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귀래면 미륵산 미륵봉·신선봉
이번 등산지는 강원도 원주골이다.
원주라 하면 흔히 군사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혁신도시로 지정받아 인구 50만을 앞두고 지역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래형 소도시다.
치악산(1,288m)이 전국적으로 소문난 이 지역의 명산이지만, 오늘 산행지는 귀래면에 있는 미륵산의 주봉인 미륵봉과 신선봉인데, 암봉과 노송이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코스다.
미륵산 등산은 귀래면 주포리에 있는 미륵산 체험캠프장에서 시작하는 게 통상적이다.
이곳은 주차장 시설도 잘 돼 있고, 등산 안내도 설명도 상세하다. 우리는 캠프장에서 미륵산 등정의 첫발걸음을 뗐다.
신선봉 올라 산천 둘러보면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기암괴석, 바위틈에 뿌리박은 노송의 자태 한 폭 동양화
오늘 일정을 보면, 오전 10시 20분에 주포리를 출발하여 468봉에 오르고 신선봉, 장군봉을 거쳐 미륵봉에 올랐다가 미륵바위에서 점심식사 타임을 가진다. 휴식시간을 갖고 정상인 689봉을 보고 미륵산에 올랐다 다시 서향 능선을 따라 새터고개로 내려오는 하산코스로 오후 3시경에 등산을 마친다. 거리는 8km이고, 4시간 남짓 소요되는 미륵산 등산은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타는 산으로서 적합하고, 무리가 없는 좋은 등산코스다.
미륵산이 소재한 귀래면은 그 이름부터 특이하다. 귀래(貴來)라, 귀한 분이 오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 내력을 살펴보니 정말 그렇다. 원주지역은 옛 통일신라의 땅이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이 927년 왕위에 올랐으나 세력이 약하여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자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이양하게 된다.
그 후 경순왕은 미륵산이 보이는 인근에서 터를 잡고 평생을 살아가다가 이곳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는데, 경순왕 때 창건된 절인 황산사(皇山寺)가 귀래면에 있다. 조선시대 때 절 이름에 황(皇)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황산사(黃山寺)로 고쳐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되고 현재는 황산사지에 주춧돌만 남아 있다. 이와 같이 귀래면은 신라 마지막 임금의 애환이 남아 있는 지역인데, 주포리에는 경순왕을 기리는 경천묘가 있다.
초입부터 등산로가 좋은 편이다. 계곡 길을 따르다 보면 조금 경사진 능선 길을 만나지만 주능선은 그래도 편안한 길이다. 조금 지나니 바위지대가 나타나는데 여기엔 로프가 달려 있어 등산객들에게 편리를 준다. 이곳에서 신선봉 등산로는 산 흙길이 아니라 바위지대가 많다. 등산로에서 보는 주변의 멋들어진 기암과 군데군데 척박한 암반에 필사적인 노력으로 뿌리를 박은 노송들이 볼거리다. 왼쪽의 능선으로 붙어 등산로를 따라올라 첫 봉인 날카로운 바위를 넘어서면 바로 468봉인데 전망이 매우 좋다.
468봉에서 주변경관을 조망하다가 길을 재촉하여 신선봉으로 향한다. 가는 길 중 일부는 바위 길이어서 암반에 매져있는 튼튼한 밧줄을 이용해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바위 타는 재미가 솔솔하다. 평탄한 길도 좋지만 등산로 가운데 이런 짤막한 바위지대를 만나면 앞에서 안전을 확인하여 당겨주고 밀어주기도 하는 등산은 동지애가 생기고 협동심도 키워준다.
바위지대를 넘어보면 마치 큰 산의 암석 등반 같은 묘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일행들은 미륵산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전망바위에서 이편저편을 살피고 좌우를 전망해보는데 미륵산 등산에서 쉽게 느끼는 것은 바위로 형성된 암반과 그 틈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등이 어울려 이루는 경관이다.
