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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청하현감 부임 겸재 정선, 내연산 배경 진경산수화 남겨

두바퀴路의 이번 문화 탐방지는 내연산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갑인추 정선(甲寅秋 鄭敾)`이 각인돼 있는 연산폭포를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여러분, 오늘은 속세의 욕심은 모두 내려놓고 내연산을 오르면서 자연과 하나 되어 다함께 신선이 됩시다” 박계현 (사)문화와 시민 이사장의 출발신호와 함께 내연산으로 향했다.쌍생폭포에 이르러 잠시 땀을 식히며 고개를 드니 왼쪽에는 우뚝 솟은 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용추의 물은 검푸른 빛을 띨 만큼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두 줄기 폭포가 눈발처럼 하얀 물보라를 뿜어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더욱 장관이다.좁은 오르막을 한참이나 올랐나 싶더니 갑자기 계곡이 확 트이면서 암자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가 온 계곡에 울려 퍼졌다. 가슴속에 쌓였던 속세의 때가 모두 씻기는 듯하다. 관음폭포를 둘러싼 봉우리는 마주 솟아 병풍처럼 이어지고 그 안은 다시 확 트여 하나의 거대한 선경을 이루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내려다본 관음폭포는 유리처럼 푸르고 맑았다. 그 아래의 계곡을 굽어보니 정신이 아찔하였다.눈앞에는 만 길의 높은 절벽이 담처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속에 마침내 연산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절벽에 폭포가 걸려 있는데, 절벽 틈을 따라 폭포수가 깎아지른 벼랑에서 곧장 떨어지는데 떨어진 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골짜기가 온통 안개와 흰 눈 속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 세상을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연산폭포 사방 암벽에는 머물다간 명사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인가 싶지만 그래도 그 흔적을 남겨두어 후손은 과거를 탐지하는 재미가 있어 그 역시 좋다.겸재는 이 기암절벽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바위에 새기고 내연산의 진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바로 그때 신일권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찾았습니다. `갑인추 정선`, 글자가 주변 다른 각자(刻字)에 비해 너무 작게 새겨져있고 마모돼 두 눈 부릅떠야 보이네요.”겸재는 1733년에서 1735년까지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청하 고을의 `청하성읍도`와 내연산의 비경을 담은 `내연삼용추`, `내연산폭포도`, `고사의송관란도`등의 작품을 남겼다.우리나라의 진짜 산천 그린다는 의미에서 `眞景`연산폭포 기암절벽에 `甲寅秋 鄭敾` 희미한 刻字명승지 소재로 내면적 주관 표현“이 박사님 진경산수화가 무슨 뜻입니까. 실제 경치를 그렸는데 실경산수화와 다릅니까?” 박계현 이사장이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나나 박사에게 설명을 부탁했다.“노·장 사상을 근원으로 하는 산수화는 속세와 단절된, 때 묻지 않은 깊고 그윽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그린 것입니다. 즉 기암절벽과 짙은 운무가 가득하여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산을 그린 그림입니다. 조선전기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중국산천을 그렸습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산천을 그리지 말고 조선의 산수를 그리자는 주장이 일어났습니다.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바로 우리나라의 명산과 명승지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과 그 속에 담아낸 작가의 이념입니다.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를 보면 모두 실경을 소재로 하였지만 `실경산수화`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진경산수화`라고 합니다. 실경을 대상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형사(형태를 같게 그림)` 보다는 문인화의 요체인 `신사·사의·전신(정신을 그림)`의 묘사에 그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대의 황공망이 `천지석벽도`나 `부춘산거도`에서 실경을 기하하적으로 시각화하여 대상을 재현했던 차원과 유사하며, 명의 심주가 실경을 재해석하여 점·선·면으로 조형화시킨 표현과 흑백의 대비로 음양의 조화에 주목하는 원리와도 같습니다.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는 실제 금강산과 인왕산이 지닌 특수한 현장감이 크게 부각되면서도 흑과 백의 대비라는 음양의 원리에 입각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음과 양은 `주역`에서 세상만물의 근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금강전도`의 화면구성은 암산(陽)이 토산(陰)을 감싸는 태극모양의 원형구도입니다.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금강산의 특징을 절묘하게 드러냈습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백색의 암산은 북종화 기법의 강한 부벽준으로 표현되어졌고, 수림이 우거진 토산은 서정적인 남종화의 부드러운 묵법으로 처리되어 이 역시 음양의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왕제색도`는 비온 후 맑게 갠 인왕산 모습이 기운생동하게 농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정선은 인왕산의 백색 암산이 비에 젖어 거무스름한 바위로 변화되어 보이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비로 인해 검게 변하여 더욱 중량감 있어 보이게 표현된 암산[양]과 비에 젖어 온통 검게 보이는 숲을 백색의 운무(음)로 감싸듯이 표현하였습니다. 정선은 바로 여기서 흑(바위)과 백(안개) 그리고 강함(바위)과 부드러움(안개)이라는 음양의 대비로 해석하여 조형화하였습니다. 중국풍 산수화와 분명히 달라정선의 산수화를 `실경`이라 하지 않고 `진경`이라 부르는 것도 외형적 사실 보다는 작가의 내면적 주관을 더욱 중시해 표현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참(眞)`은 `거짓(假)`의 상대개념입니다. 즉 중국의 산수를 `거짓(假)`으로 보고, 우리나라의 산수를 `참(眞)`으로 본 것입니다. `진경`이란 중국의 `거짓 산수`가 아닌 우리나라의 `참 산수`를 그린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사실적`이라는 말은 `참(眞)`이란 뜻으로, 오늘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사실화와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겸재의 산수화는 중국의 산천이 아닌 우리나라의 진짜 산천을 그린다는 의미에서 `진경산수화`라 부릅니다. 겸재의 그림은 우리나라나 산천을 그리되 그 속에 있는 사물들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빼기도하고 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진경`의 의미를 모르는 일부 비전문가들이 겸재의 `고사의송관란도` 속에 있는 소나무가 비하대에 실존한다면서 `겸재송`이라고 부릅니다. 겸재의 산수화는 우리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도 있지만 중국풍의 남종산수화도 있습니다. 진경산수화와 중국풍의 산수화는 분명히 다릅니다.첫째 그림 속의 인물이 다릅니다. 중국풍에는 중국의 고사나 문인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입은 복장은 모두 중국 고대 의복입니다. 하지만 겸재의 진경산수화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조선의 선비들이 산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둘째는 지명입니다. 진경산수화는 실경이기 때문에 `내연산삼용추`와 같이 실명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중국풍은 실존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에 `만추`와 같이 계절과 관련되거나 고사 인물의 이름이 사용됩니다. `고사의송관란도`는 그림 옆에 `삼용추폭하 유연견남산`(三龍湫瀑下 悠然見南山, 삼용추폭포 아래서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고 쓰여 있습니다. `유연견남산`은 겸재가 도연명의 시 `음주` 20수 중 제5수의 싯구를 차용한 것입니다. 즉 이 그림은 겸재가 삼용추폭포 아래에서 도연명과 같은 은자의 삶을 동경하며 그린 중국풍의 남종산수화입니다. 그림 속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그림 속에 나오는 고사들의 복장과 머리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높은 인품을 가진 은자를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고사가 의지하고 있는 소나무 또한 실재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이나나 박사의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감탄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오늘 한 중앙지에 `억지스토리 전국문화관광 축제의 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지자체가 주최·주관하거나 지원하는 문화 사업에 억지스토리가 난무한다고 한다.지원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 인사는 배점표에 스토리텔링 항목이 있으니 확실한 문헌 증거도 없는데 무리한 스토리를 만들어 넣고, 억지스러운 스토리텔링으로 덧칠한다고 지적했다.포항 내연산의 뛰어난 절경과 겸재 정선이 남긴 내연산 그림들은 충분히 문화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겸재송`이라든지 청하의 내연산을 겸재 진경산수화의 발원지로 과잉 포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좀더 심도 깊은 학술연구를 통해 합당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역 문화의 발굴이 될 것이다.◇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문화가이드:이나나 미술사학 박사◇ 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취재동행:박계현, 이명희, 이영숙, 이선덕, 김효은, 노경훈◇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2013-11-14

“포항 발전이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발전 이끌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이 13일 포항을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포항시청과 고향인 북구 흥해읍 덕성1리의 덕실마을과 신광리 선영, 죽도시장, 포항운하 현장을 찾아 고향사람들을 만났다. △ 포항시청이날 오전 10시 10분 포항시청 정문에 도착했다. 포항시민과 공무원들이 시청 출입구에 길게 늘어서 큰 박수로 이 전대통령을 맞이했다. 3층 현관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기관장들과 환담한 뒤 시청 대회의실에 들어섰다.지역 기관장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영상물 시청을 한 뒤 고향방문 소감을 밝혔다.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 첫 공식 방문으로 고향을 찾게 돼 감개무량하다. 고향은 늘 가슴 설렌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고향은 늘 큰 힘이 되어주었다. 대임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항상 도움을 준 고향 사람들에게 거듭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했다.이어 “포항에 올 때마다 엄청난 발전 속도를 느낀다. 어릴 적 기억을 못할 정도다. 대한민국의 발전속도를 능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과 환경 등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포항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격려했다.이 전대통령은 이와 함께 감사나눔운동에 대한 칭찬도 했다.이 전대통령은 “포항에서 감사나눔운동을 한 것은 참 잘한 것이다. 대통령 재임시절 교육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작은 도시 포항의 감사나눔운동을 자랑했다”고 운을 뗀 뒤 “남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를 만드는 바탕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갈등과 분열도 없을 것이다. 감사나눔 운동은 이런 사회를 만드는 운동이다”고 칭찬했다.이 전 대통령은 또 “세계 2차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원조를 주는 국가가 된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대한민국은 이제 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됐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세계가 대한민국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선진화된 대한민국은 선진화된 위상에 걸맞게 민주화도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대한민국은 이제 더이상 약소국이 아니라 일본, 중국과 대등한 21세기 강대국으로 민주화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이다. 이제 도전정신과 용기를 갖고 이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이 전대통령은 “포항은 항상 국가발전의 중심이었고 이제 포항의 발전은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덕실마을오전 11시30분께 이 전 대통령이 덕실마을을 찾자 마을 주민과 동문들, 기관 단체장, 상공인 등 200여 명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맞이했다.이 전 대통령은 덕실마을 회관에서 마을 주민들을 만난 뒤 덕실관에 들러 그동안 활동했던 자신의 사진과 게시물들을 둘러보고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재직 당시 자신이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던 `청하지도`를 덕실관에 기증했다. 청하지도는 조선시대였던 지난 1872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자신의 고향인 청하현(현재 포항시 북구 청라면·송라면 일대)의 현감이 제작·복원해 올린 지방지도다.이후 주민간담회에서 이 전 대통령은 포항의 자랑거리인 포항물회와 영일만친구 막걸리 등으로 오찬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문중 사람들과 고향 사람들, 친구들을 드디어 만났다”며 “지난 5년의 임기 동안 지지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여러분 덕분에 세계적 금융위기가 찾아왔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그리움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대통령이 되어 버린 이웃사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다.이 전 대통령의 이웃사촌이자 먼 친척이라 소개한 조규자(75) 할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는 일본에 살았지만 이곳에 와서는 먹고살기가 빠듯해도 나눌 줄 아는 인심 좋은 가족이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 직접 만든 조청을 전달한 적이 있었는데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도 조청을 준비해 왔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복원된 자신의 생가를 둘러본 이 전 대통령 내외는 이후 북구 신광면 만석리의 선영을 참배했다. △죽도시장오후 3시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북 동해안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죽도어시장을 방문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또 죽도시장을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뒤늦게 이 전 대통령임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담아내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이 전 대통령 내외는 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오징어와 고등어 등 싱싱한 수산물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곳에 있던 많은 시민들은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꺼내 오징어를 맨손으로 비닐봉지에 담는 이 전 대통령을 보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또 어떤 이들은 갑작스러운 전 대통령 내외의 방문에 놀라워하며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포항운하오후 3시30분께 이 전 대통령이 찾은 포항운하건설현장에도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인파가 잇따랐다.이 자리에는 자신의 후배인 영흥초등학교 학생들과 동지고등학교 학생 등 총 80여명이 자신의 선배이자 전 대통령을 반기며 태극기를 흔들었다.후배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한 이 전 대통령은 동지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교가를 목소리 높여 부르기도 했다.이후 포항운하물관리센터에서 이병석 부의장과 박승호 포항시장 등에게 자세한 포항운하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 전 대통령은 “포항의 산업화가 이뤄졌으니 이제는 자연보전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포스코가 있는 포항이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바뀌면 포항의 이미지도 함께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포항공항을 향하기 전 다시 한번 동지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난 이 전 대통령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대통령이었던 대선배를 만난 동지고등학교 2학년 김창현 군은 “TV로만 보던 선배님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밝게 웃었다.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항공항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며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윤경보기자 kbyoon@kbmaeil.com

2013-11-14

상주시, 대한민국 농업 선도·세계시장 개척 앞장

쌀과 배 생산량은 경북1위, 곶감은 전국시장의 60%를 차지, 명실상부한 전국1위. 전체인구중 농업 인구수가 36%인 상주는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로 불린다. 상주농업의 현황과 장점을 살펴본다.농업인구 36%·경지면적 도내 최대로 `농업수도` 명성전국시장 60% 차지 곶감에 쌀·배·육계 등 최고 경쟁력국립 교육농장 등 인프라 추진, 귀농·귀촌 유치도 활발□대한민국 농업수도 선포상주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공검지`가 있어 역사적으로도 농업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낙동강유역의 넓은 평야와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수도작이 잘 발달해 있으며 전통 농경문화의 중심지로서 풍부한 농업문화자원도 보유하고 있다.농업은 상주시의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가구수 4만4천981호중 농가가 1만5천903호(36%)이고 전체 인구수 10만4천여명 중 농업 인구수는 3만8천508명(36%)에 달한다.경지면적은 2만6천187ha(논 1만5천511ha, 밭 1만676ha)로 도내에서 가장 넓고 곶감은 전국시장의 60%(전국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이 2만884t, 양봉 786t, 육계 311만8천수로 전국1위, 명실상감 한우는 전국2위, 쌀과 배는 경북1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농산물 총생산 조수익은 연간 1조 2천억원을 넘어 1억 이상 고소득 농가가 1천500여 호나 돼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상주시는 올해 전체예산 5천957억원중 전년대비 82억원이 증액된 약 1천17억원(17%)을 농업 인프라구축과 생산기반조성, 저장, 가공, 유통, 농업기술교육 등 농업·농촌분야에 지원하고 있다.상주시는 민선5기 출범과 더불어 지난 2011년 대한민국 농업의 수도임을 대·내외 천명하는 선포식을 가졌다. 이어 2011년 12월에 `대한민국 농업수도 상주`라는 업무표장 등록을 해 상주가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이후 상주시는 상주농업 발전 방안을 마련하면서 2013-2017년까지 4대목표 4대전략 732개 세부과제를 설정하고 올해부터 농업 전 분야에 걸쳐 단계별로 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세계화를 향한 상주 농업 육성상주농업의 주요 육성 분야는 쌀, 곶감, 말, 누에와 명주, 포도, 사과, 배, 오미자, 한우, 양봉, 육계 등을 꼽을 수 있다.상주 곶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2005년부터 상주곶감산업 육성을 위해 시청 산림공원과 내에 곶감전담팀을 신설해 재배, 가공 기술교육 체계화를 통한 철저한 품질관리와 함께 전처리위생시설(HACCP)을 추진하고 있다. 곶감의 저장·보관·유통 방법에 대한 개선과 연구는 물론 종합적인 곶감산업 기반 구축을 통해 상주곶감의 세계시장 석권도 넘보고 있다.상주쌀은 예로부터 토질이 좋아 밥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생산량 또한 도내 1위로 `쌀 산업 선진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상주의 슬로시티 친환경 녹색농업은 `국민과 자연이 함께 하는 친환경 녹색산업 구현`이라는 비전 아래 2015년까지 무농약 이상 인증농가 3천600호를 육성하고 친환경농산물 재배면적을 전체 재배면적 대비 12%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상주는 포도 생산량 경북3위, 배 생산량 경북1위, 사과 생산량 경북 8위 등 주요 과수 주산지로 2004년 한ㆍ칠레 FTA체결 이후 과수 재배농가 생산시설 현대화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특히 대체과수명품화사업,다목적농가형저온저장고지원사업,에너지이용효율화사업, 화훼경쟁력제고사업, 잠업명품화사업 등을 통해 FTA체결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원예특작 농가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상주시는 국제규모의 승마장을 보유한 승마도시로서 말산업 육성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전국 말 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축산유통과 내에 말 산업팀을 신설해 착실히 기반을 다져오고 있는데 2013년부터 승용마, 경주마 생산농가 육성을 위해 경북도와 함께 예산을 확보하고 구입자금, 관세 등에 대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경마장 건설이 영천시로 확정되자 지자체간 중복투자와 과잉경쟁을 피하기 위해 그 방향을 승용마와 식용마 쪽으로 돌리고 승용마 육성센터건립, 에코힐링 호스파크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 세계시장 진출 확대상주시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업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식품 해외수출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전국 지자체중 최초로 국제통상T/F팀을 출범시켰다.2013년도 수출 목표를 지난해 135억원 대비 207%가 증가한 300억원으로 잡았으며 3년후에는 농특산품 1천억원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올해는 농특산물 해외수출 전략프로젝트를 가동해 캐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국 등지로 2천312t(76억원)을 수출했는가 하면 뉴질랜드에 첫 참배 수출망을 확보 하기도 했다.시는 상주 농산물 세계 진출을 위해 미국 데이비스시, 중국 의춘시, 대만 기륭시 등과 자매결연을 하고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민간수출 유통사업단을 발족하고 농산물 원예수출단지 확대조성, 농식품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 마인드 제고 등 7대 전략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국 귀농귀촌 1번지 상주시는 지난해 4월, 귀농·귀촌추진을 위해 10명의 인원으로 T/F팀을 구성했으며 올해 4월 5일에는 서울 사무소에 이어 부산과 경남지역 귀농귀촌인 유치를 목적으로 부산사무소를 추가 개설했다.특히 매년 500가구 5년간 3천가구 유치를 목표로 귀농귀촌을 위한 다양한 시책과 지원을 펼치고 있다.이 결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벌써 434가구 724명(지난달 21일 기준)의 귀농·귀촌인을 유치했다.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해 입주자 주도형 소규모 전원마을을 조성하고 농가 소득지원 사업, 농가주택수리비 지원, 영농 정착금 지원 등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시는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베이비 부머 세대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상주만이 가지는 색깔있는 시책과 여건을 적극 홍보하는 세일즈 행정을 펼치고 있다.□농업 인프라 구축 활발상주는 대한민국의 농업을 선도 하기위한 농업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그 위상에 맞는 관련 인프라를 하나씩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국립 교육농장 건립=상주시 낙동면 장곡리 일원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8만6천㎡ 면적에 2만6천㎡ 규모의 국립 교육농장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농업시험연구 재배단지 조성=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일원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70ha(21만평) 규모의 농업시험연구 재배단지를 조성한다.△경북 생명건강산업 특화단지 조성=상주시 함창읍, 이안, 은척면을 중심으로 슬로시티와 양잠 문화가 연계된 경상북도의 특화된 생명건강산업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상주 농수산물도매시장 건립=상주시 화산동 일원에 2014년~2016년까지 3만평 부지에 농산물 공판시설, 수산물종합유통물류센터, 야외테마공원을 조성해 농업 물류의 중심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상주 농업의 비전상주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구 비율과 경지면적이 넓어 농사짓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농업기반과 역사성을 살려 농업 수도의 명성을 높이고 농업을 상주시의 역량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현재 전국 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주곶감은 고품질화를 통한 세계진출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인지도에서 미흡한 상주쌀은 품종개량을 통한 고품질화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옛 명성을 찾아 나갈 계획이다.성백영 상주시장은 “상주 농업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 주력 산업인 만큼 농사짓기 좋은 여건과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최대한 활용해 농업 중심도시로 발전 시켜 나갈 것”이라며 “농사만 지어도 잘사는 도시,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농촌 힐링 도시를 만드는데 모든 행정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상주/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13-11-12

