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호에 산 그림자 드리우면 수중매 활짝 피어나다
황매산!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다가 경남 합천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멈춰선 준봉이다. 경관이 빼어나서 `영남의 금강산` 또는 `작은 금강산` 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이 산은 산행지도나 관광지도에서 찾기 힘들 정도로 무명의 산이었는데,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되고부터 차츰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1997년 지역문화행사로 정상 밑 구릉지 평원에서 철쭉행사가 개최되면서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으며 이제는 가야산과 함께 합천을 대표하는 명산이 되었다.
경관 빼어나 `영남의 금강산` 불릴 만큼 아름다워소백산·지리산과 함께 철쭉 3대 군락지로 유명
이번 등산은 합천의 명산, 황매산으로 예정되어 있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24일까지 열일곱 번째 철쭉제가 열릴 계획으로 있다. 울긋불긋 철쭉이 빼어난 맵시를 자랑하는 황매산 일대는 소백산, 지리산 바래봉과 함께 철쭉 3대 군락지로 유명세를 떨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자랑하는 황매산에 관해 소개하면, 지난해 최근 2년간 등산인들이나 일반인들의 `가보고 싶은 산` 조회한 순위에서 우리나라 인기 명산 300개 가운데 11위를 차지하였다니 관심이 간다. 그만큼 황매산 전경은 소문나 있다.
황매산 등산 코스는 대략 6~7개 정도 나누어지는데 하루에 다 보기는 시간적으로 어렵다. 그 중에서도 필수적으로 포함하는 곳은 모악재와 철쭉 군락지, 그리고 황매산 정상인데, 어느 출발지이든 산 정상까지 오르려면 5시간에서 6시간이 소요된다. 그렇지만 오토캠핑주차장 등 산 중턱까지 차를 이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어 편리하다. 산행이 아닌 철쭉군락지를 탐방하는 관광인들은 오토캠핑장을 주로 이용하여 짧은 시간 내에 정상을 올랐다가 철쭉꽃의 장관을 구경하는 코스를 택한다.
오늘 우리 일행의 등산 코스는 대기마을에서 출발하여 누룩덤, 감암산을 지나 철쭉군락지를 둘러보고 모산재봉과 순결바위, 국사당을 거쳐 영암사, 황용사 옛 절터로 이어지는 코스다. 종주시간은 5시간이 소요되는데, 황매산 정봉은 오르지 않고 그 아래 철쭉군락지 평원에서 돌아오게 되는 일정이다.
일행은 9시반경 대기마을에서 첫 등산지인 누룩덤으로 향한다. 초입 길은 아스팔트로 된 농로를 따라 약 20분 정도 걸으니 나무숲이 나타난다. 평안한 마음으로 걷다보니 돌산 암벽이 나타나는데 암반을 타는 재미에 스릴이 가미되니 등산 맛이 느껴진다. 누룩덤은 누룩을 포개놓은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불러진 이름으로 암반의 모양이 정말 여러 개의 누룩을 겹쳐놓은 것 같은데, 암반이지만 위험한 코스는 아니다.
누룩덤을 조심조심 지나와서 828고지를 오르는데, 이곳 감암산 일대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갖가지 모양을 한 암반들이 각기의 모습으로 있어 신기하다. 바위틈을 뚫고 자라나는 소나무도 매력을 보면서 일행들은 감탄하면서 감암산의 기괴한 암반 모양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서는 828고지로 향한다. 828고지는 삼각지점으로 오른쪽으로 곧장 가면 천황재를 지나 황매산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감암산(834m) 정상이 나타나는데 철쭉 군락지와는 반대 방향에 있어 정상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가는 코스에 있는 천황재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삼거리 길이 나타난다. 바로 곧장 가면 황매산(1108m)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철쭉군락지로 들어서는 코스다. 오늘의 일정은 철쭉 군락지와 모악재가 중심이어서 황매산 정봉은 빠져 있다. 하루에 여러 코스를 택하다보니 아쉽긴 하지만 황매산 정봉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황매산 정상에서 서면 그 아래로 합천호가 자리잡고 있다. 합천호 푸른 물에 황매산의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호수에 잠기면 마치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하여 황매산의 별칭이 `수중매`라고 불리어진다. 언젠가 황매산에 다시 와서 그 정봉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호수 위에 피어난 수중매에 흠뻑 취해 보리라.