일행이 당기고 밀어주고 하면서 바위지대를 지나 동쪽의 비탈로 조금 내려가 뒤를 되돌아보니 치마바위가 보인다. 큰 바위에 넓은 흰 치마를 펼쳐놓은 듯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거기서 3~4분 더 오르니 노송이 바위와 함께 어우러진 멋진 곳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신선봉이다. 그 이름처럼 여기에 올라 산천을 둘러보니 마치 신선이 다 된 듯 착각 속에 빠져든다.
정상에 서서 바라보니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대략 방향을 잡아 북동쪽을 보니 치악산맥이 보이고, 남서쪽 멀리로는 남한강 물줄기가 보이는데, 앞에서 설명한 경순왕의 애환이 담겨진 황산사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정봉에서 신선놀음을 잠시 하다가 휴식을 끝내고서 일행은 미륵산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등산을 진행하면서 미륵산에 관한 자료를 꺼내 본다. “원주시 남쪽, 충주시 소태면과 경계를 맞댄 귀래면의 미륵산(689m)은 비록 높지 않지만, 암봉과 암능으로 이루어져 있고, 황 산사 뒤에 우뚝 솟은 암벽에 부처님의 상반신이 새겨진 마애불이 있으므로 해서 미륵산이라고 불린다. 산세가 험하지는 않지만 정상 일대가 모두 기암괴석의 바위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고 적힌 안내문을 보면서 이곳저곳의 바위와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오르니 어느덧 미륵산에 한발 다가선 미륵봉이다.
미륵봉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15m 남짓한 마애불좌상으로 유명하여 전국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그 모습에서 폭이 넓은 큰 코에 입이 투박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토속성이 짙다. 현재 강원도 지역에서 암벽을 깎아 만든 마애불상은 매우 드물어 가치가 돋보인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부처님 코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득남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와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지만 그 위치가 높아 손이 도저히 닿을 수 없고 보면 직접 손으로 만지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빌어볼 뿐이다.
부근에는 신선이 놀았다는 병풍바위와 마당바위가 있는데, 역시 암벽과 소나무 등 자연 풍광이 멋지다. 미륵봉을 일컬어 `원주 8경`의 하나라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힘들게 올라온 김에 점심시간도 되어서 일행들은 미륵봉의 너른 바위 위에서 자리를 펴고 갖고 온 식사감으로 점심을 들었다. 변변치 않은 반찬이지만 산위에서 또한 등정하느라 땀을 흘리고서 맛보는 음식은 천하일미 맛이다. 이런 맛에 등산하는 것이 아니던가.
식사한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나서 일행은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미륵산을 향한다. 미륵봉 위에 세워진 치마바위는 2.5km, 헬기장 3.5km라는 나무 팻말을 잠시 본다. 여기서 미륵산 정상석이 있는 689봉까지는 1.3km로서 50분이 걸리고 등산로도 다소 힘든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마애불상을 보고 마음속의 소원을 빌었는지라 발걸음이 더욱 가뿐하다.
계속되는 정상 등정 등산로를 따라 바위지대를 넘고 행로를 진행하여 이윽고 미륵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 부근에서도 느꼈지만 미륵산 주위의 경관이 뛰어나다. 멋진 수석과도 같이 느껴지는 암봉이 12개나 치솟아 독특한 산세를 나타내면서 그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나 마치 곡예를 하듯 암반에 붙어있는 노송의 자태가 생명의 끈질김을 주면서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저렇게 바위와 소나무가 공생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산행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생각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행은 우리들 인생행로와 같다. 정상을 향해 오를 때는 이것저것 살펴보지 않고 급히 올랐다가 하산 때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또한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러한 인생길을 살피게 하는 것도 산을 타는 철학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봄이다가 갑자기 겨울로 변하는 날씨 속에서 계절의 공생은 시름까지 앓게 한다. 그래도 산은 언제나 늠름한 자세로 그곳에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