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 맑은 물, 백담계곡 층층 쌓인 돌탑으로 돌아드니…
시도 때도 없이 산을 오르는 등산가는 정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국 각 지역에 있는 어떤 산들에게도 찬사를 보내며, 산마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설악산 풍경을 두고서 “사계절, 어느 시간에 보아도 설악은 살아 있다”고 말해준다.
“온갖 일들이 규칙적으로 묶여있는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는 비록 일시적이나마 완전한 자유로운 삶의 방식의 하나가 등산이다”
설악산의 살아 있는 모습, 그 생생함이 나로 하여금 설악산 등산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설악의 어느 들머리에서든 그 정봉인 대청봉까지의 거리가 상당한지라 쉽게 꿈꾸지 못한다. 하루 일정으로는 다 오르지 못하기에 일부 구간을 선택하여 오르기 마련인데, 설악산 등산로 중에서도 기본적인 행로는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을 거치는 코스이다.
설악산이 워낙 유명한 산이라 다 알 터이고, 백담사도 전임 대통령으로 인하여 잘 알려진 곳이다. 그렇지만 백담사가 잘못된 정치사에서 유배지라는 의미의 허망한 유명도 보다는 차라리 한용운 시인이 오랫동안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서 자연을 벗 삼아 거처했던 곳이라 알려짐이 제격인 곳이다.
백담사는 국립공원입구에서 7.1km에 있다. 그곳에서 영시암까지 3.5km이고 영시암에서 오세암까지는 2.5km이니 그곳까지 왕복거리만 해도 20km를 넘고 시간이 왕복 8시간 정도다.
여기에 더하여 봉정암과 대청봉 정상까지 풀코스에 오르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오세암에서 4km 위에 있는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을 향하는 등산 일정이라면 시간계획과 준비물 등이 달라지게 된다. 봉정암에서 대청봉까지 거리는 6.3km로 소청봉과 중청봉을 거쳐 대청봉 정상에 오르는데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사계가 아름다운 설악산을 찾는 등산인들이 편하게 등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무리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설악산 등산을 즐기기 위해서는 백담사~영시암~오세암까지의 등산 코스를 선호하여 등산의 맛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우리 일행도 이번 산행계획은 설악산 등산 코스 가운데 기본적인 코스인 백담사~영시암~오세암을 둘러보고 다시 하산하여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였다. 새벽에 출발한 차는 아침 해가 훤히 솟고서야 강원도 인제 땅 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먼저 백담사에 올랐다.
이 사찰은 신라 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때에 지명을 따서 한계사라 불리다가 1783년 백담사라 개칭되었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데서 `백담사`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절을 둘러보면서 일제 강점기인 1905년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여 `님의 침묵` 시를 발표하고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만해 한용운 시인(1879~1944)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백담사는 고승도 수도한 곳이지만 만해 시인의 영향으로 인해 이름나 있는 곳이다. 매년 이 계곡에서 만해시인학교 행사가 있고, 만해축전이 열리고 있다.
경내를 둘러보고서는 다시 영시암으로 향한다. 백담사에서 시작하여 영사암을 거쳐 오세암까지 왕복 코스는 12km의 평탄한 숲길이다. 산행을 즐기는 사진작가 김영재 시조시인이 이 길의 이름을 `님의 침묵길`로 소개한바가 있는데, 만해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 제목에서 착상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만해 시인의 `님의 침묵` 시 내용에는 “…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는 구절이 있다. 만해 선생이 이 사색의 길을 걸으며 민족을 생각했던 그 길을 따라 걸으니 필자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뒤섞어져 있는 길, 숲길에 아름다운 야생화가 그득히 피어나 있고, 간혹 그늘 속에서 밝은 햇살 한 줄기가 이어지면 속살의 부끄러움 같은 흙이 훤히 드러나는 그 길을 걷노라면 길가 주변에서 청솔모와 다람쥐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다. 그 만큼 호젓한 자연의 길이다.
