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 금빛날개 은백색 눈꽃세상 위를 거닐다
금오산은 대구, 경북지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산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금오산에는 영남지방을 지키는 국방의 요충지였던 금오산성이 있고, 고려 말 충신이며 삼은의 한 분인 야은 길재선생을 기리는 채미정이 공원사무소 가까이 있다.
또한 구미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다. 금오산 일대는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는데 고 박 대통령이 1977년 대혜폭포 주변을 청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다.
관리소 출발-대혜폭포-정상-약사암 코스 왕복 8km 소요높이 38m 대혜폭포, 겨울철 얼어붙은 모습 멋진 장면 연출
겨울 등산에서는 날씨의 변화가 심해 기상예보 등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지난 2일의 산행에서 겨울 설산 풍경을 보기 위해 눈이 많이 내린다는 함양 남덕유산을 찾았으나 봄날 같은 날씨로 응달에서 잔설을 보았을 뿐 설경은 구경하지 못해 다소 실망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올 겨울 날씨가 따뜻해 더 이상 설경 산행을 하지 못할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강원도와 동해안에 대설특보가 내리고 닷새째 계속 눈이 내렸다.
이같이 겨울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는 가운데 이번 정기등산은 산악동호회나 단체 산행을 하지 않고 조용히 다녀오는 개별등산을 하기로 작정했다. 시간이 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금오산 등산을 하기로 오래전부터 지인들과 약속했던바 그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평상시 등산 일정보다는 시간상에서 다소 느긋한 편이다. 그래서 필자는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구미역에서 내려 미리 등산하기로 약속한 팀들과 만나 금오산도립공원으로 향했다.
금오산 공원관리소로 가는 입구 양쪽 편에 서 있는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멋있다. 특히 봄철이면 입구에는 벚꽃 터널이 장관을 이루며 곁에 있는 금오산 저수지 풍경과 조화를 이루니 봄에 금오산 등산을 권한다.
구미의 명산 금오산!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자주 찾지 못했던 산이다. 그러나 평소에 오고 싶었던 그리운 산을 필자가 본격 등산을 한지 3년이 돼서야 금오산 등반길에 오른다. 오전 9시 40분경 등산로 들머리인 관리사무소 앞에 도착해 등산로 안내판을 잠시 살펴본다.
금오산 등산은 4개의 코스가 있다. 그 가운데 1코스를 제외한 2코스, 3코스, 4코스 등산로는 매년 11월1일부터 다음해 5월31일까지 입산이 통제된다.
따라서 겨울 등산은 관리소를 출발해 대혜폭포, 내성을 지나 금오산 정상에 올랐다가 그 옆의 약사암을 보고 다시 내려오는 1코스는 단순하다. 왕복 8km의 거리이기는 하나 이곳에 등산해본 사람들은 힘든 산이라 한다.
지인 몇 명과 함께 천천히 산을 오른다. 멀리 또는 가까이 보이는 산이나 나뭇가지에 하얀 눈의 축복이 내려 있다. 관리소에서 출발해 10분정도 가니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오고, 그곳을 곧장 지나가니 출발한지 30분 정도 걸려 대혜폭포에 이른다.
일명 명금폭포라 불리는 이 폭포는 높이가 38m로 비교적 높은데, 며칠 전 내린 눈과 추위로 인해 폭포물이 얼어있는 모습이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폭포에서 직진하면 칼다봉에 오르는 길인데 겨울철은 통제된다. 일행들은 왼쪽 길로 들어서니 등산길을 오르기 쉽게 나무테크로 만든 계단이 위로 길게 이어져 있다. 계단은 원래 오르기 쉽도록 만든 것이지만 연속해서 계단을 오르다보니 어떤 때는 더 힘든 경우가 있다.
계속 이어지는 나무테크를 15분정도 오르니 가파른 계단은 끝이 나고 그 위 언덕에서 잠시 쉰다. 고개이름이 할딱고개인데, 이름만큼이나 힘든다는 곳이다. 곁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금오산 정상과 약사암까지는 1.4km로 나와 있다. 잠시 쉬고 나서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눈에 젖은 흙길이 나타나는데 정상적인 등산로가 이어진다.
등산로 길가에 눈이 내려 온통 하얀 모습은 겨울 등산의 맛을 내게 한다. 눈 덮인 길을 조심조심 오르면서 좌우 숲과 산을 둘러보기도 한다. 눈꽃을 배경으로 멀리 금오저수지와 시가지가 흐릿하게 나타나는데 풍경이 아름답다.
