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곳곳 가득한 불상… 천년 노천 박물관을 걷다
중부지방엔 눈이 많이 내렸고, 영남지방에도 대구를 비롯한 일부지역에 첫눈이 내렸다. 시기로는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혹한의 날씨가 아니니 초겨울 등산엔 별 어려움이 없다.
낮 시간이 짧아진데다가 또 산천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어오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 등산인들은 재킷과 등산장비 등에서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이때부터는 함께 가는 사람들의 준비물을 서로가 챙기고 확인해주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진다.
이번 등산은 경주의 남산이다. 경주라 하면 신라천년의 고도이니만큼 볼거리가 많고 가볼만한 산도 여럿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충청도나 전라도 또는 수도권 지방에 소재한 산들을 가느라 영남권, 특히 경북권에 있는 산은 후 순위로 미루어놓은 탓인지 갈 기회가 적었다. 앞으로는 짧은 시간이나 틈새 시간을 이용해 가급적 많이 다녀와서 홍보할 계획이다.
해발500m로 40여개 계곡·수많은 문화재 간직하고 있어
바위에 조각된 불상 옛 석공들 조각 솜씨에 감탄사 절로
경주까지 가는 교통시간이 짧다보니 다른 지역보다는 새벽시간에 다소 여유가 있다. 이번 산행의 출발지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리니 새벽부터 무리할 것은 없지만 언제나 산행계획이 있는 당일의 새벽은 나에게는 분주하다.
약속장소에서 일행을 태운 드림산악회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경주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서 외곽지 길로 달린다. 경주는 눈에 익은 도시다. 필자의 고향 영덕이나 포항에서 대구로 오는 길목에 있으니 고향을 다녀오거나 출장길에 으레 경주를 지나다니게 되니 오늘 산행에 있어서도 마음이 편하다.
경주가 992년간 신라의 수도로 자리 잡았고, 또 현대에 들어서는 많은 문화유산으로 인해 전국 중고생들에게는 필수적인 수학여행지로 인정을 받다보니 웬만해서는 경주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새삼스럽게 경주를 소개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국민이나 독자들은 신라 고도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신라는 경주평야에 있던 여섯 부족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건국된 나라다. 22대 지증왕대에 국호를 신라라 칭했고, 23대 법흥왕대에는 불교를 공인해 찬란한 불교문화의 막을 올렸으며, 676년에는 삼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해 통일국가를 이루었으니 문화유적들이 많은 곳이다.
그런 만큼 오늘 산행코스인 남산에는 마애불과 함께 신라 유적들이 많은 곳으로 등산이라기보다는 역사를 배우는 계기로 심신을 수련하는 의미에서 나선 남산여행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 차는 등산 들머리인 용장3리 틈수골에 도착했다. 남산은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468m)과 고위산(494m) 두 봉우리를 비롯해 도당산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발 500m 이내인 산이 그리 높지 않고 야트막한 편이지만, 산의 동서로 가로지른 길이가 약 4km, 남북의 거리는 약 8km에 달하면서 40여개의 계곡이 있다. 또 이곳 산자락 곳곳에서는 수많은 불적이 산재돼 있고,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남산 일원은 사적 제311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남산을 오르내리기여서 산행 코스로는 단순하다. 삼릉에서 시작해 금오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구간도 있고, 금오산에서 곧장 고위산으로 가서 틈수골로 내려오는 코스 등이 있다. 우리 일생들은 그 반대쪽 코스를 택했다.
틈수골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고위산을 거쳐 칠불암에 들렀다가 이영재를 넘어 금오산에 오르고 상사바위를 경유하여 삼릉으로 나오는 코스다.
오전 10시경 일행들은 산행대장으로부터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천천히 산을 오른다. 첫 번째 목표지점은 고위산이다. 틈수골은 시골의 작은 마을인데 행정구역명으로는 용장3리다. 이름이 특이해 물어보니 청룡사가 있는 골짜기에서 흐르는 여울물이 돌틈을 통해 항상 마르지 않는다고 해서`틈수골`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물이 있어 물수(水)자 수동이라고도 한다,
틈수골을 지나 와룡사 입구를 지나니 등산로 길이 조금은 가파르게 나타난다. 와룡사 절은 고위산으로 오르는 산 길가에 있는데 보기에도 초라하고 작은 암자이지만 느낌으로는 가장 조용하고 맑은 암자처럼 생각된다.