6·25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 극적 역전시킨 `구국의 일전`

영천전투는 6·25전쟁 초기 아군에게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켜 전쟁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방어선에서 위기를 구한 구국의 일전이었다. 이 전투는 1950년 9월 2일부터 13일까지 국군 8사단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6·25전쟁의 일대 전환점이 된 전투였다. 한국군 8사단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을 궤멸시키고 승기를 잡았다.1950년 8월 말 북한군 2군단 15사단은 영천 동북 입암리에서 2개 연대를 증원받고 최종 공세를 준비했다. 이들의 목표는 영천을 점령한 다음 대구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국군 8사단은 보현산과 입암 남쪽 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한 후 이미 전초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영천은 신령ㆍ구산동ㆍ입암으로부터의 도로 교차점으로, 대구와 경주 방향으로의 도로망이 발달돼 있고 중앙선ㆍ대구선ㆍ동해남부선 등 철도의 분기점으로 군사요충지다. 이곳이 뚫릴 경우 대구와 경주 방면이 위협을 받게 되며 국군 1ㆍ2군단이 분리되는 동시에 동서 간의 보급로가 차단된다. 따라서 이곳은 낙동강 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사업, 279억원 투입 내년 말 완공호국원·마현산 일대 `호국추모`·`전쟁체험` 권역구분 조성 □ 북한군 9월 공세와 영천의 위기북한군 전선사령부는 1950년 9월 2일 전 전선에 걸쳐 공격을 명령했다. 북한군 15사단도 이날 야간 영천을 목표로 일제히 공격했다. 국군 8사단은 적의 야간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3일 새벽 우일선 16연대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면서 영천북방 기룡산 일대로 철수했다. 국군 8사단은 4일 오후까지 기룡산 능선을 따라 방어선을 편성했다. 사단은 왼쪽부터 21연대, 16연대와 3연대 1대대, 7사단 5연대를 배치했다. 육군본부는 신령에서 작전 중인 7사단 8연대를 영천의 8사단으로 배속 전환시키고, 7사단 공병대대도 추가로 투입해 영천지구의 전력을 강화했다. 북한군 15사단은 9월 5일 새벽 1시 각종 포의 지원 하에 전차 5대를 선두로 3개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했다.국군 8사단은 중앙의 16연대와 3연대 1대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 수 시간 만에 돌파돼 위기를 맞았다.좌우측 21ㆍ5연대도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부득이 영천 북방으로 물러났다. 육군본부는 5일 지휘 일원화를 고려해 국군 8사단을 2군단으로 배속 변경했다. 군단장은 적이 영천 돌파에 주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국군 1사단과 6사단에서 각 1개 연대를 8사단에 배속해 영천을 고수하기로 했다.당시 다부동과 신녕도 위기였기 때문에 이는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다. 군단장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차부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직접 미 1기병사단과 8군사령부를 방문해 지원을 요청했다.적측에서도 이날 영천 점령의 지연 책임을 물어 15사단장 박성철을 경질하고 부군단장 조광열을 임명해 영천 돌파를 재촉했다. 이날 밤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중앙의 16연대가 영천 외곽까지 밀리고 있었다. 이때 사단장 이성가 준장은 8연대로 역습을 전개해 가까스로 적의 돌파구 확대를 저지하게 됐다. □ 적의 돌파구 봉쇄와 반격 준비9월 5일 야간부터 북한군 15사단은 영천을 공격하기 시작해 다음날 새벽 수대의 전차를 선두로 읍내로 진입했다. 기습을 당한 16ㆍ8연대는 더 이상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영천 남쪽으로 철수했으며, 영천을 점령한 적은 곧바로 경주 방면으로 진격을 계속했다.8사단장은 즉시 군단에 증원 부대를 요청하고 오수동에서 철수부대를 재편성했다. 이날 오후 좌전방 21연대를 공격하던 적 15사단 45연대도 남하해 영천의 돌파구 확대를 기도했다. 이날 오전 사단 공병대대는 군단장의 요청으로 도착한 미군 전차 1개 소대(5대)의 지원 하에 영천읍내로 돌입했다.공격부대는 영천역을 경비하고 있던 소수의 적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했으며, 이때 40여 대의 차량과 10여 문의 대전차포를 노획했다. 공병대대는 전차의 지원 하에 완산동으로 진출했으나, 저녁 무렵 조교동 일대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을 위험이 있어 다시 물러났다.9월 6일 오후 국군 2군단의 증원부대인 1사단 11연대와 6사단 19연대가 영천에 도착했다. 이로써 8사단은 비로소 영천 동북방에서 돌파 저지선을 형성하고 예비부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9월 7일 새벽 국군 21연대가 적 103연대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했으며, 19연대도 아침 무렵 적의 보급지원부대를 기습해 큰 전과를 올리고 다음날 오후 2시 45분 영천을 장악한 적을 격멸하고 영천을 다시 탈환했다. □ 총반격작전과 적 부대의 포위 섬멸국군 2군단은 10일부터 총 반격전을 개시했다. 군단은 영천 북쪽에서 21ㆍ19연대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영천 남쪽에서는 5연대를 선봉으로 총 5개 연대가 반격했다. 5연대는 포병과 공군기의 지원 하에 임포동 부근의 적을 기습해 차량 50대, 야포 10여 문을 파괴하는 전과를 달성했으며, 10ㆍ8ㆍ11연대도 미군 전차의 지원 하에 일제히 유상동, 유하동 방면으로 진출했다. 16연대는 재편성 후 작산동으로 진출해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적을 추격했다. 8연대는 우측 11연대가 1사단으로 복귀하자 그 지역까지를 담당하고 5연대와 협조해 북진했다. 5연대는 임포동 부근의 적 56연대 본부를 공격해 전차 2대, 박격포 6문을 노획하면서 적을 격멸했으며 이로써 5일간이나 차단됐던 영천~경주 사이의 도로가 완전히 개통됐다. 이무렵 적은 퇴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총반격을 받아 거의 전멸된 상태에서 분산 철수하고 있었다. 영천 남쪽에서 적을 추격하던 10연대는 11일 21ㆍ19연대 사이 신흥동을 경유해 곧바로 평천동으로 진출했으며, 21ㆍ19연대도 월곡동ㆍ운천동으로 각각 진출해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각 공격부대는 12일 마침내 9월 공세 이전 8사단 주저항선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반면 적 15사단은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 영천전투 결과영천전투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돌파되느냐 사수하느냐를 가름할 만큼 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였다.특히 9월 5~6일 대구와 경주가 위협받을 무렵에 영천이 돌파되어 그 위기가 더욱 가중됐다.북한군 2군단은 5개 연대를 투입해 영천을 점령하고 경주로 진출하려 했으나, 국군은 이곳에 7사단 3개 연대는 물론 1, 6사단의 각 1개 연대도 투입해 3개 사단으로 방어조치를 취하는 등 육군과 군단의 시의 적절한 지휘조치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국군은 영천 부근에서 적 사살 3천799명, 포로 309명, 전차 5대 파괴, 장갑차 2대, 차량 85대, 소화기 2천327정 등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달성했으며, 후에 적의 지휘부가 평가한 바에 의하면 영천의 상실로 전체 작전의 패색이 짙게 됐다고 분석했다.□호국성지 전투메모리얼파크충절의 고장 영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조성사업은 고경면 청정리 소재 국립호국원과 마현산 정상의 창구·교촌동 일대 11만1천320㎡부지에 조성된다.내년 말까지 279억원(국도비 75%)이 투입돼 영천호국기념관 호국둘레길 염원의 마당 영천전투전망타워 시가전 고지전체험장 지휘통제센터 등을 만든다.전투메모리얼 파크사업은 호국추모권역과 전쟁체험권역으로 구분해 조성한다. 호국추모권역에는 영천호국기념관, 기억의 연못, 염원의 마당, 하늘길 등이 들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순국선열을 조용히 추상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장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전쟁체험권역은 영천전투 전망 타워, 영천시가전 체험장, 야외 숙영 체험장, 고지전 체험장, 국군 훈련장, 지휘통제센터, 충혼탑 주변 정비를 해 학생들에게 전쟁의 체험을 해봄으로써 평화의 중요성을 각인시킨다는 계획이다.경북도 사회복지과 이복영 사무관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청소년들의 애국에 대한 인식전환과 아울러 세계적 추세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통한 역사의식 함양 및 관광활성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다크 투어리즘=역사적으로 비극적이거나 잔악무도한 사건이 발생한 곳 또는 그러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곳을 여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아우슈비츠(폴란드), 뉴욕 그라운드제로, 진주만, 킬링필드(캄보디아)등이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3-11-11

동대구역세권은 지금 마천루 숲으로 변신 준비 끝

대구지역은 과거 몇 년간 건설사들의 무덤으로 통했다.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10여년만에 이른바 `떴다방`이 등장해 검·경이 단속에 나서는가 하면 타지역 부동산 경기는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데 반해 대구지역은 연일 상승하는 등 부동산 붐이 일고 있다. 이는 동대구역세권 개발이라는 강력한 호재가 등장한 것을 비롯한 대구국가산업단지 개발, 대구혁신도시 건설 등이 한몫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동대구역세권 개발로 인해 현재 동대구역 주변은 이제 오피스텔 건설 현장이 줄을 이었고 일부 주민들은 공영주차장에 내려놓은 건설사들의 무분별한 건설자재 하역으로 통행에 어려움을 겪는 민원을 제기할 정도로 많아진 상태다. 특히 동대구역세권 개발의 중심인 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신세계건설이 오는 12월중에 착공해 오는 2016년 하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이에 따라 동대구역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다.이같은 변화는 동쪽으로는 대구 지하철 아양역, 서쪽은 지하철 신천역, 남쪽은 수성구 범어네거리, 북쪽은 파티마 병원을 잇는 지역들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동대구역세권에 포함된 곳에서 건설 중이거나 건설계획을 잡는 오피스텔만도 10여 곳이 넘고, 증·개축을 서두르는 건물도 수도 없이 많다. 복합환승센터 건립 이후에는 인근의 빌딩 건축은 다반사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망이다.복합환승센터 완공땐 세계 기네스 등재 `부산 팬텀시티` 넘보는 규모 성장 전망 차량정체·기형적 팽창 등 각종 문제해결 안되면 시너지효과 상당 부분 빛 바래글 싣는 순서① 신서혁신도시와 이시아폴리스②동구평생학습축제③동촌 유원지의 대변화④동대구역세권 개발⑤팔공산 권역의 상전벽해□ 동대구역 부근은 온통 개발 붐동대구역세권 개발 호재에 따라 지난달 24일 대구지방법원 경매에 올라 지역 최고가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귀빈예식장 건물이 공시지만 296억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만에 303억여원에 낙찰됐다.이번 낙찰에 대해 경매 및 부동산전문가들은 다소 비싼 가격임에도 동대구환승센터를 비롯해 동대구역세권개발 등에 따른 개발가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단순 토지 감정가만도 3.3㎡당 1천만원을 웃돌고 예식장 이외로 사용할 경우 68억원짜리 건물을 헐어야 하며 20억원 정도의 철거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등 낙찰후 비용만도 만만치 않음에도 낙찰됐기 때문이다.동대구역 주변인 신암동과 신천동일대 일반주택의 경우에도 이같은 역세권 개발에 힘입어 3.3㎡당 1천만원 이상에 거래가 성사되지만 앞으로 지가 상승여력이 많아 매물로 나오는 땅은 극히 적은 상태다. 경매 전문가들도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건립되면 세계 기네스에 등재된 부산의 팬텀시티를 위협하는 규모로 성장해 침체된 대구경제는 물론이고 영남권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을 정도다.이같은 반향은 이미 지역 건설사인 화성산업이 대구법원옆에 주상복합 건물을 완공했고 서한도 동대구역 네거리에 오피스텔을 건축한 바 있으며 다른 업체들도 현재 진행중인 아파트 분양 이후 동대구역세권 개발 이익에 뛰어들 태세를 하고 있다. 발 빠른 건설사들의 움직임에는 결국 동대구역세권 개발이라는 호재로 인해 상전벽해의 모습을 할 동대구역 주변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일본서도 확인된 역세권 상전벽해동대구역세권 개발의 미래는 일본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일본의 교토, 오사카, 하카다 등의 복합환승센터 주변은 가히 상전벽해의 모습으로 변모했고 그 지역의 행정과 경제, 문화, 물류, 관광 등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다.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지하 7층, 지상 9층 규모에 전체면적 29만4천200㎡ (8만9천여평), 매장 면적 9만9천170㎡ (3만여평)의 초대형 시설이다.사업 시행자인 신세계 측은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KTX동대구역사와 고속버스, 지하철이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 개발하는 동시에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등이 결합된 대구·경북지역 최고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동대구역 인근에 흩어져 있던 고속버스 터미널이 복합환승센터로 들어오면 환승센터에는 문화·컨벤션·테마파크 등을 한곳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서는 등 일본 후쿠오카의 하카다 복합환승센터(하카다시티)와 비슷하다.신세계는 동대구복합 환승센터개발에 모두 8천억여원을 투자하는 만큼 지역 경제 회복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개점 이후 고용 창출에 의한 경제 효과는 예상 근무인원만 6천여명이고 이에 따른 2차 고용 효과도 1만2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또 광역 상권화에 따라 국내 고객은 물론 해외 관광객 등 연간 500만명 이상의 유동인구가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돼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따라 동촌유원지와 팔공산은 자연스럽게 전국에서 편리하게 쉴 수 있는 관광지로 부상하게 되고 동구의 청사진도 점차 이에 맞춰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대구신성장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편의·접근성 망치는 교통대란 걱정개발이면에 편의성과 접근성을 망치게 하는 교통대란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우선 동대구로는 과거 도시계획을 잘한 관계로 교통량 증가시 현재 심어져 있는 가로수를 제거한다면 별다른 걱정은 없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파티마병원 삼거리로 지목되고 있다.이 곳은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건립되면 넘쳐나는 유동인구에다 주변에 자리잡은 오피스텔 이용객의 흐름 등을 고려해도 밀려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물론 성동고가도로는 개설 계획이 잡혀 있어 어느 정도 교통분산 효과는 있겠지만, 파티마 삼거리는 지금도 정체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대구 동구의회측은 신천3동~신암3동간 고가도로 건설의 계속된 요구에서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이럴 경우 파티마병원을 찾는 응급환자 이송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철도, 고속버스, 시외버스 이용객들은 가히 교통지옥을 방불케 하는 신청 네거리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만성적인 정체현상을 빚는 동대구역 진입로처럼 되면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찾는 이용객들은 다른 지역을 통해 유입할 수밖에 없어 역세권이라는 좋은 이점을 살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도시공학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대구 동구의회 신종하 의원은 “동대구역세권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변과 상생하는 방안을 대구시가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역세권 개발의 극대화는 기대하지 못하고 후적지의 기형적인 팽창만을 빚어올 것”이라고 밝혔다.신 의원은 “교통흐름을 우선시 하는 정책으로 개발하지 않는다면 차량 정체현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접근하기 어려운 역세권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며 “신천3동~신암3동간 고가도로 건설은 차량정체를 막고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길을 트는 것”이라고 제안했다.□사회적 약자와의 공생관계 생각해야또 다른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바로 개발의 뒷전으로 내몰리는 행려자와 쪽방에 기거하는 이들이다.동대구역과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는 모두 80여개동에 1천여개의 쪽방이 존재하며 이곳에 평균 800여명 이상이 하루 5천~8천원이나 월세 10만~18만원으로 살아가는 곳이다.대부분 낡은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기거하는 쪽방인들은 고령에다 노동능력도 부족해 개발의 뒷그림자를 형성하며 쓸쓸히 퇴장하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여기에다 동대구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 상주하다시피하는 행려자들도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건립 이후 자취를 감춰야 하는 대상이다.오는 2016년 하반기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건립이후 현재 쪽방촌들은 개발에 밀려 사라지게 되면 현재의 쪽방인들과 행려자들은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가장 큰 우려는 이들이 매혈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그 여파로 인해 노동력과 건강을 상실하는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 이들에 대한 대책도 대구시는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대구 동구의회 황순규 의원은 “동대구역세권개발은 우선 교통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개발 이면에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개발이익의 일부라도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인, 행려자들을 배려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황 의원은 “동대구역세권 일제정비안을 마련할 때 반드시 사회적 약자와 공생하는 쉼터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대구시와 동구청은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개발업자와 땅주인만 이익을 보는 개발이 되고 그로인한 문제점은 다시 대구시민들의 세금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3-11-11

독도경비대 유영재 상경

서울도 이제 많이 쌀쌀해졌겠구나. 수능 시험은 잘 쳤을 것으로 믿는다. 대학입학 준비로 정신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네 모습을 생각하니 아련해지네. 요즘 들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입대를 한 지 벌써 1년이 다돼가면서 계절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소대에는 이제 나를 가르쳐주던 선임들보다 새로운 후임들이 더 많아.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가르쳐줘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사소한 것이라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간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소대 막내로 독도에 처음 들어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얼마 전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었어. 많은 방송사와 언론사들이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날은 도서지역 합동훈련도 했는데 실전처럼 훈련하면서 겉만 번지르한 독도경비대원이 아닌 진정한 독도경비대원으로서 더욱 뿌듯함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단다.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떨 때는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외로움을 타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네 오빠는 독도경비대원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철저히 국토수호를 하고 있단다.사실 입대 전 나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전역을 하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걸 보니깐 뒤처진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너도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사실 피하고 싶은 것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어느덧 20대 중반이라는 꼬리표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취업은 취업대로 걱정이었으니 말이다.그렇게 한 달 정도 걱정을 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으로 독도경비대라는 것을 알게 됐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다시 한 번 이 식상한 문장 하나가 내 뇌리에 박히더라고. 이번에는 가슴 깊이 다가왔지.대한건아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는 당연히 져야 하는데 이왕 하는 군 생활 정말 멋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도경비대 입대를 신청하게 됐지, 지역적 특성 때문에 스스로 걱정도 많이 했고 부모님께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잘해내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단다.또한, 그 만큼 노력하고 있고. 지난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지리 시간에 독도경비대원 오빠를 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다는 네가 기억나. 그때 나는 한창 전입신고를 마치고 소대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시기였다.너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지 너는 모를 거다. 정말 고마웠단다. 동생아. 이제 그만 줄여야 할 것 같네.스스로 잘 해내리라 믿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즐기면서 잘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나 또한 대한민국 민족의 섬 독도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독도경비대원 오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파이팅!

2013-11-11

칠곡의 가을, 마을마다 사람마다 인문학 사랑 빠지다

`칠곡의 마을! 인문학을 만나다` 란 주제로 지난 9월29일 시작된`2013 칠곡 평생학습 인문학 축제`가 지난달 27일 북삼 숭오리 감따기체험과 농악과 시골길걷기체험을 마지막으로 한달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했다.인문학 축제는 기산면의 `어르신 잔치 및 꿈꾸는 시어터의 마당놀이`를 시작으로 8개 읍·면별로 14개 동네를 돌며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마을축제형태로 열렸다. 지난달 18, 19일 양일간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성인문해교육백일장`이 메인행사로 스타트를 끊은 뒤 지난 10월 내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면서 칠곡은 풍성한 인문학 체험의 장이 됐다.13만 군민과 함께한 축제는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칠곡군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평생학습의 장인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시작하여 마을공동작업장, 체육공원, 장터, 마을회관, 아파트공원, 강변 등에서 사람냄새를 풍기면서 인정을 나누었다.8개 읍·면 14개 동네 특색 살려 진행체험프로그램 강화로 전세대 아울러 □ 인문학 마을축제이야기칠곡군에서 시도한 마을축제는 전주민이 함께 배우고 즐기고 참여하는 나눔문화 조성을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과 운영 주체 간 상호정보교환의 장과 문화, 교육, 복지를 포함한 학교, 동네, 가족이 하나 되는 새로운 축제문화 형성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혼자하면 삶의 일부이지만 함께하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목표로 축제를 시작했다.▲ 인문학 북 콘서트칠곡의 평생학습 인문학축제는 다양함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먼저 창조지역사업 공모사업인 인문학도시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자체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문학콘텐츠를 개발하여 인문학축제에 반영하여 성공된 프로그램을 선별하여 지난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인문학의 첫걸음인 `성인문해교육백일장`을 시작으로 칠곡군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메인개회식과 개막공연 `만두와 깔창` 연극, 40개의 학습동아리무대, 인문학 골든벨, 은빛가요제, 고은시인초청 북콘서트, 향사 박귀희명창 학술세미나 등의 각종행사와 50여개의 평생학습체험부스를 통해 군민과 인문학의 만남이 이루어졌다.축제를 만든 관계자는 “체험프로그램강화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적 요소를 부각한 축제로 지역주민이 자치단체의 행정과 정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삶의 질 향상과 생활만족도에 기여 되었다면 축제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밝혔다. □ 주민의 힘으로 인문학을 세우다칠곡군민들은 한달여간 진행된 인문학 축제를 통해 바쁜 일상으로 만나지 못했던 이웃주민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졌고 잊고 지내던 삶의 소중한 부분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이다.백선기 칠곡군수는 인문학축제를 마치면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이란 삶의 가치를 다루는 일이다. 문학이나 역사 또는 철학이 오늘의 밥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계속되는 인생에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생의 굴곡에서 한편의 시가 삶을 지탱하는 위안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며 “평생학습의 바탕이 탄탄한 칠곡에서 인문학의 꽃이 활짝 피어 새로운 칠곡, 잘사는 칠곡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도시로 만들어 전국에서 가장 주민이 행복한 도시로 만드는 초석과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문과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며,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학, 역사, 철학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칠곡/윤광석기자 yoon777@kbmaeil.com

