늘날의 에코톱(ecotope) 개념과 다를 바 없다. 이런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유지하려고 민속 신앙 차원으로 끌어올린 세계에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조산단의 느티나무는 마을의 보호목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마을 주민들에게 농사철에는 그늘을 제공하며,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또한, 다양한 생명체의 서식처로서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새와 곤충, 다양한 식물이 공존하며, 자연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 나무를 통해 자연의 순환, 영속성을 느끼고,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의 순환 속에서 느티나무는 마을 주민들에게 지속적인 안식과 평안을 제공해 왔다.현재 조산단에는 느티나무만 남아 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많은 상징성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의미로 마을 주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나무를 경외하면서 자신도 본받고 심은 마음을 은연중 키워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누구나 변함없이 염원한다. 이는 마을의 생태적 건강을 증진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에게 자연과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조산단 느티나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 공동제사를 지내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마을의 중요한 행사와 의식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며, 한 해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은 마을 주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공동체 의식을 제공한다.경북 영양군 현리의 조산단 느티나무 노거수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주민들의 신앙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조산단 느티나무는 풍수지리적 지혜와 생태적 균형을 고려한 전통적인 마을 숲 조성 방법의 중요한 사례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느티나무는 앞으로도 마을 주민들에게 지속적인 안식과 평안을 제공하며, 마을 나무의 역할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의 전통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조산단 느티나무 노거수는 마을의 생태적, 문화적, 신앙적 중심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낸 이 작은 조산단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전통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적 자연 유산이 아닐까.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4-07-24

관광·취업 연계 ‘워킹홀리데이’ 대박… 연간 수십만명 호주로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호주의 이민정책은 크게 세 번에 걸쳐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그 첫 단계는 영국계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이민이 호주 정부의 ‘비영국계 유럽인 수용’ 정책으로 이민 대상이 다양화된 것이다.호주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영국인을 주축으로 하되, 동유럽과 남유럽 출신자들 또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백인 유럽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백호주의 이민정책 기조가 폐지된 시기는 1970년대 초반.두 번째로 호주 이민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진 때는 197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다. 이 시기 호주엔 아시아인을 비롯한 비유럽인의 유입이 본격화됐고, 현재는 그 기조를 잇는 호주 이민정책의 기본 틀이 확립됐다.호주의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필요한 노동력의 충원을 위해 ‘기술이민자들’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도 이 즈음이다. 기술이민자들은 입국 이전부터 호주 정부로부터 영주를 보장받았고, 가족 재결합 즉, 가족의 초청 또한 허용됐다.이 시기엔 기술이민자와 그들의 가족이 영구거주를 목적으로 호주에 입국하고 정착하는 것이 이민자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호주 정부의 판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영주권을 취득한 이민자의 가족 동반이 본격화된 시기인 1980년대엔 동반 가족의 수가 기술이민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기도 했다.평균적으로 기술이민자 한 명당 아내와 자녀 등 2명의 가족을 동반했고, 이들로 인해 다양한 연령대의 호주 인구가 동시에 증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술이민자 중심의 호주 이민체계가 다시 한 번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글 싣는 순서1. 청년층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들2. 호주, 이민국가로의 변신3. 외국인 근로자 통한 시드니 도심 재생4. 시드니가 ‘워킹 홀리데이’ 성지된 이유5. 노동력 수혈 시급한 대구·경북의 과제△한시적 이민자 대거 유입…호주 이민 정책의 세 번째 대전환1990년대 중반 호주의 이민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기존 기술 중심의 영주이민자 유입 규모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단기간 체류를 조건으로 하는 한시적 이민자 수도 크게 확대하기 시작한 것.