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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운제산 `오어사`

등록일 2013-06-07 00:03 게재일 2013-06-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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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 호젓한 천년고찰 신비감 자아내
▲ 운제산에 오르는 숲길은 비가 내렸어도 평탄해 힘들지 않았다.
▲ 신라시대 오어사에서 수행하던 원효대사가 운제산 구름을 타고 자장암을 건너다녔다는 전설이 있는 운제산의 오어사 힐링 길 운무가 내려깔리면 신비감이 감돈다. 사진은 자장암 모습.

주말 비 소식은 내심 걱정이다. 늦봄에 오는 비가 강수량이 많겠나마는 혹시라도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게 되면 등산에 장애가 되니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주말에 큰 비가 없어 계획대로 등산을 다녀왔지만 아무래도 날씨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이번 주말엔 비가 조금 온다는 기상예보를 듣고서 비가 오더라도 등산이 가능한 가까운 곳을 선택한 곳이 바로 포항 운제산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운제산보다 오어사로 이름이 난 곳이다.

숲길 평탄해 비가 와도 등산 가능

자장율사·원효대사 등 고승의 자취 남아

절벽위 자장암, 주차장서 20분 거리

▲ 신라시대 오어사에서 수행하던 원효대사가 운제산 구름을 타고 자장암을 건너다녔다는 전설이 있는 운제산의 오어사 힐링 길 운무가 내려깔리면 신비감이 감돈다. 사진은 자장암 모습. 사진 아래는 오어사입구.
▲오어사입구.

비 오는 날의 등산이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는 하다. 분명히 맑은 날의 행차보다는 산뜻하지 못하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차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또한 가며오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들어 이외의 수확을 얻는 경우가 있다.

등산 애호가라도 주말에 비가 오면 하루쯤은 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비속의 산행처럼 좋게 생각하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라 할 테고, 또 어쩌면 등산에 푹 빠져버린 등산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차량은 오어사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15분이다. 비 오는 날씨라 운제산 정상 등산보다는 오어사 힐링 누리길을 중심으로 하여 일정을 정했다. 등산 코스는 풀코스보다는 오어사- 오어지뚝길- 헬기장- 대헬기장- 원효암- 오어사- 자장암을 지나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운제산을 찾는 산악인들은 대체적으로 오어사에서 422봉 헬기장을 거쳐 시루봉(502m)에 올랐다가 운제산 정상(482m)에서 깔딱고개를 넘어 자장암을 둘러보고 오어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하는데, 약 14.3km에 5시간 소요된다. 그러나 일반관광객들은 오어사를 둘러보고 주변의 힐링 길을 조금 걷는데, 1시간 남짓 시간을 내어 둘러보는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일행은 첫 목적지인 오어사에 들렀다. 앞에는 호수가 있고, 뒤편엔 산이 받쳐주고 있는 오어사 경내를 잠시 둘러본다. 오늘처럼 안개가 끼고 또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서 그런지 오어사 경내와 주변이 조용하다. 자장율사나 원효대사 등 고승의 자취가 남아 있는 천년 고찰인데다가 비가 간간히 뿌리는 날씨다 보니 호젓한 고찰이 안개 속에서 신비감에 묻혀있다.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년)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사찰의 본래 이름은 항하사라 한다. 항하(恒河)는 인도의 갠지스 강을 한자식 발음이라고 하는데, 갠지스 강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다`는 뜻이다.

사찰이 있는 이곳의 항사리라는 지명도 당(唐)나라에 건너가 8년간 도를 닦은 자장율사가 본 따서 지은 지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사사가 오어사로 바뀐 내력이 대웅전 앞의 안내 팻말에 담겨져 있다. “신라십성(新羅十聖)으로 숭상되는 혜공(惠空)스님과 원효스님이 서로의 신통력(法力)을 겨루어 보기로 하고, 죽어가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법력으로 살리는 시합을 하였다. 그런데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힘차게 상류로 헤엄쳐 가는 것이었다. 두 스님은 헤엄치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서로 `내 고기야` 라고 했다. 그래서 절 이름을 `내 고기` 라는 뜻으로 `나 오(吾), 고기 어(魚)`를 따서 오어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항하사는 오어사로 이름이 바뀌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오어사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실오라기 같은 풀뿌리를 소재로 하여 짠 보기 드문 이 삿갓은 높이가 1척이고 지름은 약 1.5척이다. 뒷부분은 삭아 온전한 형상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절을 찾는 관람객들이 원효대사의 삿갓을 보고는 그 정교하게 만들어짐에 놀랄만하다.