2013-11-08

서울 도봉산

인구 1천만명이 모여 사는 서울에는 등산하기에 딱 좋은 명산들도 많다. 한강을 굽어보면서 북쪽에 우뚝 솟은 북한산과 도봉산, 남쪽에 자리한 관악산이나 청계산은 시민들에게 훌륭한 등산을 제공해준다. 지난달에는 등산동호회원들과 함께 서울의 양대 명산 중 하나인 북한산에 올랐고, 이번에는 혼자서 도봉산에 오르기로 했다. 인연이 되니 보름사이에 서울의 명산 두 곳을 오를 기회가 생겨서 기분 좋게 도봉산을 다녀왔다.이번에는 개별 등산이다. 간단한 등산장비를 챙겨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에는 등산을 하러가는 사람들이 많다. 도봉산에도 가고 의정부 쪽이나 동두천의 산에 가는 사람들도 많다.자료를 보고 등산길을 선택했는데, 도봉산역에서 하차하여 산악박물관-쌍줄기약수터- 도봉서원- 천축사- 마당바위- 신선대를 거쳐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이다.도봉서원-천축사-자운봉-우이동유원지 코스 6시간 소요신선대 오르면 선인·만장봉 등 늠름한 모습 장관… 풍광 최고도봉산 등산은 오르내리는 코스가 많다.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올라가는 길이 많다보니 등산 출발지점이 여러 곳에 있다.하루 등산코스로는 대개가 도봉동 매표소에서 출발하여 도봉동매표소- 도봉서원- 도봉산장, 천축사와 마당바위를 지나 자운봉에 올랐다가 우이암을 거쳐 우이동유원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는데 6시간가량 소요된다.3시간 30분 걸리는 반나절 코스는 도봉동과 도봉산장을 거쳐 자운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은 두 가지를 선택한다. 첫째는 우이암-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고, 둘째는 포대능선 안부-회룡사-회룡동으로 내려오는 길이다.도봉산역에서 내린 필자는 함께 내린 등산하러가는 청년 일행에게 등산로 초입을 대략 묻고서는 그들을 따라서 걷는다. 많은 등산인들이 가족 또는 지인들과 함께 유쾌한 기분으로 도봉산 산행을 시작한다.“다람쥐가 꿈꾸는 도봉산으로, 그대 손을 잡고서 같이 갈거나.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둥실 떠 있고…” 필자는 도봉산 등산길을 시작하면서 원로가수 송민도씨의 노래 `행복한 일요일`을 콧노래로 부르면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가을산행을 마음에 그려본다.북한산국립공원 도봉매표소를 지나 곧장 가다보니 산악박물관이 나타났다. 2011년 10월 1일에 개방된 이 박물관에는 국내 등산인들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사용했던 장비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그 가운데 모형으로 만들어진 암벽과 빙벽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반용 헬멧과 각종 빙설장비, 피켈 등이 전시돼 있는데, 자료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산악인 역사를 아는데 도움이 됐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등산길에 올라 광륜사 절을 거치고 계속 직진하니 쌍줄기약수터가 있다.여름철에는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힘들고 목이 마른 등산인들에게는 휴식터가 된다. 일부 등산인들이 약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지만 필자는 젊은 사람 일행을 따라 계속 행보를 한다.도봉서원에 도착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서원으로는 유일하다는 도봉서원은 조광조 선생과 송시열 선생을 기리는 곳이다. 1573년 지방유학자들이 뜻을 모아 조선시대 유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곳인데, 1696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함께 모셔졌다고 한다.계곡을 거쳐 길을 올라가는데 물이 적다. 여름철에는 이 일대에는 등산인들과 놀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할 것이지만 가을에 계곡을 찾는 사람들은 적다. 도봉산대피소를 지나 등성이를 오르니 등이 하나둘 보이고,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니 천축사 절이 나타난다. 입구에 불상들이 모여 있는데 얼굴과 손동작이 모두 다르다.천축사는 도봉산 선인봉에서 동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대사가 옥선암을 세웠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기서 100일 기도를 하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고 하여 절을 개축하고서 천축사라 부르게 됐다고 하다.천축사 경내를 둘러보고 사찰 뒤에 우뚝 솟은 선인봉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처음 보는 장면이지만 보면 볼수록 위엄을 느끼고 도봉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선인봉의 풍경을 매료되면서 숲길과 바윗길을 헤쳐 드디어 마당바위에 도착했다.마당처럼 넓어 붙여진 마당바위에는 많은 등산인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필자도 등산객 속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멀리 서울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가까운 노원구, 도봉구 지역인데 아파트촌이다.도봉의 정상 턱밑에서 잠시 쉬면서 도봉의 진면목을 느껴본다. 전국의 많은 산을 다녀보고 있지만 어느 산이라도 그 산의 매력은 다 있다. 항상 산을 올라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올라온 길과 내려갈 길이 가물가물하게 보이고 어떤 때는 숲과 나무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 아름다운 길은 다 나 있는 것이다.올해 서울지역의 단풍 절정기는 10월 27일이라 한다. 그리고 이곳 도봉산에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시기는 10월 하순이라고 하는데 때맞추어 잘 찾아왔다. 마당바위에서 신선대, 자운봉으로 오르는 길은 힘든 코스다. 그러나 단풍을 보면서 또한 가을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정취를 느끼며 걸으니 발걸음도 자못 가볍다.도봉산 정상인 자운봉 옆에 있는 신선대에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암반으로 되어 있는 등산로는 철책이 있고 발 내디딜 곳을 잘 찾아 조심조심 올라가야 한다. 앞에 오르는 사람들과 부딪힘을 신경쓰면서 드디어 신선대에 올랐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한지 5시간이 거의 되어 간다.이곳에서 주변의 풍경들은 정말 멋있다. 가까이 보이는 같은 도봉산의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의 늠름한 모습도 장관인데다가 북한산이나 멀리 시내의 풍경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신선대의 이름을 괜히 신선대라 하였겠는가. 그만큼 풍광이 좋다는 뜻일 게다.다시 조심스럽게 암반 길을 내려와 이번 등산의 하이라이트인 도봉산의 중보인 자운봉으로 향한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길을 내려와 산등성이를 타고 다시 자운봉 쪽으로 오른다. 공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르는 참이라 속도가 빠르지 못하다.드디어 도봉산의 주능선에 우뚝 솟은 최고봉에 올랐다. 서울의 명산 도봉산, `경기의 금강`이라 불리는 자운봉(740m)에 올라 가을빛이 한창 무르익는 사통팔방의 풍경들을 바라보면 잠시 나를 잊게 된다. 그저 무아지경의 황홀경이다.감격의 순간에는 말이 필요 없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진한 감동에 마음마저 멍멍해진다. 도봉산 등산을 결심하고 혼자서 올라온 길이 저 멀리 보인다. 아침의 상쾌한 기분이 지금 이 순간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감동의 도봉산 산행이었다. 이제 하산하는 것은 길대로 따라 내려가면 되지만 가을의 산행에서 명산 도봉이 내게 가져다준 의미는 신선하고 장엄한 느낌이다.정상이서 내려오는 길이 암반으로 되어 위험한지라 하산하면서 딴 생각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정말 이곳 도봉산을 잘 왔구나”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놓는다. 이제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 사람들을 따라 온 곳을 찾아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이번 등산코스로 도봉산 코스를 선택하여 혼자서 올라본 가을 산의 풍광들이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끄트머리에서 의미가 있는 필자의 `가을, 도봉산 일기`를 적어본다.▲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08

취임 1년여 만에 흑자 전환…“열정·도전정신으로 일에 매진”

적자에 허덕이던 경상북도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가 공원식 사장이 지난해 6월 1일 취임 후 흑자체제로 전환했다.경북관광공사는 민자유치와 일자리 창출 부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며 출범을 앞두고 일었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이를 신호탄으로 경북도가 도청 내에 있던 관광마케팅 관련 업무를 내년부터 모두 관광공사로 이관시키기로 하는 등 관광공사가 경북관광정책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공원식 사장을 만나 그간의 경영성과와 변화된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보문단지 274억원 등 총 300억원 민자 유치… 공격적 마케팅 `한몫``이스탄불-경주 엑스포` 관광자원·특산품 홍보, 관광객에 깊은 인상미래 경북관광 “타지역과 차별화된 명품관광 콘텐츠 발굴 노력할터”-관광공사가 재도약하게 된 배경은.◆ 관광공사와 경북관광개발공사의 합병에 따른 법률상 근거 부재, 양도차익에 따른 법인세 문제, 지방공기업법 개정 등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이병석 국회부의장님과 김태환 국회안전행정위원장님, 김관용 도지사님, 도의회 등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이 없었다면 경북관광공사의 설립은 불가능했다.경영자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고 그걸 합리적으로 조직에 적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열정과 도전 정신을 화두로 놓고 일에 매달리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오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적자였던 회사가 흑자경영으로 전환했는데 1년 6개월 사이를 다시 짚는다면.◆ 포항시의회의장과 경북도정무부지사를 거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사업 전체를 펼쳐 놓고 들여다보면서 사업단위를 쪼갤수 있는 대로 쪼개고 공통점이 있는 작은 단위를 묶어 거기다 이름을 붙여주고 패턴화시키는 단순한 작업을 했더니 엄청난 시너지가 나왔다.경북관광개발공사 당시인 2012년에 64억원의 적자가 났다.사장에 취임하고 유사업무와 지원부서 통폐합을 통해 15개팀을 13개팀으로 줄였다.휴그린 골프장은 신규채용 없이 자체인력으로 전환배치만 했는데 10억원이 절감됐고, 식당을 아웃소싱한 결과 4억원의 예산이 절감됐다.공격적인 마케팅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경북관광개발공사 당시 2008년부터 5년 동안 토지매각 수익이 평균 73억원에 불과했지만 취임하고 나서 보문관광단지 274억원, 안동 관광단지 26억원 등 총 300억원의 민자를 유치했다.영천보현산천문전시체험관건립 체결을 맺으면서 30억원의 수익이 창출됐다.이렇게 해서 올 연말까지 100억원의 흑자가 예상된다.-공공기관들이 비리와 부정부패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관광공사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지난 9월말부터 2주간 감사원으로부터 경북관광개발공사 시절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관광공사 설립과 관련한 사항, 휴그린 골프장과 유교랜드 공사 등 대형공사와 신입사원 채용, 세입세출 문제, 국고 보조금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감사가 진행됐는데 어떠한 지적 사항도 없이 잘 마무리 됐다. 오히려 감사관들이 감사우수기관 사례로 지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우리 공사는 2012년 종합청렴도 8.67점으로 16개 기타 공직유관 단체 중 내부 청렴도 1위를 차지한 우수기관이다.-`이스탄불-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이 행사에서 관광공사는 어떤 역할을 했나.▲ 공원식 경북관광공사 사장.◆ 경주는 고대도시로는 이스탄불, 로마, 아테네, 서안과 같이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스탄불-경주 세계 문화엑스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이 행사의 한 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우리 공사는 이스탄불에 22개 시군 홍보관을 운영, 경북도내 지역의 문화와관광자원, 특산품을 알렸으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지인은 물론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루에 평균 7만명이 홍보관을 찾아 당초 80만명 목표를 2배나 되는 160만명이 홍보관을 찾았다.-경북도청의 관광마케팅업무가 공사로 이관된다는데 그 내용은.◆ 경북도청 업무의 공사 이전은 공사가 해당업무에 대해 경북도로부터 완벽한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고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적자에서 흑자전환, 공격적 마케팅, 조직 안정 등이 업무이관을 결정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관광공사 설립 주요 취지가 `경북문화관광 총괄 콘트롤타워 역할`과 `관광전담 공기업 설립으로 지자체 주도의 관광개발 추진`이며,이관업무는 경북도의 관광마케팅업무 중 32개사업이다.이러한 많은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담부서 설치 필요성에 따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기존 관광마케팅팀을 마케팅본부로 승격시키고 본부안에 마케팅 업무를 수행할 3개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미래핵심산업인 관광산업을 경상북도가 선도하기 위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것은.◆ 관광산업은 결국은 차별화된 가치 발굴에 있다.서울의 북한산과 똑같다면 서울시민들이 포항 내연산은 찾지 않을 것이다. 내연산에는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을 지내며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는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이런 점을 발굴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관광공사의 역할이다.경북도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갖고 있지 않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찬란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경주는 신라가, 안동은 유교문화가 있다. 포항의 과메기와 도심의 해수욕장, 국제 불꽃 축제가 있다. 이를 어떻게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마케팅을 하느냐에 따라 경북의 관광미래가 달렸다고 본다.경북도만이 갖고 있는 강과 산, 바다, 그리고 IT문화와 스토리를 잘 조화시켜 타 지역과 차별화된 경북만의 명품관광콘텐츠를 발굴할 계획이다.경주/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13-11-08

대구 방어의 최일선, 인천상륙작전 성공 토대가 되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프로야구 코리안시리즈로 수많은 사람들이 TV를 보거나 야구장을 찾아 열광했다.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스윙 하나에 웃고 울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지인들과 소주를 한잔 하거나 운동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마음껏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 뒤에는 호국선열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않은게 사실이다. 다만 그런일이 있었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평화를 누리는 우리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또 후손들에게 평화를 물려줘야 한다. 올해 정전 60주년을 맞아 대구와 경북을 사수했던 칠곡 다부동 전투를 비롯 영천, 상주 등 지역의 치열한 전투지역을 찾아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짚어 본다.경북도 호국벨트사업의 시발점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내년말 완공태극기 형상 조성, 전시관·낙동강전투체험관·4D영상관 등 들어서□ 칠곡, 다부동·왜관 전투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석적면 중지리 일대는 여는 시골마을과 다를바가 없었다.한적한 농가에는 잘 익은 빨간 감이 자태를 뽐내며 길손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하지만 몇 십년전 이곳은 그야말로 격전지 였다.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와 형님들이 목숨을 바쳐 이곳을 사수했다. 하지만 지금은 평온하다. 호국기념관의 덩그란 전적비 등 각종 기념물만이 그날의 함성을 잊지말라는 듯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반만년 역사를 통해 가장 참담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1950년 6월25일 새벽. 소련과 중공의 지원아래 북한의 김일성은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남침 3일만인 6월28일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고 그 여세로 낙동강까지 남하했다.한반도 땅 어느 한 곳 포화와 화약의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남하하는 적을 막기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곳 다부동에서 벌어졌고, 그 결과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이 가장 많았다. 다부동과 왜관일대는 유학산과 가산이 있어 방어선이 향성 되었으며, 이 곳이 뚫리게 되면 대구가 적 지상포화의 사정권내에 들어서게 됨에 따라 다부동과 왜관은 대구방어의 가장 중요한 전쟁터가 됐다.1950년 7월 21일,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수안보 전선까지 내려와 8.15 광복행사를 기필코 대구에서 하겠다며, 북한군 3사단은 성주를, 10사단은 고령, 13사단은 상주로 15사단과 1사단은 각각 선산과 효령으로 투입해 집중공세를 폈다, 아군은 왜관의 작오산(303고지), 석적포남(328고지), 숲데미산(518고지), 유학산(839고지)과 다부동, 중구동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맞서게 된다. 국군 제1사단이 낙동강으로 도하한 후 3일이 지난 8월4일 낙정리일대에서 시작된 낙동강 전투는 8월 16일 맥아더의 융단폭격 작전을 도화선으로 9월16일 천생산 탈환작전을 성공함으로써 잔적을 소탕한 9월 24일에야 끝이 난다.55일간의 전투에서 1만7천여명의 북한군, 1만여명의 국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두달간의 치열한 방어전투로 전쟁의 흐름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반격의 계기가 돼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다부동은 1950년 8월, 북한군 5개사단이 왜관과 다부동 전선에 집중 투입돼 8월15일까지 대구를 함락 할 기세로 총 공세를 감행했다. 국군은 제1, 8사단이 주축이 되어 미 제1기병사단과 함께 수십차례의 밀고 밀리는 혈투끝에 적의 공격을 막아낸 곳이다. 9월초, 북한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으나, 국군과 UN군의 우세한 화력과 반격으로 이 곳에서 주력부대가 섬멸됐다. 결과 국군은 대구·다부동선을 고수하고 반격의 보루를 확보하게 된다. 이를 기념해 국방부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1981년 11월 30일 건립했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호국과 평화의 중요성을 공부하고 있다.□ 왜관지구 전적기념관다부동과 마찬가지로 북한군이 대구를 침공하기 위해 최후의 공세를 편 곳으로, 낙동강을 두고 일대 격전을 치른 곳이다. 1950년 8월, 왜관읍 주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지고 탱크를 앞세우고 남하하는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왜관 (구)철교(낙동강 인도교)를 폭파하면서 왜관 전투는 시작된다. 북한군 5개사단이 투입돼 총공세를 펼치자, 국군은 작오산, 숲데미산, 유학산, 다부동, 중구동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공방전이 시작된다.한국전쟁 당시 도하를 막고자 낙동강의 다리들이 모두 끊겼으나, 북한군 4만여명이 집결해 대규모 도하작전을 벌이자 맥아더장군에게 폭격을 요청한다.B29기 98대가 왜관 서북방 67km (약목, 구미일대)에 26분동안 9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이 폭격으로 북한군 4만명중 3만명이 죽었으니 1초에 20명, 1분에 1천150명의 사상자를 낸 유명한 `융단폭격작전`이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이 조성됐다.□ 호국평화공원칠곡 낙동강 호국평화공원이 지난 6월 25일 착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이 곳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 국토의 5%만 남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최후의 보루로 방어선을 구축한 곳이다.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에게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과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하는 안보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기념관 공사가 한창이다. 총사업비 547억원(국비 230억원, 도비 115억원, 군비 202억원)으로 석적읍 중지리 왜관지구전적기념관 일원에 23만2천㎡ 규모로 2014년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낙동강호국평화공원은 경북도 호국벨트사업의 시발점이며 나아가 칠곡군의 호국브랜드화 사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미래 신성장 동력의 중추사업으로 추진하게 됐다. ◆ 공원시설 현황메인시설인 호국평화기념관은 지하2층 지상4층에 연면적 9천218㎡로 휘날리는 승전의 태극기를 형상화 했고 바깥 외형은 수호의 성벽을 표현하고 있다. 내부에는 호국전시관, 낙동강전투체험관, 어린이평화체험관, 4D입체 영상관, 컨벤션센터, 세미나실, 카페테리어, 전망대 등이 들어선다. 옥상은 공간을 활용해 야외전시장, 공연장, 전승의 마당을 꾸며 소규모 행사와 공연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외부공간은 호국광장, 화합의 광장, 스토리벽, 상징조형물, 전쟁테마놀이터로 구성했으며 특히 스토리벽은 워싱턴 DC의 한국 전쟁 참전용사 기념관을 벤치마킹해 야외에서도 자연스럽게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계획됐다. 또 왜관지구전적기념관 610㎡를 리모델링해 상설 및 기획전시실로 사용하고, 주변에는 상징적인 낙동폭포와 문화광장을 조성, 문화와 휴식이 있는 쉼 공간으로 변모된다.◆ 기대 효과직접 전투를 체험하는 최첨단 4D 전투영상관, 다부동의 전차전을 체험하는 라이더, 입체영상사격장, 어린이 평화체험관 등 체험시설로 특화해 어린이와 청소년, 성년 등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도입된다. 누구나 손쉽게 찾아와서 보고, 듣고, 즐겁게 체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호국안보의식과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국제적인 호국안보 체험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칠곡군 호국의 고장 위상정립과 관광활성화를 위해 산재한 호국문화 유산들을 체계적, 전략적으로 정립하고 개발하는 호국브랜드화 사업의 핵심 선두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지역주민들을 비롯한 대구와 구미 등 인근의 250만 시민이 손쉽게 찾아와서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쉼터로 자리매김이 기대된다. 그 결과 지역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인구유입 효과와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경북도 김원석 사회복지과장은 “호국평화공원은 정부 지자체 등이 합심해 엄청난 규모로 조성하는 만큼, 완공되면 청소년들에게 안보호국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과 아울러 관광명소화 돼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2013-11-04

독도경비대 독수리 지역대 김영웅 수경

어머니, 아버지 막내아들 김영웅입니다.훈련소에서 어머니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꾹 참은 채 입대한 날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의경으로서 마지막 계급인 수경을 달았습니다.울릉경비대와 독도를 오가면 이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세 번째 독도는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군 생활의 마지막, 저 자신의 태도나 심경이 많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모든 상황에서 급한 마음과 초조함이 사라지고 여유를 가지며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곳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유를 갖고 생활하게 된 독도는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산과 바다, 좋은 경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꼭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올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지금까지의 독도생활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관광객을 맞는 마음입니다. 어르신들이 독도에 많이 오시는데 오실 때마다 손을 꼭 잡아주시며 내 자식 같다며 눈물을 보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뭉클하고 코가 시큰거립니다.우리 모든 대원들이 저와 똑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응원을 들으면 독도경비대로서의 자랑스러움과 책임감을 망각할 수 없습니다.문득 처음 육군훈련소에 면회 오셨을 때 부모님께 독도경비대에 지원했다고 뜬금없이 말씀드렸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됐지만 네가 진정으로 가고 싶다면 가라고 응원해주시던 말씀이 큰 힘이 됐습니다. 남은 군 생활을 멋지게 하고, 그 어느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시간과 경험을 얻었습니다.어머니, 아버지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얼른 전역해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멋진 경험과 운치를 밤새도록 얘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충성!

2013-11-04

강원도 오대산

아름다운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은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의 계절이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야외 활동에 알맞은데다가 볼거리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함께 가자고 등산회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 철이다.이번 등산에서는 오대산으로 정하고, 일행들과 떨어져 일요일 아침에 출발지점인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오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풍경들을 본다. 모처럼 혼자 차를 타고가면서 편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 여유로움을 가져본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 길에 이르니 여기저기에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들이 나타난다.상원사-사자암-비로봉-소명골 9km 코스, 8시간 소요100년된 전나무 자리잡은 `오대산 옛길` 가을정취 만끽진부면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 상원사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였다. 아직 일행들이 도착하지 않아 연락을 취하고서는 주변을 살피며 이것저것 둘러보았다. 일행들과 합류하여 상원사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등산을 시작했다.이번 오대산 등산코스는 상원사절- 사자암- 적멸보궁- 비로봉을 거쳐 상왕봉, 미륵암을 지나 소명골로 해서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일정으로 돼 있다. 산행거리는 약 9km로 8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나와 있다.오대산은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강릉시 일부에 있는 산으로 비로봉(1천563m)을 주봉으로 동대산(1천434m), 두로봉(1천422m), 상왕봉(1천491m), 호령봉(1천561m)등 1천m가 넘는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있어 붙여진 이름이다.등산을 시작하고 전나무 숲길을 300m 지나다보면 상원사로 오르는 계단길이다. 계단길이라 조금 가파르지만 등산로 초입에 있는데다가 넓고 평탄하게 되어 있어 오르기 쉬운 편이다. 일명,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다.이 길을 걸으면서 오대산은 평이한 등성이라 등산하기가 어렵지 않고, 등산길에는 상원사나 적멸보궁, 그리고 하산하는 길에 월정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주위의 풍경에 여유로움이 있어 번뇌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생각해본다.상원사에 도착하여 조요한 아침 산사의 진면목들을 본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년)에 신라의 보천과 효명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어졌는데, 처음 이름은 진여원이다. 그 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성지로 이름을 빛낸다고 한다.상원사에는 국보 중에서 동종(36호)가 있고 문수동자상(221호)가 있다. 동정각에 유리 칸막이 속에 있는 동종은 우리나라 현존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종으로 유명하다. 경내에 있는 5층석탑 등을 잠시 둘러보고서 일행들은 다음 코스인 중대암으로 오른다.중대산에 도착하여 사자암을 둘러보고 난 후에 불교도들에게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적멸보궁을 향해 길을 걷는다. 사자암에서는 1.4km 거리에 있는데, 적멸보궁까지 돌길을 깔고 계단을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는 기도처를 찾는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기 편리하기 위함인데 가급적 자연상태를 살리면서 힘들거나 위험한 구간을 정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적멸보궁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도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부처님 진성사리를 가져와 봉안했는데, 여기 말고도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과 함께 5대 적멸보궁이다.이곳에서 가족 건강을 축원하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면서 일행들과 사진을 찍었다. 잠시 쉬다가 비로암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지점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1.5km인데,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의 거리가 1.5km로 이번 등산 코스 중에서는 험난한 편이다.다시 비로봉을 향해 오른다. 이 일대에서는 벌써 단풍이 다 지고 상원사 계곡으로 내려갔다. 단풍나무에는 마른 잎들이 달려 있거나 나무 잎사귀가 이미 떨어진 상태다. 조금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산등성이의 풍경은 벌써 가을이 지나 겨울로 가는 형색이다.이곳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능선을 비롯해 오대산의 산등성이 완만한 능선은 눈이라도 오게 되면 설경이 멋있는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벌써 마음속에서 이곳의 풍경과 함께 눈 내린 설원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오대산 가운데 하나의 봉우리인 비로봉(1천 563 km)에 도착하니 오후 12시 20분이다. 정상에 서서 멀리 산들을 조망해본다. 강원도 산이라 하나 산세가 완만하니 편안한 마음이 든다. 일행들은 여기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정상표지석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한다.그리고는 또 하나의 오대산 봉우리인 상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가을 단풍이 끝나버린 산길을 가을햇볕을 이고 1시간 남짓 거리를 걸으니 상왕봉이 나타난다. 돌무더기 옆의 상왕봉(1491m) 정상에 서서 오대산의 가을을 감상한다.다시 상왕봉을 내려서서 하산을 한다. 가다보면 직진하여 오대산의 한 봉우리인 두로령으로 가는 길과 우회전하여 상원사로 내려가는 북대사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일행들은 일정 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미륵불이 있는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온다.여기서부터 큰 경사가 없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미륵암을 찾아 잠시 구경하고서는 상원사로 내려가는 임도를 만나 편안한 산행을 계속한다. 길 주변에 있는 거대한 참나무도 볼거리다. 밋밋한 산 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내려오니 아침에 출발했던 상원사 주차장에 이르니 오후 3시가 됐다.아침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오대산 옛길을 보행으로 탐방하지 못했다. 이 길은 2011년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최고상인 `아름다운 생명길`을 받았으니 만큼 유명해진 길이다.길 전체의 느낌은 100년이 넘는 수령의 전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가운데 계곡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잔잔한 물, 아기자기한 시골길의 풍경이 넘쳐나는 콩밭길, 숲길,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만나는 단풍들은 계절 맛을 흠뻑 젖게 한다.월정사 주차장에서 반야교까지 1.5km 구간은 포장이 되어 있지만 그 곳에서 상원사 입구까지는 비포장도로다. 일행들이 산행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 길은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걷는 비포장도로의 옛길이다.본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들어가면서 이 길을 걸어야 하지만 필자는 하산길에 이 길을 택했는데 역코스다. 들어가는 길에서 `참된 나` 를 찾는 것이라면, 나오는 이 길은 자연과 동화되고 나서 `자아` 를 버리고 오는 길이기도 하다.선재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니 앞에 월정사가 보인다. 좋은 풍광에 고운 생각을 하다 보니 6km가 넘는 옛길을 금방 온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다. 월정사에 도착하여 법당에 들렸다가 나와서는 경내를 살펴본다.월정사는 선덕여왕 12(643년) 자장율사가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여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라 한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 만화, 현해 스님 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름난 사찰이다.오늘 강원도 오대산 찾아 능선을 타고,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로 계곡에 머물고 있는 가을단풍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났다.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는 그 비경을 감상하면서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배우기 위해 떠나온 오대산 산행 길.가을산행은 마음을 채우기 위함보다 비우기 위해 간다. 그 비움의 미학은 마음을 살찌우게 하고 아름다운 생각들을 가지게 하여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복잡한 인간생활에서 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기 위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의 기쁨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1-01

