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이 구름을 뚫어 솟아오르니 그 기상 도도하여라
신문을 보다가 `틈나면 나홀로 산행`이라는 제목이 있어 무슨 내용인가 싶어 읽어보았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인 세르조 메리쿠리(55) 대사의 이야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를 한국 산(山)마니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교관 초년병 시절인 1987년에 한국에서 첫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그는 그로부터 20년 후인 2010년 한국행을 자원해 지난 4년간 한국의 산 가운데 어지간한 곳은 다 가보았을 정도로 시간만나면 지도를 펼쳐들고 `나홀로 산행`을 나섰다고 한다.
메리쿠리 대사는 한국 산들은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면서, 어느 정도 등산에 자신이 붙을 무렵 눈 덮인 태백산에 아이젠도 착용하지 않고 홀로 등산에 나섰다가 길을 잃어 조난 위기에 처해졌을 때는 아찔한 순간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사는 한국의 산맥은 변화무쌍하며 한 발 한발 발자국을 내면서 산을 타다보면 자신이 한국사의 한 점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는데, 필자는 그 기분을 이해할만하다.
빼어난 기암괴석에 `경기 금강`으로 불려, 변화무쌍한 코스 인기암릉의 스릴 만끽하며 백년폭포 등 운악팔경 감상도 재미 쏠쏠
필자가 처음 산을 타던 3년 전, 초보시절에 산에 오른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외경스러워 보였지만 차차 산행에 익숙해지면서 생활의 연장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왔으니 산을 타다보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행을 하다보면 주의할 게 많다. 날씨 파악은 기본이다. 드림산악회에서 경기도 가평군과 포천군에 속하는 운악산 등산이 계획돼있어 먼저 기상정보를 알아보니 주말에 수도권 일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질 예정이고 눈이나 비가 온다고 하여 설경을 구경하나 싶었다.
등산 당일 일요일 오전 7시에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경기도 땅에 들어서서도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눈은 내리지 않고 날씨가 좋았다. 가평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11시 50분이다. 당초보다 반시간 이상 더 걸렸기 때문에 차에 내리자마자 곧장 산행 길에 오른다.
운악산 등산로 중에서 대체적으로 가평군 하면 하판리에서 출발하는 2개소와 포천군 운주사 입구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다. 이 가운데 하판리 출발점은 두 개의 코스인데, 현등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눈썹바위~미륵바위~운악산 동봉에 오르는 1코스 오르는 산행거리는 약 3.5km로, 3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2코스는 현등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서 백년폭포~현등사~절고개를 경유해 운악산 동봉 정상에 오르는 코스로 산행거리는 약 4.7km로, 2시간30분~3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포천군의 운주사 코스는 무지개폭포로 올라서 바로 운학산으로 가는 단코스다.
매표소의 안내소 왼쪽편에 운악산을 알리는 입석 시비가 있어 특이하다 싶어서 읽어본다.
“운악산 만경대는 금강산을 노래하고/ 현릉사 범종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 무우폭포에 푸른 안개 오르네” 바위에 새겨진 글은 전형적인 시조 형식인데, 누가 지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운학산이 경기 금강산이라 불리는 명산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그와 같이 운악산은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삼악산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악산(嶽山)을 이룬다. 이름처럼 그 산들에 가면 절경들로 등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데 운악산도 그렇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하루의 일과를 그려본다. 등산 일정은 1코스처럼 현등사 입구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여 눈썹바위, 병풍바위, 미륵바위를 지나 운학산 동봉과 서봉에 올랐다가 무지개폭포를 경유해 포천 땅의 운주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 일행들은 갈림길을 지나 오른쪽 길로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완연한 봄은 아니지만 봄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산길을 걸으면서 자연으로부터 봄기운을 받고 있으니 걸음걸이마저 상쾌하다.
오르막길을 올라 눈썹바위에 당도했다. 출발한지 1시간 정도 걸렸는데 험산이지만 여기까지 오르는 데는 별로 험한 등산로는 아니다. 산 밑 하판리에서 보면 생김새가 눈썹처럼 생겨 눈썹바위로 이름이 붙여진 바위다.
가평의 명산, 운악산 중턱에서 오른쪽 계곡 쪽에 있는 사람 눈썹모양의 눈썹바위는 운악8경 중에서 제3경이다. 바위를 눈여겨보며 잠시 쉬고서 다시 산행 길에 오른다.