▲ 운제산에 오르는 숲길은 비가 내렸어도 평탄해 힘들지 않았다.

천년고찰을 둘러보고 일행들은 비옷을 입고 오어지 뚝 길을 지나 다음 코스인 운제산 기슭 쪽으로 향한다. 13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예나지금이나 한결같이 맑은 물을 담고 있는 오어지는 안개가 끼어 흐릿한데, 빗방울이 호수 위에 수채화처럼 흩어지고 있다.

소리 없이 오는 봄비가 호수에 떨어지면서 마치 은빛 비단깁의 잔물결을 수놓고 있는 모습이 멋져 보이며 비속에서도 꽤나 마음의 위안을 준다. 일행 없이 혼자서 왔더라면 안개에 싸인 오어지의 멋진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으면서 사색도 했으리라.

운제산에 오르는 숲길은 비가 내렸어도 평탄하여 힘들지 않았다. 산 중턱 또는 정상 가까운 곳에 닦아놓은 헬기장에서 조금 쉬다가 계속 산행을 한다. 포항이라 하면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어 유명한 곳인데, 산 위에 만든 헬기장도 비상시 사용하는 군사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해병전우회에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입간판들이 자주 눈에 띈다.

헬기장과 대헬기장을 지나서 중턱에서 조금 휴식을 취한 다음,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원효암에 도착했다. 이 고찰은 오어사의 부속 암자로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효암 중건기에 따르면, 오어사에 수행하던 원효대사는 이 암자에 거처하면서 운제산의 구름을 타고 자장암을 건너다니면서 혜공대사와 교유하였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원효암을 보고 다시 내려오면 초입의 오어사다. 처음 도착했을 때와 마지막에 도착했을 무렵에 바라보는 오어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사찰은 그대로 이건만 등산을 하고난 뒤의 마음이 편안해진 까닭에서이리라. 줄곧 오어사를 중심으로 하여 운제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였는데 힘든 코스는 아니었지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끝났다는 안도감에서다.

오어사에서 바라다보면 산 위에 자장암이 보인다. 마치 나무 숲 위에 자리를 튼 새 둥지 같다. 자장암은 오어사의 산내 암자로 자장율사와 의상조사가 수도할 때 오어사와 함께 창건된 암자라 한다. 주차장에서 약 200m 거리에 있는 암자까지 오르는 데는 20분 정도면 넉넉하다.

오늘 일정이 힘든 코스가 아니라서 비축된 힘으로 쉽게 올랐지만 깎아 자른 절벽위에 자리한 자장암을 보면 누가 이곳에 만든 것인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마지막 코스인 자장암 경내에서 잠시 이번 등산에서 느낀 점을 정리해본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 등산을 하다보면 청승맞은 기분이 들면서 쾌청한 날의 등산이 그립기 마련이지만 생각을 바꾸면 한없는 여유로움이 마음에 몰려온다. 오늘처럼 조금씩 오는 비에 등산코스도 힘든 산악길이 아니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오어사의 힐링 길은 일상에 찌든 잡생각을 자연 치유하는데 알맞은 좋은 힐링 코스다.

오늘 오른 운제산은 신라시대 사성(四聖)이라 불리는 자장율사, 의상대사, 원효대사, 혜공대사가 수도하였다는 곳이다. 험준한 묏봉 아래 원효암과 자장암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던 고승들이 늘 구름을 사다리 삼아 서로 왕래하였다고 하여 산 이름을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자를 써서 운제산(雲梯山)이라 했다. `구름사다리 산`이란 뜻이 아닌가.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그처럼 비오는 날에 어렵사니 등산을 결정한 등산 일행들과 함께한 필자는 운제산의 명칭 유래에서 보듯이 이번 산행에서 신선이 되어 구름사다리를 타고서 산의 정상과 계곡을 다녀온 기분이다. 봄비 소리 없이 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신록의 봄 산과 호수, 그리고 고승들이 수도한 사찰을 둘러본 이번 오어사 힐링 길, 안개마저 엷게 끼어 신비감을 더해주는 그 환상적인 코스를 돌면서 마음에 느껴지는 그 멋과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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