원형보존 잘된 세계 최대 고인돌, 유일하게 세워진 구조

“와! 토요일이다” 두바퀴로의 지정 모임장소인 시립중앙아트홀 만남의 광장은 오늘도 문화탐방대원들의 반가운 미소로 가득하다. 이제 지역의 문화를 찾아가는 일이 익숙한 모습들이다.오늘따라 박계현 (사)문화와시민 이사장은 더욱 상기되어 있다.평소 영일만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관심이 특별났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은 HCN 최성필 PD가 함께 동행 합니다. 영일만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다큐를 제작해 포항 고인돌의 가치를 전국에 알렸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함성과 함께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최성필 PD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서해안에서는 화순과 고창이 집단군을 이루며, 동해안에서는 영일만 일대를 중심으로 대거 분포합니다. 특히 오늘 탐방하는 기계면 일대의 고인돌은 칠포리 암각화 등과 함께 영일만 일대에 찬란한 고대문화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써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이때 해맞이 포럼 이명희씨가 한마디 한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찬란했던 삼국문화 이전에 그 기반이 되었던 고대문화가 우리 포항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포항의 자랑입니다.”“맞아요. 우리는 우리지역의 문화에 너무 무관심 했던 것 같습니다.” 한마음 후원회 권기봉 회장도 한마디 거든다.그렇다. 인근 경주에서 신라가 찬란한 삼국문화를 꽃피우기 이전에 영일만 일대에는 삼국문화의 기반이 되었던 큰 규모의 고대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기계면 일대만 1백수십기… 청동기시대 흔적 뚜렷고대 문화유적 귀중한 자산 방치돼 안타까움 더해영일만 일대는 남방식 고인돌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고인돌은 의미 없는 하나의 거대한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돌덩이 아래에서 마제석검, 청동검 등 고대 생활도구가 발굴됨으로써 당시 지도자의 돌무덤으로 밝혀졌다.고인돌은 돌을 괴어 만든 무덤이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한다.고인돌의 크기는 지도자의 권력과 힘의 크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큰 규모의 고대문화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고인돌의 구조는 받침돌과 덮개돌로 되어 있다. 형식에 따라 북방식 · 남방식 ·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북방식은 주로 북쪽에서 많이 발견된다. 4개 혹은 2개의 굄돌을 세운 뒤 평평한 덮개돌을 얹은 모양이 마치 탁자모양을 하고 있어서 `탁자식`이라고도 한다. 남방식은 몇 개의 밑돌을 놓고 덮개돌을 얹는다. 마치 바둑판과 같아 `바둑판식`이라고도 부른다. 개석식은 받침돌 없이 덮개돌을 얹은 형식이다. `무지석식`이라고도 한다. 성계리를 비롯한 기계일대의 고인돌은 대부분 남방식이다.고인돌은 전 세계에 약 7만기가 있다. 한반도는 고인돌 왕국이라 할 만큼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인 4만기가 분포하며 크기와 규모도 세계 최대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지난 2000년 12월 종묘, 불국사 등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고대문화연구의 주요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두바퀴로 탐방단은 포항 시가지를 약간 벗어나 황금물결 일렁이는 넓은 들을 따라 기계면 성계리에 도착했다. 마을 풍경이 색다르다.집안 담벼락 옆에서 호박 넝쿨을 덮어 쓴 고인돌, 장독대 옆에 놓여 있는 고인돌, 마을 길가에 서있는 고인돌, 고인돌과 고인돌 사이에 있는 집, 집과 집 사이에 있는 고인돌 등 마을이 커다란 돌덩이들 사이에 있는지, 커다란 돌덩이들 속에 마을이 있는지 구별이 안 간다. 고인돌과 생활을 같이하는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칠성바위`라 부르며 신성시성계리 마을 안에만 해도 7기의 고인돌이 있다. 성계리는 원래 `칠성동`이라고 불렸다. 마을 사람들이 고인돌을 `칠성바위`라고 부르며 신성시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성계리 고인돌은 타 지역에 비해 대부분 규모가 크고 거대하다. 최성필 PD의 안내를 따라 숲을 헤치며 풀 향기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서도 4,5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산 정상에 굄돌을 한 고인돌이 위엄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인적 끊긴 노당재에 고인돌이 지키고 있었다.성계리 산중턱에 세워진 이 고인돌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원형 보존이 잘된 고인돌이다. 또 눕히지 않고 세워 둔 유일한 고인돌이다. 안강과 기계를 연결하는 노당재 길목 중간지점에 세워짐으로써 더욱 웅장하고 위엄이 돋보인다. 워낙 커서 굄돌의 크기만 해도 일반 고인돌 크기이다. 수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꿋꿋이 서있는 고인돌을 보니 당시 고대인들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과 운반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인돌 유적지 관광자원화 해야 강화 고인돌 문화축제는 벌써 14회를 이어가고 있다. 채석·운반·가공·축조 등 고인돌을 세우기 위한 과정을 재연하는 행사를 통해 강화의 고대 문화유산으로 관광자원화 시켰다. 순천은 고인돌 공원을 만들어 선사시대 보존 교육장과 관광지를 조성했다.이에 반해 우리 포항 일대의 고인돌은 그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존재에도 관심이 없다.포항은 성계리만 해도 수십 기의 고인돌이 있고, 기계에는 100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다. 그러나 표지하나 없이 방치된 현실이 유감스럽다. 강화·고창순천은 이보다도 적은 수의 고인돌을 보유하고도 고인돌을 관광자원화 하는데 성공했다. 영일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분포지역이다. 기계면 일대의 고인돌은 칠포리 암각화 등과 더불어 고대문화 박물관으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경주에 신라의 불교문화가 있고, 안동에 조선의 유교문화가 있다면, 포항에는 고대문화가 있다.◇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문화가이드:최성필(HCN 피디),◇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청소년 기자단:최요한, 신창민, 장혜원, 이나영,◇ 취재동행:권기봉, 정경식, 이길호, 김영미, 진효승, 김명헌, 김병수, 박창교, 임채완, 장미향, 김하늘, 권태성, 이석호(한마음 후원회), 박계현, 이명희, 이영숙, 장재향, 이선덕, 김미숙, 이주형, 김효은, 노경훈, 최성룡◇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2013-10-31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1

▲ 배규성 교수 영남대학교동해, 7세기부터 해상실크로드와 연결해양실크로드와 동해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는 두 갈래가 있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다. 실크로드 무역의 핵심은 비단과 향신료다. 중동 등지에서의 교역 상인들은 중국 등지에서 비단과 향신료를 사들여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그것은 교역을 활발하게 했고, 서양 문물 등은 국경을 넘어 신라에까지 이른다. 신라 왕릉 등에 서역문화가 보이는 이유다. 실크로드 사업은 분야별로 탐험, 무역, 동서문화교류 및 융합, 미술, 종교와 사상전파 등으로 나뉠 수 있다.당시는 종교는 물론 흑사병이라는 질병도 실크로드와 무관치 않다. 실크로드는 어쩌면 지금도 그 맥을 같이한다. 동북아 각국의 실크로드 전략이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철도를 통한 실크로드와 에너지 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확장 노선, 남서부를 연결하는 동남아 노선, 남북한을 관통하는 철도와 중앙아시아의 가스전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동해안까지 연결하는 에너지가 그 단적인 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와의 통상, 물류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에 골몰하고 있지 않는가.7세기 지도와 8,9세기의 무역과 통상루트를 볼때 동해가 실크로드와 깊숙히 연결됐음을 알 수 있는데, 여전히 동해는 환동해 실크로드의 중심이다. 특히 에너지, 철도, Digital Silk Roads(DSR) Project 등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실크로드와 관련, 한국의 전략은 통상, 물류의 루트 및 환경협력도 중요하지만, 남북한 철도연결과 TSR연결 프로젝트와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이 핵심인 만큼 민관 모두 전력을 다해야 한다.작금에 있어 환동해 실크로드 협력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일본의 영토분쟁이다. 일본-러시아간 남쿠릴열도 분쟁, 일본-중국간 센카쿠열도와 다오위다오 분쟁, 일본과 한국간 독도문제 등은 환동해 실크로드의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최영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문위원`길·인간·바다` 창의적 통찰 우선해야해양 인문학적 의미해양실크로드 탐험의 해양인문학적 차이의 해답은 경상북도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획기적인 기획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먼저 경북을 신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화하고, 문화 융성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KORE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북도와 해수부가 나서 `2014 해양민국 뿌리찾기 해양실크로드 대장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해양실크로드의 구성요소로는 길(Road), 인간(Human), 바다(Sea) 등 세 가지를 들 수 있다.길은 개척, 도전, 용기의 집적을 의미하며 경험적 이해와 문화적 축적으로서의 연속성을 말한다. 인간은 차이와 변화, 선택의 총체로 융합적 사유와 호모 노마드적 속성을 일컫는다. 바다는 넓이와 깊이, 유동적인 물의 광장을 의미하며 창의적 사고와 과학기술의 구체적 실현이다. 이처럼 해양실크로드는 바로 물질, 즉 비단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물질에 가해진 인간 노동의 결과, 물질에 투영된 서로 다른 삶의 형태, 물질을 통해 구현된 인간의 문화 혹은 문명질서, 인간의 경험적 사고로 창조된 물질의 새로운 차이 등도 포함하고 있다.여기서 바로 소비 상품으로서의 한류, 정보 산업으로서의 한류,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으로서의 한류를 짚어볼 수 있다. 한류는 새로운 물음을 안고, 세계를 평면이 아닌 깊이로 사고하는 시도다. 이렇듯 자본주의 과정에 영합하는 한류는 문화적 상품화로 전락하기 쉬우며, 원동력이 되는 문화적 정체성 확립 없이는 곤란하다.따라서 해양실크로드 탐험 성과의 사후 활동을 위한 전문기획 및 연구 커뮤니티 구성이 무엇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이 밖에도 성과물의 효율적 관리 및 전시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경북도와 해수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김웅서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양 탐사로 새 과학적 지식 도출 가능탐험의 해양과학적 활용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1%를 차지하는 반면 육지는 표면적의 29%에 불과하다. 특히 남반구는 표면적의 80%가 바다이므로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큰 서식지이다.우리는 해양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는다. 해양에서는 생물자원, 광물자원, 에너지자원, 수자원, 공간자원 등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지구의 기후조절과 오염물질의 정화, 물류의 교통로 등의 역할을 한다.해양과학(Ocean Science)은 바다에 대한 과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해양과학은 모든 과학적인 법칙과 방법을 활용해서 바다의 현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다학제적 과학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해양과학은 해양에 대한 순수과학뿐만 아니라 응용분야인 공학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학문이다. 물리해양학과 화학해양학, 생물해양학, 해양지질학과 지구물리학, 해양공학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된다. 최근에는 해양과학이 해양정책과 같은 사회과학, 해양고고학과 같은 인문과학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역사적으로 유명한 해양과학 탐사는 제임스쿡(James Cook)의 항해, 비글호항해, 챌린저호탐사, 프램호탐사, 메테오르호 탐사, 글로마챌린저호 탐사 등이 있다.제임스쿡의 항해로 지도가 현대의 지도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으며, 비글호 항해는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챌린저호탐사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가 발간되었고 해양과학 탐사의 기틀이 마련됐다.해양실크로드 탐사 기회를 이용해 해양과학적 조사를 함으로써 새로운 해양과학지식을 얻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해양실크로드 탐사 루트를 따라가며 그 해역에서 기존에 알려진 해양과학지식이나, 해양박물관과 수족관 등 기항지의 해양과학관련 시설물에 대한 단행본을 출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전동철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허왕후 이동경로, 해상루트 2개 암시기상·해류로 본 항로 검토실크로드의 루트에 대해 위키피디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를 비교하면 다른 부분이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육상실크로드 이외에 지중해~홍해~인도양~남중국해를 잇는 해상 실크루트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끊겨 있다. 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서해~동중국해~남중국해를 지나 말라카해협을 통해 동인도양 벵골만까지 연결된 2개의 해상루트를 보여준다. 이 2개의 해상루트는 김해 가락국의 허왕후가 인도 갠지스강 중부의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기록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기록에 의하면 서기48년 5월~7월 사이 약 3개월에 걸쳐 이동했다고 한다.아시아대륙 동안에서부터 아프리카 해안에 이르기까지의 몬순기후 즉, 해륙풍과 표층해류 및 기압배치도를 분석해보면 갠지스강하구에서부터 안다만~말라카해협을 통과한 후 베트남해안과 해남도~중국남해안~중국동해안을 따라서 산둥반도까지 오는 동북아시아 바닷길은 이 계절에 가장 안전한 해상루트임이 틀림없다.그러나 대만해협을 지나 백제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산둥반도와 옹진반도를 잇는 루트가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 있지만, 계절풍 이외에 태풍 등의 변수가 있으므로 해상루트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즉, 양쯔강하구 역에서 제주해협을 가로지르는 해상루트가 장보고의 청해진 시대에는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11월~12월 1천400t급 온누리호를 타고 거제 장목에서 출발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거쳐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옛날 허왕후의 이동경로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탐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온누리호는 평균 속력이 12~14노트며, 15일 정도 소요됐었는데 범선의 속력을 약 2~5노트라고 가정하면 온누리호보다 3배~6배 정도 소요될 것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북도의 해양실크로드 탐험은 신라인의 개방성과 진취성 등 정신적인 계승과 함께 경제 협력 구축이라는 실질을 도모하며 추진하길 권한다.▲ 김기복 해양과학기술원 연구선지원실장원양구역 항해 가능한 3천t급 선박 필요탐험선박 안전성 확보 제안해양실크로드를 문화·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한 탐험 선박은 안전성 확보를 가장 우선시 해야 한다. 선박에 관해 특히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선박은 해상 항해에 종사함으로 육상과는 달리 해양 기상으로 인해 특별한 위험이 따른다.또 항해 기간이 길어서 육상으로부터 격리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행동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선박이 해상에서 흔히 예상되는 위험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 즉 감항성을 갖추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고, 만일 비상시 위험에 빠진 경우에 인명의 안전을 보전하기 위한 시설도 요구된다.특히 해양실크로드 탐험 선박은 관계법에 의거 최소 자격 요건은 제3종선인 여객선 이외의 선박으로서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총톤수 500t 이상의 선박으로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원양구역을 운항하는 10노트 이상의 최고 속력을 갖춘 배의 길이 60m 이상인 외항선이어야 한다.최소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해적사고가 빈발하고 있고, 총기·도검으로 무장한 해적이 62.6%로서 흉포(凶暴)화 추세는 지속되고 있어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요구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따라서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을 위해선 원양구역을 항행할 수 있는 원양급인 3천t 이상의 선박을 이용해 해적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안전항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양경찰청이 보유한 3011 훈련함은 해양경찰 최초 훈련함인 `바다로함`은 정부기관 최초로 실전 배치된 4천200t급으로 길이 121m, 선폭 16m, 최대속력 18노트 규모로 100여명의 교육생이 동시에 생활하며 훈련할 수 있도록 준비된 함정이어서 비교적 안전하다.또 한국해양대학교가 소유한 6천686t급 한바다호도 250여명이 승선할 수 있고, 그동안 쌓은 풍부한 항해 경험 등에서 해양실크로드 탐험 선박으로는 최적이라 할 수 있다.

2013-10-31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

해양실크로드와 신라기조연설 고대 `비단길` 오늘날 `바다길`에 적용▲ 김문경 숭실대학교 명예교수기원전 139년 중국 한나라 무제는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대월씨국에 장건을 사신으로 파견했다. 13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장건이 서역의 지리·민족·풍속 등에 관해 얻은 지식은 매우 많았다. 이후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를 이어주는 고대 교통로를 따라 많은 사람과 산물이 오갔고, 특히 중국의 특산품인 비단이 서역으로 수송되면서 `비단길(Silk Roed)`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구학자들은 이 `초원의 길(Step Route)`만을 비단길이라고 한정지어 불러왔지만, 동서문물교류사연구가 깊어지면서 오늘날 이는 `바다의 길(Sea Route)`에도 함께 적용되고 있다.이슬람제국의 전성기에 태어난 세계적 지리학자 알 마스오디는 자신의 저서 `항금초원과 보석`에서 신라를 언급하며 `그곳으로 간 외국인은 공기가 맑고 물이 좋으며 자원이 풍부해 아무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신라시대 규모는 작지만 서양 문명과 교역이 이뤄졌음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경주 괘릉의 무인석상이나 흥덕왕릉 무인상에서의 심목고비 등은 서역인임을 의심할바 조차 없는 것들이다.특히 신라말이 되면 경주에서 가까운 영일만이나 울산만에서 출발하여 서북쪽으로 횡단하여 내주에 이르는 바닷길도 이용됐다. 이는 중국의 당국사보에도 기록돼 있다. 또한 거란족이 남하하는 신라하대에는 계림을 출발하여 남해안을 지나 흑산도 부근에서 바다를 건너 양자강이나 남중국으로 직항한 것으로도 나타난다.서역 문명과의 교역은 신라인들이 모여 살던 중국 광주에서 형성된 `신라방`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진귀한 서·남방 상품들은 이러한 교역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경주는 중국 장안에서 유행하던 서역풍의 정취를 닮아가고 있었으며 그런점에서 `삼십오금입택`으로 표현되던 특수부유층들은 인도의 공작미 등 사치성 소비재를 제공해 주는 무슬림의 왕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혜초가 본 인도·중앙아시아 혜초 행로, 실크로드 핵심지역 관통▲ 정병삼 교수 숙명여자대학교길은 인간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고 교류와 소통을 낳는다. 인류의 역사는 길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신라인 혜초는 구법자의 길을 생애 내내걸었다. 인도까지 여정의 그 길엔 죽음의 사막도 험준한 산맥도 막지못했다.그가 걸은 외롭고 힘든 구법 행로를 살펴보면 우연히도 오늘날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핵심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그는 대한민국의 선국적 세계인이자 동양이 낳은 걸출한 세계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 대륙의 끝, 서단까지 다녀와서 쓴 왕오천축국전 같은 견문록을 남긴 전례는 더더욱 없다.그는 용기만 앞세운 수행자가 아니었다. 애틋한 연민을 간직한, 너무나 인간적인 한국인이었다.신라 계림에서 태어나 열 여섯살때 당나라로 간 혜초는 가는길이 현재 해로설과 육로설로 나눠지지만 그 길은 이후 업적에 비하면 큰 의미는 없다.그는 당나라에서 밀교의 전통을 이어받고 법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 다섯나라와 중앙앙시아는 물론 멀리 아랍까지 여행했다. 그래서 흔히들 최초의 외국 사절이라고도 일컫는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구법자의 길을 걸었던 그는 그리워 눈물짓던 고향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타향에서 7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너무나 크다.특히 아랍의 지배력이 확대되는 격변기의 중앙아시아를 순력한 혜초가 남긴 아랍과 페르시아와 비잔틴제국, 소그드 제국과 투르크 등 중앙아시아 일대의 광범위한 나라들에 대한 탐방과 인상적인 전문(傳聞) 기록은 동서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제시한다.해양실크로드 교역항 말라카역사·문화 고도 말라카, 혼합문화 완성▲ 홍석준 교수 목포대학교항구 도시는 육지와 섬을 해상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하나의 거점 역할을 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예외가 아니다. 1403년에 건설된 말레이시아의 역사적인 항구도시 말라카는 그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말라카는 중국 명나라가 바다 지배를 확대할 땐 왜소했지만 명나라 장군 쳉허가 300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와 아라비아, 동아프리카에 걸쳐 7번의 항해를 시작하고, 북방의 위협에 직면한 조정이 내부로 관심을 돌린 사이 급속 성장한다. 말라카에 드나드는 중국선박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든 틈을 타 투르크, 아르메닝, 아랍, 아프리카, 유럽의 상인들이 빈번히 왕래하면서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무역의 거점이 된 것이다. 특히 말라카는 그 과정에서 이슬람교가 유입돼 술탄제가 확립된 말라카 왕조가 들어섰는데, 외래문화를 수용·통합하는 과정에서 혼합문화를 일찍이 완성시켰다는 점이 특이하다.말라카가 해상도로의 중심에서 동서문명이 이곳을 통해 교차한 역사의 도시로 성장한 이면에는 북으로는 인도차이나 반도, 서로는 말라카 해협, 남으로는 수마트라와 자바, 동으로는 남중국해로 연결되는 자연환경이 큰 역할을 했지만 해상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도시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다문화를 일찍이 받아들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이었다 할 수 있다.서양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적 색채가 서로 혼합된 `말라카디움`(cara Melaka)이 만들어 진 것도 그런 맥락의 하나다.말레이시아 정부는 현재 말라카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해 관광산업화 하려 하고 있다. 다양한 민족집단이 넓은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모습이야 말로 그 어떤 유물과 유적에 비해서도 손색없다. 이질적인 외래문화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장보고와 동아시아 해상교역 장보고 개설 청해진, 공무역 넘어서 교역▲ 이유진 교수 숭실대학교9세기 초 신라인의 해외진출과 국제교역 활동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해상왕`으로 알려진 장보고(張保皐)다. 그는 당시 중국으로 간 것은 극심한 자연재해와 식량기근으로 말미암아 자활의 길을 찾아 바다를 건넸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는 그러나 그 후 당나라 문물을 접하면서 눈을 떳고 또 신라인들이 당나라 해적들에게 잡혀와 노비로 팔리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신라로 귀국 후 흥덕왕의 재가를 받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당나라 서주(徐州)를 상대로 해상무역을 주도했다.일반적으로 청해진이 설치되기 이전의 동아시아 교역은 사신의 왕래를 통한 공무역 체제가 전부였다. 공무역은 공물과 회사품의 교환을 통한 교역으로 관시(官市)나 호시(互市)를 개설해 사신들에게 교역을 맡긴 것으로 민간 교류와는 차이가 있다.그런 점에서 당나라에서 흑산도와 남해안을 거쳐 일본의 기타큐슈에 이르는 국제무역 항로의 중간지점에 장보고가 개설한 청해진은 공무역을 넘어선 교역을 이루어 내 사실상 해양실크로드 교류의 한 축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특히 당시 장보고는 황해의 무역로를 보호하면서 황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당-신라-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을 주도하기까지 했다.장보고가 당시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산둥성에 법화원이라는 절을 짓고 이곳을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자 왕권 다툼에까지 뛰어들어 신무왕이 왕위에 오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 등을 미뤄 신라 해상교류 무역의 활발했고 그 영역이 지대했음을 보여준다.따라서 장보고가 이룩한 당-신라-일본의 해상교역 활동이야말로 오늘날 동아시아 해상교역 네트워크의 출발지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선사시대의 한일교류실크로드 종착역 논쟁 추가연구 거쳐야▲ 이창희 박사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선사시대의 한일교류와 해양실크로드 속의 한일교류와는 시기적으로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는 나라를 해양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이에 따라 지난 1991년 일본의 옛 수도인 나라현의 나라공원에 실크로드교류관을 조성한데 이어 1998년에 대규모의 실크로드박람회를 개최한 바 있다.그러나 그후부터 다소 잠잠하다. 실크로드 루트를 연구하고 재현하면 역사적으로 신라라는 국가가 먼저 나올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이는 당시 신라 등의 문물이 일본으로 전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알다시피 신라와 가야지역에서 간사이 지방에 이르기까지의 해양루트는 갑작스럽게 개척된 것이 아니고 그 오래전부터 피할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일각에서는 한일 양지역의 관련성이 뚜렷해지는 것은 약 2만년전에 출현한 세석인문화를 통해서라는 학설도 있다.한일 양지역에서 상호교류가 나타난 것은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이고, 철기시대에서부터는 대륙에서 시작된 한반도→일본으로의 문화전파가 지속됐다 할 수 있다. 특히 금속기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물자는 물론 상당수 인력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이러다보니 서일본 각지에서는 영남지역에 철기와 원료를 입수하기 위해 한반도와 교류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이러한 배경속에 세토나이카이 교역루트가 발달하게 됐고, 이는 삼국시대로까지 이어지며 해양실크로드 종착역이 일본 노선이라는데 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경주 신라가 실크로드의 동쪽지역 종착역이라고 하면 이는 일본 주장과 다소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이는 앞으로 역사적으로 이를 어떻게 고증, 입증시킬 것인가는 하는 과제를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각계 각층에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3-10-31

