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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섬, 울릉도

등록일 2013-09-27 02:01 게재일 2013-09-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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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빛 동해바다·해안절벽 산책로 비경 연출
▲ 울릉도는 신비의 섬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만든 해안산책길이 눈에 들어온다.
▲ 울릉도는 신비의 섬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만든 해안산책길이 눈에 들어온다.

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썬플라워호를 타고 울릉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를 보았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영해해수욕장 너머 동해바다와 같은 모습이어서 자꾸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에 고향의 바다에서, 백사장에서 혈기왕성하게 보낸 추억들이 뱃머리에 부서지는 바닷물처럼 순식간에 달려와서는 뒤로 사라진다. 그 푸른 파도너머에서 울릉도 도동항의 모습이 펼쳐진다.북면 나리분지,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별천지

성인봉 원시림 등산길엔 섬말나리·고사리류 등 군락 이뤄 장관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직업상 또는 개인적인 취향의 여러 대화가 도움을 주지만 때로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해보고 싶은 때가 있다. 필자가 지난해부터 주말을 이용해 등산과 여행을 하고 있지만 이는 등산 단체가 아니면 문화예술단체 등 지인들과 함께 하는 행동이다.

수없이 등산을 하면서도 초기에는 등산모임에서 주로 가는 코스를 택했는데 그러다보니 간곳을 또 가게 되고,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생각만 하지 실제로 가볼 수 없는 입장이어서 올봄부터 방법을 바꿨다. 필자가 알고 있는 등산모임이 주말에 가는 곳을 미리 알아본 다음 나의 사정과 여건을 맞춰 선택하는 등산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종전에 정해진 장소를 따라가는 피동적인 입장에서 이제는 능동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등산인지, 하이킹 또는 트레이킹인지 분간을 하여 좋은 코스를 택하게 되는 맞춤형 등산이니 나름대로는 장점도 있다.

말을 타면 종을 앞세우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가고 싶은 곳을 골라서가는 맞춤형 등산을 하다 보니 어떤 때에는 한 수 더 떠서 단독산행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는 분주한 일상을 잠시 잊고서 좋은 명산대천을 골라 혼자서 사색할 여유가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울릉도에 볼일이 생겼을 때 날짜를 잡아 성인봉을 단독 산행하는 계획이었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 일본으로, 국내로 출장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다소 지쳤다. 생활의 재충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때에 마음먹은 것이 울릉도 행이었고, 많은 정보자료를 얻어 실행에 옮겼다.

도동항에서 숙박을 하고서 이튿날 아침 일찍 필자는 산행차림을 갖춰 성인봉 등산에 나섰다. 을릉도 성인봉 등산코스에서 출발점은 대략 세 코스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대원사인데 팔각정, 성인봉, 나래분지, 천부로 내려오는 코스로 6시간이 소요된다.

두 번째는 KBS중계소 코스로 출발지만 다를 뿐 팔각정을 거쳐 성인봉에 올랐다가 나래분지, 천부로 내려오는 코스는 같은데 소요시간은 5시간 40분정도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안평전에서 출발하여 팔각정, 성인봉, 나래분지, 천부 코스인데 5시간 20분 정도 걸리니 도동항 쪽에서 출발해 중앙지점인 성인봉을 넘어 반대편인 천부로 가서 교통편으로 도동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필자는 사전에 코스에 대해 살펴보고서 오르기 쉬운 원 등산코스의 반대방향을 택했다. 먼저 버스를 이용하여 천부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나래분지를 보고서, 신령수를 거쳐 성인봉에 오른 다음, 팔각정을 경유하여 도동항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먼저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북면에 위치한 나리분지는 화산섬인 울릉도가 내세우는 자랑 중 하나다. 화산 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여 생긴 화구원인 나리분지는 그 길이가 동서 1.5㎞, 남북 2㎞로 면적이 198만㎡에 이르는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다. `나리`라는 지명은 과거 개척민들이 이 지역에 자라고 있는 섬말나리의 뿌리를 캐먹으면서 생활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별천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울릉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인데, 17가구 40여 명의 마을주민들이 식당, 숙박업을 병행하면서 요즘은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성인봉 등산과 관련된 주변의 관광지 정보를 입수해 등산코스에 따라 살필 유적지나 주요 관람지는 충분히 살펴봐야 한다. 혼자 등산하는데 있어 가장 유익한 것은 교통정보와 주변의 등산관광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정보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필자는 너와집과 투막집을 보기로 하였다. 먼저 너와집에 가니 등산객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그들과 함께 너와집을 둘러보았다. 너와집은 이 마을에 사람들이 정착하던 130여 년 전(1882년) 재래의 집 형태를 1940년에 건물이 있던 자리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한 목조 건물이다. 지붕이 너와(나무판자)로 돼있어 `너와집`으로 불리어진다.

집 구조는 4칸 측면 일자집으로 지붕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무거운 돌을 얹어 놓은 것이 특색이고, 가옥과 마당을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정낭`이라 부르는 화장실이 있는데, 필자는 오랜만에 그 단어를 들어봤다.

나래분지 마을에 2동이 있는 투막집을 봤다. 투막집도 너와집과 마찬가지로 이주해온 개척민에 의해 건축된 울릉도 고유의 전통 주거형식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섬마을이고 겨울에 눈이 많다보니 기후 특성에 순응하며 전래된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옥으로 주요 문화재인 것이다.