그 길을 걸어 일행은 영시암에 도착했다. 내설악에 있는 영시암은 조선조의 문장가 김삼연이 세상에 뜻이 없어 찾아든 곳이라 한다. `길이 맹세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영시(永矢)`란 말에서 보듯이 세속을 끊고 지내기를 맹세함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니 그만큼 첩첩산중이라는 말인데, 그의 `영시암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절세미인이 숨어 산다는 속설의 설악산의 중턱을 오르면서 앞을 봐도 산이고, 뒤를 봐도 하늘 아래의 산이다. 산행을 거듭하여 중턱에 오르니 아늑한 맛이 느껴지는 사찰이 있으니 바로 오세암이다. 이 암자는 설악산에 산재한 수많은 사찰 가운데 아늑한 맛이 느껴지는 사찰로 제일로 친다고 하니 필자가 보고 느낀 그대여서 쉽게 그 말에 수긍이 간다.
신라 선덕왕 때(643년) 창건 당시 관음암이었던 이 암자는 그 후 천년이 지난 1643년에 설정 대사가 중건한 이후부터 설화에 의해 오색암으로 바뀌어졌다.
설정 대사가 고아가 된 조카를 이 절에서 키우는 도중에 한 겨울 네 살 난 아이 혼자 두고, 신흥사에 갔는데 폭설로 인해 이듬해에 이 절에 돌아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오세암(五歲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설악산을 다 둘러보지 못한채, 하루의 등산 일과를 마치고 다시 귀가를 서두르는 시간에 속리산 비경들이 필름 돌아가듯 펼쳐진다. 설악이 손짓하여 인제로 와서 마음의 끈이 자유로움으로 풀린 시간 내내 설악산의 형세와 그 기슭 계곡의 풍경을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었다.
계곡을 거쳐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나 그 냇물이 돌아서가는 군데군데 자리 잡은 바위들의 모습을 보면, 특히 깊은 산 속의 자연 그대로의 풍광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느낌뿐이다. 또, 설악산의 푸른 숲은 마음을 청정하게 만들고, 계곡의 맑은 물이 굽이치는 냇가에서 인간의 소원이 깃들어 쌓아놓은 돌무더기는 자연을 향한 경외함마저 보여주는데, 불현듯 시상이 떠오른다.
`냇가에 쌓인 돌탑을 본다. / 돌은 그 밑돌을 밟고 있으면서 / 윗돌의 버팀이 되어 / 넉넉한 인연을 보는 것 같은. // 숲속에 서면 / 내 마음의 텅 빈 속에 / 온통 푸름으로 찾아와서는 / 온유함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아직 제목은 정하지 못했지만 `백담사 게곡, 그 느낌대로` 쓴 졸시다. 이렇듯 등산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는데, 필자는 지난번 거제 칠천도 등산에서 전날 약한 식중독 증세로 힘든 등산을 했고, 일행들에게도 마음의 누를 끼쳤다.
이번 등산이 설악산 코스라 좋은 몸 컨디션을 유지하느라 일주일 내내 신경을 많이 썼다. 산에 오르는 주말이 즐겁고 항상 기다려지는데 스스로 몸 관리를 잘못하여 산에 오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말이다.
일요일마다 산에 오르는 게 거의 일상화돼버린 자신에게 “왜 등산을 하지?”라고 자문했을 때 등산하는 이유에 대해 필자는 나름대로 주장을 펴왔다. 나와 똑 같은 명확한 답을 뒤늦게 저명인사의 말에서 확인하는 순간 필자는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바로 이것이구나. 그런데 어쩌면 나하고 똑 같지”하는 생각이었다.
“온갖 일들이 규칙적으로 묶여있는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는 비록 일시적이나마 완전한 자유로운 삶의 방식의 하나가 등산이다” 이 말은 프랑스의 등산가 폴베가 한 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등산을 직업적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등산하는 하루 동안은 온갖 시름에서 잊고 나무와 숲 속에서 산과 하늘을 보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등산이야말로 삶에 건강한 힘을 주는 원천인 것이다. 다 오르지 못했지만 설악산이지만 그 산 줄기에 버티고 선 중턱의 영시암이나 오세암, 또는 백담사의 등산이 바로 그런 멋과 맛을 준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