문화·예술융성의 새로운 길 연 글로벌교류 신모델

경북도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 성과경북도가 올해 추진한 `Korea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천년왕국 신라인의 기상을 이어가고, 한국문화의 모태인 신라문화를 재조명해 경북의 정체성과 혼(魂)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실크로드 주요 국가와의 국제교류·통상 강화로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 등에 경제영토를 세계 속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경북도가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융성의 새 길을 열고, 인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교류라는 21세기 신모델로 제시한 이 사업의 실상과 추진 과정, 성과 등을 살펴본다.신라문화 학술조명·역사기록으로 한국실크로드학 정립실크로드 3대간선·5대지선 담은 기행문·도록 등 발간세계에 `동단기점 경주` 알리며 경북과 한국문화도 홍보□경북도 경제영역 확장 교두보 역할`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한국문화 모태인 신라문화의 학술적 재조명, 역사화(기록), 범국민 참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실크로드학을 정립하고 신라마케팅과 신(新) 한류문화 창조, 경제영토 확장으로 글로벌 대한민국과 경상북도의 브랜드 파워를 더 높이는 문화와 산업을 아우르는 융합 프로젝트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지난해 8월 신실크로드 시대에 맞춘 `실크로드 프로젝트`추진을 제안하면서 추진됐다. 역사, 문학, 콘텐츠 등 국내 최고 전문가가 나서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며 세부계획을 수립한데 이어 경북도가 2013년 역점사업으로 설정, 거의 모든 부서가 힘을 보탰다.경북도는 이 사업의 사회적 수용성 확보와 정부와 도민 참여 차원에서 신라문화를 통해 이념과 갈등을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에 동서양의 밝은 미래를 위한 창조, 화합 실현 등을 목적으로 제시했다. 도는 특히 학술적 뒷받침을 위해 국제학술회의 개최, 실크로드 논문 공모, 데이터베이스 구축, 실크로드 학술상 제정 등 학술적 재조명 사업 추진으로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지금까지 부족했던 학계 및 산업계의 관심 고조와 글로벌 기록·역사화 사업을 위해 실크로드 사전·도록 편찬, 탐방기 및 기행문 발간, 다큐멘터리 제작, 실크로드 포토북 제작을 추진해 신라인의 문화와 발자취를 새로운 시각에서 기록했다.또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중국과 중앙아시아 등 실크로드 주요 국가(도시)인 중국 섬서성,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주, 이란 이스파한 등 주요 거점 국가와의 우호협정 체결과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 설치, 실크로드 국제기구 등과의 협력 등으로 신(新) 한류전파와 통상 강화로 경북도 경제영토 확장이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제사회 홍보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 나선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는 이 사업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성과 먼저 학술적 재조명이 돋보인다.지난 7월 초 `제2회 경주 실크로드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막이 오른 신라 재조명은 중앙아시아와 한반도 등에서 발견된 고대 실크로드 유물·유적의 연관성을 밝히고, 대한민국 실크로드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조명했다. 또 `하나의 실크로드, 북방 초원의 길`이라는 주제의 발표와 토론에서 신라의 실크로드 관련 유물·유적은 통념적으로 중국 중원을 거쳐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례지만, 경주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들은 북방과의 관련을 보여주며 실크로드의 독자 개척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후 국내외 석학들의 연구·발표를 통한 네트워크 강화로 실크로드 한반도 연장을 지속적으로 국제학계에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냈다.7월 22~23일에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자, 고대 동서교역·문화교류의 거점 도시인 중국 둔황을 주제로 `둔황, 실크로드와 한국의 문화교류 및 둔황학의 국제화와 해외 둔황학`이라는 내용으로 `중국 둔황 실크로드 국제학술회의`를 중국 란저우에서 개최했다. 실크로드 교역의 오아시스, 동서무역의 중개지점이며, 종교·문화·지식의 융합으로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실크로드의 관문인 둔황과 한국과의 문화교류 흔적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한 자리였다. 이 회의는 국내외 학자들에게 한국 소장 중앙아시아·둔황 자료 및 연구 성과를 소개함으로써 한국 실크로드학의 학술적 위상을 높여줬다. 특히, 전 세계 실크로드 연구기관과 활발한 교류를 하는 국제둔황프로젝트 영국본부(IDP London)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으로 실크로드의 한반도 연장을 지속적으로 국제학계에 각인시키며 관심을 이끌어냈다.이 사업을 통해 발굴한 글로벌 기록·역사화도 큰 성과로 꼽힌다.경북도는 서구 및 중국 중심의 실크로드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크로드학의 저변 확대와 연구활성화를 위한 `코리아 실크로드 사전·도록 편찬`에도 매달렸다. 문명교류사 및 실크로드학 분야의 한국적 정립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정수일 소장)와 함께 실시한 이 사업은 실크로드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모두 포함한 대한민국 최초의 실크로드 사전 발간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특히 실크로드 3대 간선 중 초원로와 오아시스로를 대상으로 한 실크로드 도록(육로편)도 발간, 의미를 더했다. 실크로드에 관한 국내 최초의 전문 사전 및 도록 발간은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으로서 우리 역사문화 속의 교류상을 발굴·복원해 우리의 교류사적 위상을 대내외에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1세기 세계화와 교류,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실크로드학에 대한 종합적 지식체계가 구축돼 연구 저변을 넓혔음은 물론 지속적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제작 또한 실크로드 동단인 경북도 경주의 기원에 관한 역사·문화를 영상으로 재조명해 한반도 중심의 실크로드학 정립과 국민적 공감대 확산 및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이 자료는 로마·인도·중국 등 실크로드 국가와 신라가 상호 교류를 한 사실을 국내외에 알려 줌으로써 경상북도 경주에 대한 실크로드 동단 기점으로서 역사성과 당위성을 홍보하는데 주효했다.실크로드 거점도시 간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는 실크로드 프로젝트 사업이 얻은 미래 자산이다.실크로드라는 문화를 함께 공유함에 따라 국제우호협력의 새로운 개척에다 실크로드 거점국가 간 미래 지향적인 우호교류 등 향후 나타날 동력이 적잖은 것이다. 실크로드 거점도시인 중국 섬서성과의 자매결연,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주와의 우호협력체결, 이란 이스파한과의 우호협력 선언 등의 거점 지역들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상호협력 네트워크 구축은 그 단적인 예다. 또 실크로드 거점국가 교류협력 상징사업의 목적으로 중국의 시안,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란의 이스파한, 터키 이스탄불,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 등 5개국 5개소의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를 설치하며 우호를 다졌다.우호협력 마지막 기념비는 오는 11월 4일 경북 경주시 엑스포 공원에 설치된다. 실크로드 거점국가와의 우호협력을 기념하고, 경상북도가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실크로드 국가와의 지속적인 교류강화를 추진하는 다섯 번째 실크로드 우호협력 비석이다. 국제사회 홍보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도 이 사업의 성공에 초석이 됐다.문명교류 통로인 실크로드를 재조명한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는 1차와 2차로 나누어 운영했는데, 총 2만947km의 긴 여정을 통해 과거 실크로드 상의 신라인들의 흔적을 찾아 답사하며 경주가 동단 기점임을 확인했다. 또 태권도, 전통국악, 전통탈춤 등을 공연,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에 맞춰 터키에 입성, 신라 경주와 경북을 홍보하는 대미를 장식했다.대한민국 미래 설계하는 국가사업이 돼야▲ 김관용 경북도지사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관련,“`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지자체에서 시작하지만, 지자체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고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 최대 중점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 지사는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후대를 위한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어서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 되는 역사적 소명”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앞으로 장기플랜을 수립해 국가와 긴밀하게 논의,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노력을 배가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현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융성 시대를 경북이 선두에 서서 열어나가겠다”며 이는 300만 도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도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세계 첫 해양실크로드 종합학술연구 큰 의미▲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해양실크로드 붐이 일고 있다”국내 최초로 30일 경주힐튼에서 열린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 소장은 “인문, 역사, 과학기술적 접근이 밀접하게 이뤄지는 심포지엄은 아직 없었다”며 성공적인 심포지엄이라고 정리했다.그는 해양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미흡하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해양실크로드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리된 게 없다는 것.정 소장은 “해양실크로드는 전 세계적으로 구체적으로 연구, 정리된 것이 없다”며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개척에 쓰였을 뿐이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 소장은 이번 심포지엄이 해양실크로드의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정 소장은 “해양실크로드 탐험의 해양과학기술적 검토라는 세 번째 주제를 통해 해양 탐험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져 과거 찬란했던 신라 역사를 비롯한 우리 문화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그는 경북도가 추진 중인 육상, 해상 실크로드를 합한 `실크로드 엑스포`의 중요성을 부각했다.그는 “최근 경북도가 성공리에 마친 경북도 실크로드 탐험대는 1단계이며, 내년에 실시하는 경북도 해양실크로드 탐험대는 2단계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심포지엄은 2단계 사업의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이다. 1, 2단계 탐험이 모두 마무리되는 2015년, 우리나라의 찬란했던 역사 문화를 통해 새로운 비전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경주문화유적 통해 세계의 문화 재발견 가능▲ 펑위레이 中 실크로드잡지사 대표온전한 경주 문화유적을 통해 전 세계의 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펑위레이 중국 실크로드잡지사 대표는 30일 경주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경북도, 경북매일신문 주최 `해양실크로드 심포지엄` 토론자로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지난 1992년 창간된 실크로드잡지사는 중국의 육상 실크로드는 물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아권 해양 실크로드 등을 통해 전 세계에 걸친 역사·문화 교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그는 육상 실크로드의 중심인 중국 역시 해양 실크로드는 걸음마 단계로 이번 심포지엄이 주는 의미가 매우 뜻 깊다고 강조했다.펑위레이 대표는 “중국은 육로를 통한 실크로드 발견은 많은 진전이 있으나 해양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초창기이다. 광저우성, 닝파 등 중국 일부 해안 지역에 실크로드 연구소가 있으나 광범위한 소통이 없는 실정”이라며 “경북도가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과거 역사를 고증하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특히 그는 해상 강국 신라의 문화 유산이 온전히 남아 있는데 주목했다.펑위레이 대표는 “해상 실크로드의 길목인 말레이시아 말리자 지역에는 고대유적이 바다로 인해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어 역사 고증에 어려움이 많이 뒤따랐다”면서 “반면 경주는 천년전의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 전 세계 문화 교류를 찾아 보는데 중요한 지역이다”고 진단했다.그는 “심포지엄 참가에 앞선 지난 29일 경주 문화 탐방을 통해 많은 유적을 봤다”면서 “흥덕왕릉 서역인상과 괘릉 입구의 문인석은 중동지역과의 대외교역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이는 육상 실크로드가 아닌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가 교역을 펼쳤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이로 인해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신라시대의 다양한 대외 교역을 통해 전 세계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김기태기자 kkt@kbmaeil.com/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2013-10-31

신라는 육지 이어 바닷길로 세계를 누빈 `해양강국`

미리보는 `한바다호` 1만5천500km 대장정2014 해양실크로드 탐험로는 7개국 9개항을 거치는 1만5천500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대탐험의 코스는 한국(경주·울산·포항)~중국(닝보·광저우)~필리핀(다낭·호이안)~인도네시아(자카르타·족자카르타)~말레이시아(포트클랑·말라카)~인도(콜카타·탐룩)~스리랑카(콜롬보)~인도(캘리컷·고아)~이란(반다르아마스). 이번 해양실크로드는 한국해양대학교 `한바다호`를 타고 탐험길에 나선다. 7개국 9개 항(港)의 탐험길을 미리 가본다.고려 사행관 찾아 해상왕 장보고 흔적 되새겨중국해상의 무역거점, 닝보일명 영파라고 부르기도 하는 닝보는 송나라를 찾았던 고려 사신과 상인들이 묵었던 고려 사행관(고려사관 유적기념관)을 찾아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을 되새겨 본다. 이곳 사행관 자리에는 장보고의 흉상이 있는 신라방 위치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12월 해상실크로드 문화주간을 정해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곳은 중국정부가 지정한 국가해양경제 시범구다. 서양상인들 자주 드나든 15~19세기 중계무역항베트남의 보석, 다낭 호이안베트남어로 `큰 강의 입구`라는 의미의 다낭은 인구 80만명이 사는 베트남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의 청룡부대가 처음 주둔한 곳이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호이안은 참파왕국 때부터 중국, 일본을 비롯해 포르투갈, 프랑스 등 서양국가의 상인들이 빈번히 드나들면서 15~19세기 중계무역항으로 해양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을 형성했던 고대항구도시. 지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말레이시아 최초 왕국으로 해상무역 중심지 東亞 무역거점, 말레이시아 말라카말라카는 15세기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말레이시아 최초의 왕국이었던 말라카 왕국은 1511년 포르투갈에 점령돼 아시아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로 알려졌다. 이슬람과 포르투갈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며 중국과 말레이 현지 문화가 퓨전된 바바뇨냐인들의 음식 등 다양한 문화가 퍼져 있다. 중국인 거리 정화사원이 도시중심부에 있다. 1757~1840년 서구무역 허가된 中 유일 무역항해양실크로드 관문, 광저우중국 해양실크로드 관문인 광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1757년부터 1840년까지 서구 무역이 허가된 중국 유일의 무역항. 명나라 때 남해제국(동남아시아) 조공선의 입항지로 청나라 중기 90년 동안 광저우 입항한 외국 선박은 무려 5천척에 달했다고 한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메달 주제도 해양실크로드였고, 해양실크로드 박물관도 지난 2009년 건립됐다.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 하멜의 중간 기착지동양최고 식민도시, 印尼 자카르타옛 이름은 네덜란드인이 세운 식민도시인`바타비아`다. 인도의 고아와 함께 서양인들이 동양에 건설한 최고의 식민도시 가운데 한 곳. 1653년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하멜은 인도 고아를 거쳐 이곳에 머물렀고,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하기도 했다. 이곳서 동쪽에 있는 족자카르타는 지난 2005년 경북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세계 최대 불교사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보로부드르 사원이 있다.문명개척자 혜초가 중국 무역선 타고 도착한 곳혜초 도착지, 인도 콜카타(캘커타)지난 1772년부터 140년간 영국령 인도의 수도였던 콜카타(캘커타)는 2001년 도시이름이 캘커타에서 콜카타로 바뀌었다. 문명개척자 혜초가 723년 중국 광저우에서 무역선을 타고 출발해 인도에 처음 도착한 곳이다. 이곳을 `아시아의 등촉`이란 시로 일제 식민지 하의 한민족에게 감동과 큰 힘을 불러 일으키게 한 시인 타고르의 고향이기도 하다. 15세기 이후 대서양~인도양~태평양 잇는 요충지삼국유사의 스리랑카 콜롬보망고나무가 무성한 해변에서 유래한 콜롬보는 15세기 전까지 아랍-인도간의 향신료, 도자기, 보석 무역항으로 번창한 곳. 15세기 이후에는 대서양~인도양~태평양을 잇는 교역항의 요충지였다. 411년 중국 최초의 인도 순례승으로 알려진 법현이 불교공부를 위해 2년간 체류하기도 했으며 소승불교 유산이 잘 간직돼 있다. 삼국유사의 용성국이 스리랑카 북부에 위치한 아아가디이파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다. 13세기부터 스파이스향신료 무역거점지로 부상유럽 동방진출 창구, 인도 캘리컷인도 남서부에 있는 코지코드의 옛 이름은 캘리컷으로 중세에는 인도 서부 해안의 향료무역 중심지였다. 13세기경부터 많은 이슬람 상인들이 이 지역 특산물 스파이스, 즉 향신료를 얻기위해 몰려 들었다. 지난 1498년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코다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첫발을 디디면서 유럽의 동양진출이 시작됐다. 캘리컷 해안을 후추라고도 불렀다.해양대 실습생 등 200명 탐험대 구성 서역 교역루트 답사내년 개천절 대탐험 출발 2015년 1월1일 이란 이나 터키 입성2015년에 열리는 `경주 실크로드 문화축제`도 전세계에 홍보경북도가 2014년도에 계획한 `해양 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은 올해 실시한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연결선상에 있다.신라가 당시 육로뿐만 아니라 바다를 거쳐 페르시아 등 서역문명과 교류한 루트를 재현시켜 신라문화의 폭넓은 활동을 재조명한다는 것이다.경북도는 2014년 해양실크로드 탐험이 마무리되면 육로와 바닷길이 도전을 향한 한국 청년들의 탐험로로 크게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렇게 될 경우 경주로부터 출발하는 한류가 실크로드를 따라 지금보다 더 많이 퍼져 나갈 것이란 분석이다.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경북도청 김남일 본부장은 “신라시대 혜초는 가죽장화를 신고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우리나라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또 스마트폰을 들고 한류의 열풍을 몰고 다니며 해양과 육로 실크로드를 갈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멋지고 감격스런 장면아닌가” 라고 반문했다.경북도의 2014년 해양실크로드 사업 목적은 우리국민들의 국제화·개방화·해양탐험 정신을 재조명하고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교류, 창조적 해양산업발전과 해양국민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 골자다.또 2015년 개최예정인`경주 실크로드 문화축제`를 적극 홍보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대목.해양실크로드 사업은 2014년 상반기 중에 세미나개최와 관련 해외도시 교류 등 을 거쳐 해양 실크로드 탐험대가 2014년 10월3일 대장정에 오른다.경북도는 개천절을 탐험 시작일로 잡은 것은 바다 사정도 있지만 그만큼 이 사업이 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탐험대는 한국해양대 실습생 150명과 기록 등 지원단 50명 등 모두 200여 명으로 구성되며 2015년 1월1일까지 3개월간의 일정이다.경상북도, 해양수산부, 경주시가 공동 주관하고 KIOST, 한국 해양재단, 한국 해양대학교, 대한민국 해군, 부산, 울산, 포항, 경주, 울릉, 화성, 삼척, 완도, 한국 해양소년단연맹, 독도 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등이 후원한다.해양 실크로드의 문화 역사적 재조명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 혜초비 제막, 해양 실크로드 탐험 기록 등 갖가지 사업이 펼쳐지고, 국내에서도 경기도 화성(당은포), 전남 완도(장보고 유적지), 울산(신라무역항, 처용 유적지), 부산 (해양대학교), 울릉도 (독도해양과학기지) 등 국내 해양거점과 연계, 시너지 효과를 높일 방침이다.해외 구간은 실크로드 해양 탐험 루트 7개국 9개 연안항을 탐험하고 이란 입성 후 이란 이스파한시 또는 터키 이스탄불 입성하는 안이 유력하다.경북도는 해양실크로드 대장정 동안 터키구간의 바다 인접국가인 7개국과 국제교류를 추진하며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혜초 바닷길과 쿠쉬나메 서사시의 `이란왕자 귀국 루트(해로)`도 둘러본다.경북도는 2014년에 해양 실크로드 사업의 연구를 통해 논문 발표와 자료 DB화와 해양 실크로드 사전·도록 편찬, 국제학술회의 등 다양한 기록산업도 연중 내내 부대사업으로 함께 추진한다.이를 위한 해양관련 신시장 개척, 인도와 이란 니쇼부와 등 혜초 유적지 혜초비 제작, 혜초 뮤지컬 선상 공연 등 해양 역사문화와 연계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도 현재 기초 작업이 한창이다.경북도는 이 사업을 위해 지난 2일 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호` 사용 업무를 협의하고 30일에는 경북매일신문과 공동으로 힐튼 경주호텔에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 보는 해양 실크로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김남일 본부장은 “`해양 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은 해상제국 신라 문물교류의 장이었던 해양실크로드 재조명을 통해 해양탐험정신과 해양문화를 계승·발전해 대한민국의 창조적 해양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또 김 본부장은 “경주는 이미 올해 육지를 통한 올해 실크로드 탐험 성공으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면서 2014년에 해양실크로드 탐험을 성공리에 마무리 해 신라가 육지와 바다라는 길을 통해 세계속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할 방침”이라며 경북도가 추구하는 이 사업의 목표는 경북지역이 세계속의 해양 거점, 문화거점이었음을 도민들이 함께 공유, 경북의 발전 초석을 다지는데 있다고 했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3-10-31

