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물든 명산서 `힐링`… 풍요로운 늦가을 정취 만끽
`우리들 산악회`에서 이번 산행은 구례 오산과 사성암이란 연락을 받고 사전 정보를 입수할 요량으로 구례군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행정기관의 메인화면에서 두 가지 홍보가 나오는데 하나는 `오산과 사성암`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아골 단풍축제`를 알리는 내용이다. 또한 `구례10경` 가운데 9경에 속하는 오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오산은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해 있는 해발 531m의 호젓한 산으로 자라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비경이 많아 가족 등반이나 단체소풍 코스로 사랑받는 정취어린 산이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암벽에는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이 조각돼 있는데 이를 마애여래입상이라 한다.
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원효, 도선, 진각, 의상 등 네 성인이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는 글이다.
이 내용만 봐도 지리산, 섬진강 등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구례군의 명소 중에서 오산 사성암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즐거운 산행을 그려본다.
사성암- 오산- 둥주리봉-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4시간 산행
정상오르면 지리산 자락·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모습 한눈에
우리들 산악회원을 태운 관광버스는 88올림픽 길을 달려 오전 10시 반경에 구례군 문척면 죽연마을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주차장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산행을 준비한다. 어느 행사처럼 산행 홍보 말을 듣고 플래카드를 걸고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구례 오산 등산은 수월한 편이다. 등산코스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1코스는 죽연주차장을 출발해 사성암과 오산을 거쳐 둥주리봉에 올랐다가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하산하는 4시간 반가량의 산행이다.
2코스는 죽연주차장- 사성암- 오산- 둥주리봉- 능괭이갈림길- 용서폭포를 거쳐 용서마을을 지나 동해마을로 오는 코스로 6시간 50분이 소요된다.
이번 우리들 산악회의 등산 일정은 죽연마을에서 사성암과 오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1코스의 일부 구간이다. 그러나 필자는 산행을 연장해 매봉, 선바위, 둥주리봉을 거쳐 동해마을로 내려오는 긴 산행일정을 택했는데 오산 등산의 1코스에 해당된다.
오전 10시40분경에 죽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길 초입의 콘크리트길이 끝난 지점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너덜지점에 돌탑들이 있다. 어느 등산로에서든 돌이 많이 있는 곳에서는 만나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평이한 길로 1시간 남짓 올라가니 기암절벽위에 터를 잡은 사성암이 나타난다. 출발지에서 2.2km의 거리다. 여기에는 산행하는 사람들보다 불자들이나 일반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가을 등산도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특히 구례에 유명한 산수유나 벚꽃이 피는 봄철은 오산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풍경과 어울려 멋진 장관을 만들어낸다.
사성암은 암반 위에 만들어져 있는 관계로 어느 사찰에서 보는 마당이 없다는 게 특색이다. 사차건물이 오산으로 오르는 절벽에 하나씩 세워져있으니 그 자체만 하더라도 볼거리가 된다.
누가 이곳에 힘들게 사찰을 지었을까? 그 의문부터가 고행을 수행하는 길의 시초다.
544년(백제 성왕 22년)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산은 바위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겨서 명명된 이름으로 `사성암사적`에 의하면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고 해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는 기록이다.
필자는 먼저 사선암 법당에 찾아들어 20분간 예불을 올렸다. 등산을 하면서 사찰에 들려서 매양 하는 것이지만 소원하는 것은 가족의 평안이고, 오늘 등산 온 일행들의 무사 귀환과 함께 필자가 일상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예술소비운동의 대중화와 지역내에서 문화예술이 활기를 찾기 위한 나름대로의 바람들이다.
기도를 마치고 나와서 주변을 살펴본다. 법당 왼편에 지장전, 도선굴, 소원바위가 있다. 또한 사선암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정도 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있는데, 고려 초기에 조성됐다고 한다. 일설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산왕전, 도선굴을 지나 산 위를 7~8분 오르니 바로 오산 정상이 나타난다. 오산 정상은 암봉으로 돼 있는데, 팔각정 정자가 있어 그 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다. 저 위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보이고 아래쪽에는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도 아름답다.
구례군청 홈페이지 메인화면에서 홍보하고 있는 `오산 사선암`이다 보니 명성에 걸맞게 주변의 풍경이 비경이다. 사찰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 있으니 개인의 종교관을 떠나서 사서암은 누구나 한번쯤은 볼만한 건물이다.
일행들과 함께 오산 정봉(530.8m)에서 사진을 찍고 주변을 살펴보다가 다음 행선지인 둥주리봉으로 향한다. 여기서 동행한 우리들 산악회 회원들은 다시 하산하여 다른 행차를 하게 된다. 필자는 이왕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오산 등산의 명품지인 등주리봉까지 올랐다가 동해마을로 하산할 계획이다.
