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사찰풍경 마음에 담으면 잊고 지냈던 여유가
매주 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산에 오르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등산가라고 말한다. 등산가라! 아마추어 등산가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말이 좋다.
등산가는 직업군으로 분류되는 직업이 아니지만 사회생활에서 붙여지는 온갖 이름 가운데 떳떳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등산가가 될 수 있으니, 그 이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나 보고 등산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등산 채비를 하면서 등산가에 관하여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쨌든 등산하는 기분도 좋고 더욱이 등산가라 불림은 내게는 반가운 호칭이 아닌가.
이번 등산은 문인들과 함께 가는 트레킹 코스다. 그래서 거리도 멀지 않고 오르기 쉬우며 머리도 식힐 겸 해서 경북 문경 산북면에 소재한 사불산(四佛山)으로 정하였다.
여기는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은 사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정상 포함 약 5km거리, 천천히 둘러보아도 3시간이면 충분신라 진평왕 창건 대승사 금동보살좌상·사불암 사면불 볼거리
사불산을 가려면 일단 문경으로 가서, 충북 단양 쪽으로 가다보면 나타나는 산인데 산세도 그리 험하지 않아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는 등산이다. 문경은 문경새재로 유명한 곳이고, 오래전 TV드라마에서 왕건이 방영될 때에 세트장을 만들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갔던 곳이다.
또한 문경시에 따르면, 등산 코스로 4대 명산을 자랑하고 있다. 문경새재가 있는 진산인 주흘산(1천106m)과 `하늘 받침대`라 부르는 천주봉(836m)과 백화산(1천63.5m), 그리고 백두대간에 있는 조령산(1천26m)인데 어지간한 등산인들은 한 두 번씩은 오른 산 이름이다.
새벽길을 나선 차는 문경에 들어서고, 마침내 대승사 쪽의 삼거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 밑의 풍경은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로 조용한 편이다.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빠서 그렇지 언제나 산이야 제 자리에 그대로 있고 산 계곡의 물은 다만 고요히 흐를 뿐이다.
이번 등산은 특색은 산 정상 한 곳을 오르는 것이고, 사불산 일대에 사찰이 있어서 둘러보는 일정으로 자연과 더불어 머릿속의 복잡한 잡념을 씻는 데는 안성맞춤의 코스인 것 같다. 개인의 종교나 사상에 관한 선호 편향을 버리고 자연의 산과 그 산속에 있는 고찰의 풍경을 마음에 담으면 되는 오늘의 등산이요, 트레킹 코스니 마음이 더욱 편안해진다.
주차장의 안내판 앞에서 오늘 등정 코스를 안내받는다. 묘적암을 먼저보고 대승사에서 점심·휴식을 갖고, 윤필암, 사불암, 마애여래상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코스다. 통상적인 등산코스는 사불산 정상을 포함하여 총 거리는 약 5km이고, 천천히 둘러보아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묘적암을 향하는 초입 길에 도로포장이 잘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소나무가 곧게 서 있는 사이 흙길을 지나면 묘적암이다. 사불산 자락에 자리한 이 암자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말의 나옹선사가 출가하여 수행하였던 곳이다.
묘적암은 작은 바위 동산 밑에 자리 잡은 비구니스님 도량으로, 고요함이 풍겨나는 암자다. 뜰에 피어나 있는 꽃이나 나무에서도 한적하면서도 아늑한 풍취를 나타내고 있다. 묘적암의 정적인 풍경을 정리하리하고 난뒤에 사이 길을 이용하여 대승사에 당도했다. 신라 진평왕 9년(587)에 창건된 대승사는 역시 아늑한 절이다. 이곳에는 금동보살좌상 등 보물 3점이 있다.
이 절이 옛 부터 유명하였음은 신라 이래로 원효·의상·나옹·무학 등의 고승이 수행한 곳이었고, 현대에서는 청담, 성철 큰스님이 수행한 곳이어서 그렇다. 성철 큰 스님은 이곳 대승사에서 장좌불와(눕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 3년을 수행했다고 알려진다.
비록 이번에 문인들과 함께한 등산 트레이닝 코스가 사불산이고, 불교 색채가 강한 곳이기는 하다. 그러나 옛 고승들과 성철 스님의 행적들을 더듬어보면서 사색함은 비단 불교도에게만 아니라 만인에게 `자연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함을 알려주는 성찰의 가르침인 것이다.