대구 10경중 제1경, 레포츠 공간으로 환골탈태

동촌유원지는 135만8천95㎡(42만여평)의 면적에 바이킹, 회전목마, 비룡열차, 회전그네와 소형유선 보트장(노보트, 페달보트), 구름다리, 오락실 등 유희시설과 숙박시설, 60여곳의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지난 2011년 9월에 개통된 해맞이다리는 야간의 화려한 12가지 조명으로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동촌의 명물이 되고 있다. 이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구시민들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구름다리는 1960년대 말께 탄생했다. 동촌유원지에서 4m 높이의 콘크리트기둥에 길이 230m의`구름다리`를 빼고서는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상징적인 건축물에 속한다. 이곳의 또 다른 명칭은 `흔들다리`나 `출렁다리`.이 다리의 중간지점에 이르면 심한 흔들거림을 느끼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들이고 성인 기준으로 편도 1천원과 왕복 1천700원의 요금을 받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현재는 철거되고 없다. 동촌유원지 앞 금호강변의 남안은 수직의 절벽이 높이 솟아 절경을 이루고 앞쪽의 넓은 모래사장은 놀이터를 제공하며 북안에는 멀리 팔공산까지 보이는 경치 좋은 명승지였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초기 서거정 선생은 대구를 방문한 후 밝힌 `대구 10경`중 그 첫 번째인 1경으로 `금호범주(琴湖泛舟:금호강의 뱃놀이)라고 읊을 정도였다. 서거정 선생의 1경의 모태는 현재 아양교 입구에서 왼쪽으로 해맞이공원 쪽에 위치한 구룡산 통천사라는 사찰 법당에서 바라본 경치가 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구한말 조계종 말사로 창건된 통천사는 일제강점기에 신사로 사용됐던 오욕의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서거정 선생이 극찬했던 경치를 요즘은 강 건너 들어선 크고 작은 아파트로 인해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피난 온 이중섭 화백이 유일하게 화폭에 남긴 대표적 휴식처4대강 사업일환으로 생태하천 조성, 과거 명성 서서히 되찾아글 싣는 순서① 신서혁신도시와 이시아폴리스②동구평생학습축제③동촌 유원지의 대변화④동대구역세권 개발⑤팔공산 권역의 상전벽해□ 일제시대 고관대작 부호들의 유흥장소동촌유원지가 개발된 것은 1918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됐다는 것이 기록에 보인다.일부에는 1910년부터 일본인들이 이곳에 드나들었다는 기록도 보여 빼어난 경치가 일품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곳이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된데는 서거정 선생이 대구 1경으로 꼽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당시 일본인과 친일파 고관대작, 대구 부호들의 유흥장소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때는 너구리, 곰 등 30여종의 동물을 갖춘 동물원과 보트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8·15 이후부터 50년대까지는 잊혀가던 고유의 민속놀이가 봄과 가을로 펼쳐지는 곳으로서 일대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한여름에는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무더위를 식혔고 겨울에는 얼음이 두껍게 얼어 천연스케이트장으로 하루 1만명 가량이 이용했다고 한다. 또 지금의 제2아양교 아래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땅굴형식의 얼음창고가 있었고 겨울 강얼음을 보관했다가 이듬해 여름에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6·25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와서 어렵게 살고 있던 이중섭 화백이 대구와 관련한 그림으로 유일하게 남긴 것도 `동촌유원지`였을 정도로 대구의 대표적인 휴식처임을 알 수 있다.이중섭 화백이 스케치를 했을 만한 장소를 며칠 간 찾아다녔지만 금호강 건너편에 세워진 고층아파트로 인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동촌유원지 유람선 선착장 부근이 이 화백의 그림과 가장 비슷한 구도를 보인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만하다.동촌 유원지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고 도심에서 가깝기 때문에 예전에는 봄에는 벚꽃구경과 금계국 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수영과 보트놀이 등의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많은 인파가 찾아오는 등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 잃어버린 20년의 악몽이런 동촌유원지가 1980년대 중반 금호강의 오염으로 이곳에서 잡힌 물고기는 먹지도 못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심해졌고 대구에서도 꽤 유명했던 동촌유원지 내 매운탕집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아야 했으며 서서히 대구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잊혀지기 시작했다.이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포항에서 발원한 금호강 줄기 중간에 들어섰던 공장들의 폐수로 인해 대구시의 식수를 공급할 정도로 맑았던 곳에서 물고기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됐기 때문이다.80년대 중순부터 이 같은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나서야 대구의 젖줄 금호강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맑은 물이 흐르고 수달과 철새가 찾는 생명의 강으로 변신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잊혀진 20여년이 지난 2000년에 들어서 금호강 환경이 달라지면서 대구 시민의 오랜 휴식처로 옛 정취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변모됐고 소풍과 더위를 식히려고 과거 1970~1980년대 동촌유원지를 찾았던 50~60대 대구시민들의 방문횟수가 늘었다. 그 후 대구시와 동구는 해맞이다리 조성을 비롯한 금호강자연생태공원, 아야아트센터, 아양폭포, 해맞이 공원, 유선장, 체육시설, 유기장 및 상가 등을 현대화하고 각종 위락시설을 정비에 돌입한 2008~2009년에서야 과거의 명성을 조금씩 되찾아 갔다. □ 또다른 변신 기대여기에 최근 들어 MB정부의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생태하천 조성사업으로 금호강은 대구시민의 대표적인 레포츠 공간으로 변해 연인과 가족들이 즐겨 가는 곳으로 환골탈태했다.4대강 사업과 함께 진행된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휴식처와 팔공산을 조망하는 곳으로 변모했고 카누와 카약 선수들의 연습장소로도 사용될 정도다.동대구환승센터 건립과 K2공군기지 이전 등 호재로 인해 대구의 신성장 동력의 한 축에 속하게 되는 동촌유원지는 성장속에 휴식을 줄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그 이유는 KTX를 탈수 있는 동대구역과 고속버스 정류장, 공항 등 다양한 교통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데다 대구의 명산 팔공산이 병풍처럼 두르며 금호강이 흐르고 있는 등 천혜의 조건을 지녀 환승센터나 이시아폴리스, 신서혁신도시 등을 찾는 이들에게 또다른 의미의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동촌유원지를 찾은 신현수(48·경기도 수원)씨는 “가끔 대구로 출장오면 금호강이 흐르고 팔공산이 보이는 동촌유원지의 숙박시설을 자주 이용하게 된다”면서 “부산과 광주 등도 출장을 가지만 동촌유원지 내 숙박시설처럼 경관과 교통편이 좋고 비용도 저렴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박소영 동구의원 인터뷰행정·법률적 규제에 발목자금확보 통한 개발 시급박소영사진 동구의원은 동촌유원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박 의원의 지역구라서가 아니라 대구 제1의 유원지가 행정적 법률적 규제로 인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데 크나큰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다.“그동안 정부나 대구시, 동구의 동촌유원지에 대한 투자는 관광화를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함께 자연녹지법과 건축법 등에 묶여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며 말문을 연 박 의원은 “행정과 법률만 뒷받침된다면 유치 가능한 놀이시설만도 700여개가 넘는다”고 말했다.특히 박 의원은 “번지점프와 동촌유원지를 일주하는 투명한 모노레일, 골프 존 등을 설치하면 동촌유원지는 단순한 위락시설에서 스포츠, 관광레저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 “복잡한 행정절차와 법률조항을 간소화 한다면 민간 투자자들이 나서서 개발에 앞장서게 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촌유원지의 최대 개발 걸림돌은 현재 지구별로 지정돼 있는 각종 시설을 완화하고 용적율도 150%로 높여 다양한 개발로 진행돼야 한다”며 “KTX와 공항, 고속도로 등 다양한 인프라가 구성된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서거정 선생이 밝힌 대구10경의 옜모습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심지어 그는 “대구시티투어에 수성못은 포함돼 있는 반면 대구의 유서깊은 동촌유원지는 빠져 있어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대구기상대와 아양아트센트를 연결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대구시티투어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동촌유원지 주차장 확보를 위해 5년전부터 노력한 결과 당시 58억원의 비용 중 22억원을 확보했지만 그동안 땅값이 98억원으로 상승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앞으로 지가상승을 감안해 빠른 시일내 자금확보를 통한 개발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박 의원은 “한강의 경우에는 관리공단이 나서 전역을 관리하고 투자하고 있다”며 “동촌유원지 미래의 청사진도 한강처럼 돼야 팔공산과 연계된 관광지로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3-10-28

독도경비대 독수리 지역대 김용준 일경

대한민국에서 가장 태양이 먼저 떠오르는 곳, 대한민국 영토의 최동단인 이 곳 독도에서 쓰는 편지다. 독도에 온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새들의 고향`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도에 그 많은 괭이갈매기들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독도에 오기위해 울릉도에서 약 200리 뱃길을 따라 배들이 접안지 근처로 다가오면 독도경비대원들은 도열을 해 거수경례를 하는 것으로 접안지 근무를 시작한다. 독도 땅을 밟고 환호하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나온다. 때로는 멀미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도 계신다. 독도의 멋진 경관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고 태극기나 `독도사랑`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많은 분들이 독도를 오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어느 날 양팔이 온전치 못한 아저씨가 다가와 “수고가 많네”라며 과자와 음료수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넸다. 양손이 없어서 짧은 양팔로 태극기를 들고는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극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겨우 사진을 찍었다. 떠나면서 아저씨는 “내가 몸이 성했더라면 자네처럼 독도를 지켰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뭉클한 진한 감동이 뇌리를 스쳤다. 독도를 지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또 어느 날은 정신지체 장애 우들이 독도를 찾았다. 다들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손도 잡아주고 포옹도 했다. 그 중 한 꼬마가 멋있다고 하면서 나중에 커서 멋진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꼬마와 기념사진을 찍고 나중에 꼭 멋진 경찰이 돼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그 꼬마에게 부끄럽지 않는 독도경비대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근무를 마치고 바라보는 독도는 너무나 아름답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노을이 가득 퍼진 수평선과 그 아래로 지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멍해질 때도 있다.독도는 몇 백만 년 동안 거친 파도와 모진 바람을 견디어 왔다. 앞으로도 독도는 영겁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수백만 년의 삶을 산 독도에 비하면 나는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지만 독도는 나에게 큰 폭풍처럼 깨우침을 준다. 독도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디딜 그 때의 그 기분과 다짐으로 독도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겠다.

2013-10-28

만산홍엽 설악산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산에 들에 단풍이 붉게 물들면서 행락객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는데, 북쪽 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산까지 시차를 두고 국토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기상청에 의하면 이달 중하순 절정에 달한 설악산 단풍이 차차 남하하면서 10월의 넷째 주말(26~27일)에는 속리산까지 내려가고, 11월 첫째 주말(2~3일)에는 전북 내륙과 경남·북으로 번져 가야산, 팔공산에 이르며, 11월 둘째 주말(9~10일)에는 전국에서 제일 단풍이 잘 들기로 이름난 내장산까지 절정기를 이룬다고 한다. 가을 등산은 이왕이면 단풍이 잘 드는 산을 찾는 것이 당연하지만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그저 산이면 족하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형상들은 어느 산이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나 내려올 때의 마음가짐이 항상 같지만 때로 하산 길에서는 오늘도 즐거운 산행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대청봉 정상 오르면 울산바위·동해바다 `한눈에`불교 대표 순례지 봉정암 5대적멸보궁 중 하나필자가 생각해도 산은 마음에 위안을 주는 나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이다. 그래서 이번에 찾은 곳이 설악산인데, 지난 6월에 이어 올해의 단풍이 절정기를 이룬 시기에 또 찾아왔으니 못 잊어서 그리운 산 찾아서 또 왔다는 것이 나에게 해당되는 셈이다.특히 이번 등산은 대청봉과 소청봉, 그리고 봉정암에서 1박할 계획으로 특별손님과 함께 왔으니 등산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신이 나는 행차였다.지금까지 숱한 산행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만 해주던 집사람이 이번에는 봉정암에서 철야기도도 할 겸해서 함께 가자고 했으니 설악산 코스가 산을 처음 타는 사람에게는 걱정도 되지만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절정기를 맞아 부부가 함께 가는 등산이니 여간 기쁘지 않다.새벽 4시 40분에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강원도의 험준한 산과 협곡을 이리저리 돌아 오전 10시경에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분소에 도착했다. 당초에는 한계령에서 산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산의 깊은 곳에서 정수리를 타고 싶다는 집사람의 청을 받아들여 출발지를 변경했다.등산하는 사람들이나 일반인들도 설악산엔 자주 와봤을 것이다. 불교도들은 봉정암에 들려 기도를 했을 터이고 상춘객들은 봄이나 가을에 설악의 절경을 음미해봤을 테고, 또한 등산인들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설악의 자연과 함께한 기쁨이 있으리라.특히 설악산 등산은 산불조심기간에는 일시적으로 등산로가 폐쇄된다. 허용 시기는 매년 5월16일부터 11월 14일까지와 12월16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다. 그리고 설악산은 시간적으로도 통제가 되는데 입산시간은 오후 1시까지다. 오후 1시까지는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때로는 등산객들이 등산도 하면서 일출장면도 볼 겸 야간 등산을 즐기기도 하는데 대청봉에 올라 동해바다에서 뜨는 일출장면은 명품이라 한다.설악산 등산코스는 여러 군데다. 당초 한계령에서 시작하려던 계획을 바꾸어서 오색에서 출발했는데 이 코스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어 산행코스 가운데 험로로 유명하다.설악산 오색분소에 도착한 일행들은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서는 조심스럽게 등산을 시작한다. 필자는 집 사람과는 처음으로 등산하는 관계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 평소에 발목과 무릎 쪽이 좋지 않아 신경을 쓰는 상태인데 무사히 이번 등산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초입부터 돌계단이 시작된다. 설악산 중에서 오색 코스는 정상인 대청봉까지 가장 짧은 구간이지만 정상까지는 거의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전문가들도 힘들어하는 곳이다. 경사도가 있는 계단코스를 만난 집사람은 처음부터 힘들어 한다. 오늘 봉정암에서 기도를 하는 게 집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지만 산에 오르는 초입부터 수행하는 자세로 올라야 한다.주변 산에 단풍이 울긋불긋 들어 아름다운데, 붉고 노랗고 물든 단풍 천지다. 집사람은 힘이 들어 조금 오르다가 쉬기를 반복한다. 봉정암에 기도하러 간다는 마음과 부근에 있는 아름다운 단풍과 자연 풍광이 없었다면 아마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고전분투한다.등산에서 초행자가 몇 명 있는 관계로 일행들은 힘을 북돋우며 천천히 진행한다. 자주 쉬면서도 힘들게 제1쉼터까지 왔다. 쉬엄쉬엄 제1쉼터를 지나 한 시간 남짓 걸으니 물소리가 나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설악폭포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쉼 없이 물이 흘러내린다.설악폭포에서 잠시 쉬다가 제2쉼터를 향해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힘들게 2쉼터를 지났고, 이제 대청봉에 오르는 최대 난코스을 맞았다. 어려움이 있는데도 여기까지 아픔을 참아가면서 여기까지 온 집사람이 고맙다. 나는 계속 집 사람과 처음 등산 온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험난한 길이다.집사람의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모습을 때로는 부축해주면서 힘들게 오르다 보니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럿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변에 있는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를 보면서 다시 힘을 얻는다.드디어 대청봉에 올랐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정상에 오르고 나니 갑자기 겨울 날씨다. 몸을 따뜻하게 한 뒤에 주변을 살펴본다. 멀리 울산바위도 보이고 동해안의 바다위에 떠 있는 배들도 보인다.우리 일행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단풍놀이 온 행락객들이 `대청봉 1천707m`이라 쓰인 정상 표지석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필자는 숱한 등산을 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까지는 아내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오른 산이어서 기념을 남겼다. 설악을 배경삼아 함께 한 이 순간은 상대를 존경하고 위해주는 경건함이 신비감으로 다가온다.이제는 중청봉으로 가는 길은 하산길이다. 조심조심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매주 등산으로 단련된 등산 마니아들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초보등산가들에게는 하산할 때가 조심스럽다. 이미 오르느라 지친 몸에 기운이 없으면 하체가 후들거리거나 내려오면서 꼬일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산에 갈 때에 등산 스틱이 필수인 것이다.같은 산세의 중청봉 정상에 올라 전망을 구경하고서 다시 내려 소청봉 대피소를 지난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힘은 들지만 자연경관이 너무 좋아 견디고 있다는 말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봉정암으로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인 봉정암에 도달했다. 등산을 시작한지 8시간만인데, 일반 등산인들보다 1시간 반이나 지체된 상태다. 전문등산인들도 힘들어하는 코스인데, 초행길에 나선 몇 사람들은 오죽하랴! 집사람은 딸아이와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봉정암에 올라야 한다는 일념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에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봉정암은 강원도 설악산의 소청봉에 있는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대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곳에서 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이 사찰은 우리나라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불교신도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기도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 사람과 저녁 공양을 하며 오늘 오른 산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집 사람이 보람있어 하는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좋고 행복한 마음이었다. 여태껏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혼자서 즐긴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이제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 새벽안개 속으로 아침햇살이 서서히 퍼져가는 산사에서 느끼는 감정은 수행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 오욕칠정이 멎은 듯한 순간이다. 인생의 지나온 길과 현재의 존재 가치나 앞으로 살아갈 이생의 길목을 조용히 반추하는 진실의 시간인 것이다.점점 밝아오는 신선한 아침을 맞으며 한줄기 생각이 마음속으로 스쳐지나간다. 이번 설악을 찾아와 여럿 사람들과 힘든 돌계단을 오르고 고생한 파노라마 같은 순간들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는 등산의 길에서 항상 고맙게 대해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할 인생 좌우명 같은 생각들이다.“이토록 아름다운 단풍이 /사람 마음을 혹하게 하는가. //신비의 설악을 감고 돌아 /명당이 된 봉정암에서 /오랫동안 참선하는 사이에 /내심에 가득 찬 기도는 /자연을 닮고 싶다는 욕심 뿐. //별빛마저 고운 밤에 /한밤을 지세우고서 /경건히 맞는 이 아침이 /가슴 아리게 다가섬은 /수행길이 멀다는 아쉬움인데 //힘들어도 서럽지 않게 사는 법을 /설악은 묵언으로 말해주고 있다.”지금까지 많은 등산을 했지만 이번 등산은 의미가 깊다. 가을이 익는 설악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차 아내와의 동행이 마냥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게 된 의의 `설악의 묵언` 시처럼 인생길을 동행하면서 참된 가치와 사랑을 자연에서 배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봉정암에서 1박을 하고서 2일차 등산은 오세암과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로 가서 이번 등산을 마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코스의 등산기는 필자가 지난 6월에 등산을 다녀와서 백담사~영시암~오세암 코스에 대해 자세한 등산기 경북매일 6월 14일자를 쓴 적이 있어 참고할 것을 당부하면서, 그 구간에 대한 별도의 등산기는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어쨌든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에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든다는 설악산을 1박 2일간 다녀온 이번 등산은 내겐 의미가 깊다. 특히 그 일행 가운데 등산에는 초보인 집사람과 친구분이 따라 나서서 동행한 소중한 시간들은 등산이 인생같다는 훌륭한 가르침이어서 고마움을 느낀다.▲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0-25

독도경비대 현무지역대 이성빈 일경

차가운 새벽바람 사이를 가르며 우리 현무지역대의 우렁찬 구호가 독도 사방에 울려 퍼지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헬기장에서의 체조와 구보로 힘찬 아침을 맞고, 이제 막 날기 시작한 어린 괭이갈매기들도 어색한 비행 연습을 하면서 하루를 맞는다.아침 인원점검이 끝나면 근무표를 보며 오늘의 일정을 숙지하고 울릉도에서 독도를 방문하는 여객선들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돌변하는 독도 인근 파도 때문에 혹시나 여객선이 접안을 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간절한 마음 덕분인지 오늘은 파도가 잠잠해 접안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 독도경비대의 동료 괭이갈매기 들도 분주히 날아다니는 걸 보니 손님 반길 준비를 하는가 보다.오전 10시, 높은 파도를 뚫고 씨라워호가 접안에 성공해 240여 명의 관광객들이 독도를 밟을 때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독도를 보며 흐느끼기에 달려가 무슨 일인지 여쭈었다. 독도를 밟고자 작년부터 5번 배를 탔지만, 날씨 탓에 모두 실패하고 마침내 오늘 독도 땅을 밟게 됐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생전에 독도를 못 밟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제야 사라진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쉬웠는지 연신 손을 흔들어 주신다. “독도경비대! 파이팅! 수고하세요!” 일본이 터무니없이 역사를 왜곡하면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 주장하지만, 독도는 우리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바로, 독도는 `대한민국 경찰`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또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나라 국민 수백 명이 독도를 방문하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이곳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소한 행동부터가 진정 우리 국민이 우리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믿는다.저녁 8시, 노을지는 건너편 서도를 바라보며 후임 한 명과 관측근무를 서고 있다. 찬바람이 뺨을 쳐대고 있지만 우리는 오른쪽 어깨에 멘 총 끈을 꽉 쥔 채, 서로 솔직담백한 이야기 주머니를 풀어본다. 독도경비대로 지원하게 된 동기와 근무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달콤했던 첫사랑이야기 등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근무시간 종료가 코앞이다. 독도경비대로 지원해 처음 독도에 발을 딛던 순간과 그때의 전율을 잊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과거 독도 의용수비대 선배님들과 국민의 염원을 이어받아 우리 땅 독도를 굳건히 사수할 것을 맹세한다. 충성!

