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비경·7곳 명당자리가 있는 `충남의 알프스`
추운 날씨에 안전하게 하산해 산행 일정을 마치게 되면 종점에 도착해서 오늘도 무사히 산행했다는 안도감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지난번 산행에서 어느 산행인이 흥에 겨워 부르던 노래가 기억이 난다.
“못 잊어서 또 왔네, 미련 때문에 / 못 잊어서 또 왔네, 그대 보고파….” 이 노래는 이상열의 `미련 때문에`라는 노래인데,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그는 “그리운 님 찾아서 내가 또 왔네“에서 임은 산이라 했고 산이 좋아 또 찾아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등산 애호가들에 있어 산은 임 같은 존재다. 언제나 그곳에 있으면서 그립게 손짓한다. 그러니 산을 멀리 할래야 멀리할 수가 없고, 정기적으로 산을 찾는 것이 일상의 기쁨처럼 굳어져버린 것이 산행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이리라.
산에서 부르는 노래를 찾는다면 `칠갑산`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도 주병선이 불러 일약 청양에 있는 산을 전국에 알린 노래로 필자도 좋아해서 가끔씩 불러본다. 콩밭 매는 아낙네와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는 딸의 애절함이 구구절절이 배어난다.
정상에서 능선이 여러 곳으로 뻗어 있고 지천들이 계곡 싸고돌아총 길이 207m 천장호 출렁다리, 방송 보도 후 전국서 관광객 몰려
이번 산은 충남 청양에 있는 칠갑산행이다. 지난번 산행에서 무리를 한 탓에 이번에는 다소 등산이 평이한 곳을 선택했는데, 일행들과 함께 새벽에 출발한 차는 오전 10시반경 청양 칠갑산 도립공원관리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칠갑산 등산은 7코스로 나누어지는데 등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로는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에서 출발해 장승공원에서 조각상을 보고 금두산과 삼형제봉을 거쳐 칠갑산에 오른다.
정상에서 하산코스로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직진하여 천장호 쪽으로 하산하면 칠갑산 휴게소가 하산 종점이다. 둘째 코스는 우회전하여 천문대쪽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셋째 코스는 우회전하여 도립공원 관리소로 복귀하는 코스다. 네 번째는 장곡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출발지로 천문대를 선택해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 있고, 장곡사에서 오르는 방법, 칠갑산 휴게소에서 오르는 방법이 있다. 드림산악회는 도립공원에서 칠갑산 정상, 천장호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거리상으로는 약 9.2km이나 3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필자는 출발지점에서 20분 정도 내려와 장각사 절을 둘러보고 다시 도립공원 관리사무소로 가서 일행을 따라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청양의 상징인 장곡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듯해서다.
일반도로를 따라 20분간 내려오다가 골짜기로 들어가니 장곡사가 나온다. 사찰 내로 들어가 보니 소문대로 아름답고 고즈넉한 절이다. 장곡사는 이 지방에서는 유명한 절로 예로부터 공주 마곡사, 예산 안곡사, 청양 운곡사와 함께 `사곡사(四谷寺)`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경내를 둘러보니 여기에는 특이하게도 대웅전이 두 개나 있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이다. 하대웅전의 주불은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인데,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금동불상 중 하나다.
하대웅전을 지나 다시 5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니 상대웅전(보물 제162호)이 있다. 1777년의 상대웅전 중수기에 따르면, 여기엔 본래 불상 5좌가 있었는데 현재는 불상이 3좌가 남아 있다. 규모가 큰 불상이 국보 제58호로 지정된 철조약사여래좌상이다.
조그만 절에서 국보도 만나보고, 보물도 본 후에 길을 나서서 차에서 내렸던 지점으로 다시 올라선다. 도립공원사무소 부근에는 장승공원이 있다.
장승공원에서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장승들을 보니 어렸을 때나 전국을 다니면서 자주 봐서 그런지 친근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천지대장군이나 천지여장군은 어디서나 있는 공통적인 장승이다.
산행 시작부터 통나무 계단을 올라서야 하는 고도가 높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로 행여 추울까 싶어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왔으니 힘들게 10분 간 오르니 이마에는 비지땀이 흐른다.
한겨울에 등산하면서 이렇게 땀을 흘려보기는 생전 처음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니 솔바람길이 나온다. 소나무 숲길 사이 등산길이 바람골처럼 뚫리어 솔향기가 퍼져 나는 길이라서 `솔바람길`이라 이름 붙였는지도 모른다.