드디어 황매산 아래 펼쳐진 철쭉군락지에 도착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지만 중턱에 그냥 평원을 이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이곳은 목장이었다고 하는데, 방목한 소들이 온갖 풀들은 다 먹어 더 이상 자라지 못했지만 철쭉엔 독성이 있어 소들이 먹지 않아 주변으로 무성하게 번져났다. 그 이후 목장이 폐쇄되면서 넓은 초원에는 철쭉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의 한쪽에 자리 잡고서 일행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 점심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새벽에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식사를 하고난 뒤에 휴식 겸해서 이곳저곳을 관망했다. 봄볕 맞으며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철쭉을 멍하니 보고 있노라니 많은 인파 속에서도 갑자기 섬에 갇혀진 것 같은 적막한 기분이 몰려든다.
주변에서 일렁이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는 마치 넘실넘실 춤추는 꽃물결처럼 리드미컬하게 귓전을 울려나건만 필자의 마음은 한 없이 고요하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일주일동안 쌓인 피로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혼자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작은 기쁨을 맛보기 때문이다.
봄날 산위의 평원에서 몸을 던지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동화되는 기분은 때로는 필자를 들뜨게 만든다. 며칠 있으면 전개될 이곳의 철쭉꽃 무리들의 장관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자연의 풍광처럼 맑고 밝은 생각에 정신이 아늑해진다.
잠시 무릉도원에 빠졌다가 일행이 다시 갈 길을 재촉하여 모산재로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한 참 길을 걸어도 산 중턱 평원에는 철쭉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여 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모산재에 이르러 다시 소나무 숲길을 타고 힘들게 걷다보니 어느덧 모산재에 도착했다.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바위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령스런 바위산`이란 뜻으로 영암산으로 불리어지는 모산재는 합천팔경 가운데 하나다. 주능선은 넓은 평지를 이루고 숲도 우거져 있어 기념사진을 찍기도 안성맞춤인 곳인데, 필자도 모산재(767m) 정봉에서 이번 등산을 기념하는 인증샷을 남겼다.
모산재에서 하산하는 코스는 암벽돌 사이로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 많은데, 일행들은 조심조심 바위를 타고 내려와 그 다음 코스인 순결바위에 닿았다. 바위 이름에서 말해주듯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바위틈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등산객들은 호기심을 갖고 그 틈을 지나는데 오늘 보니 모든 사람이 빠져 나왔으니 산에 온 사람들의 자연에 동화돼서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순결한가 보다.
등산을 하다보면 지역마다 특정 장소에 역사나 전설이 많다. 재미있게 꾸며낸 말도 있겠지만 그 사연들은 등산인들에게 활기를 주니 등산의 또 다른 맛이다. 국사당에 이르러 설명 들으니 합천 황매산의 국사당은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등극을 위하여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라 한다. 그 시절 이후 지방관찰사로 하여금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했는데, 지금도 음력 3월 3일에는 이 지역 주민이 나라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고 알려준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영암사이다. 본래 고려시대 영암사 절터가 있던 곳으로 그 연혁이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현존하는 유물들로 보아 경남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유서 깊은 대찰로 짐작된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탁본으로 남아 전하는 `적연국사자광탑비`(1023년 건립)의 비문을 통하여 이곳에 영암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영암사로 내려와서는 황룡사 절터를 지나 15분 걸으니 종착지점인 모악재 주차장으로 오늘 산행을 모두 마쳤다. 화창한 봄날이라 날씨마저 좋고, 특히 웅장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누룩덤, 감암산, 모산재 등은 초보 등산인들에게는 난코스이지만, 코스가 길지 않고 스릴도 있다.
한편으로는 암반과 소나무의 조화로운 모습에 재미를 붙인 황매산 등산이었는데, 곧 여기에서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한편으로 사회적 직위나 명예, 권력에 편들지 않고 어떠한 신분을 가진 사람도 똑같은 지역을 산행해야 하는 시간상, 지역상의 공정함이 있어 좋다. 그리고 힘든 구간이 있어도 스스로 견디면서 일행들과 화합하며 일구는 마음 나눔이다. 비지땀을 흘리고 다다른 정봉에서 맛보는 상쾌함 등은 지나온 등정이나 일상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하는 등산의 참 맛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주말이 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