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같은 바다 속 점점이 박힌 섬들…보는 것만으로 `힐링`
매주 금요일마다 경북매일에 연재되는 필자의 산행 이야기를 눈여겨본 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잘 보고 있으며 이번 주말에 홍도·흑산도를 가는 여행 코스가 있어 추천하니 다녀오라는 귀띔이다. 홍도·흑산도는 누구에게나 가고 싶은 곳 1위지역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여름엔 그곳에 한번 가보리라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내친 김에 홍도행을 마음먹었다. 해안선 길이 8km 홍도, 섬들과 절경 이루며 서해 소금강으로 불려
기암괴석·숲이 어우러진 흑산도, 노래비 전망대서 본 조망 한폭 그림
동해에서 육지를 가로 질러 서쪽 끝까지 가서 또 왕복으로 배를 이용하는 이번 코스는 등산이라기보다는 마음 편히 떠나는 여행길이다. 그러나 새벽에 출발하는 차시간을 맞추다보니 잠은 당연히 부족한데, 좋은 경험을 하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받아들여야 함은 어쩔 수 없다.
도중에 휴게실에 들러 차 한 잔 마시고는 좋은 기분으로 열시반께 목포 유달산 주차장에 닿았다. 함께 온 일행들과 유달산에 오른다. 유달산은 목포의 상징으로 목포시민들의 자랑이다. 유달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노적봉이고 `목포의 눈물` 노래다. 산은 정상이 해발 228m로 낮으나 산정은 매우 날카롭고 기암과 절벽이 많아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유달산서 바라본
목포대교·서해바다
산에 오르니 목포항 개항 110년을 맞아 건립한 `유달산 정기` 표지석이 버티고 서 있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 정상에 서서 목포 시내를 바라본다. 흐린 하늘 아래 앞 바다가 보이고 조금 멀리 다도해가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바다를 끼고 살아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보아도 바다의 모습은 그리움의 대상이고 정겨운 모습이다.
유달산을 내려와서는 연안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주말을 이용하여 홍도나 흑산도로 가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승선 점검을 마치고 유토피어호에 탑승했다. 홍도까지는 가는 도중에 흑산도를 경유하며 2시간 반이 걸린다. 배안에서 바다위로 펼쳐지는 바깥 경치를 보면서 홍도와 흑산도를 마음에 담는다.
그러한 사이 배는 출발지인 목포에서 바다길 115km를 쾌속으로 달려 3시반경에 홍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홍도는 원래 이름난 관광명승지다 보니 느껴지는 감흥이 색다르다. 홍도는 신안군의 섬 가운데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으로 1678년에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도하여 살았다 한다. 홍도 본섬의 해안선 길이가 8km로 주변의 20여개의 부속 섬과 절경을 이루며 서해의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우리 일행은 깃대봉에 오른다. 깃대봉 정상은 367m로 그리 높지 않아 한시간 반쯤 걸리는 트레이킹 코스로 가벼운 등산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산에 오르니 군데군데에 테크 길이 정비되어 있어 쉽게 올랐다. 드디어 홍도의 정상에 올랐다. 바다를 향해 `야호`하고 소리를 질러본다.
그리고서 사진을 찍고 멀리 또는 가까이 있는 바다를 조망해본다. 사면이 바다 풍경이다 보니 매주 등산을 갈 때에 육지의 산 풍경을 느끼는 마음하고는 또 다른 감흥이 있다. 내려오는 길에 산 주변을 살펴보니 철쭉이나 동백꽃과 함께 야생나무 등이 자라나고 있어 섬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태어 만들어 내고 있다.
필자가 주말마다 빠짐없이 산행을 다녀오면서 통상적으로 등산 코스로 하루에 5~6km 정도 산을 탔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의 목포 유달산이나 홍도 깃대봉에 오르기는 정말 식은 죽 먹기다. 힘들지 않은 만큼 마음에 담는 자연의 그릇도 또한 크다.
육지의 높은 산 등산길 같으면 오르기 전부터 마음을 다잡고 몸에 무리가 전해지지 않도록 특별히 유념을 한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산악인 마르쿠스 슈무크의 말대로 “왜 나는 산에 오르는가? 이 물음에 대답할 말이 없다. 다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올라가야겠다는 것뿐이다”는 명언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산에 오른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일행과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계획한 목적지까지는 올라가야하기 때문인 것이다.
