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기대 둘레길<bR>상쾌한 바닷내음 마시며 걷는 해안산책길 넉넉한 마음의 휴식 갖게해<bR>제주 올레길·지리산 둘레길과 더불어 비경 트레킹 코스… 감탄사 절로
여름 등산은 무더위로 인하여 가기 쉬운 코스나 아니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적합하다. 그런 뜻에서 여름 한철 등산 코스 선정에 유념하려고 하는데, 오늘 트레킹 코스는 부산의 이기대 둘레길이다. 그곳에서는 이기대 해안산책길이라 하며, `갈맷길`로 부르기도 한다. 그 갈맷길을 향한 기대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마음을 들뜨게 하는데, 아마도 눈에 익은 부산을 향하는 길이라 더욱 마음 설렜고, 신이 나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일행들과 부산으로 오는 차안에서 필자는 오랫동안 정 들며 살았던 고향집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오전 10시 반에 오륙도 전망대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아침바다는 금빛 물결로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바다가 고향인 필자가 자주 보아온 모습이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해져 오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서부터 바다를 향한 그리움에 풍덩 빠져 들었고, 그러한 나의 마음을 바다가 알아주고 또한 안아주는 듯 생각에서다.
상쾌한 바닷 내음을 마시며 걷는 길에서 농바위가 보인다. 오래 전에 우리 선조들이 생활의 지혜로 만든 옷 가구, 농()을 사용했다. 싸리나 버들채 등 가지를 활처럼 휘게 만들고 그 위에 문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든 생활도구였는데, 이곳 바위가 마치 농같이 생겼다 하여 농바위라고 불리어졌다고 한다.
갖가지 나무의 모양이나 일시적으로 만들어 내는 현상이긴 하지만 구름떼의 모습, 아침 동틀 때와 저녁 낙조가 낄 적에 그 자연적인 생김새는 가히 탄성을 내지를만하다. 인위적이 아니어서 어떤 형상으로 있어도 멋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농바위를 지나 갈맷길을 걷는 내내 자연의 위대함을 생각하면서 어느 듯 치마바위에 올랐다. 치마바위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자연이 들려주는 탄식을 듣는 것 같았다. 가까이 바다에서 끊임없이 뭍으로 밀려오는 파도의 일렁임! 그 파도가 바다기슭에서 솟아난 바위에 수시로 부딪치며 잘게 부서지는 소리였다. 하얗게 갈라지는 그 물결을 보노라니 문득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바다의 명품, 하얀 포말의 파도치는 모습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뭍 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것은 내가 한때 산 적이 있는 부산이라는 지명이 가져다주는 낯익음의 위안이기도 하고, 오늘 트레킹의 주된 코스가 이기대여서 이곳에 묻힌 전설 속의 스토리가 조국 또는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현실을 살아가면서 숱한 인연의 끈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사회 울타리에서 하루의 복잡한 일을 잊어버리고 부담 없이 찾는 산행이 가져다주는 여유 내지 일상의 소중함 때문이기도 하다.
6월의 한낮이 돼도 바다 풍경과 마주하여 바닷바람이 쐬고 있으니 덥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선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치마바위에서 바다를 보며 일행들은 만들어온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바다가 보이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고서 자연의 운치를 반찬삼아 드는 식사의 맛, 아마도 황제라도 이런 경험을 못하였을 것이다.
◆치마바위서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
어울마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마침 일요일인지라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을 벗 삼아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움 그 자체인 듯하다.
이기대에 도착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많은 부산 사람들도 이기대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의아해한다. 그 유래를 찾아보니 1850년 좌수사 이형하가 편찬한 `동래영지(東萊營誌)`의 “左營南十五里 上有二妓臺 云(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는 내용이 있다.
부산 수영 출신의 향토사학자 최한복(1895~1968) 님의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축하연을 열고 있을 때 수영의 의로운 기녀가 왜장을 술에 취하게 한 뒤 끌어안고 바다로 투신하여 함께 죽은 곳으로서, 당시 두 명의 기생이 함께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한 데서 이기대(二妓臺)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애국과 애절함이 이기대 갈맷길에 물씬 배어난다. 부산은 전 지역에서 문화예술적 색채가 우러나오는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곳곳에 시비나 문학비가 많이 세워져 있는데, 부전역 교차로에는 박목월 시인의 시 `청노루` 시비가 있고, 수정가로공원에는 유치환 시인의 `바위` 시비, 국민으로부터 가장 애송되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 시비가 양정동 로타리에 세워져, 이러한 명시들은 오가는 길손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또한 이기대에도 지역시인들의 시비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김규태의 `흙의 살들` 최계락의 `봄이 오는 길`과 함께 이곳 내용에 맞는 시비가 있는데, 박상호 시인이 쓴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기대에서`라는 시가 필자의 눈길을 끈다.
“… 이름모를 두 떨기 들꽃으로 스러졌지만
그대들의 지고한 조국 사랑은
아무리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저 변치 않을 북극성처럼 찬연하리니… (이하 생략)”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기녀들의 의로운 행동에 잠시 마음이 잠시 숙연해진다.
이기대의 전설과 박 시인의 찬가를 음미하면서 출렁다리에 닿았다. 출렁다리를 지나오면서 대도시의 소품처럼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장식물들을 보고 인위적으로 만들기는 하였으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를 주고 있다는 고마운 생각도 해보았다.
출렁다리를 거쳐 동성말을 보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섭자리에 도착하니 2시반이 되었다. 정말 넉넉한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보낸 4시간 동안의 마음 상쾌하면서도 즐거운 트레킹 코스였다. 행여 길이 좁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부딪쳐도 눈인사 하나면 족한 마음의 여유이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연히 만난 여러명 고향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다.
일행은 오늘 트레킹을 다 끝내고서 산뜻한 기분으로 귀가하는 길에 자갈치시장에 들러 두어 시간 남짓 회를 앞에 놓고 서로의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화제는 단연 잘 왔다는 이야기였다.
이기대 해안산책길(갈맥실)이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장 비경의 트레킹 코스라 했는데, 둘러보니 마음속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오기로 잘 했다는 안도감을 내 쉰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이 갈맷길에서는 부산의 전경을 상징하는 광안대교, 부산요트경기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 해운대해수욕장과 그 너머 달맞이공원을 한 눈에 조망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그 길의 전체 둘레가 아름다운 지점 2.2km로 이어져 있어 오륙도 전망대,
농바위, 치마바위 등에 올라 자연을 감상하면서 느릿느릿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트레킹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져다준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의 휴식을 찾고 건강을 헤아리는 마음의 넉넉함을 갖게 하는 오늘 이기대 갈맷길은 또 하나 얻은 마음의 위로다. 언젠가 복잡한 일상이 되면 이기대 갈맷길을 생각해 낼 것이다. 하늘과 바다와 산의 숲이 어우러져서 하모니를 이루는 자연의 합창곡을 듣던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던 때를 떠올리면서 생활의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