2013-10-21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트레킹

10월 이때쯤이면 누구든지 단풍이 곱게 물드는 산을 찾게 마련이다. 정기적으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을산을 많이 가봤을 테지만 멀지 않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아무래도 등산이 불편하기에 가을등산을 자주 간다. 여름 무더위 속의 등산은 얕은 산이나 계곡 또는 바다와 붙어있는 곳을 즐겨 찾게 마련이지만 등산하기 좋은 시기라 해도, 높은 산이나 장거리 시간을 요하는 먼 길을 다녀오고서는 때로는 가벼운 등산이나 트레킹코스를 생각해본다.지난번 연속하여 서울 북한산과 강원도 춘천의 오봉산을 다녀오는 등 장거리 등산을 했고, 다음번에는 강원도 설악산을 계획하고 있어 이번에는 비교적 가까운 코스를 택했다.충북 괴산에 있는 얕은 산과 호수를 끼고 잘 만들어진 트레킹코스, 산막이옛길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다.450m 두개 산봉우리 거쳐 괴산댐 호수길 따라 걷는 코스한반도 전망대 올라 산 아래 내려다 보면 호수·마을풍경 한눈에산행을 하면서 여행이라 하니 어색할 것 같지만 산행도 일종의 멋진 여행인 것이다. 산을 타고 오르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삶의 지치거나 혼돈된 자세를 다시 정리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등산은 사람들에게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번 산행은 450m 남짓한 두 개의 산봉우리를 거쳐 괴산댐 호수가에 잘 조성된 길을 따라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느끼는 여유 있는 코스다. 아침에 떠나온 버스는 2시간 채 못되어 괴산댐 호수가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간단히 준비하고서 10시경 본격적인 등산 행로에 올랐다.참고로 괴산은 등산하기 좋은 산들이 35개소나 있는데 그 중에서 1천m를 넘는 산은 연풍면의 백화산(1천63m)와 조령산(1천25m)이며, 나머지 산들은 해발 500m에서 900m에 이르는 산들이다. 이번에 오르는 등잔봉과 천장봉은 400m 높이의 산이라서 명산 등산코스에는 없지만 산막이옛길과 연계하여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 코스다.이번에 오르는 산 등산로 가운데 일부가 산막이 옛길과 일부 겹치는데, 요즘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나 관광객들에게 괴산 산막이옛길 트레킹 코스는 소문이 나 있다. 등산 초보들도 인근에 있는 400m대의 산봉에 올랐다가 내려와서는 옛길을 걷는 코스가 환상적이기 때문이다.산막이 옛길은 2009년 괴산군이 13억원을 들어 괴산댐 호수 수변을 따라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됐던 4km 길을 옛 흔적을 그대로 살려 복원한 산책길이다. 지금은 입소문이 퍼져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데 사시사철이 좋지만 특히 10월말의 이곳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주변의 괴산댐은 지난 1957년 초 순수한 우리 기술로 최초로 준공한 댐이기에 괴산군민들은 상징적인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산막이옛길은 괴산댐 호수와 어우러지며 한국의 자연미를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산막이 옛길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 반하게 된다.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소나무동산과 정사목, 노루샘까지는 옛길코스와 같다. 초입 길부터가 산과 호수, 그리고 소나무숲길이 어우러진 길인데 소나무동산이란 말처럼 이 길가에는 자태가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숲길가에는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등산을 시작하는 마음부터 편안해져 온다.들어서는 길 초입에는 출렁다리가 만들어져 등산인이나 관광객들이 그 출렁다리에 올라 소나무밭 상공을 걷기마련인데, 높이 4m로 길이가 60m정도 이어지니 붕 뜨는 기분이 들고 출렁거리는 반동 때문에 아찔한 생각도 들지만 기분이 좋다.산짐승들이 내려와 물을 마셨다는 노루샘을 지나 등잔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느 산과는 달리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하고 그 높이가 해발 400m대라 힘이 들지 않는다. 일행들은 노루샘에서 900m 거리에 있는 등잔봉 정봉을 힘들지 않게 오른다.등잔봉에 오른 길 가운데 힘들고 위험한 등산로도 있지만 편안하고 완만한 길도 있으니 그 길로 올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 산보다 쉽게 산 정봉(450m)에 올랐다. 등잔봉이란 명칭에서 직감적으로 등잔불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맞았다.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간 아들의 장원 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고 하여 등잔봉이라 불리어진다. 지금도 효험이 있어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봉우리라고 하니 온 김에 필자도 딸아이의 정진을 빌어보았다.잠시 생각하다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호수나 마을 모습들이 가을 풍경처럼 넉넉해 보인다. 등잔봉에서 내려다보니 호수를 사이에 두고 서편은 산막이 마을이고, 동편은 갈론 마을이다.이 두마을은 옛길 트레킹 코스가 명소로 자리잡기 전까지는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데 지금은 형편없는 촌의 분위기를 떨쳤다. 일행들은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10월의 나들이를 즐기다가 다시 행장을 메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하산을 하다가 조금 더 올라가면서 걷다보니 한반도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우리가 가끔씩 사진이나 TV에서 보아왔던 우리나라 국토지형을 닮은 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물굽이 흘러가는 저편으로 산세가 이어지면서 흡사 한반도 모양과 비슷하다.조금 오른쪽에서 봤다면 한반도 모양이 더 잘 나왔을 것인데 생각하면서 완만한 산길을 걸어서 천잔봉으로 향한다. 산길이라 평길을 걷는 것보다는 힘이 들 테지만 그런대로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300m 정도 산을 타고 오르니 천장봉 정상이다.천장봉(天藏峰)은 “하늘 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이 울창한 노송과 더불어 장관을 이뤄 그 풍광의 수려함에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놓은 봉우리”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곳이다. 그만큼 이곳에서 바라보는 괴산호수나 산야들의 모습들이 아름답다는 것이다.일찍이 하늘도 감춰놓은 비경의 산 정상 위에서 일행들은 자리를 깔고 점심식사를 하고서는 휴식을 취하면서 산 아래의 풍경 이쪽저쪽을 둘러본다. 가을 날씨 속의 아름다운 풍광이 가히 천장봉이라 부를만하다.하산을 시작하여 부지런히 걷는다. 한참 내려오다가 삼거리 길을 만나는데 계속 직진을 하면 삼성봉으로 가는 길이고, 좌회전을 하면 진달래 동산이 있는 진달래능선을 거쳐 바로 산막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심한 내리막길이다.산 아래 있는 산막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산에 막혔다는 오지마을이다. 그 마을 윗쪽엔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노수신(1515~1590)이 을사사화때 이곳으로 유배와서 살은 수월정이 있다. 노수신은 명종2년에 진도로 귀양가 19년 살다가 이곳 산막이 마을로 옮겨온 지 2년 만에 선조가 즉위하면서 복원됐고 영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산막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노수신의 10대손인 조선후기 선비 노성도(1819~1893) 덕분이다. 그는 조상의 자취를 따라 산막이 마을을 찾았다가 마을을 둘러싼 달천의 비경에 반해 `연하구곡`이라 이름지었다. 괴산댐이 생기면서 연하구곡은 모두 물에 잠겼지만 노수신이 유배생활하던 적소 주변은 빼어난 절경으로 오늘날 관광명소로 변했다.일행들은 산막이마을길을 택해 내려와 잘 정리된 옛길을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이제 괴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명소로 자리 잡았고,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번져 지난해만해도 13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이 옛길 트레킹 코스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트레킹코스로 불리고 있는데, 혹자는 이 길 대신에 부산 이기대 길을 꼽기도 한다.옛길로 접어들어 나무로 된 테크에서 풍경을 구경하고는 올레길을 계속 내려서면서 일행들은 주변의 풍경들을 조망하면서 잠시 쉰다. 이제 편한 길 몇 군데만 거치면 아침에 출발했던 주차장이 나온다.산막이 마을에서 주차장까지는 24개의 명소가 있다. 앉은뱅이가 샘물을 먹고 말끔히 나았다는 앉은뱅이약수가 있고, 참나무가 마치 옷벗은 미녀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붙인 `옷벗은 미녀참나무`가 있으며, 1960년대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호랑이굴이 산책로 옆에 재현되어 있다.호수전망대에서 그림같은 호수를 보면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사진을 찍거나 여행의 여유를 즐긴다. 필자도 호숫가를 배경으로 산길 옆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가을의 대표적인 꽃 코스모스를 보면서 감회에 젖는다.이번 등산은 400m 남짓되는 비교적 낮은 산봉우리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지만, 등잔봉에 오르는 두 개의 길, `힘들고 위험한 길`과 `편안하고 완만한 길`은 마치 인생 길처럼 생각된다. 누구든 힘든 여정보다는 편안한 길을 선택할 것이지만 힘든 길을 완주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은 그만큼 클 것이다.청정자연 속의 `신 산책로 1번지`로 이름난 이번 괴산 산막이옛길 등산이 필자에게 마치 가을동화처럼 잔잔히 파고드는 것은 가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에 행차했다는 것이고, 옛길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는 흡족함에서 이리라.▲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2013-10-18

`불균형 심각` 포항지역 중학교 신입생 배정 해법은 해결방안 및 과제

□ 여러가지 원인 복합적 작용포항 창포·우현지구 중학생 수급문제의 원인은 여러 원인들이 복합된 결과다.전국적인 현상인 학생수 감소에다 포항지역에 특화된 도심공동화 현상 이외에 남·여학교 비율이 3.5대 1.5로 심각한 불균형 방상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한가지 원인이면 찾아서 해결하면 되지만 포항지역 중학교 학생 배정 사안은 이같이 여러 이유가 함께 작용하다 보니 문제를 풀어야 하는 방안 또한 복잡하기 그지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창포 우현 지구 문제는 우선 급한대로 남녀공학인 포항 창포중을 여학교로 전환하고 해당 학교 남학생들을 인근 남학교에 분산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포항교육지원청에 따르면 2013학년도 포항 창포중에 재학중인 학생은 30개학급 987명이다. 그런데 이 학교는 남여 구성이 특이하다. 남학생(263명)보다 여학생(724명)이 훨씬 많은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학급당 남학생 수가 7~8명에 그쳐 체육시간에 축구팀을 꾸리기도 버거운 실정이다.이 학교 남학생들을 한 학급당 기준인원인 35명으로 계산하면 모두 7.5학급 가량이 된다. 따라서 창포중을 여학교로 전환하고 7.5학급을 학생수가 감소하고 있는 인근 학교에 배정하면 학급이 모자라 교사를 떠나보내야 하는 문제의 수습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안이다. 당장 해당 학교 측이 부정적인 입장이다. 학교측은 1994년 개교 이후 남녀공학의 전통을 이어왔고, 실제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서로의 역할을 보완하고 상대적으로 거친 남학생들을 순화시킬 수 있는 등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욱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포항 창포중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이와 관련해 교육청에서 따로 전달된 내용이 없지만 학교 내부에서는 굳이 여학교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경우 학부모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 문제도 학부모들이 키를 가지고 있는 형국이다.□기득권 유지만 외쳐선 안돼일각에선 남녀공학을 여학교로 바꾸는 것은 일시적인 처방일뿐 학생 수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더 큰 틀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학생수 감소현상이 포항 도심지역 학군 중 신도시인 장량·두호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학군 모두에 해당되기 때문이어서다. 현재 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남구 상도도시개발지구, 북구 초곡·이인개발지구 등이 준공돼 인구 이동이 시작되면 도심지역 중학교 학생수 감소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어차피 인구 증가는 한계에 직면해 있고, 또 학생들이 어느 날 갑자가 불어나지 않는 한 한쪽의 학생들이 개발지로 옮겨가면 불균형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개발지에 학생들이 어떻게 이동할지에 대한 수요 예측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현재로선 어디서 누가 어떻게 옮겨갈지 아무도 알수 없어서다.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담당기관인 포항교육지원청과 소속 학교, 학부모 등이 현실을 인식하고 긴밀한 협조를 통해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해가며 이견을 줄이는 것은 필수적이다.한 교육계에 정통한 인사는 “학교와 학부모가 서로의 주장만 내세운다면 이번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교육청은 중간자 입장에서 양측의 의견을 최대한 조율하고 학교와 학부모는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포항교육청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포항교육청이 각 학교의 사정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 학부모와 취학하는 학생들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하며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와 학부모 측에 맡겨 놓으면 기득권 유지만 외쳐, 하세월이 될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각 학교 또한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이 다니고 싶은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근 학교의 교육환경이 현재 재학 중인 학교보다 더 나으면 굳이 학부모나 학생들이 나서서`우리학교`만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학부모들도 `변화는 무조건 반대한다`라는 인식의 틀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포항 교육계 전체를 보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어야지, 무조건 `나와 내 자녀`만 고집한다면 경북 최고라는 포항의 일선 교육 현장이 내홍에 휩싸여 심각하게 헝클어 질 수도 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3-10-18

5원에 팔던 죽값이 3천원, 서민들 애환 스민 삶의 현장

“오늘은 죽도시장을 탐방합니다. 영남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입니다.”`두바퀴로`호의 새로운 선장 포항예술문화연구소장인 사진작가 안성용씨가 지휘봉을 잡았다.죽도시장은 평소 출발지점인 중앙아트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포항의 도심, 인체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포항경제의 심장 죽도시장죽도시장은 포스코가 있기 전 포항경제의 근간이 된 곳이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 한복판에 장이 섰다. 부지면적 14만8천760㎡, 점포수는 약 1천200개에 달한다. 매일 5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찾는 영남권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다.1950년대에는 갈대로 무성한 늪지대였다. 포항 내항이 연결되어 있는 곳에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자연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과거부터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 및 강원도 일대의 농수산물 집결지인 동시에 유통의 요충지였다. 1969년 10월 죽도시장번영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1971년 11월 포항죽도시장의 개설허가가 이루어졌다.죽도시장의 배치동쪽 포항내항을 바라보며 가장 가까운 곳에 수협 위판장이 형성되었다. 그 가까이에 200여개의 횟집이 밀집되어 있는 회센터, 어시장, 건어물거리가 위치한다. 또 의류거리, 식품거리, 이불거리, 한복골목, 그릇집, 가구거리 등이 구역별로 조성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최근의 일이지만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으로 700여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12개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죽도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수산물시장이다. 새벽5시가 되면 벌써 수협 위판장은 시끌벅적하다. 연근해에서 방금 잡은 생선으로 가득 채워진 만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새벽에 시작된 경매는 일반적으로 오전 8시면 거의 끝나게 된다. 살아있는 수협 위판장갑자기 위판장이 시끌벅적해 졌다. 문어가 경매물건으로 나오자 수산물 중매인들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엄청난 크기의 살아있는 문어가 33번 중매인의 15만원에 낙찰 되었다. 또 다시 방어와 미주구리가 나왔다. 손놀림이 빠른 45번 중매인에 의해 방어는 한 마리 5만원에 낙찰되었고 미주구리는 상자당 12만원에 팔렸다.죽도시장 위판장 지정중매인은 47명이며 중매대리인까지 포함하면 약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수 백t의 고깃배를 통해 포항 내항으로 들어오는 연간 600억원에 달하는 물량들은 바로 이들에 의해 전량 소화된다.이때 기자단의 눈에 고래만한 크기의 물고기가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의 초대형 병어나 복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괴물 물고기인가. 해맞이 포럼 노경훈 부대표가 “이 고기 이름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해체작업을 지휘하던 태영수산 박정자 대표가 “개복치!”라고 소리친다.몸통에 비해 주둥이가 너무 작아 기이하게 생긴 물고기였다. 해체한 물고기의 뱃속 살은 하얀 연두부같이 허물허물하게 생겼다. 그러나 이것이 포항지역 상가 집에 제공되는 필수음식이다. 하얀 묵같이 생긴 개복치 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일미란다.군침이 도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먹자골목`이 떠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죽도시장에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떡과 분식은 물론이거니와 단돈 2천원이면 맛볼 수 있는 따끈따끈한 수제비는 역시 일품이다. 옛날식으로 푸짐하게 차린 1인분에 4천500원 하는 영양식당의 고등어 정식도 유명하다.죽도시장 상인협동조합 이창혁 대표가 “맛있는 죽을 먹으러 갑시다” 제안하더니 할매죽집을 향해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먹자골목 할매죽집골목을 따라 두 번 정도 방향을 꺾으니 할매죽집이 나타났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며느리인지 딸인지 세 여인이 나란히 죽을 끓이면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죽의 종류도 호박죽, 녹두죽, 팥죽이 전부였다. 죽 값도 너무 저렴하다. 한 그릇에 단돈 3천원이다. 시골할머니의 인심처럼 그것도 대접에 넘치도록 담아 준다. 죽이 얼마나 맛있는지 순식간에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죽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인심 좋은 할머니의 미소 띤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 이 맛있는 죽을 3천원에 팔아 이문이 어디 남겠습니까?” 그런데 할머니는 웃기만 하시고 대답은 없다. “…. ”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장사를 하셨나요?”묵묵히 대답 없는 할머니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다가 한 참후에 이야기 보자기를 풀어 놓으셨다.할머니는 27세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막내딸을 낳은 지 90일 만이었다. 강원도 태백 소재의 대한중석에 다니던 남편이 산업재해로 1969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살길이 막막해 4남매를 데리고 친척이 있는 포항으로 이사를 왔다. 그것이 1970년도였다.남의 집 창고살이도 했고, 4평짜리 달셋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죽도시장 난전에서 메밀묵을 팔았다. 그러다가 노점 1평반 공간에서 수제비와 죽을 쑤어 팔기 시작한 이후로 벌써 43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한 그릇에 5원, 50원, 500원 받던 것이 이제 3천원까지 올려 받게 되었다며 미안해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마치 보살이다.막내딸에 의하면 죽을 쑬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할머니는 수 십 차례 실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폐가 나빠 기침을 많이 하신단다. 큰아들은 삼성그룹의 부장출신이고, 둘째아들도 경북대학에 보냈다. 그리고 딸 둘은 오빠들 때문에 대학을 보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함께 포즈를 취해 달라는 부탁에, 굽어진 허리를 잡고 일어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 졌다.지역문화와 삶의 터전 거듭나야죽도시장은 이렇듯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포항의 근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60년이나 된 장기곰탕집도 있고, 87세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목점 형제주단도 있다.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가게를 다시 개축한 3대째 내려오는 건어물 도매상 동일상회도 있다.최일만 죽도시장 번영회장이 말을 이었다. “포스코가 세워지기 전 당시 포항경제는 죽도시장에 달려 있었습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죽도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죽도시장은 포항경제를 움직이는 근원지였다.시장은 경제적 기능 외에도 사회·문화적 기능, 특히 지역주민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양식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이제 두바퀴로 기자단의 눈에 죽도시장은 다르게 비춰진다. 죽도시장의 경제적 기능과 사회·문화적 기능이 보인다. 포항경제를 위해서라도 죽도시장의 경기는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창조도시의 구현을 위해서라도 시장의 사회·문화적 기능을 제고해야 한다.모성은 교수가 한마디 곁들인다.“포항의 재래시장은 수원의 못골시장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은 아케이트나 주차장을 설치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다. 경영방식이나 서비스 기법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문화를 창달하는 터전으로 상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죽도시장이 거듭나야 한다.◇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문화가이드:최일만(죽도시장 번영회장), 백남도(죽도시장 농산물협동조합 회장), 이창혁(죽도시장 상인협동조합대표) 김외준(죽도수산시장상인회 사무국장)◇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취재동행:박계현, 권기봉, 이영숙, 노경훈◇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2013-10-17

지금은 갑론을박보다 시설 정상화가 먼저다

#오물을 토하고 열이 나는 어린아이의 부모가 자식을 등에 업고 급히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런데 아픈 아이를 두고 치료는 하지 않고, 여러 명의 의사들이 병의 원인에 대해 설전만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떠라. 아픔을 호소하는 아이와 부모는 가슴이 타들어 가며 의사시만 바라 보고 있다. 하루 300t 미처리 폐수 형산강 흘러들어책임소재는 정상가동 후 따져도 안늦어부실설계 논란으로 정쟁의 도마에 오른 포항음폐수처리장 시설이 마치 이 어린아이와 같은 처지가 됐다.포항시는 해양투기가 금지되는 폐기물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 2008년부터 관련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했다.포항시는 시의회와 공법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다 현재 논란이 된 시설의 공법을 선정, 환경관리공단과 위·수탁협약을 맺고 사업에 착수했다.하지만 시운전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불거지자 공법 선정 논란에다 부실 설계에 대한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자칫 법적 공방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포항시의회는 심한 악취와 수질오염 민원이 제기된 이후, 지난 9월 행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최근 수사 의뢰와 감사 청구 결정을 내리는 등 책임 소재 따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시의회 입장에서는 포항시가 한국환경관리공단과 위·수탁협약을 맺은 후 관리·감독이 전혀 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지만 시가 책임 회피만 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물론 포항시의 일방적인 행정추진과 예산낭비 요인에 대한 책임 추궁과 견제는 반드시 이뤄져야한다.다만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시설 정상화로 포항음폐수처리장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기능을 못하고있는 포항음폐수처리장으로 인해 처리장에 유입됐던 음폐수와 쓰레기매립수는 올 초부터 9월까지 구무천에 그대로 방류되고 있다.하루 300t의 미처리수가 형산강에 유입, 포항 앞바다로 흘러들어 천혜의 환경인 영일만항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 시는 미처리수에 대해 외부 위탁, 하수처리장으로 유입시켜 임시로 처리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환경공단은 포항음폐수처리장 시설 정상화를 위해 생물반응조 6조에 과거 설치됐던 산기관 교체와 냉각시설비 등 12억여원의 추가 예산을 요청했다. 공단은 추가예산이 투입된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이에 대해 시의회는 시-환경관리공단 협약에 따라 단 한 푼의 예산도 줄 수 없다며 예비비 사용 금지 공문을 포항시에 보냈다. 설계 부실에 따라 포항시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적절한 견제일 수 있다.그렇다고 해서 80억원을 들인 시설을 폐기하고 다른 공법을 적용해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차선책으로 현재 완공된 시설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정상화가 늦어지면 제철동 주민들의 악취 고통은 길어지고, 환경기준치를 넘기는 폐수의 형산강 유입, 음식물쓰레기 대란 등의 후유증이 우려된다.책임 소재는 음폐수처리시설을 정상적으로 가동시킨 이후에 따져도 충분하다.추가 예산 12억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53만 포항시민이 배출하는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처리하는 데 꼭 필요한 예산이라면 결코 크지 않다. 시간을 끌면 후유증은 커질수 밖에 없다.포항시는 책임지는 행정을 펴고, 포항시의회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야 할 때다./김기태기자 kkt@kbmaeil.com

