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재약산 수미봉
여름 등산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 빗속에서 하게 되거나 무더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여름 이 시기의 등산은 자칫하면 호우 등으로 사고가 우려되어 조심스러운데, 본격 등산이라기보다는 산행 당일의 날씨를 보아가며 오르기 쉬운 인근 산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찾을 겸해서 나서는 것이 좋은데 밀양의 재약산이 그런 경우다.
표충사~천황산 사자봉 경유 6개코스 12km 6시간 반 정도 소요산꼭대기 바위서 흐르는 폭포·재약산 사자평 억새밭 `볼거리`
지난 일요일 등산 날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깨어났다. 다른 날 같으면 출발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로 나가면 되지만 오늘은 경우가 다르다. 필자가 수석부회장으로 있는 대구시 등산 연합회가 주도하여 밀양 재약산 등산을 가는데, 그 책임감 때문이다.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신새벽에 일어나는데, 힘든 등산을 실천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정신력에 의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쩌면 그렇게 꼭 들어맞는 말을 했을까?` 하는 등산가의 명언이 생각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한 이탈리아 등산가인 기도레이(1861~1935)의 말을 떠올린다.
`등산을 실천하는 속에는 어려운 산을 기어오르려는 단순한 야심과는 다른 것이 있다. 어떤 정신이 있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정열을 산에 바쳤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보수를 산에서 받았다.`
매주 공휴일마다 꼬박꼬박 산에 오르면서 느낀 바는 산은 나에게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딴에는 열정을 갖고 등산을 결행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건만, 기도레이는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보수를 산에서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솔직한 표현인가. 특히 그는 산에 대해 경건하고 겸허한 태도를 유지한 세계 등산계의 특이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밀양은 필자에게 낯 익은 도시다. 개인적 사연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밀양하면 3대 신비를 자랑하는 곳이다.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사명대사 비석에 흐르는 땀과 종소리 나는 만어사의 경석이다. 그 가운데 얼음골은 오늘 등산지역 가까이 있는 곳이다.
일행을 태운 차는 시원하게 달려 재약산 아래에 자리한 표충사의 주차장에 당도하였다. 안내판을 보니 이 부근 일대의 등산코스는 대략 6개 코스로 나누어지는데, 표충사, 금광폭포, 층층폭포, 재약산 수리봉, 천황산 사자봉이 경유 코스다. 둘레를 도는 총 일주거리는 12km에 종주시간은 6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등산인들은 시간을 맞춰보고 왼쪽 코스로 대원암과 금광폭포를 지나 천황산 사자봉(1,189m)에 올랐다가 중간 갈림길로 해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그 반대편 코스로는 흑룡폭포, 층층폭포를 지나 재악산 수미봉(1,108m)에 올랐다가 천황산으로 가지 않고 중간 계곡인 진불암을 거쳐 표충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표충사에 들렀다.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때 지어졌고, 본래 이름은 죽림사였다. 그러다가 조선 현종 때(1839) 월파 천유화상이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을 이쪽으로 이전하면서 표충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절에 깃든 고승들의 자취만큼이나 정갈한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데, 특히 재약산의 사계에 따라 수시로 변화는 주위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계절에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과 등산객로 붐빈다.
표충사를 둘러보고서 일행들은 평탄한 길을 걸어 흑룡폭포를 지난다. 재약산 동쪽의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이 흘러내리는 층층폭포와 흑룡폭포를 `옥류동천`이라 부르고, 서쪽편의 금광폭포를 `옥류서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재약산의 여름 등산이 유명한 것은 산꼭대기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폭포수 덕이다.
금강폭포와 흑룡폭포, 층층폭포 등 3총사 폭포수의 시원한 맛은 마음을 다 녹인다. 특히 오늘과 같이 땀이 뒤범벅되는 무더위 속의 등산에서는 폭포수 풍경만 봐도 청량제가 된다. 흑룡폭포는 아래로 내려설 수 없는 지형이어서 등산로에서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며 갈증을 달래며, 층층폭포로 향했다.
표충사에서 재약산으로 가는 3.3km지점인 산의 8부 능선에 높이 20m가량의 층층폭포가 있다. 산꼭대기에서 폭포 두 개가 연이어 떨어지는데 인정한 수량으로 떨어지는 그 거대한 물줄기에 입이 딱 벌어지면서 지금까지 흘린 땀이 말끔히 씻어지는 기분이다. 위쪽 폭포에서 아래쪽 폭포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선경이 따로 없다.