그때까지 호주에 단기간 체류하는 ‘한시적 이민자’ 대부분은 유학생들이 차지했다. 존 하워드 보수당 연합정부가 집권을 시작한 1997년부터 호주 정부는 워킹홀리데이를 비롯한 임시 비자 발급을 대폭 늘인다.이때부터 워킹홀리데이 등 임시 비자(유학, 워킹홀리데이, 457 기술이민) 발급이 본격화되면서 체류유형 또한 다양해졌다. 이런 형태의 비자가 가족 동반 및 인도주의적 비자 발급 수보다 많아졌고 그 차이는 점점 커졌다.동시에 전체 이민자 수도 이때 대폭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10만 명 이하를 유지하던 영주이민자 규모가 2016-2017년에 20만 명 규모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한시적 이민자의 수는 같은 시기에 20만 명에서 60만 명을 넘어서 3배 넘게 늘어났다.한국은 호주와 1995년 3월에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한국인은 별다른 준비 없이 장기체류가 가능하게 됐고, 한때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출국자의 80%가 호주로 향했다.△‘취업·관광’, ‘워킹홀리데이’이처럼 최근 들어 호주 정부는 영주이민 유입 규모를 줄이는 대신 한시적 이민자 유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민정책 노선을 변경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하는가 하면, 관광산업을 비롯한 전반적인 산업게의 경기 활성화 효과도 보고 있다.19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한시적 이민 제도 중 가장 유명한 정책이 바로 ‘워킹홀리데이(Working-Holiday)’ 즉 ‘관광 취업’ 비자다.‘워킹홀리데이’를 통해 호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우선 12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는 비자(subclass 417)를 발급받아야 한다. 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만18∼35세여야 하며 35세가 되는 해에도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유효한 여권을 소지하고 온라인으로 호주 내무부에서 운영하는 이미어카운트(ImmiAccount)를 통해 개인 정보, 여권 사본, 부모 성명을 표시한 출생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하면 비자를 받는 게 가능하다.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비용은 510호주 달러(약 45만 원)로 5000호주 달러(약 444만 원) 상당의 저축액이 있어야 한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3주 안에 비자 발급이 완료되고, 12개월 내에 호주에 입국해야 한다.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입국한 날부터 최대 12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으며 해당 기간 내에 원하는 만큼 출국과 재입국이 가능하다. 호주에 더 머물고 싶다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총 3번까지 갱신할 수 있다.다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첫 번째 발급받은 비자 기간 내 호주 정부에서 지정한 일자리(Specified work)에서 3개월 간 근무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다. ‘지정 일자리’는 농작물 경작, 나무 재배, 광업, 건설 등이 있으며 필수 충족 근무 기간은 총 3개월 또는 88일이다.세컨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이미어카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다. 신분증 사본과 510호주 달러를 지불하고 지정 일자리에서 3개월 근무했다는 증빙 서류를 함께 제출하면 된다. 2019년 7월부터는 지정 일자리에서 6개월간 일한 경우 호주에서 3년까지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연장하기 위해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 이력과 체류 2년차에 지정 일자리에서 6개월 동안 일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살기 좋은 대표적인 곳으로는 시드니를 꼽는다.시드니는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타워 등이 어우러진 화려한 도심과 전망이 수려한 ‘본다이 비치’와 같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관광도시다. 또 대도시의 이점을 살려 워홀러들이 다양한 직군에 지원할 수 있다. 시드니는 말 그대로 노동과 관광(Working-Holiday)에 최적화된 곳으로 손꼽힌다.이 같은 이유 때문에 많은 워홀러들이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의 대도시에서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앞에서 보았듯 호주 정부는 장기체류 워홀러들에게는 거주 가능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 △호주 정부, 이민제도 연계성 강화… 이민자 증가 요인현재 호주 정부는 한시적 이민자 중 영주비자 승인요건을 갖춘 입국자에게는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호주에서 신규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중엔 먼저 호주에 입국해 다양한 임시체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의 비중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하지만 워홀러와 유학생이 영주권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오랜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 수시로 바뀌는 이민 정책도 불안 요소 중 하나다.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유학생들의 영주 기술이민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후 유학생들의 기술이민 비자신청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유학생이 영주 기술비자를 취득하고 직종을 변경하는 일이 잦았던 탓에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호주는 영주 기술이민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정한다.