눈썹바위를 지나니 암릉지대의 등산길이다. 길목에 소나무나 고목의 모습도 좋고 산아래 골프장의 풍경도 평화롭다. 하지만 여기서 병풍바위 전망대까지는 1시간 이상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코스인데, 산세나 암릉의 구성 등을 살펴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등산로 바위길 구간이 시작되고 앞에는 암릉과 함께 위엄이 대단한 병풍바위가 전경을 드러내는데 일행들은 테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 병풍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에 다달았다. 힘들게 오르지만 전망대에 올라 주변의 빼어난 풍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50m 안팍 높이에 폭이 약 250미터 쯤 되어 보이는 병풍바위가 운악산의 자랑처럼 산에 병풍을 둘러치고 있다. 일행들은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필자도 주변 조망을 구경하고서는 절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암릉 길을 타면서 산행은 계속된다. 어려운 바위 등산로 길에 설치해놓은 U자형 발디딤 쇠못을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내디디면서 조심스럽게 올라선다. 안내판을 보니 등산 출발지인 하판리에서 2.55km를 지나왔다.
눈앞에 나타난 바위가 한 층 한층 포개져 있는 것같이 보이는 미륵바위에 올라서기 위해 여전히 바위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미륵바위에 올랐다. 미륵바위는 여러 개의 바위가 포개진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형성돼 있다.
험한 암반길을 힘들게 오른 만큼 잠시 안도의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운악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여전히 이어지는 바위 오르막길이다. 한쪽은 암반으로 돼 있고 또 한쪽은 낭떠러지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운악산 동봉 정상까지는 300m가 남았는데 계속 암릉길 험로가 이어져서 구름다리도 타고 로프를 타고서 만경대에 올랐다가 조망을 하고난 뒤에 드디어 운악산 정봉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때가 한 참 지난 2시 40분이다.
운악산은 정상이 두봉의 표지석이 있는데 최고봉인 동봉(937.5m)이 서봉(935.5m)보다 2m가 더 높다. 10분거리인데 동봉은 가평쪽에, 서봉은 포천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다.
운악산이란 이름은 망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산 아래에 있는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산이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최정상에 올라보니 기슭이나 중간의 바위지대와는 다르게 날씨가 조금 쌀쌀한 편이다. 운악산 동봉에서 전망을 구경하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먼저 점심식사시간을 가졌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서는 휴식시간을 겸해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보이는 곳마다 절경을 이룬다.
이곳에는 예부터 운악팔경으로 불리워지는 명소들이 있는데, 제1경은 등산로 중턱에 있는 백년폭포로서, 백년 동안 변함없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2경은 소의 물이 복더위 중에도 얼음같이 차다고 하는 다락터 오랑캐소이며, 제3경은 등산로에서 본 눈썹바위다.
제4경은 현등사 오른쪽 계곡에 있는 코끼리바위, 제5경은 망경대이다. 제6경은 무우폭포(舞雩瀑布)에 있는 민영환 암각서이고, 제7경 큰골내치기 암벽이며, 제8경은 하판리 노채계곡에 있는 노채애기소다.
이와 같이 운악산 일대는 암릉으로 이룬 기암괴석 등으로 명소들이 많은데 봄빛 속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힘든 산행끝에서 얻어낸 값진 보석을 마음에 담아본다.
“운악, 그 이름처럼/ 산악이 구름을 뚫고/ 그 위에 솟아 있는 듯/ 멋진 암봉들이 어우러지니/`경기금강(金剛)`이라 불리는/ 운악산의 기상은 도도하다.// 눈썹바위에서 쉬고/ 병풍바위 앞에서도 쉬고/ 암릉길에 오르면서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곳곳마다/ 절경이 따로 없다./3월의 운악산에는/ 봄날의 향연이 피어난다.//”(자작시 `운악산의 봄 풍경`전문)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의 빼어난 전망을 보고서 일행들은 10분거리에 있는 서봉으로 향한다. 서봉에도 운학산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여기서 건너편에 올라 쉬던 동봉쪽을 보고, 또 지나온 암봉의 능선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젠 애기바위를 거쳐 무지개폭포 쪽으로 하산하는 일정만 남았다.
암릉을 타고 정봉으로 올라온 관계로 피로가 쌓여 산을 내려갈 때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다리에 힘이 없으면 넘어지기 십상으로 위험한 구간을 스틱을 잘 이용해야 한다.
애기바위를 지나 무지개폭포에 다다르니 폭포수는 흐르지 않았다. 계곡의 거대한 암벽에서 맑은 물이 떨어지는 무지개폭포는 지난겨울 추위에 얼어붙어 아직 녹지 않은 상태로 있다. 무지개폭포 궁예가 이곳으로 피신하여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산길 종점인 운주사 절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됐다. 필자는 조용히 법당에 들어가 불공을 올렸다. 마음속에서 와닿은 것은 어렵고 힘든 시간을 참고 견디면서 쌓은 등산의 기쁨처럼 생에서도 그렇게 되기를 기원했다. 인과응보의 결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일행들은 산행을 모두 마치고 나서 차에 올라 귀향길에 나선다. 이번 드림산악회 회원들과 함께한 이정은 왕복 677km의 긴 거리다. 그리고 5시간반이라는 긴 산행에 올라 운악의 힘든 시간을 용케 견뎌내고 마음의 기쁨을 얻었으니 필자는 `등산은 인내의 예술`이라는 말에 동감하면서 빙그레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