다시 길을 나서서 고사리 마을 터를 지난다. 50~60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11여 가구 35명의 화전민들이 모두 떠나고 당시 고사리분교 학교터의 흔적만 남아 있다. 고사리마을 터를 지나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사자평 억새밭 길을 걷는다. 펼쳐진 평원 같은 넓은 곳인데, 이곳은 여름철에는 밋밋한 풍경이지만 재약산 억새꽃은 전국에서도 유명하여 가을 억새꽃이 한참 피어날 때에 사자평 이 일대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해발 800m 남짓한 사자평은 굵은 나무가 없고 키 작은 나무숲과 너른 평원으로 1980년대쯤 목장이 있었다. 고원 일대의 나무를 베어내서 목장 초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여름등산을 하면서 가을을 생각하는 것은 여유다. 더위 속에서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데도 가을에 핀 억새꽃 풍경을 상상하는 것도 당장의 무더움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도 되리라. 또 다시 비오듯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잠시 쉬다가 행보를 계속하여 재약산 정봉에 오른다.
재약산의 재약(載藥)이란 이름은 신라 흥덕왕이 지은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약수를 찾아 헤매다 이곳의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되자 흥덕왕이 직접 이름을 내렸다는 것이다. 깊은 산중에서 피리를 만드는 대나무가 자란다고 하는데, 표충사의 옛 이름이 죽림사였고 보니 대나무와도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났다.
정상에 올라서보니 가까이 천황산이 보이고, 뒤쪽 너머로 가지산과 능동산, 운문산이 우뚝 솟아있고, 아래로 표충사 전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한다. 여기에 서니 왜 재약산을 `영남 알프스`의 중심으로 부르는지 실감이 난다.
사방으로 터진 시야에 첩첩 명산이 그려내는 선들이 끝이 없고, 마치 산들이 둥글게 친 병풍과 같이 보인다. 또한 가까이 사자평 지역의 산정에 펼쳐진 너른 초지의 목장과 풀을 뜯는 소의 이국적인 모습에 알프스라고 명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약산 정상인 수미봉에서 잠시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2km쯤 전방에 천황산이 보인다. 거기까지 갈 요량이지만 날씨가 너무 무덥고 쉴 겸 해서 풍경만 구경하다가 아래 진불암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필자는 함께 온 일행에게 “밀양은 얼음골로 유명한데, 바로 저기 보이는 천황봉 북쪽 중턱 해발 600m지점이 얼음골 계곡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약 3,000평쯤 되는 돌밭인 얼음골은 여름 한더위에도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날 무렵부터 얼음이 녹는 신비로운 이상기온 지대이다. 경북 청송 땅에도 얼음골이 있는데 같은 이상기온 지대인 것이다.
일행들은 무더위도 잘도 참고 견디면서 진불암을 내려와 갈림길을 지나고 표충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오르면서 보았지만 표충사 경내는 일요일을 맞이하여 구경나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많은 사람들의 자취 속에서 오늘의 여름 산행을 정리해본다.
밀양이 주는 낯익음의 도시에서 표충사의 사계, 재약산의 억새는 밀양 8경 가운데 2경을 차지한다. 비록 때는 이르지 않았지만 이번 등산에서 두 곳을 둘러보았다. 표충사의 아담한 자태나 기암절벽에서 부딪히면서 일정한 량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비경, 재약산과 사자평원에서 멋진 풍광을 두루 맛본 오늘의 등산은 또 하나 나만의 등산일기에 새겨질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생각해본다. 등산은 밑에서 기초하여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 힘듦이 있어도 참고서 각자가 흘린 땀과 기울인 정성, 그리고 인내하는 기다림의 순간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맞이하게 되는 결실임을 안다. 그것은 하나의 돌탑 쌓기다.
등산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에 항상 그렇게 정리해본다. 이번 등산에서 얻은 것이 단순히 등산을 마쳤다는 안도감보다 무언가 이루어 내었다는 위안이다. 그것은 무수히 깔린 바윗돌 위에 무너지지 않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더 얹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위안은 비록 산악회가 작은 조직이지만, 그 조직 내에서 내게 맡겨진 책임을 다했다는 의무의 완성이기도 한데, 그것이 내가 산에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열의 결과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