불안정한 체류 환경 속에서도 한시적 이민자들은 호주 사회에 저렴하고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관광산업의 소비자로서 해당 산업의 이윤 창출과 내국인 고용 유발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이런 사정을 감안한 호주 정부는 한시적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한편, 영주와 한시적 이민제도 사이의 연계성을 강화했다.제한적으로 호주에 체류하고 있는 이민자에게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고, 실질적으로 그들 중 상당수에게 영주권을 발급함으로써 한시적 이민은 영주이민으로 향하는 일종의 통과 과정이 됐다.관련 학계는 호주의 영주-한시적 이민 연계 제도화로 영주를 희망하는 한시적 이민자 수가 급증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이민제도 연계는 호주 정부가 원했던 이민자 증대 효과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한시적 이민자들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가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자신의 생계와 체류조건이 불안정한데도, 영주이민을 목표로 호주에 머물고 있는 한시적 이민자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서부시드니 대학교 산티 로버트슨(Shanthi Robertson) 교수는 지난 2016년 한시적 이민자들의 대표 부류인 ‘워홀러’들과의 면담을 통해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들어온 상당수가 취업을 통한 영주이민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녀는 또 “워홀러들은 숙련과 비숙련, 한시적 체류와 영주 사이에서 모호함을 겪기에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이처럼 노동자, 학생, 관광객의 경계에서 한시적 이민자라는 불안정한 지위를 부여 받으면서도 수많은 외국인들은 호주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엔 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호주로 입국했다.외국인들이 호주 시민으로 호주에 정착해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만든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이민 개방’을 내세우며 올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민정책위원회를 출범한데 이어,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경북도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대목이다./구경모기자 gk0906@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7-23

포항 철강산업 경쟁력 유지… ‘수소환원제철’로 승부수

지금은 지구온난화, 기후위기의 시대이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수소환원제철에 대한 공적인 토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포항지역의 시민사회, 공동체, 지역언론 등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마련됐다.포항환경연대는 23일 포항시청 대회의실에서 ‘탄소중립·수소환원제철 포럼’을 개최했다.이날 김영식 전이엠솔루션 수소환경 총괄본부장이 ‘수소경제와 수소환원제철’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수소경제 동향과 진단, 국내 기업의 기술력 현황 등을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현재의 수전해 수소 생산 기술력 제고를 통한 경제성 확보가 필요하다”며 “수전해 효율 향상, 저가·고효율 소재개발 및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대규모 수소생산 시스템 실증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최만규 (주)대영엔지니어링 환경사업부이사는 환경영향평가 진행경과와 주민 및 전문가의 의견수렴, 관계기관 협의절차 이행, 사후모니터링 체계 수립, 제언 등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최 이사는 “포항제철소 조강생산량 유지를 위해 수소환원제철 3기 및 관련 설비 건설을 위한 135만㎡ 용지 필요하다”며 “제철공정 상 수소환원제철 설비는 기존 고로가 위치한 선강지역에 인접 배치가 필수이며 포항제철소 내 가용부지가 없어 북측 공유수면 매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탄소중립과 한국 경제하준수 고려대 미래건설환경융합연구소 연구교수는 “포항시에 제철산업이 핵심산업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망지원 정책의 유기적 결합은 탄소중립 정책과 지역 경제활성화가 융합할 수 있는 녹색경제의 성공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탄소중립을 경제와 밀접한 산업부문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전력·열 등 간접 배출을 포함할 경우 국내 전체 온실가스의 약 56%가 산업부문에서 배출되고, 업종별로는 철강, 정유·석유화학, 시멘트 및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이 산업부문 온실가스의 82%를 배출하고 있다. 반면, 이들 4대 업종은 2019년 기준 국가 제조업 매출액의 약 52%를 차지하고 있어 전형적인 고탄소산업에 의한 지배적인 배출기여를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직접배출과 간접배출을 포함한 산업부문의 지역별 배출현황은 2021년 배출량 기준 발전소가 가장 많은 충남이 가장 높고 경북은 4순위로 나타났다. 