작은 다리를 건너가니 천룡사지 팻말이 나타나고 3층석탑이 눈에 띤다. 지금은 사라진 절이지만 신라시대 그때에는 제법 큰 사찰이었음이 삼층석탑이나 돌 등에서 나타나 보인다. 천룡사지를 지나 고위산으로 오르다보니 중간쯤에서 갇힌 솔숲들이 걷어지고 시계가 확 트인다.
여기서부터 일부 등산길은 큰 암릉을 넘어가야 하는 관계로 일행들은 주의를 하면서 걷는다. 이윽고 일행들은 고위산 정상에 올랐는데, 고위산은 그 높이가 495m로 남산 남쪽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일행들은 고위산에서 전망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오늘 산행 코스가 비교적 길다보니 드림산악회에서는 중간도착지마다 10분정도 휴식시간을 계획했다. 그 시간 내에 개인적인 용무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해야 한다.
산행에 그리 나쁜 날씨는 아니었지만 정상에 올라서니 바람이 많이 불어 꽤 쌀쌀하다는 느낌이 온다. 다시 하산하여 칠불암 쪽을 향한다. 고위산에서 좌측 암릉지대 능선을 이용하여 금오산으로 가는 산행코스가 있지만 우리 일행들은 칠불암을 가기 위해 직진 산행을 한다.
이윽고 칠불암에 도착했다. 암반 위에 자리 잡은 이 사찰은 역시 조용한 느낌을 준다. 사찰 오른쪽으로는 바윗덩어리 암지대로 형성돼 있고, 뒤쪽으로는 소나무 숲이다. 한 눈에 봐도 좋은 풍광이다. 칠선암 위쪽 바위에는 불상군이 조성돼 있는데, 일곱 불상을 조각한 관계로 칠불암마애불상이라 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조각이 뚜렷하다.
다시 등산길을 되돌아 나와서 봉화대 능선을 타고 이영대로 향한다. 이영대 능선 너머로 금오산이 보인다. 한참 가다보니 세 갈래길이 나오는데 용장골로 내려서는 삼거리다. 일행이 지나온 고위산에서 금오산 사이에 큰 골짜기가 바로 용장골이고, 이 골짜기에 용장사지가 있다.
지금은 없는 절이지만 용장사가 유명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단편소설집인 `금오신화` 로 인해서다.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이 용장사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장사지 동쪽 높은 바위에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용장골삼층석탑이 우뚝 솟아나 오가는 길손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영대를 지나고 대연화대를 지나 조금 오르니 드디어 금오산이다. 많은 사람들은 금오산이라 하면 경북 구미에 있는 금오산을 생각하는데 경주 남산의 옛 이름이 바로 금오산이다. 그러니만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수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에서 나오는 `….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 위에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에서 나오는 금오산은 경주의 남산을 말하는 것이다.
금오산정상에서 우리 일행들은 주변을 조망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점심식사 겸 휴식시간을 가졌다. 산 위에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고 마치 겨울의 한 복판에 선 추운 날씨처럼 느껴져 일부 일행들은 손을 부비고 몸을 움츠렸다. 식사를 끝내고서 바로 산을 내려왔다.
한참 내려오다가 보니 상사바위가 나타난다. 상사바위는 말 그대로 청춘남녀 간의 연모와 관련된 이야기로 전국 각지에서 그런 바위는 많다. 남산의 상사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특이하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그리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 바위로 변했고, 그 할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겨 어린 소녀 피리가 그 바위에서 뛰어내려 또한 바위가 되어 할아버지 바위 옆에 서 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불쌍히 여겨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상선암을 지나 삼릉으로 내려오는 곳은 군데군데 암릉지대로 여기에는 남산의 7대보물인 삼릉계곡선각육존불, 선각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등 바위에 조각된 불상들이 많다. 하나하나가 다른 형상이고 옛 석공들의 조각 솜씨에 감탄사가 나온다. 남산 전체가 노천 박물관인 것이다.
`경주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번 드림산악회에서 가진 경주 남산 코스는 등산뿐만 아니라 자연사랑과 함께 문화재 사랑의 귀한 교훈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고 멋진 감동의 시간을 내게 가져다 줬다.
그 감동의 시간에 더해 또 하나 기쁜 일은 예부터 남산은 신라 사령지중 한 곳으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남산의 밝은 기운을 받고 왔으니 그 영향을 이어 산을 사랑하는 모든 산악인들과 본지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필자의 마음이 간절해서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