2013-10-17

`불균형 심각` 포항지역 중학교 신입생 배정 해법은 배정 불균형 원인과 문제점

□ 도심 중학교는 영어교사가 미술 가르치는 상황 올수도포항교육지원청은 지난 9월 12일 포항 용흥·창포·우현지구 등 포항시 북구지역 9개 중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2014학년도 중학교 신입생 배정관련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저출산현상으로 전체학생 수가 감소하고, 도심공동화현상으로 인해 도심지에 위치한 해당 학군 중학교 입학대상자가 급격히 줄어듬에 따라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키 위해 마련됐다.포항교육청에 따르면 창포·우현지구 학군인 포항중·여중, 포항 창포중, 포항 대동중, 포항영신중 등 5개 학교에 오는 2014학년도 입학할 예정인 학생은 총 943명이다. 이는 이번 2013학년도 입학생인 1천201명보다 무려 258명(21.5%)이 줄어든 수치로, 포항지역 전체 감소인원 770명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청은 해당 학군의 학급수를 37학급에서 31학급으로 줄일 수 밖에 없다고 학교측에 공포했다.이에 따라 포항교육청은 포항여중을 제외한 모든 학교에 대해 1~2학급을 축소 배정할 계획이다.포항교육청은 이같은 결정이 해당 학군 전체 학생수가 급감했고, 남·여학교 비율이 3.5 대 1.5(창포중은 남녀공학이므로 0.5씩 분배)로 남학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뤄진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포항 대동중, 포항영신중 등 사립학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학교는 지난 수년간 학급수가 공립학교에 비해 적게 배치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또 한 번 감축이 진행될 경우 학교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학급수가 감소하게 되면 교원수 감축도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공립학교의 경우 타학교 인사발령 등으로 근무를 지속할 수 있으나 사립학교의 경우 기존직원에 대한 해고조치 이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 사립학교 관계자는 “1개 학급이 감소되면 1.63명의 교원이 보따리를 싸야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이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을 찾아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며 “우리학교의 경우 학급수 감소로 교내에 단 한 명 뿐인 미술교사가 해고조치될 수밖에 없어 영어교사가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야 하는 촌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학부모 인식이 학군조정 최대 걸림돌학생수가 날이 갈수록 급감하면서`사립학교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포항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학부모 선호도도 양쪽으로 갈린다. 공립학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지역정서상 사립학교에 비해 전통과 역사성이 있는 공립학교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은 5~10년 가량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 공립학교 교사들과는 달리 오랜기간 동안 한 학교에 머무르면서 학교 내부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교사들이 많은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취향이다.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학부모들의 자녀취학에 대해 갈구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는 거주지와의 거리다. 공·사립학교 여부를 떠나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가까운 학교를 우선적으로 원한다는 것이다.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둔 학부모 한현심(42·여·북구 두호동)씨는 “학교마다 교육방침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른 것은 맞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보니 아이들을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는 대부분 학모들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학부모들이 집과의 거리를 우선시하면서 학생수가 부족한 학군에 대한 충원이 힘들어지는 이유다. 용흥중을 양덕으로 옮기는 방안이 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대로 좌초된 것이나 상대적으로 학생수가 많은 장량·환호지구 학군에 소속된 포항 동부초등학교를 교육청이 최근 창포·우현지구로의 학군 조정을 시도했으나 해당 학부모들이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서 무산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포항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동의 없이 함부로 학군을 조정할 수는 없기에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이라며 “향후 더 많은 논의가 오고 가야 할 문제이지만 이같은 분위기가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3-10-16

긴급점검 포항 음폐수처리장

심한 악취와 수질오염 등 환경오염 민원을 양산하며 설계부실 논란을 빚고 있는 포항시음폐수처리장 문제가 법정공방으로 번질 조짐이다. 포항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는 지난 14일 음폐수 관련 제3차 조사위원회를 개최해 이 사업 관련 기관간 책임 소재 및 위법성을 가리기 위해 검찰 수사의뢰 및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기로 의결했다. 이 사업은 남구 호동 산32번지 일원에 사업비 80여억원을 들여 음폐수와 쓰레기 침출수 하루 320t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음폐수병합처리시설을 설치하는 것. 지난해 6월 착공, 그해 12월 완공한 뒤 올 1월부터 시운전에 들어갔으나 수온상승에 따른 미생물사멸, 생물반응조 용존산소부족 등으로 방류수질초과 및 악취 등의 문제점이 발생해 현재까지 정상 가동을 못하고 있다.사업시행처인 포항시는 부실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세부적인 사항은 위수탁 협약을 맺은 환경관리공단만 바라만 보고 있다. 환경관리공단은 추가 예산 투입으로 시설을 보완하면 문제점이 개선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포항음폐수처리장이 논란을 일으키게 된 과정과 문제점, 해결책을 찾아 본다.△사업마다 제동 걸려 백지화포항시는 2012년부터 폐기물 해양투기를 금지하는 런던협약에 따라 지난 2008년부터 해양배출물의 육상처리를 위해 하수찌꺼기 자원화시설을 비롯한 하수슬러지 자원화 시설,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사업, 유기성폐기물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이 시의회의 제동으로 무산되면서 표류했다. 2009년 포항시는 음식물폐수와 하수, 가축분뇨 등 유기성폐기물 처리 시설 사업을 추진했지만 2010년 4월 백지화됐다. 당시 이 사업은 1천억원이 넘는 대형 사업이었으나 포항시의회는 2010년 5월 지방 선거에 집중하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임영숙, 최상원 의원은 음식물쓰레기, 음식물폐수, 축산 폐수, 하수 등을 통합 처리할 수 있다며 포항시를 압박, 유기성폐기물 처리 사업에 혼선만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처리방법 싸고 다툼 지속지난 2008년부터 추진된 음식물폐수 처리 사업은 2010년 기존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와 계약기간 문제에 맞물려 또 다시 지연됐다. 2010년 11월 포항시의회는 포항시와 음식물쓰레기 대행업체와의 계약이 특혜라고 주장, 공개경쟁입찰방식을 주문했다. 대행업체는 포항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1월 포항시는 음식물폐수처리 계획을 내놨지만, 소송과 맞물리면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이런 와중에 처리 방식을 놓고 시의회와 다툼이 지속됐다. 결국 2011년 8월 법원이 음식쓰레기수거 업체의 영업권보장 판결을 내렸다.이때부터 본격시작된 포항시음폐수 처리 시설 사업은 당시 국비까지 지원되는 에너지자원화 방식이 가장 효율성이 큰 사업으로 평가됐으나 음식물쓰레기업체의 영업권 보장판결에 따라 음식물쓰레기수거업체와 연계한 현재의 정화처리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됐다. 결국 포항음폐수처리장 설계부실 논란은 포항시의회가 공법을 둘러싸고 논의를 지연한 데다 쓰레기대행업체에 대한 법적공방 등으로 시일을 끄는 바람에 이 공법이 선택돼 논란의 불씨가 만들어지게 됐다. 포항시는 물론이고 포항시의회 역시 포항음폐수 처리장 설계부실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김기태기자 kkt@kbmaeil.com

2013-10-16

`불균형 심각` 포항지역 중학교 신입생 배정 해법은 중학교 및 학생 현황

교육계가 저출산 현상으로 10년이 넘도록 감소추세인 출산율로 인해 학생 수급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전국의 초등학생 수는 278만4천여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6만 7천900여명(5.7%)이 줄었다. 중학생 수는 180만4천100여명으로 4만4천900여명(2.4%)이 감소했고, 또 고등학생 수는 189만3천300여명으로 2만6천700여명(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는 현 출산율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며,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도심은 공동화로 인해 학급수를 줄여야 하는 반면 개발외곽지는 불어난 학생수를 감당키 어려울 지경이다. 본지에서는 학생 수 감소와 인구의 이동에 따른 심각한 불균형 현상을 겪고 있는 포항지역 중학교 배정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교육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토대로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찾고자 한다.공동화 현상 가속에 도심학교 폐교 위기신도시 개발로 외곽지는 1천명 이상 과밀□ 구미와 학생 수는 비슷포항지역 출산율 저하는 초·중학교 입학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북지역에서 포항과 유사한 공업도시인 구미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포항시의 출생자 수는 지난 2000년 6천355명이 출생한 이후 2001년 5천428명, 2002년 4천602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이같은 수치는 포항시의 대대적인 출산운동 여파로 지난 2011년 4천645명, 지난해 4천817명으로 회복세에 놓여있으나 여전히 인구규모(지난달 기준 51만9천158명)에 비해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특히 10만명이나 적은 숫자의 시민이 살고 있는 구미(지난달 기준 41만8천777명)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은 포항지역의 교육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3학년도 포항지역 초등학생 수는 2만8천55명. 구미지역 초등학생 수인 2만8천413명에 미치지 못한다. 중학생 수는 포항 1만9천281명, 구미 1만8천371명으로 약간 많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수년 내에 추월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2014학년도 신입생인 2001년 출생자가 포항지역의 경우 5천428명으로 5천653명인 구미에 비해 오히려 적고 이같은 현상은 2002년 이후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도심학교는 썰렁, 외곽신도시 학교는 북적이처럼 출산율 감소와 함께 신도시 개발로 인한 도심공동화 현상 또한 각급 학교 학생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항지역은 지난 1990년대 후반 남구 유강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 이동지구와 양덕지구 신도시 개발이 이어졌다.실제로 포항의 가장 중심이라 일컫던 북구 덕산동의 포항중앙초등학교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학생수가 2천400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로 인해 구도심이 쇠퇴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올해 7학급 88명에 그치고 있다.이같은 현상은 중학교 신입생 배정문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중학교 학군 배정은 기본적으로 근거리 우선원칙에 준하고 있기 때문에 신도시 인근 학교는 학급 과밀화 현상을, 구도시 인근 학교는 학생 부족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포항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인구 6만명에 육박하며 포항지역 동단위 행정구역 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장량동 인근에 위치한 포항 대도중과 포항 환호여중의 2013년 학생 수는 각각 1천113명, 1천18명으로 과밀학급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포항교육청은 2016년 포항 양덕중 신설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중학교는 근시안적, 탁상행정의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학생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일부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중학교를 새로 건립한다는 사실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양덕중 신설계획 수립 당시 도심권 학교 중 가장 규모가 작은 포항 용흥중을 이전·건립하는 방안이 논의됐었으나 학부모 및 동창회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용흥중은 현재 전체 학급수가 5학급이지만 2014년에는 4학급이 된다. 사실상 폐교위기 직전에 놓인 것. 따라서 양덕으로 옮겨가면 재학생들은 자연스레 인근 중학교로 배정돼 학생수가 줄어드는 학교에 큰 도움이 되지만 용흥중 학부모들의 반발 등으로 이전 논의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그 영향으로 양덕중 신설계획이 대안으로 제시된 속에 도심의 기존 학교들은 학생 수가 모자라 학급수 조정이 불가피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3-10-15

위기의 소나무숲 재선충병 대책은?

1972년 소나무재선충병의 첫 피해를 본 일본은 북부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소나무림에 대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유럽 등지에서도 소나무재선충병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국내 소나무재선충병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소나무재선충병과 관련, 화학·항공방제는 물론 천적개발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병충해 박멸에 대책은 현재까지는 전무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재선충을 없애는 해법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가 없다.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것도 완전퇴치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을 제정, 소나무재선충병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산림 보고와 피해방지 대책 강구를 제도화 했다. 재선충 확산 통로를 볼 때, 정부나 자치단체가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소나무를 체계적으로 사후관리하는 것이 피해 확산을 막는 유일한 대안으로 분석된다.△방제매뉴얼 정비해야최근 3년 사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늘어난 데 대해 산주 및 관련 전문가들은 전국 자치단체가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소나무에 대한 관리체계와 박멸 의지 부족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올 해 전국적으로 고사된 소나무 52만 그루는 전국 자치단체의 예찰 부족과 감염 소나무 관리 체계 허점과 무관치 않다는 것.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재선충병 방제 메뉴얼도 논란이다. 산림청 메뉴얼에 따르면 재선충 피해감염목은 소각, 파쇄, 훈증 처리토록하고 있다. 감염목 완전처리를 위해서는 소각이 최선의 방법이긴 하나 깊은 산속 등에선 여건상 이 방법을 동원할 수 없다. 차선책인 파쇄방법 역시, 중장비를 깊은 산속까지 옮겨야 해 예산상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자치단체들은 훈증처리를 채택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덮기가 어렵다며 호소하고 있다. 효율적인 방제 방법이 절실하다는 얘기다.△방제 전문인력 양성 급해전문인력 유지와 확보도 시급하다. 경북도내 시군은 대부분의 경우 산불 감시 업무와 함께 재선충병을 담당,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너무 늦게 손을 쓰는 바람에 소나무가 완전 사라지다시피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는 인력 보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감염목을 제거하는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현재 각 자치단체들은 예찰, 방제 인력으로 일용직 근로자들을 투입하고 있다. 이들 기간제 근로자들은 관련규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할 수도 없다. 재선충 피해가 크게 확산되는 추세임을 감안, 더 늦기전에 전담부서와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예산, 적기 집행 우선 돼야재선충병 방제 작업은 통상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적기다. 매개충 이동이 어렵고, 자른 감염목을 옮기는 과정에서 매개충 유충이 탈출해도 기온이 낮아 자동으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제 작업 적기에 예산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자치단체가 이를 지키기 못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국가가 관리하는 병충해로,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재선충병 관련 예산도 70%가 국비다. 국비가 지자체에까지 하달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병이 발생해도 자치단체들이 손을 놓고 정부만 바라보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올 해처럼 죽은 소나무가 속출하는 한 원인이다.△광역 전담기구 필요재선충이 확산되고 있는 지역은 경북 동해안~울산~부산~통영~광양~순천으로 이어지는 벨트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정 자치단체가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재선충병의 효율적인 처리를 위해선 광역권을 묶는 소나무재선충병 대책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담 기구 설치로 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철저한 예찰활동 등을 통해 사전 예방을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김기태기자 kkt@kbmaeil.com

2013-10-14

배우고 나누고 소통하며 인생 100세 시대 이끈다

인생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 대학입시 등 학교 교육보다는 전 연령층에 대한 교육인 `평생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다. 각 기업체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토익과 학점 등 성적과 봉사활동, 해외 경험 등 이른바 스펙보다는 점차 인성과 품성을 비롯한 사회적응력과 조화, 융화 등을 중요시하는 경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입사 후에도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세미나와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렇듯이 대학과 기업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평생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새로운 화두가 된지 오래다.대구는 이미 입시교육은 수성구가 그 명성을 이어가고 가장 중요한 평생교육은 대구 동구가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학교교육에서 부족하기 쉬운 심성과 인성교육 등의 중점이 되는 평생교육을 일개 기초단체가 맡기에는 예산문제 등 힘겨운 상황이지만 대구 동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대구교육의 신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단단한 각오 아래 벌써 7회째 이 행사를 진행했다.지난 10~13일까지 4일간 금호강 지저동 둔치 일대에서 펼쳐진 `제7회 동구평생학습축제`는 평생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연령별로 어떠한 교육이 실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축제는 팔공산 승시축제와 대구세계에너지 총회 일정과 함께 외국인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어나 동구평생학습축제가 국제화와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하면서 연인원 100만여명이 방문하는 기록을 세우며 평생교육에 대한 지역민들의 열의와 관심을 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글 싣는 순서 ① 신서혁신도시와 이시아폴리스②동구평생학습축제③동촌 유원지의 대변화④동대구역세권 개발⑤팔공산 권역의 상전벽해팔공산 승시축제·세계에너지 총회로 방문객 급증, 나흘간 연인원 100만 기록아양기찻길 개통식·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비 제막식 등 이색행사도 열기 더해 □ 평생학습축제의 새로운 모델 제시동구평생학습축제는 지난 2010년 대구·경북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제9회 전국평생학습축제`를 대구 동구에서 주최함으로써 전국을 깜짝 놀라게 하며 평생학습축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전국에서 평생학습으로 가장 우수한 도시로 우뚝 서는 계기를 만들었다.그 이후 주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평생학습에 대한 높은 관심도로 인해 횟수를 거치면서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기초단체 축제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고유의 행사로 만들면서 대구교육의 신성장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이번 축제는 `인생100세! 3GO(배우GO, 나누GO, 소통하GO)`를 주제로 인생 100세 시대에 나아갈 바를 제시했고 `행복한 일류 동구`의 진취적인 모습을 `새로은 삶, 행복한 대구(New Life Happy Donggu)`를 부재로, 키워드는 `창조`로 정해 창조경제의 선두에 서 있음도 보였다.이제 동구평생학습축제는 이와 관련한 자치단체 축제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고유의 독보적인 행사가 되면서 대구 동구에 한정된 축제가 아니라 대구·경북지역은 유일한 평생학습축제라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 행사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특히 올해는 구 대구선의 한 구간으로 유일하게 철교로 남겨져 있던 아양철교를 철거 위기에서 지켜내 철교가 가지는 산업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전하고 전 세계에 유례없는 관광명소로 재창조한 `아양 기찻길 개통식`도 함께 열려 교육과 경제성장이 함께해야 함을 보였다.여기에다 대구의 희망을 노래하며 대구의 자랑인 동구 팔공산과 금호강을 배경으로 한 대구의 찬가인 패티김의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비 제막식`이 함께 어우러져 더욱 뜻깊은 축제가 됐다.평생학습으로 소통해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고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축제기간에는 금호강 물놀이장에서 축제장까지 유람선을 운행했고 공항교 주차장에서는 가족 4인용 자전거와 2인용 자전거, 동촌구름다리 주차장에서는 10인용 꽃마차를 운행해 가족과 연인, 친구에게 새로운 추억거리를 제공했다. □ 초·중·고까지 아우른 화합의 장 올 동구평생학습축제는 크게 배우고, 나누고, 소통하는 3가지 테마로 마련됐다.우선 배우고를 위해 대구 동구는 이번 축제에 150개의 체험·홍보부스 마련해 대구국제학교(DIS)를 비롯한 경북대, 영남대, 대구경북 영어마을, 대구예술대 등이 참여했다.이들 부스에는 대학과 초·중·고교가 참여해 `과학영재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심장만들기`, `CAN DO 리더십 프로그램`, `과학원리를 이용한 로봇체험`, `폐품으로 앵그리버드만들기`, `닥종이 인형이 들려주는 이야기`, `영어 클리닉(Clinic)` 등으로 어린이와 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창조의 터전을 만들었다.또 한국감정원 등 혁신도시 입주 기관 및 첨복의료복합단지, 한국폴리텍 섬유패션대학, 팔공문화원, 농업기술센터, 동구선거관리위원회 등 지역 기관도 참여했다. 이들은 `2013 패션프로젝트`, `가을야생화 심기`, `천년의 빛깔 천연염색`, `행운의 부엉이 열쇠고리 만들기`, `소원 팔찌 장명루 만들기`,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머그컵 만들기` 등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어울림의 장도 조성했다.영남대는 지난 13일 오전 10시 축제장 특설무대에서 학생, 일반인,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새마을운동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새마을정신 말하기 대회`도 인기를 얻었다.이어 나누고 행사로는 `기관단체장 소장품 나눔행복장터`를 열어 지역의 기관장, 단체장이 평소 아끼는 소장품을 기증받아 판매함으로써 단순한 축제로 끝나지 않고 나눔으로써 행복한 축제의 장이 되도록 했고 판매 수익금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기부하는 등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동구 만들기 장을 펼쳤다.심지어 이번 축제에는 처음으로 초·중·고교생들에게 참여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3GO 행복 릴레이`를 운영해 장사진을 이뤘다.이어 우리동네 자랑에는 20개 동에서 지리적, 생활적 특성을 살린 동별 홍보 체험관을 만들어 신나는 목공예 장난감 만들기, 창조경제의 허브! ICT 벤처타운, 낭만과 여유가 있는 동촌유원지, 토기에 담는 천년의 향기, 청정의 고향 매여마을, 전통의 맛 메주, 두부 만들기 등을 운영했다.`도서관, 평생을 채우다`는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로 운영되면서 방문객들이 시끌벅적한 축제장에서도 여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 한·일 포럼 등 국제자매도시 교류도한·일 양국 간 학술교류로 작년 일본에 이어 2회째를 맞아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공동체 재생과 마을주민의 평생학습 역량강화를 위해 지난 11일 오후 2시30분 퀸벨호텔에는 국제행사인 `한·일 평생학습 마을 만들기 포럼`을 개최했다.한국에서는 최운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김남선 전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장 등 평생학습 각계 인사가 참여했고 일본은 세이토쿠 대학 마을평생교육연구소장 후쿠도메 쯔요시 교수를 비롯한 모두 22명이 이곳을 찾아 `제7회 동구평생학습축제` 개막행사와 한·일 평생학습 마을 만들기 포럼에 참가했다.이어 이날 저녁에는 자매도시의 날로 정해 부여군 충남국악단, 보령 시립합창단, 전남 영암 민속예술단과 중국 황산, 몽골 볼강아이막에서도 참여해 국내 자매도시 간은 물론 국제자매도시 간의 문화와 평생학습 소통을 위한 문화교류의 장이 됐다.이번 축제기간 중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특설무대와 소공연장에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뮤직난타, 우리 집이 최고야! 동극이 펼쳐졌고 해서초교의 차시연과 행복국악동아리 공연, 덕성초교 두드림과 관악협주, 효동초교 해마루 댄스 솜씨 자랑이 이어졌다. 특히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하는 `1·3세대 우리가 남이가`팀의 한문낭송을 비롯한 그동안 평생학습으로 다져진 평생학습 프로그램 경연대회, 어르신들의 팔공노인복지관 학습발표회, 기명화 알림전, 대구경북관광테마열차 공연, 통기타 공연 등 4일간 모두 55회의 다채로운 공연이 가득한 평생학습 콘서트의 장이 펼쳐졌다.마지막 날인 13일 오후 6시에는 평생학습축제 폐막을 알리는 행사를 통해 4일간 100만명 방문객을 기록한 축제을 화려하게 장식했다.이날 폐막식에는 축제 기간 중 펼쳐진 각종 경연대회와 우수 부스, 동아리에 대한 시상과 앙코르 공연이 펼쳐졌고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출연한 20명으로 구성된 마니존 윈드콰이어 공연과 평양예술단의 현란한 검무, 무용 등의 공연으로 유종의 미를 장식했다.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평생학습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제7회 동구평생학습축제는 다 함께 배우고, 나누고, 소통하는 장이 됐다”며 “세계적인 명소가 될 `아양기찻길`이 있어 더 행복하고 살고 싶은 도시,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3-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