권역별 고탄소산업의 배출비중은 대구경북권은 금속제품이 49.0%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여 주고 있고 충청권, 동남권 및 수도권은 전기가스 산업이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일반 도시와 달리 산업부문 배출이 45% 이상을 점유하는 산업도시 유형의 배출 특성이 나타나고 있어 탄소중립 도시 구축과 같은 지역의 온실가스 관리를 위해서는 산업계와의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탄소중립정책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여러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마이너스 효과와 플러스 효과 사이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IMF(2020)는 2021~2035년 기간은 녹색 인프라 투자의 경기부양효과가 성장에 플러스로 작용하고 그 이후에는 탄소세 부과 효과가 커지면서 마이너스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한국은행 이슈분석 보고서(배한이, 2023)에 따르면, 탄소중립 정책의 경제적 영향평가를 NGFS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NGFC는 저탄소경제 이행 경로를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 억제 경로에 따라 ‘질서있는 이행’, ‘무질서한 이행’ 및 ‘현상 유지(hot house world)’의 3가지 경우로 구분하고, 이를 더 세분화해 2050년 ‘탄소중립’, ‘2°C 이하’, ‘산발적 탄소중립’, ‘지연된 2°C 이행’, ‘각국의 배출 감축목표(NDCs)’, ‘현재정책(current policies)’ 시나리오의 6가지로 구분하고 분석했다.시나리오에 따라 기후변화 이행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탄소중립 및 2°C 이하 시나리오 하에서 2021~2050년 중 연평균(Baseline 시나리오 대비) 각각 약 0.6%p, 0.4%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한편 기술발전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효율성이 상당폭 개선될 경우, 탄소중립 및 2°C 이하에서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각각 약 0.5%p, 0.1%p 하락해 하락폭이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별로는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즉 동남권, 호남권, 충청권, 대경권 등의 순으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고탄소산업이 주로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환경 이슈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심화비수도권에서는 주력산업의 탄소배출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과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 개발 지원 등 유인구조 마련을 통해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저탄소경제 이행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다른 측면에서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 관리정책이 시작된 시기를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 2015.06)’ 수립 시기로 고려하고 국가 실질 총생산(GDP) 측면의 경제적 현황을 검토하면 2013년 1563조원에서 2022년 1969조원으로 10년간 연평균 2.6% 매년 외견상의 경제규모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이 가장 크게 반영된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2020년 한해에만 전년 대비 0.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2015년 이후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이 우리 경제에 현재까지는 외견상 우려할 만한 영향이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여진다. △탄소중립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현재까지는 충분한 전략적·기술적 대비가 없는 경우 대부분 다소 부정적인 경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탄소세 등의 직접적인 경제부담과 감축을 위한 시설 전환 비용 등의 요소를 고려하는 경우, 산업부문 중심의 경제적 위축현상은 일반적으로 예상될 수 있다. 이러한 탄소중립 정책의 영향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녹색경제 및 정의로운 전환과 같은 환경과 경제의 양립을 위한 지원제도와 기후 약자 또는 도태될 우려가 높은 산업군의 대응을 위한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국가 탄녹기본계획(2023.04)에 수록된 온실가스 감축인지예산제도와 기후대응기금 활용과 같은 재정 정책, 녹색분야 자금 지원 확대 및 전환과정 지원 등의 녹색 정책금융 등의 금융정책과, 지난 5월에 발표된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 선정과 같은 기후기술 기본계획과 탄소중립 전문기술인력 양성 정책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기후기술의 개발과 연관인력의 양성정책기후 선진국인 영국 기후변화 위원회보고서(CCC, 2023)는 평균 급여지수가 국가 전체 평균보다 높은 탄소중립 전환 사업 종사자 일자리가 2020년 이후 약 8만개 이상 증가하고, 2020~2021년 저탄소 기업의 직접 고용이 1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탄소중립 전략이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탄소중립과 경제관계를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자 포항시의 핵심 기업인 포스코와 제철분야 탄소전환을 위한 수소경제로 국한해서 보면, 한국형 100대 녹색기술 및 전략회의(탄녹위 7차 회의, 2023)에서 철강분야 탄소중립 로드맵으로 장기적으로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고로-전로를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기 위해 공정 및 설비 설계 등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2029년까지 100만t(톤)급 준상용급 실증화 및 2040년 이후 단계적 전환 전략을 수립했다.수소경제 전환을 위해서는 많은 기술개발과 재정 투입과 연관 공급망의 구성을 위한 넷제로 인력 양성이 중장기적으로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글·사진/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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