투막집을 빠져나와 성인봉으로 향한다. 가는 코스에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지가 있다. 천연기념물(제52호)로 지정된 이곳 군락지에는 6월경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 피는 섬백리향의 모습이 주변 풍광과 어울려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좋은 볼거리다. 다만 울릉국화가 한창 피어나는 시기가 아니라서 아쉬운 맘이 든다.

본격적인 성인봉 원시림 등산길을 걷는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길 주변에는 너도밤나무, 섬단풍, 섬피나무 등을 주종으로 하는 원시림이 잘 발달되어 있고, 섬말나리, 각종고사리류 및 고비류가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다.

여름이긴 하지만 원시림이 햇볕을 막아주고 있어 나무숲 길을 걷는 동안은 힘이 덜 든다. 신령수 약수터에 도착하여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니 가슴이 시원한데, 신령수라 하니 힘까지 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부터 정상까지는 나무계단이다. 필자는 1천600계단이라 알고 왔지만, 어떤 등산객들은 1천980개 계단이니 심지어 2천개가 넘는다니 정확하지가 않다. 하기야 성인봉에 오르면서 그 계단수를 전부 헤아릴까마는 처음에는 수를 세던 필자도 조금 후면 힘듦과 주변의 경관을 살피느라 잊어버린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성인봉이라 새겨진 표지석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그 오랜 세월동안 성인봉으로 우뚝 서서 사방 바다를 보면서 육지를 그리워한 것이 아니었더냐? 그러한 생각에 필자는 표지석에 다가가 어루만져본다.

한자로 `성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성인봉(聖人峰)이다.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이 산이 워낙 명산이다 보니 이곳사람들이 정봉 꼭대기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 중 성인(聖人)이 나올 만큼 이 잘된다는 풍수설에 의해서 나온 말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에 오르다가 조금 전에 마신 신령수에다가, 이제는 성인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 하늘과 저 아래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기운이 치솟는 야릇한 분위기다. 일순간 지금까지 계단을 오르느라 힘든 순간도 잊어버리고 필자는 천지가 아늑하다는 생각 속을 헤맨다.

멀리 산들을 보니 이 지역에서 해발 900m가 넘는 말잔등(967m), 형제봉(915m)과 미륵산(901m)이 보인다. 그리고 아침에 떠나온 도동항쪽을 바라보면서 울릉도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이것저것을 생각해본다. 그 중에서 우뚝 섬은 독도에 관한 필자의 생각인데, 오늘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제 하산길이다. 어느 산이나 정봉에 오른 뒤에 하산하는 길은 다소 쉽다. 그러나 힘들게 산행을 한 다음 충분히 휴식하지 않고 내려오는 길은 기운이 빠져 위험할 때가 있어 조심스러운데 울릉도 등산은 그렇지가 않다. 바람등대를 지나 팔각정에 도착했다.

팔각정에서 잠시 쉬고서, 구름다리를 거쳐 KBS중계소에 도착하니 나리분지에서 출반한지 4시간 반이나 흘렀다. 혼자서 하는 산행이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도 한 시간 정도가 단축됐는데, 따지고 보면 이 시간은 등산 일행들과 이런 저런 나누거나 행보에 있어 함께 보행속도를 맞추는 시간인 것이다.

등산은 끝이 났지만, 그곳에서 택시를 이용해 도동항에 볼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왕 울릉도 등산길에서 성인봉에 올랐으니 여가시간으로 관광지를 더 돌아다 볼 요량이었다. 먼저 해안산책길로 향했다. 해안산책길을 걸어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갔다가 다시 도동항으로 되돌아 왔다. 해안산책길은 관광객들에게 인기라 한다. 암벽 등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철교나 보도를 만들었으니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도 명물이 되고 있다.

울릉도는 육지 사람들에게 호박엿과 오징어로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사람들은 울릉도를 신비의 섬이라고 한다. 필자는 궁금하여 울릉도 주민들이나 심지어 공무원과 지방의원에게 어찌해 울릉도를 신비의 섬이라 하느냐 물어봐도 신통한 대답이 없다.

필자는 울릉도 성인봉을 단독 등산하면서 그 답을 얻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가 자랑하는 평원이다. 첫째는 화산의 화구원인 나리분지에 마을이 형성돼있고 사람들이 거주한다. 신비한 일이다. 둘째, 산에 고산식물과 저산식물이 함께 자라는 섬이다. 셋째는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인데 식수가 풍부하다. 하루에 약 3만4천톤의 자연수가 바다로 흘러간다. 그 용천수로 화력발전소를 돌려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울릉도 주민들의 생활오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어도 바다는 오염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도동항 인근의 산에 바위틈에서 자라난 2천년 이상이나 되는 향나무는 물이 없어도 끈끈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 실로 신비한 점이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어느 날 갑자기 생활의 재충전을 위해 휴식이 필요했고,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호젓하게 사색하며 머리를 식힐 겸하여 떠나온 울릉도 성인봉 단독 산행 길은 그 정상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원해졌고, 울릉도에서 느낀 신비의 섬에 대한 생각들은 더한층 마음의 여유를 갖게 했다. 앞으로 힘들 때면 혼자서 꿈꾸고 노래하며 걷던 원시림 산행 길을 생각하리라.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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