산세나 등산길도 그렇지만 호젓한 등산이 시작된다. 조금 전만 해도 사선암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많은 사람들의 복잡함 속에 있었는데 그들 무리를 빠져나와서 혼자 걷는 기분도 좋다.
오산에서 매봉을 거쳐 둥주리봉으로 걸어가는 길은 혼자다. 단풍철에는 산악회에서 주로 단풍이 곱게 찾아드는 명산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전국 산을 다녀보면 알려지지 않은 산도 그 경치가 빼어나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다.
400m쯤 지나니 매봉(528m)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둥주리봉까지 4.2km이다. 원래 이 길 선바위산책길 1.1km 거리는 등산하기 편안한 길로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사색하며 걷는 길로써는 안성맞춤이다.
선바위전망대에 도착하여 혼자서 주변을 살펴본다. 가을햇살이 따갑다. 멀리 구례쪽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이 잔잔히 눈앞에 펼쳐진다. 섬진강을 소재로 하는 숱한 글이 많지만 강은 그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안고서 묵묵히 흐르는 것이다.
조금 전에 여럿사람과 올랐던 사선암이 오른쪽에 보인다.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몇십 분 전이고 거리로 따져도 1km 남짓한데, 함께 산을 올랐던 일행들이나 절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시공에서 멀어졌고 굳이 말하자면 과거 속으로 흘러간 것이다.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선바위에 올랐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부터 둥주리봉까지는 3km인데, 잘 다듬어진 소나무 숲길로 나 있어 정말 마음이 편안한 등산이다.
이름 없는 등성이 무명봉에 홀로 올랐다가 헬기장 인근에 다다르니 벌써 1시 40분이나 됐다.
소나무가 있는 전망좋은 그늘을 찾아 잠시 쉬면서 가져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할 테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급한 것이 없으니 천천히 식사를 하고나서 주변의 풍경도 즐긴다.
때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난 후에 등산을 계속해 배바위를 지나 삼거리 전망 테크에서 등산 온 일행을 만났다. 이곳까지 오면서 처음으로 만난 일행이었는데 그들은 목재 테크에 자리를 깔고서 때늦은 오찬을 하면서 오후의 가을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이번 등산길에서 다른 평이한 길과는 다르게 암반길을 조금 걷다보니 주봉이 나타났다. 이곳이 동주리봉이다. 오산에서 일행과 헤어져 혼자 등산을 시작한지 2시간 반이 걸려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 산 정상(690m)에서 전망을 본다. 지리산이 가까워서인지 저 멀리로 보이는 산들의 산세가 웅장해 보인다.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산은 전국 어디를 가나 풍경이 아름답다. 게다가 오늘은 혼자서 자연의 경치를 살피면서 호젓하게 걷다보니 더 많은 생각을 가지면서 등산에 대한 애착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자연을 좋아해 답사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문화적인 성숙도는 낮다. 등산을 하고서는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리를 깔고서는 술을 먹고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꼴불견들도 자주 보인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놀이 오는 사람들 가운데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연에 대한 방종자들이 많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거의가 산에 와서 놀고 난 뒤에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방치하는 등 성숙한 등산문화가 없다. 산에 와서는 자연을 느끼고 자기를 뒤돌아보고 해야 되는데, 자신만 생각하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그래서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동해마을 쪽으로 하산하면 일정이 끝난다. 둥주리봉에서 동해마을 쪽으로 가는 등산로는 잘 다듬어지지 않아 필자는 집중해 마을로 하산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20분이었고, 국도를 따라 30분 걸어서 주차장까지 걸어왔다. 오늘 사선암과 오산을 거쳐 둥주리봉까지 코스를 완주하는데 총 5시간 10분이나 걸렸다.
이번 산행은 다른 산행과는 달리 도중에 일행과 헤어져 홀로 등산을 했다. 자연을 배우며 한창 무르익는 가을볕을 이고 호젓한 가을 등산을 하니 마음의 여유가 쌓인다. 한편으로 등산하는 동안 자신에 대해서도 성찰해본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 또 앞으로 가치 있게 살아갈 날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인생철학까지 두루 생각나게 한 의미 있는 등산이었다.
구례 10경 중 하나인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사선암과 밑으로 섬진강을 굽어보는 오산의 풍경은 빼어났다. 기도처로서도 유명한 곳이지만 주변 전망도 워낙 좋아 자연의 길로 통하는 구례군이 자신 있게 홍보해도 손색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러니 “오산을 오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고 다시 가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진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 이곳 오산과 사선암을 찾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