대승사에서 일행들은 뷔페식으로 점심 공양을 했다. 본래 공양의 뜻은 `불교에서 시주할 물건을 올리는 의식`을 말함인데,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식사를 하는 것을 `공양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때의 공양은 누군가가 공양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상기시켜서, 은혜베품을 잊지 않게 하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공양을 마친 일행들은 경내를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조그만 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은 옛 선인들의 지혜와 자취나 묻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윤필암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조금 험한 등산로 길에서 돌로 만들어진 계단의 오밀조밀한 모양이 예사 등산길의 돌계단이나 나무계단과는 색다른 면이 있다. 초여름에 피어나는 싸리 꽃이 매무새를 자랑하는 길을 올라 윤필암에 다다랐다.
이 절은 고려 우왕 때 창건된 절이며, 지금은 중건하여 비구니스님의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윤필암의 이름이 특이하게 느껴져 그 내력을 알아보니 신라 때의 고승 의상대사(625~702)가 사불산 아래서 수행할 때에 그의 의복 동생인 윤필이 이곳에서 머물렀다하여 윤필암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다시 길을 나서서 사불암에 오른다. 조금 높은 지대고 바위가 있어 조심조심 올라 당도했다. 사불암이라 하니 마치 사찰처럼 들려지는데, 필자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위 이름이다. 산위에 바위가 특이한 모양으로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바위 사면에 부처님 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사면불이라 한다. 이곳의 사면불은 신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 유래가 삼국유사 권3 탑상4 사불산굴불산만불산(四佛山掘佛山萬佛産)조)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며, “죽령(竹嶺) 동쪽 100리가량 되는 곳에 높이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9년 갑신에 홀연히 사면방장의 한 큰 돌에 사방여래를 새기고 홍사(紅紗)로 싼 것이 하늘에서 그 산 꼭대기에 떨어졌다. 왕이 듣고 거기에 가서 쳐다보고 공경히 예를 다한 후 드디어 그 돌 옆에 절을 창건하고 액호를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이 지역이 신라와 백제가 영토분쟁을 하던 지역으로 이곳이 신라의 영토임을 종교의 힘으로 알리려는 호국적 측면이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이 보기도 한다.
사불암 옆의 잘 생긴 소나무와 사불암을 배경삼아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여기서 계획을 바꾸어 사불산 정상에는 오르지 않고 하산 길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일정을 끝내기로 하였다. 참고로 사불산은 공덕산으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산 중턱에 있는 사불암이 있다 하여 사불산이라고 한다. 정상 높이는 912m로 주위 경관이 빼어나지만 산 아래 사찰이 불교선원이 자리하여 조용한 편인데다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찾는 등산객이 드문 곳이다.
사불암에서 조금 내려오다보니 큰 바위가 나타났다. 그 바위에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이다. 불상 높이는 약 6m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눈, 귀, 입의 윤곽이 뚜렷하다. 불상 조성시기가 고려시대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곳에 미륵암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미륵불로 조성되었을 거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차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 쪽으로 나오는 일주문 길가에 작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다. 사불산 기슭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린 물이 하나의 인연이 되어 또 다시 세월의 물레방아를 돌린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의 무한함과 인생의 유한함이 교차되는 가운데 필자는 사불산 그늘에서 전해져오는 자연의 영원함을 마음에 담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자연의 힘은 자연 스스로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보아도 산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필자는 산에 오르면서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꼭대기에 오르고 나서 그 산의 정상을 정복했다는 말을 감히 쓰지 않는다.
내가 산에 오름은 스스로의 의지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위대한 힘에, 산의 늠연한 자세에 내가 이끌려가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서 잠시 등산가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인데, 필자가 이미 등산에 맛 들어져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하여 산에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어설픈 아마추어 등산가라 자칭하여도 더할 수 없이 산이 있어 고마운 것이다.
특히 이번 등산은 한 달에 한 번씩 동행하는 문인들과의 산행 트레킹으로, 자연의 산을 대하면서 또는 가고 오면서 도란도란 지핀 대화들은 일상에서도 의미가 깊다. 그래서 감히 이번 등산 글의 끄트머리에서 이탈리아의 산악인 리카르도 카신(1909~2009)의 명언을 인용해본다.
“등산가는 배꾼이나 시인처럼 선천적인 것이다. 만약 등산가가 될 팔자를 타고 났다면 언젠가는 어쩔 수 없는 힘으로 산에 끌려가리라”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