칠갑산 가는 길목에 있는 백리산 등마루 쉼터에서 잠시 쉰다. 쉼터 자리에 청양군 특산물인 청양고추, 구기자, 메론을 선전하는 홍보판이 있어 잠시 살펴보다가 다시 길을 나서 금두산 정상에 올랐다.
금두산에 올라도 정상 표지석이 없고 그냥 산마루로 돼있어 바로 지나쳐 등성이를 걷는다. 겨울치고는 날씨가 따뜻해 마치 봄 산을 등산하는 기분이 든다. 삼형제봉을 지나서 조금 오르니 정상 직전에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매우 가파르게 보인다.
전국 등산을 다니면서 몇 개로 이어진 계단이 아니라 많은 계단으로 만들어진 등산로에서는 본능적으로 계단 수를 헤아리기도 하는데 올라오면서 헤아려보니 200개가 훨씬 넘는다. 다 올라와서 주변사람들에게 나무계단 숫자를 물으니 255개나 된단다.
칠갑산 산마루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칠갑산 노래의 영향인지는 모르나 어디선가 자꾸만 산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주변을 살펴본다. 정상에는 산불 발생 등 비상시에 활용하는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둘러 앉아 쉬거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다른 산들과는 다르게 칠갑산 정상에서는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음료수나 간단히 먹을 음식을 사서는 함께 온 사람들과 휴식을 즐기고 있다.
차령산맥에 속한 칠갑산은 산정에서 능선이 여러 곳으로 뻗어 있고 지천들이 계곡을 싸고돌아 7곳의 명당자리가 있다 하여 그 이름이 칠갑산이라 불린다. 또한 울창한 수림에 가린 계곡으로 빼어난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충남의 알프스`라고 일컫는 산이다.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에 주변을 살펴본다. 정상에서 바라봐도 남서부 쪽의 전망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지 않는 게 다소 흠이다. 몇 군데 풍경을 핸드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하산 길에 내려선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면서 필자는 청양군이 칠갑산과 특산품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칠갑산은 산세 규모가 크지 않고 높이도 561m에 불과해 등산객들이 많이 찾을 곳은 아니다.
하지만 등산로를 정비하고 요소요소에 안내판을 설치해놓고, 들머리 또는 날머리에 위치한 장승공원이나 천장호수에 `콩밭 매는 아낙네 상` 등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시설물들이 청양군에서 관광객 유치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가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곳 중 하나가 천장호 출렁다리다. 칠갑산 정상에서 산등성이로 내려오면 3.7km 지점에 천장호수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있다. 2009년 7월에 개통된 이 다리는 2011년 4월경에 KBS `1박2일팀`이 다녀가고 보도를 탄 이후에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총 길이가 207m로 국내 출렁다리 가운데 가장 길다고 한다. 다리 중간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고추와 구기자를 설치하고 로프를 매어 사장교 형식의 다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특색이다. 칠갑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이 하산 길에서 출렁다리를 타면서 등산의 피로를 푸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필자는 출렁다리에서 이모저모를 살피고 사진을 찍고서 500m 지점에 있는 칠갑산 휴게소로 가서 이번 등산을 마무리 했다. 대한을 하루 앞둔 추운 겨울에 마치 봄날 같이 따뜻한 날씨 속에서 산행을 마쳤는데, 청양군이 타지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사실`청양고추`만 해도 그렇다. 청양군이 매운 고추의 대명사인 청양고추를 오랫동안 계획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중간에 설치한 초대형 고추를 설치하고 칠갑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청양군의 특산품으로 청양고추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홍보 결과로 국민은 청양고추가 청양지역에서 나는 매운 고추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청양 칠갑산을 등산하고서, 등산하는 동안 여기저기 홍보판에 청양고추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어 그 실상을 끄트머리에 한번 적어본다.
청양고추를 개발해 국립종자관리소에 품종개발 등록자(유일웅 박사)의 말을 빌리면, 청양고추 품종은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경북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 재배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송과 영양 현지 농가의 요청에 의해 청송의 청(靑), 영양의 양(陽)자를 따와 품종 등록했다는 것인데, 이는 청양고추를 개발한 중앙종묘측이 밝힌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청양군이 선점하여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결과로 청양고추가 청양 특산품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음을 지방화시대에 고장을 알리는 뛰어난 전략이기도 하다. 칠갑산 등산에서 이런 내용까지 알게 됐으니 이 또한 등산에서 얻는 풍물의 지혜이니 이래저래 등산은 유익한 점들이 많다.