마을로 내려와서 부두를 지나다 보니 우리가 타고 왔던 배는 떠나고 없고 부둣가에 30개 정도의 포장마차가 진을 치고 있었다. 홍도의 또 하나의 진풍경인데, 거기에는 소라, 전복, 해삼, 멍게 등 앞바다에서 건져낸 해산물을 맛보러 온 육지 사람들로 초저녁부터 북적거렸다.
이튿 날 아침 유람선을 타고 섬 둘레를 일주하는지라 기분이 상쾌했다. 유람선 개찰권은 어른단체는 1인당 2만2천원인데 다소 비싸지만 최고의 관광명소에서 유람선까지 타는 셈치면 이해는 된다. 비가 그친 후라 기온이 올라 아침바다엔 운무가 끼어 있었다. 파도가 없어 잔잔한 주변 바다는 이곳 사람들도 일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좋은 날씨라 한다.
홍도 주변에 산재한 13개의 부속 섬 사이를 돌면서 섬 모양과 기암괴석을 보면서 승선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니 그럴만하다. 섬을 형성하는 기반암의 성분이 붉은 색의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암석에 수평 또는 수직으로 있는 틈이 잘 발달되어 절경을 이룬다. 바위섬엔 동굴이 있고, 그 동굴 초입에 바위 아래로 거꾸로 자라는 소나무가 기이한데, 열악한 환경에서 이어가는 생명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서해바다 절경 보며 풍경 낚기
온갖 모양의 바위와 잔잔한 수면, 그리고 운무가 피어오르는 아침바다는 환상적이다. 느낌만 있다면 여기서는 누구든지 시인이 되리라. 필자는 이곳 풍광을 마음에 부지런히 담다가 아쉬움이 많아 마음에 다 담지 못한 절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이제 다음 일정에 따라 홍도에서의 시간을 접고 10시 반 배를 갈아타고서 다음 코스인 흑산도로 향한다. 돌아오는 배안에서 홍도 쪽을 바라보니 수평선인지 하늘 아래인지 경계선이 가물가물하다. 바위가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바위처럼 눈부시다
다도해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돌아 오전 11시경에 흑산도에 도착했다. 계속 바다의 풍경을 담느라 분주하다보니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무수히 떠 있는 섬 풍경에 생각이 매몰되다보니 지금 지나는 곳이 강인지, 바다인지 아니면 호수 가운데 있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무아지경이다. 흑산도 선착장에 내리니 그곳에서 배를 타려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들이 겹쳐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발 디딜 틈이 없다
관광객 인산인해
흑산도 선착장
흑산도 선착장 어귀 거리엔 관광 나온 몇몇 사람들이 땅바닥에 앉아 술을 마시며 노래판을 벌이고 있는데, 일그러진 관광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필자는 `기암괴석과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흑산도`가 새겨진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을 했다. 흑산도는 주변에 1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검푸르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이곳의 관광명소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열두구비길, 정약전선생 서당, 최익현 선생 유배지 등이 있고, 등산코스로 칠락산(260m)을 찾는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섬 일주에 나섰고, 맨 먼저 상라봉에 위치한 흑산도아가씨 노래비를 둘러보았다. 노래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운치가 있다. 마치 앞 바다가 우리를 향해 그리움으로 손짓하며 떠있는 것 같다.
버스를 이용하여 일주도로를 도는데 마을 어항 앞에 배가 여러 척 그림처럼 떠 있는 모습이 멋있다. 천혜의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다음 코스인 최익현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면암 최익현(1833~1906)은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에 반대하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어 후학 양성에 공을 들였는데, 1924년에 문하생들이 유허비를 세웠다.
흑산도에서 머문 4시간 반으로는 흑산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1박2일간의 짧은 일정이라 불쑥 찾아온 여행지지만 홍도와 흑산도의 면모를 알려면 적어도 3일간의 일정은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가슴으로 품은 무수한 정경들을 다 간직하기란 어렵거니와 시간의 한계로 인해 또 다시 출발해온 원점으로 귀가해야하는 마음도 못내 아쉽다.
그 아쉬운 마음속에는 짧은 시간을 스쳐간 홍도에서 1박과 흑산도의 아늑한 전경이 더욱 애절하게 떠오른다. 홍도의 섬 사이 바다에서 잔잔한 호수처럼 엷게 비쳐나는 그림자가 나의 가슴에서 조용히 일렁이고, 흑산도 등성이에 올라 그림처럼 떠 있는 앞 바다의 작은 섬들을 마음에 담아둔 풍광들이 오랫동안 비
처나리라. 언젠가 내 다시 홍도와 흑산도를 찾아오리라. 안녕, 나의 사랑 서해바다여!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