할딱고개에서 정상을 향해 40분 정도 걸으니 철탑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 성터를 우회해 40분정도 올라 일행은 드디어 흰 눈 속에 모습을 드러낸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에 도착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으로 고려 때에 남숭산이라 불려졌다. 그 유래는 중국 황하강 유역 허난성에 있는 명산, 숭산의 생김새와 흡사해 `숭산`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황해도 해주에 있는 북숭산과 구별해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한다.
굳이 숭배한다는 뜻의 `숭(嵩)`자를 붙인 것은 금오산의 위용이 비범하다는 것이고, 골짜기마다 남성적인 기상이 넘치는 기암괴석으로 기백이 서려 있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어 옛 선현들은 이곳을 `소금강`이라고 불렀다.
구미 금오산은 이 지역 사람들이 최고의 명산으로 부르며 자부하고 있으며, 소문이 나서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산이다. 금오산에 대해 사정을 잘 아는 이 지역 사람들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보인다고도 한다.
또한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습 같아 보인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 발 달린 황금빛 까마귀가 저녁노을 속에 금빛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과 닮아 `금오산`이라 하는데, 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서로운 까마귀, 곧 `삼족오`의 산이라는 설명도 한다.
필자가 전국의 여러 산에 올랐지만 이번에 구미 금오산을 등산해보니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장관의 산이요, 또 산세는 명산으로서 기품이 있는 금오산임에는 수긍이 간다.
그리고 산의 모습에서 사람이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모습은 평소에도 이 지역을 다니면서 보아온 터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현월봉(976m)에 서서 잠시 주변을 조망해본다. 산마다 눈으로 뒤덮인 풍치는 정말 멋있다. 지역적 특성으로 눈이 자주 내리지 않는 구미에서, 그것도 자연의 은혜를 받아 흰 눈으로 풍성하게 쌓인 명산 금오산의 기상을 보고 멀리 시가지를 보고 있자니 특별한 생각이 든다.
때를 맞추어 금오산을 잘 선택했다는 자부심이다. 2월의 금오산에 올라 설경을 오랫동안 보고 있자니 이 땅이 마치 자연의 축복을 가득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기에 산에서 느끼는 온갖 정취가 마음 가득히 묻어나 슬그머니 시상이 떠오른다.
`먼 곳을 바라보며/ 찾아 헤매던 설경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자연의 축복을 받아/ 금오산은 온통/ 백설의 왕국이 되었다.// 푸른 솔잎 위에도/ 숲속이 눈밭이 되고/ 은혜로 빛나는 산행 길은/ 곳곳마다 신비가 가득하다./ 그토록 바라던 보물을/ 찾은 기분이 이러하랴!/ 2월의 금오산 설경이다`(자작시, `2월의 금오산 설경`전문)
산 정상 설원에서는 미리 도착한 등산객들이 좋아라 소리치고 있고, 사진을 찍거나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다. 필자도 이곳에서 함께 동행한 지인들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면서 설경의 풍경을 입에 담는다.
흰 눈 덮인 산 위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정리를 하고선 일행들은 금오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는 약사암 쪽으로 하산을 한다. 눈길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약사암에 다다랐다.
필자는 사찰에 도착해 신발과 등산 장비를 벗고서 마음을 정갈히 하고선 법당에서 가족사랑과 올해에도 화목하고 일이 잘 풀리도록 기원했다. 또한 아는 모든 사람의 무운도 함께 빌고나서 바깥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어떻게 이 좋은 자리에 터를 잡고서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또 바위위에 암자를 지었는지 옛 사람들의 기술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약사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또는 고려 때 의상대사가 금오산 최고봉인 현월봉에 올라 얼마간의 수도를 마치고 당시 움막을 정리하고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사찰 내부에는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현재 건물 모양은 1985년에 중건됐다고 한다.
일행은 약사암 끝 부근의 정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정자까지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평상시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비록 정자에는 못 올랐으나 입구에서 보는 풍경은 마찬가지일 테고, 더욱이 설경이 함께해주었으니 한없이 기쁜 마음이다.
산행이 끝나고 다시 대구로 오는 열차안에서 회상해본다. 이번 금오산 산행에서 받은 느낌은 무엇보다 지난번 설경을 기대하고 올랐던 함양의 남덕유산 몫까지 보상받은 기분이다. 한번 기대한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니 그래서 자연이 주는 기회는 공평하다는 깨달음의 이번 금오산 설경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