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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보리밭·노란 유채꽃… `봄의 왈츠`가 흐른다

글·사진 손경찬
등록일 2013-04-26 00:07 게재일 2013-04-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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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쪽 끝자락 전남 완도 청산도
▲ 청산도 고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도청 선착장의 모습들, 옹기종기한 마을과 푸른 보리밭, 노란 유채꽃들이랑 평화스럽게 펼쳐져 있다.

`봄의 왈츠`가 울려 퍼지는 곳. 남녘땅 완도의 청산도에 찾아오는 봄은 섬 전체의 곳곳에서 요정처럼 일렁거리며 계절의 향연을 베풀어준다.

한 마디로 봄의 왈츠곡을 추는 것처럼 경쾌하고 상큼한 분위기가 섬마을 곳곳에서 묻어난다.

오늘 산행으로 정한 완도 땅은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이다. 다도해의 빼어난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 무려 50여개에 달한다.

청산도는 그 중의 하나다. 청산도를 가려면 완도읍까지 육로로 가야하고,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는데 50여분 정도 소요된다.

봄빛 완연한 산과 들, 그 자체로 빼어난 풍광

세계 1호 `슬로길`·`서편제` 촬영지 등 볼거리

굳이 등산을 하러 청산도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관광을 해도 좋고, 등산을 겸해도 묘미가 있다.

청산도에는 얕은 산들이 몇 봉 솟아있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산은 대자로 시작되는 3대산(대성산, 대선산, 대봉산)과 보적산이다.

청산도 여행은 1박2일이 적당하지만 무박 등산을 하려면 새벽부터 일찍 서둘러야 한다. 일행은 대구 달성 쪽을 경유하여 88고속도로를 타고 달려가다가 함양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었다. 그리고 바로 완도까지 달려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계절적으로는 봄이라지만 화창한 날씨가 아니다.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 40분에 여객터미널에서 청산도로 가는 배를 타고 도청항에 내렸는데, 섬에서 섬으로 온 것이다. 오늘 등산코스는 대선산(343m)과 고성산(310m)이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방송 드라마 촬영지를 잠시 보고, 영화 서편제 촬영지를 돌아 다시 당리 선착장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정봉인 두개의 산이 해발 300m를 조금 넘다보니 편안한 마음이 들고, 게다가 바다를 끼고 올라가니 마치 봄소풍을 나온 학동들 같다.

도청리 등산로 입구에는 `고성산 3.5km, 대성산 4.1km`라는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곳으로 빠져서 남도갯길을 따라 오른다. 벽에 그려진 벽화들이 산뜻하게 우리를 환영해준다.

청산중학교 분기점이 산 들머리인데 작은 등산로를 따라 계속 산행을 하는데, 벌써 2.6km를 걸었다. 뒤를 되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바다에는 큰 배가 두 척 떠 한가롭다. 동백꽃이 빨갛게 피어 있는 등산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일행은 편한 발걸음으로 올랐는데도 벌써 대선산 정상(343m)에 섰다. 얕은 산의 등산은 싱거운 맛이 든다. 정상에서 일행들은 자연 경관을 살펴보며 사진도 찍고 다소 흐린 날이지만 봄날의 서정을 즐긴다. 산자락 사이로 어촌의 시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다음 일정인 고성산에 오르기 위해 내리막 외길을 가는데, 돌덩이로 등산로가 이루어진 짧은 구간을 만났다. 평지같은 산 위에 갑자기 돌무더기를 만났지만 그간 암봉 등산도 경험한 터라 쉽게 넘었다.

두 번째 봉인 고성산 정상에 올랐다. 낮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오늘의 목표 정봉인 두 봉에 모두 올랐다. 일행들은 평평한 자리를 골라 둘러앉아서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산 밑으로 보이는 선착장을 가리키며, 저곳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도 되겠다며 등산 경험을 이야기 한다. 산행코스가 좋다는 것을 둘러대서 말하는 것이리라.

산 정상에 돌탑이 있다. 작은 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은 큰 바위 같은 것도 있다. 어디를 가던 흔하게 보이는 것으로 돌탑을 보면 쌓아올린 성의가 보여지고,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식사를 하고 주변을 대충 정비한 다음 다시 하산하여 다음코스로 향한다. 산을 다 내려가서는 도로 길을 따라 가는데, 흐린 날에 갑자기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진다. 일행들은 사전에 준비해온 비옷을 걸친다. 오랫동안 등산을 하다보면 경험에서 날씨마저 헤아리는 지혜마저 생긴다.

읍리마을 도로변에 읍리 지석묘와 읍리 하마비가 우뚝 서 있다. 알다시피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고, 하마비는 조선조 때 만들어진 비로 누구든지 이곳에서는 말을 내려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그 곳을 빠져나와 돌담을 사이하며 걸으니 슬로길이 나온다. `청산도 슬로길`은 전체 길이가 마라톤 코스인 42.195km다. 완도군에서 만든 것인데, 세계 슬로길 제1호라 한다.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밭을 보면서 일행 가운데 행동이 빠른 사람들은 연거푸 카메라를 찍어댄다. 섬마을 어느 곳이든지 사진찍기의 배경은 특출나다.

돌담을 지나다보니 초가 이엉같은 모양이 특이한 게 있어 지나는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초분`이라고 했다. 무덤같다고 짐작이 가는데 상세히 알아보니, 초분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짚으로 만든 가묘(假墓)에 장례하는 원시적인 장례법`이라고 한다.

다시 걸으니 바닷가에 다다른다. 잠시 머물고서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본다. 날씨는 흐리지만 파도는 없는 편이다. 파도에 씻긴 자갈들이 빼곡히 들어찬 사장이다. 보통 사장은 모래사장을 이야기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자갈사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씻기고 바람으로 다져진 돌 자갈밭이다. 기념 삼아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봄의 왈츠`에 초대받아 가는 길이다. 자연이 우리를 초대하였고,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유채꽃 길의 평탄한 길을 걷는다. 저만치에 아기자기한 모양의 주택이 보이는데, 단번에 2006년 KBS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일행은 사진을 찍고서 마치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벌인 봄의 향연에 흠뻑 젖어있는 것 같다. 필자도 출연진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 몇 컷을 찍고, 무지개 새깔처럼 알록달록한 바람개비가 꽂혀진 마당에서 풍경을 즐겼다.

한참동안 드라마에 출연한 기분을 내면서 그곳을 빠져 나오니 이번에는 `청산도 서편제` 촬영지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이 남도민의 정서가 담긴 진도아리랑을 애절한 소리로 노래하며, 애환을 담은 서편제는 당시 보기 드물게 1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였다. 그곳을 둘러보면 필자의 머릿속에 불현듯한 장면이 떠오르는데, 그 장면은 여주인공 송화(오정혜 분)가 청산도 산자락을 내려오면서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에헤…” 하던 그 노래가 지금도 귓전에 울려나는 듯하다.

일행은 등산을 모두 마치고 당리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완도로 건너가 밤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그렇게 하여 무박의 완도 청산도 봄 산행을 마무리하였지만, 등산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가족단위로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청산도 관광을 권유하고 싶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하늘, 바다, 산이 모두 푸르러 `청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섬, 청산도. 가는 곳마다 자연이 때 묻지 않고 살아 숨 쉬는 듯해 풍광이 고운 남녘땅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잊혀질 테지만 아름다운 해안 절경, 산과 들에서 자연이 피우는 유채꽃과 동백꽃의 모습, 산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 바다, 그리고 고개 등성이 너머 얕은 산의 모습이 푸르게 돋아나는 아기자기한 청산도는 오래도록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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